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대표 이미지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대표 이미지
  • A4
    사이즈 비교
    210x297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사이즈 비교 145x195
    단위 : mm
01 / 02
무료배송 소득공제
10% 16,920 18,800
적립/혜택
940P

기본적립

5% 적립 940P

추가적립

  • 5만원 이상 구매 시 추가 2,000P
  • 3만원 이상 구매 시, 등급별 2~4% 추가 최대 940P
  •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추가 최대 300원
배송안내
무료배송
배송비 안내
국내도서/외국도서
도서 포함 15,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도서+사은품 또는 도서+사은품+교보Only(교보굿즈)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교보Only(교보배송)
각각 구매하거나 함께 20,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20,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해외주문 서양도서/해외주문 일본도서(교보배송)
각각 구매하거나 함께 15,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업체배송 상품(전집, GIFT, 음반/DVD 등)
해당 상품 상세페이지 "배송비" 참고 (업체 별/판매자 별 무료배송 기준 다름)
바로드림 오늘배송
업체에서 별도 배송하여 1Box당 배송비 2,500원 부과

1Box 기준 : 도서 10권

그 외 무료배송 기준
바로드림, eBook 상품을 주문한 경우, 플래티넘/골드/실버회원 무료배송쿠폰 이용하여 주문한 경우, 무료배송 등록 상품을 주문한 경우
내일(4/28,월) 도착
기본배송지 기준
배송일자 기준 안내
로그인 : 회원정보에 등록된 기본배송지
로그아웃 : '서울시 종로구 종로1' 주소 기준
로그인정확한 배송 안내를 받아보세요!

이달의 꽃과 함께 책을 받아보세요!

1권 구매 시 결제 단계에서 적용 가능합니다.

알림 신청하시면 원하시는 정보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상세 이미지

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윤동주, 백석, 김소월 등 시인 40인과
귀스타브 카유보트, 파울 클레, 차일드 하삼, 3인의 화가가 펼치는 봄의 향연
다정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의 세계를 그린 시화집
국내외 시인 40명의 봄 시와 봄 그림을 모은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이 출간되었다. 윤동주, 백석, 정지용, 김소월 등 40명 시인과,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 파울 클레,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차일드 하삼의 화사하고 따뜻한 그림이 가득한 책이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은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 중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산에는 꽃이 피네》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3편을 합본한 책이며,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은 달마다 어울리는 화가를 선정하여 그림과 시를 매치한 시화집 시리즈이다. 평소 시를 좋아했던 독자들은 시와 잘 어울리는 그림을 함께 감상하며 선물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파리의 도시를 그린 거리 풍경, 프랑스 시골의 정경, 독일의 추상화로 그린 사람들의 모습, 미국의 도시와 해안을 담은 풍경 그림이 시심(詩心)이 깊은 봄 시와 어우러져 독특한 감상의 미를 만들어낸다. 이 시화집은 하루에 시 한 편과 그림 한 점으로 일상에서 여유를 만들어내고 불안을 걷어낼 수 있도록 돕는다. 시를 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따듯함과 안정감을 담은 위로와 힐링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기존 시리즈에 비해 글자 크기와 판형을 키우고 고해상도 그림으로 더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퀄리티를 높이고, 소프트양장본으로 소장가치를 더했다.

이 책의 시리즈 (6)

작가정보

그림/만화 귀스타브 카유보트

1848~1894.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870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법관이 되기를 포기하고 레옹 보나(L?on Bonnat)의 스튜디오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1873년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으며, 이듬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그림 그리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사실주의 화풍을 공부하며 학문으로서 미술을 공부했지만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75년 〈마루를 깎는 사람들〉을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너무 적나라한 현실감 때문에 심사위원들로부터 거부당했다. 1876년 제2회 인상파 전시회에 이 작품을 출품하고,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인상파전에 참여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했다. 그가 도움을 주었던 가난한 인상파 화가들은, 마네, 모네, 르느와르, 피사로, 드가, 세잔 등이었다. 그가 소장하고 있던 67점의 인상파 작품을 사후에 프랑스국립미술관에 기증했으나 ‘주제넘은 기증’에 당황하여 수용 여부를 놓고 한바탕 논란이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논란을 계기로 인상파 화가들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고전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파리의 모습을 주제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길 위의 풍경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커다란 도로, 광장, 다리, 그리고 그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며 19세기 새롭게 변화하는 파리의 풍경을 재현했다. 치밀한 화면 구성과 화면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 간의 균형, 독특한 구도, 대담한 원근법의 사용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다르게 남성이 작품의 주제로 부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창가의 남자(A Young Man at His Window)〉(1875), 〈마루를 깎는 사람들(The Floor Scrapers)〉(1875), 〈유럽 다리(The Pont du Europe)〉(1876), 〈비 오는 파리 거리(Paris Street, Rainy Day)〉(1877), 〈눈 쌓인 지붕(Rooftops Under Snow)〉(1878), 〈자화상(Selfportrait)〉(1892) 등이 있다.

그림/만화 파울 클레

독일 화가로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 베른 근처 뮌헨부흐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회화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바이올린 연주에 뛰어났다. 21세에 회화를 선택한 후에도 W. R.바그너와 R.슈트라우스, W. A.모차르트의 곡들에 심취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98~1901년 독일의 뮌헨에서 세기 말의 화가 F. 슈투크에게 사사하기도 하였다. 1911년 칸딘스키, F. 마르크, A. 마케와 사귀고, 이듬해 1912년의 ‘청기사’ 제2회전에 참가하였으나 1914년 튀니스여행을 계기로 색채에 눈을 떠 새로운 창조세계로 들어갔다.청기사파, 바우하우스 등과 관계를 맺었으나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특정 미술 사조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1921년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 교수가 되었고, 후에 뒤셀도르프 미술학 교수가 되어 1933년까지 독일에 머물렀으나 독일에서는 나치스에 의한 예술탄압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였다. 급진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클레는 나치가 정권을 잡은 후 바우하우스의 교수직을 박탈당했고, 1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몰수당했다. 그러자 독일에 환멸을 느끼고 스위스로 돌아갔다.그의 작품은 구상적인 미술양식과 추상적인 미술양식 모두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 미술 사조에 속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클레는 작품에서 엄격한 입방체와 점묘법, 그리고 자유로운 드로잉을 실험했으며, 그가 접했던 모든 미술 사조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14년에 그는 동료 화가들인 루이 무아예와 아우구스트 마케와 함께 아프리카 튀니지로 여행을 떠났다. 클레는 여행 중에 느낀 감상을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화가다.”라고 표현했다. 클레는 일찍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는 그의 미술 작품의 형식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빨강의 푸가〉(1921)와 〈a장조 풍경〉(1930) 같은 많은 작품들을 음악적인 구조로 정돈했는데, 마치 악보 위에 음표들을 배열하듯이 색채들을 정확히 배열했다. 저술에는 바우하우스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은 《조형사고(造形思考, Das bildnerische Denken)》(1956) 《일기(Tageb?cher)》(1957)가 있다. 작품수장집은 스위스의 베른미술관 내 클레재단에 약 3,000점이 소장되어 있다. 대표작으로는 《새의 섬》 《항구》 《정원 속의 인물》 《죽음과 불》 등이다.

