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물결 건너 쪽빛 바람

정은재 시집

정은재 저자(글)

책펴냄열린시 · 2024년 07월 25일

책 소개

정은재 시인은 자연과 친밀하다. 그것을 일러 자연과내통한 관계라고 말하고 싶다. 대상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거나 친하지 않으면 내통할 수가 없다. 정은재 시인은 그저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선 대상과 함께 노는 관계다. 그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정도는 알아야 내통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마음을 터놓지 않거나 잘 알지 못하면 함께 놀 수가 없다. 정은재 시인의 작품들은 존재론적 방법론에 중점을 두면서 세 가지 측면의 사유를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첫째는 자연과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그려낸 시편들이다. 이는 자연의 재현이나 모방을 넘어 자연과 함께 생을 공유한다. 자연 바라보기가 아닌 자연과 함께 공존한다. 그리고 같이 노는 일이다. 자연과 친하지 않으면 함께 놀 수 없다. 그만큼 정은재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자연들은 시인과 각별하게 친한 모습으로 불려간다. 두 번째는 이웃과의 함께 어울림이다. 이는 앞서의 자연과 함께 놀 수 있음의 연장선으로 보아도 무관하다. 자연 대신에 이웃이나 사람을 대치하면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세 번째는 사찰과 사찰 분위기에 대한 동경이다. 이는 종교적 의미의 접근이라기보다는 사찰이 가진 이미지에 빠진 듯한 느낌이다. 사찰의 분위기와 사찰에 모이는 사람들의 정신적 깊이에 매료되어 스스럼없이 자아를 투여해 보고 싶은 정서로 다가서고 있음을 본다. 그러기에 시인은 불교 정신이나 종교적 관심보다는 외형으로 드러나는 풍경에 더 열광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정은재

시인 약력
경남 남해 출생
2022년 《문학도시》 신인상 수상 등단
부산시문인협회 회원
그림나무 회원
새부산시인협회 회원

목차

• 목차…4
  자서…3
  
  제 1 부
  
  둥근 밥…11
  푸른 해무…12
  목마 날다…14
  홍시 터졌다…16
  달빛에 눈물을 닦고…17
  산은 나를 업고…18
  달콤한 오후…19
  사막은 축제 중…20
  부재중 전화…22
  돌부처…23
  합장…24
  남해도…26
  갱년기…27
  유리구슬…28
  침묵…29
  어린 벗들…30
  달빛 차, 공허…32
  고목 밑동 앞에서…34
  순백에 발자국을 찍고…36
  까막눈이…38
  얼음강…39
  하얀나비 따라가면…40
  
  제 2 부
  
  축제 속 솜사탕…43
  햇물결 건너 쪽빛 바람…44
  부처가 된 은행나무…45
  장미덩쿨…46
  하늘 그림…47
  금정산 뿌리등걸…48
  선방에서…49
  다대포…50
  아치섬…51
  운무 속에서…52
  딸이 보낸 팥꽃…54
  남항대교에서…55
  토끼인형…56
  태화강 대숲…57
  자빠졌다…58
  모시 적삼…60
  연등을 달고…62
  석탑과 연꽃…63
  여름비…64
  마른 꽃잎…66
  섬돌에 서면…67
  광안리 불꽃축제…68
  
  제 3 부
  
  홍가시나무…71
  섬 자장가…72
  무진정 낙화놀이…73
  빈 둥지…74
  묘박지…75
  석양에 그리움 하나…76
  가파도 보리밭…77
  쌈지 공원…78
  화엄사 숲…80
  광안대교를 달리다…81
  장승…82
  가을 외출…83
  강물은…84
  너를 담는다…85
  치매…86
  송정 갈매기…87
  미로 탈출…88
  터지는 물방울…89
  낙서…90
  첫눈…91
  블랙홀…92
  운문천을 마주하고…93
  달빛재 가는 길…94
  외눈박이…96
  아카시아 언덕에서…98
  자작나무 숲에 들면…100
  
