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 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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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새로운 눈높이에서 들여다보는
전투적이고 전략적인 식물의 세계
『식물의 책』 이소영 저자의 신작!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틈새 식물에 관한 편견, 무화과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착각, 능소화 꽃가루에 관한 오해, 매일의 식탁에 오르는 쌀이나 채소·과일에 대한 이해, 생존을 위해 잎과 꽃을 여닫는 식물의 전략, 동물을 이용한 도깨비바늘의 이동력 등 사람들이 식물에 관해 갖고 있는 오해나 편견을 되짚고, 번식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 식물의 강인함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서 나아가, 식물을 이용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입장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생각해보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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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목차
- 들어가며
1부 식물에 관한 오해
도시 틈새 식물의 선택 | 도시 한가운데로 봄을 부르는 라일락 | ‘보리수’라는 이름에 얽힌 오해 | 가을에 핀 벚꽃, 기후 위기 때문일까 | 알래스카의 작약, 케냐의 장미 | 똥나무에서 돈나무가 되기까지 | 무궁화의 존재감이 눈부신 계절 | 모과가 쓸모없는 열매라는 편견 | 제주조릿대를 향한 두 개의 시선 | 무화과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오해 | 당근은 원래 주황색이 아니었다 | 식물로부터 시작된 색 이름 | 나무는 각자의 속도로 자란다 | 크리스마스트리가 된 전나무
2부 식물을 바로 바라보기
지금 당신 발밑의 제비꽃 | 이른 봄마다 우리를 부르는 매화 | 목련의 이름을 바로 부르기 | ‘포플러 나무 아래’의 추억 | 수련의 계절 | 튤립과 아네모네가 사는 숲 | 아침에 피는 꽃, 밤에 피는 꽃 | 겨울 화단을 빛내는 꽃양배추 | 마로니에공원의 칠엽수 | 벼의 안부를 묻다 |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엮다 | 식물의 잎이 건네는 기회
3부 식물의 힘
식물에도 온기가 있다 | 식물의 독과 함께하는 생활 | 고약한 냄새에도 이유가 있다 | 끈끈한 액체의 정체 | 기울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 덩굴식물의 생존법 | 바람에 퍼지는 작디작은 꽃가루 | 누구보다 멀리 가는 식물 | 식물도 소리를 낼 수 있다 | 촉각에 민감한 식물
4부 식물과 함께하는 생활
편집당한 카네이션 | 호우의 시대, 녹지의 역할 | 가로수를 향한 두 가지 마음 | 화려한 화단과 척박한 땅 사이에서 | 어린이를 위한 학교 식물 | 미래에도 팜유를 쓸 수 있을까 | 의외의 봄나물들 | 개암나무와 헤이즐넛의 관계 | 크리스마스선인장의 정체 | 왜 식물에 낙서를 할까 | 인류가 식물을 이동시키는 방법 | 과일의 왕, 파인애플의 위상 | 식물과 더불어 행복하기
인덱스
참고문헌
책 속으로
자유로이 광합성을 하고 뿌리를 내딛고 싶은 만큼 내딛고, 수분과 양분을 원하는 대로 흡수해 꽃을 피우다 사람들 눈에 띈 틈새 식물들. 더 이상 도시살이를 피할 수 없는 식물들에겐 최선의 삶의 형태였을 것이다. 어쩌면 저 먼 열대우림에서 한국으로 옮겨져 건조한 실내에서 햇빛과 물을 충분히 받지 못하며 살아가는 우리 가까이의 실내 분화 식물들이 사실은 더 불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내 영역 안에서 존재의 행복을 자신하고, 낯설고 먼 존재의 불행을 지레짐작하지만 말이다. _p.17, 「도시 틈새 식물의 선택」 중에서
내가 어떤 대상을 보고 평소와 다르다고 느끼더라도 우선 나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상식 밖의 자연현상을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내 상식이 틀렸거나 대상 식물에 대한 나의 경험 데이터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춘추벚나무와 장미가 가을에 꽃을 피운 게 이상해 보인 것은 가을에 꽃 피우는 장미와 벚나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의심하기 이전에 우선 우리의 무심함부터 돌아볼 일이다. _p.34, 「가을에 핀 벚꽃, 기후 위기 때문일까」 중에서
호주 커틴 대학의 킹슬리 딕슨(Kingsley Dixon) 박사 연구팀은 식물 연구자들이 자기 분야에서 어떤 기준으로 연구할 식물을 선택하는지 조사했다. 1975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된 알프스 자생식물 논문 280편을 대상으로, 연구 주제로 선택된 식물종의 색과 형태 그리고 눈에 잘 띄는 특성 간의 관계를 분석한 것이다. 분석 결과 연구자들은 작은 꽃보다 크기가 큰 꽃을, 초록색과 검은색처럼 눈에 띄지 않는 색보다 분홍색, 흰색 꽃과 같이 화려한 색의 꽃을 훨씬 더 많이 선택해 연구했다고 한다. 개체의 희귀성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무엇보다 자연에 많지 않은 파란색 꽃이 가장 많이 연구됐다.
