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검색어

실시간 인기 검색어

밤드리 노니다가

라종일의 탐미야담 | 1983년 어느 가을밤, 젊은 정치학자 마음에 깃든 옛이야기
라종일 저자(글) · 김철 번역
헤르츠나인 · 2024년 10월 09일
10.0
10점 중 10점
(5개의 리뷰)
재밌어요 (60%의 구매자)
  • 밤드리 노니다가 대표 이미지
    밤드리 노니다가 대표 이미지
  • 밤드리 노니다가 부가 이미지1
    밤드리 노니다가 부가 이미지1
  • 밤드리 노니다가 부가 이미지2
    밤드리 노니다가 부가 이미지2
  • A4
    사이즈 비교
    210x297
    밤드리 노니다가 사이즈 비교 118x188
    단위 : mm
01 / 04
소득공제
10% 12,420 13,800
적립/혜택
690P

기본적립

5% 적립 690P

추가적립

  • 5만원 이상 구매 시 추가 2,000P
  • 3만원 이상 구매 시, 등급별 2~4% 추가 최대 690P
  •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추가 최대 300원
배송안내
도서 포함 15,000원 이상 무료배송
배송비 안내
국내도서/외국도서
도서 포함 15,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도서+사은품 또는 도서+사은품+교보Only(교보굿즈)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교보Only(교보배송)
각각 구매하거나 함께 20,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20,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해외주문 서양도서/해외주문 일본도서(교보배송)
각각 구매하거나 함께 15,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업체배송 상품(전집, GIFT, 음반/DVD 등)
해당 상품 상세페이지 "배송비" 참고 (업체 별/판매자 별 무료배송 기준 다름)
바로드림 오늘배송
업체에서 별도 배송하여 1Box당 배송비 2,500원 부과

1Box 기준 : 도서 10권

그 외 무료배송 기준
바로드림, eBook 상품을 주문한 경우, 플래티넘/골드/실버회원 무료배송쿠폰 이용하여 주문한 경우, 무료배송 등록 상품을 주문한 경우
당일배송 오늘(3/25,화) 도착
기본배송지 기준
배송일자 기준 안내
로그인 : 회원정보에 등록된 기본배송지
로그아웃 : '서울시 종로구 종로1' 주소 기준
로그인정확한 배송 안내를 받아보세요!

이달의 꽃과 함께 책을 받아보세요!

1권 구매 시 결제 단계에서 적용 가능합니다.

알림 신청하시면 원하시는 정보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수상내역/미디어추천

헌화가, 구지가, 처용가, 여우설화, 유리설화, 지귀설화 등 옛이야기들이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롭고 우아하면서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탄생하여
아홉구비 이야기 고개를 넘어가는 ‘그순간’의 황홀.
라종일의 탐미야담(耽美夜譚) 《밤드리 노니다가》는 라종일 교수가 40여 년 전인 1983년, 천년 넘게 전해져 온 우리 옛이야기인 헌화가 처용가 지귀설화 등 고전시가를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다시 써 외국계 잡지사에 영어로 기고했던 원고를 국문학자 김철 교수가 우리말로 유려하게 번역하여 엮은 책이다. 고전교과서 어느 페이지에 말라붙어 있을 법한 건조한 옛이야기를 신선한 사유와 예측할 수 없는 흥미로운 전개에 문학적 감수성을 더해 이야기의 폭과 깊이를 넓히며 입체화하였다. 40년 전이든 2천 년 전이든 아니면 오늘이든, 그 모든 이야기가 품고 있는 자신을 꽃 피워 온전히 드러내는 ‘그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라종일

정치학자. 외교안보전문가. 동국대 석좌교수.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미국의 스탠퍼드대, 미시간대, 남가주대, 프랑스의 소르본대 등 해외 유수의 대학교에서 연구 및 교환 교수,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펠로를 역임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실장, 국가정보원 해외 담당 차장,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 보좌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주영 대사와 주일 대사를 두루 지냈다. 우석대학교 총장을 거쳐 가천대학교와 국방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동국대 석좌교수, 푸단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하노이의 길』, 『장성택의 길』, 『낙동강』, 『세계의 발견』, 『사람과 정치』, 『끝나지 않은 전쟁』, 『현대 서구정치론』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청년을 위한 정치는 없다』, 『한국의 발견』,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 그리고 번역서로는 『정치와 소설』(폴 돌란 저), 『정치학』(아리스토텔레스 저) 등이 있다.
또한 젊은 여성작가인 김현진과의 서신을 엮어 발간한 『가장 사소한 구원』에서 문학적 감성을 선보인 바 있다. 『밤드리 노니다가』는 40여 년 전 젊은 날의 그가 품었던 뜨거운 열정과 문학적 감수성을 ‘우리 옛이야기’ 속에 녹여 신선한 시선과 사유로 풀어낸 작품이다.

번역 김철

연세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국문학을 넘어서』, 『‘국민’이라는 노예』, 『복화술사들』, 『바로잡은 《무정》』, 『식민지를 안고서』, 『우리를 지키는 더러운 것들』 등의 책을 썼고, 『Reading Colonial Korea through Fiction: The Ventriloquists』, 『抵抗と絶望: 植民地朝鮮の記憶を問う』, 『植民地の腹話術師たち』 등이 번역되었다. 『문학 속의 파시즘』,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등을 공저했으며,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조선인 강제연행(朝鮮人强制連行)』, 『비구니 승가 설립의 역사(The Foundation History of the Nuns’ Order)』 등을 번역했다.

