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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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구보 씨의 곁에는 하융이 있었다
이상의 삽화 29점이 최초 수록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한국 문학사에서 형식과 두드러지는 모더니즘적 경향으로 여전히 회자되며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가 이상이 삽화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최초로 연재 당시 같이 선보였던 이상의 삽화 29점을 수록하여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나란히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두 모더니스트의 글과 그림이 만날 때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한층 새롭게 다가갈 것이다.
박태원과 이상을 연구해 온 연구자 유승환, 김미영 교수와 함께 한 대담은 두 작가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2021년 독일 북아트 재단과 라이프치히 도서전이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최고 상 골든 레터를 수상한 디자이너 그룹 신신은 감각적이고 텍스트에 충실한 디자인으로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소전문화재단은 독서를 장려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함과 동시에 새로운 고전의 탄생을 기다리며 장편 소설 작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자생하고 계속하여 저변을 넓혀 가길 바라는 취지를 담아 과거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발전시켰던 당시의 젊은 두 소설가 박태원과 이상의 협업인 이 책을 다시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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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1901~1986
모험을 마다하지 않은 모더니스트, 경성의 모던 보이 구보 박태원.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세에 일본 호세이대학 법정학과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다. 짧았지만 일본 유학은 그의 예술적 경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귀국 후 21세 『신생』 10월호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소설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순문학적인 목표로 결성된 이태준, 김기림, 정지용, 이상 등의 구인회에 문학적, 예술적 교류를 활발히 했다. 이후 1934년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신문 연재, 1936년 소설 「천변풍경」을 발표함으로써 일제 강점기 경성의 세태를 문학에 담아냈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후 월북했다. 1962년 대하 역사 소설 『계명 산천은 밝아 오느냐』, 1986년 『갑오농민전쟁』등을 집필하였다. 1986년 북한에서 병으로 타계했다. 월북을 이유로 분단 이후 그의 작품은 금기시 되었으나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와 함께 다시금 국내 문단과 독자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대담자
현 홍익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서울대 국문학과에서 수학하고 문학 박사를 받았다. 문학 평론가로도 활동하며 아마추어 화가로 1회의 개인전, 다수의 동인전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근대 문학과 한국 근대 미술의 상호 작용에 관한 연구를 하였고, 이상과 관련된 연구도 하였다. 이상과 관련된 논문에는 「이상의 문학과 꼴라쥬」(2010), 「큐비즘으로 본 이상의 문학」(2016), 「이상의 소설에 나타난 죽음과 신, 그리고 니체적 사유」(2017) 등이 있다.
대담자
현 서울시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울대 국문학과에서 수학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근현대 소설에 나타난 하위 주체의 모습을 근간으로 한국 근현대 소설사의 정치성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박태원과 관련된 주요 논문으로 「시선의 권력과 식민지의 비가시성 -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악마』에 나타난 질병의 의미」(2017), 「스펙터클에 맞서는 문학의 언어 - 박태원의 『계명 산천은 밝아오느냐』론」(2015) 등이 있다.
도서 기획 편집자. 고전 문학, 예술, 건축 등의 분야를 아우르며 책을 만들었다. 현재 소전문화재단에서 문학에 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1910~1937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언제나 우리를 앞질러 나가는 작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 이다. 화가를 지망하였으나 경성 고등 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세부터 조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에서 건축 기사로 일했다. 1930년 잡지 『조선』에 장편 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며 문단에 등장했다. 1931년 건축 잡지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 가역 반응」 등 20여 편을 발표한다. 이후 직접 다방 〈제비〉를 운영하며 구인회의 구성원이었던 이태준,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류하며 친목을 쌓았고, 1934년 정식으로 구인회 멤버가 된다. 같은 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삽화가로 참여하는 동시에 「오감도」를 연재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거센 반발로 연재가 중단되었는데, 문단에서는 새로운 형식적 실험으로서 높이 평가했다. 1936년 변동림과 결혼 후, 요양을 목적으로 홀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듬해 〈불령선인〉이라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 및 구금되었고, 폐결핵을 앓던 그의 병세가 악화된다. 결국 1937년 도쿄 제국 대학 부속 병원에서 27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기획 소전문화재단
누구나 문학을 곁에 두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크고 작은 담론에 관계할 수 있도록 독서를 장려하고 문학 창작을 후원하는 문화 예술 재단이다. 문학 전문 도서관 소전서림과 북아트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 신신
신해옥 디자이너와 신동혁 디자이너가 2014년 결성한 디자이너 그룹이다. 신해옥 디자이너는 책을 구조로 삼아 텍스트, 이미지, 페이지를 서로 교차시키며 직조해나가며 관계성을 탐구하며, 신동혁 디자이너는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나 양식, 관습, 전통, 이론 등을 재료 삼아서 ‘지금, 여기’라는 맥락에 걸맞는 결과물로 갱신해 내는 방식을 고안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큐레이터, 에디터, 작가들을 비롯한 여러 문화·예술기관 및 단체와 협업하며 책, 도록, 포스터, 전시 아이덴티티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고 있다. 2021년 책 『FFEUILLES』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골든 레터를 수상했다.