딕슨 박사가 이 연구를 통해 전하고 싶은 바는 연구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태계에 중요하거나 긴급한 보전이 필요한 식물을 놓치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식물의 외형은 식물의 가치 혹은 효용성과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_p.59, 「모과가 쓸모없는 열매라는 편견」 중에서
무화과는 한자로 ‘꽃이 없는 과일’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의 착각에서 빚어진 오류다. 무화과를 초기에 발견한 사람들은 아무리 오래 들여다봐도 꽃이 보이지 않으니 꽃이 피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무화과에도 꽃은 있다. 심지어 수도 없이 많은 꽃이 핀다. 이 꽃은 열매 이전의 꽃주머니 안에서 우리 눈에 띄지 않고 자잘하게 피어날 뿐이다. 무화과를 먹을 때 씹히는 수많은 씨앗이 꽃의 존재를 증명하니, 우리는 식감으로 꽃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무화과 열매 끝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이것을 무화과 눈이라고도 부른다. 무화과나무의 수분을 돕는 무화과말벌은 이 구멍을 통해 꽃주머니 안팎을 드나들며 꽃가루를 옮긴다. _p.70, 「무화과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오해」 중에서
몇 년 전 당근을 재배하는 농장 연합회로부터 당근을 유통할 때 포장하는 박스 패키지 디자인에 사용할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근을 그리려면 야생 당근 원종에 관해서 알 필요가 있기에 영국 큐왕립식물원의 디지털 데이터를 통해 당근 표본 정보를 찾았다. 그런데 원종으로 추정되는 종이 내가 생각했던 주황색이 아닌 보라색에 가까운 흰색이었다. 게다가 지난 역사 동안 그림과 표본, 사진으로 기록된 당근 뿌리 색은 천차만별이었다. 흰색, 보라색, 빨간색, 노란색 그리고 주황색. 이 데이터를 눈으로 확인한 후 나는 더 이상 당근을 홍당무라 부를 수 없었다. 당근이 시대에 따라 다채로운 색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_p.76, 「당근은 원래 주황색이 아니었다」 중에서
식물을 관찰하다 보면 물감 팔레트에는 없는, 오차 범위가 촘촘한 다채로운 색들을 만나게 된다. 벌개미취와 층꽃나무, 솔체꽃 그리고 두메부추의 꽃 색을 우리는 결과적으로 보라색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이들을 마주하면 보라색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식물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색의 다양성을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_p.85, 「식물로부터 시작된 색 이름」 중에서
우리 숲에는 요즘 꽃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라넌큘러스 가족도 있다. 매화마름, 개구리갓, 개구리자리, 젓가락나물 등은 라넌큘러스와 한 가족이다. 이들은 모두 햇빛 아래에서 꽃잎이 반짝이며 광채가 난다. 이 광채는 매개 동물의 눈에 띄어 수분을 하려는 식물의 생존 전략이다. 요즘 꽃 시장에선 라넌큘러스 종류 중 꽃잎이 빛나는 버터플라이 계통이 인기가 많은데, 이들 꽃잎이 빛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식물의 족보를 알고 나면 꽃집과 화단의 식물이 숲의 식물과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다. _p.136, 「튤립과 아네모네가 사는 숲」 중에서
그렇기에 하늘타리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늦은 오후에 집을 나서야 했다. 흑막 속에서 흰 꽃잎을 내뿜은 듯한 형태의 하늘타리 꽃은 이것이 식물인지 여느 작은 동물인지 착각할 만큼 기이
했다. 다음 날 낮에 다시 하늘타리를 찾으니 전날 밤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꽃잎이 축 처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 식물들은 왜 어두운 밤에 꽃을 피우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수분을 도울 곤충이 야행성이기 때문이다. 굳이 야행성 곤충의 도움을 받는 이유는 낮에 활동하는 곤충의 선택을 받는 경쟁에 참여하기보다 밤에 활동하는 곤충의 선택을 받는 편이 유리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따뜻한 봄과 여름이 아닌, 추운 겨울 동안 꽃을 피우는 복수초와 설강화 같은 겨울 꽃의 선택도 같은 이유에서다. _p.143, 「아침에 피는 꽃, 밤에 피는 꽃」 중에서