그림/만화 차일드 하삼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미국의 도시와 해안을 주로 그렸다. 3,000점이 넘는 그림, 유화, 수채화, 에칭, 석판화 등을 제작했으며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미술품 및 공동품을 많이 소장한 성공한 사업가이며, 어머니는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엘 호손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드로잉과 수채화에 뛰어났으나 그의 부모는 초기에 그의 재능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나무조각가로 일했으며 1879년경부터 초기 유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선호하는 장르는 수채화였고 대부분 풍경화였다.1883년 보스톤의 윌리엄스 에버렛 갤러리(Williams and Everett Gallery)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수채화를 전시했다. 다음 해, 그의 친구들의 권유로 중간이름 없이, ‘차일드 하삼(Childe Hassam)으로 활동했다. 또한 서명에는 항상 초승달 모양의 상징을 추가했는데, 그 의미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1886년 프랑스의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구상적 드로잉과 회화를 공부했으며, 인상주의를 미국 미술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880년대 중반, 하삼은 도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보스턴 커먼의 황혼(Boston Common at Twilight)〉(1885)은 그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미국의 미술평론가들의 반응은 냉담했으나 그는 크게 성공했고, 파리에서 생활하며 프랑스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다.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 칠레 등을 여행하며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미국 인상주의의 선도적 역할을 했지만, 신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로 전환될 때 뒤늦게 인상주의에 합류했다. <BR>후기 작품 중에 가장 독특하고 유명한 작품으로는 ‘깃발 시리즈(Flag Series)’로 알려진 30여 점의 그림이 있다. 1916년 뉴욕 5번가에서 열린 미국의 세계1차대전 참전 퍼레이드에서 영감을 얻어 연작을 만들었다. 그중〈빗속의 거리〉는, 2009년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을 재정비하면서 걸어놓아 화제가 되었다. 1919년 하삼은 뉴욕의 이스트햄튼에 살았고, 1920년대부터 에드워드 호퍼나 로버트 헨리 같은 사실주의파에 합류하기도 했다.1960년대 미국에서 인상주의 화풍이 부활하기 전까지, 하삼은 ‘비운의 버려진 천재’로 남았으나, 1970년대에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품들이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되자, 하삼과 미국의 인상주의학파들은 다시 인기를 얻었다.

저자(글) 윤동주

윤동주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출생하여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였고 일본 동경 동지사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부터 여러 지면의 학생란에 동시, 시, 산문 등을 발표하던 중 1941년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구주 복강 형무소에서 의문의 병사를 당했다. 열다섯 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삶과 죽음」, 「초 한 대」를 썼다. 발표 작품으로는 만주의 연길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지에 실린 동시 「병아리」, 「빗자루」, 「무얼 먹구 사나」, 「거짓부리」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작품으로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지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이 있다. 유작 「쉽게 쓰여진 시」는 사후에 『경향신문』에 게재되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절정기에 쓰인 작품들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가, 사후에 본인의 뜻대로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29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특유의 감수성과 삶에 대한 고뇌, 독립에 대한 소망이 서려 있는 작품들로 인해 대한민국 문학사에 길이 남은 전설적인 문인이다.

저자(글) 백석

백석

평안도 정주 출생(1912-1995)이다. 본명 백기행.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했지만 소설 작품은 많이 남기지 않았다. 1935년 조선일보에 '정주성'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사슴'을 비롯 남북이 분단되기까지 60여 편의 시를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습니다. 한국전쟁 후 북한에서 활동한 백석은 아동문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몇 편의 아동문학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1957년 '멧돼지' 등 3편의 동시를 발표했으며, '개구리네 한솥밥'이 수록된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발간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저자(글) 정지용

1902년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沃川)에서 출생하였다.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모교의 교사, 8·15광복 후 이화여자전문 교수와 경향신문사(京鄕新聞社) 편집국장을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순수시인이었으나, 광복 후 좌익 문학단체에 관계하다가 전향, 보도연맹(輔導聯盟)에 가입하였으며, 6·25전쟁 때 북한공산군에 끌려간 후 사망했다.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장시켰으며, 1939년 '문장(文章)'을 통해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의 청록파(靑鹿派)를 등장시켰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대상을 선명히 묘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 작품으로, 시 '향수(鄕愁)', '압천(鴨川)', '이른봄 아침', '바다' 등과, 시집 '정지용 시집'이 있다.

저자(글) 김영랑

김영랑

1903년 전남 강진 출생이다. 강진의 부유한 지주 가정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우며 자랐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결혼하였으나 1년 반 만에 사별하고, 휘문의숙에 입학하면서 정지용, 이태준 등을 만나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고향에서 의거하기 위해 구두 속에 선언문을 감추고 강진으로 내려갔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1930년 아호였던 영랑이라는 이름으로 『시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등단한 그는 관념과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던 당대 문단에서 섬세하게 조탁한 언어로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1935년 첫 번째 시집인 『영랑시집』을 간행한 후 잠시 공백기를 갖는다. 그 시간 동안 그의 시 세계는 변화해 순수문학 대신 사회성이 깃든 시를 짓기 시작했다. 광복 후 민족운동 참가, 민의원 선거 출마, 공보처 출판국장 재직 등 활발한 사회적 활동을 보였으며 이 시기에 발표된 시 역시 적극적인 사회 참여 의욕을 드러낸다. 한국 전쟁 때 서울에서 은신하다가 9.28 수복을 하루 앞두고 포탄의 파편에 맞아 유명을 달리하였다.

