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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작가 작품 선집
경성일보 문학· 문화 총서 5 | 일본학 총서 49
진학문 , 이석훈 , 이무영 저자(글) · 윤대석 번역
역락 · 2020년 0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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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서 일제강점기 가장 핵심적인 거대 미디어였던 『경성일보』는, 당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지식, 인적 교류, 문학, 예술, 학문, 식민지 통치, 법률, 국책선전 등 모든 식민지 학지(學知)가 일상적으로 유통되는 최대의 공간이었다.
본 총서는 이와 같은 『경성일보』에 게재된 현상문학, 일본인 주류작가의 작품이나 조선의 사람, 자연, 문화 등을 다룬 작품, 조선인 작가의 작품, 탐정소설, 아동문학, 강담소설, 영화시나리오와 평론 등 다양한 장르에서, 식민지 일본어문학의 성격을 망라적으로 잘 드러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본 총서가 식민지시기 문학·문화 연구자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널리 읽혀져, 식민지 조선의 실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동아시아 식민지 학지 연구의 지평을 확대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책의 총서 (13)

작가정보

저자(글) 진학문

(秦學文, 1894~1948)
소설가, 언론인. 호는 순성. 창씨명 하타 마나부(秦學). 경기도 이천 출생. 게이오 의숙 보통부 중퇴. 보성중학 졸업. 와세다대학 중퇴, 도쿄외국어학교 중퇴. 『경성일보』 기자를 거쳐 『동아일보』 논설위원, 『시대일보』 발행인 역임. 1930년대 만주로 건너가 관동군 및 만주국 협화회 촉탁, 만주국 내무국·총무청 참사관·감찰관 등으로 활약. 조선에 돌아온 후 총독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를 지냄. 해방후 반민족행위자로 지목받아 조사중 일본 도피. 한국전쟁 중에 귀국하여 한국무역진흥공사 부사장, 전경련 상임부회장 등을 지냄. 뒤마의 『춘희』를 번안하고 타고르의 시를 번역하였으며 소설집 『암영』을 내는 등 초기 한국 문학계 형성에서 주요한 역할을 함.

저자(글) 이석훈

(李石薰, 1907~1950?)

소설가. 방송인. 본명은 이석훈(李錫壎). 호는 금남(琴南). 창씨명 마키 히로시(牧洋). 평안북도 정주 출생. 정주공립보통학교 졸업.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와세다대학 고등학원 중퇴. 부친이 운영하던 새우 공장이 파산하자 귀국하여 『경성일보』 특파원, 경성방송국 아나운서 등으로 지내며 일본어 소설, 조선어 소설을 다수 남김. 조선문인협회 주최 시국강연에 참여한 후 「고요한 폭풍」을 써서 국민총력조선연맹 문예상 수상.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 소설희곡부 간사장 역임. 황민사상을 선전하는 녹기 연맹 맹원 및 『녹기』 편집부 촉탁 역임. 이후 만주로 건너가 『만선일보』 객원기자로 활동. 해방 후 해군 정훈감 서리 역임. 한국전쟁에서 인민군에게 체포됨. 사망연도 미상. 조선어 소설집으로 『황혼의 노래』, 일본어 소설집으로 『고요한 폭풍』, 『봉도물어』 등이 있음.

저자(글) 이무영

이무영

(李無影, 1908~1960)

소설가. 언론인. 대학교수. 충북 음성 출생. 휘문고보 중퇴. 일본 세이조 중학 중퇴. 농민 소설가 가토 다케오의 문하생으로 기숙하며 4년 동안 일본에서 작가 수업을 함. 『조선문단』에 소설 「달순의 출가」로 등단.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먼동이 틀 때」 등을 발표. 일제 말기 군포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며 「제일과 제일장」, 「흙의 노예」 등의 농민소설을 씀. 더불어 일본어 장편 소설 「청기와집」과 「바다에 부치는 편지」 등 다수의 일본어 소설 발표. 해방 이후 서울대, 연세대 등에서 소설창작론을 강의하며 『농민』, 『농군』, 『노농』 등의 소설을 씀. 단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다 뇌일혈로 사망.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1940년대 ‘국민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식민주의, 교양주의 및 문학 교육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식민지 국민문학론』(2006), 『식민지 문학을 읽다』(2012) 등이 있고, 역서에 야마무로 신이치의 『키메라-만주국의 초상』, 이시다 히데타카의 『디지털 미디어의 이해』 등이 있다.

