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 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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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호기심의 시어들
이 책의 총서 (94)
작가정보
목차
- 시인의 말·5
시작 시·6
〈1부-신학자〉
현상학자·17
사회학자·24
법학자·30
미학자·36
신학자·45
아동학자·46
문헌학자·51
인류학자·55
경제학자·61
형이상학자·64
〈2부-물리학자〉
수학자·67
뇌과학자·70
생태학자·74
열역학자·80
천문학자·87
공학자·90
물리학자·95
통신학자·96
생물학자·102
〈3부-시학자〉
불안학자·111
요정학자·124
浪漫학자·131
순수학자·141
호감학자·147
시학자·151
공감학자·155
〈4부-학자 α〉
일치성·167
절대성·172
구상성·179
가치성·186
자연성·194
성향성·202
환상성·210
거부성·222
순응성·226
조절성·231
순간성·261
인간성·266
학자 α·273
해설 | 박성현(시인)
“‘세계의 틀’에 대한 질문, 혹은 그 ‘아름다움’의 비가시적 스펙트럼에 대하여”
출판사 서평
‘세계의 틀’에 대한 질문
혹은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신비에 대한 정의
만일 우리가 ‘학자’를 규정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선 그와 대상을 이어주는 ‘호기심’을 떠올릴 것이다. 호기심은 인간의 선천적 특성이며 우리 모두의 깊숙한 내면에 자리잡은 ‘알고자 하는 충동’이기 때문이다. 이 호기심만이 우리를 세계의 비밀로 남아 있는 ‘타자’로 향하게 하고, 그 둘을 이어주며 하나의 의미-공동체로 엮어준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질문’을 통해 가시화된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주체의 편협한 해석을 멈추게 하는 것이고, 주체가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그것의 이면들을 새롭게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호기심은 ‘나’의, ‘나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의 첨예한 연결고리가 된다. 이를테면, 우리 중 한 사람이 “오늘도 아주 지루하고도 반복적인 광경” 혹은 “보기 싫어도 봐야 하고 눈 감아도 봐야 하고 볼 수밖에 없”(「광학자_미수록」)는 ‘광경’들에 대해 갑자기 질문을 시작한다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현실 뒤의 무언가가 급격히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는 이 풍경의 출현을 ‘염증’으로 혹은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나 ‘타락한 천사’로 부를 수도 있다.
호기심이란 무엇보다 ‘깊이’의 문제다. 따라서 호기심이 이끌어내는 ‘세계’는 양가적 구조, 즉 ‘도대체 알 수 없으면서도 접근이 가능한’ 구조와 ‘공포와 익숙함이 동시에 포진하며, 때에 따라서는 통제와 해방이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대칭하는 기묘한’ 구조를 동시에 가진다. 김상조 시인이 표현한 것은 이러한 복잡한 관점을 가진 ‘학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학자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사전 바깥의 이론에 더 관심이 많은, 과도한 호기심으로 충만한 학자들이기 때문이다. 김상조의 시 「현상학자」에서 0과 1의 변증은 ‘신원불명의 사람’에게 포획되고, 「사학자_미수록」에서 오늘을 기록하는 자와 미래의 역사를 기록하는 자의 대립은 낯선 목소리로 정교하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특히 “두 의식이 서로를 향해/걸어가고 있다”로 시작하는 「사회학자」에서는 ‘나’와 ‘타자’가 각자의 의식에 투영된 상대방을 대칭하며 그들이 어떻게 서로의 정신을 열고 들어가 침투하고 잠식하며 뒤섞이는지를 보여준다.
사회의 신경증을 잘라내며
아직 한 번도 자신을 내보이지 못한
망각의 방으로 우린
희미한 안내를 받고 있었다.
딱지에 뒤집어진 딱지
구슬에 튕겨지는 구슬
블록에 쌓여가는 블록
인간에 형용하는 인간
어느새 틈새 사이로
지평의 빛이 새어 나오는
목적 앞에서 우린
타버린 고목을 들어 올리며
떨고 있는 망각의 신경에게 물었다.
“깨물어 줄까?”
