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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달 시집 47
박술 저자(글)
아침달 · 2025년 0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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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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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언어의 활주를 꿈꾸는 시인, 박술의 첫 시집 『오토파일럿』이 아침달 시집 47번째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이중언어자의 삶을 통해 자기만의 언어를 찾고 갱신하며 오랜 기간 투쟁으로 쌓아온 시 40편을 내놓았다. 이번 첫 시집에서는 국경을 마음대로 건너뛰면서도 무중력 상태를 바라는 여러 나라의 언어가 혼재한다. 활달하게 뛰노는 언어의 변주가 낯선 이미지들을 결합하며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동안 주로 번역과 철학에 몰입했던 시인은 시를 통해 줄곧 도구적 성질이나 축약된 의미로 제한되곤 했던 언어의 한계를 깨부순다. 세계의 심연을 들추려는 의지, 서로 다른 두 언어가 하나의 축을 이루어 열린 미래로 나아가는 꿈, 현실과 대항하여 관측된 세계 그 이상으로 넓어지면서 일구는 비정형의 토양. 이러한 모든 행위와 표현으로 무한한 가능 세계를 담아내는 시인은 언어를 곧 존재 그 자체로 인식한다. 시 쓰기는 존재론을 펼치는 일이자 존재 양태를 최대치로 늘리는 일이다.

발문을 쓴 김혜순 시인의 말처럼, 이 시집엔 “지정학을 몸으로 앓는 화자”(「불꽃과 망치」)들이 다양한 장소에 머물면서 시인이 감지하는 위태로운 언어적 경계가 있고, “자유 연상의 행로”를 따라 방향 감각을 소실하면서 탄생하는 타자와 공간이 있다. “언어가 살이고 피인 시인, 풍경이고 감각이며, 존재론인 시인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첫 발걸음이면서도 그 한 발을 떼기까지 겪었을 길고 지난한 중력의 세월에 저항하는 존재적 해방에 관한 탐구다.

이 책의 총서 (47)

작가정보

저자(글) 박술

2012년 『시와반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어와 독일어로 시와 산문을 쓴다.
횔덜린, 노발리스, 트라클의 시집을 한국어로 옮겼고,
김혜순 『죽음의 자서전』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현재 힐데스하임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목차

  • 1부

    란스 Lans 15
    쟤네말 17
    무성 19
    도움닫기 없이 날기 21
    늦은 착륙 23
    페를라흐 Perlach 24
    이프릿트 26
    귀국 28
    러브 29
    나무가 모르는 것들 31
    도플갱어 떼어놓기 32
    있기 34
    Åhus 35
    강 GANG 37
    총몸 39
    혈색 41
    다시 일어나는 자리 42
    숄덴 1 43
    숄덴 2 45
    프로메테우스 47
    휘어진 빛 49
    백색왜성 51
    밤 52
    천일 54
    언어에 관하여 55
    목성 56
    흑림 2 58
    흑림 1 59
    열한 번째 여름 60
    마찰 62
    횔덜린 변주곡 4 64
    횔덜린 변주곡 6 65
    비트겐슈타인 66
    바실리카타 여행기 71
    meday 74
    생일 75
    윤회 76
    팔 이야기 78
    섬 79

    2부

    망치의 방 83

    산문

    무중력의 글쓰기 127

    발문

    불꽃과 망치 - 김혜순 141

추천사

  • 이 시집엔 히브리어 라틴어 영어 독일어 한국어 안달루시아어 등등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 있고, 그것의 지정학을 몸으로 앓는 화자가 있다. 장소에 붙은 언어의 지라학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이 시집만큼 여러 언어를 몸으로 체득해 감각화하는 시집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언어가 살이고 피인 시인, 풍경이고 감각이며, 존재론인 시인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책 속으로

횃불을 매달고 내달리는 사람은 대낮보다 더 크지만 결국에는 광산 속의 허무한 빛; 숨이 죽어가는 해를 배경으로 하여 너는 가슴을 전부 헐어서 나에게 준다. 나는 다른 곳을 보면서 너를 생각한다. 다른 곳은 붉다.

