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래치'라는 동네 음반가게에서 일하는 서른 살 문턱의 남자 다니엘은 어느 날 여자친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녀와 쿨하게 헤어진다. 모델 같은 여자들을 만날 완벽한 준비가 된 다니엘. 하지만 그는 곧 '독신 사이클'에 들어서고 마는데…. 다니엘의 이야기와 함께 사랑에 빠지는 것을 피하는 바람둥이 알렉스, 아버지가 되길 두려워하는 니콜라 등 서른 살 소년들의 좌충우돌 성장기가 펼쳐진다. [양장본]
작가정보
저자 <b>스테판 동피에르</b>(Stephane Dompierre)
스테판 동피에르는 부르주아 친구들에게는 건달로 행세하고, 건달 친구들에겐 지식인으로 행세하는 좋은 집안 출신의 건달이다. 냉혹하며, 파렴치하면서도 부드럽고, 익살스러우면서도 신랄한 관찰자인 그는 젊은이들의 충동과 문제의식 등 자신과 같은 세대의 사람들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이야기하고 있다. 항상 활기차고 지적이며 자조적인 그의 문체는 깊이가 있다. 퀘벡예술문화위원회의 장학생인 그는 음악을 전공하다 글쓰기로 전향했다. 그의 두 번째 소설 《Mal eleve(망나니)》(2007)은 영화화될 예정이다.
역자 <b>정미애</b>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벵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불문학 석사), 한국외국어대학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양귀비꽃 여인》《그해 겨울엔 눈이 내렸네》《누가 랭보를 훔쳤을까》《로라에게 생긴 일》《마지막 수업》등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벨기에 루뱅 대학교에서 불문학 석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에서 통번역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청평 호명산 아랫마을에서 프랑스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고, 틈틈이 정원과 텃밭에 나가 꽃과 채소를 가꾸며 살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다양한 소설과 어린이 책, 그리고 폭넓은 교양서적들을 번역했다. 그중 어린이 책으로는 『요술쟁이 젤리 할머니』, 『알록달록 공화국』, 『어느 날 내게 붉은 노트가』, 『나만의 비밀 친구』, 『로라에게 생긴 일』, 『난민들』 등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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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오늘 나는 잘한 일이 하나 있다. 소피를 걷어찬 것이다. 불볕더위의 7월 12일, 오늘은 정말 멋진 날이다. 얼마나 훌륭한 결정이었는지! 늘 뒤죽박죽인 내 머리통에서 그렇게 멋진 발상이 떠오르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꼬박 한 달 나흘 동안 이 문제를 두고 고심하고, 분석하고, 온갖 여성지에 실린 연애테스트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체크해보았다.
(15쪽)
가여운 내 사랑, 너는 내가 정확하게 그로부터 한 달하고 나흘 뒤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니?
(22쪽)
솔로가 되고부터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섹스 파트너를 찾아 헤매는 것 같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건 사랑스런 여자와 다정하게 따뜻한 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날 그리워하는 여자가 없다는 확신이 들자 따끔거리는 검은 털외투 같은 절망감이 몰려온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다. 아무도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긴 누가 병적이고 발정난, 절망에 빠진 솔로를 만나고 싶어할까?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다. 조용한 내 원룸으로 돌아가 아무도 만나지 않는 거다.
(72쪽)
“따님이 이미 이 음반을 갖고 있으면 바꿔드리죠. 그런데 아마 그럴 리 없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아주 간단하죠. 만일 따님께서 파란색으로 염색한 짧은 머리라면 펑크스타일 비슷한 걸 드렸을 테지만 따님께서는 가정에서 귀염 받으며 곱게 자란 여학생으로 아직 반항기로 접어든 것 같지 않으니, 보이 밴드가 적격이죠.”
(112쪽)
섹스 없이 보낸 140일. 내가 저지른 어리석은 짓의 결과다. 결별도 어떻게 보면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결코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119쪽)
“아빠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어떻게 아는 걸까?”
솔직히 멋진 질문이다. 나는 빙산 위에 있는 아기 물개의 커다란 눈을 본다. 그는 정말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걸 보니 정말 힘든가 보다.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자문을 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라는 사람이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고, 아빠가 되기를 기다리는 사람과는 한참 먼 모델이기 때문이다. 셀린 디옹이 슈퍼모델이 아닌 것처럼.
