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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관찰

곤충학자이길 거부했던 자연주의자 장 앙리 파브르의 말과 삶
휴머니스트 · 2024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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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파브르가 있었기에 우리는
기적과 시로 가득 찬 세계를 보았다
위대한 관찰자 파브르, 생애 마지막 책에서
자연을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 초록색 시학(詩學)을 건네다

이 책은 《파브르 식물기》와 《파브르 곤충기》로 널리 알려진 장 앙리 파브르의 말과 삶을 담은 평전이자 회고록이다. 인류가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연의 모습과, 그것을 드러낸 과학자가 인생에서 내린 선택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익히 알려진 바와 달리 곤충학자로 불리길 거부해온 ‘자연주의자’ 파브르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과 윤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기후 변화와 기후 위기를 거쳐 기후 재난이 코앞까지 들이닥쳐온 지금, 우리의 세계관에는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나’와 ‘우리’를 삶의 기준으로 두던 시절에서 내가 아닌 ‘그들’과 ‘인류’, 나아가 전 생물종과 온 우주까지, 세계로 자신을 확장하는 이 태도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일 것이다. 겪어본 적 없는 세계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하는 첫 번째 행위는 파브르처럼 바라보는 것, 어떤 고정 관념도 떨쳐내고 현상에 직면해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찰스 다윈이 생명에 대한 이해를 근간부터 뒤흔든 자신의 역작 《종의 기원》에서 “아무나 흉내 내지 못할 관찰자”라 칭했던 바로 그 사람, 모든 삶을 바쳐 땅 위의 코스모스를 드러내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넓혀온 위대한 관찰자 파브르의 말과 삶을 통해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존재의 확장을 체험해보자.

작가정보

저자(글) 조르주 빅토르 르그로

(Georges Victor Legros, 1861~1940)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의사. 의사인 미셸 빅토르 르그로와 마리 마르그리트 로랑스 캉칼롱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몽트리샤르의 의사로 활동했다. 1907년부터 1931년까지 몽트리샤르 하원의원을 지냈고 1914년부터 1924년까지, 1925년부터 1932년까지 루아르에셰르의 급진파 국회의원을 지냈다. 1907년 여름, 아내와 함께 파브르의 ‘아르마스’를 방문해 그의 제자가 된다. 1910년 4월 3일, 세리냥에서 파브르를 위한 기념회를 개최했다. 1년에 두 번 이상 아르마스를 방문해 파브르의 말년을 함께 보냈다.

저자(글) 장 앙리 파브르

서문
(Jean-Henri Fabre, 1823~1915)
프랑스의 생물학자이자 시인, 교사이자 교육운동가. 1823년 12월 22일 남프랑스 아베롱주 생레옹의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산과 들의 꽃과 나무, 곤충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그는 평생을 자연을 연구하며 보냈다. 그 과정에서 루이 파스퇴르와 존
스튜어트 밀, 찰스 다윈 등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과 교류하며 연구 및 사회 활동의 범위를 넓혔다. 수백은 족히 넘는 자연과학 논문과 교재를 집필했으며, 《파브르 식물기(La plante)》와 《파브르 곤충기(Souvenirs entomologiques)》 등 수많은 책을 썼다. 1915년 10월 11일, 말년을 보낸 자신의 집이자 연구소인 아르마스에서 사망했다.

번역 김숲

대학과 대학원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대학원 재학 중 한국 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나노 입자를 연구했다. 여름을 알려주는 파랑새와 꾀꼬리를 기다리며 들을 지나고 내를 건너 숲으로 탐조를 간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는 《카할의 과학하는 삶》, 《깃털 달린 여행자》, 《흙, 생명을 담다》, 《도시를 바꾸는 새》 등이 있다.