목차

  • 들어가며

    1장 용(龍) 과 미녀 | 헌화가(獻花歌)와 구지가(龜旨歌)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2장 오쟁이 진 남자 | 처용가(處容歌)
    배신으로부터 깨달은 구원

    3장 사람이 되기 위하여 | 여우 설화
    동물의 마성(魔性)에 관한 순수한 슬픔

    4장 아버지를 찾아서 | 주몽(朱蒙)과 유리(琉璃) 설화
    결핍과 신비를 품은 칼의 반쪽

    5장 빛 없는 불 | 지귀((志鬼) 설화
    단 한번 눈길에 부서진 영혼

    역자후기

책 속으로

1장 용과 미녀

아름다움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끝없이 끌어당기는 힘이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움이란 아마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자질일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은 내면적인 어떤 우아한 힘-사람들을 지배하는 힘이지요.
하지만 아름다움이 일으키는 가장 중요하고 큰 힘은 그것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부여한다는 점이지요.
아름다움은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 존재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의 본질에 대해 상상하게 해준답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나약함, 보잘것없는 욕망, 초라한 소원, 허영, 속임수, 배신 등등, 인간의 특성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들을 다 포함해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경멸했어요.
그러나 용은 자기 앞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아름다운 여인을 찬양한다는 같은 목적으로 뭉치고, 그럼으로써 예전에는 몰랐던 꿈을 꾸고, 그 꿈을 따라 현실 너머로 자신을 끌어올리고, 기어이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지상의 주인이요 중심이었던 거지요.
용이 본 것은 바로 그것이었어요.

소식이 퍼지자, 온 나라에서 몰려온 군중으로 바닷가는 갑자기 아름다운 여인을 잃은 슬픔으로 비통해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북적거리기 시작했어요.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어요.
어떤 사람들은 용을 달래고, 또 누군가는 애먼 바다를 향해 욕하고 협박하기도 했어요.
게다가 즉석에서 노래를 지어서는 거의 광란 상태에 가까운 절망적인 심정으로 노래를 불러대는 사람까지 있었답니다.
이 노래는 매우 불손하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예전에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용은 이제 용이 아니라 미천한 거북이가 되었고 숭상과 아첨 혹은 기복의 대상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당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미녀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를 잡아서 구워 먹겠다’는 말까지 감히 나왔어요.
이 소동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어요.

여인이 존재했을 때 그랬던 것 이상으로, 그녀는 사라짐으로써 아름다움을 더 아프게 느끼게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어요.
게다가 이제는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 사람들을 단결하게 만들었어요.
그들의 의지를 자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의 진정한 공동체가 나타난 것이지요.

2장 오쟁이 진 남자

이제 곧 설명할 그 중대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에도, 그의 결혼 생활에 전혀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라는 증거가 있어요.
이 갈등이란 흔히 말하는 부부 사이의 사랑싸움이나 성격 차이 같은 게 아니라, 어떤 내적인 번뇌, 즉 처용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떤 정신적 위기나 문제를 가리키는 것이었어요.

처용은 때로 몹시 외로워 보였어요.
그의 외로움은 혼자 살 때보다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았어요.
아내를 안고 있는 거친 숨결의 감미로운 순간에도 왜 그리 마음이 괴로운지 그는 알 수가 없었어요.
겉보기에는 행복한 결혼 생활 중에도 가끔 혼자 우울한 상태에 빠져 있거나 일없이 거리를 방황하는 걸 보았다는 이야기들도 나왔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걸 우연히 듣기도 했답니다.
무슨 말인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가 자기한테 뭔가를 묻는 걸 들었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사랑이란 뭘까?”
“가족이란 뭔가?”
처용의 이런 좀 유별난 행동이 그 뒤에 일어나는 그들 부부 사이의 갈등과 관계가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들 부부의 관계가 정확히 언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는지도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자기를 괴롭히던 의심이 바로 눈앞에서 사실로 확인될 때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가 마주친 광경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육욕의 현장과 그로부터 생겨난 고통은 처용에게는 오히려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답니다.
번쩍하는 한순간, 그는 그토록 알고자 했던 모든 것을 알게 되었고, 너무나 오래 마음을 괴롭히던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인간사를 짓누르고 있는 비참한 거짓과 무지를 꿰뚫어 보았던 거예요.
사랑이니 가족이니 하는 이름으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 우리 자신에게 불러온 고통들, 그 감옥으로부터 탈출한 것이지요.
우리의 이기적인 집착이 어떻게 우리를 속이고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보았어요.
인간이 서로 사랑한다는 건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과 같다는 것, 우리는 남을 사랑함으로써 사랑에 실패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사랑에는 이미 배신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어요.
내면의 빛과 함께 해방이 찾아왔어요.

3장 사람이 되기 위하여

전통적인 대가족 아래서는 보통 삼대가 함께 사는 데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친척들도 있고, 아예 들러붙어 사는 군식구들까지 있었지요.
게다가 수없이 많은 역할들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효성스러운 며느리이면서 손주며느리인 데다, 사랑스럽고 품위 있는 아내이면서 집안 살림을 꾸리는 훌륭한 주부의 역할까지 - 여우가 사람이 되려면 이 모든 걸 해내야 했고,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따뜻한 엄마이면서 자애로운 올케여야 했고, 찾아오는 모든 손님에게는 친절한 안주인이어야 했으며, 착한 이모, 고모, 기타 등등이어야 했어요.
그녀가 해내야 할 역할의 목록은 한도 끝도 없었어요.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은, 자신의 동물적 감정과 행동을 억누르고 정숙한 부인처럼 행동해야 하는 마지막 시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4장 아버지를 찾아서

모든 것은, 우리 인생의 사건들이 대부분 그렇듯, 우연히 일어났어요.
사소한 사고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은 그런 우연이 없었어도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일어날 수밖에 없었지요.
너무 당황하여 말문이 막힌 유리는 그 자리에 선 채, 그녀가 사라져 안 보일 때까지 멍하니 그녀의 등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내 아버지는 누구지?”
“나는 누구지?”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그분마저도 아버지를 찾아서 한평생을 다 바치지 않았던가, 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이웃 인간들에게 전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분조차 적어도 한 번은 아버지에게, 왜 나를 버리시느냐고 울부짖으며 절망 속에서 손을 놓아버리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들이었어요.

그 수수께끼는 뭔가 불가능한 시험이나 시련, 즉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묶인 사람들 또는, 서로 견디기 힘든 무거운 책임을 진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진정한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가르치는 잔인한 교훈 같은 것이었을까요?
수수께끼의 해답은, 삶의 모든 것이 그렇듯, 바로 등잔 밑에 있었어요.

