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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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의 가장 아픈 상처 노천명 문학의 종결판!!
국립도서관 보존문서/일제강점기 신문잡지에 묻혀 있었던
노천명 소설과 수필, 시 민윤기 시인이 대대적 발굴해 수록!
“작품 속에는 연둣빛 수채화 같은 은은한 삶의 향기가 풍긴다”_시인 정지용
“올해 소설을 하나 써보려고 했던 것이 은근히 내가 벼르고 있던 계획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이 하고 싶은 일은 날마다 쫓기는 일에 무참히도 고개조차 들어보지 못한 채 이 해를 보내게 되었다. 소설을 쓰려는 의도는 내가 시를 쓰는 일에 하등 지장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손도 대지 못한 광우리 속의 숱한 일감 중에서 일감을 잡을 여유가 생긴다면 제일 먼저 집어 들고 싶은 일거리가 소설을 쓰는 일이다.”
이 글은 노천명 시인이 죽기 한 해 전인 1956년 12월 31일자 조선일보에 「올해 못한 일」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수필의 일부이다. 그만큼 노천명 시인은 평생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것이다.
노천명이 발표한 소설은 여덟 편이다. 이미 나와 있는 노천명 작품에 수록이 되어 알려진 소설은 여섯 편인데 이번에 노천명 전집 종결판을 기획하면서 새로 찾아낸 명품소설 두 편을 추가해 최초로 출간되는 노천명 소설을 단행본으로 엮어 발행했다.
이 책의 총서 (4)
작가정보

1912년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 비석포리에서 태어나 1957년 재생불능성빈혈(백혈병)로 세상을 떠난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진명여고보와 이화여전 영문과(8회)를 졸업한 후 조선중앙일보, 조선일보사 ‘여성’ 편집부, 매일신보 학예부 기자를 거쳐, 해방이 되자 서울신문, 부녀신문 등에서 총 13년간 근무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중앙방송국에서 근무했다. 생전에 시집 『산호림』 『창변』 『별을 쳐다보며』를 출간했고, 사후에 나온 유고 시집 『사슴의 노래』가 있다. 수필집 『산딸기』 『나의 생활백서』 『여성서간문독본』 등 생전에 3권을 출간했다. 노천명은 생애 두 번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상처 입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어 내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둘려, 씻을 수 없는 행적으로 고고한 ‘사슴’ 시인의 이미지를 지키지 못했다.
저자(글) 민윤기 (엮음.해설)
중앙대학교 국문과 2학년 때인 1966년 6월호 ‘시문학’에 「의지판매점義肢販賣店」으로 문덕수 시인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후 ‘시와 시론’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베트남전쟁에 병사로 파병한 종군 체험을 살려「내가 가담하지 않은 전쟁」 연작시 30여 편을 발표하였고, 1974년 첫 시집 『유민流民』을 출간하였다. 1970년대 군사정권 후반 이후 절필 상태로 시 발표를 중단하는 사이, 출판사 잡지사 신문사 등에서 편집자로 일하였다. 2011년 오세훈 시장 시절 문화관광디자인부 위촉으로 지하철 시 관리 용역을 맡으며 다시 시쓰기를 시작하였다. 2014년 ‘알기 쉬운 시’, ‘독자와 소통하는’ 시의 대중화운동을 위하여 1인 시전문잡지 ‘시’를 창간하였으며 2015년 두 번째 시집 『시는 시다』, 2017년 세 번째 시집 『삶에서 꿈으로』를 출간하였다. 현재 월간 ’시’ 편집을 하는 틈틈이 유튜브 “시와함께” 문학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목차
- 들어가는 말 | 만년에는 시보다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일러두기
1. 단편소설
사월이
우장雨葬
오산誤算이었다
외로운 사람들
결혼 전후
하숙
일편단심
닭 쫓던 개
2. 인물평전
인간 월탄月灘
전원시인 김상용
팔로군에 종군했던 김명시 여장군의 반생기
샘골의 천사 최용신 양의 반생半生
오월의 여왕
3. 문학론
시詩의 소재에 관하여
문학의 처녀지處女地로
시詩와 난해성難解性
익명匿名 비평의 유행에 대하여
우리 예술 확립에로 매진하자
한하운 시집 『보리피리』 서평
의제 좌익擬制左翼
4. 일기
일기
병상일기
부록
노천명 생애(1912-1957)
노천명의 생애 흔적을 찾아서
책 속으로
오래간만에 부엌에를 내려가 내 손으로 밥을 지으며 나는 사월이가 아침저녁으로 만지던 이남박이며 칼과 도마, 사월이 손으로 빨아다 널어놓은 행주 이런 것들을 만질 때마다 사월이가 생각나서 견딜 수 없다. 마치 죽은 사람이나처럼 그렇게 마음이 언짢아서 나는 그년이 쓰던 석탄 깨뜨리는 도끼를 붙잡고는 석탄을 깨뜨리다 말고 한참이나 부엌 바닥에 앉아 울었다.