- 「사회학자」부분
‘학자’의 호기심으로 추동된 질문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그리고 이것이 김상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학자α』의 스펙트럼이다. 그는 세계의 통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반기를 들고, 때로는 역행함으로써 이 호기심과 질문을 완성한다. ‘그것-의-있음’이라는 형이상학은 물론이고 ‘그것이 어떻게 있는가’라는 분과학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의 사유를 포괄한다.
학자들이 위치하는 장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학자들-로서’ 균열하는 곳이다. 시인이 학자들에 개입하는 만큼 학자들도 회귀하면서 끝없이 시인을 잠식하기 때문에, 이 접속-지점이 균열의 좌표가 된다. 시인과 학자들은 이 과정이 존속하는 한 각각의 페르소나로서 작용하는데, 이것은 언제든지 서로를 단절시키고 배제할 수 있음을 상정한다. 따라서 시인과 학자들은 상대방의 부재를 통해서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김상조 시인이 왜 ‘학자들’에 집중했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시작(詩作)의 방법으로 삼았는지에 대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느끼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에 대한 깊이 있는 상상. 당신이 미약하게라도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그 실현 여부를 구별하지 않고 호르몬은 이를 오랫동안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당신을 위해 알맞게 작용하며 삶의 풍미를 선사해줄 것이다.
-「조절성」부분
시인이 명명한 ‘학자’는 현실의 학자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들에게 ‘사실’이란 시인이 포착한, 사유하고 내면화한 세계 속에서의 시간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학자’는 시적 화자를 지칭하는 순수한 명칭으로 탈바꿈하고 동시에 세계의 기저로 향한 무수한 시선의 하나로 재정립된다. 체계는 논리적 질서를 따르지 않으며 오로지 시인의 치밀하고 고유한 ‘느낌’에 따라 분절된다.
그래서 이 시집의 학자들을 ‘분절된 복수의 자아’로 볼 수도 있다. 시인에게 ‘학자들’과 그들의 ‘이념’과 ‘의지’는 언제나 복수로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세계의 기저는 하나의 의미로 구조화되지 않으며, 사건은 그 진리를 포획하는 사람의 수만큼 확장되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움직일 때 함께 따라 움직여요./나뭇잎이 물들어 갈 때 함께 물들어가요./나뭇잎이 꺾여갈 때 함께 꺾여 도약해 봐요.”(「순간성」)라는 문장은 둘 이상의 존재들이 펼치는 교향악이며, “대상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느낌과 생각들/내 순간적인 부흥과 한없이 상호 작용하고//우린 서로가 만날 수 있는/최단의 교점을 정밀히 연산하기 시작한다.//하늘의 빈 속내를 우뚝 세우는/나무의 굵직한 섬유 줄기 앞에서//이내 내 속내로 들어오는/깊은 하늘 앞에서//난 그가 계속해서 자라나는 이유를/거의 짐작할 수 있었다.//넌 내가 왜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지/계산을 거의 끝마쳐 가고 있었다.”(「통신학자」)는 문장은 ‘나’와 ‘그’가 ‘우리’에서 만나는 최단의 교점을 계산한다. “그러다가 한 지점에서 아예/두 가지 명암의 길로 펼쳐지는 공간”(「환상성」)이 발생함을 확증하게 된다.
F 보다 높아지는 감각의 차원들
나는 내가 점점 드넓어져 내 입김에
저 하늘의 흐릿한 달덩이마저
푸름으로 완전히 뒤덮일 것 같은데
E 보다 고차원의 추상으로
나는 점점 쏟아져 나오고
누군가의 물리적 펀치 한 번에
내 가상은 완전히 무너질 테지만
다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살아나고 살아나
꽉 쥔 손을 부드럽게 펼쳐 보이는 순간에
- 「구상성」부분
시인은 ‘학자’로서 스스로를 확장하는 가운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어떤 목소리와 냄새에 닿게 된다. “한 생명이 한 장소에/고스란히 자리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진행되는 생활들이다. 완급을 조절하며 세계 속으로 고양되는데, 그것은 ‘공기와 물’ 혹은 ‘소리와 냄새’들로서 생명의 빈 속내로 서서히 몰려드는 것이다. 어느 날에는 질식할 정도로 생명의 공간들이 교차하며, 또 어느 날에는 존재의 도관이 열려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해질 때도 있다.