무엇보다 유리는 그동안 자기가 찾아 헤매고 집요하게 매달렸던 문제 하나를 끝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해답은 바로 자기 눈앞에 있었건만, 그걸 보지 못했을 따름이지요. 이제 그는 또 다른 문제, 즉 자신의 운명을 찾는 출발점에 서게 되었어요. 자기의 뿌리가 무엇이든 아버지가 남긴 징표의 신비가 무엇이든 간에,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었어요. 이것이야말로 아버지를 찾는 일과는 별도로 유리 자신이 해내야 할 새로운 문제였어요.

5장 빛 없는 불

정해진 시간이 되면, 한 걸음 한 걸음씩 조만간 똑같은 먼지와 흙으로 되돌아갈 운명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 마치 가슴에 번개가 치듯 모든 걸 뒤바꾸는 깨달음이 내게 일어났어.
불,
어둡고 뜨거운 불 - 인간을 만든 본질이자 실체인 그것.
하루의 힘든 노동을 마치고 뼛속까지 피곤에 절어서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나는 내 몸 안쪽 깊숙한 곳에서 어떤 뜨거운 것이 처음에는 배, 그다음엔 가슴, 마지막엔 머리로 솟구치는 걸 느꼈어.
그건 아주 짧은 순간이었어.
불은 일어날 때처럼 빨리 사라졌어.
하지만 바로 거기서 그때, 내 안에서 서서히 타고 있을 이 불에 의해 어느 날엔가는 내가 깨끗이 사라져 버릴 거라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아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 전체도 함께.
그건 아주 짧은 순간적인 경험이었지.

날이 가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어.
익숙한 주변의 참기 힘든 광경들, 판에 박힌 나날의 농사일, 이런 것들이 한없이 지루해지고 가끔은 나를 완전히 미치게 만들곤 했어.
지난번과 똑같은 경험을 할까 봐 두려운 마음 반,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걸 기다리는 마음 반, 내 마음속은 그렇게 불안하고 쉴 날이 없었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아도, 나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수 있는 휴화산처럼 내 안에서 우르릉거리며 들끓는 소리를 느낄 수 있었지.

그건 내 전생의 일부, 영원히 뻗어 있는 무한한 시간 저쪽에서 시작된 나의 전생에 뿌리박힌 ‘업(業)’의 결과였을까?
아니면 단지 호기심이었을까?
어떤 경우든 간에, 내가 살그머니 머리를 들어 여왕의 행차를 잠깐 바라보았을 때,
여왕도 그 순간에 가마 밖을 바라보았어.
바로 그 찰나,
아마 한 호흡도 안 될 그 순간,
나는 그녀를 보았고 그녀의 눈도 나를 포착했어.

그것은 금으로 만든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지.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절망 속에 찾아 헤매던 그 빛이 거기에 있었어.
불길이 서서히 내 안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어.
나를 평온하게, 차갑게 식혀주는
불.
그 불 속에서 사라져 가면서 나는 마침내 내가 차갑게, 자유로워지는 걸 느끼며
깊은숨을 들이마셨지.

출판사 서평

그림 없는 그림책, 혹은 시 아닌 시집 같은
낯선 감성으로 다가오는 우리 옛이야기 모음집

헌화가, 처용가, 여우설화, 유리설화, 지귀설화와 등
고전시가와의 새롭고 낯선 조우

이다지도 놀라우면서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옛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주영대사와 주일대사 등 정부 고위직을 역임했던 외교안보 전문가이자, 정치학, 외교학, 국제정세 등을 가르치는 정치학자인 라종일 교수의 마흔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직자와 학자의 면모로만 알려져 있던 라종일의 젊은 날을 지배했던 감성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스스로를 이야기꾼으로 여기며 건조한 옛이야기 속에 감춰 있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건져 올려 새로운 이야기로 되살려낸 감성은 어찌하여 40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는 걸까?
라종일의 탐미야담(耽美夜譚) 《밤드리 노니다가》는 라종일 교수가 40여 년 전인 1983년, 천년 넘게 전해져 온 우리 옛이야기인 헌화가 처용가 지귀설화 등 고전시가를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다시 써 외국계 잡지사에 영어로 기고했던 원고를 국문학자 김철 교수가 우리말로 유려하게 번역하여 엮은 책이다. 고전교과서 어느 페이지에 말라붙어 있을 법한 건조한 옛이야기를 신선한 사유와 예측할 수 없는 흥미로운 전개에 문학적 감수성을 더해 이야기의 폭과 깊이를 넓히며 입체화하였다. 40년 전이든 2천 년 전이든 아니면 오늘이든, 그 모든 이야기가 품고 있는 자신을 꽃 피워 온전히 드러내는 그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밤드리 노니다가》가 세상에 다시 나오기까지는 연세대 국문과 김철 교수의 우연한 발견이 계기가 되었다. 노 교수의 책장 어딘가에서 오랜 잠에 빠져 있던 영문원고 《The Dragon and the Beauty》를 발견한 김 교수는 그 빛나는 매력에 취해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 원고를 직접 번역하겠다는 의지를 라종일 작가에게 전했고, 섬세하고 지적인 문체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조화와 변화의 리듬감을 살린 번역으로 그 아름다움을 되살려냈다.
이야기가 한 장면 한 장면 전개될 때마다 저절로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듯하고, 옛이야기라는 서사임에도 시적 감성이 느껴지는 번역이었다. 본래 영문원고가 담고 있었던 사유의 깊이와 품위 있는 지적유희의 매력도 잘 살아났다.
아, 이렇게 사랑스러운 원고라니! 라는 감탄이 나왔다.


장르를 특정할 수 없는 이야기의 매력

라종일의 탐미야담 《밤드리 노니다가》는 장르를 가름하기 어려운 책이다. 말하자면, ‘고전시가의 인문학적인 새로운 해석’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는 있는데, 시적인 정조와 소설적 서사, 인문학적 전개와 나아가 동화적 서정을 두루 지닌 원고로 어느 한 장르에 묶어 둘 수 없는 원고다. 게다가 사유와 깨달음의 향취를 문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지적인 감흥이 폭발하듯 장르를 넘나들며 전개되는, 그야말로 ‘이야기란 이런 것이다’를 증명하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 모호한 정체성을 ‘라종일의 탐미야담(耽美夜譚)’으로 명명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우리 고전문학에서 ‘야담’은 ‘野談’, 즉 저잣거리에 떠도는 이야기 모음집을 말하는데, 탐미야담에서의 야담은 ‘夜譚’, 즉 ‘밤드리 노니다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밤의 신비로운 감성을 담은 이야기 모음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탐미(耽美)’는,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이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것임을 뜻하는데, 이 고요하고 나지막하고 사랑스러운 원고는 ‘탐미탐미탐미’ 하지 않고도 탐미를 따라간다. 흥미롭고 아름답고 신비롭다. 무엇보다 낯선 까끌거림이 놀랍다.