목차
-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주
대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다시 읽는 이유
책 속으로
한낮의 거리 위에서 구보는 갑자기 격렬한 두통을 느낀다. 비록 식욕은 왕성하더라도, 잠은 잘 오더라도, 그것은 역시 신경 쇠약에 틀림없었다.
- 22면, 3화 중.
구보는 다시 밖으로 나오며, 자기는 어디 가 행복을 찾을까 생각한다. 발 가는 대로, 그는 어느 틈엔가 안전지대에 가 서서, 자기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 손의 단장과 또한 손의 공책과-물론 구보는 거기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 29면, 4화 중.
일찍이 그는 고독을 사랑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고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심경의 바른 표현이 못 될게다. 그는 결코 고독을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도리어 그는 그것을 그지없이 무서워하였는지도 모른다.
- 34면, 5화 중
〈모데로노로지오〉를 게을리하기 이미 오래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과 함께 구보는 격렬한 두통을 느끼며, 이제 한 걸음도 더 옮길 수 없을 것 같은 피로를 전신에 깨닫는다. 구보는 얼마 동안을 망연히 그곳, 한길 위에 서 있었다…
- 65면, 10화 중.
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한다. 그는 눈앞에 경성역을 본다. 그곳에는 마땅히 인생이 있을 게다. 이 낡은 서울의 호흡과 또 감정이 있을 게다.
- 75면, 12화 중.
내일 밤에 또 만납시다. 그러나, 구보는 잠깐 주저하고, 내일, 내일부터, 내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
「좋은 소설을 쓰시오.」
벗은 진정으로 말하고,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참말 좋은 소설을 쓰리라.
- 184면, 30화 중.
읽기 어렵다고 학생들이 투덜대면, 〈네가 하루 동안 서울 시내를 걸어 다녀 본 것을 소설로 쓸 수 있겠느냐〉라고 질문해 보거든요. 그런 걸 소설로 만든다는 것은 어떤 걸까?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리고 너는 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한번 더 생각해 보며 읽는다면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이나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197면, 대담 중.
1934년 8월의 「조선중앙일보」 문예면은 주목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오감도」가 실려 있고, 「소설가 구보 씨 일일」이 같이 연재되었고, 또 그 삽화를 이상이 그립니다. 그 뒤에서 문예면을 책임졌던 사람은 상허 이태준이었습니다. 모두 구인회에 같이 적을 두었던 사람들이죠. 즉 한국의 1930년대 새로운 문학적 경향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1934년 8월 「조선중앙일보」 문예면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습니다.
- 203면, 대담 중.
삽화는 보통 작품의 이해를 돕는 보조적인 역할을 합니다. 소설의 한 장면을 시각화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이해를 돕지요. 그런데 이상의 삽화는 달라요. 더욱더 오리무중에 빠지게하고 작품을 수수께끼로 만들어 버려요.
- 206면, 대담 중.
출판사 서평
경성의 모던 보이 박태원과 이상
두 문학 친구가 함께 연재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다시 읽다
일제 강점기 모더니즘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신문에 연재로 발표한 이 소설은 〈하융〉이라는 이름의 삽화가가 함께했다. 〈하융〉은 바로 박태원의 예술적 친우였던 작가 이상이었다. 당시 문화, 예술의 첨단에 서 있던 두 모던 보이의 친분은 잘 알려져 있으며, 순문학적인 목적을 갖고 결성된 구인회에 함께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박태원은 자신의 소설 「애욕」 등 여러 편에 이상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훗날 이상의 죽음을 추모하며 쓴 글에서 이와 같이 쓰기도 한다. 〈이제 자백自白을 하자면 「애욕」 속의 하융은, 이상이며 동시에 나였고, 그의 친우 구보는 나면서 또한 이상이었던 것이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9화 삽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삽화를 이상이 맡았다는 사실은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화가를 꿈꿨던 이상은 당시 서양의 예술사적 흐름에도 눈이 밝았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경향은 큐비즘과 콜라주 형식을 연상시키는 삽화들에서 드러난다. 당시 경성의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처음 보는 형식의 시도들이었을 것이다. 기존의 소설들과 다르게 뚜렷한 서사 없이 경성을 방황하는 것을 받아적은 듯한 박태원의 소설 형식은 이상의 삽화를 통과하며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그들이 생각한 예술관은 이 작품을 통해 이어지고 완성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그 당시 조선에서 빛나기 시작한 모더니즘의 시작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목적 없는 걸음으로 그려낸 1930년대의 경성
그의 일 있는 듯싶게 꾸미는 걸음걸이는 그곳에서 멈추어진다. 그는 어딜 갈까, 생각해 본다. 모두가 그의 갈 곳이었다. 한 군데라 그가 갈 곳은 없었다. -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중
박태원의 이름에 붙는 호는 〈구보〉다. 자신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을 등장시켰으므로, 훗날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메타픽션의 성격을 가진 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제목이 보여 주는 그대로의 내용과 형식을 담는다.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한 26세의 구보 씨. 그가 하루 동안 경성을 누비며 보고 겪은 것들을 써 내려간다.
