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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서양인이 쓴 최초의 조선견문기 1884 완역본
퍼시벌 로웰 저자(글)
하얀책 · 2022년 0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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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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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라면, 그리고 그곳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일을 기록으로 남긴다면 무엇을, 얼만큼이나 기술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 이하, 로웰이라 한다)주1이라는 미국 젊은이가 1883 년 12 월 20 일부터 1884 년 3 월 18 일까지 당시 국왕 고종의 손님으로 조선에 머물면서 체험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서, 서양인이 쓴 최초의 조선기행문이다. 이 기행문은 『Chosön: The Land of Morning Calm - A Sketch of Korea』라는 제목으로 1886 년 미국 보스톤에서 출간되었다.

작가정보

저자(글) 퍼시벌 로웰

출간작으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등이 있다.

목차

  • 들어가는 말.......................................................................... i
    번역 원칙.............................................................................ⅳ
    이 책과 관련된 조선말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vi
    퍼시벌 로웰의 생애............................................................... xiii
    옮긴이의 말....................................................................... xix
    지은이 서문...................................................................... xxxi
    제 1 장. 하루가 시작되는 곳 ....................................................1
    제 2 장. 조선반도의 지리 ......................................................23
    제 3 장. 기후 ....................................................................25
    제 4 장. 해안 ....................................................................37
    제 5 장. 제물포 .................................................................51
    제 6 장. 서울로 올라가는 여정 ...............................................61
    제 7 장. 서울로 올라가는 여정 - 둘째 날 ..................................75
    제 8 장. 서울 입성 ..............................................................85
    제 9 장. 성곽도시 ...............................................................93
    제 10 장. 남산 위의 봉화 ....................................................101
    제 11 장. 정부 .................................................................109
    제 12 장. 세 가지 원칙 .......................................................117
    제 13 장. 몰개성의 질 .......................................................131
    제 14 장. 가부장제 ...........................................................143
    제 15 장. 여성의 지위 ........................................................155
    제 16 장. 궁정 알현 ...........................................................165
    제 17 장. 집에서의 하루 ......................................................175
    제 18 장. 복파정 (伏波亭) ....................................................183
    제 19 장. 종교의 부재 ........................................................195
    제 20 장. 악귀숭배 ............................................................207
    제 21 장. 서울의 낮 ...........................................................229
    제 22 장. 서울의 밤 ...........................................................243
    제 23 장. 조선의 연회 ........................................................255
    제 24 장. 수학자인 내 친구 ..................................................267
    제 25 장. 건축 ..................................................................279
    제 26 장. 조경 ..................................................................297
    제 27 장. 궁전 ..................................................................307
    제 28 장. 공포의 하루 ........................................................321
    제 29 장. 빨래계곡 ............................................................329
    제 30 장. 의상 ..................................................................339
    제 31 장. 모자에 대하여 ......................................................355
    제 32 장. 외진 구석의 언어 ..................................................373
    제 33 장. 화계사 ...............................................................381
