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화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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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을 유영하며 던지는 질문과 몽상
커피 테이블 북과 가짜 책이 범람하는 이 시대를 심도 있고 재기발랄하게 진단한 잡화점 주인의 에세이가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도쿄 니시오기쿠보에서 잡화점 'FALL'을 운영하는 저자는 카운터에 앉아 본연의 쓸모를 상실하고 잡화로 점점 변해가는 물건들을 보면서 '잡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잡화, 소비 사회, 가게 경영, 인생에 대한 단상을 담은 《잡화감각》을 펴냈다. 하라주쿠의 전설적 잡화점인 분카야잡화점부터 쿤데라의 문학을 거쳐 레고와 무민까지. 문학, 음악, 미술, 서브컬처를 종횡무진 인용하면서 현대 소비문화의 흐름을 '잡화'와 '잡화화'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작가정보
(三品輝起)
1979년 교토 출생. 에히메에서 자랐다. 2005년 도쿄 니시오기쿠보에 잡화점 FALL을 개점,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첫 책 《잡화감각》 외에 《잡화의 끝(雑貨の終わり)》(2020), 《파도치는 곳의 물건을 찾으러(波打ちぎわの物を探しに)》(2024)를 썼다.
목차
- 1
밤과 가게 한구석에서
'잡'이라는 글자
반경 1미터
잡화의 은하계
조금만 달라도
영자 신문
이것은 책이 아니다
예고된 잡화의 기록
집으로 가는 길
잡화의 가을
아직 음악을 듣던 시절
오프 시즌
홋토포
2
도구고
길가의 신
천의 키치
천의 쿤데라
11월의 골짜기
속됨과 속됨이 만날 때
현악 4중주곡 제15번
새어 나오는 멋
3
한계 취락
배 밑바닥의 구조 모형
파리아적, 브라카만적
슬픈 열대어
유령들
마지막 레고들의 나라에서
낙엽
해설-조그맣고 느긋하고 허무한 도망
옮긴이의 말-떠내려가고 있음을 감각하기
책 속으로
서서히 도구를 멀리하는 대중에게 어떻게 물건을 팔 것인가? 그때 자본가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패션과 같은 이미지의 차이이며, 동시에 대중들에게 나타난 것이 잡화감각이다. 이미 가위든 망치든 페인트든 제품의 성능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멋지거나 재미있거나 아름다워야 한다. 제품을 서로 비교할 때 나타나는 이미지 차이에 따라 소비자는 돈을 지불한다. 책이라면 내용이 아니라 표지나 띠지, 서체를 기준으로 소설을 고르는 감각이 소비자에게서 싹트기 시작한다. _'잡'이라는 글자
잡화화의 물결은 모든 방향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잡화스러운 빵, 과자, 음료, 음악, 그림, 옷, 부적, 장난감, 향수, 골동품, 장식품…… 형태가 있거나 혹은 형태가 없더라도 패키징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잡화왕국에 집단 취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은 그저 책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낮에는 책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 밤에는 잡화로 변하기도 하고, 서점에서는 잡화인 척하고 있었는데 집에 데려와 보니 책이 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생활을 즐기는 듯한 지점이 있다. _이것은 책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잡화점 주인이 잡화를 소개하는 책은 썩어 문드러질 만큼 많지만 메타잡화론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을 잘 모르는 이유는 모두 자신이 믿는 잡화를 파는 데 필사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잡화 따위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잡화 전체에 관해 이야기하는 의미를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_도구고
최근 10년간 여러 잡화 트렌드가 계속 바뀌어가며 개발되었다. 좋아하게 된 잡화도 거기에 녹아 있는 이야기와 가치관도 끝까지 믿지 못하고 흘려보내다 보면, 금세 다른 물건에 눈길을 주거나 질려버리고 만다. 하지만 쿤데라식으로 말한다면, 존재가 무거움을 잃고 가벼워지기 전에 우리는 또 다른 무언가를 믿고 새로운 잡화를 좋아하게 되어 다시 시장으로 돌아온다. 믿었다가 질리고, 질리면 다시 믿는다. _천의 쿤데라
앨범 속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에델 4중주단,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곡 제15번〉. “악장은 여섯 개인데 전부 아다지오지.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이 여기에 응축되어 있다네.” 짐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그 음반을 가게에서 틀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언젠가 가게를 그만두는 날에 튼다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_현악 4중주곡 제15번
레고는 알려준다. 우리가 어렸을 때 별생각 없이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풍경이 긴 세월에 걸쳐 비바람을 견디는 방이 되고, 푸른 초원이 되고, 오두막이 되고, 2층집이 되고, 끝내 마을이 되고 그 사람 자신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이들은 언젠가 만나고 또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사실도. _마지막 레고들의 나라에서
출판사 서평
“세상의 모든 물건이 잡화로 보이기 시작했다.”
