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선비를 찾아서
도서+사은품 또는 도서+사은품+교보Only(교보굿즈)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20,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Box 기준 : 도서 10권
로그아웃 : '서울시 종로구 종로1' 주소 기준
이달의 꽃과 함께 책을 받아보세요!
1권 구매 시 결제 단계에서 적용 가능합니다.
알림 신청하시면 원하시는 정보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조선일보
종손이란 사회적 책무가 강제된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방황하던 저자가 '부끄럽지 않게 살기'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핵심으로 하는 안동 선비 정신에 유가적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안동이 안동일 수 밖에 없는 내적 요인을 찾아 낸다.
《천년의 선비를 찾아서》는 도산서원의 추억과 시련, 퇴계의 공부법과 여유, 일상, 송재와 이육사마을을 돌아보고 어부사시가의 탄생 등 다양한 이야기를 안동 전체의 종택을 거닐며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 풀어낸다.
작가정보
지은이
이성원
안동 출신으로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한문학을 전공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때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안동대학교 강사, 국학진흥원의 책임연구원,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강사, 고택문화회부회장, 청량산문화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청량산 자락 가송리 강변에서 고택을 개방하고 유유자적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안동 문화에 대한 여러 글을 썼고 발표한바 있다. 주요 글로〈이기철학의 정치 사회적 성격〉,〈안동의 종택문화〉,〈안동의 집회문화〉,〈이름의 문화〉,〈퇴계식의 교육과 인생〉 등이 있다.
목차
- 글머리에 | 21세기에 유가儒家적 전통을 지키며 산다는 것
서설 | 유가의 도를 이어가라-안동의 종택 문화
제1부
외롭지 않아야 할 인물이 외롭게 됨을 나는 고독이라 한다-유일재 종택과 김언기
《소학》 그대로의 인물은 어떤 모습인가-오천 광산 김씨의 7군자
충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사라진 부포에서의 사색
정승 벼슬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다-어부사시가의 탄생
제2부
무거운 퇴계학과 근엄한 퇴계가 아니다-도산서원의 추억
격변의 시대를 지나 역사의 유물로-도산서원의 시련
자연을 사랑했다 그것도 지극히 사랑했다-퇴계의 자연 사랑, 천연대와 천운대
오늘도 그렇게 하고 내일도 그렇게 한다-퇴계 식의 여유와 일상
공부에 간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퇴계의 공부법
제3부
길 없는 곳에 최초로 길을 내다-송재의 자취를 더듬으며, 온혜
흐르는 물을 보며 날마다 성찰하리-고요가 온존한 곳, 상계
한 통의 편지는 사람의 영혼을 흔들 수 있다-퇴계 식의 충고
선비 문화의 근저에는 글의 전쟁이 있었다-자부심의 고장, 하계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이육사의 마을, 원촌
제4부
이제부터 그림 속으로 들어갑니다-도산 7곡, 단천
수태극, 산태극의 모습은 진정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도산 8곡, 가송
유산遊山은 독서와도 같다-도산 9곡, 청량산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안동, 선비를 말하다
안동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지난 3월 1일, 안동 시민 500명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안동 시내를 가로지르며 3?1절 만세운동을 재현했다. 기념일 행사로 흔히 볼 수 있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만세운동은 그러나 ‘안동’에서 행해졌다는 점 때문에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왜 그러한가?
안동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한국정신문화 수도’라는 글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경북 북부 유교 문화권의 핵심 지역, 퇴계 학맥의 정통을 계승한 선비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수많은 문화유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교 문화의 보고, 육사 이원록과 석주 이상룡을 비롯하여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와 자결순국자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요람. 여기에 이러한 선현들의 흔적을 체현하고자 노력하는 안동 사람들의 전통 사랑이 함께 어우러져 안동을 ‘안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선비 정신은 이 같은 안동만의 특별함의 핵심이다. 그 옛날 사라진 이름이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는 이름으로서 선비의 혼이 안동 산천 곳곳에 고스란히 녹아 700여 명의 독립유공자의 넋으로 이어진 것이다.
