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푸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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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으려면 수백만 년이 걸린다는 시집 『시 100조 편』을 쓴
문학사 속 파란 피의 악동 레몽 크노,
만년에 장자의 호접지몽 우화로 새 소설을 쓰다!
꿈?언어?역사의 대홍수 속에 띄운 방주 『연푸른 꽃』
작가정보
초현실주의자, 언어학자, 작사가, 갈리마르출판사 편집자, 수학자, 영화인, 번역가, 소설가이자 시인, 20세기 프랑스 문단의 거장 크노는, 문학실험과 정치변혁의 현장에 양발을 딛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창작세계를 폭넓게 일궈나간 보기 드문 인물이다. 1903년 르아브르에서 태어나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헤겔 강의를 들으며, 당시 그 문하생으로 있던 바타유, 메를로퐁티, 레리스 등과 오랫동안 가까이했고, 나중에 코제브의 헤겔 강의를 편집해 출간하기도 했다. 일찍이 초현실주의운동에 가담했다가 스탈린을 지지하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의문을 품기 시작해 결정적으로 앙드레 브르통과 사이가 멀어지며 1929년 결별했다. 이후 철학과 수학, 정신분석을 통한 자아의 긴 탐색 끝에 첫 소설 『잡초』(1933)를 발표해,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로 제1회 되마고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평생 1000편에 가까운 시와 15편의 소설, 그 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글과 영상 작업을 남겼다. 25년간 갈리마르출판사의 도서검토위원과 사무국장을 거쳐 ‘플레이아드총서’ 발행을 총괄했고, 전후에는 콜레주드파타피지크그룹, 프랑스수학협회, 아카데미공쿠르, 유머학회, 공상과학애호가서클, 울리포 등 다방면으로 연대하며 끊임없이 지적 실험을 펼쳐나갔다.
언어실험의 극단적 예를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문학사에서 유례없는 작품들로 이름을 남겼는데, 일례로 바흐의 푸가에서 영감받아 동일한 일화를 99가지 문체로 변주해낸 『문체연습』(1947), 단 10편의 소네트만으로 시 100조 편의 제작 가능성을 제시한 시집 『시 100조 편』(1961) 등은 오늘날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이외에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해 루이 말이 영화화하기도 한 『지하철 소녀 쟈지』(1959), 중국의 호접지몽 우화를 특유의 언어실험으로 버무려내어 만년의 대가다운 면모를 보여준 『연푸른 꽃』(1965) 등을 비롯해 『오딜』(1937), 『진흙의 아이들』(1938), 『내 친구 피에로』(1942), 『살리 마라의 내면일기』(1950), 『인생의 일요일』(1952), 『이카로스의 비상』(1968) 등의 소설과 『떡갈나무와 개』(1937), 『운명의 순간』(1946), 『만돌린을 연주하는 개』(1965) 등의 시집, 『선, 숫자, 그리고 글자』(1950) 등의 비평에세이를 출간했다.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문학 속 언어의 지리적 풍경을 완전히 뒤바꿔놓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문학언어에 대한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E.S.I.T.)에서 번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번역출판기획네트워크 ‘사이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번역 논쟁』, 역서로는 『지하철 소녀 쟈지』(레몽 크노), 『단추전쟁』(루이 페르고), 『문법은 아름다운 노래』(에릭 오르세나), 『삐에르와 장』(모파상),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식탁의 길』(마일리스 드 케랑갈),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발레리 라르보), 『에콜로지카』(앙드레 고르) 등이 있다.
목차
- 연푸른 꽃 9
저자의 말 315
옮긴이의 해제 316
레몽 크노 연보 329
추천사
-
“오늘날 현명하고 똑똑한 작가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표본이 크노다. 『연푸른 꽃』은 역사를 갖고 노는 소설로, 역사의 전개를 부정하면서 나날의 존재가 지닌 실체로 역사를 만들어낸다.”
-
“멜랑콜리가 뒤섞인 일상의 장면들을 담아낸 크노의 작품은 불멸하는 모호한 동화의 나라다.”
-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풍부하고도 다양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경화된 형식을 파괴하고자 애쓴 덕이다. 그의 작품에는 슬쩍 보기만 해도 이러한 사실을 드러내주는 수많은 사례가 있다.”
