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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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각각 아버지와 언니를 잃은 은하와 해수는 운명처럼 대학 기숙사에서 재회한다. 두 사람은 상실로 인한 고통을 서로의 존재에 기대 조금씩 치유해 나간다. 신물질의 발견으로 우주 개척 시대가 열리고, 은하가 고래자리 타우에 새로운 지구를 개척하는 ‘낙원 프로젝트’에 뽑히면서 두 사람은 잠시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한편 지구에는 환경 오염으로 인한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나 전 세계적인 대감염 사태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등 심상찮은 일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낙원 팀의 복귀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인공지능의 공격이 벌어졌다는 연락과 함께 갑작스럽게 지구와의 연락이 끊기는데…….
작가정보
목차
- 1.....7
2.....23
3.....54
4.....135
5.....186
6.....210
책 속으로
은하는 그 애가 미울 줄 알았다. 하지만 해수가 손을 잡는 순간 눈물이 떨어졌다. 그 애의 손은 뜨거웠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는 입술은 파랬다. 이 작은 아이가 견딘 그리움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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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과 그날 이전, 그날 이후의 기억들이 뒤섞이며 새벽을 채웠다.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갑작스레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울음이 터졌다. 그러다 보면 가끔 웃음도 나왔다. 어째서 그러느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미소도 울음도 온전히 둘만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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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투쟁이 진실한지 알려면 눈이 얼마나 깊어지는지 보면 되었다. 영혼의 창을 투과하는 빛은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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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은하는 자신과 해수가 성숙해야 하는 나이에 다다랐는지 고민했다. 상처가 요동을 치더라도 품위를 지켜야 하는지 의문했다. 어느 길이 맞을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멱살을 끌어 모순 속으로 자신을 패대기치는 것 같았다. 운명은 굉장히 이상했다. 뛰어들어 맘껏 울며 상처를 털어 버릴 수도, 당당히 아픔을 내보이고 성장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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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해수가 죽도록 미운 날이 있었다. 그럴 땐 기어이 싸움이 났고, 둘 중 하나가 눈물을 터트려야 끝났다. 자신의 가장 아픈 부분은 그만큼 날카로워 사랑하는 이도 자주 찔렀다. 사랑하는 이의 기울어진 몸은 너무나 가까웠다. 봄은 나날이 화사했다. 먼지가 가득한 날에도 새하얀 꽃망울이 터지고, 창가의 햇살이 유난히 선명한 아침도 있었다. 해수와 은하는 봄의 빛깔이 아름다우면 더 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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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둘은 예감했다. 우리는 이 별을 통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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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죽겠지, 죽기 싫다, 아니 이렇게 살기 싫다, 죽고 싶진 않은데 살고 싶지도 않다……. 무엇을 진실로 여겨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쓸쓸함에 다리가 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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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은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할까. 불행의 계절이 찾아오면 어떤 자세로 지나야 하나. 마음을 돌보는 일은 왜 이렇게나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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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너는 할 수 있어. 우리의 다음 세계를 목격할 거야. 고래자리 타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잖아. 아랍에서 흩어진 진주라 부르는 아름다운 별자리 말이야. 네 이야기를 전부 기억해. 그때마다 성간을 헤엄치는 흰 혹등고래를 상상했거든.”
“쓸데없는 소리. 그게 무슨 소용이야. 다 부질없는 이야기일 뿐이야.”
“그곳은 바다 동물처럼 푸른 꼬리를 휘날리는 혜성이 날고 등댓불처럼 퀘이사가 번뜩여. 숨막히도록 어두운 물로 찬 곳이 아닐 거야. 너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지금처럼 네 손으로 낙원을 이룰 거야. 지구보다 살 만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그리고 날 데리러 와 줘.”
출판사 서평
차가운 이성으로 그리는 SF를 통해 치유와 구원을 말하다
『괴물 장미』의 정이담이 전하는 감각적인 SF
『괴물 장미』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 정이담이 상실과 치유, 구원을 그린 감각적인 SF 『불온한 파랑』으로 돌아왔다.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 신물질의 발견으로 우주 개척 시대가 열린 미래를 배경으로 비극적인 사고로 각자 가족을 잃은 두 주인공이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를 구원하는 과정을 담았다. 전작을 통해 “생생하고 응축적인 필치로 그리는 섬세한 내면 묘사”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던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 시리도록 푸른 색감의 바다와 우주라는 두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의 고독과 그리움을 서정적인 필체로 묘사한다. 새로운 지구를 개척하러 떠난 프로젝트 팀은 성공을 거두지만 그들은 지구에 두고 온 사랑하는 이들을 깊이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 사이 지구에서는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하는 일이 이어지고, 프로젝트 팀의 귀환을 앞둔 시점 ‘AI 지능 폭발’이라는 이변이 발생하며 모성 지구와 연결이 끊기고 만다.
