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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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괴로움을 끝내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그는 그럼에도 틈틈이 흙 위에 그림을 그리다 결국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뛰어난 동료 화가들에 대한 동경과 질시, 비정한 현실 속에서 어긋나버린 마음들.
괴로움이 가득한 세상을 걸어가면서 그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하지은의 대표작 『녹슨달』 개정판 출간!
시세로의 이야기를 담은 외전 수록!
『얼음나무 숲』, 『보이드 씨의 기묘한 저택』 등 인기 환상 소설을 써온 하지은 작가의 『녹슨달』이 개정 출간되었다. 파도 조르디라는 한 천재 화가의 삶을 담은 이 소설은 2010년 출간되었을 당시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성과 탁월한 심리 묘사, 아름다운 문장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 개정판에는 문장을 다시 다듬어 작품의 완성도를 더 높였으며, 본편에서 언급되었던 시세로와 레오나드의 과거 이야기를 담은 외전 「그의 얼굴은 그녀의 얼굴 뒤에 있다」가 실렸다. 독자들은 이번 개정판을 통해서 파도와 다른 화가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정보

인간의 욕망과 섬뜩한 공포를 몽환적인 분위기와 탐미적인 문장으로 녹여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 2008년 천재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얼음나무 숲』으로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후 장편소설 『모래선혈』, 『보이드 씨의 기묘한 저택』, 『오만한 자들의 황야』, 『눈사자와 여름』, 『언제나 밤인 세계』를 출간했다. 단편집 『꿈을 걷다』에 「나를 위한 노래」, 『야운하시곡』에 「야운하시곡」을 수록했으며,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단편 「볼레니르에게 집착하지 마라」를 발표했다.
『얼음나무 숲』과 『모래선혈』로 예술이라는 주제를 꾸준히 다뤄온 작가는 『녹슨달』에서 한 화가의 생애를 통해 창작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전적인 배경 속에 질시와 동경, 어긋난 사랑 같은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인물들의 사연에 빠져들게 된다.
목차
- 어느 화가의 죽음
1. 흙으로 그리는 화가
2. 공방과 모사가
3. 하얀 눈의 기사
4. 천재를 죽이는 방법
5. 철문 뒤의 왕자
6. 소녀의 초상
7. 아카데미 그랑프리
8. 찢어지는 밤
9. 괴로움이라는 순례길
10. 모든 것이 뒤바뀐 겨울
11. 붓을 문 토르소
12. 두 손 없는 기도
어느 오후의 대화
외전. 그의 얼굴은 그녀의 얼굴 뒤에 있다
책 속으로
언젠가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렇게 괴로운 일을 왜 계속하시는 거예요?”
“언젠가는 이 괴로움이 끝날 거라고 믿기 때문이지.”
“지금 그만둬 버리면, 그러면 끝나는 거잖아요.”
아버지는 텅 빈 화폭으로 눈을 돌려 한동안 거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정작 비어있는 건 아버지인 것처럼 보였다.
“그건 괴로움이 끝나는 게 아니야. 내가 끝나는 거지.”
6~7쪽, 어느 화가의 죽음
며칠 뒤 나는 달빛 아래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정원 한구석 나만의 화폭에는 특별히 고르고 고른 흙이 모여 있었다. 땅을 파 내려갈수록 흙의 색이 조금씩 짙어졌기에 그것으로 서로 다른 색과 명암을 표현했다.
그날의 주제는 달빛이었다. 중앙에는 가장 곱고 연한 흙을 모아 반듯하게 달을 그렸고, 반짝이는 작은 모래 알갱이들로 은은한 빛이 퍼지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달에서 멀어질수록 땅을 깊이 파서 그림자를 만들었더니 마치 정말로 땅 위에 달이 떠있는 것 같았다.
24쪽, 1. 흙으로 그리는 화가
“아니, 그 반대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훌륭한 화가는 못 될지언정 유일한 화가는 될 테니까요. 누구와도 같지 않고 그 누구도 그릴 수 없는 그림을 제가, 그릴 겁니다!”
스승님은 의외라는 듯 나를 보다가 이가 다 빠진 입으로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들끓는 낮은 웃음을 한참이나 웃었다.
“다 늙은 화가의 가슴을 이리도 두드려 깨우느냐. 네가 여태까지 해온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로다. 그래, 두고 보마. 어디 나도 세상도 깜짝 놀라게 해보려무나.”
165쪽, 5. 철문 뒤의 왕자
“그렇다면 제대로 이기적으로 굴겠어. 감히 나를 마음속에서 지우지 마. 죽는 날까지 오직 나만을 사랑하고 원하고 그리워해. 심지어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영원히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변하지 마. 그것이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나도,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끝까지 나를 사랑해.”