농암 17대 종손이 들려주는 안동 선비의 향취
저자 이성원은 농암 이현보의 17대 종손이다. 종손이란 조상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의 수호를 전담하며, 제사를 주관하고, 손님을 맞는 접빈의 일까지 책임져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책무 수행이 강제된 종손의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서성거리고 방황한다. 하지만 안동 곳곳에 배인 선비의 향취에 취해 어느덧 유가의 때를 묻히고 유가적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과연 무엇이 저자의 방황을 끝마치게 했는가? 선비 정신이다. ‘부끄럽지 않게 살기’와 ‘훌륭한 사람 되기’를 핵심으로 하는 안동 선비의 특유한 정신이 저자를 유가적 전통을 지키며 살도록 만든 것이다.《천년의 선비를 찾아서?농암 17대 종손이 들려주는 종택 이야기》는 그러한 삶의 흔적이다. 고향 안동에 터를 잡고 유유자적 산천을 거닐며 여기저기에 스며들어 있는 선비의 향취를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 여정을 따라 선비의 숨결을 같이 느껴보자.
종택, 선비의 얼굴
안동 문화는 종택 문화다
훌륭한 인물을 기리고 그 인물을 본받고자 하는 염원에서 비롯된 종택은 가문 탄생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자손 모두의 의지와 문화의 중심체다. 훌륭한 조상을 모신 위패, 그 위패를 지키는 직계 후손인 종손과 종부, 종손과 종부를 밖에서 돕는 지손으로 구성되는 종택은 훌륭한 인물 모시기, 훌륭한 인물 따라가기, 훌륭한 인물 되기라는 후손들의 바람의 구현이다.
안동에는 이러한 종택이 유독 많다. 퇴계와 쌍벽을 이루던 남명 조식이나 율곡 이이 같은 대학자의 종손과 종택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과 달리 안동에는 퇴계 종택을 비롯, 82개 소의 추모 공간과 96명의 불천위가 존재한다. 저자는 이처럼 안동에 유달리 많은 종택이 존재하는 이유로 중시조中始祖 제도[훌륭한 인물이 배출되면 그 분으로부터 가문의 역사를 시작하는 제도]를 언급하며 그것을 ‘훌륭한 사람 되기’라는 안동 특유의 사유 체계와 연결시킨다.
훌륭한 인물이 어떤 인물일까? 이에 대해 나는 한말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곧 안동 사람들의 변별성이고, 그 변별성의 중심에 종택이 존재하고 있다. ‘종택’이 바로 안동이다. 종택을 중심으로 한 각 문중들의 일상이 곧 안동 문화의 근간이다. 안동에서 종택을 떠나 존재하는 행사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
지금 안동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종류의 전통의례는 ‘왜 안동이 안동인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거기에는 ‘훌륭한 사람 되기’와 ‘부끄럽지 않게 살기’가 그 내적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런 사유 체계의 현장에 안동 사람들이 있고, 이를 견인하는 중심에 안동의 종택들이 있다. 안동 문화는 결국 종택들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 축적된 각 가문의 흔적에 다름 아니다.
훌륭한 인물의 출현이 종택의 출현으로 이어지고, 그러한 문중들 간 훌륭한 조상을 본받고자 하는 선의의 경쟁이 이루어지는 안동 특유의 모습이 안동을 ‘안동’으로 자리 매김하는 문화의 역동성이라는 것이다. ‘안동 문화는 곧 종택 문화’라는 저자의 말이 염두에 둔 것은 바로 이런 측면이다.
종택, 선비들의 다채로운 자화상
불천위 조상이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종택의 현재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지금의 종택이, 그 종택에 살고 있는 후손이 어떤 모습이며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를 보면 불천위 조상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요컨대 종택은 조상과 그 후손의 거울이다.