    제 34 장. 수도원에서 겨울 향연 .............................................393
    제 35 장. 시간 ..................................................................403
    제 36 장. 곤경 ..................................................................413
    제 37 장. 부산의 봉화 ........................................................423
    부록...............................................................................429
    찾아보기..........................................................................431

책 속으로

들어가는 말
만약, 여러분이 1883 년 즈음, 사전 지식이 거의 없는 조선을 방문해서 3 달 동안 머물다 돌아간 미국인이라면, 그리고 그곳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일을 기록으로 남긴다면 무엇을, 얼만큼이나 기술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퍼씨벌 로웰(Percival Lowell; 이하, 로웰이라 한다)이라는 미국 젊은이가 당시 조선 국왕 고종의 초청으로 1883 년 12 월 20 일부터 1884 년 3 월 18 일까지 조선에 머물면서 체험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서, 서양인이 쓴 최초의 조선 기행문이다. 이 기행문은 『Chosön: The Land of Morning Calm - A Sketch of Korea』라는 제목으로 1886 년 미국 보스톤에서 출간되었다.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 (1929-2010)는 1982 년 미국 아리조나주 플랙스탭(Flagstaff)에 있는 로웰 천문대 자료관에서 위의 책을 발견한 경위와 그 때의 감격을 그의 번역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 韓國』 (1986, 대광문화사)와 15 년 뒤, 같은 내용을 수정해 발간한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 (2001, 예담)에 적어 놓았다. 발간된 지 거의 100 년 만에, 조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선을 소개하는 책에서 이제는 학술적, 민속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 책으로 격이 한참 높아져 돌아온 셈이다.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 (1929-2010)는 1982 년 미국 아리조나주 플랙스탭(Flagstaff)에 있는 로웰 천문대 자료관에서 위의 책을 발견한 경위와 그 때의 감격을 그의 번역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 韓國』 (1986, 대광문화사)와 15 년 뒤, 같은 내용을 수정해 발간한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 (2001, 예담)에 적어 놓았다. 발간된 지 거의 100 년 만에, 조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선을 소개하는 책에서 이제는 학술적, 민속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 책으로 격이 한참 높아져 돌아온 셈이다.
우연한 기회에 예담본 1 장을 읽다가, 원본을 번역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원본의 1 장을 번역하고 나서,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했다’는 후회와 함께, ‘이왕 시작한 거, 한 번 끝까지 해보자’는 오기도 생겼다. 후회의 이유는 로웰의 심미적인 문장력을 제대로 소화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오기의 이유는 로웰의 그런 글을 제대로 소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번역하는 동안 느끼고 또 느꼈지만, 로웰의 문장력은 실로 대단하다. 똑 같은 상황에서 내가 여행기를 썼다면 그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웰이 전문 작가였다면,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영어는 현란한 도치, 잦은 비문, 많은 지시대명사의 모호성, 예측하기 힘든 단어 사용과 상황 전환 등, 전통적인 대중 영어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는 그와 멀지 않은 세대인 1930 년대 미국 평론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해지면, 해박한 지식과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열정과, 놀랄만한 자료 수집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맛은 위에 언급한 단점들을 지우고도 남는다.
번역을 하는데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 조경철 박사의 예담본 1 장 이후 일부러 읽지 않았다. 번역을 마친 후, 마지막 37 장, 마지막 두 절만 비교해 보았다. 그 이유는 저자가 조선을 떠나가는 장면이 눈물 날 정도로 너무 애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예담본 1 장과 37 장 마지막 2 절을 제외하고는, 예담본과 본 번역본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번역의 의미에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본 번역본은 설령, 저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순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한 문장도 생략하지 않은, 적어도 형식상 완전한 번역본임을 밝힌다. 아울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될 수 있는 한 다양한 주석을 곁들였다.
주1. Lowell의 미국식 발음은 ‘e’가 거의 묵음인 ‘로울’이다. 하지만, 이미 로웰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에 여기서도 로웰로 적는다.
주2. 정영진. 2021. 퍼시발 로웰과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한국 스케치』 연구. 박사학위 논문.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옮긴이의 말
저자는 출간한 조선 기행문의 제목은 『Chosön: The Land of Morning Calm - A Sketch of Korea』이다. 조선과 Korea가 동시에 들어 있다. 19 세기 말, 수 많은 서양인들의 조선 관계 저술이 있지만, 제목에 조선이 들어간 저술은 이것이 유일하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썼다면, 그 의도는 무엇일까?