도망치고 싶은 동시에 그 강한 손아귀에 단단히 붙들리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차분한 얼굴 뒤에 어떻게 그토록 강렬한 소유욕을 숨길 수 있을까.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나는 어느 때보다도 사라사에게 매료되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가씨.”
263~264쪽, 8. 찢어지는 밤
“파도. 왜 괴로움을 끝내야 하지?”
안도하는 것도 잠시, 나는 처음으로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차마 대답하지 못하자 그는 놀랍게도 달래듯이 이야기했다.
“대답해 봐.”
“그건…… 괴롭기 때문이죠.”
“그 괴로움 자체가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어?”
341쪽, 9. 괴로움이라는 순례길
먼 바다의 꿈을 꾸었다. 해가 뛰어노는 이상한 바다였다. 별들은 물고기처럼 헤엄치다 수면 위로 첨벙첨벙 뛰어올랐고 그때마다 휘어진 달이 매처럼 별을 낚아챘다. 별을 그렇게 많이 먹어서 보름달이 되는 거로군.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이라면 괜찮아. 여기라면 누구도 찾아올 수 없어. 아무도 날 해칠 수 없어.
406쪽, 11. 붓을 문 토르소
출판사 서평
위대하지만 평범하고, 뛰어나지만 불완전하기에
오해와 이해, 방황을 거듭하는 화가들의 이야기!
하지은 작가는 2008년 『얼음나무 숲』을 출간한 후로 탐미적인 문장과 매혹적인 이야기로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모래선혈』, 『보이드 씨의 기묘한 저택』 등의 작품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특유의 환상문학 세계를 꾸준히 선보여왔다.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은 음악 이야기를 담은 『얼음나무 숲』이지만, 그림을 소재로 삼은 『녹슨달』을 하지은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는 팬들도 많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저주와 악마 등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요소가 있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오로지 인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교황이 거주하는 이 도시는 종교의 권위가 무척 강하며, 예술 또한 종교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도시 중심부에 지어지고 있는 대성당의 천장화를 누가 그릴지가 이 도시의 화가들의 최대 관심사이다. 오만하고도 자존심 센 화가들은 이 위대한 임무를 각자의 이유로 거절하거나 금기된 그림을 그려 종교에 도전하려 하며, 자신이 믿는 바를 붓끝에 담고 인간의 이야기를 해나간다.
『녹슨달』은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파도 조르디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파도의 주변 인물들 또한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각자의 사연과 숨겨진 면을 드러낸다. 결코 자신의 그림은 그리지 않는 레오나드, 실력은 좋지만 파도를 싫어하는 시세로 등 공방의 사람들은 동료이자 경쟁자로서 파도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한편 파도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귀족 아가씨인 사라사에게 빠지고, 그녀의 약혼자인 자비 없는 기사 블레이젝,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왕세자비 이데아 등 여러 인물들과 감정적, 육체적으로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이루어질 수 없는 마음과 틀어진 관계들은 파도의 삶의 방향과 작품 세계를 바꿔간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평범하고 불완전하기에 서로 엇갈리고 오해하며 방황을 거듭한다.
이번 개정판에 수록된 외전 「그의 얼굴은 그녀의 얼굴 뒤에 있다」는 작중 주요 인물인 시세로가 주인공으로, 본편에서 언급되었던 그의 과거 이야기를 담았다. 독자들은 이 외전을 통해 시세로가 무엇을 위해서 계속 공방에 남아 그림을 그리는지를 알게 되고,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파도 조르디다. 반드시 세상에 그 이름을 남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창작의 고통에 괴로워하며 붓질을 멈추었다가도 붓을 놓지 못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고자 한다. 하지은의 『녹슨달』은 화가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음에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놓지 못해 결국 화가의 길을 걷게 된 천재 화가의 이야기다.
창작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다 자살한 아버지를 본 어린 파도는 자신은 절대 화가가 되지도, 남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지도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들의 권유와 회유로 결국 라잔 공방에 도제로 들어가 눈이 멀어가는 노화가 벡리의 제자가 된다. 그곳에서 파도는 여러 화가를 만나 그들의 재능을 질투하고 동경하며 화가로서 성장해 간다. 결코 이어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에 빠졌다가 그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 침체기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파도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기본정보
ISBN | 9788932322780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02월 28일 |
쪽수 | 560쪽 |
크기 |
139 * 196
* 38
mm
/ 670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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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은 작가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탐미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덜 하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그 어느 때보다 애잔함이 짙게 묻어 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참을 기대어 있게 된다.
남들 보다 뛰어난 능력은 결코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이 아님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