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의 집
수상내역/미디어추천
모차르트의 흔적으로 가득한 도시 잘츠부르크, 슈베르트가 ‘겨울 나그네’를 작곡한 잘츠부르크 근교 그문덴 호숫가 2층집, 쇼팽이 친구에게 지상의 낙원이라 편지를 보냈던 에스파냐의 마요르카 섬, 베르디가 전 재산을 기부해 밀라노에 세운 ‘음악가의 집’ 등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신을 향한 경외심을, 병으로 인한 고통을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한 기쁨 으로 탈바꿈한 천재 작곡가 20인의 삶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책의 총서 (42)
작가정보
저자(글) 양기승
저자 양기승은 빛고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일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빈 국립음악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했다. 뒤늦게 시작 한 빈에서의 유학 생활 이래 어느새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현지에서 호흡하고 느끼며 작곡을 할 수 있어 빈에 오 래 머물렀고 이에 전적으로 동의해준 가족은 긴 세월을 버티는 힘이 되어 주었다. 그동안 한국어 및 독일어 판 교회 오페라 「구레네 시몬」을 비롯해 다수의 관현악곡, 합창곡, 실내악곡을 국내외 무대를 통해 발표했다. 작업시간 틈 틈이 취미생활로 길고 짧은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가끔 국내 일간지나 월간지의 청탁으로 현지 악단의 근황을 전하 는 음악 칼럼 등을 썼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빈 국립 오페라좌 초연공연과 및 빈의 대표적 콘서트홀 시즌 정례 저 널리스트 모임에 초대회원 자격으로 여러 차례 참가했다. 전주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2006년부터 3년간 현지 빈 현지 한글학교 교장을 맡아 교포 2세와 3세에게 우리말과 민요를 지도한 일을 대학에서 제자를 가르친 일에 버금가는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은 오라토리오 한 편을 작곡하면서 「모차르트 에세이」를 쓰고 있다.
사진 진옥녀
목차
- 01 요제프 하이든
나는 결코 소멸되지 않으리
0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음악은 하늘로 향하고 마음은 인간을 향했다
03 루트비히 판 베토벤
역경을 예술로 승화시킨 거인
04 프란츠 슈베르트
영원한 젊음 그 고독한 초상
05 로베르트 슈만
시인의 사랑 사랑의 시인
06 펠릭스 멘델스존
다복했던 천재 서정의 화신
07 프레데리크 쇼팽
건반 위의 시인, 그의 영혼은 늘 아팠다
08 프란츠 리스트
영원을 향해 던진 음악의 창검
09 요하네스브람스
자유를 위한 절대 고독
10 주세페 베르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모두를 위해 눈물을
11 리하르트 바그너
너무나 인간적인, 신화 속의 주인공
12 안톤 브루크너
저 높은 곳을 향하여
13 구스타프 말러
나는 다시 살기 위해 죽으리라
14 후고 볼프
스스로를 찾아 헤매던 미아
15 안토닌 드보르자크
나의 조국을 오선지 위에
16 조르주 비제
오페라 무대 뒤에 숨은 마지막 인물
17 클로드 드뷔시
바다. 그의 음빛깔의 연원이 되다
18 벨라 바르토크
민족음악, 그 이상을 찾아서
19 아르놀트 쇤베르크 상ㆍ하
새로운 길 그 짐을 나에게
영원한 하모니 그 실체는 어디에
20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오로지 신의 영광을 위하여
에필로그
길 위에서 만난 천재 작곡가 20인
출판사 서평
길 위에서 만난 천재 작곡가 20인,
그들의 숨결과 음악을 찾아 나선 시간여행자의 기록
“제단 정면 바닥에는 구리로 된 커다란 묘지 판 하나가 놓여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685년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나
1750년 65세를 일기로 라이프치히에서 세상을 떠나다.’