(130쪽)
“그런데 넌 괜찮은 거야?”
나는 내 고민을 애써 감추며 온순하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내 문제가 아니라도 그는 충분히 골치 아파하고 있다. 우리는 진짜 사나이들이다. 사나이란 자질구레한 감정 따위를 떠벌리지 않는 법이다. 우리에게는 사회에서 유지해야 할 퇴화한 영장류의 절대적인 역할이 있다. 나는 그에게 권태로운 직장 얘기는 물론이고, 짓누르는 고독도,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으로 서서히 잠식해 들어오는 지독한 공허감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자도 없고, 누군가 카페에서 책을 건성으로 읽으며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나이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자랑을 늘어놓으며 친구들을 화나게 할 사람도 없다고, 아무도 날 생각하지 않고, 그 말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거는 사람도 없다고, 아무도 날 죽도록 사랑하지 않고, 날 만지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없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133쪽)
영화 보러가기 전에 우리는 라파리스에 들러 소스가 흘러넘치는 커다란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퀘벡 영화치고는 제법 괜찮아 보이는 영화를 만장일치로 선택한다. 사실 우리 셋 모두 퀘벡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먼저 연민을 자아내는 낙오자들은 TV뿐만 아니라 책과 퀘벡 영화에서 질리도록 보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 인물들은 하나같이 구 몬트리올이나 플라토 몽 루아얄의 창고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사는데, 그건 도저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한마디로 그곳의 집세는 무지 비싸다. 그들은 대부분 초보 사진가나 초보 작가로 직업 자체는 쿨해도 다들 초보 수준이라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원룸 월세를 낼 정도의 월급을 겨우 받을 뿐이다.
(137쪽)
내가 매장 뒤쪽에서 소니의 카탈로그를 찾으려고 뒤적거리는데 갑자기 음악이 멈춘다. 자연재해가 다가오는 걸 감지한 동물의 이상한 침묵이 이어진다. 마리 앙드레의 침묵은 전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나는 문 뒤에 숨어서 눈을 치켜뜨고 무슨 일인지 살핀다. 내 예감이 맞았다. 재해가 틀림없다.
내 옛 애인이다.
(144쪽)
출판사 서평
캐나다 몬트리올에 사는 다니엘 J는 ‘스크래치’라는 동네 음반가게에서 일하는 서른 살 문턱의 남자. 어느 날 여자친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별을 고한다. 6년 된 여자친구와 쿨하게 헤어지고, 모델 같은 여자들을 만날 완벽한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쌓아놓은 콘돔은 써보지도 못하고, ‘독신 사이클’에 들어서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저축한 돈도 없고, 미래 계획도 없는 자신의 처지에 우울해 한다. 다니엘의 친구들도 마찬가지. 사랑에 빠지는 것을 피하는 바람둥이 알렉스, 아버지가 되길 두려워하는 니콜라의 이야기와 함께 치기 어린 서른 살 소년들의 좌충우돌 성장기가 펼쳐진다.
서른 살 그 남자의 속마음이 궁금해!
다니엘의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여자를 꼬셔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고, 아직 결혼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주류 사회가 말하는 진짜 직업을 갖고 싶지도 않고, 그냥 좋아하는 음악이나 들으며 레코드점 ‘스크래치’에서 손님들에게 적당한 음반을 골라 주는 것이 전부다. 약간은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면서 주류가 아닌 삶을 지향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지도 않다. 빨래 해주는 애인과 결혼하고, 적당한 집을 사서, 적당한 시기에 아이를 낳는 것이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일까? 새로운 사랑 앞에서 거절당할 것을 두려워하며 고백하지 못한 자신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일까?
끊임없이 어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문하면서도, 20대의 치기만큼은 버리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나이 서른 살. 미성숙한 자신에 실망하면서도, 어린 소년 같은 감수성과 장난끼는 어쩔 수 없는 나이. 서른 살 남자들이라면 공감하고, 그 남자들의 속마음이 궁금했던 여자들에게 해답을 주는 재기발랄한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 《스크래치!》이다.
캐나다의 닉 혼비, 스테판 동피에르!
