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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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총서 (178)
작가정보
저자 노자영은 1900년 황해도 송화군 상리면 양지리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 신문학을 접하면서 톨스토이, 하이네, 보들레르, 단눈치오를 탐독했다. 졸업 후 귀향해 교편을 잡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전했다.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문학에 대한 꿈을 불태우며 “죽기까지 문학에 헌신”하고자 했다. 1920년 봄, 교사 생활을 접고 상경해 한성도서주식회사 편집부에 취직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한다.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하는 ≪학생계≫와 ≪서울≫지 기자로 활동하면서 여기에 시를 발표했다. ‘花爛春城’을 줄여 ‘춘성(春城)’이란 호를 사용한 것도 이때부터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뒤 울분과 억울함,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다 1926년 늦은 나이로 동경 유학길에 오른다. 폐 질환으로 학업을 채 마치지 못하고 귀국해 병상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1931년 문단에 복귀, 1934년에 ≪신인문학≫을 창간하며 출판 사업에 뛰어들지만 경제난으로 지속하지 못했다. 1937년 ≪조선일보≫에 취직해 소설 ≪인생특필≫을 연재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재확인하고 시집 ≪백공작≫을 비롯해 수필집을 발간하며 정력적으로 문학 활동을 이어 갔다. 그러던 중 1940년 41세 나이에 갑작스런 발병으로 사망했다.
엮음 임정연
저자 임정연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1920년대 연애담론 연구―지식인의 식민성을 중심으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1920년대 ‘연애’의 공론화 과정을 추적하고 연애 서사를 분석해 ‘연애’가 배타적인 독서 경험을 통해 구성된 지식인의 특권적 소통 형식이라는 점을 규명한 논문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식인의 집단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심리적 기저를 밝히기 위해 ‘지식’과 ‘문화’를 의제로 일제강점기 문화 담론의 근대성과 식민성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아울러 젠더적 시각에서 문학 텍스트를 읽는 일과 한국문학의 감수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통해 한국 낭만주의 문학의 계보를 밝히는 작업에도 관심을 두고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근대 젠더 담론과 ‘아내’라는 표상」, 「현진건 ‘지새는 안개’의 낭만적 정체성」, 「임노월 문학의 악마성과 탈근대성 연구」, 「여성 연애 소설의 양가적 욕망과 딜레마」, 「근대소설의 낭만적 감수성―나도향과 노자영의 소설을 중심으로」, 「여성 문학과 술/담배의 기호론」 등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 ≪임노월 작품집≫, ≪방인근 작품집≫, ≪지하련 작품집≫이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목차
- 月下의 夢·····················3
永遠의 憧憬···················7
破夢······················11
靑春의 敗北者··················16
愛人의 그림자··················22
달밤······················25
靑春의 屍體···················26
외로운 밤····················29
불살우자····················32
黃昏······················34
風景······················36
沙工의 노래···················37
街路樹·····················38
≪처녀의 화환≫
風景······················41
‘쎄―누’江의 黃昏················43
樂園의 處女···················45
處女의 花環···················47
女子 업는 나라에·················49
古城의 廢墟···················51
라인 江의 肖像··················53
黃金의 林檎···················55
늙은 하나님···················58
엇던 處女에게··················60
나의 女王···················62
달밤은 가고···················64
어대로 갈가?···················66
未知의 나라에··················69
그 줄을 타고···················71
비 오는 밤····················73
曠野······················75
≪내 혼이 불탈 때≫
갈피리[蘆笛]···················81
北海道의 情調··················82
별·······················83
望鄕······················84
思慕······················85
日本 少女····················86
漂泊······················87
꿈·······················88
가친 몸·····················89