목차

  • 서문 · 장 앙리 파브르
    들어가는 말

    1장 자연의 직감
    2장 초등학교 교사
    3장 코르시카
    4장 아비뇽에서
    5장 위대한 스승
    6장 은신처
    7장 자연의 해석
    8장 본능의 기적
    9장 진화 또는 “생물변이설”
    10장 동물의 마음
    11장 조화와 부조화
    12장 자연의 이해
    13장 동물 삶의 서사시
    14장 평행 우주
    15장 세리냥에서 보내는 말년
    16장 황혼

    미주
    장 앙리 파브르 연보
    부록 출처

추천사

  • 랠프 에머슨의 말처럼 창조된 모든 것에 약속된 화가나 시인이 있다면, 생명체들의 비밀을 풀어 그 아름다움을 찬양해줄 화가와 시인은 생물학자일 것이다. 전 세계 여러 생물학자를 만나며 그들이 생명체를 바라보고 얘기할 때 반짝이던 눈을 기억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생명체에게 마음을 뺏겨 눈을 떼지 못한다. 자연을 마주할 때 섬세하고, 정확하고, 집요하며 아이처럼 순수하다. 사회 속에서 부조리와 괴롭힘에 분노하고 비참함과 구질구질함에 눈물을 흘리지만, 어느새 또 반짝이는 눈으로 자연을 관찰한다.
    위대한 과학자 파브르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애처로우면서도 위안을 준다. 전쟁, 사랑하는 이의 죽음, 사람들의 괴롭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한 인간이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만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래도록 생명체를 마주하기만을 간절히 바란 노력과 투쟁. 그 단순한 소망이 사랑스럽다. 이 책을 통해 파브르의 삶 속에서 그를 위로한 사람들과 수많은 생명체를 만난다. 파브르도 결국 지구에 나타났다 사라진 한 생명체이며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서 있는 이 지구, 머물다 갈 시간, 함께하는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소중해진다.

  • 식물세밀화가로 일을 하기 전까지는 새로운 종을 많이 발표하고, 유의미한 이론을 내놓는 학문적 성과만이 자연과학자의 자질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16년간 식물을 관찰하며 깨달았다. 자연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세상과 나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고 자연을 마주하는 것이란걸.
    익히 알려진 많은 자연과학자들의 업적 뒤에는 부유한 가정 환경, 계급적 뒷받침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파브르는 내내 가난했고 인정받지 못했기에 고군분투해야 했다. 그럼에도 파브르의 배움은 품위나 학위를 위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의 관찰에 감히 ‘위대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자 하는 데엔 삶의 역경 속에서도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으려 한 의지, 자연을 가까이하면서도 소유하지 않으려는 경계심, 세상에 나서지 않고 관찰에 몰두해온 인내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유연함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현대 자연 관찰자에게도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파브르의 관찰기가 시공간과 연령대를 초월해 많은 사람에게 공감받는 이유는 자연에 관한 이토록 투명하고 진실한 호기심 때문이 아닐까.
    파브르의 책이 우리에게 자연을 바라볼 기회를 주었듯, 이 책은 파브르 본인이 관찰 대상이 되어 호모 사피엔스, 사람이라는 생물종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파브르의 책이 지닌 설득의 서사가 이 책에도 담겨 있다.
    현실에 치여 꿈을 접어야 했던 누군가에게, 신념과 사회적 시선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자연의 언어를 해석하고자 하는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 자체로 본보기가 된 파브르의 삶이 우리 스스로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존재를 소중히 여길 용기를 줄 거라 믿는다.

책 속으로

이 눈부신 성공을 거둔 후, 파브르는 왜 나중에 경력을 쌓아가며 마주한 수많은 실망을 피할 수 있는 교수 자격시험 과정에 들어가지 않았던 걸까? 파브르의 이상적인 미래는 다른 길에 놓여 있고,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막연히 느꼈으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파브르에게 전달된 모든 요청에도 파브르는 “자연사 부문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연구”만 생각했다. 파브르는 선발시험을 준비하느라 이미 시작한 연구와 코르시카에서 진행한 탐구와 “무의미하다고 느꼈을 이런 노동을 절충”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무서워했다. 파브르는 자연과학 박사학위를 위해 준비하던 첫 번째 독창적인 연구로 바빴다.
- 〈아비뇽에서〉, 78쪽