목차

  • 간행사

    1. 진학문 편

    (1) 외침

    2. 이석훈 편

    (1) 즐거운 장례식
    (2) 이주민 열차
    (3) 유에빈과 중국인 선부
    (4) 영원한 여성

    3. 이무영 편

    (1) 바다에 부치는 편지
    (2) 이 날에

    해제(윤대석)

출판사 서평

이 책은 『경성일보』에 수록된 조선인 작가의 일본어 소설을 번역한 것이다. 수록 작품은 진학문의 「외침」(1917.8.10.), 이석훈의 「즐거운 장례식」(1932.9.3.~9.6.), 「이주민 열차」(1932.10. 14.~10.10.), 「유에빈과 중국인 선부」(1932.11.13.~11.22.), 「영원한 여성」(1942.10.28.~12.7), 이무영의 「바다에 부치는 편지」(1944.2.29.~8.31.), 「이 날에」(1942.12.16.)이다. 이무영의 「이 날에」는 수필이지만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같이 수록하였다
식민지기를 통틀어 보면 조선인 작가의 일본어 소설은 (1) 초기의 습작기 작품, (2) 중기의 자발적 일본어 창작, (3) 후기의 내선일체 작품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선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정확하게 이에 대응한다. 진학문의 소설이 (1)에 해당한다면, 이석훈의 앞 세 작품은 (2) 에, 이석훈의 「영원한 여성」 및 이무영의 작품은 (3)에 해당한다.
한국의 근대 작가는 대체로 일본어 습작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과부의 꿈」(1902)을 쓴 이인직, 「사랑인가」(1909)를 쓴 이광수 등 근대 초기의 소설가뿐만 아니라, 1920년대에 등장한 한설야, 유진오, 이효석 등도 일본어 습작을 통해 소설의 문법을 익혀왔다. 본격적인 소설가는 아니지만, 번안이나 번역, 창작 등을 통해 근대 초기 문학에 관여했던 진학문(1894~1974)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진학문(순성)은 1907년 일본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 도쿄외국어학교에서 수학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1917년 9월 『경성일보』 기자가 된다. 「외침」은 그 무렵 일본어로 발표된 소설로서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이상주의, 인도주의적 경향의 시라카바(白樺)파의 영향이 엿보인다. 하숙집 주인 여자의 고통스러운 병, 친구의 실연, 또 다른 친구의 죽음 등 어둠으로 가득 찬 고통스러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할지 작가는 묻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삶의 고통과 고민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뚫고 그것에 저항하여 솟아나오는 외침, 곧 자아와 개성을 그린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이후에 창작되는 김동인, 염상섭의 고백체 소설을 앞당겨 보여주며, 또한 치밀한 풍경 묘사, 내면 묘사라는 점에서 근대 초기 한국 소설의 문법이 일본어를 매개로 하여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진학문은 뒤마의 『춘희』를 번안하고 타고르의 시를 번역하였으며 소설집 『암영』을 내는 등 초기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기여하였으나, 1920년대 이후에는 언론인과 만주국 및 총독부 관리로 나아가 문학으로부터 멀어졌다.
1920년대 이후 개별 작가의 일본어 습작 활동은 계속되었으나, 이와 동시에 일본 문단에 진출하려는 작가적인 욕망 혹은 일본 작가와의 연대에 의한 자발적이고 본격적인 일본어 창작도 새로이 등장한다. 나프에서 활동한 김희명, 이북만, 김두용 등의 프롤레타리아 시가 후자에 속한다면, 장혁주, 이석훈 등의 1930년대 소설은 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자발’, ‘본격’이라는 말은 상대적인 것으로서 ‘본격’은 ‘습작’과 대비되어 개별 작가의 본류에 해당하는 창작을 가리키고, ‘자발’은 일제 말기 내선일체라는 시대적·정책적 압력에 의해 창작된 것과 구별됨을 의미한다. 일제 말기 일본어 소설 창작이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그전까지 작가의 일본어 선택 여부는 식민지 정책의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자발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대표적인 이중어 작가를 말하라면 단연 이석훈이 그 선두에 설 것이다. 1907년생인 이석훈은 와세다대학 고등학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조선에 돌아와 『경성일보』, 『오사카마이니치신문』의 특파원을 지내면서 1932년까지 다수의 일본어 소설을 발표한다. 조선어 잡지인 『제1선』의 기자가 되고 곧 경성방송국에 입사한 1933년 이후에는 또 다수의 조선어 소설을 발표하며, 내선일체가 본격화된 1939년 이후에는 조선어 소설과 일본어 소설 창작을 병행한다. 각각을 이석훈의 초기, 중기, 후기라 한다면 초기의 일본어 소설을 습작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 시기에 발표된 것만 해도 14편이 되는 소설들을 모두 습작이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책에 수록한 세 편의 소설은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늦게 발표된 본격적인 창작활동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
