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에서 시인은 북을 치는 고수처럼 간간히 구음을 넣어 제 존재를 각인시켜줄 때도 있지만, 다른 슬픔에 장단을 맞춤으로써 더욱 빛나는 시어들을 풀어낸다. 무엇보다 '시' 그 본래에 가 닿고 싶어 하는 시인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의 바람은 '신음 없이 발작 없이 어머니의 오래된 손맛 같은 시 한 편 쓸 수 있을까'하는 것뿐이다. '어제까지 당신은 아팠을 것이고 오늘부터 나는 탱화를 그리기로 한다'라고 말하는 시인에게서는 무언가 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과 의지가 느껴진다. 시인의 작품들은 가장 치열한 삶의 정중앙을 달리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퇴촌에서 놀다〉
퇴촌에 가기 위해서는 아라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경안천과 나무 사이 넓은 습지를 가진 곳, 습생하는 것들
이 한껏 뿜어낸 공기로 퇴촌은 벌써부터 격렬하다
강과 나무 사이, 라고 말했던 지점이 저녁 역광을
받고 몸 뒤섞는다. 저 뒤섞음이 내 호흡을 고르게 하는,
지금은 거룩한 저녁의 시간
의사도 처방전도 퇴촌에서는 백지가 된다 어두워지는
생태환경공원 속 깊은 곳에서 바람 맞으며 습생 목숨들
가쁜 숨 맞으며 나 오래도록 밀린 시를 쓰는데
저기 저 수초를 밀고 나오는 두꺼비 눈알의 굵은 힘줄!
두꺼비의 아라리가 밀고 있는 알 수 없는 힘이 팔당 물줄
기를 죄다 고요로 바꾸고 있다, 아라리는 힘이 세다
이 책의 총서 (23)
작가정보

시인
1978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현대시』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목숨』이 있다.
"시는, 여전히, 치유이고 위로이고 이상한 종교라고 말한다면 그대는 철없는 내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겠지.
그러나 어디 철없는 것이 내 손가락뿐이겠나. 지문뿐이겠나. 가슴은 대책 없이 뜨겁고 새벽에도 뜨겁고 나는 나무의 호흡법을 가늠해볼 뿐,
손가락과 길과 강과 나무와 한없이 좁고 긴 넋을 겹쳐본다.
치유의 간절함과 위로의 격렬함, 이상한 종교가 뿜어내는 이상한 빛으로 없는 문을 여느라
나는, 여전히, 진땀이다. 눈물이다." - 2008년 4월 박진성
목차
- 제1부
화투 치는 여자들·12
모하메드 이야기-아라리 2·14
동백병원·16
나무의 경제·18
트왈라잇 블루, 축제, 개와 늑대의 시간·20
킬리피쉬·22
중세의 겨울·24
기억의 고집·25
외도·26
유채꽃밭·28
안개의 나라·30
퇴촌에서 놀다·32
새벽 세 시의 앵커우먼·33
자화상·34
발작이 내게 준 것들·36
나무의 직유법-아라리 3·38
새벽, 적벽강·40
어머니와 산문시·41
한국인 경필이-아라리 4·42
순례·44
좇·46
제2부
아직, 동백·50
아주 오래된 잠·52
비 맞는 측백나무·53
백제의 가을·54
봉구 이야기-아라리 5·56
아버지의 전자 오르간·58
벌초·60
퇴촌한의원·61
아버지의 악보·62
열, 이상기후, 장미가 지는 시간·64
지느러미의 힘으로·66
아버지, 내 임종을 지켜주세요·67
직지사 탱화·68
명경(明鏡)·69
내가 참화도를 들고 간 곳은 대초원이 아니었네·70
곰곰, 11월은-안현미 시인께·72
제3부
퇴촌에 가다·76
러시아 혁명사를 읽는 밤·78
능내 남한강 가 건너편 첩첩산중을
누나는 청산이라 하네·80
대평리 약사(略史)-아라리 6·81
우리는 자유병동에서 놀았다·82
식물인간·84
악공의 방·86
병가족·88
문중회의·90
노숙·91
함양에서 놀다·92
약도 없다·94
발작 없이도 나는·96
시집 속에 꽂혀 있는 지하철 패스 한 장·98
제4부
서른·100
오래된 싸이월드·102
수정과 앞에서·104