이 책은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 작가 스테판 동피에르의 데뷔 소설이다. 2005년, 퀘벡 출신의 불어권 신인 작가들에게 주는 아르샹보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작가의 취향을 보여주는 작가들과 문학 작품들, 대중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이 주인공 다니엘의 입을 빌려 소개되고 있다. 또한 음악을 전공했던 그의 경력을 짐작케 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작가의 독특한 비평과 함께 중간중간 언급되어 소설의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영국 작가 닉 혼비만큼이나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뽐내고 있으면서도, 더 섹시하고 감각적인 문장들은 스테판 동피에르만의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2006년 캐나다의 “북 배틀”이라는 행사에 선정되기도 했다. 캐나다 공영방송인 CBC에서 주관하는 이 행사는 매년 책 5권을 선정하여, 유명인사로 구성된 패널들이 각각의 책을 맡아 좋은 점을 설명하고, 논쟁을 하는 행사다. 《스크래치!》는 캐나다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캐나다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공감하는 대중문화 코드를 발견할 수 있으며, 사랑과 성숙에 대한 보편적인 고민은 동시대 한국 젊은이들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서평
전혀 우쭐대지 않고, 웃음을 주며, 유머가 가득한,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비밀스런 불안감을 고백한 책. 매우 마음에 드는 책이다.
-크리스티앙 데묄, 르드부아르Le Devoir
역동적이고, 반짝이며, 신선한, 새로운 목소리이다.
-미셸 베지나, 이시Ici
스테판 동피에르는 재능이 넘친다. 그의 첫 소설은 모든 의심을 날려버리며 특유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그의 글은 활기차고, 정확하고, 역동적이며, 뛰어난 솜씨로 독백과 대화를 끌어낸다.
-위그 코리보, 레트르 퀘벡쿠아즈Lettres quebecoises
기본정보
ISBN | 9788981339104 |
---|---|
발행(출시)일자 | 2009년 02월 20일 |
쪽수 | 256쪽 |
크기 |
127 * 187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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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 다니엘 J. 남자. 30세. 캐나다인.
[발췌]
*이 집에서 잠을 자는 건 말도 안 되겠지. 나는 베낭에 들아갈 만큼의 옷가지들을 챙겨 넣고, 약국에 들러 신문과 초코렛 맛 나는 비타민 음료 하나를 산다. 그리고 아침식사가 나오는 길모퉁이의 모텔로 간다. 빈방이 딱 하나 있다. 간단히 체크인을 하고 나자 주인이 별 뜻 없이 어디에서 오는 거냐고 묻는다. 나는 주소를 보여주며 손가락으로 아파트를 가리킨다. 그러자 그녀가 나를 미친 사람처럼 대하는 게 느껴진다. 찜통 더위에 홈드레스를 단단히 여며 입고도 추운지 팔짱을 낀 채 내가 방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경찰에 신고하진 않겠지. 애인을 매몰차게 차버린 수상한 남자가 지금 103호에 있는데, 괜히 쓸데없는 시도는 하지 말고, 보는 즉시 총을 쏘세요. 위험한 인물이 틀림없어요.
*매트리스 아래 리모컨을 끼워 넣는 데 성공한다. 2초마다 TV화면이 바뀐다. 채널이 모두 44개, 88초면 한 바퀴 돈다.
*아름다움은 작고 귀여운 단점들의 합작품이다.
*관타나메라 : Guantanamera. 서정성이 깃든 아름다운 노래 가락에 쿠바 독립의 아버지인 호세 마르티의 시를 원전으로 한 민요. 라틴 아메리카는 물론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노래.
*사랑이 뭔지 내가 알 게 뭐야. 날 잘 알면서 그래. 공동 은행계좌, 영혼의 동반자, 함께 늙어가고 뭐 이런 거 나 안 믿어. 어떻게 한 여자와만 내 침대에서, 침대 주위에서, 침대 옆에서, 침대 밑에서, 내 비누거품 속에서, 내 다리 안에 넣고 지낼 수 있는지 상상할수 없다니까. 사랑 같은 거 난 몰라!
*뉴욕. 이제 도시는 우리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돈은 도시의 것이다. 가방은 '셰비 샤크'라는 궁색한 호텔 로비에 맡겨두었다. 빨리 방에 들어가 샤워할 수 있기만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별 4개짜리 호텔로 간다. 가죽 소파에 앉아 조용히 신문을 읽는다. 부자처럼 자세를 조금 곧추세우고 앉아 있으면 호텔 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크로와상과 머핀을 맛볼 수 있다. 게다가 이 호텔은 화장실도 깨끗하고 주머니에 챙길 만한 비매품들이 쌓여 있다. 우리는 주머니에 그것들을 두둑하게 챙긴다.
