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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진란 시집
시인동네 시인선 178
진란 저자(글)
시인동네 · 2022년 0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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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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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을 향한 악착같은 사랑의 노래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2002년 계간 《주변인과 詩》 편집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진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가 시인동네 시인선 178로 출간되었다. 불멸과 허무에 대한 통찰로 가득한 진란 시인의 이번 시집은 보이지 않는 초월적 대상과 동행하며 그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이자, 어떤 종말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불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총서 (244)

작가정보

저자(글) 진란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2002년 계간 《주변인과 詩》 편집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혼자 노는 숲』이 있다.

작가의 말

눈을 뜨면
가끔 내가 잠들었던 곳이 아닌
사막에서 닳아버린 불온한 여우를 만난다.

항상 바다로 가고 싶었는데
누가 밤마다 나를 그 고비에 세워둔다.

핏발선 눈살이 뜨겁다.
순백의 눈빛이 매섭다.
붉은 꼬리가 일그러진다.

슬그머니 발을 빼야겠다.


2022년 7월
진란

목차

  • 제1부

    골목ㆍ13/그들만의 요란법석ㆍ14/쓸쓸해서 하는 짓ㆍ16/그럼에도 불구하고ㆍ18/대책 없는 사월, 크리스 가르노처럼ㆍ20/몇 겹의 숲에서 들은 이야기ㆍ21/꽃에 대한 예의ㆍ22/끊임없이 잠은 내리고ㆍ24/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ㆍ26/시월이라고 쓰고 나면ㆍ27/너를 사랑하는 방법이 그것뿐이었으니ㆍ28/봄눈이 가렵다ㆍ30/마음 모종ㆍ32/쑥부쟁이 꽃밭에 앉아ㆍ33/변절에 대하여ㆍ34/반달ㆍ36

    제2부

    숨ㆍ39/접는다는 것ㆍ40/새의 의미ㆍ42/나비 효과는 없다ㆍ44/환장 블루스ㆍ46/새벽에 문득 일어나ㆍ48/소설의 밤ㆍ50/폭설ㆍ52/플립 러닝ㆍ53/지상에서의 하루ㆍ54/비문ㆍ56/소설을 지나며ㆍ58/여전히 커다란 귀가 잎사귀처럼 움찔거려요ㆍ60/이별보다 더 먼 곳에 서서ㆍ62/흔한 이별ㆍ64

    제3부

    해찰하기ㆍ67/안녕, 주르륵 랩소디ㆍ68/긴가민가할 때ㆍ70/꽃밥 같은 무렵ㆍ72/개망초ㆍ74/거짓말처럼 행복한ㆍ75/노랑나비를 만나서ㆍ76/생의 한가운데 핀 꽃ㆍ78/낌새ㆍ80/산벚꽃에게 묻다ㆍ82/다시 쓰는 개망초ㆍ84/물 떼를 만나다ㆍ86/어머니와 빨랫줄ㆍ88/눈물 좀 주세요ㆍ90/나는 아직 뜨거워지고 있는 중이다ㆍ92

    제4부

    그 한때의 말ㆍ95/오리나무 숲에 서서ㆍ96/귀신고래를 만나다ㆍ98/우기, 자하문에서ㆍ100/우주 미아ㆍ101/두근두근 꽃ㆍ102/만첩홍매 화엄경ㆍ104/Photographㆍ106/할미꽃ㆍ107/만항재에서ㆍ108/접는 달ㆍ110/분홍의 소음과 문장뿐인ㆍ111/오래전 불러보던 사소한 습관으로ㆍ112/다시 채석강에서ㆍ114/바깥에서는 울음도 눈이 부셔요ㆍ116