취향, 트렌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가장 솔직한 고백
보통 ‘잡화’라고 하면 일상에서 쓰는 잡다한 물건을 뜻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잡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잡화란 잡화감각에 의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 그러면 잡화와 잡화 아닌 것을 가르는 기준인 ‘잡화감각’은 또 무엇일까. 잡화감각이란 “사람들이 잡화라고 생각하는지 아닌지를 정하는 개념”으로, 구체적으로 풀어보자면 ‘이미지의 차이’에 의해 물건을 고르는 감각이다. 저자는 지금의 시대를 이렇게 진단 내린다. 모든 물건은 잡화감각에 의해 잡화화 되어가는 중이라고.
예를 들면 가위나 망치와 같은 ‘도구’도 ‘멋지거나 재미있거나 아름다운’ 외양이 덧씌워지면 잡화감각에 의해 잡화가 될 수 있다. 본래의 기능은 그대로 유지한 채 잡화라는 이름을 획득한 경우다. 한편, 공사 현장에서 도장할 때나 쓰이던 마스킹 테이프가 ‘귀엽다’고 새로이 인식되어 언젠가부터 공사장을 벗어나 이곳저곳에 쓰이기 시작한 것도 ‘잡화화’의 한 조류라 볼 수 있다. 잡화감각에 따르면 책도 물론 잡화가 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커피 테이블 북(그리고 커피 테이블 북을 따라 한 가짜 ‘책’)은 물론, “내용이 아니라 표지나 띠지, 서체를 기준으로” 소설을 고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잡화화의 급속한 물결은 인터넷의 발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현상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취미와 취향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서로의 인정 욕구를 채우던 시스템은 SNS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좋은데’, ‘귀여워’, ‘훌륭해’, ‘멋있어’, ‘예뻐’”와 같은 마음의 소리가 점점 온라인 공간에 흡수되어간다. 그것은 공유되어 잡화감각이라는 거대한 집단의식의 구름 덩어리를 만들어간다.”(본문 중)
잡화감각에 잠식된 세상에서 나만의 고유한 취향, 특정한 물건에 대한 남다른 기호를 고백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롯이 내 선택이라며 믿어 의심치 않으나, 점심에 마실 커피, 저녁 데이트 때 입을 옷, 여름휴가 때 예약할 호텔은 기실 내가 언젠가 눌렀던 ‘좋아요’ 버튼과 댓글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이 나를 그리로 이끈 것에 불과하다. 최근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중심으로 물건이나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자신의 고집스러운 취향을 무심히 소개하는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데, 한발 물러서서 보면, 이와 같은 ‘감도 높은’ 취향조차도 결국 트렌드의 자장 안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
“‘갖고 싶다’라고 생각한 순간의 욕망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 원천을 찾아가기란 불가능하다.”(본문 중)
이상하고 가끔 아름다운 세계에 관하여
저자는 이미 유치원 때 ‘레고’의 세계에 흠뻑 빠졌다. 대학 입학과 함께 시작한 도쿄 생활 시절엔 ‘더콘란숍(The Conran Shop)’이니 ‘이데(IDÉE)’니 하는 잡화점들을 처음 접하곤 흥분했다. 아직도 대학 시절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포푸리를 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은 잡화점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저자의 내력으로 짐작되는 내용과는 다르게, 이 책은 잡화의 역사를 소개하거나 고상한 잡화 취향과 방대한 지식을 나열하거나 마음에 드는 잡화를 찾아 헤맨 경험담과는 거리가 멀다. 그간의 잡화나 소비 취향에 관한 책들과는 노선이 완전히 다르다.
소비문화에 대한 껄렁하고 때론 냉소적이기까지 한 저자의 이면에는 자기 성찰이 깔려 있는데, 바로 이러한 지점이 이 책이 지닌 귀한 미덕이리라. 소비의 기쁨과 슬픔을 잘 아는 동시대인이라면 행간에 자리한 복잡한 사랑의 자취를 아렴풋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멀찍이 떨어지고 싶으면서도 다시금 주변을 맴돌게 되는 이상하고, 가끔 아름다운 잡화의 세계가 펼쳐지는 가운데, ‘히로 야마가타’, ‘매거진 《뽀빠이》’, ‘노미야 마키’ 등 일본 문화에 전방위로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반가울 이름들이 속속 보인다. 몰라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아는 만큼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책을 다 읽어가는 시점에선 ‘그렇다면 잡화가 아닌 것은 무엇일까?’ 가만히 자문하게끔 한다. 물음표 뒤로 이 책의 몇몇 장면이 스냅사진처럼 남는다. 도쿄로 상경한 지 얼마 안 된 저자가 미지의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해 한밤중 인터넷 게시판을 들락거린 모습(‘홋토포’), 음악가이자 도예가인 구도 씨의 펑키한 정신이 담긴 내용물이 새는 그릇(‘새어 나오는 멋’), 화가의 꿈을 간직한 노인 ‘짐’이 언젠가 가게에서 틀어 달라며 놓고 간 낙소스 버전의 쇼스타코비치 앨범(‘현악 4중주곡 제15번’), 저자의 본가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처치 곤란이 된 레고를 묵묵히 맡아준 오뎅 가게 아들 K(‘마지막 레고들의 나라에서’)…. 잡화화의 불길이 절대로 미치지 않을 삶의 파편들에.
기본정보
ISBN | 9791172540197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08월 30일 |
쪽수 | 216쪽 |
크기 |
132 * 208
* 22
mm
/ 525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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