  제 4 부
  
  늙은 독…103
  하얀 동백…104
  젖은 바닥에서…105
  쥐구멍…106
  삼락의 봄…108
  말하는 손…109
  멸치볶음…110
  바람난 매화…111
  무섬다리…112
  차에 물든다…113
  열암곡 미소…114
  무스카리…115
  해변에서 춤을…116
  자폐…117
  마흔아홉 수선화…118
  비 오는 풍경…120
  천 개의 향나무 숲…121
  서진암…122
  달빛 가득한 암자…124
  부처님 마을…125
  고래의 눈물…126
  
  ⚫해설/ 그가 자연과 내통하다-강영환…128

책 속으로

둥근 밥


벽을 마주하고 혼자 먹는 밥
입안에 도는 모래알
사막을 건너면서
입맛이 없으면 밥맛으로
벽은 밥맛도 모른다

둥근 밥상이 그립다
둥근 밥엔 온기가 넘쳐난다

늦은 식구가 오면
엉덩이가 춤을 추고
어깨춤에 파리가 날아간다

굴뚝에 연기 피어오르면
혼밥보다는
엄마 손이 가득한
둥근 우주에서 밥을 먹고 싶다


푸른 해무


알람에 밖에서 귀를 세운 백구는
아침 인사로 소란스럽게 안겨온다
짙게 내려앉은 해무 속을 백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선대*에 올랐다

왼쪽 가슴 도려낸 아픔보다
해벽 동굴에 갇혀 지나온 파도들이
푸른색으로 울음을 토하고
벼랑 끝 부서지는 포말에 몸을 씻기운다

쪽빛 해무는 그녀 몸을 감싸며
아침 햇살 뒤로 숨는다
신선대에서 백구와 뒹굴며 지낸 칠년
금빛 햇살 차오를 때
도려낸 가슴 파도에 실어 보내고
빈 가슴에다 해를 담았다

이제는 구리빛 웃음을 지닌 그녀
해벽에 갇혀 열린 바다로 눈빛만 보내고
신선이 내어준 자리에
찾아든 푸른 해무를 바람이 안고간다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신선대


