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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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유해한 세계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그녀들의 고요한 선택
특유의 차분하고 신비로운 감성으로 지역 내 핫플레이스가 된 '식물, 상점'. 구옥을 고친 자못 독특한 이 가게를 운영하는 여자 사장, 최유희. 상점과 주인 모두 섬세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상점이 문을 닫는 늦은 시간이면 유희는 호미와 삽을 들고 고요히 마당으로 향한다. 때로는 곱게 갈린 무언가를, 때로는 톱에 잘린 어떤 덩어리들을 흙 속에 묻는다.
몇 차례의 연애 실패 후 마음을 닫았던 유희에게 한 남자가 다가온다. 유희는 잠시나마 희망을 품어보지만 결국 남자가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식물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와 '쉬운 여자'라는 발언까지, 자꾸만 선을 넘는 남자를 향한 유희의 분노는 점차 끓어오른다. 그런데 '그날의 사건' 이후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평정을 되찾은 유희에게 사람들이 찾아온다. 저마다 어느 곳에서도 해결해주지 못한 문제들을 안고 여자들이 유희의 상점 문을 두드린다. 그들은 문을 열며 말한다. “죽……여주는 곳 맞죠, 여기?” 한편 형사 차도경은 '식물, 상점' 주변에서 남자들이 계속 실종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고 유희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과연 유희와 그녀들의 비밀은 드러나게 될까?
《식물, 상점》은 여자들이 현실 세계에서 당면하는 사회적 사건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데이트폭력, 불법촬영 및 유포, 오픈채팅방 내 성희롱, 동물 학대와 스토킹 범죄, 로맨스 스캠, 가정폭력…….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욕망을 우선하며 상대방을 지배하려 하고 복종시키고자 한다. “그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굵은 선이 머리 위로 이어진 것처럼 공통점이 있었다.”
식물은 자신이 처한 문제를 조용히 머금다가 견디지 못할 때 표출한다. 또한 본인이 뻗어나갈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다. 사려 깊게 식물이 처한 문제점을 해결하듯 유희는 '식물, 상점'의 손님들에게도 차례대로 다가간다. 유희는 여자들의 강력한 아군으로 새로운 차원의 상상을 발휘한다. 대개 반성도 사과도 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 가해자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처단한다.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다음에 올 여자들이 또다시 같은 형태의 고통에 처하지 않게 하기 위해 결국 시발점을 찾아 말끔하게 지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옭아매던 어릴 적 트라우마를 회복해간다.
여성을 향한 혐오를 정면으로 반격하며 통쾌함을 선사하는 《식물, 상점》은 특유의 분위기로 독자를 압도한다. 고통 속에서 홀로 맥없이 사그라드는 여성을 호명해 전에 없던 방식으로서의 연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강민영 작가의 새로운 세계를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의 이름이 기억되고 여자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모든 여자가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의 뜻을 곱씹으며 종국에는 완전히 행복하지 않더라도 이전보다 나은 삶을 얻기를” 바라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더욱 뜻깊다.
유희는 마당에 서서 자신이 밟고 있는 땅바닥을 한참 내려다봤다. 끊임없이 여자를 괴롭히던 남자들. 그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굵은 선이 머리 위로 이어진 것처럼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과 엮인 여자들에게서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결국 시발점을 찾아 말끔하게 지워야 했다. 유희는 그동안 '식물, 상점'을 거쳐 간 여자들을 떠올렸다.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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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작가의 말
“남성이 너무 이유 없이 죽는 거 아닌가요?”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은 남성이었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절대다수는 여성이었다. 그가 던진 말 한마디로 촉발된 많은 담론이 소설과 상관없이 오갔다. 얼마간 설전이 이어졌지만 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 질문을 받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읽었던 모든 주류의 이야기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무수히 죽고 사라져간 여성들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하지만 실패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겐 이름이 없었으니까. 그냥 그들이 '죽는다'라는 행위 자체만이 강조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을 조금 바꿔보고 싶었다. 여자들의 이름이 기억되고 여자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모든 여자가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의 뜻을 곱씹으며 종국에는 완전히 행복하지 않더라도 이전보다 나은 삶을 얻기를 말이다.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소설 밖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좌절과 절망을 넘어 조금은 나아진 세상과 사회가 왔다면 아마 《식물, 상점》은 다른 방향으로 우회하는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이 소설은 그런 방식으로 쓰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건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이다.
