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혹은 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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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근 시인의 작품은 외형적인 모습은 이미지를 중심으로 표출되었고, 내용적으로는 식물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의 작품은 간결한 이미지로 절대 미학을 추구하는 예술지상주의에 닿아 있다. 시인은 우선 자연 앞에서 순수해진다. 「( 먼 목화밭」)
이석근 시인의 공간에는 늘 꽃이 있다. 여린 감성으로 세상과 만난다. 한 마디로 이미지를 추구하는 시, 다치기 쉬운 맑은 영혼이 흐르는 작품을 쓴 시인이다. 시인의 초기 시는 낭만주의와 이미지즘 사이에 놓여 있는 듯 보인다. 세월이 흐른 뒤에는 차츰 현실주의에 가까운 모습을 갖기도 한다.
생활고로 바쁜 석근 형은 과작이었다. 1974년 등단 후 한 권의 시집 『장미의 흔적』만을 상재하고 이제 유고 시집을 만들려 하고 있으니 평생 두 권의 시집을 남길 뿐이다. 맑고 고운 감성으로 더 많은 작품을 남겼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누가 곁에 있어 그의 작품에 박수쳐 주었다면 더욱 신나서 더 많은 생산이 이뤄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과 타협하려 않는 시인의 청청한 성격이 만든 길인데 이제는 남겨진 작품이 더욱 빛나 사람들의 가슴에 내려 별처럼 반짝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총서 (20)
작가정보
목차
- 차례… 4
自序… 3
제 1 부
바람개비…14
저 은하수…15
강변 아파트… 16
억새…18
下端抒情… 19
다시, 자갈치에서…20
풍경… 22
아침에…23
다대포 시편…24
밤하늘…25
명동성당을 오르며…26
길…28
신선대…29
넌센스…30
헌화를 위한 판타지…31
제 2 부
먼 목화밭…34
병영역…35
섬은 흐르고 싶다…36
벚꽃 소풍…37
銀河直諭…38
갈대…39
세잔느城…40
나비몽상…41
대낮…42
편지…43
고드름…44
山雲…45
가을山行…46
金井山人… 47
제 3 부
꽈리꽃…50
소래 개펄…51
그 베로니카와 사랑과…52
歌客…54
헬리콥터…55
쉬는 시간…56
童心으로-산동네…57
이슬소리…58
탄광 마을에 내리는 눈…59
달팽이 가고 있다…60
무지개…61
서울 아이…62
옛 이야기…63
비를 보며…64
전화…65
렛ㆍ잇ㆍ비ㆍ미…66
바다…67
누가 교회 뒷뜰에서…68
눈동자…70
아내의 그림책…71
어느 인디언 소녀에게…72
휘파람새…73
雪行…74
안압지…75
率居의 새…76
童心으로-봄 전철…77
막대 뜀틀…79
제 4 부
빈 들에 서서…80
헌화를 위한 몇 마디…81
등대…82
外人村…83
가을나비…84
포인세티아…85
들길에서…86
인상…88
여백…89
바다에서…90
언더라인…91
에추드에서…92
무늬…93
언더라인ㆍ2…94
바다의 肖像…95
盞, 이미 늦은…96
샘…97
언더라인ㆍ3…98
언더라인ㆍ4…99
삽화…100
距離…101
수푸루지周邊…102
모래시계…104
그 노래…106
제 5 부
시ㅅ病과 藥…108
그 무렵…109
물에 쓰다…110
前夜, 혹은…111
U턴…112
뭐라고?…113
순간…114
가을 노래…115
메시지…116
슬슬…117
팽목항, 그 해…118
비망록ㆍ1…119
이런 詩…120
10년…121
봄, 편지…122
여로…123
단장…124
비가…125
근황…126
고독…127
ㆍ발문/맑은 사색이 깃든 이미지ㆍ강영환…128
ㆍ책 끝에/먼 消息ㆍ이석근…143
ㆍ이석근 시인 약력…144
책 속으로
바람개비
들녘,
바람개비가
무한 공중을
돌고 있다
들꽃처럼
바람에 꽂혀 있다
〈 1998 〉
저 은하수
골목마다 눈발이 비치고
문득 쓸쓸한 浪人이
어느 밤하늘에 흘린 손풍금
그 은빛 건반 위로 눈발이 비치고 비치고
〈 1995 〉
강변 아파트
한강 하늘에 노을이 앉는다.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늘
스핑크스나 피라밋을 생각하지만
빈터엔 아직도
아이들의 노는 소리
바람같이 휩쓸려서
내 아파트의 썰렁한 계단에
지난 겨울 흘린 기침소리와 함께
우웅 떠다닌다.