저자(글) 박인환

1926년(1세)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 159번지에서 태어났다. 1933년(8세) 인제공립보통학교 입학한 후 1936년(11세) 서울 덕수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다. 1939년(14세)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고, 1941년(16세) 경기공립중학교 자퇴하고 한성중학교에 다녔다. 1942년(17세) 명신중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다. 1944년(19세)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고, 1945년(20세) 광복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상경해 ‘마리서사(茉莉書舍)’를 개업하였다. 1948년(23세) 4월 20일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신시론』 발간하였다.. 4월 이정숙(李丁淑)과 결혼한 후 12월 장남 세형(世馨) 태어났다. 1949년(24세) 4월 5일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발간하다. 김경린, 김규동, 김차영, 이봉래, 조향 등과 ‘후반기’ 동인 결성하였고, 1950년(25세) 1월 『경향신문』 입사하였다. 한국전쟁 겪다. 9월 딸 세화(世華) 태어났다. 1951년(26세) 5월 육군종군작가단에 참여하고, 1952년(27세) 5월 15일 존 스타인벡의 기행문 『소련의 내막』 번역해서 간행하였다. 6월 16일 「주간국제」의 ‘후반기 동인 문예’ 특집에 평론 발표. 1953년(28세) 5월 차남 세곤(世崑) 태어나 7월 중순 서울로 돌아왔다. 1954년(29세) 1월 오종식, 유두연, 이봉래, 허백년, 김규동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발족. 1955년(30세) 3월 5일 미국 여행하다. 10월 1일 시작품 「목마와 숙녀」(『시작』) 발표하다. 10월 15일 시집 『선시집』 간행. 1956년(31세) 3월 시작품 「세월이 가면」 이진섭 작곡으로 널리 불렸다. 3월 20일 오후 9시 자택에서 타계해 3월 22일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1959년(3주기) 10월 10일 윌러 캐더의 장편소설 『이별』 번역해서 간행. 2014년(58주기) 7월 25일 이정숙 여사 별세하였다.

저자(글) 김소월

김소월

1902년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에서 출생하였다. 오산학교 중학부를 거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동경상대(東京商大)를 입학했으나 관동 대지진으로 중퇴 후 귀국하였다. 당시 오산학교 교사였던 안서(岸曙) 김억(金億)의 지도와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의 봄』 등의 작품을 <창조>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어 『먼 후일』『금잔디』『엄마야 누나야』『진달래꽃』 등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들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안타깝게도 33세 되던 1934년 12월 24일 요절했다. 7·5조의 정형률을 많이 써서 한국의 전통적인 한(恨)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글) 노천명

노천명

1912년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 비석포리에서 태어나 1957년 재생불능성빈혈(백혈병)로 세상을 떠난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진명여고보와 이화여전 영문과(8회)를 졸업한 후 조선중앙일보, 조선일보사 ‘여성’ 편집부, 매일신보 학예부 기자를 거쳐, 해방이 되자 서울신문, 부녀신문 등에서 총 13년간 근무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중앙방송국에서 근무했다. 생전에 시집 『산호림』 『창변』 『별을 쳐다보며』를 출간했고, 사후에 나온 유고 시집 『사슴의 노래』가 있다. 수필집 『산딸기』 『나의 생활백서』 『여성서간문독본』 등 생전에 3권을 출간했다. 노천명은 생애 두 번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상처 입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어 내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둘려, 씻을 수 없는 행적으로 고고한 ‘사슴’ 시인의 이미지를 지키지 못했다.

저자(글) 변영로

1898.05.09~1961. 서울 출생. 1918년 '청춘'에 영시 '코스모스(Cosmos)'를 발표해 천재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921년 '신천지' 1호에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1922년 '신생활' 4월호에 대표작 '논개'를 발표했다. 1948년 서울시문화상 문학 부문을 수상했으며 1953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초대 위원장에 취임했다. 1961년 3월 14일 인후암으로 별세했다. 생전에 '조선의 마음'(평문관, 1924)과 '수주시문선'(경문사, 1959)을, 영문 시집으로 'Grove of Azalea'(1948)와 'Korean Odyssey'(국제출판사, 1955)를 출간했다. 그 밖에 '조선시인선집'(조태연 편, 조선통신중학관, 1926), '조선명작선'(김동환 편, 삼중당서점, 1943), '한국시인전집' 제1권(유정·이봉래 편, 학우사, 1955)에 작품이 실렸다. 20주기를 맞아 '수주 변영로문선집'(한진출판사, 1981)이, 그 후로 '변영로전작시집-차라리 달 없는 밤이드면'(김영민 편, 정음사, 1983), '교열본 수주 변영로 시전집'(김영민 편, 한국문화사, 1989), '수주 변영로 시전집'(민충환 엮음, 부천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2010), '변영로 연구'(구자룡 엮음, 산과들, 2012) 등이 간행되었다. 수필집으로는 '명정40년'(서울신문사, 1953), '수주 수상록'(서울신문사, 1954) 등이 있다. 1999년부터는 부천시에서 수주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수주문학상'을 제정해 시행했으며 올해로 14회를 맞이했다. 또한 한국작가회의 부천지부(2008년부터 수주문학제 운영위원회)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수주 변영로 문학제'를 개최했다.

저자(글) 윤곤강

시인. 《시학》 동인으로 등단했다. 초기에는 카프 소속이었으나, 곧 암흑과 불안, 절망을 노래하는 퇴폐적 시풍을 띠게 되었고 풍자적인 시를 썼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전통적 정서에 대한 애착과 탐구를 시에 표현했다.

저자(글) 이해문

1911∼1950. 시인. 충청남도 예산(禮山) 출신. 아호(雅號) 또는 필명(筆名)으로 고산(孤山)과 금오산인(金烏山人)을 사용하고 있는데, 전자는 예산의 옛 지명이고 후자는 이해문이 다녔던 예산보통학교의 뒤에 위치한 산의 이름이다. 어떤 경로를 밟고 문학수업을 했는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1930년을 전후한 시기로부터 본명 이외에 고산 또는 금오산인 등의 이름으로 지상에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1937년 6월에 창간된 시 동인지 《시인춘추(詩人春秋)》와 1938년 6월 창간된 《맥》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시집의 자서(自序)에서 “인생이 예술을 낳는다.”는 자신의 문학관을 피력하였는데, 이는 바로 이해문의 시적 기조가 되기도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자연스런 유로(流露), 곧 감상과 낭만성이 이해문의 시적 특색이다.

