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정보
저자(글) 와타나베 히로시
▶ 지은이_와타나베 히로시(渡?裕)
1953년 치바 현에서 태어나 도쿄(東京)대학교에서 미학예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오사카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현재 도쿄대학교 대학원 미학예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9년 『청중의 탄생』을 저술해 그해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청중의 변천사를 통해 근현대의 음악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냄으로써, 연주와 작품 연구에만 치중하던 기존 음악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현재 음악학 연구자뿐 아니라 현대문화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꼽힌다. 이후로도 예술 전반을 조망하는 깊이 있는 철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작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사 속의 마라』(1990년 작곡가협의회 클래식 부문 신인상 수상) 『일본문화의 모던 랩소디』(2002년 문화청 예술 부문 신인상 수상) 『말러와 세기말 빈』『브루크너 말러 사전』 등이 있다.
▶ 옮긴이_윤대석
1970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같은 대학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1940년대 ‘국민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인하대 BK21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청중의 탄생』은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도중 이효석의 음악관을 객관화하기 위해 우연히 본 참고도서였다. 읽는 재미에 빠져 결국 번역에 이르게 된 건 『국민이라는 괴물』(니시카와 나가오, 소명출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꼭 방황만 하는 것은 아니고, 『식민지 국민문학론』(역락)이라는 전공 도서와 「식민지인의 두 가지 모방양식」 등의 논문도 쓴 바 있다. 연구 영역이 동아시아의 식민주의 담론 분석이기 때문에 근대 국가와 문화를 상대화하는 두 번역서가 외도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은 어떤 장르를 불문하고 번역, 소개하고 싶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논문 〈1940년대 ‘국민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인하대학교 BK21 동아시아 사업단 박사후 연구원, 명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및 국어교육연구소 겸무연구원으로 있다. 동아시아 식민지 담론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식민지 문학을 읽다》, 《식민지 국민문학론》, 《근대를 다시 읽는다》(전2권, 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청중의 탄생》, 《국민이라는 괴물》 등이 있다.
목차
- 한국의 독자들에게
머리말
1장 근대적 청중의 성립
근대적 연주회의 광경
연주회 시스템의 확립
-18세기 연주회의 뒤죽박죽 청중|시민사회의 성립과 연주회의 상업화
고급 음악과 저급 음악
신화화된 ‘거장’들
-날조된 전기|베토벤의 얼굴
‘집중적 청취’
2장 근대적 청중의 동요 : 1920년대
환경을 침식하는 ‘복제’
-‘1920년대전(展)’의 체험
-콘서트홀과 일상 환경
자동피아노의 향연
-재생피아노의 역사적 전개
-재생피아노 광고의 세계
-광고의 도상학
-다채로운 선전 전략
대중문화와 ‘전위’ 작곡가들
3장 근대적 청중의 붕괴
카탈로그 문화의 도래
-‘분중(分衆)’화한 청중
-‘거장’의 탈신화화:원전 악기와 원전판
-생산되는 ‘차이’:이고(異稿)의 범람
-키트(kit)로서의 연주:글렌 굴드
-카탈로그 문화의 장래
상업주의의 대두
-광고 속의 ‘클래식’:캐슬린 배틀 현상
-‘세련됨’으로서의 클래식:기업의 문화 전략
-학문의 상업화
음악의 대중화와 ‘정신성’의 몰락
-스타의 부활:부닌 신드롬
-엘리트 시대에서 대중의 시대로:「제9번」 열풍
4장 새로운 청취를 향해
경박한 청중의 탄생
-말러의 유행
-사티의 유행
-미니멀 뮤직과 ‘환경음악’
음의 복권으로
소비사회 속의 ‘클래식’
-‘우발적인 발생’의 문화
-노상관찰학적 감성이 다다른 곳
증보_7년 후의 ‘포스트모던’
후기
증보판 후기
옮기고 나서
주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1989년 젊은 음악학도 와타나베 히로시의 <청중의 탄생>이 출간되었을 때 일본 음악계는 신선한 충격에 휩싸였다. 일본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했을 당시의 서평에도 쓰여 있듯이, 이 책은 음악을 작품이나 작곡가, 연주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청중의 입장에서 바라봄으로써 음악사에 새로운 시각을 던졌다. 일종의 음악 수용 문화사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생산자에게 모든 의미와 해석의 권한을 부여하는 근대적 ‘저자’ 신화를 처음부터 파기하고, 소비자인 청중이 거꾸로 음악문화를 바꾸는 장면을 포착함으로써 소비 행위가 곧 생산 행위임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나 바흐 같은 작곡가들이 그렇게 많은 곡들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하게 말하면 그들의 음악을 소비하는 귀족들이 매번 새로운 곡들을 요구했기 때문이고, 또한 그들의 음악이 소규모 편성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소비층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후기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시대가 되면, 돈과 명예는 가지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문화를 소유하지 못한 수많은 익명의 부르주아들이 음악의 소비자, 곧 청중으로 자리잡는다. 이제 표를 사서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다수의 소비자가 생기면, 음악의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많은 연주자가 필요한 교향곡이 클래식 음악의 주류를 차지하여 마침내는 말러의 '천인교향곡'마저 등장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청중이 음악문화를 바꾸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의 음악문화는 원래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청중의 탄생과 더불어.