사방으로 기어드는 어스름을
무딘 가슴이
너도 나도 쏟아져 내리는 강변로
한길은 언제나
끝없이 긴 불빛의 띠가
몇 그루 미류나무를 따라 흐르고 있다.
별빛 속에서도 출렁이는 아파트아파트아파트
아파트
아, 우리들 슬픔의 배.
내일 아침은 눈 속에 떨어져
채 썩지 못한 낙엽을 보리라.
〈 1982 〉
억새
온 키를 흔들며 억새는
날빛 깊은 하늘에 부시도록 하얀
너울을 하늘거리고 있네
바람 짓는 허공을 부비며 있네
아니 떠나는 뒷모습같이
언덕으로 산언덕으로 희미한 여운을
한없이 풀어놓고 있네
부시도록 하얀 너울을
억새는 깊은 하늘에 적시며 있네
구름까지 온 키를 흔들며
아련히 가고 있네
〈 1990 〉
下端抒情
자귀꽃 핀 하단에 가면
그대 또한
그리울 것입니다.
강촌 가까이
먼지 낀 산책로 초입에 서 있는
꽃 핀 자귀나무
저 홀로 꽃 필 때에.
강변 찻집앞 갈대 수풀을
무작정 흔들어 쌓던 바람, 또는 햇빛.
알함브라의 추억의 선율 같은…
자귀꽃 핀 하단에 가면
그대 또한
아득할 것입니다.
〈 1998 〉
다시, 자갈치에서
물새 이리저리 날고
소금때 앉은 해안의 석벽에 부딪치는 파도는
하얗게 꼬리를 세운 채
가드레일 같은 방파제를 달려가고, 걸려 넘어질 듯이 달려가고
지난날의 스산한 이별 노래의 제목처럼
영도다리… 구름 뜬 철제 난간 사이로
도시의 머뭇머뭇거리는 지친 그림자들이 보이고,
집채만한 화물선들이 닻을 내리고 있는 선착장 부근
샛골목 한쪽으론
꺼-음은 해조음을 내는 바다 냄새
어느새 어둑어둑해지는 선창가
물 위에 줄지은 수상 목로집의 긴 목조회랑으로
아, 귀로의 불빛이 샐 때
자갈치 앞바다는
먼 파도를 헤엄치며 건너 온 도깨비불들이
어슬렁 어슬렁거리면서 떠돌고
떠돌아 다니고
〈 1996 〉
출판사 서평
저기 보이지?
빈 들 저쪽
누렇게 낡은 목조집 하나 보이지?
저게 우리 집이야
헌 유리창이 저절로 푸르고 맑은 것은
주인인 내가 집을 비웠기 때문이야.
빈 들이 속 없는 바람에 노래하는 것을 들었는가.
묵은 언약이 들을 부는 바람에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는가.
그대 눈물 같은 이름.
떨어져 나간 소리는 다 어디로 묻히는가.
빈 들 저쪽
누렇게 낡은 목조집 하나 보이지?