모든 이야기들의 그순간, 에피파니

《밤드리 노니다가》라는 제목은, 이 이야기의 서사 너머에 존재하는 이야기의 또 다른 본질에 대해 생각하며 정하게 되었다. 라종일의 탐미야담에는 바로 ‘이야기 고개’를 넘어가는 ‘그 어떤 순간’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밤드리 노니다가’는 8구체 향가인 〈처용가〉의 둘째 행에 놓인 싯구이다. 처용이 밝은 달 아래 밤늦도록 놀다가 집에 들어가기까지,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충분히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하였지만 막상 자신에게 큰 변화로 이어질 어떤 사건을 앞두고 아무것도 모른 채 맞는 그 늦은 밤의 긴장감과 흥분을 맞닥뜨리는 ‘그순간’에 멈춰 섰다. 모든 이야기는 ‘그순간’을 맞이하여 그때까지의 서사와는 다르게 방향을 수정하고, 또 다른 줄기의 이야기와 이어지고, 놀라운 상황과 조우하고, 확장하며 이야기의 결말로 들어서며 깨우침에 이르게 된다. 그순간은 평면적인 이야기의 어깨를 세우고 머리카락을 곤두세우며 분위기를 부풀리게 한 후-독자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는 순간이다-푸르륵 꺼져간다.
교과서에 박제된 옛이야기들은 모두 ‘그순간’이 거세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원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소문 같은 것들이었다. 잠시만 생각해 봐도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마다 형태와 내용이 조금씩 달랐을 것이고, 그 이야기마다 ‘그순간’ 역시 각기 다른 지점에서 청자들을 웃고 울렸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자기 무릎을 탁 치며 그순간 어떤 깨달음을 깨우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살아 숨쉬던 이야기를 활자에 구속하면서 그순간은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의미에서 라종일의 탐미야담에서 다시 건져 올린 ‘그순간’은 바로 탐미의 정점이 된다.
라종일은, “마치 가슴에 번개가 치듯 모든 걸 뒤바꾸는 깨달음이 내게 일어났어. 불, 어둡고 뜨거운 불 - 인간을 만든 본질이자 실체인 그것. 나의 존재를 휘어잡고 간단히 제압해 버리는 그 어마어마한 빛 없는 어두운 불을 마주하면 나의 그런 노력은 얼마나 연약했는지.”라는 식으로 그순간을 재생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정점은 이렇게 터져 나왔다.
“바로 그 찰나, 아마 한 호흡도 안 될 그 순간, 나는 그녀를 보았고 그녀의 눈도 나를 포착했어. 그녀가 웃었던가, 아니 찡그렸던가?”
단 한번 눈길에 부서진 내 영혼, 바로 그순간, 그녀의 미소.
문장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탐미의 궁극을 발견한 순간의 느낌으로 전율이 일었다. 이렇게 세상 모든 이야기의 그순간은 바로 에피파니(Epiphany), 궁극의 순간으로 승화한다. 라종일은 이곳에서 탐미적 상상력을 완성한다.


탐미 속에서 발아하는 이야기의 힘

헌화가에서 소를 몰고 지나가던 견우노인은 아름다운 수로부인에게 “곶ᄒᆞᆯ 것가 받ᄌᆞᄫᅩ리이다.”라고 수줍은 고백을 하며, 꽃 한송이 곱게 피어 있는 험한 벼랑 위로 한발 내딛는다. 견우노인의 발은 벼랑 위 꽃 한송이로 향하지만, 그 용기가 진정으로 향한 곳은 수로부인 쪽이었다. 탐미란 그런 것이다. 본질을 지극히 원하면서도 오히려 본질을 떠나가는 길 위에 핀 꽃을 조용히 응시하는 것. 단 한번의 눈길에 영혼이 부서진 그순간만으로도 족한 그런 것. 라종일 작가는 기꺼이 벼랑 위로 올라 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김철 교수는 역자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라건대, 이 오해와 착각의 산물을 읽는 독자들이 더 많은 오해와 착각을 낳아주기를. ‘이야기’는 그렇게 지속되어야 한다.”고.


1부 〈미녀와 용〉은 아름다운 수로부인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는 '향가'의 향연이다. 수로부인에 대한 한 노인의 헌신을 노래한 '헌화가'에서 시작하여, 수로부인을 탐하는 동해용의 고뇌에 찬 이야기를 '구지가'와 '해가'에서 가지고 왔다. 인간과 대결하는 서양의 용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용의 면모를, 미녀를 납치한 용의 마음을 통해 알아보자.

“아름다움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끝없이 끌어당기는 힘이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움이란 아마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자질일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은 내면적인 어떤 우아한 힘-사람들을 지배하는 힘이지요. 하지만 아름다움이 일으키는 가장 중요하고 큰 힘은 그것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부여한다는 점이지요. 아름다움은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 존재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의 본질에 대해 상상하게 해준답니다.” - 본문 중에서

“동해 용왕에게 납치된 수로부인의 이야기를 ‘민중 저항’과 연계시킨 「용과 미녀」의 이야기가 진부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는, 민중 저항의 정치적 힘을 ‘탐미적 상상력’으로부터 끌어낸 작가의 ‘용기’에서 나온다. 그것이 ‘용기’인 이유는, 1980년대 ‘민중문학’의 현장-반(反)미학의 절정을 이루었던-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미학의 정치화’가 지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역자 주

아름다움의 본질은 일상의 순간을 떠나 비일상을 꿈꾸는 상상력을 낳는 것이다.


2부 〈오쟁이진 남자〉는 자신의 아내를 역신에게 빼앗긴 처용의 이야기를 담은 향가 '처용가'에서 가져왔다. 우리는 처용의 마음을 모른 채 “밤드리 노니다가”를 읊조렸다. 아마 누구보다 처음으로 처용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아내를 빼앗긴 처용은 절망과 분노에 빠지지 않고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간다.