-
“이오네스코와 베케트 같은 또다른 언어해체자의 선구자들보다 더 선명히 부상한 인물.”
-
“레몽 크노의 『연푸른 꽃』은 문학에서 가장 기이하고 야생적인 작품 중 하나다. 크노는 시대를 즐기고 탐구하고 씨름하는 특이한 명작을 내놨다.”
책 속으로
"어쨌든 그들은 존재하고, 아마도 존재할 가치가 있겠지. 그들이 다시 돌아와 내 기억의 미로에서 헤매는 일은 없을 거야. 그건 하찮은 작은 사건이었다고. 하찮은 사건들인 양 전개되는 꿈들이 있지. 깨어 있는 삶에서는 그런 것들을 담아두지 않아. 하지만, 그것들이 앞다퉈 아침에 눈꺼풀의 문을 밀어댈 때 그것들을 포착하면 흥미롭지. 내가 꿈을 꿨던 걸까?”(본문 21쪽)
“중국의 그 유명한 우화 호접몽은 다들 알고 있으리라. 장자 자신이 나비가 되는 꿈을 꾼다지만, 오히려 나비 자신이 장자가 되는 꿈을 꾼 것은 아닐까?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오주 공작 자신이 시드롤랭이 되는 꿈을 꾸는 걸까, 아니면 시드롤랭 자신이 오주 공작이 되는 꿈을 꾸는 걸까?
175년 간격으로 역사를 가로지르며 등장하는 오주 공작을 따라가보자. 오주 공작은 1264년에 성 루이대왕과 만난다. 1439년에는 대포를 몇 문 구입하고, 1614년에는 연금술사 한 명을 발굴하며, 1789년에는 페리고르지역의 동굴에 들어가서 희한한 활동에 몰두한다. 그러다가 1964년에, 그의 꿈에 나타나 강가에 묶어둔 짐배를 거처로 사용하면서 전적인 무위의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시드롤랭을 드디어 만난다. 시드롤랭으로 말하자면, 그는, 꿈을 꾼다…… 그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욕설로 더럽혀놓는 정원 울타리를 다시 칠하는 작업인 듯하다.
본격 추리소설에서처럼 그 미지의 인물이 누구인지가 밝혀지리라. 연푸른 꽃들에 대해서는……“ (「저자의 말」, 315쪽)
출판사 서평
“ 나리! 어디로 모실까요?”
“ 멀리! 저멀리로! 이곳 진창, 우리의 꽃으로 이뤄졌도다.”
중세의 오주 공작은 꿈에서 정박중인 배에서 먹고 마시고 잠자는 오늘의 시드롤랭이 되고,
오늘의 시드롤랭은 꿈에서 말 타고 수백 년을 건너 시간 여행중인 중세의 오주 공작이 된다.
두 삶이 겹쳐지며 피어나는 연푸른 꽃, 크노의 호접몽이 보여주는 언어의 신비
레몽 크노, 프랑스 현대문학사의 지형을 바꾼 거장의 초상
20세기 문단의 거장 크노(Raymond Queneau, 1903~1976)는, 유례없는 작품들로 현대 프랑스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무엇보다 1960년대 수학자와 문학가로 구성된 ‘잠재문학작업실’이란 뜻의 실험문학그룹 울리포(OuLiPo)를 만든 장본인으로 자주 언급된다. 한국에 제법 알려진 작가들인 조르주 페렉, 이탈로 칼비노 등도 차후에 그 그룹에 합류해 함께 활동했다. 크노는 문자와 수의 세계를 나란히 놓고 봄으로써 문학 속에서 전혀 낯선 방식으로 또다른 잠재성을 이끌어낸 작품들로 주목받았다. 일례로 바흐의 푸가에서 영감받아 동일한 일화를 99가지 문체로 변주해낸 『문체연습』(1947), 단 10편의 소네트만으로 시 100조 편의 제작가능성을 제시한 시집 『시 100조 편』(1961) 등은 오늘날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비롯해 수많은 작가가 크노의 작품들을 두고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명작, 프랑스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써낸 작가”라며 크노의 남다른 작업에 박수를 보냈다. 이렇듯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들로 울리포의 선구자로 평가받은 크노. 그는 이오네스코와 베케트가 보여준 언어파괴, 셰익스피어나 초서가 툭툭 내뱉던 야한 농담, 파운드나 조이스가 지닌 입말의 이미지, 라블레나 세르반테스한테서 보이는 왁자한 상상력을 보다 더 실생활로 끌어와 문자로서, 문자를 위한, 문자의 모험을 펼친다.