동물만큼이나 사람을 잘 관찰하는 파브르는 조용히 황제를 바라보았다.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꽤 단순한” 황제는 파브르와 몇 마디를 나눴는데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파브르는 “짧은 바지를 입고 은색 버클이 달린 신발을 신고 의례를 갖춘 걸음걸이로 움직이는 카페오레 색 겉날개를 걸친 커다란 풍뎅이 같은 시종들”이 오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파브르는 벌써 후회의 한숨을 쉬었다. 지루했다. 몹시 괴로웠으며,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두 번 다시 그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 〈아비뇽에서〉, 97쪽

파브르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스스로에게 속했기 때문이다. 파브르 같은 학자, 탐구자, 야외 관찰자에게 자유와 여가 생활은 필수적인 것 이상의 의미였으므로 그것들이 없다면 자신의 과업을 절대 완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충분한 여가 생활을 누리지 못해서 삶을 헛되이 보내고 그토록 많은 정신이 홀연히 사라졌는지! 토양에 뿌리 내린 학자, 한시가 급한 치료에 녹아든 의사가 얼마나 많은지!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이들은 계획을 세우고 늘 사라지는 기적적인 내일로 원하는 바를 미루는 것만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 〈은신처〉, 137쪽

파브르는 스스로 자신의 발견이 절대적으로 확실하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었다. 신물이 날 정도로 대상을 관찰하고 또 관찰한 후에야 그 실체를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파브르가 자신의 연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에 거의 관여하지 않은 이유다. 파브르는 논쟁을 신경 쓰지 않았고, 비판과 논쟁을 피했으며, 자신을 둘러싼 공격에 절대 답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연구가 충분히 무르익고 발표될 준비가 됐다고 느낄 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 〈진화 또는 “생물변이설”〉, 222쪽

이것이 바로 파브르가 늘 자신은 곤충학자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이유다. 그리고 실제로 곤충학자라는 단어는 종종 파브르를 잘못 설명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파브르는 자신을 박물학자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생물학자 말이다. 생물학은 사전적 정의상 살아 있는 생명체를 모든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고려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생명체에서 고립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고, 모든 관계 속에서 각 부분은 관찰자의 시선에 무수히 많은 측면으로 비치기에 철학자가 되지 않고는 진정한 박물학자가 될 수 없다.
- 〈자연의 해석〉, 156~157쪽

파브르의 초상화나 그를 묘사한 글에서 파브르는 단순하고 정확하며 타고난 다정함으로 가득했다. 파브르는 자신이 관찰한 작은 생명체를 살아 움직이는 그림으로 재현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하게 말을 다뤘다. 작은 생명체들의 사랑과 싸움, 교활한 책략, 먹이를 쫓는 행동 등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감정을, 모든 곳에서 창조의 고통을 동반하는 그 어마어마한 드라마를 해석할 방법을 찾을 때 파브르의 표현법은 더 높은 수준에 닿아 색채를 띠고 상상력은 풍부해졌다.
특히 파브르는 과학이 시에 제공할 수 있는 심오하고 무궁무진한 자원이 무엇인지, 아직 탐험이 이루어지지 않은 심오한 지평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알이나 번데기가 깨지는 일은 그 자체로도 감동적이다. 어떤 생명체든 “빛으로 다가가는 것은 정말 엄청난 수고”이기 때문이다.
- 〈동물 삶의 서사시〉, 275쪽

보잘것없는 메뚜기조차 자신의 행복을 표현하기 위해 옆구리를 문지르고 삐걱댈 때까지 날개를 정강이에 비볐고, “빛과 그늘의 움직임에 따라” 갑자기 시작하거나 끝내는 자신의 음악에 도취했다. 모든 곤충은 저마다의 리듬이 있다. 어떤 리듬은 강렬하고 어떤 리듬은 거의 알아차릴 수 없다. 그것은 태양이 어루만지는 덤불과 휴경지의 음악, 즐거운 삶의 물결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음악이다.
곤충들은 즐겁게 지낸다. 시끌벅적한 축제를 일으키고 끝도 없이 짝짓기한다. 심지어 서로 친분을 쌓기도 전에 “동물의 유일한 즐거움이 사랑”이며 “사랑하는 것이 곧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맹렬하게 삶을 살아간다.
- 〈동물 삶의 서사시〉, 279쪽

