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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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이희주가 도모하는 더욱 파괴적인 유희
이 소설을 음미하는 일에는 결코 양도하고 싶지 않은 불온한 쾌락이 있다.
_오은교(문학평론가)
목차
- 성소년 _007
작가의 말 _343
추천사
-
이 소설은 약자의 연정이 품은 맹목적인 가연성과 전복적인 역동성을 아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파티 같다. 무효하고 실속 없는 것으로 취급되던 그 감정은 집착과 오기에 사로잡힌 네 명의 여자들에 의해 예술의 경지로 도약한다. 이들은 온갖 사달을 일으키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무죄의 알리바이를 준비하기는커녕 각자의 뒤틀린 논리로 착실하고 정성스럽게 망상의 천국을 지은 후 그 왜곡의 황홀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탐닉한다. 예정된 파멸 속에서도 서늘하게 웃는 이들의 얼굴에서, 여성의 불투명한 욕망은 휘발되지 않고 깊이 서린다. 사랑과 범죄 사이의 에로티시즘, 돌봄과 학대 사이의 누아르, 신성과 세속 사이의 유락. 지금 한국문학에서 이런 미학을 선보이는 작가는 이희주가 거의 유일하며 가장 유창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가 보도되는 오늘날, 이 소설을 음미하는 일에는 결코 양도하고 싶지 않은 불온한 쾌락이 있다.
책 속으로
이런 경우도 있잖아요. 미술관을 걷다 불현듯 오래된 그림 속 인물과 사랑에 빠지는…… 그에 비하면 나는 운이 좋은 셈이지요. 적어도 한순간은 그애와 같은 강물에 발을 담갔으니까요.(9~10쪽)
문제는 정작 요셉 앞에선 안나의 오만한 마력이 빛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멀찍이 요셉의 그림자만 보여도 안나는 소금 바위처럼 굳었다. 얼굴엔 깊은 그늘이 드리웠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개를 꾸벅대며 그를 피해 가던 스태프들은 갑자기 어떻게 들어오셨냐며 경비를 찾았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다른 게 아니라 순식간에 뒤바뀌는 안나의 몰골로 미희는 그 사실을 배웠다.(67쪽)
안나는 처음으로 그날의 일을 복기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날카로운 상처를 내면서, 묘하게 거슬리던 가시 하나를 뽑아냈다. 나는 아줌마를 엄마처럼 생각했어요. 아줌마. 그래, 그 단어였다. 그 단어를 뱉는 순간 요셉의 눈 안쪽에 빠르게 스쳐가던 혐오를 안나는 기억했다.(91~92쪽)
시간은 흐르고 자식에게 준 사랑은 배반당한다. 그건 섭리였고 희애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노인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쏟아줄 만큼 쏟아주고 배반당한 그가 부러웠다. 배반당하고 싶어. 그러나 누구에게? 맘껏 쏟아부은 사랑을 지겨워하고, 내팽개치고, 끝내 짓밟고 도망갈 사람이 없다면 살아갈 이유도 없었다.(121쪽)
걔들은 말이다. 내가 봤을 때 보통 인재가 아니다.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밤새우면서 쫓아다니고, 길에서 살고, 머리 굴려서 이런 거 보내는 짓 못한다. 일제강점기 같은 때 태어났으면 독립운동했을 거다. 십 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운동으로 날렸을 거다. 문제는 인재들이 왜 이딴 짓을 하고 있느냐 이거다.(144쪽)
설령 조금 실수해서 크게 다치더라도 가창력이 괜찮으니 가수 생활이 완전히 끝장나지는 않을 것이다. 노래만으로 승부하는 거, 그건 그거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 불의의 사고로 앉은뱅이가 된 미소년 가수라. 좀 낭만적일지도. 나미는 대야에 받은 물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158쪽)
중요한 건 그들이 지루해 미칠 것 같던 순간에 요셉이 눈앞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쏟아붓는 것만큼 괜찮은 자극도 없었다.(183쪽)
출판사 서평
심장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작가,
이희주가 말하는 사랑의 광기 어린 본성
2016년 장편소설 『환상통』으로 데뷔하며 눈부신 잠재력을 보여준 소설가 이희주의 야심작 『성소년』이 출간되었다. 이 두번째 장편소설에서 작가는 첫 장편 『환상통』에서 보여준 ‘아이돌을 향한 주체할 길 없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전혀 다른 분위기로 새롭게 쓰는 데 성공했다. 『성소년』은 한 아이돌을 각자의 방식으로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흑화’하기에 이른 네 여자의 납치극을 따라가는 범죄소설이다. 용납될 수 없는 행위를 저질러 파멸에 이를지언정, 단 한 번 극강의 쾌락을 맛보고야 말겠다는 여자들의 광기와 욕망이 유려한 심리묘사를 거치며 읽는 이의 이성마저 압도하기에 이른다.