이렇게 근ㆍ현대 음악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냄으로써 연주와 작품 연구에만 치중하던 기존 음악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게다가 서양 음악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기도 해서, 일본에서 음악학 연구자뿐 아니라 현대 문화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근대적 정신성에 얽매인 진지한 청중들이 ‘음 자체’와의 ‘놀이’를 중시하는 ‘경박한 청중’으로 변모하는 과정까지를 구체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풀어낸 <청중의 탄생>. 이 책은 근대적 족쇄에서 풀려나와 자유롭게 음악을 향유하는 대중들의 움직임을 살핀 독특한 사회학적 음악문화론이다.
18세기 ‘뒤죽박죽’ 청중에서 19세기 ‘진지한’ 청중으로
조용한 객석에서 심혈을 기울여 고전적인 명곡을 듣는 청중들, 그러한 연주회의 이미지가 생겨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이든이 시끄러운 청중들에게 ‘질려버렸다’는 유명한 일화나, 한 연주회에서는 “손님들이 너무 시끄러워 가사를 들을 수 없”는 탓에 가사가 인쇄된 종이를 나누어주어야만 했던 일, “개를 데리고 입장하지 마시오” 같은 문구가 붙은 연주회장, 거기에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었던 18세기 연주회장 풍경(195쪽 그림)이나 연주 중인 리스트를 향해 열렬한 환호성을 보내는 여성 팬들을 묘사한 삽화(184쪽 그림) 등은 지금의 클래식 음악 문화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다양한 청중이 혼재해 있던 18세기의 ‘뒤죽박죽’ 청중이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진지한’ 청중으로 바뀐 것은 19세기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 구조의 변화에 기인한다. 산업혁명을 통해 부를 획득하고 시민혁명을 통해 권력을 획득한 부르주아 계급이 연주회를 떠받치는 층에 가담했기 때문에 청중층이 비약적으로 확대된다. 이들은 ‘오락’적인 음악과 ‘진지한’ 음악을 분리해내고, 점차 ‘진지한’ 음악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이 시기 음악을 진지한 ‘고급’ 음악과 오락적인 ‘저급’ 음악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발상은 미와 예술에 관한 근대적 인식론의 확립과 무관하지 않다. ‘정신’과 ‘감각’이 이분법적으로 나뉘고 그에 따라 위계적인 가치질서가 부여되는 19세기 근대적 사유 체계 속에서 음악예술은 ‘진지한’ 음악을 택함으로써 ‘정신’과 관련된 측면을 강화해갔는데, 신흥 계층인 부르주아 청중의 입장에서 이것은 자신들의 음악이 진정한 예술로 평가받는 유일한 길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20세기의 ‘경박한’ 청중, 그 경쾌함
조용한 연주회장에서 오로지 작품에만 몰입하여 정신적인 체험을 하는 청중의 모습은 20세기 들어와서 또 한번 크게 변한다. 새로 등장한 축음기와 레코드가 일회성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연주 문화에 전혀 새로운 국면을 가져온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이 시기의 ‘복제예술’의 출현은 예술의 대중화와 상업화에 속도를 더했는데, 더구나 연주회장이 아니고서는 접할 기회가 없던 음악 분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예술이 미술관과 연주회장이라는 비일상적 공간에서 해방되어 일상성의 영역으로 침투하기 시작함으로써, 20세기의 청중은 비일상적 공간에 가라앉아 있던 19세기의 ‘전통적인’ 예술 감상 형태에 반기를 들고 예술과 일상적인 영역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러한 새로운 흐름과 관련하여 에릭 사티, 글렌 굴드 등을 언급한다. 사티가 사람의 주목을 끌지 않고 가구처럼 그저 거기에 있는 것 같은 곡들을 지칭하는 ‘가구 음악’을 제창함으로써 연주회장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집중적인 감상을 요하던 19세기적인 감상법을 거부했다면, 글렌 굴드는 레코드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려 다양한 스타일로 연주해보고 나중에 그것을 조합하는 독자적 방법으로 현대적인 음악 만들기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는 통상적인 연주가가 통일적이고 이상적인 ‘하나’를 위해 부단히 조탁을 거듭하는 방법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작업 방식이었다.