뒤푸르의 호기심은 방대한 수집품을 모으게 했지만, 파브르가 생각한 것처럼 수집은 “눈으로만 말하고 생각이나 상상력으로는 침묵하는 거대한 유골 안치소의 황량한 묵상일 뿐”이며, 곤충의 진정한 역사는 이들의 습성, 노동, 전투, 사랑, 사생활과 사회생활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땅 위에서, 땅 아래에서, 물속에서, 대기 중에서, 나무껍질 아래에서, 깊은 숲속에서, 사막의 모래 속에서, 심지어 동물의 몸속까지 모든 곳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 〈평행 우주〉, 301쪽

인구 감소라는 고통스러운 문제로 신음하는 사람이라면 뿔소똥구리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자. “이들은 풍요로운 시기에 습관적으로 새끼를 많이 낳고, 궁핍한 시기에는 먹고 살 정도의 재력을 지닌 도시의 장인 또는 더 많은 욕구를 충족하는 데 점점 더 큰 비용이 들어서 자원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자손의 수를 제한하는 중산층을 흉내 내며 종종 새끼를 한 마리만 낳았다.”
- 〈세리냥에서 보내는 말년〉, 320쪽

출판사 서평

★★★★이 책을 먼저 읽은 분들이 보낸 찬사★★★★

“한 인간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래도록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해 노력하고 투쟁한 기록” ─ 신혜우(미국 스미스소니언 환경연구센터)

“파브르의 책이 우리에게 자연을 사랑할 용기를 주었듯, 이 책은 파브르 본인이 관찰 대상이 되어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종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 이소영(식물세밀화가, 원예학 연구자)


1. 파브르의 정신을 정확하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책
─ ‘자연의 경전’과도 같은 파브르의 삶과 작품을 생생하게 담다
─ 오래도록 자기만의 빛으로 반짝였던 한 과학자의 인생

파브르가 세상을 떠나고 약 110년이 지났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책이 대한민국에 출간되는 지금까지 파브르에 대한 여러 사람의 평가가 부유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정신과 업적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말해준다. 과묵하면서도 강직한 성격 탓에 살아 있는 동안에도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데 늘 조심스러웠던 파브르는 오랫동안 뜬 소문들에 침묵해왔다. 1907년 여름, 아내와 함께 파브르의 집이자 연구실인 ‘아르마스’에 방문해 그의 제자가 된 이 책의 저자 조르주 빅토르 르그로는 파브르에 대한 세간의 오해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느꼈고 이 책을 작업하기에 이른다. 그는 파브르의 원고와 서신뿐만 아니라 동생인 프레데릭 파브르에게 제공받은 가족의 모든 기록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 덕에 이 책은 파브르 사후에도 국내외 할 것 없이 파브르에 대한 주요 참고 문헌으로서 인용되어왔다.
책 속의 모든 문장은 파브르가 손수 검토했으며, 직접 쓴 서문은 이 이야기의 진실성을 드러내고 있다. 삶의 대부분을 생명의 경이로움을 밝히는 데 보낸 파브르는 우리가 익히 아는 과학자들과 다른 삶을 살았다. 학계의 권위와 명성을 누리며 이론을 발전시키기보다, 평생을 교육자로서 후학을 양성하며 학생들과 함께 자신만의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온 몸으로 자연을 체험했고, 자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타인의 목소리에 쉬이 반응하지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의 관찰과 경험으로 증거에 기반한 연구를 이어간 파브르의 결론이 실제로 진실에 가까웠다는 점은 그의 놀라운 통찰력을 가늠하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에 극도로 신중했던 파브르에 대해 가장 심도 있고 생생한 이야기는 물론, 그의 삶에 결정적인 순간이 되어줬던 동물과 식물, 자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파브르 저작의 핵심적인 부분을 충실하게 인용한 덕에 그의 아름다운 문장 또한 엿볼 수 있다. 시공간과 연령대를 초월해 사랑받아온 장 앙리 파브르의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자신이 알 수 없는 삶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경외의 태도로 끈기 있게 관찰하는 태도, 명성과 권력보다는 자연이 준 가치 아래 올곧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그의 자연과학자로서의 성취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니까 이 책에 실린 평가는 단 한 줄도 파브르의 동의 없이 쓰인 것이 없으며, 대부분 파브르의 정신이 직접적으로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되도록 파브르가 직접 말하게 하려고 했다. 이미 파브르는 박물학자의 탄생과 자신의 생각이 발전해온 역사를 보여주는 《파브르 곤충기》의 여러 장에 걸쳐 “홀로 있기 좋아하는 학생의 전기”를 그려내지 않았던가? 대체로 나는 일련의 사건을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말만 소개했다.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같은 표현으로 반복하거나 파브르가 스스로 자주 언급했던 내용을 다른 표현 또는 덜 만족스러운 표현으로 반복하는 건 쓸데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파브르의 말을 듣고 파브르의 기억에 호소하고 그와 동시대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가끔은 제자들의 자취를 되짚으면서 그가 남긴 공백을 메우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였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2. 최초로 자연을 다르게 바라본 관찰자
─ 해부학적인 생명 이해를 뛰어넘은 상황과 맥락의 과학
─ 살아 있는 자연을 드러내 새로운 우주의 서사를 만들어내다