저자(글) 이상화

1901∼1943. 시인.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무량(無量)·상화(尙火, 想華)·백아(白啞). 경상북도 대구 출신. 7세에 아버지를 잃고, 14세까지 가정 사숙에서 큰아버지 이일우(李一雨)의 훈도를 받으며 수학하였다. 18세에 경성중앙학교(지금의 중앙중·고등학교) 3년을 수료하고 강원도 금강산 일대를 방랑하였다. 1917년 대구에서 현진건(玄鎭健)·백기만·이상백(李相佰)과 《거화(炬火)》를 프린트판으로 내면서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21세에는 현진건의 소개로 박종화(朴鍾和)를 만나 홍사용(洪思容)·나도향(羅稻香)·박영희(朴英熙) 등과 함께 ‘백조(白潮)’ 동인이 되어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후기 작품 경향은 철저한 회의와 좌절의 경향을 보여주는데 그 대표적 작품으로는 〈역천(逆天)〉(시원, 1935)·〈서러운 해조〉(문장, 1941) 등이 있다. 문학사적으로 평가하면, 어떤 외부적 금제로도 억누를 수 없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연적 충동(情)의 가치를 역설한 이광수(李光洙)의 논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백조파’ 동인의 한 사람이다. 동시에 그 한계를 뛰어넘은 시인으로, 방자한 낭만과 미숙성과 사회개혁과 일제에 대한 저항과 우월감에 가득한 계몽주의와 로맨틱한 혁명사상을 노래하고, 쓰고, 외쳤던 문학사적 의의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글) 노자영

1900년(1세) 황해도 송화군 상리면 양지리에서 출생. 노자영의 출생연도에 대해서는 1898~1901년까지 다양한 설이 있다. 1919년 당시 20세, 1939년의 수필에서는 '36년의 생애'라고 했고 1937년 1월의 설문 응답에서 38세라 한 것으로 보아 1900년 생으로 잠정暫定해 둘 수 있을 듯하다. 1940년에 39세라 답한 기록이 있는 것은 만 나이를 뜻한 것으로 추정해 둔다. 이후 '10세 전후의 소년 시대'에는 황해도 장연군 신화리에서 소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저자(글) 이장희

시인. 세속적인 것을 싫어하여 고독하게 살았으며, 이장희의 전 시편에 나타난 시적 특색은 섬세한 감각과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시적 소재의 선택에 있다. 바로 뒤를 이어 활동한 정지용과 함께 한국시사에서 새로운 시적 경지를 개척하였다.

저자(글) 허민

1914년 경남 사천군 곤양에서 태어났다. 1929년부터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 기슭으로 옮겨 살다 1943년 스물아홉 나이에 지병인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곤양공립보통학교와 해인사 강원을 거쳐 해인사립강습소 교사, 동아일보 진주지국 기자로 일했다. 열여덟 살 때인 1932년 처음으로 시 '이별한 님'이 '불교'에 발표된 뒤, 스물두 살 때인 1936년 '매일신보' 현상 공모에 소설 '구룡산'이 당선되었고, 1940년과 1941년 '문장'에 시 '야산로', 소설 '어산금'이 잇달아 추천되어 문재를 떨쳤다. 그는 길지 않은 작품 활동 기간 동안 시와 소설, 동화, 수필 갈래에 걸쳐 모두 329편이나 되는 작품을 남겼다. 이들 가운데 시가 299편으로 압도적인데, 여섯 편을 뺀 나머지는 모두 미발표 육필 시집 여섯 권에 남아 전한다. 경남의 지역성을 바탕으로 삼아 열정적으로 민족 현실을 안고 뒹굴었던 청년 허민의 문학은 나라잃은시대 후기, 윤동주의 내성적 비전과는 다른 현실적 비전을 앞세우며 우리 근대 민족문학의 마지막 자리를 힘차게 웅변한다.

저자(글) 박용철

1904~1938. 시인. 문학평론가. 번역가. 전라남도 광산(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출신. 아호는 용아(龍兒). 배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에서 수학하였다. 일본 유학 중 김영랑을 만나 1930년 《시문학》을 함께 창간하며 문학에 입문했다. 〈떠나가는 배〉 등 식민지의 설움을 드러낸 시로 이름을 알렸으나, 정작 그는 이데올로기나 모더니즘은 지양하고 대립하여 순수문학이라는 흐름을 이끌었다. 김영랑, 정지용, 신석정, 이하윤 등이 박용철과 함께 순수시를 옹호하는 시문학파 시인들이다. 〈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싸늘한 이마〉 〈비 내리는 날〉 등의 순수시를 발표하며 초기에는 시작 활동을 많이 했으나, 후에는 주로 극예술연구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해외 시와 희곡을 번역하고 평론을 발표하는 활동을 하였다. 1938년 결핵으로 요절하여 생전에 자신의 작품집은 내지 못하였다.

저자(글) 장정심

시인. 1898년 개성출생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와서 이화학당유치사범과 협성여자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시작(詩作)은 1927년경부터 시작하여 많은 작품을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다. 기독교계에서 운영하는 잡지 《청년(靑年)》에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등단했다. 그녀의 시는 서정시, 시조, 동시로 구성되며 조국과 자연, 동심을 망라하는 시를 썼다. 신앙을 바탕으로 섬세한 내면세계를 담백하고 담담하게 표현하는 시를 씀으로써 선구자적 소임을 다한 여류시인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저자(글) 한용운

한용운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이다. 어릴 때부터 한문을 수학했으며, 14세 때인 1892년에 결혼했다. 이후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한 데 이어 백담사 등에서 불교 서적을 탐독했다. 1908년 일본을 주유하며 신문물을 시찰하고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했으며, 32세 때인 1910년 백담사에서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했다. 항일투사로도 활동해, 1918년 청년 계몽 운동지 《유심》을 창간하고 1919년 3·1운동을 주도했으며,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47세 때인 1925년 오세암에서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한 뒤 신간회 발기,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 개최 등 항일운동에 힘쓰는 한편, 월간 《불교》를 인수하고 승려 비밀 결사인 만당에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1932년 조선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되었다. 성금으로 성북동에 심우장을 지을 때 총독부 건물이 마주보이는 것이 싫다며 집을 북향으로 틀도록 했고,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중에도 일제의 식량 배급을 거부했다. 광복 1년을 앞둔 1944년 66세를 일기로 심우장에서 입적했으며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으며, 서울시 성북동 심우장과 설악산 백담사에 만해기념관이 세워졌다.