퇴계가 도산서당을 지은 것과 거의 같은 시기, 같은 지역에서 강학의 문을 열고 나름의 학문 세계를 펼치며 자기 빛깔의 생애를 살았던 유일재 김언기金彦璣(1520∼1588)의 종택에서는 한평생 남을 위한 삶을 실천한 현 유일재 종부 이후웅 여사의 고집스러움을 볼 수 있다. 누가 무슨 말을 하건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건 계산도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길의 인생을 가려던 유일재의 꼿꼿함이 반세기의 시간을 가로질러 김후웅 여사에게로 이어진 것이다. 후조당 김부필金富弼(1577∼1644) 종택에서는 벼슬에 연연하지 않는 선비의 고매함과 만날 수 있다. 절개가 굳고, 벼슬이 내려와도 즐거워하지 않으며, 눈속의 매화 향기를 맡으며 좌정하고 앉아 자기 정진을 하는 인물이라는 퇴계의 찬사가 후조당 종택 현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퇴계 이황李滉(1501∼1570) 종택에는 고요가 흐른다. 이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적지에서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 글공부에 매진하고 주변 산천을 거닐며 사색을 즐기던 퇴계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종택에 담긴 선비들의 이러한 다채로운 모습 때문인가. 안동 사람들의 조상 섬김과 전통 보존 노력은 놀라울 정도다. 6?25 당시 불타버린 성재 금난수琴蘭秀(1530∼1604) 종택을 복원하기 위해 봉화 금씨 후손들이 보여준 광경은 단적인 예다. 전국 각지에서 이불, 식량을 짊어지고 와서 솥을 걸고 밥을 해 먹어 가며 1년이 넘도록 종가를 복원하던 후손들이 다시 세우고자 했던 건 종택만이 아닌 종택에 담긴 조상의 삶 그 자체였을 것이다.
무엇이 선비 정신인가
지조와 나라 사랑의 꿋꿋한 절개
불천위 조상의 기준은 ‘훌륭함’이다. 그러나 단순히 훌륭하다 할 경우 그것은 실체 없는 모호함으로 인해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불천위 조상이 된 안동 선비들은 그 훌륭함의 속을 지조와 나라 사랑으로 채운다.
후조당 김부필의 아들인 근시재 김해金垓(1555~1593)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안 향병을 조직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다. 무릎 꿇고 모독을 당하느니 싸우다가 죽는 영광을 택하겠다며 지극한 나라 사랑을 몸소 실천했으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계암 김령金?(1577~1641)은 인목대비의 서궁 유폐는 부당한 일이라며 두문불출하고 인조반정은 정당하지 않다며 칩거하는 등 임금을 위한 불사이군을 온몸으로 보여준다.《조선왕조실록》에서 “지조가 있어 여러 번 불렀으나 사양하며 종신토록 고개를 넘지 않았으니 영남 제1인”이라 찬사할 정도로 지조의 원형이었다. 석주 이상룡李相龍(1858~1932)은 종손으로서 고향과 종택과 사당을 버리고 이국 만 리 길을 오직 하나 ‘조국 독립’을 위해 떠나갔다. “나라가 없는데 사당이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하면서 결코 옮겨서는 안 되는 조상의 위패까지 땅에 묻으며 독립을 위해 헌신한 것이다.
이러한 안동 선비의 지조, 나라 사랑이 바로 ‘훌륭함’이 아니면 무엇이 훌륭함이겠는가. 저자는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이러한 안동 선비 특유의 훌륭함과 연계시킨다. 그리고 그러한 훌륭함의 실천을 안동 선비 정신의 요체라 말한다.
끊임없는 경敬의 추구
‘경敬’이란 유가 최대의 이념이자 목표다. 마음의 작용인 이성과 감정, 섞일 수도 없고 떨어질 수도 없는 오묘한 이理와 기氣를 갈고 닦아 하나인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이 곧 경이다. 안동 선비들은 이러한 경 실현을 위해 공부하는 태도를 끊임없이 수련한다.
