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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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중앙일보 > 2018년 7월 1주 선정
이 책의 총서 (40)
작가정보
저자 헤로도토스(Herodotos)는 기원전 484년경 소아시아의 그리스인 국가인 할리카르나소스(오늘날 터키의 보드룸Bodrum)에서 태어났다. 정치적 이유로 조국에서 추방된 이후, 오랫동안 해외에 머물며 지중해 세계의 여러 지역을 여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450년대에 귀국했다가 다시 출국하여, 기원전 443년 이후에는 이탈리아의 투리(Thurii)에 거주한 적도 있다고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 후 기원전 420년대에 투리 혹은 마케도니아 펠라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한다.
저서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역사를 다룬 『역사』(Historiai)가 있다. 추방 생활 초기부터 관련 지역을 여행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탐구와 저술을 거듭한 결과, 기원전 420년대에 저술 작업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는 지중해 세계 최초의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고대 여러 지역의 자연 환경과 지리와 민속 등을 기술한 진귀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번역 김봉철
옮긴이 김봉철(金奉哲)은 1957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이소크라테스의 정치사상: 기원전 4세기 폴리스의 위기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스 아테네 대학 대학원 역사고고학과에서 수학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 고전학과 방문학자로 연구한 바 있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 문화, 집단정신, 오리엔트와의 관계에 대한 논문들을 썼고, 주요 논문으로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사료비판 사례」, 「헤로도토스의 판단사례 분석」, 「헤로도토스와 그리스 신화서술: 제우스 서술을 중심으로」, 「지중해세계 최초의 역사서, 헤로도토스의 『역사』」, 「헤로도토스의 역사서술과 그리스 신화」, 「고대 아테네의 사회변화와 고등교육의 역할」, 「고대 그리스에서의 유럽의 형성과정에 관한 역사적 분석」, 「고전기 아테네의 종교적 추방자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저서로 『그리스 신화의 변천사: 시대와 신화』(도서출판 길, 2014), 『전환기 그리스의 지식인, 이소크라테스』(신서원, 2004), 『영원한 문화도시, 아테네』(청년사, 2002), 『서양고대사 강의』(공저, 한울, 2011),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공저, 푸른역사, 2009)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그리스 민주정의 탄생과 발전』(한울, 2001)이 있다. 현재 아주대 사학과 교수로 있다.
목차
- 해제 : 헤로도토스의 『역사』 어떻게 읽을 것인가 013
옮긴이의 말 041
일러두기 054
제1권
제1~5장 서언. 그리스인들과 이방인들의 불화 사례 059
제6~94장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의 지배 064
제6~7장 크로이소스와 리디아의 초기 왕들
제8~15장 크로이소스의 조상 기게스의 지배
제16~25장 알리아테스의 지배
제26~28장 크로이소스의 정복 활동
제29~33장 크로이소스와 솔론
제34~45장 크로이소스의 아들 아티스 사망
제46~55장 크로이소스와 델포이 신탁
제56~58장 펠라스기아인의 내력과 언어
제59~64장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
제65~68장 스파르타의 상황: 정치 개혁과 테게아 전쟁
제69~70장 리디아와 스파르타의 동맹 체결
제71~85장 크로이소스의 페르시아 원정과 패배
제86~92장 크로이소스와 키로스
제93~94장 리디아의 관습과 문화
제95~216장 페르시아 왕 키로스의 지배 127
제95~107장 메디아의 지배자들
제108~30장 키로스의 탄생과 양육. 메디아 멸망과 키로스 즉위
제131~40장 페르시아의 관습과 문화