현재까지 연구된 바로는 총 열네 개 과의 식물이 열을 발산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중에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식물도 있다. 셀로움필로덴드론의 꽃이라 불리는 기관은 흰 포엽(잎의 변태로, 꽃이나 꽃받침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잎)이 긴 꽃차례를 감싸는 형태인데, 바로 이 꽃차례가 열을 발산한다. 발산된 열은 꽃의 성숙을 도울 뿐 아니라 매개 동물인 딱정벌레를 유인한다. 딱정벌레는 따뜻한 온기를 찾아 필로덴드론의 꽃 속으로 기어들어가 수분을 돕는다. 열 발생 식물 중 많은 경우가 세포에 저장된 탄수화물과 당을 태워 열을 발산하지만, 필로덴드론은 특이하게 지방을 태워 열을 발산한다. _p.182, 「식물에도 온기가 있다」 중에서
식물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휘발성 유기화합물 때문이다. 휘발성 물질은 공기 중에 흩어지고 증발하면서 수분 매개자를 끌어들이고, 해가 되는 동물을 내쫓기도 한다. 식물은 동물과 냄새로 의사소통을 하는 셈이다. 인간에게 향기롭지 않은 냄새일지라도 어떤 동물에게는 흥미롭거나 유혹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잎에서 생선 비린내가 나는 약모밀과 쾨쾨한 냄새가 나는 누린내풀, 누리장나무의 향기 또한 각자의 수분 매개 동물에게만큼은 최적화됐다. _p.198, 「고약한 냄새에도 이유가 있다」 중에서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능소화 꽃가루에 관한 조언을 자주 들었다. 능소화 곁에서 손으로 눈을 비비면 그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 심하면 실명까지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기였다. 능소화 꽃가루가 갈고리 형태라 피부나 옷에 한 번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고, 독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염증을 일으키며 눈을 실명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소문은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간 지속됐고, 한쪽에서는 더 이상 능소화를 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것은 과장된 이야기였다. 능소화의 이 억울한 누명을 풀어준 존재 역시 전자 현미경이다. 현미경으로 확대해 찍은 능소화 꽃가루는 갈고리와 비슷한 모양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그물망 형태의 꽃가루였다. _p.222〜223, 「바람에 퍼지는 작디작은 꽃가루」 중에서
우리가 아는 카네이션의 색과 형태는 이들을 200년간 육성하고 재배하면서 진행된 산업화의 산물이다. 한순간 꽃이 피었다가 지는 숲의 패랭이꽃속 식물과 달리, 카네이션은 1년 내내 꽃이 핀다. 줄기는 길고 곧으며 꽃잎은 크고 화려하다. 카네이션 원종과 재배종을 비교해보면 줄기의 길이가 확연히 다르다. 패랭이꽃속 식물은 줄기가 짧고 가는 것이 특징인데, 카네이션은 줄기가 곧고 길다. 줄기가 짧으면 꽃병에 꽂아 절화로 활용할 수 없기에, 패랭이꽃속 중 가장 키가 큰 종을 선택한 후 줄기를 더욱 곧게 육성한 것이다. 최근에는 패랭이꽃속 특유의 꽃잎 가장자리 핑킹 거치를 지우고 가장자리를 매끄럽게 육성한 카네이션도 유통되고 있다. _p.248〜249, 「편집당한 카네이션」 중에서
온실 재배에 성공하기까지 200년 이상 파인애플은 귀한 식물로서 호황기를 맞았다. 권력자들은 파인애플 하나를 사는 데에 현재 화폐 가치로 800만 원까지 지불했으며, 먹는 것조차 너무 아까운 나머지 식탁이나 테이블 위에 장식만 해두거나, 외출할 때 가방을 들듯이 파인애플을 팔에 얹고 다녔다. 관상용 식물을 넘어선 과시용 장식물이 돼버린 것이다. 심지어 현대의 명품 대여점처럼 파인애플 대여점이 성행했으며, 권력의 상징이 됐다. 왕관과 비슷한 파인애플의 형태가 이들을 소유한 사람을 왕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_p.317, 「과일의 왕, 파인애플의 위상」 중에서
출판사 서평
식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자세
사람들은 길을 걷다가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피어난 제비꽃이나 민들레를 발견하고서는,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났다며 그들을 가여워 하거나 대견하게 여긴다. 그런데 틈새 식물에게 그 땅이 정말 척박하기만 할까? 이소영 저자는 틈새라는 공간을 다시 살펴보길 권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비좁아 보일지라도, 막상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아래에는 흙과 모래가 펼쳐져 있어 식물이 뿌리를 내리기에 무리가 없다. 그리고 주변에 경쟁 식물이 없으니 햇빛을 받는 양 또한 도시 어느 화단보다 넉넉하다. 도시살이를 피할 수 없는 식물들에겐 최선의 삶의 형태인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 다른 존재의 삶을 지레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것. 올바른 관계 맺기를 위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지만, 사람들은 유난히 식물에게는 판단과 행동이 앞선다. 그런 우리에게 원예학 연구가로서 16년 넘도록 식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글과 세밀화로 기록해온 이소영 저자가 『식물에 관한 오해』를 통해 식물에 관한 오해와 편견을 되짚으며 식물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길 권한다.
