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패배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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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사상을 통해 보는 현대 일본 사회의 폐쇄회로
작가정보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종합문화연구와 표상문화론 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일본문화연구, 탈식민지론, 문화정치, 문화이론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저서로 『내전과 위생』 『종말론 연구소』 『제국일본의 사상』 『말하는 입과 먹는 입』 등이, 역서로 『중국의 체온』 『세계를 아는 힘』 『정치신학』 『예외상태』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근대초극론』 등이 있다.
목차
- 책머리에
1부 비평
1장 말기의 눈과 변경의 땅
고바야시 히데오의 비평과 만주 기행문
2장 현대 일본의 비평과 그 임계점
가라타니 고진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2부 민주주의
3장 보편주의와 식민주의
일본 전후민주주의의 임계점
4장 평화, 천황 그리고 한반도
와다 하루키와 전후 일본 평화주의의 함정
5장 핵의 현전과 일본의 전후민주주의
‘현실적 이상주의’의 계보와 정치적 심연
3부 혁명
6장 혁명을 팔아넘긴 남자
혁명정치의 아포리아에 관하여
7장 요도호 납치 사건과 혁명의 황혼녘
비밀, 음모, 테러와 북한이라는 무대장치
에필로그 양 떼, 늑대 무리, 그리고 기민(棄民)
포스트 3·11의 사회 풍경에 대한 소묘
참고문헌 /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전후 일본에 내재한 식민주의를 감지하지 못하다
고바야시 히데오와 가라타니 고진의 비평
1부 ‘비평’에 묶인 두편의 글은 전후를 대표하는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비평 작업을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패전 이전에 주로 활동한 ‘근대 일본 문학비평계의 전설’ 고바야시 히데오는 일본의 정체성을 문화적 전통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 수행 속에서 찾았다. 그리고 전쟁 시기 임박한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생활자에게서 궁극의 일본인을 발견했다. 그러나 고바야시의 시선은 역설적으로 일본 본토가 아니라 변방으로 향했다. 식민지와 변방에서 임박한 죽음을 절대적 사실로 묵묵히 받아들이는 궁극의 일본인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죽음의 정치적 의미는 끝내 추궁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즉, 강요된 죽음을 수긍하는 것만이 정치적 실존의 유일한 길로 만들었던 식민주의의 비밀에는 끝내 다가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패전과 함께 모든 것은 망각의 늪으로 빠져버렸다. 전후 일본은 이렇게 시작했다.
2장은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일본 비평가이자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의 1970년대 연재작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을 실마리 삼아 전후 일본 비평의 임계점을 고찰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신좌파가 ‘연합적군 사건’(1972)으로 몰락한 후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고 평가받은 바로 그 시점에 마르크스론 연재를 시작했다. 그의 의도는 마르크스 읽기의 가치가 끝나지 않았음을 말하는 동시에 기존 일본 마르크스주의의 마르크스 독해가 교조적이었음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것이 전후 일본 비평의 한 정점이자 일본 비평을 근본적으로 성찰한 성과였다고 평가하면서도, 가라타니의 기획 역시 청산되지 못한 식민주의라는 한계 내에 머물렀다고 비판한다. 식민주의에 대한 성찰은 있을지언정 보편주의와 연루한 식민주의를 내재했던 전후민주주의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전후 보편주의의 공백과 함정
민주주의와 평화 논의의 발목을 잡은 식민주의
2부 ‘민주주의’는 본격적으로 전후민주주의의 한계를 분석하는 세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3장은 전후민주주의의 출발점에서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고상한 이념을 내세운 난바라 시게루(南原繁) 논의의 한계를 살핀다. 모든 인류가 서로 창을 겨누는 일을 멈추고 도덕의 고양을 통해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난바라의 꿈은 일본 전후민주주의의 출발점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꿈은 끔찍한 폭력에 눈감은 것이었다. 인류의 평화는 보편적 규범을 벗어나는 불순분자들을 ‘비인간’으로 규정하고 궁극의 적으로 삼아 벌어지는 섬멸전쟁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전후민주주의는 그렇게 보편주의와 식민주의의 굳건한 결합 위에서 평화를 지켜낸 셈이다. 이러한 인식을 놓친 채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한일 화해를 주장한 박유하의 사례는 전후 일본 보편주의와 리버럴의 신화가 가진 맹점을 정확히 보여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누구보다도 한국의 민주화와 동북아시아의 공생을 꿈꾸었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도 식민주의 비판을 말소한 평화국가론으로 전향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4장은 와다 하루키의 지적, 정치적 여정을 상술하며 전후 일본 평화주의 운동을 평가한다. 식민주의 비판에서 출발한 와다의 입장은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 과정을 거치며 ‘일본의 자연스러운 평화 감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일본 국민들은 2차대전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전쟁과 군대를 거부하고 평화를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과정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쟁 시기 미국에 의해 고안된 심리전이었음을 지적하며 와다 입장의 토대를 비판한다. 와다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없이 전후 일본이 온전한 국가가 될 수 없다’는 타당한 입장을 회복할 것을 주문한다.
