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섹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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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번 태어났다. 처음엔 여자아이로, (……) 사춘기로 접어든 1974년 8월
미시간주 피터스키 근교 한 응급실에서 다시 한번 남자아이로 태어났다.”
2003년 퓰리처상 수상작
이 책의 시리즈 (2)
이 책의 총서 (470)
작가정보

(Jeffrey Eugenides)
1960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소아시아 출신의 그리스계 이민 2세인 아버지와 영국-아일랜드계 어머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83년에 브라운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1986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문예 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권위 있는 문예 계간지 《파리 리뷰》에 『버진 수어사이드』의 일부를 발표해, 그해 그 잡지에 실렸던 단편 소설 중 최고의 작품에 수여하는 아가 칸 상을 받았다. 첫 장편 소설 『버진 수어사이드』는 1993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미국 도서관 협회(ALA)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지금까지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이 작품으로 유제니디스는 1993년 화이팅 작가 상, 1995년 해럴드 D. 버셀 기념상을 수상하였으며, 구겐하임 재단과 전미 예술 재단의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1999년에는 이 작품을 원작으로 소피아 코폴라 감독, 커스틴 던스트 주연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2002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 소설 『미들섹스』로 200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에는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에 선정되었다. 2007년부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문예 창작 강의를 시작했고, 2011년에는 『결혼이라는 소설』을 발표했으며, 2017년에는 삼십여 년간 써온 단편들을 모아 『불평꾼들』을 출간했다. 2018년에는 뉴욕 대학교 창작 글쓰기 프로그램의 종신 교수가 되었으며, 미국 예술문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SBS, KBS 등에서 방송 작가, 번역 작가 및 리포터로 일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작품으로 『다크니스』, 『미들섹스』(공역), 『버진 수어사이드』 등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미들섹스』(공역), 『위키드』,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 『이성과 감성』, 『클림트』, 『헨리 포드』, 『공포의 헬멧』, 『레오나르도의 유혹』, 『종이로 만든 사람들』, 『집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
목차
- 1부 7
2부 143
3부 389
책 속으로
나는 두 번 태어났다. 처음엔 여자아이로, 유난히도 맑았던 1960년 1월의 어느 날 디트로이트에서. 그리고 사춘기로 접어든 1974년 8월, 미시간 주 피터스키 근교의 한 응급실에서 남자아이로 다시 한 번 태어났다.(9쪽)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 나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양성인간이 될 것이다. (……) 태아 호르몬이 뇌 화학과 조직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한 나는 남성의 뇌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여자아이로 길러졌다. 누군가 타고난 천성과 양육된 결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측정하는 실험을 하고자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경우는 찾기 힘들 것이다.(36~37쪽)
신생아 2,000명 중 한 명은 정체가 불분명한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난다. 미국 인구가 2억 7500만 명이니까 13만 7000명의 간성(間性)인간들이 오늘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양성인간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190쪽)
“그렇지만 당신은 아직 젊어요.”
“아녜요, 박사님. 저는 젊지 않아요.” 할머니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전 8,400살인걸요.”(284쪽)
“그건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글입니다. 창조의 이야기입니다.”
“놀라워. 그럼 우리를 위해 저걸 영어로 번역해 보겠니?”
“모든 것은 알에서 나온다.”(350쪽)
출판사 서평
■ MIDDLESEX: 정체성 혼란, 우리 자신의 이야기
“오늘날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뉴요커》)라는 평을 받은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2003년 퓰리처상 수상작 『미들섹스』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미들섹스’라는 제목은 성 정체성의 혼란뿐 아니라 전통과 현대 과학, 구세대와 신세대,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혼란을 암시한다. 유제니디스는 1960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그리스계 미국인 가정에서 자랐다. 가족의 이민자 경험과 문화적 정체성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미들섹스』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2003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준 이 작품에서, 그는 성 정체성과 가족사를 중심으로 하여 공간적으로는 고대 문명의 발생지인 그리스로부터 신대륙 미국까지, 시간적으로는 삼대에 걸친 방대한 서사를 전개한다. 주인공 칼리오페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아우른 인류를 상징하며,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에 뿌리를 두면서, 동시에 오늘날 인류 문명의 중심인 미국을 본거지로 살아가는 ‘미들-문화’, ‘미들-인류’적인 인물이다. 약자와 소수에 대한 따듯한 시선, 차이가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꿈꾸는 칼리오페의 감동적인 이야기인 『미들섹스』는 성과 젠더를 포함하여 근친 결혼, 인종 차별, 약소 민족, 사회생물학적 결정론 등 현대 사회의 쟁점을 독창적으로 다룬 보기 드문 문제작이다.