목마 날다

일곱 살 아이 손짓에
활주로가 열리고
목마는 날개를 편다
숲이 돌고 풍선이 구름에 걸린다

오즈에는 마법사가 없다
까마귀 매 발톱을 숨기고
호박꽃 속 고개 내민 참새가 바쁘다

벤치에 웅크린 할아버지
함박 실눈으로 웃음 흘리면
놀란 아이는 치마 뒤로 숨어버리고
토끼머리 연인들 코를 부비고

하늘 바다가 맞닿아 돌 때
에메랄드 비로 내렸다
엄마 손가락을 기다리던
아이는 석상이 되었다


뻥튀기 구름 한 조각


모자로 아이를 쓰다듬고
목마는 날개를 열어 아이를 품는다
홍시 터졌다

그물친 가지 사이로
하늘에 걸린 홍시
목울대 뒤로 입을 크게 벌려 본다

까치가 감홍색 물감을 터뜨리고
발밑에 스치는 감잎
벌레 먹힌 잎 사이로
건너편 네가 보인다

너도 물들었네
가을 깊은 하늘색이 눈부시고
구름 실은 바람에 까악까악
낙엽에 앉은 치마 위로
까치
홍시를 터준다


달빛에 눈물을 닦고


동쪽 바다에 떠 있는 홍련
송이마다 불 밝히고
독경소리 모아
어둠을 가르는 기도

천년 넘어 지켜온
기원은 재가 되고
녹아내린 범종은
뜨거운 아픔에 상처도 없다

홍련암 난간대
흰 포말로 부서지고
먼바다 너울이 몰려와 합장한다

보타낙가산 관세음
옅은 미소가 눈물로 흐른다
길손처럼 지나는 동천의 달빛이
눈물을 닦는다


산은 나를 업고


비에 젖은 아스팔트 지나
시멘트길 끝자락
흙길은 경계를 허물고
가르마 숲길로 앞장선다

빈손 뒷짐에 산을 업는다
두툼한 흙길
짧은 숨 고르며 안부 전하고
나무 잡았던 손 바위 껴안으며
고개 들어 마주한 하늘

숲속 빛 내림에 쏟아지는 새소리들
홀로선 짙은 그림자
동행이 있어 더 아름다운 길
숲길 따라 산을 오르면
산이 나를 업는다


달콤한 오후


한 뼘 햇살이
툇마루 끝에 앉으면
몰래 찾아드는 나른함
기둥 그림자는 수면제로 쓰다듬어
내 눈을 감기운다

소나무와 왈츠를
떡갈나무는 탱고를
붉게 타는 웃음으로
다가오는 배롱나무

쏟아지는 대나무 박수에
무도회가 막을 내린다
감기는 눈에 커피 향이 다가오면
패랭이꽃이 올려다보고
애교부린 새끼손가락이
툇마루를 건너간다


사막은 축제 중


가야 할 길을 잃은 동공은
작은 빛에도 흔들리고
제자리서 맴돌고 있다

하늘이 열릴 때
타오르던 불덩이 땅에 떨어지고
흘러내리는 모래알은
바람비로 내린다

웅크린 눈꺼풀은
눈물을 가두지 못하고
선인장 마른 가시로 오른다

검은 신기루 해를 가리면
입김 불어 쏟아낸 별들이
폭죽이 되어 터진다

나란히 누운 모래언덕
한 줌 뿌린 모래는
은하수로 흐르고
손가락 끝에서
포물선을 그리는 유성들은
눈먼 축제다

출판사 서평

흔들리던 기둥이 바람에 날아가면
쪽문이 열린다
문틈으로 하늘이 일렁이며
바다가 갈라진다

햇살 싣고 찾아온 바람에
댓잎 스치는 발자국이 따르고
벌판을 달리던 말발굽이 깃발로 선다

씨줄과 날줄로 맺은 삼베 올 사이로
갇혔던 햇살이 바다 위에 문을 열면
민들레 홀씨 날아 게르에 닿는다

태초에 흰 무명 하늘 찢어 바다에 담그고
쪽물로 흐르는 날개 춤을 추면
흔들리는 하늘이 문을 부순다

-「햇물결 건너 쪽빛 바람」 전문

꽃에게 기둥은 나를 떠받드는 꽃대이면서 의지처다. 그것이 흔들릴 때 내 쪽문이 열린다. 쪽문은 정문이 아닌 비켜나 있는 문이다. 간이 문으로 이해된다. 쪽문 틈으로 하늘이 열리고 바다가 갈라진다. 이 시는 민들레가 꽃을 피워 홀씨를 날려 보내기까지의 과정과 홀씨가 날아가 새로운 세상에 도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민들레와 깊이 있게 사귀지 않으면 가닿을 수 없는 의미처다. 그렇다고 시적 화자는 민들레가 될 수 없다. 시적 화자는 충분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 채 민들레의 본질에 가닿으려는 다각도의 노력을 보여 준다. 정은재 시인이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민들레가 꽃을 피우고 난 뒤 홀씨를 맺으면 기둥을 흔드는 바람에 홀씨는 쪽문을 열고 하늘과 바다가 열린 세상으로 날아간다.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는 방식이다. 바람도 햇살을 신고 달려오고 댓잎 스치는 발자국들이 뒤를 따른다. 서로 맺은 인연이 햇살을 맞아 이룬 결실을 풀어 갇혀있던 문을 열고 초원으로 내달려 게르에 닿는다. 게르는 몽고 유목민들이 사용하는 이동형 가옥이다. 태초에 생명은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왔다. 흰 무명천을 찢어 바다에 담그고 쪽물로 흐르는 날개 춤을 추면 흔들리는 하늘이 문을 부순다는 의미는 홀씨가 날아가서 씨앗을 터뜨리고 자리를 잡아 새움을 솟구쳐 올린다는 의미의 형상화이다. 민들레라는 대상이지닌 총체성을 드러내 보인다. 세심한 관찰과 깊은 사색 없이는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의미를 안고 있다. 그것은정은재 시인이 대상과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설정되지 않으면 보여 줄 수 없는 시인만의 개성있는 접근이라고본다. 자연과 내통하고 있는 관계설정을 통하여 깊이있는 존재의 의미를 풀어내고 있는 의미 있는 첫 시집이다

기본정보

ISBN	9791188048991
발행(출시)일자	2024년 07월 25일
쪽수	144쪽
크기	127 * 206 * 12 mm / 332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가슴에내리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