때문에 ‘생명’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생장(生長)이자 주사위 놀이 같은 예측하기 힘든 형식이고 부조리와 그 잉여마저 수렴하는 가장 적극적인 ‘예외 상태’라 말하는 것이다. 시인이 “내주변의 감당 못할 결들”로 부르는, 이 ‘생명’들의 뚜렷한 자취를 마주하면서 우리는 그 약동하는 철저한 무질서에 놀라워할 때가 있다. 그것은 방향만 있고 구체적인 도정(道程)이 생략된 지도와 같다. 사태가 이와 같으니, 매순간 ‘생명’은 “내가 응시하는 방향에 따라/형성을 향한 울렁임으로 출렁거”릴 수밖에.
하지만 이와 같은 과도한 집중은 실제로 “보다 높아지는 감각의 차원들”을 유도해 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나는 내가 점점 드넓어져 내 입김에/저 하늘의 흐릿한 달덩이마저/푸름으로 완전히 뒤덮”을 수 있으며, 또한 “보다 고차원의 추상으로/나는 점점 쏟아져 나오”게 될 수 있다.
비록 “누군가의 물리적 펀치 한 번에/내 가상은 완전히 무너”지게 되겠지만, 이것은 무한이 현실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유한의 농밀한 형태이다. ‘나’는 “다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살아나고 살아나”서는 어느 순간이고 살과 뼈와 피를 가진 존재로 거듭나 “꽉 쥔 손을 부드럽게 펼쳐보”일 것이니, 우리는 존재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이 시대의 ‘생존법칙’에 대해
새로운 세계의 ‘학자’들이 던지는 질문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개인들에게 ‘생존’은 제1의 명제다. 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현실이 제시하는 이 생존이라는 시험지의 출제 의도를 묻지 않고 문제를 풀어나간다. 질문하는 순간 그는 사회라는 공간에서 ‘퇴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조의 시적 페르소나인 ‘학자들’은 질문한다. 그들은 이미 이 비좁은 공간의 바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비밀에 이끌리고, 그로 인해 그들 앞에 놓인 생존 법칙들의 편협함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들은 ‘안’과 ‘밖’을 뒤집는다.
김상조는 시가 자아내는 느낌의 문을 열고 그 속으로 들어가기를 계속 시도하는 시인이다. 그는 시가 주관적인 감정과 생각의 응축이라는 단계를 넘어서면 우리 개개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객관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는 눈앞의 ‘바깥’에 생각과 감정을 투여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식을 통해 그것을 조심스럽게 벗겨낼 수 있는 ‘시적 성찰’에 이른다고 덧붙인다. 이 순간이 바로 그가 ‘학자’로서 근본적인 풍요와 충만에 이르는 시간이다. 시인은 이 순간에 대한 체험을 ‘낭만’으로 명명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적인 감각이나 감정은 언뜻 평면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무한한 우주의 법칙을 숨겨놓은 밤하늘의 별자리를 떠올리게 한다. 김상조의 시집 『학자 α』는 독자들에게 이 신비로운 감각을 전함으로써 ‘세계의 틀’이 지워버린 우리의 ‘살아 있음’의 감각으로서의 ‘낭만’을 우리가 스스로 복원할 수 있게 만든다. 그의 시어들 속에서 독자들은 삶에 대한 각자의 이론을 가진 학자들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그동안 죽어 있던 자신의 삶을 새롭게 정립할 이론을 되찾을 수 있다.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Only Lovers Left Alive〉(2013)처럼, 팬데믹과 같은 ‘답이 없는’ 시험지 앞에서 오직 질문하는 이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김상조의 ‘학자’들은 독자들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낭만과 용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 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97643057 |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5월 02일 | ||
쪽수 | 299쪽 | ||
크기 |
126 * 198
* 20
mm
/ 45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시인수첩 시인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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