-「빈 들에 서서」 전문
이 시의 정조는 쓸쓸함이다. 빈 들에 서 있는 목조집을 가르킨다. 저게 우리 집이야. 목조집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정경만으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편안함을 준다. 빈 들과 낡은 목조집이 주는 황량함에 더하는 쓸쓸함은 헌 유리창이 맑고 푸르게 비쳐보이는 것은 그곳에 내가 부재하기 때문임을 역설한다. 나의 부재가 집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역설은 내가 집에 대하여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함을 보인다. 자신이 주인이면서 집을 비워야 집이 더욱 빛날 수 있다는 의미는 목조집이 아직은 자신의 집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함을 뜻하던가 자신이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을 둘러싼 빈 들이 속없는 바람에게 노래해주고, 묵은 언약이 들에 부는 바람에 떨어지고 그런 소리들을 나는 듣고 있는데 자네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는가고 묻는다. 그 소리들은 눈물 같은 이름이며 알 수 없는 곳으로 가서 묻히고 만다. 빈 들이 가져오는 쓸쓸함의 정조는 낡은 목조집을 더욱 아픈 현실 속으로 끌어 온다.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나와 목조집을 동일시한다. 대화의 상대에게 목조집을 가르키며 보여주고 있지만 실상은 자신의 외롭고 쓸쓸한 부재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런 유형의 작품이 이석근 시인이 후반에 현실과 만나는 접점임을 보여준다. 물론 시적 화자를 등장시켜 간접 화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지만 독자들은 누구나 쉽게 시적 화자가 바로 시인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인은 멀리 빈 들에 서 있는 낡은 목조건물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석근 시인은 1974년 《풀과 별》誌로 등단했다. 이 시전문지는 제호가 말해 주듯이 서정성을 위주로 한 작품을 많이 실었고 또한 신인 배출도 서정시를 위주로하는 시인을 배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잡지다. 좋은 시인으로 분류되는 시인들이 많이 배출된 잡지다. 참여와 순수의 이분법이 팽배하던 70년대에 자연과 꿈의 세계를 추구하는 이 잡지는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준 이후 이 잡지는 단명하고 만다. 시인에게 출신 잡지는 친정과 같다. 친정이 사라진 뒤 시인은 다시 1978년 《시문학》지로 문단에 다시 나오는 요식행위를 한다. 새 거처로 친정을 마련한 것이다.
이석근 시인은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시인들 간에 교류도 많이 하지 않았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나 작품을 들고 잡지사를 찾아다니는 성격이 되지 못해 외톨이로 자신의 세계에 웅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참에 나의 편지를 받고 반가웠을 것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별 볼 일 없는 남쪽 시인의 편지를 받고 반가웠으며 오래 간직했으리라 본다
추천사
아내의 그림책은 날마다 새롭게 채색되어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아내의 그림책이 눈물로 깊어져도 나는 꼼짝할 수가 없구나.
아내의 그림책은 내 손바닥보다 늘 크다
슬픔을 짓씹는 꽃나무가 아내의 그림책 속에서 자라고 있다.
아내가 잠들 때 나는 아내의 그림책 속에 들어간다.
뿌리 깊은 슬픔의 가지를 잘라야지.
아내의 그림책이야말로 폐허다.
폐허에 새로이 빛나는 꽃나무를 어쩌나.
-「아내의 그림책」 전문
시적 화자는 아내의 그림책을 들여다 본다. 늘 보는 그림책이지만 그림책은 날마다 다른 색깔로 채색된다. 새롭게 채색되는 건 슬픔으로 깊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깊어지는 슬픔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내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는 슬픔의 크기다. 슬픔으로 가득 찬 그림책이지만 아내는 그 슬픔을 짓씹는 꽃나무를 키운다. 어쩌면 작은 행복일지도 모르는 꽃나무는 자라는 아이들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아내가 잠들었을 때 나는 그림책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슬픔의 가지를 잘라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렇게 마음 먹고 보니 아내의 그림책이 폐허로 보인다. 그동안은 세상이 폐허로 보였는데 아내의 그림책 속에는 현실이 놓여져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더군다나 폐허 속에 새로운 꽃나무가 빛나고 있으니 그 꽃나무를 자를 수는 없다. 이를 어쩌나 스스로 낭패감에 빠진다. 폐허 속에서도 꽃나무를 발견하는 화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긍정적임을 보여준 것이다. 폐허 속에도 버릴 수 없는 꽃나무와 같은 희망이 존재함을 찾은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8953742 | ||
---|---|---|---|
발행(출시)일자 | 2025년 01월 20일 | ||
쪽수 | 144쪽 | ||
크기 |
125 * 206
* 13
mm
/ 323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가슴에 내리는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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