    해설 우대식(시인)ㆍ117

책 속으로

눈 깊어진 당신이
귀 얇아진 당신이

지난 시간의 흔적을 밟아온 휘파람 소리는
은회색의 저녁, 긴 꼬리를 끌어당긴다
사람꽃 져버린 자리,
온기 없는 골목이 슬그머니 미끄러진다

서쪽으로 밀린 구름들도 작당했는지
물끄러미, 서슬이 붉다

나 없이도
여전히 아름다운 세상이다
- 「골목」 전문


어쩌랴 자작이여
우주에 뿌리를 펼치고
뿌리의 날개들이 우주의 기운을 물고 와
땅에, 이 지구에 젖을 물리는 것인데
바람의 잦은 잔소리 잎을 치대고
황금 이파리 다 떨어진 공염불인가
은빛 나뭇가지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남은 게 없고
늦가을 빈 숲에 들면 눈부신 허공에
젖 빠는 소리 바스락바스락
어쩌랴 자작이여
창공에 닿은 저 높은 뿌리 힘껏
더 높은 신의 정기 끌어당겨
자장자장 겨우내 꿈꾸는 자작나무 숲
우듬지 숨 쉬는 자작나무 숲 거기,
나 홀로 조용히,
잠잠히 너를 사랑하고
상심은 멀고
기쁨은 꿈속에 있으니
- 「너를 사랑하는 방법이 그것뿐이었으니」 전문


미운 사람 없기, 지나치게 그리운 것도 없기, 너무 오래 서운해 하지 말기, 내 잣대로 타인을 재지 말기, 흑백논리로 선을 그어놓지 말기, 게으름 피지 말고 걷기, 사람에 대하여 넘치지 말기, 내 것이 아닌 걸 바라지 말기, 얼굴에 감정 색깔 올려놓지 말기, 미움의 가시랭이 뽑아서 부숴버리기, 그냥 예뻐하고 좋아해주고 사랑하기, 한없이 착하고 순해지기

바람과 햇볕이 좋은 날 자주 걸을 것
마른 꽃에 슬어 논 햇살의 냄새를 맡을 것
그립다고 혼자 돌아서 울지는 말 것
삽상한 바람 일렁일 때 누군가에게 풍경 하나 보내줄 것
잘 있다고 카톡 몇 줄 보낼 것
늦은 비에 홀로 젖지 말 것
적막의 깃을 세우고 오래 걸을 것
- 「숨」 전문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푸름으로 눈물을 버무려 촛농처럼떨어져 내리던 밤새 상념들도 해답이 없다 길을 내지 않는다 그것으로 다다 없는 하늘에서 이젠 의미 없이 울지 않는 새 거기 있다고 한들 누가 볼 수 있을까 굳어지고 굳어져 가는 태고의 화석으로나 남아 있을 짐작으로나 아는 역사가 길이 되어줄까 땀과 눈물로 범벅을 만들어 한 생을 열었다 하자

하늘 역이 있어 간이역처럼 정차했다 하자

몸을 벗은 허물은 무간으로 떨어지고 영혼은 어딘가로 길을 떠난다 하자 희희낙락하던 그 많은 날들이 태고의 이끼처럼 파랗게 남아 증거가 된다 하자 애비거나 에미거나 그 어느 조상의 허리에서부터 육신의 혈맥을 타고 나르던 새의 의미를 비상구에서 내려다본다 하자 여행자는 단지 떠나는 홀가분함으로 날아가고 남는 자는 무성한 눈물로 그의 길을 덮어놓을 뿐인 걸

훌훌 녹아내리던 몸은
거기 그렇게 남아
이끼가 되고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의미 없이 웃는 새가 날아와 노래를 하고
- 「새의 의미」 전문


마침,
기다리던 그대 머리 위로 펄펄 흩날리는 건
머묾 없이 무성해지는 꽃잎들
심심하게 그대 몸 위에 뉘고 또 뉘고
착착 겹쳐서 한 몸이 되어버리는
단단한 뭉침, 그러면 그대도 사라지고
우리도 사라지고
그대 생각도 사라져서는 앞을 볼 수 없지
무아의 지경으로 달려드는 염치도 없지
저렇게 내리고 쌓이고도 사라지는 법도 있지
젊은 날,
우리 머리 위로 나붓나붓 날리던
흰 벚꽃 꽃잎 꽃비였던 그 약속같이
서로 짐작만 하고, 질문만 하다가 잊히겠지
마침내, 이 눈 그치면
눈썹달도 연처럼 나뭇가지에 걸리고
그대 눈의 부처 되어 천년처럼 깊어지겠다
- 「폭설」 전문