장마·105
애자·106
할머니의 카세트-아라리 7·108
비 맞는 까따리나·109
바람 부족의 장례식·110
사랑하는 사람을 보다
-알모도바르 영화, 「Talk to her」에 쓰다·112
어머니의 등·114
편집증 편집장·115
여수에서 배우다·116
외롭고 웃긴 가게·118
식목제·119
불안과 놀다·120
약발이 받지 않는 날·122
물고기·124
조치원을 지나다·125
압생트를 마시며, 테오에게·126
어머니의 생리·128
작품 해설 | 송재학(시인)
나무와 물과 음악들의 물관·130
책 속으로
저기 저 수초를 밀고 나오는 두꺼비 눈알의 굵은 힘줄! 두꺼비의 아라리가 밀고 있는 알 수 없는 힘이 팔당 물줄기를 죄다 고요로 바꾸고 있다, 아라리는 힘이 세다
-「퇴촌에서 놀다」중에서
출판사 서평
2005년 첫 시집 『목숨』으로 시가 된 시인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따스한 봄이었고, 눈부신 노란 낯빛을 표지로 얼굴 들이민 시들은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계절 모르게 추웠고 어두웠고 슬펐더랬다. 시인은 아프다고 했다. 아니 아팠다. 그러나 이는 모름지기 당당한 와병이었다. 그가 제 병을 겁냈던가, 감췄던가, 치유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던가. 아니 아니다. 그냥 let it be, 내버려둔 자가 있었다면 바로 그다. 그리고 그가 3년 만에 들고 나온 두 번째 시집 『아라리』를 통해 나는 그가 보무도 당당! 하며 건강! 한 시인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시인 박진성 얘기다.
‘아라리’라 했다. 아라리라니. 책을 펼치다 문득 “아라리는 힘이 세다”라는 구절 앞에 눈이 고인다. 그렇지. 아라리를 누가 배워 아나. 그냥 몸이 아는 거지. 흥이 날 때 우리는 얼씨구, 턱을 쳐들지 아라리, 턱을 떨구지 않는다. 고로 아라리는 우리네 슬픔의 감출 수 없는 딸꾹질인 바, 박진성의 아라리 연작을 필두로 한 이번 시집 속 시편들을 읽다보니 일단 전작과는 큰 차이 하나가 두드러짐을 알겠다. 그러니까 첫 시집이 제 속의 ‘아라리’에 몰두했던 때라면 이번 시집 속에서는 제 주변 사람들의 ‘아라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모하메드, 사정을 듣자하니 한 달 치 월급을 카지노에 다아/떼였다는, 모하메드는 소주에 얼큰하게 취해서 아리랑, 아리랑,/아라리를 부르는 거였습니다/어두운 포장마차 구석진 자리 모하메드 물먹은 눈이 그만/초승달처럼 포장마차 바깥으로 빛을 뿜어내는 거였습니다/일해도 일해도 실론섬은 인도양 스리랑카에 떠 있는 건지/모하메드 어눌한 아라리가 내 가슴을 스리랑 스리랑 치는 거였습니다 -「모하메드 이야기-아라리 2」 중에서
전편을 놓고 비유하자면 그는 소리꾼이었다. 제 속에 맺힌 응어리가 한을 더할 때 소리의 깊이가 한층 더 여물어지는 소리꾼.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 그는 목을 놓고 채를 잡았다. 고로 고수의 역할일 때가 더 잦았다는 말이다. 간간히 구음을 넣어 제 존재를, 제 소리를 분명하게 각인시켜줄 때도 있었으나 정작 그가 빛날 때는 북소리로 다른 슬픔에 장단을 맞추는 순간이었다. 그는 알람을 맞춰놓은 시계처럼 딱딱, 그러니까 북채를 휘둘러야 할 때를 귀신같이 알았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인의 흔적은 그러니까 ‘시’, 그 본래에 가 닿고 싶어 하는 시인의 꿈틀거림이다. 시인은 한창 시를 앓고 있다. 첫 시집은 처음이었으므로 앓을 여유나 필요조차 감지할 새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로부터 한 발이 빠져나오고 보니 어럽쇼, 이거 사방팔방이 길 아니면 낭떠러지의 형국임을 알았을 것이다. 이를 어찌 할까나.