Korea는 그 당시 한반도라는 지리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단어이고, 조선은 그 당시 한반도에서 사는 사람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단어다. 따라서, Korea는 시대를 구분하지 않는 통시적(通時的)인 단어다. Korea라는 말의 연원이 되는 고려 시대의 Korea는 고려이고, 이씨 조선시대의 Korea는 조선이고, 대한민국 시대의 Korea는 한국이다. 따라서, 이씨 조선이 존속한 기간의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구한말(舊韓末), 또는 한말(韓末), 또는 한국(韓國)이라는 말을 쓰는데 있어서 신중해야 된다. 한민족 역사에서 ’한’(韓)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시기는 대한제국과 대한민국뿐이므로, 구한(舊韓)이라면 대한제국이고, 구한말은 대한제국의 말기가 된다. 한편, 『조선상고사』나 『한국통사』의 경우처럼 조선이나 한국이 한민족을 아우르는 통시적인 의미로 쓰이나, 이씨 조선을 특정할 경우, 조선은 한국이 아니다.
저자는 타타르인이 적어도 알타이 지방의 어딘가에서부터 동쪽으로 이동해서 현재 한반도에 정착해 지금의 조선인이 되었고, 한반도로부터 동쪽으로 더 이동한 사람들은 일본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타타르 민족의 이동을 문화사적인 면에서, 그리고 언어학적인 면에서 큰 그림을 그리면서, 그는 이 두 가지를 그가 좀 더 익숙한 일본과 비교하면서 일본 문화의 원류는 한반도에서 건너갔다고 확신한다.
저자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쇠락해가는 현장에 있으면서, 무엇보다도 내적, 외적 요인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음을 사회진화론에 입각해 해석한다. 그러나, 짧은 방문 기간 동안 철저하게 방관자로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문화의 뿌리를 찾아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찾으려, 일부러 책 제목에 조선 국호를 내세우지 않았나 생각한다.
저자는 종종 서양의 과학문명과 종교적 우월성을 드러내지만,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조선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 보았다. 그는 조선의 자연을, 조선의 문명을, 그리고 조선의 문화를 보았다. 책에 기술된 바에 의하면, 가마 타는 것을 무척 고통스러워 한 그는 한양 도성 밖으로 4 번 밖에 안 나간다. 서대문 밖 한강의 복파정 (제 18 장), 남대문 밖 (제 28 장), 세검정 (제 29 장), 화계사 (제 33 장)가 그것이다. 대신, 걸어서 서울을 많이 돌아다닌다. 따라서, 그가 본 조선의 자연은 서울이라는 인공적인 도시가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으니, 그가 본 것은 결국 조선의 사람이었다.
저자가 조선에서 받은 첫 번째 충격은 길에 바퀴가 없다는 사실이다. 4,500 년 전의 수메르인들도 사용한 바퀴의 중요성은 지금으로 치면 반도체나 마찬가지다. 물론, 바퀴가 없어도, 조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이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바퀴는 곧 길이고, 길은 그 나라의 부다. 바퀴가 없으니 길을 잘 관리할 필요가 없다. 겨울임에도 날이 따듯하면 진창이 되는 길을 보고, 저자는 조선 정부가 길을 한 번도 수선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적는다. 길이 엉망이니 모든 활동을 오로지 몸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생산성이 떨어지고, 결국, 국가의 부가 늘어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조선에 올 때 일본에서 가져온 인력거 2 대가 조선에 나타난 최초의 인력거라고 생각한다.