『미들섹스』는 사십 대의 미 국무부 직원인 칼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희귀한 유전적 질환인 5알파환원효소 결핍증을 지니고 태어나 여성으로 자랐지만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남성적 특징이 발현되기 시작한다. 결국 우연한 사고를 계기로 완전한 여성도 남성도 아닌 모호한 성 정체성이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칼의 이야기는 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조부모가 그리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오면서 시작된 가족사와 얽히며 전개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이야기는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가적 서사이면서 동시에 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트랜스젠더 서사의 결합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수많은 기준들 중에서도 중요한 두 가지, 국적과 성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 다른 나라 사람이 된다면, 다른 성이 된다면 나는 기존의 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나로 재탄생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양성인간을 소재로 택한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과 동떨어지거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이다. 『미들섹스』를 쓰기 위해 난 내 청소년기의 기억을 꺼냈다. 내 의도는 독자가 내 책을 읽고 특수한 상황을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미들섹스』에서 칼리오페(여자)가 칼(남자)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은 내가 그 이야기를 말하는 방식에 의해 아주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내가 그토록 많은 가족사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주인공이 바로 가족 안에서, 사회 안에서 이해되기를 원했기 때문이고, 티레시아스처럼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라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제프리 유제니디스)
■ 그리스 이민자 1세대의 경험: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유제니디스는 칼의 조부모인 레프티와 데스데모나의 과거를 통해 20세기 초반 그리스 이민자들의 이민 서사를 다룬다. 『미들섹스』에 등장하는 그리스계 이민자들은 아시아계나 카리브계 미국인들처럼 미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고 타자의 위치에 머물게 만드는 인종적 장벽은 경험하지 않는다. 남유럽계인 그리스 이민자들은 모국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 버리고 미국 주류 사회로 성공적으로 동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이민자들이 가진 다양한 차이들을 위계화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억압하거나 배제함으로써 이들을 미국 시민으로 동화시키려 한다. 그리스계 이민자의 이주 서사는 미국 사회의 안과 밖, 동화와 배제의 양면을 모두 경험한 자들의 이야기로서, 완벽한 미국 시민으로의 성공적인 동화와 재탄생을 꿈꾸는 이민자들의 아메리칸드림 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이민 1세대인 레프티와 데스데모나의 이주 서사는 이들이 ‘완벽한 미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완벽한 미국인의 이상이 제시하는 정체성에 맞추어 자신들의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1922년 스미르나 대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가는 배에 오를 때, 이주는 그들에게 단순히 삶의 터전을 옮기는 문제를 넘어서서, 새로운 주체로 자신을 재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레프티와 데스데모나는 친남매라는 과거를 지우고 그들을 아는 이가 없는 신세계에서 새롭게 부부로 시작하기 위하여, 배 위에서부터 서로 모르는 타인으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연극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 낸다. 그러나 미국 땅에 첫발을 디딘 이민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소위 ‘미국적 주체’의 기준과 범주에 맞출 것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동화 정책이다. 처음부터 미국으로의 동화에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며 낯선 세계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는 데스데모나와는 달리, 레프티는 미국 국민 문화가 요구하는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 문화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한다.
『미들섹스』에서는 미국의 국민 문화를 포드사의 기업 문화가 대표한다. 포드사는 디트로이트 시민들이 먹고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제공할 뿐 아니라, 효율성과 청결, 문명화의 사명을 내세워 미국 국민 문화의 핵심인 자본주의적 가치를 전파하고 주입하는 역할을 한다. 레프티는 이 포드 잡탕 냄비의 상징적 의식을 통해 미국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했다고 생각하지만, 연극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이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했던 집단에서 쫓겨남으로써 그 의식이 허구였음이 드러난다. 그는 일종의 자살 충동에서 고향에서부터 시작된 오래된 악습인 도박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하여 결국 가진 재산을 모두 날리고, 뇌일혈 발작의 영향으로 실어증에 걸린다. 많은 이민 문학에서 실어증은 본토 문화와 이민국의 문화 사이에 끼어 정체성 혼란으로 고통받는 이민자들이 겪게 되는 증상이다. 레프티는 적극적인 동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정체성을 완전히 부인하고 지울 수 없었고, 초국가적 주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동화 정책의 압력은 주체의 분열과 붕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한다.