愛人을 위하여··················90
‘에덴’동산····················92
힌 별을 차져···················93
昌德宮의 진달내·················94
豆滿江의 노래··················95
薔薇······················97
東京의 五月···················98
어머니·····················100
조각 반달····················102
≪백공작≫
여름밤·····················105
北斗七星····················106
눈 오는 저녁··················107
朝鮮의 노래···················108
雁鴨池·····················109
無影池·····················110
해설······················111
지은이에 대해··················124
엮은이에 대해··················130
책 속으로
月下의 夢
一
半金半玉 고흔 달
水晶 빗 맑은 하날에셔
소리 업시 웃는다 오날 밤도
二
孤獨의 쓸쓸한 회포를 가삼에 품고
고요하게 삽분삽분 거러가는 내 그림자
純銀色 속히려난 白沙地 우에
슬픔을 呼訴하며 가늘게 셧다
三
玉流 우로 걸어셔 날 챠쟈오난 微風
홧홧 닷난 내 뺨을 씻어 주랴고
무거운 내 가삼을 가비업게 하랴고
사르르 웃난다 愛人의 우숨갓치
四
靑灰色 장막 속에 잠자는 自然
근심 업시 걱정 업시 슬픔 업시
神秘의 깁흔 꿈 安靜히 꾸니
幽遠의 숨쇼리가 가느러졌다
五
玉 물빗을 홀니우난 맑은 月色이
가지가지 물듸린 林檎나무 아래
두 다리 턱 뻗치고 閑暇히 안지니
過去의 푸른 꿈 번쩍 지나며
現在의 붉은 한숨 휘휘 나온다
六
나난 눈의 뼈아픈 눈물을 담고
힘업난 고개를 가만히 들어
치여다본다 치여다본다
입분 情이 가득한 별들의 눈을
‘피꼴난 내 事情 알아줍시사’ 하고
七
江물은 츌넝츌넝 노래를 하고
풀빗은 반짝반짝 微笑를 하것만
웨 셔른고 웨 셔른고 나 혼쟈 이러케
웨 외로운고 웨 외로운고 내 몸만 이러케
八
에라 모르겟다, 우러나 보쟈
무겁게 고여 잇든 셔름의 눈물로
‘내 사랑 어대 갓소, 아아―’
‘보고 십허, 웃음 만흔 님의 얼골을’
九
모르겟다, 이 世上 情이 업도다
아침에 곱게 피든 사랑의 꽃도
아침에 날개 치든 입분 나비도
어늬듯 시러지고 이제난 업도다
十
아, 半金半玉 고흔 달아
쥬렁쥬렁 열매 매진 이 나무야
記念해다고, 속 태우던 나를
슬프다 나난 오날 밤과 갓치
죽는 날까지 이러할난지―.
≪초판본 노자영 시선≫, 임정연 엮음, 3∼6쪽
출판사 서평
1919년 ≪매일신보≫ 현상문예란 「매신문단」에 투고한 이 시가 2등으로 당선된 뒤 노자영은 본격적으로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매신문단」에 연속해서 4개 작품이 당선되면서 문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시뿐 아니라 평론, 수필,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여 주었고 ≪장미촌≫, ≪백조≫ 등 문예지 동인으로 참여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 근현대시선’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그가 본격적으로 문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1920년대 초는 낭만주의 문학에서 영향을 받은 감상적이고 애상적인 시풍이 지배적이었다. 노자영 역시 일찍 낭만주의 이론을 접하고 이를 직접 번역, 소개했을 정도로 낭만주의에 크게 매료되었다. 하지만 낭만주의가 지닌 부정의 정신에 주목하기보다 ‘내용적, 감정적’이라는 정서 측면에서 접근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대자연 속에서 홀로 사색하는 것을 즐기는 등 낭만적인 기질을 타고난 것도 있었지만 젊은 시절 애독한 하이네, 워즈워드의 낭만적인 시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특히 문학에 생애를 헌신했던 톨스토이를 동경했다.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해 “영원히 동경하는 사람의 길”이라 평하기도 했다. 그의 문학은 특히 ‘청춘의 열정’이라는 모토를 정서적으로 구현함으로써 문학청년들에게 큰 지지를 얻었다. “시내에 있는 남녀 학생 중에 옥편은 한 권 없을망정 노자영 군의 작품 한 권씩은 거의 다 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당대 문단은 노자영 문학을 두고 소녀 취향의 청춘 연애담이나 연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물론 그의 문학이 감상적이고 관념적이라 현실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수용하지 못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1920년대 대중의 취향과 기호를 대변하는 노자영 문학의 힘, 그 힘의 실체에 대해서는 사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대중이 그의 문학에 열광한 것은 어쩌면 문학에 대한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익숙한 기대에 부응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임정연이 엮은 ≪초판본 노자영 시선≫ 인터뷰
문학에 대한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익숙한 기대
1920년대 조선에서 하루에 30∼40권씩 팔렸던 책의 이름은 ≪사랑의 불꽃≫이었다. 노자영이 편집한 연애편지 선집이었는데 청춘 남녀의 필수 소장품이었음은 짐작이 무색하다. 문단은 그를 폄훼했고 표절의 지뢰를 밟은 당대의 대중 크리에이터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는 어디서 출몰하여 어디로 사라졌을까?