“자기를 괴롭히던 의심이 바로 눈앞에서 사실로 확인될 때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가 마주친 광경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육욕의 현장과 그로부터 생겨난 고통은 처용에게는 오히려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답니다. 번쩍하는 한순간, 그는 그토록 알고자 했던 모든 것을 알게 되었고, 너무나 오래 마음을 괴롭히던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인간사를 짓누르고 있는 비참한 거짓과 무지를 꿰뚫어 보았던 거예요. 사랑이니 가족이니 하는 이름으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 우리 자신에게 불러온 고통들, 그 감옥으로부터 탈출한 것이지요. 우리의 이기적인 집착이 어떻게 우리를 속이고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보았어요. 인간이 서로 사랑한다는 건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과 같다는 것, 우리는 남을 사랑함으로써 사랑에 실패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사랑에는 이미 배신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어요. 내면의 빛과 함께 해방이 찾아왔어요. - 본문 중에서

「오쟁이 진 남자」에서 처용은 아내의 간통 현장을 목격하고 분노 대신 덩실덩실 춤을 춘 ‘대인배’ 또는 역신(疫神)의 무릎을 꿇린 ‘왕무당’의 이미지를 벗어나, 애욕(愛慾)의 허망함으로부터 인간 실존의 근원적 고통을 꿰뚫어 봄으로써 무한한 자비(慈悲)의 경지에 이르는 보살(菩薩)로 현신(現身)한다. 천년 넘게 무속(巫俗)의 전통 속에 또는 저속한 스캔들의 그늘 속에 묻혀 있던 처용은 이렇게 그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으니 경하할 일이 아닌가.” - 역자 주

깨달음은 모든 가능성과 희망을 내려놓은 절망의 순간에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다. 고통을 승화하여 자유와 해방에 이르는 구원의 빛을 발견한다.



3부 〈사람이 되기 위하여〉는 사람이 되고 싶은 여우의 마음을 담은 ‘여우 설화’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쑥과 마늘만 먹으며 백일을 견뎌 인간이 된 단군의 어머니 곰, 웅녀가 먼저 있지 않았겠는가. 여우도 웅녀와 같은 길을 걸으려 고난을 참지만, 한 여성으로 인간 사회를 견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통적인 대가족 아래서는 보통 삼대가 함께 사는 데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친척들도 있고, 아예 들러붙어 사는 군식구들까지 있었지요. 게다가 수없이 많은 역할들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효성스러운 며느리이면서 손주며느리인 데다, 사랑스럽고 품위 있는 아내이면서 집안 살림을 꾸리는 훌륭한 주부의 역할까지 - 여우가 사람이 되려면 이 모든 걸 해내야 했고,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따뜻한 엄마이면서 자애로운 올케여야 했고, 찾아오는 모든 손님에게는 친절한 안주인이어야 했으며, 착한 이모, 고모, 기타 등등이어야 했어요. 그녀가 해내야 할 역할의 목록은 한도 끝도 없었어요.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은, 자신의 동물적 감정과 행동을 억누르고 정숙한 부인처럼 행동해야 하는 마지막 시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 본문 중에서

“사람으로 변신하고 싶은 욕망 끝에 비참한 죽음에 이르는 여우의 이야기 「사람이 되기 위하여」의 결론도 놀랍고 신선하다. “인간이 된다는 건 이만큼 어려운 일이노라. 그러니 착하게 살아라” 하고 끝맺는 이 설화의 교훈주의적 상투성은 “사람처럼 보이는 우리가 실은 여우, 늑대, 뱀, 물고기, 지네가 아닐까?”라는 마지막 한 마디에 깨끗이 무너진다.” - 역자 주

욕망과 본성을 거스르며 인간답게 산다는 일 오히려 동물처럼 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4부 〈아버지를 찾아서〉는 ‘유리 설화’와 ‘주몽 설화’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들 유리는 자신을 남기고 떠난 아비를 그리워한다. 부정의 결핍 속에 유리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주몽이 남긴 수수께끼를 풀기 시작한다. 과연 주몽이 숨긴 건 무엇이었을까? 유리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무엇보다 유리는 그동안 자기가 찾아 헤매고 집요하게 매달렸던 문제 하나를 끝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해답은 바로 자기 눈앞에 있었건만, 그걸 보지 못했을 따름이지요. 이제 그는 또 다른 문제, 즉 자신의 운명을 찾는 출발점에 서게 되었어요. 자기의 뿌리가 무엇이든 아버지가 남긴 징표의 신비가 무엇이든 간에,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었어요. 이것이야말로 아버지를 찾는 일과는 별도로 유리 자신이 해내야 할 새로운 문제였어요” - 본문 중에서

“「아버지를 찾아서」의 유리(琉璃)는 더 이상 신비와 초현실의 안개로 가려진 건국 설화의 영웅이 아니다. 고투 끝에 마침내 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를 푼 유리는 이제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내야” 하는 새로운 과제 앞에 선다. ‘밤하늘의 별들이 가야 할 길을 비춰주던 행복한 시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혼돈과 분열로 휩싸인 세계 속에서 홀로 길을 찾아 떠나는 근대적 인간의 전형 -유리는 그렇게 다시 태어난다.” - 역자 주

본질을 찾는 일에서 목적은 본질 그 자체가 아니다. 목적은 찾는 과정 그 자체이고 그 과정에서 나의 자리를 찾는 일이다. 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칼을 들고 어디로 향할 것인가다. 진리의 구도에서 그 완성은 바로 새로운 시작점이다.