브릿G의 제1회 로맨스릴러 공모전에서 “격렬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우수작으로 선정됐던 뱀파이어 퀴어 로맨스 『괴물 장미』로 여성 간의 연대를 말했던 정이담은 이번에 전작과는 다른 SF라는 장르를 선택했는데,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SF 『불온한 파랑』을 통해
저자가 전하는 것은 사람,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졸속 행정과 납품 비리로 인한 예정된 사고, 과학 기술 발전의 뒤에 가려진 생태계의 파괴와 생물의 멸종, 환경 파괴로 인한 변종 바이러스의 출몰 등을 자본주의 권력 아래 짓눌리는 약자의 목소리로 전한다.
“우주 너머엔 낙원이 있다고 말해 줘.”
상실, 고독, 상처, 아픔 그러나 마지막에는 결국 희망이 온다
비극적인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은하와 해수는 운명처럼 다시 만나, 자연스럽게 서로를 의지하며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사랑이 만병통치약이고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릴 적 충격으로 바다와 물을 두려워하게 된 은하와 언니를 잃은 뒤 오히려 바다를 더 깊이 파고들게 된 해수는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길 바라는 은하와 부러질지언정 곧게 서서 구부릴 줄 모르는 해수는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토록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다시 보듬어 안고, 아파하고 떠났다 다시 서로에게 돌아오는, 그런 상처와 회복의 시간으로 뒤덮여 있다. 은하와 해수가 각자 소녀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며, 두 사람이 겪는 일련의 일들은 그들이 약자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좌절의 역사이지만 동시에 그를 딛고 일어나는 희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희망과 위로를 놓지 말라는, 상처 위로 아주 천천히 새 살이 돋듯이, 우리는 언젠가는 결국 회복할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며 사라진 생명들
지구를 떠난 그들에게 바치는 작가의 애도
작품을 통해 가려진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애쓰는 저자가 『불온한 파랑』을 통해 주목한 것은 비단 여성과 약자의 목소리만이 아니다. 저자는 언니를 잃은 뒤 바다에 매료되어 고래를 비롯한 여러 해양 생물들을 파고드는 ‘해수’의 목소리를 통해 지구를 망가뜨리고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생명들을 사라지게 만든 인류를 비판한다. 기술 발전에 급급한 채 벌어지는 인류의 생태계 파괴와 그로 인한 수많은 생물종들의 멸종은 이미 수없는 과학자들이 경고한 바이다. 작품 속에서 저자는 바다에 함부로 버린 쓰레기와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나타난 변종 바이러스가 인류를 쓰러트리는 과정을 보여 주는데, 본래 동물들만 공격하던 코로나가 인간까지 공격하는 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경각심을 울린다.
기본정보
ISBN | 9791158888367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12월 11일 |
쪽수 | 252쪽 |
크기 |
135 * 195
* 28
mm
/ 338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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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독서퀴즈를 치렀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작가에 대해 묻는 질문에 나는 왜 책에 나오지도 않은 작가의 유년시절 고향을 알아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혀를 내두루던 아이였다. 어른이 된 지금 책을 넘기며 제일 호기심 가득 바라보는 것은 작가 소개다. 학생들에게는 왜 작가를 이해해야 하는지 표현론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학교를 떠나 이야기한다면 작가를 이해하는 것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 첫 번째가 아닐까?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니까.