소설을 작업하는 동안 또다시 믿을 수 없는 여러 사건을 접하고, 그 틈새에서 사라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며 매 순간 좌절했고 공포를 느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모든 사건의 해결점을 쥐고 있는 '유희'가 그것을 제거해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유희와 같은 존재가 필요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와 동시에 유희처럼 혼자 모든 걸 감당하고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혼자서 모든 것을 견뎌야만 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당신을 그리고 우리를 도와줄 테고, 그런 사람들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 있다면, 단 한 명의 손이라도 아주 굳건하게 잡을 수만 있다면, 앞으로 감내해야 할 세상은 조금은 덜 아프고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목차
- 아보카도
벌레잡이제비꽃
케르베라 오돌람
현호색
아가베
로즈메리
작가의 말
책 속으로
사람도 식물과 똑같다고 믿었다. 사람도 식물처럼 다듬으면 나을 수 있다고, 조금 손보면 더 옳은 방향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 고통 속에 지내야 했던 몇몇 순간들이 떠올랐지만 적어도 본성은 완전히 악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그 믿음이 조금씩 옅어졌다. 대개는 유희를 거쳐 간 남자들 때문이었다._14쪽
그러다 돌연 유희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니, 잘못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얕게 남아 있던 선입견을 지우고 최선과 정성을 다해 상대를 대한 게 잘못이 될 수는 없다. 유희는 척척해진 뒷마당 한쪽에 놓아둔 날을 세운 호미와 삽에 시선을 주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눌러 으깨어 완전히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바라봤던 해충과 벌레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_42쪽
언젠가부터 유희 혼자만 돌보게 된 아보카도 화분. 이제 적당한 거름이 필요할 시기가 온 것 같았다._43~44쪽
“그만해도 돼요.”
현진이 오랜 시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그 말이 유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현진은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이 잔뜩 묻은 얼굴로 유희를 올려다봤다.
“도와드릴게요. 처음부터 끝까지.”_77쪽
상처 입은 리돕스가 다시 살아날 방법이 있을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시작된 지옥이 너무도 선명하게 온몸을 조여와 민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_107~108쪽
저렇게 된 화분이라도, 이렇게 된 나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생채기가 잔뜩 난 식물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화가 밀려왔다._112쪽
식물은 자신이 뻗을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유희의 말이 민하의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울렸다._126쪽
돌보기 수월한 편에 속하는 식물은 아니지만 그런 일을 겪고서도 지금까지 잘 버텨낸 명하처럼, 그러니까 그런 명하의 손길이라면 오히려 유희보다 더 살뜰하게 이 친구를 키워낼 것이다._198쪽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일이 여기서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매일 살얼음판을 걸으며 마주해야 했던 끔찍한 얼굴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으므로._213쪽
모든 대화를 일순간 얼어붙게 만들고, 조잘거리는 모든 입을 닥치게 만들 작은 틈을 찾기 위해 유희는 풀숲에 웅크리고 앉아 숨을 죽였다._214쪽
유희는 그동안 '식물, 상점'을 거쳐 간 여자들을 떠올렸다.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들과 나눈 마지막 대화, 그들과 헤어지며 마주한 마지막 얼굴은 잊을 수 없었다. 모두 저마다의 평안을 얻었을까._234쪽
“형사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여자들은 그렇게 사는 게 익숙하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하죠.”_262~263쪽
아직 다져지지 않은 흙 속으로 몇 번이고 손이 빠졌지만 괜찮았다. 흙은 털어버리면 그만이고,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조각들은 가능한 한 깊게 파묻었으니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이 아래에 묻힌 그 이름을 잊게 될 것이다._264~265쪽
출판사 서평
지금 가장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뿐한 귀환
한겨레출판 턴(TURN) 시리즈 론칭
한겨레출판이 흡인력 있는 전개와 새로운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장르 소설 시리즈를 리디와 공동 기획해 론칭한다. 다년간 전자책 플랫폼으로 구축한 장르 친화적인 노하우로 작가 발굴에 힘써온 리디와 손잡고 SF, 스릴러, 미스터리 등 다채로운 소설을 통해 문학의 경계를 초월해 무엇보다 이야기 본래의 재미와 가능성을 꿈꾸며 기획된 시리즈라 의미를 더한다.
한계 없는 이야기의 세계에서 저마다의 터닝포인트를 마주하기를 바라는 턴 시리즈는 신인의 패기로 무장한 작가부터 지금 가장 주목받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히 한 이까지 두터운 작가군을 확보했다. 《트로피컬 나이트》《칵테일, 러브, 좀비》 등을 통해 특유의 스타일로 사랑받아온 조예은 작가의 최신작 《입속 지느러미》가 '턴'의 포문을 연 뒤 이후 강민영, 설재인, 김달리, 청예 작가 등의 신작 장편이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영상 문법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을 포섭하는 데 소극적이던 기존 문학의 장을 뛰어넘어 첨예한 상상력을 담아낼 이 시리즈가 침체된 출판계에 활력이 되리라 기대한다.
기본정보
ISBN | 9791172130657 |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06월 20일 | ||
쪽수 | 272쪽 | ||
크기 |
111 * 188
* 20
mm
/ 355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TUR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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