5부 〈빛 없는 불〉은 한순간의 눈빛에 불타올라 재가 되어버린 지귀의 사랑이야기인 ‘지귀설화’를 자기고백 형식으로 담아냈다. 신비롭고 슬프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건 내 전생의 일부, 영원히 뻗어 있는 무한한 시간 저쪽에서 시작된 나의 전생에 뿌리박힌 ‘업(業)’의 결과였을까?
아니면 단지 호기심이었을까?
어떤 경우든 간에, 내가 살그머니 머리를 들어 여왕의 행차를 잠깐 바라보았을 때, 여왕도 그 순간에 가마 밖을 바라보았어.
바로 그 찰나,
아마 한 호흡도 안 될 그 순간,
나는 그녀를 보았고 그녀의 눈도 나를 포착했어.” - 본문 중에서

“그것은 금으로 만든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지.
내가 그토록 오래 동안 절망 속에 찾아 헤매던
그 빛이 거기에 있었어.
불길이 서서히 내 안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어.
나를 평온하게, 차갑게 식혀주는
불.
그 불 속에서 사라져 가면서 나는
마침내 내가 차갑게, 자유로워지는 걸 느끼며
깊은숨을 들이마셨지.” - 본문 중에서

“‘낭만주의’, ‘낭만적 사랑’ 같은 관념이나 실천은 세계사적으로 18세기 이후, 주로 독일 낭만주의 등을 통해 출현하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내가 늘 경이롭게 생각하는 것은, 한반도에서는 이미 천 년도 더 전에 ‘불타는 사랑의 화신(化身/火身)’-열정이 불이 되어 그 불에 타 죽었다니!-을 그린 ‘슈퍼 낭만적’ 지귀(志鬼) 설화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또 한 천 년쯤 후에는 숨 막히는 주자학적 이데올로기로 중무장한 ‘열녀 춘향전’ 같은 것이 우세종 러브스토리로 판을 친다. 이것도 희한한 일이다. 역사는 진보한다느니 하는 믿음은 역시 의심스럽고, 문예사조사니 뭐니 하는 것도 귀담아들을 것이 못 된다. 라종일 교수가 지귀의 입을 빌려 들려주는 「빛 없는 불」은 다른 의미에서 경이롭다. 이 이야기 속에서 지귀는 흔히 말하듯 이루지 못할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도 아니고, 화마(火魔)를 물리치는 주술적 존재도 아니다. 지귀의 가슴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타오르기 시작한 뜨거운 불길은, 그의 말에 따르면, “조만간 먼지와 흙으로 돌아갈” 우리 인간의 “본질이자 실체”이며 “깨달음”의 개시(開示)다. 구도의 길에 들어선 지귀가 꿈결처럼 마주친 여왕의 눈길은 말 그대로 관음보살(觀音菩薩)의 현현(顯現)이자 궁극의 순간(Epiphany)이다. 진리의 불 안에서 모든 번뇌와 고통을 소진(燒盡)하고 마침내 니르바나(Nirvaṇa)에 이른 지귀 선사(禪師)의 법열(法悅) 넘치는 황홀한 게송(偈頌)을 듣고 나 역시 숨이 막혔다. 〈나를 평온하게, 차갑게 식혀주는 불. 그 불 속에서 사라져 가면서 나는 마침내 내가 차갑게, 자유로워지는 걸 느끼며 깊은숨을 들이마셨지〉.” - 역자 주

사랑과 깨달음은 다르지 않으며, 사랑과 깨달음은 즉시 나를 움직이게 하는 들끓는 불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인연이 닿는 단 한번의 눈길로도 들끓어 오를 수 있다. 사랑은 일상의 삶과 비일상의 꿈 어딘가에서 들끓어 오른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86963692
발행(출시)일자 2024년 10월 09일
쪽수 144쪽
크기
118 * 188 * 15 mm / 275 g
총권수 1권

Klover 리뷰 (5)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사용자 총점

10점 중 10점
10점 중 10점
100%
10점 중 7.5점
0%
10점 중 5점
0%
10점 중 2.5점
0%

60%의 구매자가
재밌어요 라고 응답했어요

0%

고마워요

0%

최고예요

20%

공감돼요

60%

재밌어요

20%

힐링돼요

10점 중 10점
/재밌어요
옛 이야기 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싶다면,
《밤드리 노니다가》를 읽어보세요.
이 책은 정치학자 라종일 교수가 1983년 어느 가을 밤, 마음에 깃든 옛 이야기를 풀어낸 내용이에요.
1983년 이 원고는 영자신문에서 연재하던 고정 칼럼이었고,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이야기의 힘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구나, 라는 걸 다시금 일깨워주네요. 저자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는 헌화가와 구지가, 처용가, 여우 설화, 주몽과 유리 설화, 지귀설화예요. 고전문학을 배우면서 접했던 내용이지만 이야기책으로 만나니 느낌이 새로운 것 같아요. 단순히 줄거리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 이면에 깔려있는 정신과 마음에 집중하는 계기였네요. 특히 여우 설화를 읽으면서 우리 전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동물들이 왜 그토록 인간이 되려고 안간힘을 썼는지를 생각해봤네요. "옛날에 사람이 되는 것이 유일한 마지막 소원이었던 암여우 한 마리가 살고 있었어요. 이 여우의 각오는 남달리 굳셌어요. 오로지 그 소망을 위해 여우는 백 년을 버티면서 살았어요. 백 년은 변신 능력을 발휘할 마법을 갖추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기간이었거든요. 백 살이 되는 날, 여우는 사람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어요. 최소한 외모만은 그랬다는 말이에요. 겉모습만 봐서도는 그것은 영락없은 사람,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소녀였어요. 하지만 그녀(라기보다는 '그것')는 안타깝게도 진짜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걸 알았어요. 정신적, 영적인 의미에서의 사람이 된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었지요." (69-70p) 참으로 이상한 것 같아요. 여우는 백 년을 버텨서 인간의 모습을 얻었는데도 마음속까지 인간이 되기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리고 동물적 본능을 억누르는 노력을 했는데, 정작 인간들은 동물보다 못한 짓을 하고 있으니 어찌 된 노릇인지 모르겠어요. 어리석고 포악한 사람을 일컬어 금수, 짐승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표현인 것 같아요. 인간의 탈을 쓰고 저지르는 만행들, 너무나 부끄럽고 한심하네요. 라종일 교수는 여우 설화를 들려준 뒤, 이야기 해설에서 "이 이야기가 보여 주듯이, 겉으로는 완벽하게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얼마나 많은 우리가 실은 여우거나, 늑대거나, 뱀이거나, 물고기 또는 지네인지 - 우리는 아마 그걸 모르는 게 아닐까요?" (81p)라며 일침을 놓네요. '나는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진짜 인간이 맞는가'라고 자문하면서 오늘을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전래동화처럼 짧은 옛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진짜 '밤드리 노니다가'(밤늦도록 놀다가)를 경험했네요.
리뷰 썸네일
10점 중 10점
/재밌어요
<밤드리 노니다가>를 읽어보았어요. 라종일 님이 쓰신 책이더라고요. 라종일 님은 정치학자이자 외교안보전문가, 동국대 석좌교수, 등등 직함이 무척 많은 분이시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왠지 딱딱한 책이지 않을까 조금 걱정을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놀랐네요.