1부 ‘식물에 관한 오해’와 2부 ‘식물을 바로 바라보기’에서는 분명 다른 학명의 식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불리는 보통명이 같은 바람에 자꾸 오해를 받는 보리수나무, 원래는 열매에 똥파리가 자주 낀다는 이유로 ‘똥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식물이 시간이 흘러 어느새 ‘돈나무’로 불리며 축하용 선물로 각광받는 사연 등 식물명에 얽힌 오해를 살펴보기도 하고, 제주조릿대나 모과, 국화(國花)인 무궁화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꼬집으며 쓸모를 판단하는 주관적인 기준을 되돌아보게 한다.
식물에 관한 오해나 편견을 갖지 않으려면 우선 식물의 정확한 이름(학명)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고, 더불어 식물 종의 특성을 제대로 알아가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일례로 저자는 늦가을 수목원에서 연분홍 꽃을 피운 벚나무를 마주했을 때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벚나무의 꽃을 본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그것이 이상 기후 때문인 것 같다며 기후 위기를 걱정했는데, 사실 그 식물은 가을에도 꽃을 피우는 춘추벚나무 ‘아우툼날리스’였다. 대상 식물에 대한 나의 상식이 틀린 경우도 있기에, 섣부른 판단보다는 식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먼저다.
생존을 위한 식물의 강인한 힘과 전략
저자는 묻는다. 만약 식물이 동물처럼 소리를 낸다거나 스스로 이동할 줄 안다면, 사람들은 이들이 살아 있는 생물임을 실감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실 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인한 존재다. 한자리에서 수백 년은 거뜬히 사는 느티나무나 버드나무 같은 나무들은 물론이고, 정원수로 사랑받는 수수꽃다리속 식물만 해도 영하 60도에서 생존할 수 있으며 100년은 넘게 산다. 다시 말해 라일락을 정원에 심고 관리하는 인간보다 나무가 더 오래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3부 ‘식물의 힘’에서는 식물의 이러한 강인한 생존력과 그 방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2019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식물학 연구팀은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미세한 소리를 낸다는 것을 증명했다.(p.235) 연구팀은 토마토와 담배를 대상으로 줄기를 절단하거나 물을 주다가 멈추는 방식으로 수분 스트레스를 유도하였고, 식물들이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생쥐나 박쥐와 같은 동물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미세한 소리를 방출함을 밝혀냈다. 물관의 수분이 이동할 때 기포가 형성되어 발생하는 소리로 추측되는데, 이것이 식물이 본능적으로 내는 것인지 다른 생물에게 정보를 전하는 차원에서 내는 것이지는 알 수 없지만, 식물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생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 식물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지키려고 애쓴다. 집에서 흔히 재배하는 관엽식물인 고무나무는 잎이나 줄기가 절단되면 하얗고 끈적한 액체를 방출하는데, 이 액체는 독성을 지닌 라텍스 성분으로 식물 스스로 절단면을 치료하고 외부 바이러스로부터 방어하기 위함이다. 미모사가 잎에 자극이 가해지면 빠르게 잎을 오므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잎에 자극을 받으면 다양한 화학물질과 수액이 잎 내부에 확산되어 셀이 붕괴되는데 그것이 우리 눈에는 잎을 오므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한편 파리지옥이 자극에 잎을 오므리거나 닫는 이유는 곤충을 잡아 양분을 얻기 위함이다.