-「란스 Lans」 중에서

뼈를 짓누르던 중력의 기억. 심장에 뼈가 있다면 지금이 바로 부러지는 순간일 텐데, 네가 여기 있었다면 마음이 텅 비었을 텐데.

-「도움닫기 없이 날기」 중에서

더러운 물.

철갑선이 흘려놓은 거북의 피
갯벌의 묽음이 말을 걸어오는
인천 앞바다. 그래, 죽어 있었지.

-「귀국」 중에서

러브는 물속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러브는 거품이 이는 이곳을 좋아하지만
어둠을 집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둘로 갈라지면서 물어뜯는 머리를 가질 뿐
모든 비행기가 낙하하는 항구인 인천을 생각할 뿐
방파제에 가로막힌 몸들 빼곡히 바늘을 꽂을 뿐

러브에겐 날개가 있지만 날아오른 적 없다

-「러브」 중에서

나라는 나라를 주웠다
넓었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눈물이 났다

너라는 나라에 닿고서
문이 없는 집
들어가보고 싶었지

-「밤」 중에서

나는 숨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지나가는 통로가 마침 여기 있을 뿐

-「마찰」 중에서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대답하던 날. 아무도 붙이지 않았는데 이미 빼곡하던 간판이며 새들의 깃털, 날지는 못해도 떨어지는 법은 알던 빛으로 가득했던 날. 물방울의 귓속말을 마지막으로 듣던 날.

-「생일」 중에서

이런 식으로는 망치의 방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훨씬 더 먼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훨씬 더 지독하게 길을 잃은 다음에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스쳐 지나갈지 모른다.

-「망치의 방」 중에서

언젠가는 두 언어 사이에 화해와 평화의 상태가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있다. 말하자면 내가 부지런히 노력하면 두 개의 행성이 하나로 합쳐지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친 사람의 혼잣말처럼 모든 단어와 문장을 머릿속에서 반대편의 언어로 번역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결국은 내 안에서 하나의 언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산문 「무중력의 글쓰기」 중에서