이희주는 결코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는 사랑의 본성에 대해 꾸준히 말해온 작가이기도 하다. 『환상통』에서는 아이돌 팬의 심리를 깊이 탐구하는 동시에 그들의 열성적인 활동을 생생히 기록하여 당사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으며, 2021년 5월 출간된 연작소설 『사랑의 세계』에서는 일방향적인 관계에서 예민하게 감각되는 위계와 그에 따라오는 어지러운 정념을 숨김없이 묘사하여 인간 내면의 불순하고 복잡한 일면을 드러내 보였다.
이처럼 이희주가 그리는 사랑은 말끔하게 단순화된 하트 이모티콘이 아니라, 세밀화풍으로 모사한 심장의 형태에 가깝다. 핏줄과 지방이 달라붙은 근육 주머니처럼 거칠고, 징그럽고, 뜨거운 사랑이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작업을 통해 이희주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유일무이한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멀리서만 바라보아야 했던 아이돌 스타 ‘요셉’
그를 손에 쥐고 향유하려는 여자들의 질주가 시작된다
인기 아이돌 ‘요셉’이 자취를 감춘 후 이십 년이 지난 현재, 여전히 요셉을 잊지 못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대상이 사라져도 꺼지지 않는 감정을 나누던 그들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요셉을 알기에는 너무 젊은 만큼 더없이 진지해 보이는 그녀는 이제 요셉에게 일어난 일을 직면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을 신호로 소설은 90년대 말, 세간을 들썩이게 한 범죄사건의 현장 속으로 흘러들어가는데……
소년(요셉)
“여자들은 위험하다. 그는 그런 답을 내렸다.
그 판단에서 도출할 수 있는 행동은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탈출하는 것뿐이었다.”
장맛비로 고립된 산장에서 기억을 잃은 채 눈을 뜬 소년. 그는 모종의 사고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모르는 여자들에게 간병을 받으며 지낸다. 자신을 구해준 여자들에게 고마워하지만 때로는 여자들의 손길에서 노골적인 욕망을 느끼고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그가 진심으로 호감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아름다운 외모의 ‘미희’뿐이다. 어느 날 여자들에게서 위험을 감지한 소년은 산장을 탈출하려 한다. 산장 안의 여자들에게, 독자에게 오로지 객체로서만 기능하던 소년이 갇혀 있던 방에서 뛰쳐나온 순간, 그의 눈앞에 기괴한 장면이 펼쳐진다.
미희
“남은 건 왕자의 키스뿐이었다.
잡는다. 미희는 이를 갈며 생각했다. 요셉을 잡는다.”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 엄마를 사랑하는 법보다 불쌍해하는 법을 먼저 배운 여성. 희망 없는 따분한 일상을 보내다가 요셉을 알게 된 후 모든 시간을 요셉에게 쏟아붓는다. 다른 팬들에게 견제당하면서도 요셉의 사생활까지 지켜보던 미희는 우연히 ‘안나’와 붙어다니게 되고, 안나가 계획한 범죄에 가담하기로 결심한다. 요셉과 맺어져 지긋지긋한 길바닥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안나
“갈 땐 가더라도 요셉, 마지막으로 너는 한번 안고 가야지.”