사설이 길었지만, 이 작품의 작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 않다. 작년 괴물 장미가 첫 작품이었고, 이번 작품이 두 번째 작품이라는 것. 심리학을 전공하였고, 가려진 목소리들을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 그치만 그것만으로도 작가가 왜 이야기를 썼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은하와 해수로 우리에게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는 그 사건으로 처음 만난다. 해수는 그 사건으로 언니를 잃었고, 은하는 해수의 언니를 구조하려던 아버지를 잃었다. 물에서 도망쳐 우주로 가고자 항공우주공학과에 진학한 은하와 모든 것을 안고 있는 바다를 알고자 해양과학부에 진학한 해수는 운명처럼 기숙사에서 재회한다. 상실의 경험이 이들에게 남긴 흔적은 여전히 뜨거웠고, 매일 찾아와 힘들게 했다. 밤마다 몽유병을 앓고, 서로의 상실로 서로를 할퀴었다. 그럼에도 이 둘은 서로의 상실을 보듬고 함께했다. 감히 내가 알 수도 없는 그 상실을 나보다 어린 이들이 지니고 있을 무게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이 백 페이지 조금 넘는 책에 사건과 이들의 첫 만남, 대학교 시절,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던 시기 여러 시간대를 아우르고 있다. 전체를 상실과 함께 가기 때문에 무겁기는 했지만, 책장이 무거운 느낌은 아니었다. SF 소설이라 내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건 SF만의 매력이니까. 그들은 조금 일찍 세상의 민낯을 마주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던 그 시기에도 세상의 민낯을 여러 번 마주한다. 마주한 민낯을 알리려던 은하와 해수를 보며,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생각이 미치기도 했다. 빨간 것을 빨간 것이라고 파란 것을 파란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있어 어른의 삶은, 세상의 민낯은 다른 걸 요구하기도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상실과 치유, 구원에 대한 SF 소설'
혹자는 언제까지 이야기 해야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면, 신형철의 글이 떠오른다. '상처와 고통의 양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 일이 비정한 일인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비정한 일은,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다고, 그러니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를 따지지 말자고 말하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픈 사람이다.' 그는 지배하는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에 빗대었지만, 나는 평등한 사람과 성숙한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다. 보다 성숙하고 평등한 사람이란 누군가의 아픔의 강도를 이해하는 일이 아닐까. 감히 알 수 없는 그 강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 책을 통해 어렴풋이 그들이 가진 상실의 강도를 짐작해 볼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또한, SF적 요소까지 더해져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지만 그래도 상실을 너머 재회하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책을 거의 다 읽을 무렵 상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까 생각했다. 고통의 터널? 잡히는 아흔? 그러다 내린 결론은 우릴 산산조각 내지만, 다시 맞추고 그 틈으로 나오는 빛으로 각자의 빛을 내며 사는 것 아닐까에 생각이 닿았다. 은하에게 해수가 없었다면 다시 조각 맞추고 빛을 내지 못했겠지. 다른 조각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 책을 덮고도 둘이 가진 서로의 힘을 되새기게 하는 책이었다.
내가 가진 수 많은 관계를 떠올리며 이 책을 읽고 싶다 응모했다. 다 읽은 지금 사람을 믿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다.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한 여객선 침몰 사고로부터 시작된다. 그 사고로 언니를 잃은 해수, 그리고 해수의 언니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잠수부의 딸 은하. 은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처음으로 만난 두 사람은 운명처럼 대학교 룸메이트로서 재회한다.
대학생 시절에는 아픈 과거를 공유하는 룸메이트로서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안았던 두 사람. 둘은 같은 악으로부터 공격당했지만 서로가 있어 살 수 있었다. 서로의 품 안에서 부서졌던 만큼 사랑이 탄생했다. 그리고 어느 결정적인 하룻밤의 사건으로 둘은 말없이 서로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상대방은 모르게.
둘은 정치와 부조리 없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지만, 우리가 너무 인간이기에 일어나버리는 사고들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은하는 지구 밖 새로운 행성에 낙원 우주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지구를 떠나고, 해수는 고래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 속세로부터 떨어져 고래들과 바다에서 살아간다.
같은 방에서 숨쉬던 두 사람이지만 하나는 행성이 되고, 하나는 고래가 된다. 나는 생각한다. 하나는 처음부터 행성이었고 하나는 처음부터 고래였다고. 푸른 피를 가지게 되고 지느러미를 가지게 된 것은 그저 아이가 어른이 되듯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훤히 보이는 멸망의 순간에 기꺼이 품 속으로 뛰어들어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 온 생을 다해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 그것이 해수에게는 은하였고, 은하에게는 해수였다.