「즐거운 장례식」은 일종의 사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 주인공이 집의 파산으로 학교를 중퇴했고, 지방 신문기자를 하고 있으며, 아버지가 한때 면장으로 어업으로 파산했다는 점 등은 이석훈의 개인사와 일치한다. 몰락한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아 고향에 돌아온 아들의 심경을 그렸다. 아버지의 죽음과 몰락, 고향 상실로 상징되는 회한, 죄책감과 더불어 과거와 고향, 아버지로부터 벗어난 해방감을 동시에 그린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이주민 열차」는 한 농민이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소작농에서 화전민으로, 다시 이주민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근대 자본주의의 확장으로 인한 농업의 경쟁력 하락으로 김서방은 자작농에서 소작농이 되었다가 다시 화전민이 된다. 화전민이 된 김서방은 폭풍우가 초래한 산사태로 집과 가족을 잃었지만, 식민지 당국은 그 책임을 오로지 문명을 벗어난 화전민에게 돌릴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다만 화전민 가운데 일부를 뽑아 북방(시기적으로 보면 만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으로 이주시키는데, 이 소설은 열차에 탄 이주민의 불안한 심정을 현재 시점으로 하여 그 몰락 과정을 과거 회상의 형태로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근대 자본주의와 그릇된 식민지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드러난다. 프롤레타리아 소설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점점 주변화 되어가는 조선인을 체제비판적인 시선에서 그린다는 점에서 사회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자신이 기자로 재직하던 『제1선』(1933.2)에 개작하여 조선어로 다시 발표하였다가 조선어 단편집 『황혼의 노래』(한성도서주식회사, 1936)에 재수록한다. 원작과 번역본 간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아 이번 번역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유에빈과 지나인 선부」도 또한 저자 자신에 의해 「로짠의 사(死)」로 번역되어 『황혼의 노래』에 수록되었다. 그러나 같은 문장이 없을 정도로 원작과 번역 사이에 차이는 큰데, 한글 번역은 원작에서 훨씬 축소되어 거의 줄거리 요약에 가까울 정도이다. 대동구로 건너가 월병을 돌려주는 이야기부터 로짠의 고향 이야기는 아예 생략되었다. 용어나 이름 등은 남아 있어 이번 번역에서 ‘유에빈’, ‘로짠’이라는 식으로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비참한 어민들의 생활과 어민들을 착취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이다. 압록강 하구 황해의 건조 새우 어장에서 일하는 어민들에게 월병을 강제로 떠맡기고 돈을 갈취하는 군벌 경찰의 횡포에 맞서 주인공 로짠은 과감하게 월병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데 앞장선다. 돈을 벌어 장가를 가겠다는 로짠의 꿈은 이 사건으로 오히려 경찰에 잡혀가는 신세가 된다. 서술자이자 로짠이 일하던 어장 주인의 아들이었던 ‘나’는 그 당시 일하던 중국 어민 가운데 한 명을 만나 로짠의 죽음과 동생 메이호의 전락에 대한 후일담을 듣는다. 이와 같은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3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다가 갑자기 1인칭으로 전환되는 서술상의 미숙함은 큰 흠이지만, 중국 군벌로 우회적으로 묘사되기는 했으나 가혹한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은 이 소설이 가진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일본어, 조선어 소설을 발표했지만, 이석훈은 어느 쪽 문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내선일체와 전쟁 동원을 선전하는 조선문인협회 전국순회강연(1940년 11월)에 참여하고 그 경험을 소설화한 「고요한 폭풍」을 발표한 이후 이석훈은 가장 중요한 작가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다. 「고요한 폭풍」이 국민총력조선연맹 문예상을 받은 것으로 그 사정을 알 수 있는데,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장편 소설이 「영원한 여성」이다.