출판사 서평

무중력 화음을 빚는 감각으로
언어의 경계를 깨뜨리는 시 쓰기

프리드리히 횔덜린, 노발리스, 게오르크 트라클 등 독일 작가의 시집을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시인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을 독일어로 옮기고 소개해 번역가로서 한국 문학과 독일 문학을 이어오던 박술이 시인으로 활동한 이후 13년 만에 첫 시집으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2012년 『시와반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박술은 이번 첫 시집 『오토파일럿』에 한국어와 독일어 사이를 오가며 겪었던 이중언어자의 삶과 혼란을 복잡한 형상 그 자체로 담아내었다. 시집은 총 2부 구성으로, 1부는 시인이 지금까지 써온 시들과 여러 국가의 언어로 혼합된 시들이 배치되었고 2부는 밀도 높은 철학적 사유를 자동기술법 글쓰기로 다룬 장시 「망치의 방」 한 편이 그 거대한 몸짓을 드러낸다. 또한 시인이 시를 쓰면서 느꼈던 감각과 고민을 개인의 삶에 비추어 솔직하게 담은 산문 「무중력의 글쓰기」가 함께 담겼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이 시집만큼 여러 언어를 몸으로 체득해 감각화하는 시집을 본 적이 없다”는 시인 김혜순의 찬사를 받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언어가 고정되지 않고 대기에 자유롭게 부유하는 성질을 담아 독특한 언어적 실험을 담은 시편을 전개한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독일로 떠난 시인은 한국어와 독일어를 오가며 이방인으로서 겪은 삶의 감각을 시와 산문에 녹여낸다. 한국어는 시인의 모국어이지만 주로 생활하고 말하는 언어가 독일어라면 그의 위치는 과연 어느 자리에 확정해야 할까. 시인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거부하려는 듯이 초반부터 여러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며 시를 쓴다. 독일어로 먼저 쓰고 한국어로 옮긴 시 「나무가 모르는 것들」은 한국어 전문에 각주를 달아 독일어로 옮겼고, 한국어와 독일어를 번갈아 가며 쓴 시 「무성」과 「도움닫기 없이 날기」는 “못움직이기”나 “여기말로 움직이지 못하기” 같은 표현처럼 “경계의 언어(Grenzsprache)”를 넘나들며 위치를 확정하지 못하고 그 사이에서 마치 암석처럼 행위가 단단히 굳어버리는 형상에 접미사 ‘기’를 붙여 언어마저도 명사화한다. 이 같은 발화법은 혈액이 응고되어 출혈을 방지하고 필요한 영양소와 산소를 공급하는 것과도 같아 이중언어자로서 느꼈을 상처들을 부위마다 지혈한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독일에서 공부한 시간이 그에게 있어 단순히 이중언어자의 삶이라는 의미에만 그치지 않고, 모국어와 외국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성간 우주(Interstellar)’ 속에서 무중력의 자세로 붕 떠오를 수밖에 없는 세계의 형태를 전유한다. 고정된 속성에서 벗어날 때 들리는 ‘무중력 화음’은 시인이 간절히 원하는 “망치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크레바스”처럼 바닥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에만 발생한다. 하지만 시인은 균열이 또 다른 경계의 시작점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시인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볼품없는 언어의 화자”(「이프릿트」)인 자들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자리”(「다시 일어나는 자리」)이자 “있던 것이 없어진 자리”(「횔덜린 변주곡 6」)다.