출판사 서평

■ 해설 엿보기

진란 시인의 시를 읽으며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은 운동으로서의 감각이다. 그리는 대상이 풍경이든 마음의 상태이든 끝없는 움직임의 실체로 대상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시적 화자의 지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가령 “항상 바다로 가고 싶었는데/누가 밤마다 나를 그 고비에 세워둔다”(「시인의 말」)는 고백은 모순된 상황의 전개를 보여주지만 사실 이는 부단한 상상력의 운동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바다와 사막을 오가는 상상력의 운동은 이 시집을 서정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을 수만은 없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사랑, 봄, 꽃을 찾기 위해 “더 많이 쳐다보고/더 많이 듣고/더 많이 침묵”(「그럼에도 불구하고」)하는 내재적 역동성이 발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독자도 부지런히 그 발길에 함께할 때 보다 시를 읽는 재미를 느끼게 될 터이다.
동적인 상상력의 하나로 시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대상과의 만남 혹은 관계성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관계성에 대한 탐구는 사랑 혹은 이별로 변주되면서 시적 화자에게 세계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탐구로 환치되어 가는 것이다.

꽃들의 구역에서
가장 생생한 아픔은
너와 내 뿌리가 맞닿은 것을 볼 수 없다는 것
서로 얽히고설켜도
둘의 뿌리를 섞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너와 내가 꽃으로 피어 마주 보는 시선이
뜻하지 않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다
너의 향기도 너의 속삭임도 바람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더 많이 쳐다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침묵하고
더 많이 주고 싶어지는 마음
세상에 함께하는 시간에 우리는 살고
살아 있고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뿌리와 뿌리를 맞대고 연리지가 되기까지
자유를 향하여 달려가는 네 도주의 흔적을 따라
나는 또 피어나고 피어나고
피어나고

톡 톡 톡 떨어지는 낙화는
문득 네 꿈속에서 또 다른 뿌리를 내리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

진란 시인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제재로서의 꽃 또는 나무 혹은 숲은 정동의 미학을 구현하면서 진정한 관계성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 꽃의 뿌리에 대한 탐구의 결과로서 “너와 내 뿌리가 맞닿은 것을 볼 수 없다는” 내적 고백은 시적 화자가 대상에 어떻게 밀착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불가능에 대한 지향으로 끝내 “너의 향기도 너의 속삭임도 바람에 흩어져 버리는” 것을 분명히 인지한 가운데 솟아난 사유이다. 단절성의 운명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뇌며 “세상에 함께하는 시간에 우리는 살고/살아 있고/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는 독백은 궁극적으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물음에 값하는 것이다. 너와 연리지가 되기 위해 “네 도주의 흔적을 따라/나는 또 피어나고 피어나고/피어나고”를 반복하겠다는 의지는 결과적으로 생에의 의지이며 불멸을 향한 다짐이기도 한 것이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모든 반복은 새로운 시작이며, 삶이 반복되는 모든 순간은 그것을 경험하는 자에게는 항상 새로운 시간이 되는 것처럼 피어난다는 운동성은 바로 불멸의 속성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불멸은 “네 꿈속에서 또 다른 뿌리를 내리”며 현실과 꿈의 경계조차도 넘나들게 된다. 이 지치지 않는 사랑은 사월이 오면 “그리운 그이들도 그 숲에서는 불쑥불쑥 환해져 버렸”(「대책 없는 사월, 크리스 가르노처럼」)다는 역동적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다. “온 세상이 다 웃고 흐드러져도 네가 나를 울지 않으면/우리는 흔적 없이 없는 것들이 되는 거야”(「안녕, 주르륵 랩소디」)에서 보는 것처럼 서로 울어주는 관계 속에서만 존재자가 존재성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역동적 관계성에 대한 지향은 자타불이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종교적 색채마저도 띠게 된다.
- 우대식(시인)

■ 시인의 산문

살다 보면 마음보다 먼저 달려가는 곳이 있다. 흰 바람에 부딪히며 세상 끝을 향하여 내닫는 돌개처럼 자기를 만장처럼 펄럭이고 싶은 날, 이 땅의 끄트머리에 가 서고 싶은 것이다. 수렁수렁 귀 울음 부서지는 그런 날, 불현 듯 사람에 빠져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따뜻한 가슴이 사무칠 때에는 사랑에 풍덩 파묻혀 버리는 것이다. 아직 잉걸불의 詩앗 남아 있다면 독한 홍주 한 드럼 부어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사람, 그 쓸쓸함에 불을 밝히는 관솔이 되어 4막 5장의 장엄한 다비식에 몸을 던져도 좋으리라. 불꽃을 품에 안아도 좋으리라.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시리즈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58964856
발행(출시)일자 2022년 06월 30일
쪽수 132쪽
크기
125 * 205 * 12 mm / 291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시인동네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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