후조당 김부필은 의관과 띠를 하고 꼿꼿하게 앉는 관대이좌冠帶而坐의 자세로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의관을 하고 사당에 나가 절하고 물러나 서실에 앉아 책을 보다가 밤이 늦은 후에야 취침하”는 생활을 몸이 불편할 때도 계속했다. 퇴계 이황은 “옷깃을 단정히 하고 잔잔한 긴장을 잃지 않음”이 곧 경이라 말하며 간단 없는 공부를 강조했다. 아울러 일상 속에서 오늘도 그렇게 하고 내일도 그렇게 하는 여유의 지속을 말하기도 한다. 퇴계의 일상은 “마음 내키는 대로 거닐다보면 자연에 흥을 느끼고, 흥취에 젖으면 돌아와 연구하고 사색하는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깨달음이 있으면 기뻐하는’ 그런 상태가 퇴계 식의 일상이며 여유였다.
읽고 또 읽고 또 다시 읽는 생활의 연속, 오늘도 그렇게 하고 내일도 그렇게 하는 간단 없음의 수양이 바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수양의 지속, 속전속결이 미덕으로 칭송받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동 산천을 거닐다
안동 문화 유적, 선비의 향기를 담아
안동의 여러 문화 유적들에서도 안동 선비의 체취에 젖을 수 있다. 부모 사랑이 녹아 있는 건물, 연모의 정을 짐작케 하는 나무, 후손들의 애석함을 담은 바위 등 무수한 사연을 품은 유적을 통해 안동 선비만의 향취를 느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농암 이현보李賢輔(1467~1555)의 별당인 애일당에는 때때옷을 입고 늙은 부모를 위해 춤을 추던 농암의 부모 사랑이 녹아 있다. 하루하루를 아껴 부모가 살아 계신 나날을 사랑하겠다는 농암의 지극한 효심이 눈에 선하다. 도산서당 앞 매화에서는 두향의 지극한 퇴계 연모를 느껴본다. 매화를 좋아하던 관기 두향은 퇴계가 풍기군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자 매화 화분 하나를 선물했다 한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도산서당 앞 매화는 두향의 그러한 연모의 정을 떠오르게 한다. 도계정사와 청음석에는 “10년만 더 사셨더라면”이라 하며 일찍 생을 마감한 송재 이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송재 이우李?(1469~1517) 후손들의 애석함이 엿보인다.
추월한수정에서 “성현 전심의 묘를 터득할 수 있고, 이 심법을 전수한 사람은 오직 퇴계 선생 한 분 뿐”이라며 지극한 마음으로 퇴계를 기리는 고봉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정성을 떠올려보고, 공민왕당과 공주당에서 인교人橋가 되어 공주의 몽진 길을 돕는 안동 아낙들의 갸륵한 정성을 생각할 수도 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도산에서 물러나 만년을 은거한 진성 이씨의 묘]라고만 쓰여 있는 퇴계의 묘비는 청빈한 군자의 죽음을 슬프게 추억하게 한다.
안동 산천, 사람을 만드는 사색의 적지
저자는 안동 가송 올미재에 터를 잡았다. 유유자적의 장소로 잡은 이 터에서 저자는 자연의 흥을 느끼고 흥취에 젖으면 돌아와 사색하던 퇴계의 여유를 배우고 있다. 그리고 퇴계에게 강호의 아름다움의 발견을 물려준 농암의 자연 사랑에 젖어들고 있다.
농암과 퇴계는 이곳 안동 산천에서 강과 달과 배와 술과 시가 있는 풍경을 연출했다. 농암의 《농암집》 기록을 보자.
이윽고 날이 저물어 달빛에 물빛은 흐릿한데, 분강 한가운데 있는 ‘자리바위’에 촛불을 켜니 강물은 여기서 좌우로 나누어져서 흘렀다. 한 줄기는 내가 앉은 자리 곁으로 흐르고, 아래에 퇴계가 앉아 있었다. 내가 취하여 희극을 일삼으며 술잔에 술을 부어 조그만 뗏목에 올려 띄우니 경호景浩(퇴계의 자)가 아래에서 웃으면서 받아 마시기를 왕복 서너 차례. 중거中擧의 무리가 이 정경을 보고 부러워했다.