참사, 고독, 이별, 상처, 첫만남, 재회, 치유, 싸움, 애증, 자발적 구속, 부조리, 악의 평범성, 발견, 희열, 후회, 초조함, 무너지는 마음, 홀가분함, 풍유, 도전, 낙원, 멸망의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그려냈다. 두 주인공이 느끼는 모든 감각이 내 피부와 혀에 그대로 전해졌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작가의 전 작품인<괴물장미>가 읽고싶어졌다.
종종 떠오르는 책으로는 신카이 마코토의 <별의 목소리>가 있었다. 광활한 우주에 멀리 떨어진 점으로서 존재하는 두 인간이 오랜 공백을 감수하고서라도 서로만을 향한 메시지를 띄엄띄엄 주고받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ϻ
해수는 입을 뻐끔대는 은하를 끌어안아 바닷물을 묻혔다. 귓불 아래 목덜미 사이 까끌거리는 모래알이 굴렀다. 맥박은 민감하게 울렸다. 해수의 포옹에선 알싸한 파래 향이 감돌았다. 소금기 밴 머리카락이 은하의 뺨을 긁었다. 손가락을 넣자 촉촉한 두피가 닿았다. 해수가 얼굴을 가까이할수록 눈동자는 진하고 배경은 옅었다. 그는 은하에게 바다를 옮겼다. 쇄골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 흉부에 스미는 바다 풀 냄새, 맥동이 어지럽게 공진했다. 피가 솟았다 내리며 정신이 산란했다. 은하는 해수가 데려운 바다 속으로 침잠했다. ϻ
여성 연대 퀴어 로맨스와 뱀파이어물의 조합이 멋지게 어우러졌던 정이담 작가의 데뷔작 <괴물 장미>에 이어 차기작 장르가 SF 소설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솟구쳤습니다. 전작에서 여성의 내밀한 심리를 아릿한 여운이 담긴 문체로 펼쳐나가는 스타일을 보여준 작가여서 SF 장르는 생각도 안 했는데 <불온한 파랑> 기대 이상이었어요. 하드 SF 요소와 상실과 치유라는 가슴 시린 소재의 조화가 어쩜 이렇게 환상적인지.
<불온한 파랑>에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담겨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라고 드러내진 않았지만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그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실종된 학생을 구조하다 목숨을 잃은 잠수사의 딸 은하, 그 배에서 목숨을 잃은 언니의 동생 해수. 아픔을 가진 두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물을 삼키기 힘들 만큼 물 공포증을 앓았던 은하와 따뜻한 물로 씻지 못하는 해수. 그들은 저마다 트라우마를 가진 채 성장합니다.
은하는 고래자리의 기이한 별에 대한 기사를 본 후로 조금씩 나아집니다. 푸른 가스가 뒤덮인 사진을 보며 파랗고 반짝이는 빛이 꼭 푸른 피를 흘리는 동물처럼 보입니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은 푸른빛으로 웃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게 점점 우주에 관심을 가집니다.
항공우주공학과에 들어간 은하와 해양과학부에 들어간 해수는 룸메이트로 재회합니다. 아버지가 그리운 시간을 인내한 은하와 언니가 오지 않는 시간을 견뎌온 해수는 서로의 상실을 외면하기도, 어루만져 주기도 하면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지냅니다.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는 날도, 감정을 폭발시키는 날도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기꺼이 용납하는 사이입니다.
이제 흥미진진한 SF적 요소가 등장합니다. 고래자리 타우 별 근처에 개척 가능한 슈퍼지구가 발견되었고, 인간의 기술 발전도 신물질의 발견 덕분에 상상의 일이 현실로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신 에너지원은 깊은 바닷속에서만 추출 가능한 물질이었습니다. 그 물질의 쓰임을 해수가 발견하게 됩니다. 조건이 갖춰지면 특수한 작용이 일어나는데, 질량을 허수로 만드는 원소인 겁니다. 상대성 이론의 질량 에너지 등가 법칙을 뒤집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불온한 파랑>의 소재인 12광년 떨어진 고래자리 타우 별 행성의 슈퍼지구는 2012년에 발표된 기사를 바탕으로 합니다. 빛의 속도로 가더라도 12년이 걸리는 그곳에 슈퍼지구의 후보지가 있다는 기사였어요. 이 책 바로 직전에 읽은 <과학은 어렵지만 상대성 이론은 알고 싶어> 책 덕분인지 초속 30만 킬로미터인 빛의 속도와 상대성 이론 개념이 녹아든 이번 이야기가 더 잘 이해되어 다행입니다.