파브르는 아이들을 위한 과학 교재 집필에 10여 년을 헌신했다. 그동안 지루하고 건조한 문장만으로 가득했던 자연사 교과서는 파브르만의 시선으로 새로이 거듭났다. 친절하고 생생한 문장은 특히 식물학을 흥미로운 학문으로 만들었고, “비교 대상이 없는 시리즈인 보석 같은 《파브르 식물기》”(115쪽) 또한 이 시기에 나왔다.
식물과 떼어놓을 수 없는 곤충 이야기를 파브르의 삶에서 빼놓을 순 없다. 파브르 이전에도 프랑스의 과학자 르네 레오뮈르 등 곤충을 연구한 학자는 늘 있어왔다. 하지만 레오뮈르의 연구는 “지루하고 끝없이 계속되는 명명법에 갇혀”(300쪽) 있었고, 파브르는 이를 “유머러스하게 비판하면서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했다.”(169쪽) 그 뒤로 프랑스 곤충학의 거장 레옹 뒤푸르가 등장했지만 그는 곤충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을 쏟았고, 친밀하게 관계를 맺어야만 알 수 있는 작지만 거대한 곤충 세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파브르는 ‘곤충학의 원로’로 알려진 뒤푸르의 관찰마저 “얼마나 불완전하고 제대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를 확인”(81쪽)하고서는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게 된다.
앞선 과학자들과 달리 수십 년간 섬세하고도 사려 깊게 자연을 관찰해온 파브르는 생명이 “해부학적 특성이 아니라 성향이나 노동의 종류에 따라 결정”(205쪽)된다고 말한다. 파브르는 그동안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현미경을 통해 생명을 바라보며 기계적으로 종, 속, 과, 목을 분류하고 사체를 해부해서 능력을 유추해온 태도로는 제대로 된 생명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각 개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생명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브르의 이 결론은 오늘날에서야 발전한 생명 윤리 및 동식물학에 하나의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 동물의 지능과 행동, 식물의 생리 등을 인간 중심적으로 측량해온 역사로 인해 우리는 점점 더 생명의 경이를 느낄 새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저자 르그로는 말한다. “새로운 파브르가 세상에 등장하기까지는 분명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307쪽)라고. 과연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파브르가 등장할 만한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타고난 성정, 그가 몸담은 과학이라는 문화, 백과사전에 가까운 지식, 거의 10년 동안 교재를 집필하며 끊임없이 최신 상태로 보완한 교육 커리큘럼에 대한 높은 이해는 파브르가 자신의 연구에 한계 없이 깊게 침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에 더해 작은 생물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알아차리고 그들의 습성을 이해하고 이를 “광활한 우주와 연결된 신비로운 맥락”(157쪽)으로서 이해하는 위대한 관찰자 파브르의 능력은 전문적인 지식만으로는 감히 도달할 수 없다. 관찰의 진정한 기술이자 재능은 “늘 깨어 있는 지성”(157쪽)이다. “진실에 닿을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몰두하려는 열망”(157쪽)은 그의 삶을 굳건히 지탱해 지금까지도 세상과 공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구조는 능력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기관은 그 기능에 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렌즈와 현미경에 정신을 빼앗기도록 내버려 두자. 어쩌면 이들은 한가하게 이것 또는 저것, 종, 속, 과, 목에 관한 어마어마한 세부 사항을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문제를 다 파악하지도 못한 채 감지하기 힘든 연구를 수행하고 미세한 변형을 자세히 설명하려고 무수히 많은 페이지를 쓸 수도 있다. 그러느라 무엇이 진짜 경이로운지 보지 못할 수도 있다. ……
천재의 특권인 직감을 자랑하는 프로방스 가수가 아름다운 가사로 이런 생각을 표현한 적이 있다.