月下의 夢
一
半金半玉 고흔 달
水晶 빗 맑은 하날에셔
소 업시 웃다 오날 밤도
二
孤獨의 쓸쓸 회포를 가삼에 품고
고요게 삽분삽분 거러가 그림자
純銀色 속히려 白沙地 우에
?흠을 呼訴며 가늘게 셧다
三
玉流 우로 걸어셔 날 챠쟈오 微風
홧홧 닷을 씻어 주랴고
무거운 가삼을 가비업게 랴고
사르르 웃다 愛人의 우숨갓치
四
靑灰色 장막 속에 잠자는 自然
근심 업시 걱정 업시 ?흠 업시
神秘의 깁흔 安靜히 니
幽遠의 슘쇼가 가느러?다
五
玉 물빗을 홀니우 맑은 月色이
가지가지 물듸린 林檎나무 아
두 다리 턱 치고 閑暇히 안지니
過去의 푸른 번 지나며
現在의 붉은 한숨 휘휘 나온다
六
나 눈의 압흔 눈물을 담고
힘업 고를 가만히 들어
치여다본다 치여다본다
입분 情이 가득 별들의 눈을
‘피 事情 알아줍시사’ 고
七
江물은 츌넝츌넝 노를 고
풀빗은 반반 微笑를 것만
웨 셔른고 웨 셔른고 나 혼쟈 이러케
웨 외로운고 웨 외로운고 몸만 이러케
八
에라 모르겟다, 우러나 보쟈
무겁게 고여 잇든 셔름의 눈물로
‘사랑 어 갓소, 아아?’
‘보고 십허, 우슘 만흔 님의 얼골을’
九
모르겟다, 이 世上 情이 업도다
아침에 곱게 피든 사랑의 도
아침에 날 치든 입분 나?도
어늬듯 시러지고 이제 업도다
十
아, 半金半玉 고흔 달아
쥬렁쥬렁 열진 이 나무야
記念다고, 속 우던 나를
?흐다 나 오날 밤과 갓치
?는 날지 이러지?.
≪초판본 노자영 시선≫, 임정연 엮음, 3∼6쪽
1919년 ≪매일신보≫ 현상문예란 <매신문단>에 2등으로 당선된 그의 데뷔작인가?
노자영은 이 시로 본격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같은 해 이미 ≪기독신보≫에 장시 <무화과보다도 더 속히 ?러지는 생명>을 게재했고 시인도 이 작품이 등단작이라고 주장하지만, 공식적으로 한국 문단에 데뷔한 것은 <월하의 몽>부터였다.
이 시에서 보이는 비유와 암시, 감각적 이미지, 자유시 형식은 언제부터 나타났나?
이전 시들은 음수율을 맞춘 정형시거나, 자기 생각 혹은 주장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산문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이 시는 자연적 상관물을 통해 감각적 이미지, 시적인 비유, 슬픔과 고독의 정조 등을 표현하는 노자영 시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자연을 빛깔에 비유한 색채 감각은 노자영의 특징적인 시각화 방법으로 이상 세계를 향한 시인의 순수한 갈망과 동경을 부각한다. 이처럼 공감각적인 이미지를 활용한 기법은 근대 자유시 특징이자 새로운 시대정신 출현을 알리는 뚜렷한 징후다.
그가 “죽기까지 문학에 헌신”을 결심하는 과정은 어떤 것인가?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 신문학을 접하면서 톨스토이, 하이네, 보들레르, 단눈치오를 탐독했다. 졸업 후 귀향해 교편을 잡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전했다.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문학에 대한 꿈을 불태우며 “죽기까지 문학에 헌신”하고자 했다. <월하의 몽> 당선 이후 <매신문단>에 연속해서 4개 작품이 당선되면서 문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1920년 봄, 교사 생활을 접고 상경해 한성도서주식회사 편집부에 취직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한다.