그랬다. 1750년, 그가 떠남으로 150년 바로크 음악사가 막을 내렸다.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가 그가 성 토마스 소년합창단을 지도하며
비스듬히 서 있는 곳이었으며, 때로는 쳄발로 앞에 앉아
불호령을 퍼붓던 현장이었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초대장
단순히 먹고 마시고 자는 곳이 아닌 자신의 취향이 드러나는 공간으로서의 집이 주목받고 있다. 겉모습이 똑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든, 도심에서 벗어난 전원주택에 살고 있든 사람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집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한다. 더불어 역사를 간직한 집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오랜 세월 시간의 향기가 자연스레 배어 있는 공간을 보며 그곳을 채우던 사람과, 사건과, 즐거움과, 일상을 상상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예전부터 좋아하는 사람의 집에 초대받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작곡가의 집―천재 작곡가 20인, 그들의 삶 속으로 떠나는 여행』은 20명의 작곡가로부터 날아온 초대장이다. 30여 년간 빈에서 작곡가로 활동한 저자 양기승은 지금은 세상에 없는 작곡가들을 대신해 독자들을 그들의 집과 음악과 삶 속으로 안내한다.
하이든에서 시작한 여행은 고전파로 분류되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를 거쳐, 가곡ㆍ피아노ㆍ오페라ㆍ심포니의 대표 작곡가―슈만, 멘델스존, 쇼팽, 리스트, 브람스, 베르디, 바그너―를 만난 다음 국민음악파를 경유해―브루크너, 말러, 볼프, 드보르자크, 비제, 드뷔시, 바르토크― 현대음악의 결정적 진입과정인 제2 빈 악파 쇤베르크에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 여정은 바흐로 다시 이어진다. 저자는 천재 작곡가들이 살았던 생의 일부분을 함께한 공간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삶과 음악을 우리 곁으로 불러낸다.
“시밖에 모르고 살다가 간 사람들을 시인이라 부르듯
어디로부터 찾아온 연유인지도 모른 채 오로지 음악의 창조만을 위해
자신의 혼을 불사르다가 떠난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작곡가라 부른다.”(9쪽)
생의 마지막까지 예술가들의 삶은 오로지 자아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었고 불길이었다. 모차르트의 흔적으로 가득한 도시, 잘츠부르크, 슈베르트가 「겨울 나그네」를 작곡한 잘츠부르크 근교 그문덴 호숫가 2층집, 쇼팽이 친구에게 지상의 낙원이라 편지를 보냈던, 「24개의 프렐류드」의 산실이기도 한 에스파냐의 마요르카 섬, 베르디가 전 재산을 기부해 밀라노에 세운 ‘음악가의 집’, 바그너가 만든 종합예술의 신전,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그림 같은 호수 아터제 가까이에 마련한 말러의 작업실, 드뷔시 음악의 연원이 된 코트 다주르 해변 등 이 책은 작곡가들의 삶에 한발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와 사진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따뜻한 봄날, 생의 기쁨과 슬픔, 희열과 절망이 함께하는 천재 작곡가 20인의 삶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382~387쪽, ‘길 위에서 만난 천재 작곡가 20인’ 참조.)
작곡가들의 대표 작품이 탄생한 그곳
작곡가 20인의 음악이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듯 그들의 공간과 그곳에 얽힌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신을 향한 경외심을, 병으로 인한 고통을,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한 기쁨을 노래하며 곡을 썼다.
“「천지창조」를 작곡하는 동안 어느 경우에도 스스로 신앙심이 돈독한 척
자만해본 적이 없다.
나는 매일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이 작품이 완성될 수 있도록 내게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빌었다.”(27쪽)
빈 6구 하이든가세 19번지. 현재 하이든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는 이 집의 뒷마당은 아담한 풀밭 정원이다. 그의 나이 64세 때 하이든은 바로 이 정원에 앉아 나무 사이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대표작이자 모든 작품의 집대성인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그는 옆집 아이들을 초대해 정원 안 과일나무에서 직접 거둔 싱싱한 과일로 잔치를 벌이고 천진스러운 담소를 나누곤 했다. 이 작은 정원이 바로 에덴동산이었고 뛰노는 아이들은 아담과 이브의 표상이었다. 형식은 그대로 둔 채 최선을 다해 이를 옹호하며, 대신 늘 자유롭고 새롭게 생각한 고전음악의 대부. 우리는 그를 ‘파파 하이든’이라 부른다.