제141~77장 키로스의 이오니아, 소아시아 정복
제178~87장 바빌론의 도시 구조와 성벽
제188~92장 키로스의 바빌론 정복
제193~200장 바빌론 지역의 관습과 문화
제201~14장 키로스의 마사게타이 원정과 키로스의 죽음
제215~16장 마사게타이인의 관습과 문화
제2권
제1장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의 즉위와 이집트 원정 착수 203
제2~4장 프삼메티코스 왕의 실험과 이집트인들의 업적 203
제5~34장 이집트의 지리 205
제5~18장 이집트의 지형과 크기
제19~27장 나일 강의 홍수 원인
제28~34장 나일 강의 원천
제35~98장 이집트의 관습과 문화 222
제35~36장 이집트와 다른 지역의 관습 차이
제37~48장 이집트인의 종교적 관습
제49~58장 이집트 신앙과 제식의 그리스 전래
제59~64장 이집트의 제전들
제65~76장 이집트의 동물과 동물숭배
제77~91장 이집트 경작 지대의 관습
제92~98장 이집트 늪지대의 관습과 문화
제99~182장 이집트의 역사 257
제99~141장 이집트의 왕들: 민, 세소스트리스, 케옵스, 미케리노스, 세토스 등
제142~46장 이집트의 연대 추산
제147~82장 이집트의 왕들: 프삼메티코스, 네코스, 아프리에스, 아마시스 등
제3권
제1~38장 캄비세스의 이집트 원정 317
제1~3장 캄비세스의 이집트 원정 이유
제4~16장 이집트 정복과 캄비세스의 만행
제17~26장 페르시아의 에티오피아와 암몬 원정 실패
제27~38장 캄비세스의 광적인 행동
제39~60장 스파르타의 사모스 공격 340
제39~43장 폴리크라테스의 번성
제44~53장 사모스 공격의 배경
제54~59장 사모스 공격과 철군
제60장 사모스의 건설 업적
제61~87장 페르시아 왕 다레이오스의 즉위 353
제61~67장 마고스의 반란과 캄비세스의 사망
제68~79장 7인의 거사
제80~82장 정치체제 논의
제83~87장 다레이오스의 즉위
제88~117장 다레이오스의 통치 영역 371
제88~97장 20개 통치관구 제정
제98~105장 인도인들의 관습과 문화
제106~17장 세계 변방들의 자연 환경과 산물
제118~60장 다레이오스의 지배 384
제118~28장 인타프레네스와 폴리크라테스, 오로이테스의 죽음
제129~38장 크로톤의 명의 데모케데스
제139~49장 페르시아의 사모스 정복
제150~60장 바빌론의 반란과 페르시아의 재정복
제4권
제1~82장 스키티아인들이 관습과 문화 411
제1~4장 다레이오스의 스키티아 원정 배경
제5~16장 스키티아인들의 유래
제17~20장 스키티아인 종족들
제21~35장 스키티아 너머의 종족들
제36~45장 세계의 지리: 리비아, 아시아, 에우로파
제46장 스키티아인들의 유목 생활
제47~58장 스키티아의 강들
제59~75장 스키티아인들의 관습: 제사, 전쟁, 예언술, 장례
제76~80장 스키티아인들의 외국 관습 배격
제81~82장 스키티아인들의 인구수
제83~144장 다레이오스의 스키티아 원정 452
제83~98장 원정군의 진로와 이스트로스 강 도강
제99~101장 스키티아의 지형
제102~20장 스키티아 주변 종족들과 그들의 관습
제121~29장 스키티아인들의 후퇴와 페르시아군의 추격
제130~44장 페르시아군의 곤경과 퇴각
제145~205장 페르시아의 리비아 원정 479
제145~67장 테라와 키레네의 건국과 역사
제168~80장 트리토니스 호수 동쪽 해안의 리비아인 종족들과 그들의 관습
제181~85장 내륙의 리비아인 종족들과 그들의 관습
제186~90장 트리토니스 호수 동쪽의 리비아인들의 유목민 관습
제191~96장 트리토니스 호수 서쪽의 리비아인 종족들과 그들의 관습
제197~99장 리비아의 지리와 생산
제200~05장 페르시아군의 리비아 원정
제5권
제1~27장 페르시아의 트리키아, 마케도니아 원정 513
제1~2장 메가바조스의 페린토스, 트라키아 정복
제3~8장 트라키아인 종족들과 그들의 관습
제9~10장 이스트로스 강 너머의 종족과 관습
제11~16장 메가바조스의 파이오니아 정복
제17~22장 페르시아 사절들의 마케도니아 방문과 피살
제23~24장 히스티아이오스의 수사행(行)
제25~27장 오타네스의 비잔티온, 렘노스 점령
제28~37장 이오니아 반란 발생 525
제28~34장 밀레토스와 페르시아 연합군의 낙소스 원정 실패
제35~37장 이오니아의 반란 개시
제38~54장 아리스타고레스의 스파르타 방문과 스파르타의 지원 거절 531
제38~48장 스파르타의 클레오메네스와 도리에우스
제49~51장 클레오메네스의 지원 거절
제52~54장 ‘왕의 길’의 경로와 역참들
제55~97장 아리스타고레스의 아테네 방문과 아테네의 지원 수락 541
제55~56장 히피아스의 동생 히파르코스의 피살
제57~61장 페니키아 문자의 그리스 유입
제62~65장 아테네의 참주정 붕괴와 히피아스 출국
제66~69장 클레이스테네스의 부족제 개편
제70~89장 아테네의 대외적 분쟁들
제90~96장 히피아스의 아테네 복귀 좌절
제97장 아테네의 지원 수락
제98~126장 이오니아 군대의 공세와 키프로스 반란 572
제98장 파이오니아인의 귀향