민중의 생활에 서양의 과학문명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조선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틈을 안 주어서가 아니라, 없어도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은 듯 했다. 그 당시, 서구 문명을 앞 서 받아들인 청나라와 일본을 오가는 고위 관료들이 많았음에도, 그들은 서구 문명을 차용하는데 절박하지 않았다. 소위 상류층의 사람들조차 시계가 제대로 없어 시간 관념이 없는 상황도 기술한다. 저자가 조선에 이동 사진기를 최초로 들여 온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를 놀라게 만든 것은 조선에서 아라비아 숫자가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저자는 조선 당대의 수학자 김낙집과 마음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데, 아라비아 숫자를 처음 본 김낙집이 절망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적는다 (제 24 장). 그 옆에 있던 저자의 반응도 상상 가능하다. 저자는 여기서 조선 문명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저자가 조선에서 받은 첫 번째 충격이 과학의 부재, 즉 문명적 충격이라면, 두 번째 충격은 개성의 부재, 즉 문화적 충격이다. 본인을 당황하게 한 충격이 아니라, 조선사회의 특징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저자는 머뭇거림 없이 이것을 제시했을 것이 틀림없을 정도로, 눈에 띄어서 받은 충격이다. 사실, 이 몰개성(沒個性, impersonality)은 아주 큰 충격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조선에 오기 전에 이미 일본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조선 사회의 많은 문제점이 이것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거기서 더 나아가, 몰개성이 조선시대에 국한하지 않고 타타르인의 특징이라고 역사성을 부여한다. 몰개성이 사회가 진화하는데 큰 걸림돌이 됨을 서구는 중세 암흑시대에 경험했고, 르네쌍스를 통해 그것으로부터 빠져 나온 역사가 있다. 조선이 개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에서는 르네쌍스의 싹이 트고 있었다. 그로부터 400 년이 지난 그 당시, 저자는 조선이 개성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몰개성은 전체주의와 파시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제 2 차 세계대전과 특히 태평양 전쟁에서 보았다. 일본은 아직도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문화란 그런 것이다.
또한, 저자는 조선 사회의 경직성에 대해 여러 면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함께 살핀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가부장제를 꼽는다. 가부장제는 몰개성과 여성의 지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가부장제와 몰개성은 서로가 원인이고, 서로가 결과다. 저자는 조선 사회의 경직성의 원인을 유교와 중국으로 돌린다. 하지만, 조선의 지배계급이 그렇게 되도록 자초했다고 질타한다. 그가 머무는 동안, 서울 시내에서 청나라 군인이 민간인에 총을 쏴 사망하게 할 정도로 (제 28 장), 조선의 자주권이 중국의 손아귀에 있음을 목격해서가 아니라, 조선의 건국이래 마치 조선의 정치 이념처럼 자리 잡아, 문화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느낀다. 그 당시, 조선 사회는 머리만 있고 몸은 없는 사회다. 일본으로 돌아갈 때, 홍영식과의 이별연이 열린 제물포의 일본 식당과 거기서 시중드는 일본 아가씨를 통해, 무섭게 파고 드는 일본 세력을 감지한 저자는 은밀하게 조선의 미래를 예견한다. .
저자가 조선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부르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 말은 전혀 시적(詩的)이 아니다. 저자의 조선 방문시기는 한 겨울이라 해가 늦게 뜬다. 불이 없으니 사람들이 늦게 일어난다. 밖에 나갈 일이 있는 사람이 아침 식사하고, 옷매무새를 만지고, 걸어서 일보러 가면, 족히 이른 점심 때쯤 되지 않을까? 저자도 자기 거처에 방문객이 오면 대충 그 시간쯤 된다고 적어 놓았다. 그러니 상인들도 서두를 필요가 없고, 거리는 북적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서울의 아침은 누구의 느낌으로도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옛날, 단군시대에 조선이라는 국호를 그런 의미에서 지었는지 의심스럽지만, 저자는 조선을 한자 그대로의 의미인 ‘고은 아침’이라고 알고 있기는 하다. 저자의 말대로, 곱기는 고운데 적막한 아침이다.