시인의 바람은 오직 하나다. ‘신음 없이 발작 없이 어머니의 오래된 손맛 같은 시 한 편 쓸 수 있을까……’ 하는 것. 세상 어떤 시인이 이러한 간절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사방팔방 거울을 달고 내 얼굴만, 내 뒤통수만 내 등뼈만, 내 엉덩이만, 내 다리만 쳐다봤던 과거에서 걸어 나온 시인에게 길은 막다름이자 무지개일 것이다. 그래서 설레고 그래서 두려움이듯 한 발 다가섰다 한 발 물러서는 시편들에서 ‘獨水’와 ‘獨守’, ‘外島’와 ‘외도’라는 식의 언어유희랄까 어떤 재미적인 요소들로 즐거움을 들키다가도 문득 ‘나는 미친놈이 아니다’라는 구절로 애써 자신을 다잡아두었던 것일 테다.
‘어제까지 당신은 아팠을 것이고 오늘부터 나는 탱화를 그리기로 한다’라고 말하는 시인에게서 어떤 강한 의지를 읽는다. 그것이 삶에 대한 것이든 사람에 대한 것이든 나아가 죽음에 대한 것이든 무언가 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때 우린 가장 치열한 삶의 정중앙을 달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박진성은 그렇게 여전히도 젊음이다. 그것이 눈물겹다.
“악화와 회복의 지루한 공방전.” 이 시집에 등장하는 시 「나무의 경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무참하다, 우리들의 삶, 역시 이렇게 요약되지 않는가? 그 공방전 사이, 죽음을 방불하게 하는 삶은 “어떤 이력서도 내 병력을 받아주지 않”는 시간 사이에서 죽음을 다스리는 고독을 만들어낸다. 시인은 “발작하는 나무에 새들은 집을 짓지 않는다”라고 말하나 그러나 시인이여, 삶이 우리를 천천히 죽일지라도 그대 시집 안에는 이렇게 많은 새들이 깃을 내리고 있었다. 시 쓰는 한 인간의 시간에 깃을 내린 그 새들을 보기 위해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은 바다로 가기 위해 우리는 밤기차를 타야 할지도 모르겠다. 새벽에 깨어서 이 시집을 읽는 시간이 오면 기차간의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모든 것을 접고 잠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나날의 불면을 치유하는 잠.
-허수경(시인)
‘적요’와 ‘울분’, 이 두 말을 오래 매만지며 읽었다. 옆구리에 넣은 손이 더듬는 갈비뼈처럼, 어떤 말들은 기호가 아니라 이처럼 단단한 실체이기도 한 것이다. 박진성의 적요는 급히 나르는 물지게 같아서 출렁이는 수위(水位)가 다 그대를 향해 있다. 그러다 마침내 종이에 내려앉은 물방울처럼 이토록 고운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울분도 그렇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하는 자는 끝내 제 자신을 미워하지만, 제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는 자의 울분은 이미 순연한 서정이다. 아, 이 시인이 벌써 이런 경지에 이르렀구나. 그를 읽는 내내 오래 아팠으나, 책을 덮고 나니 안팎이 다 환한 봄이었다. -권혁웅(시인)
기본정보
ISBN | 9788925518855 | ||
---|---|---|---|
발행(출시)일자 | 2008년 04월 30일 | ||
쪽수 | 147쪽 | ||
크기 |
124 * 195
mm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랜덤시선
|
Klover 리뷰 (0)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문장수집 (0)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판매가 5,000원 미만 상품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
반품/교환방법
* 오픈마켓, 해외배송 주문, 기프트 주문시 [1:1 상담>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반품/교환가능 기간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반품/교환비용
-
반품/교환 불가 사유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2)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3)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4)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5)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이상 ‘다운로드’를 받았거나 '바로보기'로 열람한 경우
6)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7)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8) 세트상품 일부만 반품 불가 (필요시 세트상품 반품 후 낱권 재구매)
9) 기타 반품 불가 품목 - 잡지, 테이프, 대학입시자료, 사진집, 방통대 교재, 교과서, 만화, 미디어전품목, 악보집, 정부간행물, 지도, 각종 수험서, 적성검사자료, 성경, 사전, 법령집, 지류, 필기구류, 시즌상품, 개봉한 상품 등 -
상품 품절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2)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분 좋은 발견
이 분야의 베스트
이 분야의 신간
-
다시 한 번 사랑을10% 13,500 원
-
나에게로 오는 길10% 11,700 원
-
큰 글자로 남자를 읽다10% 11,700 원
-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10% 9,900 원
-
허난설헌전집 310% 37,8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