이 책은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노래나 설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자유롭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덧붙여 펼쳐낸 또 다른 이야기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1장에는 헌화가와 구지가에서 영감을 얻으신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하여>라는 글이 실려 있어요.



"아름다움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끝없이 끌어당기는 힘이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움에 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구절입니다.

아름다운 여인, 그런데 여기서 아름답다고 하는 말은 외모만 가리키는 건 아니래요. 여러분은 어떤 걸 아름답다고 여기시나요?

저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자연인 것 같아요. 자연은 정말 무척 아름답죠. 어쩔 때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요.



노 교수께서 젊은 시절에 쓴 이 글들도 무척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국문학자 김철 교수님이 번역하신 때문일까요? 암튼 이 책은 천천히 읽으면서 글의 아름다움도 생각해 볼 수 있을만한 작품인 것 같아요. 그래서 서평 쓸려고 빨리 읽은 게 아쉬울 정도네요.



3장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정신적, 영적인 의미에서의 사람이 된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었지요."



3장은 여우 설화를 바탕으로 쓴 글이에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여우, 특히나 진짜 마음속까지도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여우는 끝내 소원을 이룰 수 없었어요.



동물이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많이 전해진다고 해요. 그런데 동물적 본성과 인간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는 요구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 그 길 위에 놓인 엄청난 장벽을 넘지 못해 실패하곤 하는데, 이 불행한 생명들은 언제나 암컷이라고 해요. 지금 세상도 그런 의미에서 똑같은 것 같아서 뭔가 씁쓸하네요.



심심할 때, 곁에 두고 천천히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에요.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감상입니다.]

10점 중 10점
/힐링돼요
삼국유사에 수록된 <향가>하면, 대표적으로 헌화가(獻花歌)와 구지가(龜旨歌) 그리고 저 유명한 처용가(處容歌)가 떠오릅니다. <헌화가>는 한 노인이 아름다운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치는 노래이며, <구지가>는 임금이 없던 시절 백성들이 임금을 맞이하기 위해 부른 민중의 주술적인 노래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라종일은 두 향가를 연결해서 ‘용과 미녀’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용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여인을 경외하고 숭배한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오직 자신만이 사람들의 숭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용은 여인을 납치합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여인은 수많은 군중을 모여들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닷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녀가 사라짐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용은 인간의 소원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여인을 포기합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여인은 사람들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자가 만들어 낸 이야기에는 용과 싸우는 영웅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바닷가에 모인 민중의 모습이 보입니다. 민중 앞에서 권력가를 상징하는 용은 슬그머니 여인을 돌려보냅니다. 주술적으로 임금을 맞이하는 <구지가>가 아름다운 여인에게 꽃을 바치는 <헌화가>와 엮여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변했네요. 작가의 탐미적인 상상력이 빛을 발합니다.
<처용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있습니다. 통일신라 사회의 정치적 도덕적 퇴폐를 보여주는 은유, 혹은 지방 귀족과 중앙 귀족 간의 권력 투쟁의 표현, 혹은 무당 처용이 역신을 쫓아내기 위해 부른 노래 등등. 저자는 이런 학설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오직 탐미적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저자는 ‘처용’을 혼자서 호랑이를 해치운 용맹한 남자라고 상상합니다. 용감한 자가 아름다운 아내를 얻는다는 말처럼, 처용은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처용은 외로웠습니다. 그는 애욕의 허망함을 깨닫고 탐욕과 집착을 벗어던집니다. <처용가>를 이렇게 해석하다니, 참신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분 같습니다. 고대 향가를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엮은 그 파격적인 상상력에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살짝 아쉬운 점은 본래 이야기를 앞에다 싣고 다양한 학설을 간략히라도 소개한 뒤, 저자의 자유로운 상상력에서 나온 이야기를 펼쳤다면 독자도 상상의 나래를 펴며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었을 것입니다. 나는 <주몽(朱夢) 설화>, <유리(琉璃) 설화>, <지귀(志鬼) 설화>의 원작(?)을 일일이 찾아보았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했던 내용도 상기하면서, 작가의 상상력으로 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추억과 상상력의 바다에 풍덩 빠진 멋진 독서였습니다.
10점 중 10점
/공감돼요
밤드리 노니다가



이 책은 향가와 설화 등 고전시가를 바탕으로, 저자의 새로운 눈길을 더하여 새롭게 쓰여진 글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노래들은 ‘헌화가’, ‘구지가’, ‘처용가’,‘여우 설화’, ‘유리 설화’, ‘동명왕 설화’, ‘지귀 설화’ 등이다.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헌화가와 구지가



헌화가를 서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니, 그 노래들이 새롭게 보인다.

그리고 그 용이 나중에는 거북이로 변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우리도 용 때문에 죽고 사는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용과 맞서 싸웠다. 단지 서양과는 달리 우리 나름의 방식이 있었다. 아주 평화로우면서도 굳센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집단으로, 세속의 부귀 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해 싸웠다. 한 아름다운 여인을 위해서 싸운 것이다..



서양 이야기에서는 흔히 용과 싸워 이기면 공주와 결혼하고 한 나라를 이어받지만, 우리 노래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해서 헌화가가 불려지고, 그 다음에는 구지가가 흘러나온다,

용은 이제 용이 아니라 미천한 거북이가 되었고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당하는 형편이 되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처용가



저자는 처용의 상황을 먼저 이렇게 진단한다.



분명하게도 처용은 아내에 대한 사랑과 또다른 감정인 질투와 의심으로, 결국은 그런 갈등으로 완전히 탈진했을 것이다.



