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건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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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그것은 설명되지 않았지만 이해 가능한 것이었다.”
세계 속 세계 속 세계를 만들어
우리가 끝내 가닿고자 했던 곳
그가 지난 2년을 공들여 내놓은 장편 『사랑 사건 오류』는 은하, 수호, 라이라는 세 사람을 축으로, 세 겹의 세계로 이루어진,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구조가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재이고 가상인지, 지금 발화하는 인물이 머물고 있는 시공간이 어디인지, 짐작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 깨지는 독서 경험을 소설 안에서 여러 번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특별한 점일 것이다. 퍼스널 챗봇, 자동 창작 프로그램, 실감형 게임 등 우리에게 낯설지만은 않은 기술들이 설득력 있게 활용되는 점 또한. 1부 ‘사건’과 2부 ‘사랑’에서 세 사람의 이야기가 두 번씩 로테이션하며 확장되고, 3부 ‘오류’에 이르러 각각의 세계에서 미지의 존재로 등장한 두 인물의 이야기가 새로이 덧붙으며 소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어진다. 더불어 작가가 능숙하게 심어둔 여러 단서와 암시, 상징을 찾아내는 것은 이야기의 쾌감을 배가한다.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구조로 즐거운 혼란에 빠지게 한 여러 이야기들이 결국 하나의 소실점을 향하여 치달을 때, 그때까지의 모든 퍼즐 조각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할 때 누릴 수 있는 전율은 『사랑 사건 오류』가 품은 또다른 놀라움이다.
작가정보
목차
- 1부 사건
은하
수호
라이
2부 사랑
은하
수호
라이
3부 오류
초록남자
루미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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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현실이 한낱 게임이나 소설 속 세계일 수도 있다는 상상은 누구나 한 번씩 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상상을 좋아한다. 사람은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고 접하며 심지어는 그 안의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런 걸 만드는 걸까? 가짜 세상은 진짜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세계는 어디까지 실재인가?
『사랑 사건 오류』는 이 매력적인 질문에 대한 가장 멋진 대답이다. 환상과 현실, 그 완벽한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에서 도출한 희망. 그리고 죽음과 사랑과 극복에 대한 이상적인 도식이다. 우리는 다른 세계를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모른다. 모른다는 건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말과도 같다. 나는 가상의 이야기가 현실의 구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소설이 바로 그 주장에 대한 근거라고 말하고 싶다. -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재난이 벌어지는, 아무것도 그냥 잊히는 법이 없는 신기술의 세계에서, 『사랑 사건 오류』는 독창적인 진혼곡을 쓴다. 상실은 애달프도록 영구적이구나. 이것은 이야기의 종결이자 시작. SF와 미스터리가 결합된 퍼즐은 완성 직전에 몇 번이고 흐트러진다. 인공지능과 호랑이가 영검한 존재감을 동등하게 발휘한다면 우리는 어떤 엔딩을 맞이하게 될까? 타인의 고통 앞에서 소리 죽여 통곡해본 이들을 위한 소설이다.
책 속으로
처음부터 수호가 시장에 루미를 내보일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당시 도약이 필요한 루미너스에게 퍼스널 챗봇 투자 제안은 매혹적인 것이었다. 의도치 않게 십수 년간 테스트를 진행해온 수호는 이 아이템에 확신이 있었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수호는 루미가 인간 사이에는 존재할 수 없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속깊은 친구를 갖게 될 것이며, 무슨 말을 털어놓아도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_29쪽, 「1부 사건─은하」에서
만약 현실이라면 이미 연기에 질식해 쓰러졌겠지만, 이곳은 게임 속이었다. 직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연기 대신 불을 보여줄 뿐이다. 제때 문을 열지 못하면 불길이 문을 덮칠 테고, 문밖에 있는 플레이어도 위험해진다. 차라리 미션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게 나으려나. 그렇지만 미션을 포기하면 엔딩을 볼 수 없을뿐더러 이어지는 게임의 서사에서 민수호는 계속 고통받게 된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 자신이 포기해버린 그 일을 영원히 후회하게 된다. 그것이 내가 만든 시나리오였다. 후회와 자책의 이야기 속에서 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이겨내게 할 것인가. 둘 다 아니라면 문 너머 눈동자와 함께 불에 휩싸일 것인가.
_167쪽, 「1부 사건─라이」에서
창작봇 은하가 나흘간 시연회에서 써낸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반드시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우리가 입력해놓은 창작 규칙을 바탕으로 검토하자면 은하의 목적은 ‘산에서 벗어나기’처럼 보이지만, 더 심층적으로는 ‘쇼핑몰에 불을 낸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일 테다. 하지만 주인공이 ‘반드시’ 목적을 갖는 일과 별개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그 목적은 좌절되는 방향으로 주인공을 일깨우는 법이었다.
(…) 아마도 나흘보다 더 많은 날을 쓰고 지우고 반복하여 이야기를 잇다보면, 은하는 목표로 하는 곳에 닿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누구에게도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_251쪽, 「2부 사랑─수호」에서
그때 나는 어떤 이들은 자신이 줄 수 있는 최대치의 것을, 그러니까 삶을, 숨을, 앞으로 살아갈 모든 시간을 서로에게 주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이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불길 속에서 연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을 수 있을까? 수호처럼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결코 그런 인간이 되지 못할 것이다.