“아주머니 기집애가 뭐 동이 낫소 그까짓 거 달아난 년을 뭐 자꾸 생각하우. 내 어디 가서 내일 기집애 하나 붙들어 오리다.”
이렇게 큰 조카는 나를 위로해 주었으나 온 집이 빈 것 같고 영 마음이 붙지 않는다. 사월이년이 마루에서 아른거리는 것만 같고 반찬거리를 사 가지고 대문간에서 금방 톡 뛰어 들어올 것만 같다.
3년이란 세월이 아침저녁으로 넣어 준 정이란 참 더럽게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였던가.
“그년이 정 갈 줄 알았던들 저 시집 보낼 때 주겠다고 어거리 장 속에 넣어었던 남숙수 치마랑 노랑 법단 저고리감두 모두 내줄 걸. 그리고 제 저금 통장두 주어서 보낼 걸.”
이런 미련을 못 놓으며 그래도 사월이가 어디를 가서든지 잘만 살았으면… 하고 은근히 축원했다.
- 41쪽 ‘사월이’ 중에서
늙은이는 담뱃통에다 성냥을 그어대느라고 잠깐 있더니,
‘야야, 그 넷째니 뭐니 한가한 소리 하구 있지 말구 저 기지배 올챙이같이 빵꾸난 배때기나 좀 고쳐 줄 생각해라.“
박 초시네는 담뱃대를 비스듬이 물며 한 손으로 옆에 울고 앉았는 손주 딸을 앞으로 끌어오더니 치마 위로 아이 배를 쓰윽 쓸어보며,
“아가, 배 안 아프니? 에, 이쁘다, 내 새끼.”
하더니 며느리를 향해,
“저번 날부터 쥐 한 두어 마리만 잡아 맥이래두 들었는지 말았는지, 저 몬돌레 작은 기집애두 복하를 쐐서 배가 애처럼 빵꾸난 제 얼굴이 노래 댕기더니 쥐 해먹구 나서 났다는데.”
“아, 개뿐인가요? 뭐 동리 애들이 거지반 배때기가 다 불루구 색색거리는데 이 더위가 지나가구 서늘바람 나면 어련히 안 날까 봐서요.”
그 후 사날이 지난 뒤 박 초시네 가게엔 가려운 병에 바르는 무슨 약이 없느냐고 와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 54쪽 ‘우장’ 중에서
마음을 줄 곳이 통째로 무너져 버린 선이에게 와서 은주라는 이 조그만 계집아이는 찬바람이 쌩쌩 도는 냉방 같은 선이의 생활에 오직 하나의 따뜻한 화롯불이었다.
울며 몇 달을 지내고 나니 살 길이 막연해졌다.
산목숨은 또 살아야 한다고 손에 끼었던 다이아 반지를 팔아 돈을 만들어 가지고 선이는 서울로 올라 다니며 장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도 동정해 주는 사람들은 관리의 부인들이었다. 살아 있는 남편의 친구들은 모두 아침 해가 오르듯이 자꾸자꾸 올라가 높이들 되었다.
“그이도 있었더면 지금쯤은 중직重職에 있게 되었을 걸.”
바깥양반끼리도 친구요, 안에서도 각별히 친한 국장 집에 가서 하루를 자고 오던 그날 밤은 말할 수 없이 선이의 마음이 설레었다.
- 91쪽 ‘외로운 사람들’ 중에서
C읍에 온 원희의 생활은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며칠이 안 되어서 C읍 바닥에는 원희가 S촌에서 품행이 나빠서 쫓겨났다는 소문이 쫙 퍼지게 되자 고개를 들지 못하고 풀 없이 다니는 어머니를 볼 때 원희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그리고 밤마다 울면서 원희를 위해 기도를 드리는 양이라든지 또 원희를 보고
“너를 이렇게 만든 것이 꼭 이 어미의 잘못이다. 네가 그렇게 싫다는 시집을 내가 왜 보냈던고?”