어린 요셉과 알고 지낸 적이 있는 부잣집 사모님. 한때 과외교사를 자임해 요셉과 매우 가깝게 지냈지만, 순간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여 요셉을 향한 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요셉이 경멸 어린 얼굴로 안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아줌마’. 그 말로 인해 안나는 점점 마음의 병을 키워간다. 요셉을 향한 집착과 오기를 버리지 못하고 요셉과 재회할 계획을 세운 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범을 모은다.
희애
“나는 그냥 모든 걸 되돌리고 싶을 뿐이야.
처음으로, 세상에 나랑 요셉 둘만 있던 때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야.”
요셉의 친모. 젊은 시절 안나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다가 안나의 이웃에 의해 요셉을 임신하게 되었다. 안나의 집에서 쫓겨나 홀로 키운 요셉마저 친부에게 빼앗긴 후 죽음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모성애를 마음껏 쏟아내고 싶은 욕구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기댈 자식이 없다는 허무감에 빠져 있던 그녀는 안나의 무모한 제안에 매료된다.
나미
“다들 피곤하게 사네. 어쨌든 요셉을 가지는 건 나인데.”
안나가 단골로 다니는 무당집의 조카로, 이모를 유심히 관찰하고 따라 해 손님들의 신망을 얻었다. 부모에게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해 미디어가 보여주는 허상을 진실로 믿는다. 안나가 무당을 기다리며 틀어둔 TV 속 음악방송에서 요셉을 처음 본 순간 운명 같은 사랑을 느낀 그녀는 요셉이 자신의 천생연분이라는 자기 확신에 차서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행동력을 보인다.
세기말,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가능했던 그때로
아이돌 스타를 손 닿는 곳으로 끌어내려 만들려 한 작은 천국에 어느 날 예기치 못한 불청객이 방문하면서, 이 여성 범죄자 집단은 점차 위기에 몰린다. 그들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누군가 상상했더라도 이내 단념했을 금지된 욕망을 소설 속에서 실현해 보이고자 한 작가는 실제 범죄를 계획하듯이 치밀한 동선을 그리고, 세심하게 설정한 캐릭터들을 통해 착실히 사건을 전개한다. 탄탄하게 구성된 플롯을 망설임 없이 밟아나가는 이 작품은 그 결과 실제를 방불케 하는 생생한 현장감을 획득한다.
『성소년』 속 아이돌 납치사건이 현실성 있게 여겨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90년대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있을 것이다. 제도적 허점이 많았지만 그만큼 가능성도 많았던 시기이자 한 세기의 끝이 오리란 것을 알기에 마음껏 망가질 수 있었던 그때, 사회를 잠식하고 있던 타락의 기쁨과 종말에 대한 기대감이 소설 속에 그대로 옮겨져 있다. 과거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들을 연상케 하는 서술이 곳곳에 배치되어 현실감을 더한다.
이희주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의 제목을 일본의 전후 신세대 작가 구라하시 유미코의 『성소녀』(1965)에서 따왔음을 밝힌다. 허무주의적, 퇴폐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억을 잃은 존재의 혼란을 다룬다는 점, 남성 중심으로 활동하던 학생운동 세력의 위선을 조소하고 혁명보다 전복적인 사랑을 내세운다는 점 등, 『성소년』은 『성소녀』와 희미한 윤곽을 공유한다. 그 윤곽이 이 젊은 작가에 의해 수십 년의 시간을 넘어 독창적인 서사로 재탄생했다는 점은 놀랍다. 그렇게 이희주는 영영 되돌아갈 수 없는 지난 시절을 이 책 속에 되살려놓았다. 책장을 넘길 때 이는 바람에서 “정말 그해의 공기가 느껴”(『성소년』, 11쪽)지는 듯하다.
기본정보
ISBN | 9788954682947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1월 05일 |
쪽수 | 348쪽 |
크기 |
136 * 201
* 27
mm
/ 408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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