제99~103장 이오니아 군대의 사르디스 공격
제104~15장 키프로스의 반란과 좌절
제116~23장 페르시아군의 반란 지역 진압: 헬레스폰토스, 카리아, 아이올리스, 이오니아 일부
제124~26장 아리스타고레스의 도피와 사망
제6권
제1~42장 페르시아가 이오니아 반란 진압 587
제1~5장 히스티아이오스가 반란 가담
제6~18장 이오니아인들의 라데 전투 패배와 밀레토스 함락
제19~30장 밀레토스 함락의 여파와 히스티아니오스의 죽음
제31~33장 페르시아의 이오니아 재정복 및 헬레스폰토스 서부 지역 점령
제34~42장 밀티아데스 일가의 케르소네노스 통치
제43~45장 마르도니오스의 그리스 원정과 중도 퇴각 606
제46~120장 다레이오스 치세의 그리스 원정 607
제46~47장 다레이오스의 타소스 제압
제48~49장 다레이오스가 그리스 국가들에 항복 요구. 아이기나인의 항복
제50~73장 스파르타 왕 클레오메네스의 아이기나 응징
제74~84장 클레오메네스의 행적과 죽음
제85~93장 아테네와 아이기나의 분쟁
제94~101장 페르시아군의 그리스 원정과 에레트리아 점령
제102~17장 마라톤 전투와 그리스군의 승리
제118~20장 페르시아군의 퇴각과 스파르타군의 뒤늦은 도착
제121~31장 알크메오니다이 가문 650
제132~40장 밀티아데스의 행적: 파로스 원정과 렘노스 점령 657
제7권
제1~4장 다레이오스의 그리스 원정 재개 준비와 죽음 665
제5~19장 페르시아 왕 크세륵세스의 즉위와 그리스 원정 결정 667
제20~131장 크세륵세스의 그리스 원정 681
제20~25장 원정 준비와 아토스 운하 건설
제26~32장 크세륵세스 휘하 육군의 진군: 카파도키아에서 사르디스로 행군
제33~36장 헬레스폰토스에 부교 건설
제37~44장 크세륵세스 휘하 육군의 진군: 사르디스에서 아비도스로 행군
제45~56장 크세륵세스와 아르타바노스. 페르시아 육군의 헬레스폰토스 통과
제57~60장 페르시아 육해군의 도리스코스 도착. 전군의 인원 점검
제61~83장 페르시아 육군 보병의 구성과 규모
제84~88장 페르시아 육군 기병의 구성과 규모
제89~100장 페르시아 해군의 구성과 규모. 크세륵세스의 전군 사열
제101~04장 크세륵세스와 데마레토스
제105~27장 페르시아 육해군의 테르메 도착
제128~31장 크세륵세스의 피에리아 방문과 테살리아의 지형
제132~78장 그리스인들의 대응과 전쟁 준비 729
제132~37장 크세륵세스의 항복 요구와 일부 그리스인들의 항복
제138~44장 아테네인들의 델포이 신탁 문의와 테미스토클레스의 신탁 해석. 테미스토클레스의 전함 건조
제145~71장 그리스인들의 협약 체결과 페르시아 정탐. 아르고스, 시라쿠사, 크레타의 동조 거부
제172~74장 테살리아인들의 페르시아군 가담
제175~78장 그리스군이 테르모필라이와 아르테미시온에 집결
제179~239장 페르시아군의 진격과 양군의 결전 758
제179~83장 페르시아 해군의 남하
제184~87장 페르시아 육해군의 전체 규모: 추가 병력 포함
제188~95장 페르시아 해군의 난파와 아페타이 정박
제196~200장 페르시아 육군의 멜리스 도착
제201~33장 테르모필라이 전투와 페르시아군의 승리
제234~38장 페르시아군의 작전 논의. 레오니데스 시신 훼손
제239장 데마레토스의 비밀 전갈
제8권
제1~23장 아르테미시온 해전과 양측의 손실 791
제1~3장 그리스 해군의 전력과 지도권
제4~5장 그리스 해군의 아르테미시온 주둔
제6~14장 제1차 해전. 폭풍과 페르시아 해군의 손실
제15~18장 제2차 해전과 양측의 손실
제19~20장 에우보이아의 가축 피해
제21~23장 테르모필라이 패전 소식과 그리스 해군의 퇴각
제24~39장 페르시아군의 진격: 포키스와 보이오티아로 진군 801
제24~26장 페르시아군의 상황
제27~30장 테살리아인과 포키스인의 불화
제31~33장 페르시아군의 포키스 진군
제34~39장 페르시아군의 보이오티아, 델포이 진군
제40~96장 살라미스 해전과 그리스군의 승리 807
제40~41장 아테네인들의 아티카 철수
제42~49장 살라미스의 그리스 해군 전력. 해전 장소 논의
제50~55장 페르시아군의 아테네 점령
제56~64장 그리스인들이 살라미스를 해전 장소로 결정
제65~69장 페르시아군이 해전을 치르기로 결정
제70~83장 그리스군의 재논의와 테미스토클레스의 행적
제84~96장 살라미스 해전
제97~120장 크세륵세스의 퇴각과 아시아로의 귀환 836
제97~103장 크세륵세스의 퇴각 결정
제104~10장 페르시아 해군의 퇴각과 그리스군의 추격
제111~12장 그리스군의 안드로스 공격
제113~20장 크세륵세스의 퇴각
제121~44장 크세륵세스 퇴각 후 양측의 상황 849
제121~25장 그리스인의 감사 제물과 논공행상
제126~29장 아르타바조스의 행적
제130~32장 양측 해군의 상황
제133~35장 마르도니오스의 신탁 문의
제136~44장 알렉산드로스의 아테네 회유와 아테네의 거부
제9권
제1~24장 마르도니오스 군대의 재진격과 그리스인의 대응 867
제1~11장 페르시아군의 아테네 재점령과 스파르타군의 출정
제12~18장 페르시아군이 아테네에서 테바이로 물러남