저자(글) 방정환

방정환

어린이운동의 창시자이자 선구자. 1899년 서울 야주개에서 상인 집안 장남으로 태어남. 한문에 조예가 깊은 조부의 영향으로 5~7세에 천자문을 배움. 7세 때 보성소학교 유치반 입학. 1907년 무렵 갑작스러운 집안의 몰락. 소년입지회 활동. 1909년 매동보통학교 입학 후 전학, 1913년 미동보통학교 졸업. 선린상고 입학, 중퇴. 1915년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취직. 1917년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딸 손용희와 결혼,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보성전문학교 법과 입학, 중단했던 공부를 계속함. 경성청년구락부 조직. 전국을 순회하며 동화구연대회, 소년문제강연회 등을 주도, 청년문화운동과 계몽운동에 앞장섬. 1919년 《신청년》 창간. 최초 영화잡지 《녹성》 발행. 《신여성》 편집고문. 1920년 《개벽》의 도쿄 특파원 임명, 일본 도요〔東洋〕대학 철학과 특별청강생으로 철학, 아동문학·심리학·문화학 등 공부. 1921년 세계 명작 번안동화집 《사랑의 선물》 출간. 번역·번안동화, 소설, 수필, 평론 등 각종 문예활동을 통해 아동문학 보급과 아동보호운동 펼침. '어린이'라는 단어 공식화. 1923년 《어린이》 창간. 색동회 조직, 그 해 5월 1일 어린이날 지정. 1931년 고혈압과 신장염 악화로 그 해 7월 23일 별세.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저자(글) 김억

김억

일제강점기 때, 『해파리의 노래』, 『금모래』, 『봄의 노래』 등을 저술한 시인 · 문학평론가 ·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6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한문 수업을 받았으며 오산학교와 일본 게이오의숙 문과에서 수학했다. 일본 유학생 잡지인 '학지광'에 창작 시와 서구 문학을 소개하는 글을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하며 1921년 근대 문학 최초의 시번역집 <오뇌의 무도>를 발간했다. '폐허'와 '창조'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고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저자(글) 조명희

1920년 유학생들의 사상적인 갈등.가난을 그린 희곡 <김영일 의사>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3년 생활고로 일본에서 귀국. 희곡<파사>를 <<개벽>>지에 발표했따. 1925년 카프에 가담해 이기영,한설야 등과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였따. 대표작<낙동강>은 계금사상 신봉자인 사회운동가 박성은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1928년 일제탄압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 한인촌 교사로 일하며 민족의 한을 노래한 <짓밟힌 고려>를 발표함. 일제의 간첩이란 누명으로 스탈린 정부에서 44세로 총살당했다.

저자(글) 이병각

카프가 해체된 시기인 1935∼36년부터 평론, 산문, 시에 이르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하였지만, 요절하여, 그 활동 기간은 카프 해소 이후 10여 년뿐이다. 현실도피적인 성향인 데다 후두결핵으로 문단활동도 활발하게 하지 못하였다.

저자(글) 이상

이상

1910년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 본관은 강릉이다. 여덟 살 되던 해 신명학교에 입학하여 화가 구본웅과 만나 오랜 친구로 지냈다. 학창 시절, 미술에 관심이 많아 화가를 꿈꾸다가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학교 추천으로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발령받아 근무했다. 1930년,잡지 《조선》 국문판에 첫 작품이자 유일한 장편 소설 「십이월 십이 일」을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했다.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서양화 「자상」이 입선하고,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시 「이상한가역반응」 등 20여 편을 발표했다. 폐결핵으로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를 그만둔 후, 1933년 서울 종로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했다. 1934년 박태원, 정지용, 이태준 등의 도움으로 연작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하고 ‘구인회’ 회원이 되었다. 1936년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 창간호를 발간하고 단편 소설 「지주회시」, 「날개」를 발표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36년 가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37년 2월에 ‘사상 혐의’로 일본 경찰에피검되어 조사를 받던 중 폐결핵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옮겼으나 같은 해 4월, 스물여덟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글) 권태응

호는 동천(洞泉)으로 1918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7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정경학부에 입학했다. 1939년 ‘독서회 사건’으로 일경에 검거되어 1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폐결핵 3기의 몸으로 귀국하여 요양생활을 하며 1944년 초부터 시조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동시 쓰기에 몰두하여 작고하기 전까지 『송아지』, 『하늘과 바다』, 『우리 시골』, 『어린 나무꾼』, 『물동우』, 『우리 동무』, 『작품』, 『동요와 또』, 『산골 마을』 등 아홉 권의 육필 동시집을 손수 엮었다. 1947년 잡지 『주간 소학생』 45호에 동요 「어린 고기들」을 발표했고, 이듬해 동요집 『감자꽃』(글벗집)을 출간했다. 1951년 전쟁 통에 병세가 악화되어 34세 나이로 별세했다. 1968년 충주 탄금대 공원에 「감자꽃」 노래비가 세워졌고, 1995년 동시선집 『감자꽃』(창작과비평사)이 간행되었다. 1997년부터 충주에서 시인을 기리는 문학제가 열리고 있으며, 2005년 정부에서는 독립유공자로서의 공훈을 인정하여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저자(글) 김상용

1902~1951. 1902년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나 보성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릿쿄(入敎) 대학 영문과에서 수학하였다. 1930년 『동아일보』에 시 「무상」, 『신생』에 번역시를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1939년 발간한 『망향』은 첫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이다. 1951년 작고했다.