식물은 생존을 위해서 진화를 거듭한다. 사람들에게 제비꽃은 흔한 틈새 식물일지 몰라도, 저자는 식물 종의 특징을 포착해 그림으로 그려야 하는 본인에게는 제비꽃은 오히려 다루기 까다로운 식물이라고 말한다.(p.105) 교잡이 잦은 편이라 종을 식별하기 어려운 데다, 환경 변이가 무척 다양하기 때문에 더욱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잡과 변이 모두 번식과 생존을 위한 제비꽃의 전략이다. 시체꽃이라 불리는 타이탄 아룸이 악취를 뿜어내는 것도, 둥근잎유홍초나 능소화 등의 식물이 덩굴 형태로 진화하는 것 또한 각자의 생존 전략이다.
진정한 식물 문화가 발달한 사회를 그려보다
식물은 스스로 이동하지는 못하지만 동물을 이동 수단 삼아 번식해 살아간다. 동물의 먹이로써 그리고 동물의 털이나 깃털에 열매와 씨앗을 부착하는 방식으로 먼 거리를 이동한다. 도깨비바늘, 쇠무릎, 우엉, 도꼬마리 같은 식물은 동물 털에 잘 붙기 위해 씨앗이 가시나 갈고리 형태로 진화했다. 그리고 인간은 여기에서 발명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1941년 스위스의 엔지니어 조르주 드메스트릴은 강아지와의 산책길에 발견한 도꼬마리 가시에서 영감을 받아 돌기 형태의 접합 장치를 개발했고, 이렇게 개발된 ‘벨크로’는 운동화부터 국제우주정거장의 장비까지 널리 이용된다. 이처럼 식물과 동물은 지구상에서 줄곧 더불어 살아왔는데, 그런 우리의 모습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4장 ‘식물과 함께하는 생활’에서 다룬다.
인간은 섭취를 위한 식량과 감상을 위한 절화의 형태로 식물을 꾸준히 사용해왔다. 뿌리나 줄기, 잎, 열매는 요리의 다양한 재료가 되어주고, 팜유나 피마자, 해바라기처럼 열매나 씨앗에서 기름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지나친 탐욕이 식물과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다. 행사가 많은 5월에 사람들이 즐겨 찾는 카네이션은 패랭이꽃속의 카리오필루스종을 개량한 식물이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형태의 카네이션이 되기까지 패랭이꽃은 200년간 본성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사람들은 일단 육성 시 호불호가 갈린다는 이유에서 정향 향기를 제거했고, 절화로 이용하기 위해 패랭이꽃속 중 가장 키가 큰 종을 선택해 개량했다. 최근에는 꽃잎 특유의 핑킹 거치마저 매끄럽게 지우고 육성한 카네이션도 유통된다. 오로지 인간의 만족을 위해 줄기나 잎, 꽃잎의 형태, 향기까지 평면적으로 다듬어지고, 식물 존재의 가치가 지워지고 만 것이다.
최근 식물 애호가도 늘고 식물원이나 큰 정원이 많이 생기는 등 우리나라의 식물 문화가 이전보다 발달했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이 책 『식물에 관한 오해』에서 짚어나가는 여러 사례를 읽다 보면 그에 완벽하게 동의하기는 어렵다. 책의 다음 문장은 식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입장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면 좋을지 생각해보게끔 한다. “식물 소비량이 늘고, 산업 규모가 커지며, 정원이 많아졌다는 것만으로 식물 문화가 발달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식물 문화가 발달한 사회란 식물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사회 구성원들이 식물에 관해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고, 보다 정확한 식물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사회가 아닐까 싶다.”(p.29)
기본정보
ISBN | 9791171711994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05월 22일 |
쪽수 | 336쪽 |
크기 |
153 * 227
* 28
mm
/ 800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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