2011년 3·11 대지진(도호쿠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후의 ‘원자력 개발과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제에 패전 이전의 초국가주의가 지속되고 반복된 측면이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5장에서는 그 명제를 다룬 논의 중에서도 국제정치학자 사카모토 요시카즈(坂本義和)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사카모토는 전후 대표적인 일본 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의 현실적 이상주의를 기치 삼아 핵과 원자력을 시민의 일상감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강력한 민주주의를 신봉했다. 하지만 그는 과학기술을 제어하는 담론이 비민주적 전문가주의에서 비롯됨을 과소평가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민주주의가 핵과 원자력을 제어해야 한다는 그의 이상론은 근원적으로 불가능성을 내포했으며, 그로 인해 그의 현실적 이상주의는 ‘현실’을 상실했다고 평가한다.
혁명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범죄자로 전락한 혁명가들과 혁명정치의 해체
3부 ‘혁명’는 전후민주주의를 누구보다도 날카롭고 급진적으로 문제화했지만 오히려 체제에 의해 유품으로 전락한 일본 혁명정치에 대해 말한다. 6장은 전 공산당 간부 이토 리츠(伊藤律)의 귀환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의를 소개하며 혁명정치의 아포리아를 탐구한다. 스파이 혐의를 받고 일본공산당에서 제명되어 중국에 장기간 ‘비공식’ 구금되었던 인물인 이토 리츠의 사례는 전전과 전후의 일본공산당 내부 권력투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후 일본공산당을 대표해온 노사카 산조가 사실 삼중의 스파이였음이 이 과정에서 드러나며, 이토 리츠에 대한 그전의 각종 음모론과 비판이 공산당 수뇌부에 의해 은폐되고 조작된 소문의 결과물이었음이 알려진다. 이렇듯 ‘전체주의 시대를 목숨 걸고 버텨낸’ 혁명의 진리와 정의는 이제 스파이가 암약하는 정보전 스펙터클로 소비되게 되었다.
7장은 잘 알려진 요도호 납치 사건을 통해 혁명정치가 ‘비밀과 음모라는 스펙터클’로 용해될 운명이었음을 말한다. 권력화되어가는 일본공산당을 비판하며 등장한 학생운동 중심의 일본 신좌파는 1970년대 요도호 납치 사건(1970)과 연합적군 사건 등 폭력사건을 거치며 사회운동의 기반을 상실해갔다. 냉전 이후 자본주의 체제는 혁명의 이념과 전망에 비밀스러운 정보전과 반사회적 음모론의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했다. 비행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간다는 극도로 위험해 보이는 구상을 실제로 실행한 요도호 사건은 이런 맥락에서 혁명이란 곧 범죄와 폭력임을 국민들에게 인식시켰다. 이제 혁명가들은 정치가 아닌 범죄의 영역으로 유폐되어 수배 전단지의 흉악범으로 전락했다.
3·11 이후 일본 사회는 어디로 가는가
전후 일본사상을 대표하는 거장들을 통해 보는
일본사회의 안과 밖, 그리고 경계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결론적으로 현재 일본 사회를 진단한다. 3·11을 ‘결정적 국면’이라고 언급하며 현대 일본이 맞닥뜨린 변화의 계기라고 평가하면서도, 그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는 낙관적이라고만 볼 수 없는 전망을 남긴다. 저자는 국가 단위의 전체사회에 포함되면서도 구별되는 ‘개별사회’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바탕 삼아 전후민주주의의 보편주의와 이상주의를 재검토한다. 오늘날 일본에서 야쿠자와 같은 개별사회가 사라지고 ‘하나의 일본’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이런 점에서 ‘개헌 세력’과 ‘평화주의 세력’은 다르지 않으며, 그렇게 된 까닭은 전후민주주의가 식민주의를 은폐한 보편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수십년 만에 일본에서 벌어진 대중운동이었던 2015년 신안보법제 투쟁이 정치적 대립이라는 필수조건을 탈구하고 기만적인 이상만을 추구한 ‘양 떼’의 전투였기에 결정적인 한계에 봉착했다고 평가하는 저자는, 일본 사회가 다시금 식민주의를 고찰하고 ‘늑대 무리’의 정치를 고민해볼 것을 제안한다.
기본정보
ISBN | 9788936480714 |
---|---|
발행(출시)일자 | 2025년 02월 14일 |
쪽수 | 328쪽 |
크기 |
141 * 210
* 25
mm
/ 557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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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왜 전후 민주주의는 실패작이 되었는가?'에 대한 긴 설명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인데, 나는 그보다, 실패를 향한 궤적. 혹은 패배라는 결론이 나게 된 '결정적 국면의 모음집' 혹은 인간 사고의 '구멍 모음집'이라고 보았다.