저자(글) 에밀리 디킨슨

1830년 12월 10일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의 애머스트(Amherst)에서 변호사이자 정치가, 대학 이사였던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Edward Dickinson)과 어머니 에밀리 노크로스(Emily Norcross)의 사이에서 세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생애의 대부분을 애머스트에서 살았다. 또한 그녀는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은둔 생활을 했는데, 1872년 이후로는 의사도 집으로 찾아와 약간 열린 문틈으로 걸어 다니는 그녀를 보며 진찰을 해야 했을 정도로 과도한 대인 기피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디킨슨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그녀의 악화된 시력은 물론, 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하던 병약한 어머니를 돌보아야 하는 딸로서의 책임감, 종교 문제, 아버지와의 사고방식의 차이, 식구들 사이에서의 경쟁의식, 그리고 주 의원으로 활동하던 아버지로 인해 끊임없이 드나들던 손님들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거부감 등에서 기인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로, 그녀의 생애에 걸쳐 몇 번 있었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위기를 들 수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바깥세상과 점점 담을 쌓게 된 것이다. 특히 디킨슨을 “북극광처럼 빛나는” 존재로 여기던 로드 판사가 1884년에 죽자 실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다가, 그녀 자신의 건강까지 악화되어 그녀조차 1886년 5월 15일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녀는 55년 5개월 5일간의 생애를 마치게 된다. 디킨슨은 초등교육 과정을 거친 후, 애머스트 아카데미(Amherst Academy)에서 희망하는 강좌를 선택해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과 문예 창작 훈련을 받았으며, 약 1년간의 신학교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이 밖의 정규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성서보다는 문학작품에 더 많은 흥미를 가졌던 그녀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과 창작에 대한 열의와 영감을 얻었다. 그녀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책을 깊이 탐독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녀의 삶과 자아 탐색 정신이 세상과 단절된 것으로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지만, 사실 그녀는 실제로 만나 접촉을 하지는 않았어도, 서신을 통해 당대 최첨단의 정신을 가진 지식인들과 시를 교류하며 부단한 교우 관계를 가졌다. 그녀는 또한 자선 단체와 어린 시절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유명한 작가이던 헬렌 헌트 잭슨(Helen Hunt Jackson)에게 출판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생전에 출판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는 이를 거부했다. 그녀는 종교의 반항아로서 청교도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었으며, 구원의 희망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친한 친구를 비롯한 많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해, 일찍부터 기독교의 신에 대해 근본적으로 강한 회의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녀로 하여금 전통의 사고방식과 기존 종교에 대한 불신과 전통적인 시 형식에 대한 반발로 나아가도록 했고, 이러한 사고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녀의 시에 혁신적인 요소를 불러오며 시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일찍이 선구자적 위치를 차지하도록 했다. 생전에는 그녀의 요구에 의해 그녀의 시가 익명으로 일곱 편밖에 출간되지 못했지만, 사후에 44개의 시 꾸러미가 여동생 러비니아 노크로스 디킨슨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그녀의 문학 상담 역할을 해왔던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 작가인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Thomas Wentworth Higginson)과 토드 부인(Mrs. Todd)의 주선으로 1775편의 시가 세 권의 시집으로 1890년, 1891년, 1896년에 연속 출간되고, 두 권의 서간집이 1894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으로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디킨슨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시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1955년 토머스 존슨(Thomas H. Johnson)에 의해 그녀의 시선집이 출판됨으로써 그녀는 오늘날 위대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저자(글) 타데나 산토카

1882~1940. 일본의 방랑시인. 호후시 출신. 5.7.5의 정형시인 하이쿠(俳句)에 자유율을 도입한 일본의 천재시인이다. 그의 평생소원은 ‘진정한 나의 시를 창조하는 것’과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이쿠 하나만을 쓰는 데 삶을 바쳤다. 겉으로는 무전걸식하는 탁발승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한량에 술고래에다 툭하면 기생집을 찾는 등 소란을 피우며 문필가 친구들에게 누를 끼쳤다. 그래도 인간적인 매력이 많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산토카를 모델로 한 만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실제 주인공이다.

저자(글) 마쓰세 세이세이

1869~1937. 일본의 시인. 어렸을 때 시가를 배웠는데, 그 하이쿠는 마사오카 시키에게 상찬을 받았다. 도쿄에 올라와서 한때 하이쿠 전문 잡지인 《호토토기스(ホトトギス, 두견새)》의 편집에 종사했다. 오사카로 돌아온 후, 아사히 신문에 ‘아사히 하이단(朝日俳壇)’의 심사를 맡아 오사카 하이단의 기초를 다졌다. 초기에는 요사 부손에 심취했고 나중에는 바쇼에 심취해 연구하는 데 노력했다.

저자(글) 마사오카 시키

1867~1902. 일본 근대의 하이쿠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하이쿠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잡지 《일본》, 《호토토키스》를 기반으로 하이쿠 혁신 운동을 전개했고, 문하에 가와히가시 헤키고토, 다카하마 교시(高浜虛子) 같은 많은 문인들이 모여들었다. 만년에는 거의 병상에 있었으며, 1902년 일생을 마쳤다. 《분류 하이쿠 전집》, 《신 하이쿠》, 《춘하추동》 등을 남겼다.

저자(글) 마츠오 바쇼

일본의 서민문화가 꽃을 피웠던 17세기 에도 막부 시대 대표 시인. 1644년 지금의 미에현 이가우에노에서 농민이나 다름없는 가난한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바쇼는 하이쿠를 접하면서 시문에 관심을 지닌 무사나 문인들과 교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스물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당시 새로운 도읍지였던 에도에 정착하였고, 인생의 전기를 맞아 하이쿠를 읊고 가르치면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서른일곱 살 젊은 나이에 돌연 모든 것을 내던지고 암자에 은거하며 고전을 탐독한다. 마흔한 살에 그때까지 고전에서 얻은 감동을 하이쿠에도 담아내고자 방랑의 길에 나선다. 여행길에서 보고 느낀 것을 중심으로 소박한 서민들의 삶과 자연을 노래했으며, 최소한의 상징적인 언어와 여백으로 무한한 우주를 창조하였다.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라는 마지막 시를 남기고 오사카에서 객사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바쇼의 방랑 여정을 따라 그의 시를 음미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에즈라 파운드, 옥타비오 파스 및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저자(글) 료칸

에도시대의 승려이자 시인. 무욕의 화신, 거지 성자로 불리는 일본의 시승이다. 시승이란 문학에 밝아, 특히 시 창작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불교 승려를 지칭하는 말이다. “다섯 줌의 식량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라는 말이 뜻하듯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무욕과 무소유의 최고 경지를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료칸은 살아가는 방도로 탁발, 곧 걸식유행(乞食遊行)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일본 곳곳에 세워진 그의 동상 역시 대개 탁발을 하는 형상이다. 료칸은 떠돌이 생활<BR>을 하면서도 시를 써가며 내면의 행복을 유지하며 청빈을 실천했고, 그의 철학관은 시에 그대로 담겨 있다.

저자(글) 고바야시 잇사

1763~1827. 1763년 나가노현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학대를 받다가 15세 때 집을 나와 에도로 갔다. 25세가 되던 1787년, 잇사라는 이름으로《마사고》에 첫 번째 구를 실은 후 도보 여행을 하면서 여러 구집과 기록을 남겼다. 52세가 되던 해 고향으로 돌아가, 1827년 그곳에서 사망했다. 《교와구첩》, 《오라가하루》 등을 남겼다.