질량의 해체와 복원을 반복하며 빛보다 빠른 입자에 도달하고, 무한에 가까운 속도로 출력하는 기술. SF 소설 속에서나 만날 법한 이야기이지만 <불온한 파랑>은 이런 초월적인 신 기술을 묘사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그 기술을 이용하는 인간의 관행과 사회적 비리에 초점을 둡니다.
해수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꿈꾸며 낙원 지구 프로젝트 책임자로 우주로 나간 은하는 성공적으로 그 일을 마칩니다. 그런데 귀환을 앞둔 상태에서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지구에서 말이죠. 무기한 대기 상태로 고래자리 행성에 머물게 된 은하와 소식을 알 수 없는 해수.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현실의 지구가 낙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낙원은 인간에게도 다른 생명에게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듯, 작가는 소설 마지막에 이르러 지구에서 사라진 생명들을 호출합니다. 가슴 찡한 감동과 가해자인 인간으로서 겪는 감정이 혼재하는 상태를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은하와 해수의 상실의 배경이 독자가 살고 있는 현실 이야기와 맞물려 있다면, 그들의 치유와 구원의 여정은 환상에 기댑니다. 책임 소재를 떠넘기기만 하는 작태를 보이는 사회 속에서는 치유조차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넘어가버렸으니까요. 공감과 연대도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치유가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정이담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상실을 어루만져 줬는지 <불온한 파랑>에서 만나보세요.
불온하다 : 1. 온당하지 아니하다
2.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
사전에 나온 '불온하다'의 의미다.
'불온한 파랑'에서는 아마도 2의 의미로 사용했을 것 같다.
주인공 해수와 은하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보기에는 불온한 면이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파랑색은 긍정적이다.
정이담 작가의 전작을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아마도 짐작가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무식해서 '판섹슈얼'이란 용어를 처음 접했다.
53쪽 까지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가슴아픈 유족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유족들의 아픔을 표현한다. 지나치게 진부하지도 않고 섬세하게.
그리고 전반적인 소설 형태가 내가 좋아하는 '구렁이들의 집'의 최인석 작가 스타일이다.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전개와 계속 이어지는 서사의 흐름.
SF의 가장 큰 장점은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이 책은 직접적인 대화 처리가 적다.
그래서 일반적인 추리소설 같은 장르물을 읽을 때 우리는 대체로 밤을 새서라도 한번에 읽어나가지만
'불온한 파랑'은 조금씩 조금씩 아껴두고 읽으면 된다.
사건이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여기서 이 소설과 나아가 작가의 실력이 발휘된다.
아~ 그러고 보니 작가가 심리학 전공자다. 역시.
오영수의 '갯마을'속 해순이처럼 주인공 해수는 바다와 떨어져 살 수 없는 해양학자가 되고, 은하는 우주로 나간다.
은하의 아버지는 잠수사였다. 아래로 내려가는 아버지와 반대로 은하는 우주로 올라간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상처가 있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의지하면서 성장하고 한명은 지구에서 또 한명은 새로운 행성에서 지내게 된다.
이 한문장 속에 세월호가 있고, 방산비리, 해양오염, 우주개발, 인공지능의 미래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작가는 인생의 기쁨은 끝없는 네트워킹에 있다고 말했다.
은하는 한 조직의 리더로서 관계 맺음에 익숙하고 모범적이다.
해수는 자세히 묘사되진 않지만 아마도 은하보다는 불안한 상태로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둘의 관계맺음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은하와 해수의 만남과 이별. 재회의 과정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어나더 어스'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
'팬도럼'에서 결국 희망을 쏘아올리는 장면을 알고 있다면
이 작품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남들과 섞이려고 힘들게 노력하다 상처입은 사람들이나
마지막까지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또다른 관점에서 재밌게 읽을 것이다.
어제도 죽음. 죽음까지 이르는 상황을 생각하며 잠을 설쳤다.
남들과 다른 내 상황속에서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고민하며 혼자 힘들었다.
낙원에 가고 싶다.
보다 현실적인 답은 사실 이미 알고 있다.
진정으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된다는 것.
지금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또는 잊어버리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