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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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홍덕기 시인은 2021년《부산 시단》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등단 이후에도 사진 작업을 계속하며 시에 대한 예술영역의 확장을 위해 끊임없는 탐구와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번 작품집은 그 노력의 결실이라 여겨진다. 사진과 문학은 표현 방법이 다른 예술이다. 모든 예술은 차별화가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는다. 남과 다른 혹은 인접 예술과 다른 그 무엇을 담아야 하기에 사진에 담았던 세계를 시에 담을 수는 없다. 담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홍덕기 시인의 사진에 드러난 사실로는 무용수들의 춤을 담거나 여행에서 만난 풍경들을 담고
있다고 보아진다.
홍덕기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언어로는 ‘검색’과‘빛’이다. 검색은 찾아본다는 의미로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명확히 하는 과정이다. 홍덕기 시인이 접근하는 검색은 어머니와 길에 관한 것이며 어머니는 가족과 고향마을에 관한 것이고 길은 살았던 배경을 소환해낸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저장되어있는 오래된 자신의 기억 속에 잠재해 있는 아름다운 일들
을 검색을 통하여 이끌어 낸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거나 고향의 기억을 되살려 내는 일이다. 이들이 함축된 작품들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보름날 달집 태우던 옛일을 회상해 본다. 「( 달에 가다」) 고향 언덕길에 서 있는 느티나무에 담긴 사연을 엮어본다. 「( 디딜방아」) 호우 쏟아지는 날 우산을 쓰고 나섰지만 그 비속에 우산을 받쳐주던 옛동무를 떠올린다.「( 젖은 우산」) 어렵게 만난 동창들과 함께 옛일을 회상해 본다. 「( 눈을 맞추다」) 어머니 따라다니던 단골 생선가게에서 주인이던 새각시가 하얀 동백꽃이 되었고 변함없는 속내를 다 보여주는 단골의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 덤 파도」) 고향집 마당과 담 밖의 감나무 두 그루에 대한 안부를 묻는다.「( 감나무」) 자신의 생일에 어머니가 끓여 주신 미역국
을 먹으며 어머니 생각에 잠긴다. 「( 생일에」) 황산 야행 때 바라본 하늘의 별들 속에 길이 나 있고 어릴 때 물을 길어 오던 어머니 물동이 속에서 출렁이던 별이 생각난다. 「( 별을 건지다」) 고추가 익어 매운맛을 지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 청양 고추」) 평생이 자식들 건사하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모습을 담는다.「(슬하에서」) 외증조할머니에게 물려받은‘도구는 항상 제자리에 두어라’는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걸 손주에게 전수한다.「( 못을 치다」) 남매가 소풍 갈 때 도시락을 누나가 둘 다 가져가는 바람에 동무들이 나눠준 밥을 먹고 왔다는 어린 추억 담는다. 「( 도시락」) 혼밥 먹을 때 어머니가 그리워 찾아간다는 내용을 쓴다.「( 혼밥」)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비가 지니는 의미를 형상화해 낸다「( 엄마 젖」) 주인을 구하고 죽은 개를 기념하는 공원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그린다. 「( 의견공원에 대한 생각」) 새끼를 밴 암소를 멀리 떠나보내면서 갖는 농부가 표현하는 애틋한 정을 그렸다. 「( 기쁜 별리」)
어머니가 과거 공간인 고향 마을과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려 주는 매개라면 검색을 통하여 드러내는 길은 시인이 살아온 과정을 보여준다. 시인은 많은 길을 다녔다. 그 길은 사진 작업을 위한 방편으로 떠돌이 삶을 보여준다. 대략 눈에 띄는 지역들로는 일출 명소인 정동진행, 물안개 피는 옥정호, 낙타가 가시풀을 뜯는 명사산, 꼬막을 캐는 보성만 뻘밭, 세량지, 인어상이 있는 동백섬, 고등어가 눈부신 부산공동어시장, 과수원, 홍도 가는 길, 자작나무 숲, 돼지국밥집, 수국 피는 태종사, 나이아가라 폭포, 문무 대왕 해중릉, 가시연이 사는 우포늪, 명봉역, 사포 나룻터, 신안 안좌도, 박지도, 반월섬, 배롱나무를 보러 간 서출지 등은 우리에게도 친근한 장소들이다
이 책의 총서 (20)
작가정보
목차
- 자서/5
목차/6
1.