전원생활의 즐거움이 끝이 없다는 낙사무궁樂事無窮의 경지를 노래한 퇴계의〈도산 12곡〉, 유상곡수流觴曲水[삼월 삼짇날, 굽이도는 물에 잔을 띄워 그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던 놀이]의 풍류를 담은 농암의〈어부가〉는 모두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안동 산천은 그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저자는 청량산을 거닐며 농암과 퇴계의 자연 사랑, 나아가 사색의 즐거움을 묘사한다. 특히 퇴계에게 산행은 곧 공부였다. 청량산 산행을 하면서 퇴계는 자연과 인생의 원리를 말한다. “나무들이 어려움을 참고 갖은 고생을 하여 싹이 자라 성장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살아가고 생물이 자라 움직이는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유산遊山을 “농부의 가을 추수 같은 소득이 있다”고 하며 의의를 인정한다. 집중력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간단 없음의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학문과 경 사상 구현의 궁극인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르는 데 유익한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아늑함과 포근함과 고요를 간직한 안동 산천을 거닐며 퇴계의 사색을 공유한다면 우리들 역시 선비 정신의 구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91510654 |
---|---|
발행(출시)일자 | 2008년 03월 31일 |
쪽수 | 343쪽 |
크기 |
153 * 224
mm
|
총권수 | 1권 |
Klover 리뷰 (1)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사용자 총점
평가된 감성태그가
없습니다
집중돼요
도움돼요
쉬웠어요
최고예요
추천해요
문장수집 (0)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판매가 5,000원 미만 상품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2024년 9월 30일부터 적용)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
-
반품/교환방법
* 오픈마켓, 해외배송 주문, 기프트 주문시 [1:1 상담>반품/교환/환불] 또는 고객센터 (1544-1900) -
반품/교환가능 기간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
반품/교환비용
-
반품/교환 불가 사유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2)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3)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4)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5)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이상 ‘다운로드’를 받았거나 '바로보기'로 열람한 경우
6)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7)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8) 세트상품 일부만 반품 불가 (필요시 세트상품 반품 후 낱권 재구매)
9) 기타 반품 불가 품목 - 잡지, 테이프, 대학입시자료, 사진집, 방통대 교재, 교과서, 만화, 미디어전품목, 악보집, 정부간행물, 지도, 각종 수험서, 적성검사자료, 성경, 사전, 법령집, 지류, 필기구류, 시즌상품, 개봉한 상품 등 -
상품 품절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2)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 관련한 안내가 있는 경우 그 내용을 우선으로 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분 좋은 발견
이 분야의 베스트
이 분야의 신간
-
왕의 밥상10% 20,700 원
-
독재 군주의 최후10% 16,200 원
-
귀화를 넘어서: 러시아로 간 한인 이야기10% 20,700 원
-
모성의 공동체: 여성, 독립, 운동가10% 20,700 원
-
이두로 본 백제 역사10% 16,200 원
『천년의 선비를 찾아서』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 선생의 17대 종손 이성원씨가 쓴 책이다. 지난 5월엔가 도산서원 뒷산인 영지산(靈芝山)에서 그를 만났을 때 “두어 달 전에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도 금방 사보지 못 하였더니, 이제야 하늘빛 고운 가을날에 앞산을 바라보며 마루에 앉아 흥미 있게 읽었다.
농암은, <어부가(漁父歌)>를 지어 퇴계의 <도산십이곡>과 함께 강호문학(江湖文學)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효를 실천한 선비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일흔의 나이로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고자 때때옷을 입고 아이처럼 춤을 추었고 하루라도 날을 아껴 효를 극진히 한다는 뜻으로 <애일당(愛日堂)>을 지었으니 죽은 뒤의 시호(諡號)도 “효절공(孝節公)”이라 했다.
농암(聾巖)애 올라 보니 노안(老眼)이 유명(猶明)이로다.
인사(人事)이 변한들 산천(山川)이야 가샐가.