저자(글) 다카이 기토

30세 때 요사 부손에 입문했다. 입문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내 부손을 보좌하여 일가를 묶어 냈다. 1779년에는 부손과 둘이서 오사카 · 셋츠 · 하리마 · 세토 우치 방면으로 음행의 여행에 나섰다. 온후한 성격으로 부손의 제자 모두와 친교를 가졌다. 부손 모음집을 편집하는 등 하이쿠의 중흥에 진력했다.

저자(글) 아리와라 나리히라

출간작으로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등이 있다.

목차

  • 三月.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1일
    봄 _윤동주
    봄은 고양이로다 _이장희
    하이쿠 _산토카
    사랑스런 추억 _윤동주
    봄 비 _변영로
    희망 _노천명
    하이쿠 _세이세이
    바람과 봄 _김소월
    봄을 흔드는 손이 있어 _이해문
    물 _변영로
    새로운 길 _윤동주
    하이쿠 _시키
    병아리 _윤동주
    산울림 _윤동주
    어머니의 웃음 _이상화
    16일
    봄 밤 _노자영
    봄철의 바다 _이장희
    고방 _백석
    포플라 _윤곤강
    종달새 _윤동주
    고백 _윤곤강
    부슬비 _허민
    연애 _박용철
    호면 _정지용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_에밀리 디킨슨
    봄으로 가자 _허민
    하이쿠 _지요니
    이적 _윤동주
    유언 _윤동주
    어머니 _윤동주
    구름 _박인환
    2일
    17일
    3일
    18일
    4일
    19일
    5일
    20일
    6일
    21일
    7일
    22일
    8일
    23일
    9일
    24일
    10일
    25일
    11일
    26일
    12일
    27일
    13일
    28일
    14일
    29일
    15일
    30일

    31일

    四月. 산에는 꽃이 피네

    1일
    하이쿠 _나리히라
    청양사 _장정심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_김영랑
    산유화 _김소월
    사랑의 전당 _윤동주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_김영랑
    산골물 _윤동주
    꿈밭에 봄 마음 _김영랑
    하이쿠 _잇사
    그 노래 _장정심
    하이쿠 _지요니
    돌팔매 _오일도
    공상 _윤동주
    봄은 간다 _김억
    하이쿠 _기토
    16일
    양지쪽 _윤동주
    고양이의 꿈 _이장희
    울적 _윤동주
    해바라기씨 _정지용
    위로 _윤동주
    오줌싸개 지도 _윤동주
    애기의 새벽 _윤동주
    형제별 _방정환
    도요새 _오일도
    하이쿠 _바쇼
    꽃이 먼저 알아 _한용운
    봄2 _윤동주
    새 봄 _조명희
    달밤 _윤곤강
    저녁 _이장희
    2일
    17일
    3일
    18일
    4일
    19일
    5일
    20일
    6일
    21일
    7일
    22일
    8일
    23일
    9일
    24일
    10일
    25일
    11일
    26일
    12일
    27일
    13일
    28일
    14일
    29일
    15일
    30일

    五月.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1일
    장미 _이병각
    모란이 피기까지는 _김영랑
    당신을 위해 _노천명
    언덕에 바로 누워 _김영랑
    빛깔 환히 _김영랑
    하이쿠 _잇사
    뉘 눈결에 쏘이었소 _김영랑
    하이쿠 _모리다케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_김영랑
    꽃나무 _이상
    꽃모중 _권태응
    남으로 창을 내겠오 _김상용
    허리띠 매는 시악시 _김영랑
    장미 병들어 _윤동주
    그대가 누구를 사랑한다 할 때 _김상용
    16일
    풍경 _윤동주
    장미 _노자영
    ‘호박꽃 초롱’ 서시 _백석
    향내 없다고 _김영랑
    피아노 _장정심
    오월한 _김영랑
    그의 반 _정지용
    가늘한 내음 _김영랑
    오후의 구장 _윤동주
    내 훗진 노래 _김영랑
    오늘 _장정심
    사랑의 몽상 _허민
    봄하늘에 눈물이 돌다 _이장희
    꿈은 깨어지고 _윤동주
    외로움 _김명순
    하이쿠 _산토카
    17일
    2일
    18일
    3일
    19일
    4일
    20일
    5일
    21일
    6일
    22일
    7일
    23일
    8일
    24일
    9일
    25일
    10일
    26일
    11일
    27일
    12일
    28일
    13일
    29일
    14일
    30일
    15일

    31일

출판사 서평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1848~1894.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870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법관이 되기를 포기하고 레옹 보나(L?on Bonnat)의 스튜디오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1873년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으며, 이듬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그림 그리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사실주의 화풍을 공부하며 학문으로서 미술을 공부했지만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75년 〈마루를 깎는 사람들〉을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너무 적나라한 현실감 때문에 심사위원들로부터 거부당했다. 그는 1876년 제2회 인상파 전시회에 이 작품을 출품하고,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인상파전에 참여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했다. 그가 도움을 주었던 가난한 인상파 화가들은, 마네, 모네, 르느와르, 피사로, 드가, 세잔 등이었다. 그가 소장하고 있던 67점의 인상파 작품을 사후에 프랑스국립미술관에 기증했으나 ‘주제넘은 기증’에 당황하여 수용 여부를 놓고 한바탕 논란이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논란을 계기로 인상파 화가들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카유보트는 고전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파리의 모습을 주제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길 위의 풍경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커다란 도로, 광장, 다리, 그리고 그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며 19세기 새롭게 변화하는 파리의 풍경을 재현했다. 그의 작품은 치밀한 화면 구성과 화면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 간의 균형, 독특한 구도, 대담한 원근법의 사용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다르게 남성이 작품의 주제로 부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창가의 남자(A Young Man at His Window)〉(1875), 〈마루를 깎는 사람들(The Floor Scrapers)〉(1875), 〈유럽 다리(The Pont du Europe)〉(1876), 〈비 오는 파리 거리(Paris Street, Rainy Day)〉(1877), 〈눈 쌓인 지붕(Rooftops Under Snow)〉(1878), 〈자화상(Self-portrait)〉(1892) 등이 있다.

