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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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목차
- 시인의 말…3
목차…4
제 1 부
말랑한 연두…11
빨래…12
산으로 가는 비…13
봄을 입고…14
먹물…15
기차표를 끊다…16
나를 말린다…17
하얀 장미…18
영광 굴비…20
앵무새…22
사흘 휴가…24
눈을 맞추다…26
시간을 수선하다…27
시를 읽는 낙타에게…28
이태원을 보내다…30
노점상…31
아픈 금팔찌…32
주름진 발자국…34
제 2 부
제주살이…37
다랑쉬 오름…38
비자림 숲에서…39
새별오름…40
꽃을 먹는 물고기…42
바람결에 실려온 향기…44
봄-자갈치…46
소녀상 얼굴…48
풍경카페…50
부산역…51
초량 이바구길…52
오이소 부산으로…53
붉은 낙서…54
풍경소리…55
부산 여자…56
물안개를 보며…58
호박꽃…59
젖은 의자…60
지하철 안에서…62
제 3 부
어머니를 검색하다…65
풀꽃 사랑…66
달빛에 가다…68
저문 강물소리에…70
탁주 한 사발…72
별이 되다…74
나의 우산…75
모란 꽃잎을 열고…76
채우는 행복…78
루비…80
바람 든 무…82
끈…84
겨울을 보내다…86
오후 세시…87
아버지의 앵두나무…88
갈매기 우체통…89
범띠 가시내…90
내 금요일에는…92
제 4 부
그 섬 보랏빛…95
삼봉 아제…96
고등어…98
섬…99
파도를 먹는 고슴도치…100
파도와 함께 춤을…102
은빛 침묵…104
젖은 길…105
오월 묵상…106
혼자 웃는다…108
사랑을 꿈꾸다…109
나의 상사화…110
팽나무…111
새의 모험…112
끌 수 없는 불…113
피향정 연꽃…114
구절초…115
갈댓잎에 구월 비…116
문병…117
☐ 해설/ 화해와 치유 그리고 사랑-강영환…118
책 속으로
말랑한 연두
봄비 내리면
잠에서 덜 깬 연두 잎이 깨어나는 소리
새로 트는 숨소리 시작되고
털복숭아 버들강아지 분칠 하여
물오른 버드나무 봄을 훔쳐본다
침묵만 하던 빈 들판에
봄 오는 소리를 아무도 막지 못했다
봄이 앓고 있다
열에 들떠 저마다 뽐내듯
온통 사랑 나누는 열기 가득하다
겉절이 봄내가 꽃망울 터뜨리며
농익은 홍매의 수작 한창 요염하다
달포쯤 앓아누운 나도 봄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
한꺼번에 수줍게 피어나는
꽃들을 보니 모두 다
사랑에 깊이 빠지겠다
빨래
물통 속 출렁이는 비누거품이
나의 속살을 씻는다
몸에 묻은 절였던 묵은 때를
강한 물살로 씻고 또 씻고
털고 털어 먼지 낀 내 몸
거짓 웃음 얼룩들이
말없이 사라지는 어둠을 헹구어낸다
물기 다 빠져나가도록
나를 털어 말리는데
따스한 봄빛에 개구쟁이 바람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디딜 곳 없는 허공 흔들리는 외줄에
나는 바람을 붙들고 춤을 춘다
산으로 가는 비
담뱃갑만한 쪽방에서
오랜 친구처럼 술병이
잠들어 있는 고모 머리맡에 실눈을 뜨고 있다
앞 못 보는 고모부는 허공만 바라본다
뒹구는 술병에 봄비가 내리면
고모 눈가에도 비가 내렸다
해운대 밤바다를 헤맨 빗방울이
모래사장에 꼬꾸라져 있는 술병을 채운다
잠시라도 더 봄을 붙잡고 싶은 사람
고모부 가슴에도 아지랑이 횃불처럼 타오르고
술병은 봄을 밟고
장산 진달래꽃 피우러 가고 없는데
그 밤 내내 봄비는 그칠 줄 모른다
봄을 입고
지난겨울 수락산 재 넘어 시집간 언니
고추당초 매운 시집살이 견디며
모진 얼음장 뚫고 싹 틔우는 봄날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새색시 가슴 앗아가던 설한이 매서워도
봄기운에 쫓기어 뒷걸음질 친다
산 아랫마을에 연둣빛 젖망울 벙그는 소문
누가 퍼뜨린 것일까
긴 상처 딛고 일어서는 새싹들
골목길 수런대며 봉오리 터뜨린다
아지랑이 일렁이는 산등성 너머
설움 짙게 발효시킨 오방색 물감
붉은 가슴 단장하고