암전(巖前) 모수모구(某水某丘)이 어제 본 듯 하예라
학창 시절에 공부한 적 있는 시조, <농암가(聾巖歌)>이다. 이 농암은 “귀먹은 바위”라는 뜻이니, 경북 안동 도산의 분강(汾江)에 있던 바위의 이름이다. 거기가 농암 선생의 고향이다. 그리고 이성원씨는 그의 후손으로서 거기에서 나고 어린 시절을 살았다.
이 책이 나왔다는 말을 처음 그로부터 들었을 때 나는 내용을 묻지는 않았다. 속으로 짐작하기로는 명문가의 후손, 그것도 종손으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애환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은근한 기대와 흥미를 가졌었다.
적어도 내가 지나다니는 도산 일대, 아니 안동에서는 퇴계 이황, 농암 이현보, 서애 유성룡 등의 후손은 왕조가 끝나고 민국(民國)의 시대인 지금도 좀 특별한 사람들이다. 퇴계의 차차종손이 결혼하고 아이 낳는 일은 이 일대의 뉴스거리가 된다. 이 책의 저자인 이성원씨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처음에 아주 간략하게 나온다. 첫 부분에 종손으로서의 좀 특별한 신분과 위치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쉽지 않은 고뇌를 술회해 놓기는 했다. 그러나 책의 본론은 그게 아니다.
이야기의 본론은 도산 일대의 선비들의 발자취이다. 저자는 도산권이라 할 수 있는 와룡의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의 종택(宗宅)에서부터 시작하여 청량산까지의 기행을 한다. 그 짧은 답사를 통해 도산 일대 선비들의 종택과 그의 가계(家系)와 그들이 살았던 마을과 산수, 그리고 간간히 그들의 글과 행적을 소개한다.
오천의 군자마을(君子里)에서 김부륜 등 7명의 선비들, 분강(汾江)의 농암, 도산(陶山), 온혜(溫惠), 상계(上溪)의 퇴계, 하계(下溪)의 동암(東巖), 원촌(遠村)의 이육사(李陸史), 그리고 “예던 길”을 걸어 가송(佳松)의 풍광과 청량산의 신재(愼齋)와 청량사의 지현스님에서 끝나는, 짧지만 긴 여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기록을 근거로 그 길과 산과 물, 그리고 건물, 비석 등의 실재를 확인해 간다. 사이사이에 역사적 사실이나 일화, 그들의 작품이 인용되고, 나름대로의 의견이나 해설, 철학도 피력한다. 그의 문체 또한 딱딱한 설명문이 아니라 문학적 표현이 곁들여져 지루하지가 않다.
물론 이 책에는 그다지 새로운 사실은 거의 없다. 그리고 어떤 사실이나 문제에 대해 전문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아주 좋은 선비 문화의 안내 역할을 한다. 관광 해설사가 하는 피상적 안내가 아니라, 퇴계학 관련 논문으로 한문학 박사가 된 전문가의 대단히 격 높은 설명이다.
그는 한 시대의 역사에 기록된 인물의 후손으로서 그 땅에 태어나 살면서 직접 겪은 사람이다. 나는 특히, 그가 안동댐으로 수몰된 부내[汾川]와 도산, 원촌 일대의 본래 모습을 기억하고 있으면서 이를 이 책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이 한 권을 통해 아주 전문적이거나 심층적이지는 않더라도 안동 문화권의 선비의 족보와 생활과 생각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유익한 책이라고 본다. 한문학이라면 아직은 병아리에 불과한 나 역시 조만간 이 책을 들고 하나하나 그 여정을 더듬어 보고 싶어진다.
한 가지 잠깐 덧붙일 것은, 저자가 그의 직계 할아버지인 농암 선생에 대해서는 상당히 말을 아꼈다는 점이다. 퇴계에 대해서는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으나 농암에 대해서는 간략하다. 도산에서 퇴계와 농암이라는 두 거성(巨星)의 위상을 고려해 자신을 낮추는 선비의 미덕을 보였다고나 할까?
찾아뵙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아직 일부러 시간을 내지 못 한 점 용서바라며 좋은 책을 써준 저자의 노고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