크노는 일찍이 초현실주의그룹에도 잠깐 몸담았고, 콜레주드파타피지크그룹, 프랑스수학협회, 난센스논의학회, 유머학회, 공상과학애호가서클 등 울리포 말고도 다양한 그룹들과 연대하며 문학 내에 잠재된 여러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작가였다. 11살부터 작성한 독서목록을 평생 이어나갔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독서광이었고, 1000편이 넘는 시와 16편의 소설 등을 펴낸 작가이자, 갈리마르 플레이아드총서를 이끈 편집자로서 여러 작가를 발굴해낸 눈밝은 지성인이었으며, 부뉴엘-트뤼포-베리만 등과 작업한 시나리오작가이자 배우이자 칸영화제 심사위원이기도 했고, 대중가요 샹송의 작사가이기도 했다. 사르트르가 그의 시 <네가 이런 생각이라면Si tu t’imagiens>을 읽고 노래로 만들어보라고 청한 그 곡이 나중에 쥘리에트 그레코가 불러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는 일화며,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문하생으로서 그의 헤겔 강의록을 정리하여 주석판을 내는가 하면, 코제브 밑에서 함께 공부했던 바타유와 함께 헤겔 연구 논문 「헤겔 변증법의 기초 비판」을 같이 쓰기도 했으며,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를 연구한 책을 펴내기도 했고, 초현실주의그룹의 수장 앙드레 브르통에 반대하여 (그의 처제와 결혼했음에도) 바타유, 레리스, 프레베르, 데스노스 등과 『한 송장un cadavre』이란 팸플릿을 공동 제작하는 등 일화에서 보다시피 다양한 얼굴로 다방면에서 두각을 보인 인물이었다.
만년의 대가가 장자 호접몽의 우화로 풀어낸 역사와 꿈과 언어의 대향연
이 소설 『연푸른 꽃Les fleurs bleues』(1965)은 오랜 세월 언어를 가지고 실험했던 크노가 펴낸 후기작이다. 만년에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대가의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다. 꿈과 현실, 중세와 현대, 각종 언어와 조어가 갈마드는 이 작품의 독특한 서사적 구성은 읽을 때마다 새록새록 또다른 재미를 안긴다.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심인물은, 오주 공작과 시드롤랭이다. 1960년대 파리 센강 인근에 수송선을 묶어두고 그곳에서 먹고 자는 한량 시드롤랭과 중세에서 시종과 함께 말을 하는 두 마리 말을 타고 시간여행에 나선 오주 공작. 둘은 전혀 다른 시간을 사나, 각자 자기네 꿈속에서 서로를 만난다. 말하자면 언제 그 시공간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게, 누가 누구의 꿈속을 거니는지 알 수 없게, 둘의 잠속 모험이 반복되고 변주된다. 「작가의 말」에서 보다시피, 크노는 중국의 호접몽 우화를 가져와 되묻는다. “오주 공작 자신이 시드롤랭이 되는 꿈을 꾸는 걸까, 아니면 시드롤랭 자신이 오주 공작이 되는 꿈을 꾸는 걸까?” 독자는 어느새 오주 공작이 탄 주마등에 함께 탔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시드롤랭이 한잔하는 수송선의 테이블로 옮겨온다.