이 소설은 연애에 실패하고 조선에 건너온 일본인 여성 마키야마 사유리를 중심으로, 바이올린을 즐기지만 아버지의 강권으로 금광에서 일하며 사유리를 사모하는 이시이 군조, 사유리의 애인이었지만 그녀를 버리고 만주에서 사업을 벌이는 에가와 라이타의 삼각관계를 그린다. 여기에 삶의 권태를 이기지 못해 사유리를 흠모하게 되는, 조선에서 농사를 짓는 그녀의 외사촌 오빠 야마다 노부오가 가세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구성에다 연애는 제쳐두고 오로지 최고의 오르간을 제작하는 데 몰두하는 건실한 사업가 이준걸과 그를 흠모하는 성악 전공의 송애라의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또한 소설 첫 장면에서 그려진 이준걸과 사유리의 만남, 연애 문제로 머리가 복잡한 사유리의 평양 이준걸 방문이라는 사건은 이 소설이 내선 연애로 번져갈 조짐을 보여준다. 또한 갈등은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업과 결혼 문제에서 기성세대의 생각을 강요하는 아버지와 이시이 사이에서, 마찬가지로 정해준 대로 결혼하기를 강요하는 아버지와 송애라 사이의 세대 갈등으로 확대된다. 이렇게 보면 이 소설은 황금광 시대 직업과 연애 문제에서 갈등하는 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린 청춘소설 내지 대중소설이 될 것이다. 물론 국어 강습소나 물자 자급 등 시국의 문제가 언급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것들은 모두 서사의 진행과는 무관했다. 그러나 1942년 11월 23일자 연재분부터 등장인물들의 운명은 갑자기 전쟁하의 시국으로 말려들어간다. 1937년 초여름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같은 해 7월 7일 벌어진 중일전쟁을 맞이하는 것이다.
중일전쟁은 모든 등장인물의 삶을 바꾼다. 우선 사유리는 전쟁을 향한 조선인과 일본인의 마음이 하나임을 확인하고는 이시이의 결혼 제안을 거절하고 에가와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다시 깨닫는다. 이시이는 사유리가 결혼을 거절한 여파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시국의 중대함을 깨닫고 금을 한 줌이라도 더 캐서 나라에 봉공하자는 생각으로 금광 사업에 몰두한다. 이준걸은 동생 준식을 지원병으로 보내고 자신은 오르골 제작 사업에서 군수 사업으로 전환한다. 금광으로 큰돈을 번 김준은 거액을 헌금하고 남은 돈으로 소외된 조선인 아이들을 훌륭한 일본인을 기르는 교육 사업을 시작하고, 거기에 사유리와 송애라를 교사로 맞이한다. 이시이는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가려는 아버지와 결별하고 제2의 고향인 경성에 남고, 송애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초라한 교육 사업에 참가하는 등 세대 갈등조차 시국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급격한 서사의 전환은 이 소설을 대중 소설이 아닌 시국 소설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중일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가졌던 뱃놀이에서 “전쟁이라도 나면 충분히 자숙하지 않으면 군인들에게 미안하니까요.”라고 말한 것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근거를 제시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연재 날짜가 1942년 12월 8일 소위 ‘대동아전쟁’ 발발 1주년을 앞두고 있어 “충분히 자숙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가설은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 미약한 근거로 이 소설이 1940년 2월 조선인 등장인물들의 창씨개명을 한 문장으로 소개하고, 그해 가을 준식의 개선을 한 문장으로 묘사한 후, 곧바로 1941년 12월 8일로 건너뛴다는 것을 제시할 수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연재는 1942년 12월 7일이었다.
남은 한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에가와 라이타는 1941년 12월 8일 천황의 대조방송을 듣고 사유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큰 결심을 한 후 애인임이 암시되는 비서 러시아 여성(이 장면에서 시국의 중대성을 깨닫고 그동안 소중하게 간직하던 러시아어 책을 불태우는 「고요한 폭풍」의 박태민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과 그동안 이룩한 사업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조선으로 돌아와 그만을 기다리며 죽어가는 사유리를 임종한다. 그리고는 “영원히 내 가슴 속에 잠들고 있”는 사유리의 유지를 이을 것을 결심한다.