새 각시 친정 나들이에 발걸음 들뜬다
먹물
수평선 숨는 해가
벌겋게 취해 무엇이 아쉬운 듯
머뭇거리고 있나
수묵 같은 어스름 번진 해변을
두 손 잡고 걸어가는 백발 노부부
서로 지팡이가 되어
끝없는 길에 나란하다
먹물은 먹과 물이 만나
벼루에 사랑을 갈았다
하얀 백지 위에 함께 첫발을 딛고
꿈결 같은 먹빛은 화선지에
산수화를 그린 붓끝으로
파도치는 바다를 새겨 나간다
검버섯 피어난 소실점에서
동행이 한 줌 소지로
불꽃이 되는 그날까지
화선지에 남은 길을 채워간다
기차표를 끊다
강 허리를 가르며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강물은 힘겨운 무게에 일렁이고
기차표 한 장에 꿈을 실은 열차가
하늘 끝에 이르도록
푸른 기적 울리며 달리는 쇠바퀴 소리
내 짐 보따리 실려 가는
녹슨 바람이 허리를 감고 돈다
차창으로 밝고 그늘진 풍경들
스쳐 지나가는데
철길은 기차를 견디느라 말이 없고
나그네 여행길 종착역은
어느 간이역에 멈춰 설
내 그림자
차표는 아직 주머니 속에
구겨져 있다
나를 말린다
붉은 감 실에 꿰어
앞 베란다에 달아 놓는다
햇살에 간직한 물기 다 내어 주고
바람에 지나온 길을 뭉친다
물기 날아간 빈 젖같이
마른 씨 안고 단맛 깊은 곶감같이
제 몸 안에 바다를 품었음에도
다 퍼낸 황태같이
나도 서서 온몸에 허물을 덜어내면
저처럼 다 비워낼 수 있을까?
군살을 빼고 비움을 채우면
하늘빛으로 남을 수 있을까
하얀 장미
세찬 물결 소용돌이 속에 두절된 친구!
전화기 저 편에서
축축한 바람소리 들린다
행복했던 부부 사진 한 장
검은 드레스에 장미 한 송이
향기 없는 꽃으로 피어난다
잡은 손 놓지 않고 마지막 눈인사
가는 사랑 잡을 길 없어
낙엽처럼 파르르 떨고 있다
봄볕 내린 담에 기대 피우던 흑장미
그의 온기로 헐렁했던 가난을
함께 베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던 긴 소용돌이
그대 넓은 그늘 놓지 못하고
목소리 그리워 전화를 들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마당에 모난 돌들이 제 살 깎으며 울었다
사랑 떠난 빈 둥지에
장미 한 송이 하얗게 꽂혀있다
영광 굴비
법성포가 굴비를 보냈다
택배 상자를 풀자 칠산 앞바다가 쏟아진다
하늬바람을 담은 섶간된 굴비
겹쳤던 몸 떼어내니 함께 절여온
은빛 비늘이 쓰리고 쓰린 소태다
노란 줄에 엮인 죽은 물고기의 눈도
서로를 느끼듯
이별을 준비한 물간 비린내가
마중을 나온다
눈만 뜨면 함께했던 코흘리개 아띠(친구)
달콤한 골담초꽃 따먹던 노란 나비
이사 간다며 먼지 날린 트럭에서 흔들던 손
소낙비로 쏟아지던 이별을
작은 가슴에 안겨주었다
지워지기 전의 재회
마른 굴비로나마 채워보리라
석쇠에 올려진 기름진 속살
뒤집을 때마다 자글자글
영광 바다가 밀려온다
09. 추천사
배가 출항하던 날
갑판 위에 손 흔들며
초승달 눈썹이 웃어주었다
고요 너울거리는 신방에
조각 달빛이 문을 두드린다
거머리 떼로 몰려드는
젖은 적막이 주춤거린다
낮에 받은 그대 편지
달빛 아래 펼쳐본다
서로 오가지 못한 말
마주하지 못한 눈빛
둥근달이 머금었다 한다
파도가 흘러 기울어도
다시 차오를 달빛 동행
은밀한 꿈을 위해 밀어를 나누기엔
햇빛은 너무 뜨거웠다
선상에 뜬 만월이
기관실 가득 둥근 빛을 쏟아내
내 품에 안긴다
-「달빛에 가다」전문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씨가 배를 타는 신랑을 바다로 떠나보내고 낭군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솟아나는 작품이다. 첫날밤 신방을 엿보던 달빛을 기억한다. 그래서 달빛만 보면 첫날밤에 나를 설레게 했던 낭군이 생각난다.‘선상에 뜬 만월이/기관실 가득 둥근 빛을 쏟아내/내 품에 안긴다’라고 노래하는 건 달빛으로 하여금 내 낭군을 데려다 달라는 간절한 기원이 담겨있다. 주희령 시인의 부군은 실제로 선원이었다고 전해 들었다. 바다에 관련한 작품들이 있는 것도 그런 연관성 때문이라 여겨진다.