작가는 재밌게도 중세의 오주 공작이 꿈길을 걸어 시드롤랭의 현실로 오기까지 정확히 175년씩 역사의 징검돌을 배치했다. 그 정황을 보자면, 오주 공작은 1264년 여덟번째 십자군 원정을 꾀하는 성 루이대왕이 통치하던 시절의 봉건영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뒤(1장에서 4장까지), 샤를 7세가 통치하는 1439년으로(5장에서 8장까지), 그러고는 루이 13세를 대신해 마리 드 메디치가 섭정을 펼치는 1614년으로(9장에서 12장까지), 그다음에는 루이 16세의 폐위를 몰고 온 대혁명의 해인 1789년으로(14장에서 17장까지), 그리고 마침내 드골이 통치하는 1964년으로(18장에서 20장까지) 건너뛰어 시드롤랭이 살고 있고 작가인 크노가 이 작품을 집필하던 시점인 현대로 온다. 둘의 눈꺼풀이 감겼다 뜨일 때마다 역사적 정황도 순간순간 뒤바뀐다. 그러다 마침내 둘이 만나는 마지막 장은 압권이다. 이 장에 가서야 비로소 진흙밭에 피어난 연푸른 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묶어둔 수송선이 드디어 이곳에서 풀려나 어딘가로 떠나는 것도 이 마지막 장이다.
크노는 여기서 각기 다른 시대, 다른 나라의 인물이 한데 어울리는 이 작품에서 여러 언어, 구어, 조어 등을 써서 특유의 유머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라틴어, 희랍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어설픈 영어, 심지어 인공언어까지 총동원하여, 이 작품에는 희한한 언어의 향연이 펼쳐진다. 시드롤랭의 수송선이 ‘방주’라고 불리는 것이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듯, 크노의 이 소설 자체가 하나의 방주가 되어 바벨의 방언들, 그 언어의 대홍수 속으로 나아가는 방주 같다.
번역의 불가능성을 헤치고 나온 구성진 번역이 주는 재미와 한국어판의 의의
그간 크노의 작품들은 문학사에서 숱하게 거론되었으나 번역불가능성이 제기될 만큼 언어실험을 감행한 작품들이 대부분인지라, 대중적으로 성공한 소설 『지하철 소녀 쟈지』가 2008년 잠깐 나왔던 걸 빼면, 그간 한국에 소개될 기회가 없었다. 그의 작품이 자국의 문학장에 어떤 식으로든 통쾌한 자극과 독창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리라는 확신은, 영문판(바버라 라이트)이나 이탈리어판(움베르토 에코, 이탈로 칼비노) 번역에 도전한 쟁쟁한 그 이름들의 명성만 봐도 능히 짐작 가능하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이미 크노의 전작이 거의 소개되어 있을 정도다. 한국에 뒤늦게나마 소개되는 행운을 누린 것도 번역가의 어지간한 소명의식과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한국에 먼저 『지하철 소녀 쟈지』를 소개한 정혜용 번역가는, 이번 소설 역시 심혈을 기울여 크노가 여기저기 폭죽처럼 터뜨리고 있는 언어유희와 형식실험을 따라잡으며 한국어로 구성지게 옮겨냈다. 크노의 작품이 언어의 지리적 풍경을 완전히 뒤바꿔놓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문학언어에 대한 상상력을 증폭시키듯, 번역가는 최대한 자신의 주체성과 모국어의 가능성을 열어젖혀 이 작품의 묘미를 살려냈다. 옮긴이 해제를 통해 크노의 언어실험이 어떻게 감쪽같이 술술 읽히는 이야기로 변모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가 정혜용은 말한다. “우리는 따로 또 같이 놀았다. 크노는 자신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로, 번역가는 번역가의 모국어인 한글로. 이 작품에는 시쳇말로 ‘아재개그’라 할 만한 유치하고 시답잖은 말장난에서부터 (첫페이지를 장식하는 덜떨어진 말장난들) 기존 단어를 살짝 비튼 신조어 만들기나 (들어본 듯하나 존재치 않는 국가 “루머니아”나 “잔나비아” 등) 초성이나 음절 바꿔치기처럼 일상의 흔한 말실수를 활용한 말장난을 비롯해 (맞는 듯 맞지 않은 “천개번둥” 등) 언어적·문화적 박식함을 전제로 하는 고급 말장난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온갖 종류의 언어유희가 총망라되어 있다. 이 허구의 세계에 입장한 이상, 그저 긴장을 풀고 한데 어우러져 놀다 가기를 바란다.”
기본정보
ISBN | 9788954655682 |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3월 27일 | ||
쪽수 | 336쪽 | ||
크기 |
137 * 232
* 22
mm
/ 492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번역서)명/저자명 | Fleurs Bleues/Queneau, Raymo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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