■ 2세대의 동화 전략: 차별과 배제
미국으로 이민 왔으나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못했던 이민 1세대와 달리, 이민 2세대인 밀턴 스테퍼니데스는 미국 사회에 동화되고 중상류층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는 인물이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선조의 고향인 그리스 땅을 밟아 본 적도 없을 정도로 모국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미국 아닌 다른 세계의 흔적으로 얼룩지지 않은 완벽한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하여 밀턴은 다른 인종과 자신의 출신 민족 집단을 타자화하여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을 미국적 주체로 재구성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를 위해 밀턴은 흑인들을 경멸하고 배척하는 인종주의에 적극 동참한다. 그는 흑인들을 주 고객으로 삼아 돈을 벌면서도 그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며, 흑백 학교 인종 통합 정책에 반대하여 딸을 전학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백인 부유층의 동네에 주택을 구입하려다 어려움을 겪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밀턴은 인종주의적 차별의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밀턴은 자신이 그리스계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러한 미국 사회의 차별에 대해 항의하거나 그 정당성을 의심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돈의 힘으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의 성공 신화를 비판 없이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턴은 그리스어를 배우기는 했으나 거의 쓰지 않아 나중에는 다 잊다시피 하며, 그리스 정교 예배에 참석하기는 하지만 선조의 종교에 대해 경멸감을 품고 있다. 그는 구대륙의 종교에 대한 경멸과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하며 과학과 이성을 신봉하는 문명화된 미국인임을 과시한다. 그는 과거 포드사회관리부가 레프티를 계몽해야 할 후진적인 존재로 다루었던 방식을 거꾸로 그리스에 적용한다. 밀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테퍼니데스가의 삶 속에는 초국가적 관계들이 파고들어 와 있으며, 그의 삶은 모국의 문화와 역사 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의 핫도그 체인점 이름이 헤르클레스라는 점부터가 이 사실을 보여 준다. 밀턴의 장례식에 그의 사업상 동료들은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아들에게 상속된 그의 핫도그 체인은 얼마 못 가 완전히 파산한다.
■ 3세대의 경험: 경계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밀턴이 ‘완벽한 미국인’이 되기 위해 억압했던 정체성의 이질적 요소는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하게 동화된 미국 중상류층 소녀인 이민 3세대 칼/리오페에게서 모호한 성 정체성이라는 형태로 귀환한다. 칼리의 모호한 성 정체성은 이산의 역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칼리의 유전자 이상이 단순히 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라, 데스데모나와 레프티가 살았던 비티니오스의 작은 마을에 뿌리 깊이 박혀 있던 근친혼의 문화적 관습과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칼리에게 수술을 강요하는 것은 ‘정상’에 맞추려는 사회의 압력이다. 성 정체성에서 ‘정상’의 상태를 고수해야 한다는 압력은 국민적 정체성의 형성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인격을 결정짓는 주된 요소는 환경이며, 아이들은 이제 새로 써넣어야 할 빈 석판 같은 존재라는 견해에 기반한 루스의 성 정체성 이론은 미국으로 건너오는 이민자들의 육체와 기억 속에 각인된 과거를 다 지우고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써넣을 수 있다는 동화주의자들의 주장과도 유사하다. 칼리가 성적 쾌감을 포기해야 하듯, 이민자들은 지니고 온 것 중 무엇을 포기하더라도 ‘정상’으로 미국 사회에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수술을 거부하고 병원과 가족으로부터 도망친 칼리는 본명인 칼리오페를 칼로 바꾸고, 긴 머리를 자르고, 남자 옷을 입고 남자들의 말투와 걸음걸이와 몸짓을 흉내 내고 익혀 가는 식으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남성으로 바꾸어 간다. 그가 병원이 있던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대륙을 횡단하는 과정은 데스데모나와 레프티가 대서양을 건너오던 이주 과정과 겹쳐진다. 한 축에서 다른 축으로 이동하는 여정은 경계를 넘으면서 혼종된 흔적을 남긴다. 이민자들
의 삶이 떠나온 고국과 이주한 나라 중 어느 곳을 진정한 자신의 존재 기반으로 삼든, 그곳이 온전한 어느 한쪽만일 수는 없다. 그들이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 해도,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은 다른 한쪽의 흔적이 침투하여 변형된 혼종적이며 초국가적인 공간이다. 데스데모나는 그리스에서부터 소중하게 품고 온 누에 상자처럼 과거에 집착하고 고향 땅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못하지만, 그녀가 그리는 고향은 더 이상 기억 속 그곳이 아니다. 이러한 혼종성은 성의 경계를 넘어가는 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칼은 자신의 뇌는 남성 호르몬에 물들어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순환적인 여성성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칼은 남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남성으로 살아가지만, 때때로 표면 밑에 잠복해 있던 칼리오페가 예고 없이 떠오르곤 한다. 칼리는 그리스/미국, 구세계/신세계, 남성/여성, 과거/미래라는 양극단의 요소가 공존하는 ‘사이(inbetweenness)’의 불가능한 가능성을 탐색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인물이다.