오! 메스를 들고 있는 바보들
죽음을 찾아보며, 그들은 안다고 생각하지
벌의 미덕과 벌집의 비밀을

─ 8장 〈본능의 기적〉 중에서


3. 위대한 과학자는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
─ 노동자와 소작농, 여성 들에게도 평등한 교육을 제공하다
─ 세상과 함께 무르익은 인생으로 던지는 질문

파브르에게는 의외의 경력이 하나 있다. 바로 1년간의 시의원 활동이다. 그의 관심은 파벌 간의 알력 싸움에서 이겨 권세를 누리는 것이 아닌, 더 나은 미래와 발전한 인류에 있었다.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는 데 몰두하는 세속적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오로지 배움을 위해서 일하고, 또 일했다. 자신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배움의 기회가 공평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노동자와 소작농, 여성 들에게도 차별 없이 강의를 제공했다. 그에게는 자연이야말로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한 배움의 장이었다.
하지만 파브르의 명성이 높아지자 그에 대한 시기와 질투 또한 함께 늘어났다. 사람들은 학계의 권위 있는 이론이 아닌 오로지 관찰에서 증거를 얻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파브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소녀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평등한 교육자로서의 행보를 두고선 “반체제 인사”(105쪽), “이단이자 수치”(106쪽)라고 말했다. 혐오감에 휩싸인 파브르는 사람들과 멀어지기 위해 오랑주로 은퇴하게 된다. 파브르는 자신만의 “에덴”(140쪽)을 찾아 정착하게 되었다.
삶이 얼마나 지리멸렬한지, 관찰을 기반으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해온 과학자마저도 이토록 부조리한 세상에서 어떻게 억압받아왔는지, 그럼에도 주변에서 어떤 도움을 받아 그 관찰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 위대한 관찰자는 삶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포기했는지. 책을 읽으며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러한 감상과 질문 들은 독자에게도 자연과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내리게 한다.
이 책에 도움을 준 앙리 베르그송의 말처럼 “생명체가 진정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건 직관뿐이다.”(158쪽) 생명으로 가득한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관찰이라는 행위로 죽어 있는 학문이 아닌 살아 있는 학문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이 땅 위에 살려낸 파브르의 삶과 작품을 감히 “자연의 경전”(352쪽)이라 칭할 수 있는 이유다. 파브르의 말과 삶이 담긴 이 책이 우리에게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희망찬 메시지가 되어 “기적과 시로 가득한 세계”(31쪽)가 모두에게 펼쳐지길 바란다.


파브르는 진보의 연속성을 단언했다. 더 조화롭고 덜 잔인한 규범에 지배되는 더 낫고 덜 잔인한 미래, 더 완벽한 인류애를 믿었다. …… 그는 가장 놀라운 관점으로 가장 소박한 생명체를 바라봤다. 아주 하찮은 곤충의 몸이 갑자기 초월적인 비밀이 되어 인간 영혼의 심연을 밝히거나 별을 엿보게 했다. 비록 파브르의 연구는 진화론자의 이론과 모순되지만, 모든 창조물은 점진적인 진보를 향해 쉬지 않고 천천히 움직인다는 똑같은 교훈적 결론으로 끝난다.
─ 〈진화 또는 “생물변이설”〉 중에서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70872429
발행(출시)일자 2024년 09월 16일
쪽수 384쪽
크기
142 * 210 * 26 mm / 609 g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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