소설은 구보 씨가 직접 보는 경성의 풍경과 그의 생각들이 혼재되며 전개된다. 아침에 집에서 나서서 경성의 공간들을 떠돌며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풍경들을 마주한다. 종로 네거리, 백화점, 전차, 다방, 남대문, 경성역, 황금정(오늘날의 을지로), 광화문 등을 정처 없이 떠돌며 경성의 평범한 시민들과 스쳐 지나가고, 때로는 벗들과 조우하여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 앞에서 구보 씨는 주변인의 자리에서 자신의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을 중얼거릴 뿐, 어떤 풍경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그가 지니고 다니는 노트에서 관찰자의 태도를 엿볼 수 있을까 싶지만, 정작 그가 노트에 무엇을 적는 순간은 없다. 일제 강점기 시절 예술가로서 느끼는 무력감을 비롯한 고독, 그리고 점차 모던화 되어가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 속에서 느끼는 허무함.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떠도는 구보 씨의 하루에서 오늘날 우리의 삶과 닮은 점을 읽을 수 있을까? 지금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를 새롭게 마주하는 독자의 몫에 달려 있을 것이다.
1934년 여름 「조선중앙일보」 문예면,
문화, 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장이 되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연재된 「조선중앙일보」 문예면은 당대 문인들의 새로운 시도가 열리는 장이 되었다. 구인회 소속이었던 학예부장 상허 이태준의 기획 아래 박태원의 소설도 실리게 되었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연재되는 시기 동안 이상의 「오감도」가 실리기도 했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형식적인 도전만큼이나 이상의 「오감도」가 당시 독자들에게 준 충격도 컸다. 결국 독자들의 거센 반발에 「오감도」의 연재는 중단되었다. 이태준은 당시 사표를 품 속에 넣고 다녔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도 학예면을 구성해 나간 구인회 소속의 이들은 당시 문단에서 가장 예술적이고 순문학적인 위치에 있었다.
〈구인회는 꽤 재미있는 모임이었다. 가령 상허(이태준)라든가, 구보(박태원)라든가, (이)상이라든지 꽤 서로 신의를 지켜 갈 수 있는 우의가 그 속에 자라가고 있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유쾌한 일이다〉
당시 조선에 모더니즘 이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시인이자 비평가 김기림이 전하는 구인회 구성원들의 관계에 대한 말 속에서 예술적 교류 이상의 우의를 느낄 수 있다. 1934년 여름 「조선중앙일보」 의 학예면을 다시 들여다보는 의의는 혹독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이들이 의기투합으로 일궈 낸 문학적, 예술적 성취를 다시 보는 것과 다름 없다.
박태원, 이상 연구자 2인과 같이 읽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새롭게 펴낸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는 박태원과 이상을 깊이 연구해온 유승환(서울시립대 교수), 김미영(홍익대 교수)의 대담을 더해 독자들에게 더 쉽게 닿고자 한다. 두 연구자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박태원과 이상.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두 작가의 면모가 대담 곳곳에 담겨 있다. 또한 두 작가가 당대 경성에서 얼마나 앞서있는 예술가였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다.
1930년대 당시의 신문 연재 소설과 삽화에 대한 두 연구자의 풍부한 해설은 우리를 당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독자로 돌아가게끔 돕는다. 잡지 편집 디자인에 관여한 바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상의 일화와 직접 소설 삽화를 그리기도 한 박태원의 일화에서 두 작가가 문학이 매체에 보이는 방식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고민했음을 엿볼 수 있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12화 삽화
박태원과 이상, 그리고 두 사람이 속한 구인회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모더니즘〉에 대해서도 되짚어 본다. 문학의 독자성과 개인의 내면, 자의식에 집중하는 측면에서 이들이 〈모더니즘〉을 지향하였다고 사후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또 그들의 〈모더니스트〉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담에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재정의의 필요성을 함께 논하며 단순히 평가하기 어려운 지점에 대해 밝힌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늘 따라붙는 〈고현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해석도 흥미롭다. 박태원 연구자인 유승환(서울시립대 교수)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박태원이 〈고현학을 실현하는 작품이 아닌 그것의 실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일제 강점기 지식인이자 문인으로서의 고충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수 있다.