베토벤의 청각은 1798년, 28세가 되던 해부터 이미 이상 징후를 보였다. 베토벤은 요양을 위해 아름다운 교외마을 하일리겐슈타트로 이사해 빈 19구 푸로부스가세 6번지에 자리를 잡는다.
“오, 나는 청력이 약화되어 갑절의 슬픈 경험을 해야 했고
그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말을 더 크게 해주세요, 소리쳐주세요,
왜냐하면 저는 귀머거리거든요, 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58쪽)
병세에 차도가 없자 베토벤은 프로부스가세 6번지 집에서 「유서」를 썼다. 청각장애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창작열을 불태운, 그의 말대로 최선을 다한 하일리겐슈타트 시기의 작품은 주로 베토벤의 산책로에서 태동되었다. 옛날처럼 산책로 곁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베토벤이 거닐다가 지치면 쉬었다는 곳까지를 그와 함께 거닐며 숨죽여 그를 듣는다. 교향곡 제3번 「에로이카」, 피아노소나타 「발트슈타인」을 비롯해 교향곡 제4번과 제5번 「운명」의 구상과 「전원」 교향곡의 착상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베토벤에게 예술은 자기구원의 방편이었다. 실제 삶에서 불가능했던 그 어떤 것도 음악으로는 표현할 수 있었고 이를 그렇게 한 차원 높은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frei aber einsam’(자유롭지만 외로운). 브람스 자신이 밝힌 스스로의 신조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를 강요된 자유, 강요된 고요함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브람스 자신을 이를 누리며 살았다. 브람스가 세 번의 여름을 보낸 오스트리아 남부 도시 푀르차흐는 그의 표현대로 너무나 매혹적인 아름다운 호숫가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은 마치 처녀와 같은 호숫가 마을입니다.
걷는 곳, 닿는 곳마다 끝없는 선율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산책을 할 때도 그것들을 짓밟지 않으려고 조심해야 하는, 지금 나는 그런 처지에 있습니다.”(160쪽)
바로 이러한 악상들을 모아놓은 곡이 교향곡 「제2번」이며 푀르차흐의 하늘, 바람, 여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또 하나의 대작이 바로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Op.77이다. 브람스를 따라 호숫가 산책길을 걷는다. 호수의 물빛이 햇볕을 받아 점차 변한다. 선물받은 푀르차흐 호수의 옛 그림 안에서 여전히 애틋한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고 있다.
리스트의 피아노, 브루크너의 오르간, 드보르자크의 비올라
작곡가들의 집에는 그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오롯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악기들이다.
“리스트는 반드시 피아노 위에서 작곡을 했다던가. 약음기가 부착된 피아노 건반을 몇 개 눌렀다.
들릴 듯 말듯한 작은 소리, 이제는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바람결 종소리였다.
생에서 한 번도 완벽하게 떨쳐버리지 못했던, 그리고 마침내 그 종소리에 귀의해
「그리스도」로 신 앞에 사죄했던 한 시대의 거인이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었다.”(152쪽)
헝가리 부다페스트 6구 뵈뢰스마르티가 35번지, 옛 리스트 아카데미가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다. 리스트는 누구인가. 그는 빈에서 클래식을, 파리에서 기교에 대한 새로움과 정치적 아이디어를, 이탈리아에서는 문학과 그림을 만났다. 고국 헝가리에서 얻은 집시음악의 본령은 날로 확장 변주되었고 바이마르에서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현대 음악을 전파하는 데 혼신을 기울였다.