‘춘성(春城)’은 언제부터 사용하는가?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하는 ≪학생계≫와 ≪서울≫지 기자로 활동하면서 여기에 시를 발표했다. ‘花爛春城’을 줄여 ‘춘성(春城)’이란 호를 사용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시뿐 아니라 평론, 수필,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여 주었고 ≪장미촌≫, ≪백조≫ 등 문예지 동인으로 참여했다.
≪장미촌≫, ≪백조≫ 동인이라면 그는 낭만주의자인가?
≪장미촌≫은 1921년 창간된 한국 최초 시 전문지로 1920년대 초기 한국 문학의 낭만주의 경향을 주도했다. ≪백조≫는 계몽문학과 경향문학 사이에 위치해 ≪장미촌≫의 낭만주의 경향을 잇는 동인지로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문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1920년대 초는 낭만주의 문학에서 영향을 받은 감상적이고 애상적인 시풍이 지배적이었다. 노자영 역시 낭만주의 형식과 내용이 주는 새로움에 매료되었다. 그의 문학은 ‘청춘의 열정’이라는 모토를 정서적으로 구현함으로써 문학청년들에게 큰 지지를 얻었다.
‘청춘의 열정’이 1920년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낭만주의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07년경이지만 낭만파 문학이 본격적으로 수용된 것은 1920년대 들어서다. 이런 경향은 3·1운동 직후 지식인들 사이에 감돌았던 허무주의, 패배주의와도 관련 있지만, 유학에서 막 돌아온 젊은 문사들이 서구 사상을 정열적으로 수혈하던 시기가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계몽적 태도와 문학적 관습에 반하며 감정 해방, 자아 고양, 자유와 개성을 앞세운 신문학의 기수들이었다.
당대의 신세대 문인들이 절망과 울분, 월경(越境)의 꿈에 탐닉한 원인은?
그들은 감상적인 수사를 동원해 들끓는 감정과 감각을 직접 토로하고 자유롭게 표출했는데, 이를 심미적 체험이자 감각 해방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물론 기성 문학이 지녔던 계몽적 엄숙성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자 부정의 결과였다. 노자영 시에서 감탄사가 빈번히 출현하는 것도 감정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표출한 까닭이다.
노자영 낭만주의는 어떤 모습인가?
일찍 낭만주의 이론을 접하고 이를 직접 번역, 소개할 정도였다. 하지만 낭만주의가 지닌 부정의 정신에 주목하기보다 ‘내용적, 감정적’이라는 정서 측면에서 접근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대자연 속에서 홀로 사색하는 것을 즐기는 등 낭만적인 기질을 타고난 것도 있었지만 젊은 시절 애독한 하이네, 워즈워드의 낭만적인 시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특히 문학에 생애를 헌신했던 톨스토이를 동경했다.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해 “영원히 동경하는 사람의 길”이라 평하기도 했다.
‘동경’과 ‘향수’는 그의 시에서 무엇을 말하는가?
낭만주의 정신의 기조를 이루는 정서다. 인위적인 속박을 벗어나 영원한 세계로 가고자 하는 낭만주의 정신은 향토적인 자연이나 미지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노자영이 즐겨 사용하던 ‘표박(漂迫)’ 혹은 ‘표랑(漂浪)’이라는 시어가 이런 정서를 대변한다. 특히 “이슬 나리고 ? 피는 푸른 山野”로 “가자 가자 ?업시”라 노래한 시 <표박>에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 몽상과 편력이 엿보인다. 이는 노자영 문학의 정서적 추동력이다.
미지의 세계란 현실의 외면을 뜻하는가?
시인은 ‘꿈에서 본’ 미지의 나라이자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유일한 낙원이며 완벽한 이상향인 에덴을 동경한다. 한편 에덴은 지금 여기에는 없는, 영원히 잃어버린 세계이기에 시인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겨 준다. 현실세계를 떠나 낙원으로 향하고자 하는 마음은 영원한 사랑을 동경하는 태도로도 나타난다.