외로움과 기다림은 주희령 시인이 품고 살았던 테제이기도 하다. 먼바다로 떠난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며 혼자 견뎌야 했을 고독과 그리고 혼자이기에 감당해야 했던 수모와 핍박과 밀려오는 온갖 삶의 문제들이다.
그런 모습이‘온몸이 백지가 되어/돌덩이 같은 슬픔도/무쇠 같은 분노도/혼자 삭힌다’「( 내 금요일에는」)는 구절처럼 몸에 선명히 찍혀 있는 문신으로 남는다. 이들을 덮고 가려주는 것은 사랑의 힘이다. 그것을 느끼게 하는 것은 달빛으로 상징되는 사랑이다. 달빛은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사랑의 힘을 지녔다. 달을 바라보며 그리워했던 사랑이 돌아와 아이들 곁에 있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출판사 서평
고독
그렇게 물 위에 떠 있는 너
모든 걸 비웠기 때문이지
나, 이렇게 가라앉는 건
그대를 가슴에 담고 있기 때문이야
바위보다 무겁고 바다보다 깊은 그곳
아무리 먼 곳이라도 마음먹으면
가지 못할 리 없겠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네게로 가는 길
기슭만 배회하다 정박하지 못하고
차마 다가갈 수 없는 물살이 밀어내어
오랜 바람과 파도에 시달리며
침묵으로 엎드려 가슴을 다독이는
기도보다 더 고요한 바다
잠들기 전 가만히 불러보는 당신
너를 꼭 껴안으면 눈물방울도 굳어져
먼 한 섬이 될 수 있으련만
물 위에 떠 있는 그대가 되어
-「섬」 전문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본다. 섬은 바다에 떠서 혼자 고독을 삼킨다. 섬을 보며 바다로 떠나 외로운 항해를 이어가며 외로움과 싸우고 있을 낭군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물결에 가로막힌 사랑을 섬에 빗대어 형상화하고 있다. ‘고독’이라는 단어는 섬을 한마디로 말하는 가장 적확한 말이 된다. 그 외에는 달리 섬을 수식할 방법이 없다. 그 고독한 섬과 뭍을 떠나 망망대해를 건너야 할 그대는 내게 섬과 같은 존재로 느껴져 온다. 나는 그 섬에 가고 싶지만 물살이 밀어내어 다가갈 수가 없다. 섬이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를 비웠기 때문이다. 떠 있는 섬을 바라보는 내가 가라앉고 있는 것은 그대를 가슴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 가만히 불러보는 당신/너를 꼭 껴안으면 눈물방울도 굳어져/먼 한 섬이 될 수 있으련만/물 위에 떠 있는 그대가 되어’에서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자는 의미로 읽혀진다. 그대가 섬이고 나도 섬이 되고 서로의 처지를 맞바꾸어 서로가 갖는 애틋함을 나눠보자는 뜻이 함유되어 있다. 섬은 나의 믿음이 가 닿고 싶어한 귀의처다. 도달할 수 없는 절대 영원한 세계를 그리워하는 믿음이 안타까운 모습으로 남은 풍경이다.
주희령 시인의 작품에서는 고독한 섬처럼 외롭고 쓸쓸한 이들의 삶이 얼굴에 난 검버섯처럼 여러 작품에 보인다. ’앵무새는 혼자 웃는다/새장 속을 맴돌며 제 그림자와 단절하고/종일 숲의 사막을 걷고 있다‘와 같이 단절과 소외를 쓰면서 우리 시대를 관통하고 지나간 코로나바이러스 19로 인한 팬데믹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격리된 유리창 너머로 면회를 하고 왜 이제 왔느냐는 질책에 격리된 현실을 핑계대며 가슴에 묻은 말들을 토하는 외롭고 쓸쓸한 이 시대의 독거를 그려낸 「앵무새」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88048861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11월 20일 (1쇄 2023년 11월 17일) |
쪽수 | 112쪽 |
크기 |
127 * 206
* 12
mm
/ 313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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