브루크너는 평생을 오르간과 함께 살았다. 처음에는 생활을 위한 직업으로 오르간을 연주했지만 일생 동안 그것은 하나의 숙명적 끈이었고, 사명이었으며, 신앙이 되었다. 그의 교향곡에 나오는 저속음, 보속음 그룹이며 즉흥연주적인 요소들, 그리고 음향적인 제반 이유들이 바로 오르간에서 연유하고 있다. 안스펠덴에 브루크너 생가 박물관 1층에 자리한 상트 플로리안 성당 오르간을 보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바로 이 오르간이다. 그의 평생을 묶어놓았던 운명의 고리, 그리고 전 생애를 지배했던 그 건반부가 내 앞에 손때 묻은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상트 플로리안 성당 오르간, 그것은 브루크너의 모든 것이었다.”(215쪽)
드보르자크에게 비올라는 브루크너의 오르간과는 다른 의미다. 그는 다른 작곡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적 환경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음악가로서의 삶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드보르자크는 원래 비올라 주자였습니다. 11년 동안이나 무명의 비올라 주자로 여러 악단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지요. 만약 그에게 불타오르는 작곡에 대한 염원이 없었다면, 그는 한평생 생계를 위해 술집을 전전하는 비올라 주자로 늙어갔을지도 모릅니다.”(266쪽) 체코슬로바키아 넬라호제베스 마을에 있는 드보르자크의 생가 박물관 관리인이 들려준 얘기다. 드보르자크는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 이상을 작품을 통해 실현하고픈 헌신에 가까운 바람을 평생 간직하며 살았다. 만년에 잠시 미국에 건너가서도 흑인 노예들의 영원한 향수를 적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보헤미안의 민속춤을 모든 작품의 밑바닥에 깔았다. 이 민속음악을 작품의 근저로 삼은 드보르자크는 이른바 국민악파 작곡가가 된다.
시대가 외면한 작곡가들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지, 높은 언덕 위에 금방이라도 하늘로 비상할 듯 비제의 날렵한 흉상 조각이 묘비 위에 얹혀 있었다. 1873년 여름 오페라 「카르멘」의 리브레토가 완성됐다. 비제는 가족들과도 떨어져 아버지의 별장이 있는 센 강변 부지발로 거처를 옮겨 광기 들린 사람처럼 오페라를 써내려갔다. 1874년 11월에야 작곡을 끝낸 비제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금껏 사람들은 내 오페라를 보고 지루하고 아이디어가 없다고 욕해왔지만,
이번 작품은 그런 염려들을 일소할 것이네.
생동감이 넘치고, 모든 것이 뚜렷하며 화려한 색상으로 꽉 찬 오페라를 방금 완성했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오게나. 반드시 놀랄 걸세.”(286쪽)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겨우 제1막까지를 관객들이 참고 기다려주었을 뿐, 제3막 이후 객석은 얼음장처럼 냉담해졌다. 이유는 분분했다. 집시 주인공을 영웅화하고 군인들을 모독했으며 공개된 무대에서 주인공을 칼로 죽이는 잔혹함이 오페라 코미크에 올리는 작품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간에 비제는 사실주의 오페라의 새로운 항해를 위해 힘찬 고동 소리를 울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해 10월 23일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대성공을 거둔 오페라 「카르멘」은 힘찬 날개를 달았다. 니체는 「카르멘」을 듣노라면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음악가, 그리고 더 나은 청중이 된다”며 극찬했다. 비제 못지않게 동시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작곡가가 또 있었으니 바로 바르토크다.
센티멘털하고 몽상적이며 비애에 가득 찬 노래들, 작품의 뿌리가 되었던 농가 마을의 노래들을 모아놓고 연구했던 바르토크의 자취를 더듬어보고자 부다페스트 쿠살란가 29번지 바르토크 기념관을 찾아갔다. “가난하고 병약했던 바르토크가 그의 조국에서 마지막까지 살았던 집이다. 당시 이 나라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결국 이해하지 못했고, 들을 수 있는 기회마저 고의적으로 외면했지.”(315쪽) 1980년대 말 저자와 함께 이곳을 찾았던 지금은 고인이 된 저자의 은사 다비드 교수의 말이다.