구보 씨를 따라 걸어 보는 전시 「구보(仇甫)의 구보(九步)」
소전서림 북아트 갤러리에서 2023년 10월 13일 개최
소전서가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출판과 함께 소전서림 북아트갤러리는 2023년 10월 13일부터 2024년 1월 28일까지 전시「구보(仇甫)의 구보(九步)」를 개최한다. 주인공 〈구보〉의 산책 경로를 중심으로 하여 9개의 스폿으로 구성되는 전시는 1934년의 경성에서 시작하여 현실과 허구 사이를 오간다.
1930.02.21. 「동아일보」,「적멸」,박태원 자작 삽화
박태원의 작품 중 「적멸」에 수록되었던 몇몇 삽화들을 통해 글과 그림을 넘나들며 근대의 미시적인 풍경들을 포착하는 〈구보〉의 또 다른 예술적 세계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박태원의 소설과 관련된 다양한 옛 자료들을 살펴보며 그의 문학적 행보를 되짚는 시간을 가진다.
11월 초에서 12월 중순까지 〈박태원과 모더니즘 문학〉, 〈구보와 이상의 삽화 해설〉, 등 저명한 연구자들을 모시고 다양한 주제로 진행될 〈깊이 읽기〉 강연, 극단 〈돌파구〉와 함께 하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낭독극, 1930년대 경성 문인들의 월평회를 재해석한 〈시와 소설의 밤〉 (가제), 소전서림 연계 전시 및 구보 테마 큐레이션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다.
기본정보
ISBN | 9791198275028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10월 20일 |
쪽수 | 264쪽 |
크기 |
120 * 173
* 24
mm
/ 394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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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2005년 문학과지성사(천정환 책임 편집)
소설가 구보씨는 아침에 집을 나와 다음 날 새벽 2시 귀가하기까지 이곳저곳을 다닌다. 딱히 목적도 없다. 발길 닿는 대로 다닌다. 광교 근처에 있는 집에서 나와 종로 화신백화점 앞까지 걸었고 전차를 타고 동대문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 또 천변길, 종로, 을지로, 경성역도 다닌다. 괜히 약속도 없는 친구를 불러내 다방에서 차를 마시거나 술집에서 술도 마신다.
인터넷에 보니 누군가 계산을 해놨는데, 소설 속 구보씨가 다닌 거리는 15km란다. 독자는 구보씨와 함께 이 거리를 동행한다는 느낌이 든다. 1930년대 서울의 거리 모습, 사람들의 생각, 말투, 문화 등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사실 구보는 이 소설 속 소설가 이름이면서 작가 박태원의 필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본인의 하루를 소설 형식으로 쓴 작품인 듯하다. 그는 월북 작가여서 한동안 그의 작품은 금서였다.
이 소설 표지가 독특한데, 신문에 연재될 때의 삽화란다. 놀라운 점은 그 삽화를 그린 사람이 이상이다. 중간중간 이상의 삽화를 보는 재미도 있다. 1934년 당시 이상은 문인들 사이에는 조금 알려졌지만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다. 이상이란 필명 외에 비구, 하융, 보산, 해경, 송해경, 김해향 등 여러 예명이 있다.
이 소설의 문장에는 쉼표가 많다. 그래서 속도감 있게 읽지 못하지만, 꼭꼭 씹어 읽는 맛이 있다.
(책 속에서…)
스물여섯 해를 길렀어도 종시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자식이었다. 설혹 스물여섯 해를 스물여섯 곱하는 일이 있다더래도, 어머니의 마음은 늘 걱정으로 차리라._11쪽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산을 들고 차가 동대문 앞에 정차하기를 기다려 내려갔다. 구보의 마음은 또 한 번 동요하며, 창 너머로 여자가 청량리행 전차를 기다리느라, 그곳 안전지대로 가 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자기도 차에서 곧 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_41쪽
몇 점이나 되었나. 구보는, 그러나, 시계를 갖지 않았다. 갖는다면, 그는 우아한 회중시계를 택할 게다. 팔뚝시계는-그것은 소녀 취미에나 맞을 게다._53쪽
그것은 그들의, 특히, 남자의 죄악에 진노한 신이, 그 아이의 비상한 성대를 빌려, 그들의, 특히, 남자의 죄악을 규탄하고, 또 영구히 저주하는 것인 것만 같았다…._1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