하며 가슴을 치는 것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더구나 원희가 자포자기해서 약한 행동을 취할 것을 두려워서 저녁이면 꼭 원희를 데리고 자며 밤에 변소를 잠깐 가더라도 “원희야”하고 소동을 일으키는 어머니를 볼 때 원희는 친정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 116쪽 ‘결혼 전후’ 중에서
언제나 빠른 세월은 이 생활을 계속한 지도 벌써 네 번째 가을을 맞게 되었다. 늦은 가을 햇볕이 따뜻이 쬐는 어느 날 오후, 은실의 어머니가 공장에서 노는 틈을 타서 동리집 떡방아를 찧고 있을 즈음에 그의 오빠 춘식春植이가 찾아왔다.
“오빠 참 오래간만이십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으며 춘식을 방으로 인도한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냐? 벌써부터 좀 와 본다는 것이 자연 업무에 바빠서!”
하며 모자를 벗어놓고 방안을 둘러본다. 방안에는 장롱이 두어 개 놓여 있고 은실의 책상이 있을 뿐이다. 은실의 책상 위에는 은실의 부친의 사진과 기독의 초상이 걸려 있고 그 옆에는 신문에서 오린 듯한 간디의 사진이 붙어 있다.
- 141쪽 ‘일편단심’ 중에서
그날은 안녕히 돌아가셨습니까? 당신과 헤어진 뒤 나는 차를 다음 거리에서 버리고 아카시아가 늘어선 기인 골목으로 들어서서 혼자 걸었습니다.
물론 끼치는 아카시아의 꽃향기를 코에 맡으며 나는 취한 사람처럼 몸을 끌고 왔습니다. 기나긴 이 고뇌의 밤을 언제까지나 내가 겪어야 합니까?
당신의 모든 고귀한 것을 위하여, 또 나의 모든 고귀하다는 것들을 위하여 나는 아름다운 인종忍從을 메고 왔습니다. 이후도 또 이렇게 지켜야겠고 또 지켜가려 합니다.
당신이 침묵하고 뿜고 또 뿜는 담배 연기 속에서 나는 숱한 당신의 하소를 듣고 또 그보다 무거운 비애를 다 알아 듣습니다.
이런 당신이 내 안에 있는 연고로 내게는 언제나 남 모를 기쁨이 있고 세상은 항시 신록의 세계로 보입니다. 저 연두빛 은행잎도 나를 위해 움돋는 것 같고 저 푸른 하늘도 나만을 위한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 227쪽 ‘5월 ×일 일기’ 중에서
출판사 서평
노천명 시인은 평생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어느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자 했던 사슴의 여인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암흑시대의 희생자
여기에 수록된 8편의 소설은 노천명 시인이 그 당시 신문잡지에 기고했던 작품들이다. 보물 같은 이 소설들은 보존문서 속에 파묻혀 잊혀 질 뻔한 작품들을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민윤기 회장의 노력으로 찾아내 정리하여 공개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우장雨葬」의 작품성은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필적하는 향토성 짙은 뛰어난 소설로도 평가하고 있다.
노천명이 사랑했던 세 명의 남자
남자들에게 까칠하게 대했던 노천명도 여자였다. 1938년 스물일곱의 노천명은 문인들이 출연하는 연극 무대에 서게 된다. 이 해에 그는 최정희가 사표를 냄으로써 공석이 된 조선일보 발행 월간잡지 ‘여성’에서 근무한다. 이 무렵 극예술연구회에 참여,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앵화원櫻花園, 벚꽃동산〉에서 모윤숙이 맡은 라네프스카야 부인의 딸 아냐 역을 맡아 연극 무대에 섰다. 이날 무대에서 노천명이 열연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보성전문 경제학과 교수 김광진(1902~1986)은 그만 노천명에게 반하게 된다. 김광진은 연극이 끝나자 노천명에게 꽃다발을 전했고 이것이 인연이 되었다. 노천명은 시인 김기림의 구애도 칼같이 거절했을 만큼 까칠하고 도도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의외로 김광진의 구애에는 흔쾌히 마음을 열었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약속했으나 안타깝게도 김광진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김광진은 노천명에게, 아내와 이혼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김광진은 노천명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상처를 입었는데도 노천명은 다시 두 번째 사랑을 하게 된다. 어느 파티에서 이성실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이성실은 193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고향의 하늘’ ‘울지는 않아요’ ‘방랑자의 노래’ 등을 작곡한 작곡가 겸 가수였다. 파티가 끝나고 나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침 우산을 가지고 있던 이성실은 노천명과 같이 우산을 쓰고 비를 피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날 이후로 두 사람은 자주 만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성실 역시 유부남이었다. 김광진처럼 이성실도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천명은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이별을 선택한다.