또한 저자는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이 다시 유행하는 것에 주목하는데, 말러의 음악은 작품 전체의 통일성을 지향하는 대신, 개별 부분을 어떻게 만들고 그에 따라 각 부분에서 어떻게 강렬한 이미지를 줄 것인가에 중점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적인 음의 통일성보다는 각각의 음 자체와 무한한 놀이를 즐기는 청취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청취법을 근대적인 ‘진지한 청취’와 반대되는 ‘경박한 청취’라고 이름 붙인다. 물론 여기서 저자가 사용하는 ‘경박한’이라는 어사는 근대 음악문화의 강요된 무거움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청중의 자유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제 음악은 더 이상 콘서트홀에 갇힌 존재가 아니다. 음악과의 관계가 일상적인 것이 되면 될수록 ‘기능’이나 ‘의미’로 가득 찬 음악의 모습은 부담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의미만이 과도하게 범람하고 음 자체는 멸시되는 음악문화로부터 과도한 의미를 추방하고 ‘음 자체’를 복권하려는 경쾌한 움직임이 생겨난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82180910 |
---|---|
발행(출시)일자 | 2006년 10월 16일 |
쪽수 | 279쪽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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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캄캄할 정도로 낮은 조도로 뒤덮인 객석과 밝지만 은은한 색상의 조명으로 뒤덮인 무대.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제각기 음을 맞춰보면서 특유의 음의 혼돈을 연출한다. 이윽고 단원들도 조용해지고, 지휘자가 나타나면 웅성거리던 청중들은 말을 멈추고 박수를 친다. 지휘자는 인사를 한 후, 두 손을 들고 오케스트라를 향해 첫마디의 시작을 알린다. 이후, 청중석에 앉은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거나 말을 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어쩔 수 없이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조차 아주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청취를 방해하는 일이니 말이다. 연주홀 안의 모든 시설들은 오로지 무대 위에서의 연주에 집중하도록 짜여져 있다. 관객들은 주위의 다른 관객들이 아니라 오로지 연주만에 집중해야 하고, 따라서 예술작품과 오로지 개인으로서만 만나야 한다. 이 때 예술작품은 거의 경모되는 어떤 것이다.
청중에 대한 이러한 요구는 상당히 어려운 적응과정을 강요한다.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문화적 수준과 소양이 낮은 사람으로 폄하되고, 다른 청중들의 깔보는 듯한 찌푸린 눈길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수용방식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극도로 인위적이다. 특수한 관계방식에 대한 정보와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결코 편할 수 없는 것이 청중의 '바람직한' 태도다. 이 '바람직함'은 대단히 위계적인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다. '고급' 문화에 맞는 태도방식에 대한 익숙함은 하나의 신분적 표징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청중에 대한 이런 '훈육'은 왜, 어떻게 가능해진 것일까?
근대적 의미에서의 예술, 다시 말해 예술외적인 목적에 종속되지 않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자적인 목적을 지니는 고유한 영역으로서의 예술이 성립된 시기는 대체로 18세기 말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예술이 수공업적 기술과 구별되어 다른 보다 높은 정신적 가치를 지니는 영역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더 이전인 르네상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좀 더 정밀하게 따져보면 고대에도 이미 예술이 단순한 수공업과는 달리 좀 더 고급의 인간능력의 산물로 취급되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일이지만, 예술이 사회적인 규모에서 도덕, 학문, 교육, 종교 등이 부여하는 과제로부터 놓여나이런 음악의 수용양식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아니, 극히 인위적인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위 '자율적'인 영역으로 성립되고 제작, 수용되기 시작한 것이 18세기 말이라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이론이 없다.
이렇게 예술이 자율적 영역으로 성립되면서 예술의 산출과 수용의 양상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에는 공동의 모임에서 소리내어 읽던 독서는 이제 개인의 묵독으로 바뀌었고, 주로 시장에서 저급한 오락의 기능을 담당했던 연극은 극장 안으로 들어와 소위 '제4의 벽'을 구축하여 집중적인 관람을 가능하게 했다. 미술 역시 미술시장 및 미술관의 성립과 더불어 종교적, 세속적 과제로부터 벗어나 미적 가치 자체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에 음악에서는 어떻게 일어났으며, 최근에는 또 어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상술하고 있는 책이다.