화가 파울 클레
Paul Klee. 1879~1940. 독일 화가.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 베른 근처 뮌헨부흐제 출생. 어려서부터 회화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바이올린 연주에 뛰어났다. 스물한 살에 회화를 선택한 후에도 W. R. 바그너와 R. 슈트라우스, W. A. 모차르트의 곡들에 심취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98~1901년 독일의 뮌헨에서 세기 말의 화가 F. 슈투크에게 사사하기도 하였다. 1911년 칸딘스키, F. 마르크, A. 마케와 사귀고, 이듬해 1912년의 ‘청기사’ 제2회전에 참가하였으나 1914년 튀니스 여행을 계기로 색채에 눈을 떠 새로운 창조세계로 들어갔다. 동료 화가들인 루이 무아예와 아우구스트 마케와 함께 아프리카 튀니지로 여행을 떠났던 클레는 여행 중에 느낀 감상을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화가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작품은 구상적인 미술양식과 추상적인 미술양식 모두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 미술 사조에 속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클레는 작품에서 엄격한 입방체와 점묘법, 그리고 자유로운 드로잉을 실험했으며, 그가 접했던 모든 미술 사조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특히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그의 미술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빨강의 푸가〉(1921)와 〈A장조 풍경〉(1930) 같은 많은 작품들은 음악적인 구조로 정돈되어 있는데, 마치 악보 위에 음표들을 배열하듯이 색채도 정확히 배열되어 있다. 저술로는 바우하우스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은 《조형사고(造形思考, Das bildnerische Denken)》(1956) 《일기(Tageb?cher)》(1957)가 있으며, 작품수장집은 스위스의 베른미술관 내 클레 재단에 약 3,000점이 소장되어 있다. 대표작으로는 〈새의 섬〉 〈항구〉 〈정원 속의 인물〉 〈죽음과 불〉 등이다.

화가 차일드 하삼
Frederick Childe Hassam. 1859~1935.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미국의 도시와 해안을 주로 그렸다. 3,000점이 넘는 그림, 유화, 수채화, 에칭, 석판화 등을 제작했으며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미술품 및 공동품을 많이 소장한 성공한 사업가이며, 어머니는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엘 호손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드로잉과 수채화에 뛰어났으나 그의 부모는 초기에 그의 재능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나무조각가로 일했으며 1879년경부터 초기 유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선호하는 장르는 수채화였고 대부분 풍경화였다. 1883년 보스톤의 윌리엄스 에버렛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수채화를 전시했다. 다음 해, 그의 친구들의 권유로 중간이름 없이, ‘차일드 하삼(Childe Hassam)으로 활동했다. 또한 서명에는 항상 초승달 모양의 상징을 추가했는데, 그 의미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1886년 프랑스의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구상적 드로잉과 회화를 공부했으며, 인상주의를 미국 미술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80년대 중반, 하삼은 도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보스턴 커먼의 황혼(Boston Common at Twilight)〉(1885)은 그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미국의 미술평론가들의 반응은 냉담했으나 그는 크게 성공했고, 파리에서 생활하며 프랑스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다.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 칠레 등을 여행하며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미국 인상주의의 선도적 역할을 했지만, 신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로 전환될 때 뒤늦게 인상주의에 합류했다. 후기 작품 중에 가장 독특하고 유명한 작품으로는 ‘깃발 시리즈(Flag Series)’로 알려진 30여 점의 그림이 있다. 1916년 뉴욕 5번가에서 열린 미국의 세계1차대전 참전 퍼레이드에서 영감을 얻어 연작을 만들었다. 그중 〈빗속의 거리〉는, 2009년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을 재정비하면서 걸어놓아 화제가 되었다. 1920년대부터 에드워드 호퍼나 로버트 헨리 같은 사실주의파에 합류하기도 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인상주의 화풍이 부활하기 전까지, 하삼은 ‘비운의 버려진 천재’로 남았으나, 1970년대에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품들이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되자, 하삼과 미국의 인상주의학파들은 다시 인기를 얻었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89217099
발행(출시)일자 2021년 03월 20일
쪽수 280쪽
크기
145 * 195 * 23 mm / 434 g
총권수 1권

Klover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10점 중 10점
/힐링돼요
매일 날짜에 시 하나씩 읽고 아침을 시작합니다. 그림도 너무 좋고요. 마냥 달고 부드러운 봄 시만 있는게 아니라 씁쓸한 시도 있어요. 벚꽃이 만개하는데 비가 오고 가끔 눈도 오고 하는게 봄인거죠.

문장수집 (1)

문장수집 안내
문장수집은 고객님들이 직접 선정한 책의 좋은 문장을 보여주는 교보문고의 새로운 서비스입니다. 마음을 두드린 문장들을 기록하고 좋은 글귀들은 "좋아요“ 하여 모아보세요. 도서 문장과 무관한 내용 등록 시 별도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리워드 안내
구매 후 90일 이내에 문장수집 작성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드립니다.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판매가 5,000원 미만 상품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시와 그림으로 되어있음
봄 으로 봄에 대한 글~~?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교환/반품/품절 안내

  • 반품/교환방법

    마이룸 > 주문관리 > 주문/배송내역 > 주문조회 > 반품/교환 신청, [1:1 상담 > 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오픈마켓, 해외배송 주문, 기프트 주문시 [1:1 상담>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반품/교환가능 기간

    변심반품의 경우 수령 후 7일 이내,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반품/교환비용

    변심 혹은 구매착오로 인한 반품/교환은 반송료 고객 부담
  • 반품/교환 불가 사유

    1)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2)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3)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4)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5)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이상 ‘다운로드’를 받았거나 '바로보기'로 열람한 경우
    6)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7)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8) 세트상품 일부만 반품 불가 (필요시 세트상품 반품 후 낱권 재구매)
    9) 기타 반품 불가 품목 - 잡지, 테이프, 대학입시자료, 사진집, 방통대 교재, 교과서, 만화, 미디어전품목, 악보집, 정부간행물, 지도, 각종 수험서, 적성검사자료, 성경, 사전, 법령집, 지류, 필기구류, 시즌상품, 개봉한 상품 등
  • 상품 품절

    공급사(출판사) 재고 사정에 의해 품절/지연될 수 있으며, 품절 시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이메일과 문자로 안내드리겠습니다.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1)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 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2)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용선생 추론독해 초등 국어 3단계
이벤트
  • [교보eBook 19주년] 미리 안내드려요! ✈
  • 2025 과학의 달 : 트렌드 사이언스
01 / 02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