저자는 자기가 겪은 조선인은 모두 일을 느리게 느리게 한다고 답답해 한다. 어디론가 길을 떠날 때에도, 하릴없이 오전을 보내고 꼭 오후에 떠난다. 늦게 떠나면 낭패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대체 급할 것이 없다. 만약, 저자가 살아 돌아와, 세계적으로 ‘빨리 빨리’ 문화를 알린 지금의 한국인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렇게 느린 조선인이 제 시간을 지키려고, 아니, 제 때가 아니어도 챙기려고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밥이다. 열일 제쳐 두고 밥이 우선이다. 식사 시간에 맞춰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는 때가 식사 시간이다. ‘앞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두자’라는 자세가 삶의 원칙인 양 보이는 이유를 저자가 조선에 상륙해 서울로 올라가는 날부터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제 6 장).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이해하지 못할 점이 여러 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조선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문화를 가슴 속으로 사랑한다. 책의 많은 부분이 이에 할애되어 있다. 호기심이 너무 많은 저자는 조선 사람이 행동하는 것, 조선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은 결코 가볍게 지나치지 않고, 알아 보고, 해석하고, 적는다. 개중에는 우리조차 모르는 민화(民話)도 들어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정도보다 더 넓고, 더 깊이 조선의 문화를 섭렵한다. 옆에서 방대한 자료 수집을 도와준 것으로 짐작되는 이시렴의 노고를 알 만하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저자가 화계사에 놀러 갔을 때, 광대극을 보고 엄청 재미있어 했다는 점이다. 기록을 보면, 다 알아들은 듯, 일부 대사까지 적어 놓고 있다. 하도 재미있어서 다음 날에도 숙소 밖에서 사진도 찍을 겸 개인적으로 다시 청해 즐긴다 (제 34 장).
한편,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전반적으로 웃음이 은근짜로 나오지만, 저자의 일부 경험담은 소리 내어 웃게 만든다. 특히, 다리가 긴 서양인이 가마를 (저자는 차라리 상자라고 불렀다) 타고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은 애교일 정도로 웃기는 장면도 나온다. 그 당시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 모두가 틀림없이 동병상련일 것 같은 온돌의 위력을 경험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제 6 장). 또, 통행이 금지된 야간에 서울 거리를 걷다가, 밤에 돌아다니는 개에게 얼마나 놀랐으면, 개는 사악하고 비겁하다고 말했을까 (제 22 장)?
저자는 예정보다 오래 조선에 머무른다. 이는 저자의 일본 출발을 늦추려고 애를 쓴 홍영식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이 때쯤이면, 갑신정변을 모의하고 있었을 홍영식이 민간인인 저자를 곁에 오래 두고 싶을 정도로 얼마나 신뢰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상주하면서 거처를 관리하는 무관 최홍석과 매일 출퇴근하면서 자신을 보살펴 주는 비서 이시렴의 사람 됨됨이에 반한다. 그리고, 본인이 수학에 익숙한 이유도 있지만, 수학자 김낙집에게는 아예 한 장(章)을 할애한다 (제 24 장). 어느 날, 김낙집은 그 전 방문에서 감기 걸린 저자를 보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보약인지, 그를 위해 정성스럽게 포장한 금환(金丸) 두 알을 선물한다. 저자는 정성에 감격해 그리고 환약이 너무 아름다워, 차마 그것을 삼키지 못하고 옆으로 슬쩍 밀어 둔다. 보기에도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조선에 머물면서, 떠나갈 때에 자기는 거의 조선인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조선의 사람에 빠지고, 조선의 문화에 빠진다.
저자는 부산을 떠나가는 배 갑판에서, 지나간 것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다시는 오지 않을 것에 대한 먹먹한 안타까움에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마침 피어 오른 부산의 봉화를 쳐다 보며, 봉화의 의미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하루 밤만 헤어지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할 수만 있다면 조선에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너무나 애절한 이별이다. 소설로 치면, 이 책의 클라이맥스이자 결말이다. 저자는 일본으로 돌아간 후, 거기서 몇 달 머물다 미국으로 돌아간다. 그 후, 10 년에 걸쳐 일본을 두 번 더 방문하지만, 조선에 다시 오지는 않는다. 만약, 갑신정변이 성공해 홍영식이 살아 있었다면, 홍영식은 분명히 저자를 다시 조선으로 초청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의 진심 어린 조선 사랑은 나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 원서(번역서)명/저자명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97556128
발행(출시)일자 2022년 08월 20일
쪽수 480쪽
크기
152 * 225 mm
총권수 1권
원서(번역서)명/저자명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Percival Lo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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