그럴 때 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어떤 서양 놀이판에 등장하는 못난 무사처럼 그 아내의 목을 맨손으로 졸라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56쪽)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처용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처용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바로 인간사를 짓누르고 있는 비참한 거짓과 무지를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58쪽)



그런 깨달음이 후세에 제대로 전해지지 못한 것을 저자는 아쉬워한다.

처용의 노래가 대중의 세속적인 소원과 맞물려 일개 신화로 타락한 점을 안타까워한다.



새롭게 알게 된다.



여우 설화, 동물의 마성에 관한 순수한 슬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여우 이야기, 그 이야기를 저자처럼 새롭게 해석한 것은 처음이다.

처음 듣는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곰의 경우처럼 사람이 되고 싶은 동물들의 이야기는 많이 전해져 오는데, 저자는 그 중 여우를 예로 들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여우 이야기에서 저자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들의 정곡을 찌르는 말로 끝난다.



이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겉으로는 완벽하게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얼마나 많은 우리가 실은 여우거나, 늑대거나 뱀이거나, 물고기 또는 지네인지, 우리는 아마 그걸 모르는 게 아닐까요? (81쪽)



말의 진정성을 전하기 위해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저자의 진정성이 그대로 전해질 수 있기를......



지귀 설화. 단 한번 눈길에 부서진 영혼



지귀 이야기, 지금까지 흘러넘겼다. 그 이야기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고, 또 찾으려 하지 않았었다. 누가 그런 시시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것인가?



그런데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그 사나이에게 저자는 눈길을 주었다.

마치 선덕 여왕이 절에 행차했다가 나오는 길에, 잠들어 있던 사내에게 눈길을 주었던 것처럼,



그래서 선덕여왕의 눈길에 의해 산화되었던 지귀, 그는 저자의 눈길로 인해 우리 앞에 새롭게 살아났다. 지귀의 모습은 저자의 따뜻하고 차분한 손길로 우리 앞에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어릴 적, 학창 시절에 <고문(古文)> 교과서에 한번 보고, 그 뒤로는 잊혀졌던 노래들이다.

그 뒤로는 한번도 생각하지도 읽지도 않았던 노래들을 다시 접하니 그런 감회조차 새로운데, 그 때 들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니, 더욱 새롭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그래도 쌓였던 세상살이에 대한 통찰에 이런 이야기가 덧붙여지니, 각각의 이야기마다,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의 문장마다 밑줄 긋고 새겨보게 된다.

우리 옛날 이야기도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구나, 하는 경탄도 저절로 나온다.
10점 중 10점
/재밌어요
전해오는 옛 이야기의 뼈대에 저자의 상상이 덧붙여져 탄생한 비슷하지만 또 다른 버전의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5가지 에피소드를 가지고 저자는 이리 저리 작품을 비틀어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가령 신라 시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눈 먼 사랑을 노래한 헌화가와 거북이에게 목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구지가를 합쳐 저자는 ‘용과 미녀’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저자는 아름다운 수로부인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바치는 노인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미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군중들의 이야기를 창작해 냈다.

사라져버릴 한 줌의 먼지 밖에 안되는 인간이 아름다운 여인을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문명화되는 창조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용은 내심 불안하기만 하다. 이 이야기에서 아름다움을 발전의 동력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해석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용은 아름다움이 도대체 뭐길래 자신을 숭배하고 떠 받들던 하찮은 인간들이 이제는 자신을 무시하고 아름다운 여인만 떠 받드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용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사람들에게 숭앙을 받고 있는 미녀를 납치하지만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용)을 용이 아닌 거북이로 취급하기까지 한다. 헌화가가 구지가가 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용이 거북이가 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엮어 새롭게 창조한다는 발상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처용가도 마찬가지다. 처용을 고아로 상정한 후 아름다운 부인을 얻게 되는 과정, 그리고 아내의 외도로 인한 배반감과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신화화된 이야기의 허구를 빼면 처용가의 실제 이야기는 이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여우가 암컷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저자의 지적대로 새로운 세계에 동화되려고 노력하는 대상은 모두가 여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저자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데 아무래도 여성이 사회적인 약자라는 특징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고전 작품에 이렇게 살을 붙여 새롭게 창작해 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다. 너무나 오래된 고전 작품의 진실과 허구, 그리고 실제 이야기를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오늘날에 맞게 각색을 해 보고 교훈을 얻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상상해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나름대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는 오늘이 존재하기에 의미가 있다. 과거의 고전은 오늘의 재해석을 통해 새롭게 가치가 발현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를 통해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문장수집 (0)

문장수집 안내
문장수집은 고객님들이 직접 선정한 책의 좋은 문장을 보여주는 교보문고의 새로운 서비스입니다. 마음을 두드린 문장들을 기록하고 좋은 글귀들은 "좋아요“ 하여 모아보세요. 도서 문장과 무관한 내용 등록 시 별도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리워드 안내
구매 후 90일 이내에 문장수집 작성 시 e교환권 100원을 적립해드립니다.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판매가 5,000원 미만 상품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이 책의 첫 기록을 남겨주세요.

교환/반품/품절 안내

  • 반품/교환방법

    마이룸 > 주문관리 > 주문/배송내역 > 주문조회 > 반품/교환 신청, [1:1 상담 > 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오픈마켓, 해외배송 주문, 기프트 주문시 [1:1 상담>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반품/교환가능 기간

    변심반품의 경우 수령 후 7일 이내,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반품/교환비용

    변심 혹은 구매착오로 인한 반품/교환은 반송료 고객 부담
  • 반품/교환 불가 사유

    1)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2)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3)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4)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5)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이상 ‘다운로드’를 받았거나 '바로보기'로 열람한 경우
    6)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7)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8) 세트상품 일부만 반품 불가 (필요시 세트상품 반품 후 낱권 재구매)
    9) 기타 반품 불가 품목 - 잡지, 테이프, 대학입시자료, 사진집, 방통대 교재, 교과서, 만화, 미디어전품목, 악보집, 정부간행물, 지도, 각종 수험서, 적성검사자료, 성경, 사전, 법령집, 지류, 필기구류, 시즌상품, 개봉한 상품 등
  • 상품 품절

    공급사(출판사) 재고 사정에 의해 품절/지연될 수 있으며, 품절 시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이메일과 문자로 안내드리겠습니다.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1)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 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2)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분 좋은 발견

이 분야의 신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