■ 미들섹스 - 과거와 현재, 미래가 겹쳐지고 갈라지는 ‘사이’의 공간
『미들섹스』에서 이처럼 하나의 정체성 속에 내재하는 모순과 불일치는 교정되어야 할 비정상적 요소가 아니라 대안적 공간을 열 틈새가 된다. 칼은 자신이 “젠더 사이에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 한쪽 성의 단일한 시야가 아니라 육체의 입체경을 통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스튜어트 홀에 의하면, 문화적 정체성은 시간과 공간, 역사, 문화를 초월하여 이미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와 문화, 권력과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변형을 겪는다. 문화적 정체성뿐 아니라 성 정체성은 존재하는 것(being)이면서 되어가는 것(becoming)이며, 따라서 과거뿐 아니라 미래에도 속해 있다. 칼은 스튜어트 홀이 정의하는 이산적 정체성이 현실에서 갖는 한계와 가능성을 실험하는 인물이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부분들로, 다른 반쪽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440쪽) 그는 그리스의 과거와 연결된 존재이면서 “다음에 올 존재”이다.(490쪽)
소설은 마흔에 들어선 중년 남성 칼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의 서사로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베를린에서 미 국무부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와, 조부모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회상 장면이 겹쳐지면서 가출했던 열네 살의 칼이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들섹스의 집으로 돌아와 그리스의 풍습에 따라 아버지의 영혼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문을 지키고 서 있는 장면으로 끝난다. 칼은 미들섹스로 돌아와 남성으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버지의 죽음과 칼의 재탄생이 겹쳐진다. 독자는 칼의 이후의 삶의 궤적을 이미 알고 있지만, 유제니디스는 전개상 소설의 중간 부분이 되어야 할 것을 결말에 배치함으로써 그 중간의 분기점으로 다시 돌아가 그곳이야말로 결말이자 새로운 서사가 시작될 수 있는 진정한 시작임을암시한다. 항상 중요한 지점은 변형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시점이며, 그 시점은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영원한 분기점이다. 미들섹스(Middlesex)라는 제목은 그런 점에서 중의적이다.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려 부딪는 그의 얼굴은 동방에서 건너온 얼굴, 할아버지의 얼굴이면서 과거의 칼이었던 미국 소녀의 얼굴이다. 그의 정체성을 이루었던 과거의 요소들 중 어느 하나도 현재의 그를 위해 자리를 내주고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과거의 모든 정체성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자신이며, 동시에 그것이 미래의 자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다음에 무엇이 올지” 생각하는 칼의 이러한 불안정성이야말로 그를 모순과 불일치, 변화에 대한 잠재성을 아우르는 혼종적이며 초국가적인 주체로 만든다.
30개국 번역 출간된 유제니디스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 경이롭고 풍성한 이야기, 야심 찬 소설. 아름다운 성공작. ─ 살만 루슈디
▶ 이전의 진지한 소설에서 이토록 젠더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남성 작가는 상상하기 힘들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 오늘날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가 말하는 젠더, 가족, 현대사. ─ 《뉴요커》
기본정보
ISBN | 9788937464591 | ||
---|---|---|---|
발행(출시)일자 | 2025년 02월 07일 | ||
쪽수 | 496쪽 | ||
크기 |
132 * 225
* 30
mm
/ 665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세계문학전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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