매우 대중적이며 쉽게 쓰여져있는 이 책은 근대적 청중의 성립에 대한 묘사로부터 시작된다. 이 청중이 성립되기 이전, 음악은 다른 예술장르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실용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데 사용되었다. 교회에서 신앙심을 키우고, 귀족들의 파티에서 흥을 돋우고, 춤을 반주하고, 식욕을 돋우고, 귀족들을 칭송하는 것이 음악이었다. 그러나 음악회라는 것이 성립된 후에도 한참동안 음악회는 일종의 파티이자 사교의 장이었다. 청중들은 적어도 음악에 대해서만큼이나 주변의 관객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문학과 달리 감각적 소재만을 취해야하는 음악은 모든 예술 장르들 가운데 가장 저급한 것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예가 칸트다. 칸트에게 음악은 정신성이 결여된, 단순한 쾌적함만을 제공해줄 뿐인, 따라서 가장 저급한 예술이었다.
18세기 말 이후 음악은 이러한 관념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음악을 정신의 표현으로 간주하는 소위 '진지파'가 기존의 '오락파'에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탁월한 음악가들은 '거장'으로 숭배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음악 자체도 고급음악과 저급음악으로 갈라졌고, 저급음악으로 분류된 음악은 차츰 콘서트홀에서 배제되었다.
'진지파'들은 음악이란 감각적 음의 향유가 아니라 음악의 구조적 측면을 읽어내어 이로부터 어떤 정신적 의미를 간파해내는 작업으로 간주했다. 음악에서 음은 이제 단지 표면만을 구성할 뿐이었고, 그 배후의 정신성만이 진정하고 품위 있고 고상한 향유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렇게 '거장'에 의해 창조되어 '진지하게' 수용되어야 하는 음악에 대해 청중은 숭배와 경건의 태도, 즉 거의 종교적인 태도를 보여야 했다.
저자는 이러한 음악의 수용방식이 1920년대에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벤야민이 지적했듯, 예술복제시대가 시작된 것인데, 음악에서는 축음기, 라디오, 재생피아노 등이 새로운 '하이테크' 매체로 등장한 것이다. 이로써 음악은 한결 더 접근성이 커졌으며, 음악의 신전이라고 해야 할 콘서크홀을 빠져나와 언제 어디서나 수많은 대중에 의해 청취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음악이 일상에서 격리된 위상을 벗어나 다시 일상에 접근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2차대전이 끝난 후에 더욱 강화되었다.
이제 음악청취는 완성된 작품의 참된 의미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무수하게 다양하게 연주될 수 있고, 일체의 규범적 수용방식을 벗어난 자유롭고 개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된 상업화의 경향이 음악계에도 침투하여 음악은 그 자체로서 고급스런 광고의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일상을 장식하는 소품이 되기도 하고, 영화의 한 요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19세기의 진지파가 주장했던 '순수관조'의 수용방식은 다시 해체되어 그 이전의 실용적 음악관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음악은 소수의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간주된다. 자율적 예술은 다시 오락과 유희의 대상으로 대중에게 돌아오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음악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가역적인 포스트모던한 경향이다.
대강 이런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자율적 예술의 성립과 해체의 과정 자체는 그간 많이 논의된 바 있으므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책에서는 그 과정에 음악의 수용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났는지를 매우 흥미롭고 전형적인 사례들을 통해 확인해보는 재미가 있다. 저자의 필체는 매우 평이하며, 독자를 가르치려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성실한 탐구결과를 짜임새 있게 보고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많은 정보를 취하면서 재미도 느낄 수 있으니, 좋은 대중서가 갖추어야 할 미덕들을 다 갖추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물론 자율적 예술이 불가역적으로 해체되고 있다는 저자의 견해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오히려 더 불가역적이었던 것은 자율적 예술의 성립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자율적 예술의 성립 후에도 타율적, 실용적 예술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예술시장을 양적으로는 언제나 지배해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근래에 클래식 음악이 전통적인 장을 벗어나 다양하게 활용되고 다양한 수용방식들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고 해서 자율적 예술의 장 자체가 와해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저자는 이 책이 발표된 지 7년 후에 덧붙여놓은 후기에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표명하고 있다. 이 책의 초판이 1989년 발표되었으니, 포스트모던이 마치 세상을 뒤바꿀 것이라는 과장된 생각이 한참 지식계를 강타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 당시의 성급한 흥분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상의 유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잘 정리하여 전해주는 구체적 정보들의 가치는 손상되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아가 예술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