“유리벽 안에 그 유명한 솔방울들이 들어 있었다. 바르토크가 평생 동안 늘 책상 위에 쌓아두었던 소품, 그것은 바로 그의 창작을 위한 계시였다. 솔방울이 겹쳐져 쌓이는 각도, 버드나무의 새순이 돋아나는 각도가 그에게는 예사로운 법칙이 아니었다. 0.618:0.382, 이것은 자연 현상의 황금분할이었고 그대로 바르토크 작품에서 형식구성의 원리가 된다.”(318쪽)
쇤베르크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바르토크는 끝까지 12음 음계까지도 조성 안에서 무조(無調)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쇤베르크와 함께 ‘새로운 음악으로 가는 길’을 개척한 또 한 사람의 길잡이가 되었다.
쇤베르크에서 다시 바흐로 이르는 길
음악사의 거대한 흐름을 바꿔놓은 작곡가로 둘만 말하라면 바흐와 쇤베르크를 꼽을 수 있다. 한 사람은 평균율에 의한 조성 음악시대 200년사의 아버지이고, 또 한 사람은 그것의 완전한 파괴자로 새로운 음악의 창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쇤베르크의 12음 기법 음악의 출발점은 일단 조성 체계와 기능적 하모니를 부정하는 데 있다. 12음 기법에 따른 첫 번째 작품 「피아노를 위한 다섯 곡의 소품」 Op.23은 1923년 발표됐으며, 이해를 기점으로 음악사에 거대한 획이 그어졌다. 이른바 ‘오늘날의 음악’이라 칭하는 거대한 분수령이 찾아온 것이다.
“12음 기법의 산실, 빈 근교 뫼들링에 자리한 쇤베르크 하우스를 찾아 나섰다.
인구 2만 5천명의 한가로운 마을, 베른하르트가세 6번지는 산자락 아래에 있었다.
쇤베르크를 따르는 이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이곳에 모였다.
한데 모인 그들은 토론하고, 연습하고, 연주를 실현시키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다.”(345쪽)
1950년 쇤베르크에게 그토록 경원해 마지않았던 빈 시로부터 「명예시민증서」가 전달된다. 이것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이룩해놓은 빈 고전파의 대칭점에 선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크가 이룩한 제 2빈 악파의 ‘공인 인증서’나 마찬가지였다.
좋은 음악이 세상에 통용되어야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음을 현인 공자(孔子)도 애타하며 설파했다. 실로 많은 세월, 많은 작곡가들이 무수한 밤을 새워가며 좋은 음악, 새로운 하모니를 찾아 헤매어왔음을 극히 부분적이나마 현장을 살펴가며 추적해보았다. 위대한 선각자들은 언제고 뒤따라오는 천재들에게 길을 예시해주었다. 그에 대한 화답인 양 균형과 대비, 통일성으로 어우러진 꽃봉오리를 피웠지만, 이내 형식미의 확립과정에서 결여되었던 낭만 정신을 추구하느라 심혈을 쏟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도를 넘어 만연된 주관성을 배제하기 위해 새로운 기법을 찾아내느라 온 생애를 바쳤던 하이든에서 쇤베르크까지의 음악사적 노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 모습을 바꿔가며 지속될 것이다.
“이 지구상의 모든 마스터피스가 일시에 없어진다 해도,
바흐의 『평균율곡집』 두 권만 온전하다면 거기에서부터
모든 음악 문헌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368쪽)
음악사의 표상 한가운데에 바흐가 있다. 그가 우리에게 숭고한 여분을 남겨주고 떠났기에 언제고 그의 음악을 통해 이 세상의 하모니는 새롭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확신한다. 새로운 예술의 길 또한 바흐의 정신을 통해 그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임을 말이다.
끝으로 이 글은 2001~2003년까지 『객석』에 ‘위대한 예술혼의 흔적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연재한 원고를 바탕으로, 이를 상당 부분 보완해 책으로 엮었음을 밝혀둔다.
기본정보
ISBN | 9788935665402 | ||
---|---|---|---|
발행(출시)일자 | 2013년 03월 28일 | ||
쪽수 | 388쪽 | ||
크기 |
148 * 210
mm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이상의 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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