아름다운 얼굴…13
정동진행…14
물안개를 보며…15
끝없는 휴가…16
잃어버린 시간들…17
따스한 손…18
가시를 읽는 낙타에게…20
꼬막 벌판…22
젖은 길을 걷디…23
달에 가다…24
꽃을 먹는 물고기…25
청동 얼굴…26
바람결에 실려 온 향기…27
병아리 가족…28
발등을 찍다…30
고등어 눈물…31
과수원…32
도깨비바늘…33
태풍 지난 뒤…34
가을 산빛…35
혼밥…36
풍년을 남기다…37
바위섬…38
길을 나선 수묵화…40
나를 검색한다…42
노을을 입다…44
디딜방아…46
자작나무 숲…47
붉은 꽃…48
젖은 우산…49
눈을 맞추다…50
나의 상사화…51
겨울을 보내다…52
가상현실…53
꽃을 줍다…54
꿈…56
2
물든 나뭇잎 따라…59
엄마 젖…60
감나무…62
내 안에 앉은 의자…63
돼지국밥집…64
혼자 웃기…65
생일에…66
수국 피는 날…68
발자국을 찍다…69
별을 건지다…70
청양 고추…71
슬하에서…72
벼랑 끝 연어…74
덤 파도…76
성묘…77
남천동 바람…78
전기 나간 밤…79
의견공원에 대한 생각…80
기쁜 별리…82
짧은 노을…84
뷰파인더에 걸린 새벽…85
붉은 잎…86
대왕암…87
잠자리 날개…88
일출 속으로…89
설레는 거울…90
봄빛이 오다…91
말랑한 봄날…92
두 길…93
여의도 풍경…94
천년 은행나무…95
가시연…96
명봉역에서…97
길을 품다…98
카네이션 한 송이…100
굴렁쇠를 굴리며…102
핸드폰을 싣고 지하철은 달린다…103
못을 치다…104
사포나루터에서…105
혼자 웃다…106
서랍 속 시간…107
회장실 가는 길…108
죽순…110
토끼풀꽃…111
십분…112
빗물에게…114
배롱나무의 꿈…116
무청 시래기…118
소금꽃…119
달빛 속으로…120
도시락…121
가을 엽서…122
퍼플교…123
꼬마 소녀 우체통…124
해설/빛과 시간의 변주/강영환…126
책 속으로
아름다운 얼굴
물빛이 어둠을 밀어낼 무렵
연지蓮池에 꽃들이 소곤댄다
진흙 속에서 꽃대를 솟구쳐
낯빛으로 불을 밝힌다
젖 먹이는 어머니 미소로
나비를 품어 안는다
주름진 꽃잎에 하늘빛이 담기고
비우고 베푸는 종소리 들린다
정동진행
눈이 와서 교통이 두절된다는 뉴스에도
정동진행 기차표를 끊었다
태우고 내리고 백설로 달리는 무궁화
옆자리를 뎁히고 떠나는 사람들
만남은 무덤덤한 외로움인가
봉화 승부역을 지날 무렵
수묵화 설경이 유리창을 두드리고
맨발에 떨고 있는 자작나무 손짓한다
정동진 모래사장은 옥양목 이불속에 잠들고
쪽빛 바다는 허기를 눈雪으로 채우고
거친 파도를 해변으로 보내 이불을 들썩인다
언덕 위 깃발 들고 임을 기다리는 범선
애타는 노을에 아침을 걸어두고
인적 없는 정동진역 어둠에 잠겨있다
물안개를 보며
옥정호 물을 쓰다듬는 낮은 안개
산등성이 넘어가 만든 폭포
능수버들은 손가락에 새순을 틔운다
솜이불을 덮은 붕어 섬은
새벽잠에 빠져 있다
해묵은 겨울 얼굴에 피었던 물안개는
지나온 길 돌아보게 하고
산등성이 넘어온 길을 반추한다
끝없는 휴가
새벽에 멍한 창문을 본다
눈뜨자 창이 일어나 맞을 준비하고
출근을 기다리는 서른 살 구두
휴가를 받은 지 언제인데
서둘 일 없으니 몸이 가벼워진다
끝없는 휴가
내려놓은 가방엔 무엇을 채울까
참나무 잎 사이로 드는 햇살 바라보며
가방을 채울 수 있는
톱니바퀴가 꾸는 꿈을 설계해 본다
잃어버린 시간들
하늘이 에메랄드빛으로 호수에 빠진 날
어른 키보다 높은 매끈한 벽에
소나무 숲이 우거졌다
끊어진 성수대교에서 자동차들 빠지듯
박새들이 유리숲에 날아들어 부딪혔다
벽에 머리 상하고 바닥에 떨어져
날개를 편 채 하늘로 갔다
소나무에 앉으려고 한 것뿐인데
억울하다고
옥황상제에게 하소연 하지 않았을까
노래 한 조각 남기지 못하고
널브러져 있는 다섯 천사들
찾아간 숲은 어디 일까
따스한 손
어머님이 마른명태 한 두름 사오셨다
잘 사오셨다고 하면서도 무심코
어디서 사셨냐고 여쭈었다
길가 노점에서 사오셨단다
‘어린애들도 먹을 건데 기왕이면 좋은 물건을
사셨으면’하는 생각에
“건어물 가게에서 사오시지 그러셨느냐”고 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었다
어머니는 어둑한 길에서 파는 할머니가 안타까워
사 오신 것이라고
아무말씀도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노점상 명태가 좀 작으면 어떠랴!
맛이 조금 덜하면 어떠랴!!