그에게 사랑은 무엇이었나?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 것은 아니다. 1920년대 청년들이 흔히 그랬듯 그 역시 ‘사랑’이라는 관념 자체를 구애 대상으로 삼았다. ‘임’은 ‘여왕’, ‘장미의 혼’, ‘천사의 혼’ 등으로 미화되며, 이들이 존재하는 세계는 ‘무지개’, ‘진주’, ‘미지의 나라’ 같은 유토피아다. 그에게 임은 사랑과 헌신, 찬미 대상인 동시에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 극적 환희와 절망을 유발하는 비실체적 존재인 셈이다. 후기로 갈수록 임은 ‘연인’이라는 의미를 넘어 ‘그리스도’, ‘조국’으로 구체화한다.
그의 시에서 허무의 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독, 비애, 허무 역시 노자영 시 전반을 지배하는 근원적인 정서다. 하지만 이런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작품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는다. 삶의 모순, 인생의 외로움이라는 존재론적 허무에서 비롯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후기로 갈수록 허무주의가 짙어지는 것은 역사적, 시대적 사실과 관련 있다. 나라를 빼앗긴 채 사는 것보다 ‘차라리 천치가 되는 것’이 낫다고 여길 만큼 현실에서 깊은 슬픔과 설움을 느꼈다.
‘감상적’이고 ‘퇴폐적’인 소녀 취향이란 평가는 정련하지 않은 수사와 이미지 때문인가?
박영희는 후일 “문장을 인위적으로 꾸미는 까닭에 분칠한 여자와 같이 아름다우면서도 속되게 보였다”고 평했다. 문학사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빠져 있거나, ‘감상적’, ‘퇴폐적’, ‘병적’이라는 낭만주의 문학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안에서 그 대표 격으로 언급되는 정도다.
당대의 대중문화를 쥐락펴락했다는 소문은 사실인가?
작가 몇 명의 연애편지를 모아 놓은 서간집 ≪사랑의 불꽃≫ 출간에 관여했는데 이 책은 하루에 30∼40권씩 팔릴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 책을 주도적으로 편집한 노자영의 인기는 특히 대단했다. 이후 창조사라는 출판사를 차리고 소설 ≪반항≫과 시집 ≪처녀의 화환(花環)≫ 등을 발간했는데 둘 다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시내에 있는 남녀 학생 중에 옥편은 한 권 없을망정 노자영 군의 작품 한 권씩은 거의 다 있다”고 할 정도였다.
하루아침에 명성을 잃은 것은 표절 사건 때문인가?
문제가 된 것은 ≪동아일보≫에 노자영 이름으로 발표된 시 <잠>이었다. 염상섭이 ≪폐허 이후≫에 이 시가 김억이 번역한 베를렌의 시 <검고 ?업는 잠은>을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자영은 즉시 해명 기사를 실어 그것이 편집실 실수였다고 밝혔지만, 이 사건으로 문단의 신뢰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이후에도 그의 소설이 일본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잇따랐다. 끝내는 ≪백조≫ 동인에서도 제명되었다.
대중의 선망과 문단의 폄훼에서 진실은 무엇인가?
문단은 노자영 문학을 두고 소녀 취향의 청춘 연애담이나 연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노자영에 대한 당대 폄훼와 비판 이면에는 이런 대중적 인기를 불편하게 여긴 문단의 질투와 위기의식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어떻게 살다 갔나?
울분과 억울함,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다 1926년 늦은 나이로 동경 유학길에 오른다. 폐 질환으로 학업을 채 마치지 못하고 귀국해 병상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1931년 문단에 복귀, 1934년에 ≪신인문학≫을 창간하며 출판 사업에 뛰어들지만 경제난으로 지속하지 못했다. 1937년 ≪조선일보≫에 취직해 소설 ≪인생특필≫을 연재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재확인하고 시집 ≪백공작≫을 비롯해 수필집을 발간하며 정력적으로 문학 활동을 이어 갔다. 그러던 중 1940년 41세 나이에 갑작스런 발병으로 사망했다.
노자영 문학의 힘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감상적이고 관념적이라 현실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수용하지 못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1920년대 대중의 취향과 기호를 대변하는 노자영 문학의 힘, 그 힘의 실체에 대해서는 사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대중이 그의 문학에 열광한 것은 어쩌면 문학에 대한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익숙한 기대에 부응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정연이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
기본정보
ISBN | 9788966809639 | ||
---|---|---|---|
발행(출시)일자 | 2013년 06월 28일 | ||
쪽수 | 140쪽 | ||
크기 |
128 * 188
mm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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