절대적 타자를 향한 자율 주행
물이 다 빠진 수영장에서 펼치는 자맥질

1부에 수록된 39편의 시를 다 통과하고 2부로 넘어가면 남은 시는 단 한 편뿐이다. 분량이 무려 원고지 100매에 해당하는 장시 「망치의 방」은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 최자윤이 그린 두 장의 어두운 삽화가 문을 여닫는다. 음악 기호(#, ♭)로 구분된 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음악이 되어 시인의 유년을 주조음으로 삼는다. 시인이 번역했던 철학자 중 프리드리히 니체가 소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불리듯, 시인이 망치를 부르는 것 또한 시 속에서 분절되는 이미지 감각과 혼용되는 언어를 “구분”하려는 태도에 균열을 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물속에 거꾸로 떠서 수면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한 시절을 떠올리는 시인은 어느 정원의 주택 앞에 놓인 “수영장”을 주요 공간으로 삼아 “수영장의 물맛”부터 시작해서 물이 다 빠지고 레미콘이 수영장을 시멘트로 메우는 날까지의 시간을 총체적으로 그린다. 발문에 따르면 “장소에 붙은 언어의 지리학”(「불꽃과 망치」)을 몸의 감각으로 펼치는 것이다. 이 시는 말 그대로 “모니터 앞에서 입을 반쯤 벌리고 다가닥, 다가닥, 말을 달리며 쓴 거품 같은 텍스트”(「무중력의 글쓰기」)다.
물속에 있으면 물의 호위를 받아 소리가 마음대로 귓속을 침범하는 상황에서 해방될 수 있다. 물은 그 어떤 언어가 들어와도 공평하게 흘려보낸다. 물속에서는 모든 언어가 직위를 박탈당하고 기포를 내뿜으며 “눈이 떨어진 채로 진실을 웅얼거”(「흑림 1」)릴 뿐이다. 무중력 언어를 꿈꾸는 시인이 이주민으로서 느끼는 현실에 침잠할 때마다 대체하는 힘으로 부력을 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자와 번역자로 살면서 계속 의미를 건져내려는 삶에 지쳤을 시인에게 수영장이란 맑고 아름다웠던 유년의 한 부분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었을 테고, 서두에 인용한 파울 첼란의 시 「물과 불 Wasser und Feuer」에서 말하는 “쏟아지는 불길”을 “숲”과 달리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을 테니 말이다. 반면 수영장은 사물과 현상의 부패를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흐르는 것은 멈추고, 멈추는 것은 썩는다. 지금은 멈추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멈춘다.” 이는 비단 물의 속성만이 아니라 언어의 속성에도 해당한다. 언어는 문장이라는 물결에 기대 영원히 흐르기를 바라면서도 온점에 부딪혀 정지하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처럼 「망치의 방」에서 수영장이 주요 무대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경계가 뭉그러지는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모국어/외국어’, ‘삶/죽음’, ‘물/불’, ‘나/너’ 등 이항 대립적인 구분에 지친 언어가 지향하는 곳은 바로 물속처럼 형상을 일그러뜨리고 소리를 차단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시인은 물이 다 빠진 수영장에서도 살려달라고 자맥질하는 존재다. 시인의 의식에는 아직 범람하는 언어로 가득하며 세계를 견디는 몸이 있는 한 모두의 구원과 화해를 이룬 세상을 위해 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이번 시집에서는 두 가지의 도드라지는 특징이 있다. 하나는 ‘너’를 절대적 타자로 삼아 지향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너’는 얼핏 단순하게 읽으면 연인 관계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시들을 천천히 음미하면 그 의미가 갈수록 확장된다는 감각을 점진적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망치의 방」에서 ‘너’는 폭발적인 언어와 함께 다시 태어난다. “망치로 허공을 쳐서” ‘너’를 깎아 새로 형상화한다. ‘너’는 곧 사랑하는 사람, 언어이자 세계, 또 다른 나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언어를 미워했던 시간만큼 언어를 다시 믿어보는 태도는 어떤 절대적 타자를 향해 나아간다. 그것이 “언뜻 발견한 아늑한 공동”(「바실리카타 여행기」)일지라도 함께했다는 과거만큼은 다시 한번 용기 내어 불러보고 싶은 영원한 위안으로 남는다.
나머지 하나는 둘 이상의 다른 언어를 ‘동시 표기’한다는 점이다. 「란스 Lans」 「페를라흐 Perlach」 「강 GANG」과 같이 제목에서부터 한국어와 독일어가 동시 표기되기도 하고 「도움닫기 없이 날기」 「나무가 모르는 것들」 「Åhus」 「다시 일어나는 자리」에서 히브리어, 라틴어, 안달루시아어 등 낯선 말을 함께 다루기도 한다. 시적 언어를 구사할 때 이처럼 수많은 언어가 한꺼번에 떠오르는 것은 시인, 번역가, 철학자로 동시 존재하는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용된다.
이번 시집은 언어적 혼재 속에서 느꼈을 호흡 곤란을 자기만의 숨으로 극복한 놀라운 고투의 흔적이다. 수시로 의도와 의미가 어긋나는 발화를 경험해본 적 있는 독자라면 시인 박술의 첫 시집이 오해가 빈번한 세상의 작은 증거가 되리라 믿는다. 그렇게 자신의 언어를 되찾으려는 방법 중 하나로 제안되는 것이 바로 언어의 ‘자율 주행’이다. 말하자면 언어는 의미도 형태도 고정되지 않은 채 그저 여러 양태로 운동한다는 점이고, 바로 그러한 언어의 유동성이 언어에게 자유를 꿈꾸도록 하며, 어느 순간부터 언어에는 “오토파일럿”이 작동돼 인간의 조작이나 개입 없이 세계를 누빌 수 있게 된다. 시집 말미에 다다르자 말한다. “손을 키보드에서 뗀다. 여기부터는 오토파일럿이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시리즈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94324287
발행(출시)일자 2025년 03월 20일
쪽수 156쪽
크기
127 * 190 * 11 mm / 346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아침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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