할머니 얼굴에서 어머니가 보인다
가시를 읽는 낙타에게
황금모래가 구비쳐 넘실대고
모래알 우는 소리가 쌓이는 명사산
쌍봉낙타에 앉아 줄지어 오른다
안내인이 낙타 고삐를 잡고가면
나머지 낙타는 고개숙여 따라간다
하루에도 수차례 오르고 내리는 길
목마르면 가시풀을 바라보기도 한다
발에 밟혀 허물어진 모래언덕
밤바람에 다시 칼날 능선이 된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낙타는 사막을 그리고
은하수는 월아천에서 멱을 감는다
관객들이 오르고 내리면서
발자국에 묻어둔 금싸라기 속내
낙타는 오가면서 가시를 읽는다
가시 많은 모래가 흐른다
출판사 서평
홍덕기 시인의 빛은 시간이다. 빛의 흐름이 시간의 흐름이고 곧 우리 생의 한 단면이다. 그래서 홍덕기 시인에게 시계는 기억의 창고를 이루는 원형이다. 원형은 상징성을 갖는다. 내 삶이 흘러온 궤적을 품고 있는 강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아래 작품에서 그 상징성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 손목시계 밥 주면 멈출 줄 모르는 반려자 시력이 약해져 글자 큰 핸드폰으로 대신하고 책상서랍 속에 넣었다 우주를 운행하는 마음 변하지 않아 어두운 방에서도 세 개 바늘이 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알려 준다 너에게 해준 것은 굶기진 않았지만 목욕 한 번 시켜주지 않았다 네가 알려준대로 시간을 믿고 맞추어 초침에 뛰고 분침에 매달리며 살아왔지만 매정하게 내친 차가운 손이 되었다 언젠가 다시 볼 날 있을지니 슬퍼하지 마라 네가 가르쳐 준 시간은 무엇인가 그것 따라 맞추어 움직였지만 그 시간을 알지 못한다 네가 가르쳐준 시간으로 날과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 계절이 변하지 않았느냐 오랜 시간을 같이 했으면서도 시간을 알 수 없다 바쁠때는 빨리 가는 기다릴 때는 늦게 가는 시간 대답이 없다
내 시간은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
-「서랍 속 시간」 전문
오래 함께해 온 시계를 서랍 속에 넣어둔다. 글자판이 작아 보기가 힘든 손목시계를 서랍 속에 넣어 두고 느끼는 시간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풀어낸 작품이다. 손목에 차고 왔던 시계는 지금껏 나의 반려자가 되어 약속 시간을 알려 주고 지금껏 시계가 알려준대로 믿고 따랐다. 초침이나 분침이 가르쳐 주는 대로 바쁘게 따르다가 이제는 내 눈이 침침해졌다는 이유로 시계를 내쳐버린 자신의 차가운 마음에 퍼붓는 질책도 담겨져 있다. 시계는 내게 시간을 가르쳐 주었지만 나는 아직도 시간을 알지 못한다. 그런 스승같은 존재인 시계가 나에게 버려져서 슬퍼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너를 찾아가겠다는 다짐을 한다.‘바쁠 때는 빨리 가는 기다릴 때는 늦게 가는 시간 대답이 없다’그리고‘내 시간은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고 잠든 시간이 깨어나기를 기다린다. 그것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명의 이기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작품은 또 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핸드폰을 켜들고 일시에 울리는 광고 메시지 음에 다시 모두 핸드폰을 끄고 났을 때의 감회 「( 핸드폰을 싣고 지하철은 달린다」)는 휴대폰에 매달려 사는 현대인들의 소외감을 여실히 꼬집어 낸다.
홍덕기 시인의 작품에는 사회에 대한 시선과 비평적 시각도 눈에 띈다. 현대예술의 의미는 산업사회의 발달과 사회의 다양한 변화에 예술가들도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말 것이다. 현대예술이 추구하는 세계는 많이도 달라졌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예술은 사회현상을 반영하는데 이전의 예술이 했던 바와 같이 아름다움과 감동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현실 속에 쌓여 있는 무언의 고통을 표현하여 현상에 대한 부정의 계기를 드러내는 식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러한 부정의 계기는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서 더 나은 현실을 추구하는 유토피아적 지향 의도를 함축한다. 홍덕기 시인의 몇몇 작품에서도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부조리함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재난들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시인 정신이기도 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시인은 정의롭지 못한 일을 바르게 해야한다는 암묵적 기대치를 몸으로 안고 있다. 그래서 시인들이 혁명의 대열에 합류하거나 독재에 맞서 분연히 자신의 몸을 바치기도 한다. 자연에 거스르는 인간의 행위나 같은 인간이라도 가난하다든가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을 보호한다. 옳은 시인이라면 잘못된 현실을 참고 넘어가지를 못한다. 시가 드러내야 할 것은 인간을 위한 행복의 추구이다. 인간의 행복에 반하는 여러 불합리, 부조리는 시인에게 타도해야할 대상이다. 쿠바의 혁명에 뛰어든 체 게바라처럼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 시절에는 많은 시인들이 독재에 맞서 싸웠던 것은 그런 차원에서였다.
기본정보
ISBN | 9791188048816 |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09월 18일 | ||
쪽수 | 144쪽 | ||
크기 |
136 * 205
* 21
mm
/ 41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가슴에 내리는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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