신문 연재소설은 기본적으로 대중 소설이지만, 큰 의미이건 작은 의미이건 일제 말기 시국적 요구는 대중 소설의 서사도 유지하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 일제 말기의 일본어 창작에서 ‘자발성’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일 텐데, 이무영의 경우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이무영의 일본어 선택은 곧 곤란에 직면하였다. 그는 여러 차례 일본어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던 것이다. 이는 그가 일본의 농민소설가 가토 다케오의 문하생으로 유학했음에도 일본어 글쓰기가 서툴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본어 장편소설을 두 편이나 남기고 있다. 그 하나가 『부산일보』에 연재한 「청기와집」(1942)이고 또 다른 하나가 여기에 소개하는 「바다에 부치는 편지」(1944)이다. 「청기와집」으로 그는 조선예술상을 받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바다에 부치는 편지」는 연재분의 절반 정도가 판독 불가일 정도로 선명하지 않아 앞부분밖에 싣지 못했다. 그렇지만 원본을 보고 전체를 수록할 수 있을 때까지 미뤄두기보다 부분적이나마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여 수록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 대한 해제도 부분적이고 정황적인 것일 수밖에 없음을 양해 바란다.
「바다에 부치는 편지」가 발표된 것은 해군특별지원병제도를 간접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군특별지원병제도는 1943년 7월 28일 공포되어 8월 1일부터 시행되어 같은 해 10월 훈련생 채용을 시작했다. 그러나 제도 수립 결정은 5월 12일에 이미 발표되어 각종 미디어에서 이에 대한 기사와 사설, 감상 등이 쏟아졌다. 그 선전의 일환으로 국민총력 조선연맹은 조선총독부 진해경비부의 후원을 받아 조선의 문인과 화가를 일본의 해군 시설에 파견하여 시찰케 했다. 그 프로그램은 1943년 8월 28일부터 14일 동안 진해 경비부, 사세보 해병단 및 해군병학교, 해군잠수학교, 해군성 쓰치우라 해군항공대 등을 견학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참가한 조선인은 소설가 김사량, 이무영, 아오키 히로시, 그리고 화가 윤희순이었다. 이후 김사량은 르포 「해군행」(1943.10.10.~23)과 장편소설 「바다의 노래」(1943.12.14.~1944.10.4.)을 『매일신보』에 한글로 연재하였다. 이무영의 「바다에 부치는 편지」는 이것보다 늦은 1944년 2월 29일 『경성일보』에 연재를 시작하였는데, 일본어 창작이라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조선인을 해군에 동원할 계획은 없었고 대체로 조선인은 중국 전선, 대만인은 동남아 전선이라는 식으로 조선인을 주로 동원한 것은 육군이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세의 악화로 해군지원병령이 만들어져 그동안 대륙성을 강조하던 조선인에게 급작스레 해양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바다에 부치는 편지」는 다소 무리하고 어처구니없는 인물 설정을 했는데 ‘평생 물에 들어가지 않은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던 것이다. 주인공 최대영(崔大泳)은 이름과는 달리 평생 물에 들어가지 않은 남자, 심지어는 목욕탕에도 들어가지 않은 남자이다. 그가 물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중간 부분에 밝혀지게 되는데, 고조부에서부터 아버지에 이르는 네 대의 인물이 모두 물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설정은 황당하긴 하지만, 조선인에게는 대대로 해양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판독이 불가능하여 싣지 못한 부분은 그러한 공수증을 극복하고 해군에 지원하는 조선인 형제의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인물은 또 다른 조선인 젊은이 임상훈이다. 그는 술도 잘 못 마시고 다른 사람과도 어울리지 않으며, 방안에서 앨범이나 뒤적이고 돈 계산이나 하는 남자이다. 이러한 임상훈의 여성성은 어떻게 극복되는 것으로 묘사할지 자못 기대되는데, 주목되는 점은 그것이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서 공수증=여성성이 설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에 찬양되던 ‘남성성=해양성’과 표리의 관계를 이룬다고 할 것이다. 해양성의 진작을 통해 해군 지원을 장려하는 시국적 요구는 이 소설에서도 서사의 기본틀을 이루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 날에」는 미일 개전 1주년을 맞아 조선인이 가져야 할 자세를 담담하게 기술한 수필이다. 느슨해지는 긴장을 다잡아 큰 각오로 국민의 길로 정진하자는, 당시에 이야기되던 흔하디흔한, 그래서 식상하고 진부한 키치 같은 느낌이 드는 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진부함이 오히려 악의 평범성을 드러내는 것일 터이다.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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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2445112
발행(출시)일자 2020년 05월 20일
쪽수 276쪽
크기
154 * 225 * 18 mm / 425 g
총권수 1권
시리즈명
경성일보 문학· 문화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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