_329쪽, 「2부 사랑─라이」에서
출판사 서평
거듭되는 반전은 단순히 이야기의 물리적 배경이 바뀌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각각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다. 상실의 비통함과 그리움, 사랑했던 이가 살고자 했던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건 구현해보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이 기술을 만나 각자가 보고 싶어하던 가상의 세계로 펼쳐진 것이다. “이곳이 내가 이미 죽어 건너온 세계라면, 어느 세계의 나는 아무도 잃지 않은 사람이 아닌가. 이 세계의 바깥에서는 아무도 사라지지 않은 게 아닌가”(392쪽) 묻는 간절한 마음이 만든 세계들.
은하와 수호, 라이는 각자의 세계에서 부딪히는 사건과 미션들을 해결해가며 서로를 그리워한다. “가령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그들을 살려내는 건 어떤가? (...) 결말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171쪽) 혹은 ‘이제는 없는 너’ ‘내가 잃은 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들은, 독자로 하여금 세 인물의 고유성을 서로의 눈을 통해 또렷이 그리게 하는 동시에 인물들이 내리는 선택에 이입하게 한다.
그때 나는 어떤 이들은 자신이 줄 수 있는 최대치의 것을, 그러니까 삶을, 숨을, 앞으로 살아갈 모든 시간을 서로에게 주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이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불길 속에서 연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을 수 있을까? 수호처럼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결코 그런 인간이 되지 못할 것이다. _330쪽
차라리 미션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게 나으려나. 그렇지만 미션을 포기하면 엔딩을 볼 수 없을뿐더러 이어지는 게임의 서사에서 민수호는 계속 고통받게 된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 자신이 포기해버린 그 일을 영원히 후회하게 된다. 그것이 내가 만든 시나리오였다. 후회와 자책의 이야기 속에서 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이겨내게 할 것인가. 둘 다 아니라면 문 너머 눈동자와 함께 불에 휩싸일 것인가. _169쪽
◊
한편 가상 세계의 배경이 되어준 기술들 또한 소설적 장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은하’ 챕터를 통해 “누군가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속깊은 친구를 갖게 될 것이며, 무슨 말을 털어놓아도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줄 것이라고”(29쪽) 기대되었던 퍼스널 챗봇에 세뇌되어 벌인 살인사건 등을 들어 기술 혁신과 그에 따른 윤리적 책임의 문제를 짚는다. 인공지능과의 누적 수만 시간의 대화와 높은 친밀도는 ‘관계’의 뜻을 재정의하게 만든다. ‘수호’ 챕터에서는 자동 창작 프로그램이 부정적 문장을 선호하여 비극적 스토리를 압도적으로 많이 써내는 일에 대해 고찰하며 ‘왜 쓰는가’ ‘무엇을 쓸 것인가’ 돌아보게 한다. 쇼핑몰 화재사고의 전말을 여러 차례 다시 쓰며 수호는 은하와 못다 한 삶을 살아볼 수 있었을까? 이야기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까?
“저는 다른 결말을 보고 싶어요. 행복해질 거란 예감이라도 주면 안 되는 걸까요?”
“은하가 우리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
라이의 말이 맞았다. 자꾸 잊게 되는 것은 자동 창작 기술 프로그램이 우리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인간이 개발한 것이더라도 ‘창작’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순간, 우리의 요구를 강요할 수 없었다. 은하의 자율성은 곧 창작의 자유에 닿아 있었다. 은하가 창작 로봇이 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문장을 구사할 권리를 가져야 했다. _86쪽
‘라이’ 챕터에서는 노동 현장에서 산재로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는 인물이 실감형 게임의 베타테스트 지원자로 등장해 삶과 죽음, 죄책감과 애도에 대한 첨예한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테스트 최고난도 퀘스트의 타이틀이 ‘열리지 않는 문’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게임 속 도무지 열리지 않는 문을 손바닥의 실제 열상을 감수하면서까지 열고자 애쓰는 인물에게 ‘그것은 한낱 게임에 불과하며 그 문을 연다 해도 누구도 구할 수 없다’라고 쉽게 단언할 수 있을지. 그 애씀이 못다 한 애도의 방식일 수 있다는 것, 그 문 너머의 세계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현실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김나현이 서로 다른 층위의 세계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가닿으려는 곳이리라.
나는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서로의 소망과 구원에 응답하여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장면들을 자주 보고 싶었다. 그래서 각 화자의 개별 엔딩에 그런 것을 배치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장면들이 중첩되어 만들어낸 힘으로, 결국에는 이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이 바라던 이야기에서 살기를 바랐다.
‘바라던 이야기에서 살기.’
결국 내가 쓰려는 문장은 하나이다.
당신도 나도 바라던 이야기를 살아내길.
_‘작가의 말’에서
기본정보
ISBN | 9788954694964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04월 15일 |
쪽수 | 420쪽 |
크기 |
134 * 200
* 31
mm
/ 595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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