그 무렵 노천명은 안국동에 살던 집을 언니에게 내주고 누하동에 집을 사기 전이어서 옥인동에 사는 김수임(1911~1950)의 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수임은 일제 강점기와 군정시대의 공산주의자이며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여성이다. 그런데 김수임은 노천명이 평양에서 김광진과 만날 때 함께 자주 어울린 사람 중 한 명이다. 아무튼 노천명을 잊지 못한 이성실은 밤이면 밤마다 옥인동 김수임의 집에 찾아와 노천명을 만나려 했으나 끝내 노천명은 만나 주지 않았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랑의 주인공은 (이것은 필자의 추측이기는 하지만) 그 유명한 시인 백석(1912∼1996)이다. 이화여전 동기인 모윤숙과 선배 기자이자 친구였던 최정희, 동료기자 이선희와 함께 백석을 자주 만났다. 이 네 사람은 입을 모아 백석을 ‘사슴’이라고 불렀다. 잘 생기고, 잘 배우고, 유능한 백석에게 반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항간에는 노천명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시 「사슴」은 백석을 위한 것이라는 평판도 있었다. 백석이 근무했던 영생고보 1939년 졸업생인 김희모 씨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백석 선생님은 너무도 잘생긴 모습에 반할 정도였다. 머리는 올백을 하고 연회색의 산뜻한 양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당시에 학교 선생들은 사회의 지도층 인사였기 때문에 존경을 받았지만, 나이 어린 백석 선생님은 시인으로, 그리고 그 외모로 더욱 유명했다.”
이렇듯 백석은 여성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받았다. 당시 모윤숙은 백석을 이상형으로 생각한다고 했고, 노천명 역시 그를 바람직한 시인의 모델이면서 자신의 이상형으로 생각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노천명의 시 「사슴」전문, 1938
우정을 나누웠던 문인들의 모임
조선 후기의 뛰어난 학자이며 개혁가인 다산 정약용에게는 시詩짓기 모임 ‘죽란시사竹欄詩社’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친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시 짓기 모임을 가지곤 하였는데, 모이는 날짜가 매우 시적이었다. 그들은 ‘살구꽃이 처음 피면 모이고/ 복숭화꽃이 처음 피면 모이고/ 한여름 참외가 익으면 모이고/ 초가을 서늘할 때 서지(西池, 서대문 밖에 있던 연못)에서 연꽃 구경을 위해 모이고/ 국화가 피면 모이고/ 겨울철 큰 눈이 내리면 모이고/ 연말에 화분에 심은 매화가 피면 모인다’는 것이었다.
노천명에게도 이런 모임이 있었다. 당시 그녀와 친했던 여류문인들은 최정희(소설가, 1906~1990), 이선희(소설가, 기자 1911∼?), 모윤숙(시인, 1909~1990) 등이었다. 그들은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서로 찾고,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서로 찾았으며, 서로 찾지 못하는 때면 편지로써 마음을 서로 알렸다”고 했다.
특히 노천명은 소설가 최정희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한국전쟁 1.4후퇴 때 세간 살림 하나 챙기지 못하면서도 최정희와 주고받은 편지는 꼭 가지고 피난 갔을 정도였다. 모윤숙은 노천명이 사망하기 며칠 전 집으로 찾아와 자신이 외국 출장이 있으니깐 귀국할 때까지 건강하게 있으라고 했지만 노천명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갔다.
기본정보
ISBN | 9791157955596 |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10월 30일 | ||
쪽수 | 272쪽 | ||
크기 |
143 * 210
* 23
mm
/ 36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노천명 전집 종결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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