이 책은 전후 민주주의의 실패를 비난하거나 성공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일본 정치의 우유부단함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나 일본 정치의 구조적 한계에 대한 시원한 사이다를 기대했다면, 주소를 잘못 찾았다고 말 하고 싶다. 이 책은 회초리가 아니다. 이 책은 패배라는 결과에 대한 당사자들은 인지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인지적 함정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이 패배의 기록은 확고한 신념이나 확신의 화려한 빛 이면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여러 맥락이나 해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만든다. 그렇다, 이 책은 인간 사고의 '구멍'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7장 모두가 본질적으로 '패배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야기의 반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이 이러한 구성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름대로 추론해 보았다. 본질은 여러 패배의 기록 뒤에 그 얼굴을 희미하게 드러낸다. 어떤 본질은 한 문장으로 간편하게 정리되기 어려울 수 있다. 본질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 구조의 성질을 모방해야 하는데, 그것은 강박적 반복이다. 이러한 반복을 통해 결국 김항 교수님은 "수많은 '파국적 경험'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전후 민주주의(의장)에 대한 본질적 고찰이 없다면 '미래를 향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창출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계신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메타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전후민주주의에 대한 본질적 고찰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전후민주주의 구성에 대한 계보학적 탐구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프롤로그에 그 힌트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개별사회를 통해 탈주하는 개인을 포착하는 일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징후를 포착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김항 교수님식의 표현으로는 '개별사회'를 관찰함으로써 '정치적 주체화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2015년에는 <제국일본의 사상>으로, 2025년에는 <어떤 패배의 기록>으로. 2035년에는 책 제목은 알 수 없지만 일본 사회의 소외된 자들(노동력마저 상품으로 팔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담론을 들고 오시지 않을까 기대된다.
*<창비>로부터 도서 제공받았습니다.
#일본정치 #김항 #민주주의 #북스타그램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 제공받았습니다.
인터넷을 하다 보면 일본인은 평화를 지키고 사랑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출연자나 일본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 됐다는 식의 대사를 말하는 캐릭터들을 종종 마주치곤 한다. 물론 일본이란 나라가 생산 해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콘텐츠를 생각해 보면 전쟁을 미화시키거나 정당화하거나 또는 외면, 왜곡하는 부분은 소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폭력적으로 안일한 태도는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평화를 지향한다면서 손에 쥔 칼을 내려놓는 것이 아닌 반대로 뒤집어 역날의 형태로 휘두르면 그것은 평화인가? <어떤 패배의 기록>이라는 본 책에서는 그런 일본의 모순과 역설을 아주 담담하게 지적한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문제작 <제국의 위안부>에 대하여 어느 정도 분량을 할애했는데 박유하 교수의 해당 저서만을 꼬집기보다는 "현재 일본이 내세우는 전후민주주의와 평화주의가 역설적이게도 비인간을 섬멸하는 무참한 폭력을 기반으로 성립한다는 사실"로서 국내외 비슷한 사상을 가진 이들을 비판하는 것에 가깝다. 가끔(요즘은 많이 잦게)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의 열성적인 팬(?)들의 논지에도 해당되는 비판으로 생각된다.
더불어 저자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논란을 일으킨 <제국의 위안부>는 전후민주주의 안에 숨어 있는 식민주의와 보편주의의 결합이 망각된 결과가 어떤 역사인식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139p.)"고평가했으며, 더 나아가 "평화주의를 지탱하는 근원적이고 음울한, 보편을 휘두르는 전쟁을 비판해야 하는 것(140p.)"이라 말하며 해당 챕터를 마무리 짓는다.
가라타니 고진, 난바라 시게루, 와다 하루키와 같은 양심적 일본 지식인들이 끝내 범하고야 마는 피상적 평화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보여주는 본 책은 일본이 평화를 지향한다는 말 또는 여러 콘텐츠를 통해 일본은 전쟁에 반대하고 오히려 평화를 지향한다는 주제의식에 조금 더 깊은 성찰을 가능케 할 것이다.
#어떤패배의기록
#김항
#일본정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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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이 책은 일본 전후민주주의의 패배가 어떠한 경과를 거쳐왔는지를 서술한다. 저자는 연세대 문화인류학과의 교수로 일본 정치에 대한 책을 여러 권 펴낸 바 있다.『어떤 패배의 기록』은 10년 전 출판한 『제국일본의 사상』의 후속편으로, 일본의 전후민주주의를 비평, 민주주의, 혁명 세 영역으로 나누어 살펴보며, 일본 전후민주주의가 평화를 외치는 가운데 여전히 식민주의와 국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문학비평, 정치체제, 체제 내 역동을 한데서 살피고 있는데, 이처럼 타국의 정치와 문화의 역학을 읽어내는 것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일본정치를 바라보는 철학적 시선을 끝까지 따라가고 나면 이제 그 시선은 한국 사회와 정치 혹은 그 외의 무언가를 살펴보게끔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