*빌리지 보이스 : Village Voice. 뉴욕 최대 규모의 무가지 신문. 진보적인 목소리를 대변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하여튼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서른 살의 나이에 저축한 돈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근사한 미래 계획도 없다.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음반가게에서 일하기 때문에 골치 아픈 결정을 할 것도 없다. 아이들을 키우기에는 부족하겠지만, 착취당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월급을 받고 있다. 너무도 적당한 돈이 있을 뿐이다. 멀리 휴양지 같은 곳에 몇 달간 훌쩍 떠나 인생을 되돌아보며 지낼 만한 충분한 돈은 없다. 직장 때문에 한 곳에 붙들려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내 이력서에 변화를 줄 때가 온 건가? 새로운 직업을 찾아봐야 하나? 그래, 그런데 어디서? 아는 거라고는 음반뿐이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사람들에게 음반을 파는 일뿐이다.그런데 문제는 음반들이 지겨워진 것이다. 그 음반들을 사는 사람들에게 싫증이 난 것이다.....제기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나는 음반을 음반을 팔 줄 알고, 시도 때도 없이 영화관에 앉아 있기를 좋아하고, 책을 동시에 두세 건 펼쳐놓고 읽는다. 영화비평가? 아니다. 그건 내 취향이 아니다. .....내가 대체 뭘 잘할 수 있을까?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그러니까 청소년기에는 어른들의 틀에 박힌 일상이 나를 잠식하기 전에 내가 뭘 했었지?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가 회사에서 가져다주는 연습장마다 그림으로 채웠던 기억도 있다.
*방학 때면 하루에 한 권씩 읽었다. 비 오는 날이면 두 권까지도 읽어치웠다. 도서관 사서들 모두 나를 잘 알았고, 새 책이 도착하면 늘 내게 연락해주었다. 그렇다고 책으로 뭘 할 수 있지? 교사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들 만큼이나 흥미가 없었다. 어설프게 문학 쪽을 기웃거리다 결국 젊은 나이에 스크래치에서 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스무 살에는 음반가게에서 일하는 게 문학교수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넌 괜찮은 거야? 나는 내 고민을 애써 감추며 온순하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도 그는 충분히 골치 아파하고 있다. 우리는 진짜 사나이들이다. 사나이란 자질구레한 감정 따위를 떠벌리지 않는 법이다. 우리에게는 사회에서 유지해야 할 퇴화한 영장류의 절대적인 역할이 있다. 나는 그에게 권태로운 직장 얘기는 물론이고, 짓누르는 고독도, 뒤죽박죽이 된 머리속으로 서서히 잠식해 들어오는 지독한 공허감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자도 없고, 누군가 카페에서 책을 건성으로 읽으며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나이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자랑을 늘어놓으며 친구들을 화나게 할 사람도 없다고, 아무도 날 죽도록 사랑하지 않고, 날 만지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없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른이 된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결론도 나지 않는 주제를 놓고 한 시간도 넘게 얘기를 주고받다 자러 가기로 한다.
*나는 느닷없이 새 옷이 미친 듯이 사고 싶어졌다. 섹스 때문이겠지. 섹스에 다시 빠져들자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지고, 매력적이라 느껴지면서 더 잘 보이고 싶어졌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랄 뿐. 니콜라가 새 옷을 사는 데 따라가주기로 한다. 나는 얼마 있으면 아이가 옷들을 더럽힐 테니 혼자일 때 실컷 멋진 옷이나 사입으라고 충고한다. '잘 보이고 싶은'시절은 곧 막을 내릴 테니. 앞으로 여자아이들은 그를 매력적인 남자라기보다 다정한 남자로 볼 거라고. 친절하다고 생각하겠지. 성의 포식자가 아니라 따뜻한 감동의 시선을 지닌 아빠의 모습으로 보겠지. 그런데 멍청하고 더러운 문둥병 환자 같은 입을 닥치라는 그의 말투로 미루어 그는 여전히 포식자로 남아 있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가 외투를 걸치고 있는 내 팔을 주먹으로 한 대 쳤다. 셔츠 두 장과 부츠를 너무 비싸게 사서 가슴이 쓰린 것보다 더 아팠다. 시니컬한 것과 신용카드는 불가분의 관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