제19~24장 그리스군이 페르시아 기병 격퇴
제25~89장 플라타이아 전투 879
제25~32장 그리스군의 플라타이아 진군. 그리스군과 페르시아군의 전열 구성
제33~40장 양측의 희생제식과 소극적 태도
제41~45장 마르도니오스의 전투 결정과 알렉산드로스의 제보
제46~57장 페르시아 기병의 공격과 그리스군의 진지 이동
제58~75장 플라타이아 전투와 그리스군의 승리
제76~85장 전투 후 그리스인들의 상황과 전리품 분배
제86~89장 그리스인들의 테바이 응징과 아르타바조스의 퇴각
제90~107장 미칼레 전투 921
제90~101장 그리스군의 이오니아행(行) 항해와 미칼레 상륙
제102~05장 미칼레 전투와 그리스군의 승리
제106~07장 전투 후 양측의 상황
제108~13장 크세륵세스의 연애 행각과 마시스테스의 반란 932
제114~22장 그리스군의 세스토스 점령과 아르타익테스의 죽음 936
고대 지중해 세계 연표 942
도량형 및 화폐 단위 945
참고문헌 947
찾아보기 949
출판사 서평
국내에 번역, 출간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3~4종 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사’ 전공자에 의한 희랍어 원전 번역은 이 책이 최초이다. 즉 이전까지의 번역본들은 ‘역사’ 전공자에 의한 번역이 아니었다. 특히나 번역자 김봉철 교수는 이미 역사가로서의 헤로도토스와 그의 주저 『역사』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여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 책을 번역하였다.
이 책 번역의 원칙으로 역자는 원문을 가급적 충실하게 직역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음을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학 고전이므로 그 문장과 자구 하나하나가 독자들에게 충실하게 전달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언뜻 당연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독자들에게 읽히기 쉬운 번역, 즉 의역을 하다 보면 그의 서술이 갖는 ‘역사성’을 놓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전공한 번역자로서는 가장 중요한 원칙인 셈이다.
이 책 번역과 출간에는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3~4년 전에 초벌 번역이 끝난 이후에도 서구의 새로운 연구 성과 등을 반영함은 물론, 방대한 역주 작업을 거치는 대장정이었다.
인류사 최초로 인간 중심의 역사를 다루었다는 데 그 의미 - 더불어 지리학과 인류학, 민속학의 보고(寶庫)
헤로도토스가 『역사』를 저술한 목적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일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데 있다. 과거의 인간사가 구전에 의해 전해지는 한, 그것에 대한 기억은 흐려지고 결국 잊혀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는 중요한 인간사가 자신의 기록을 통해 계속 기억되고 널리 알려지기를 원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과거 인간들의 위대한 행적을 탐구하고 밝혀내 영원히 기억될 유산으로 만들어 준 공로자이다. 왜냐하면 이로부터 ‘히스토리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담긴 서술 동기와 목적, 서술 대상과 탐구 방식 등은 ‘히스토리아’(= 역사)의 본보기가 되었다. 여기서 비로소 ‘히스토리아’라는 말이 역사와 관련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특히나 그것은 ‘인간’의 역사를 다룬다는 데 그 최초의 의미를 갖게 된다. 즉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라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신(神)이나 반신(半神)적 영웅들의 공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들의 실제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또한 그는 그 서술에 있어 인간사를 신의 뜻이나 계시로 설명하지 않고 인간 중심의 세속적 인과관계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신화가 아닌 역사서술을 통해 인간사의 내력을 설명한 ‘최초의 역사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헤로도토스가 신화적 사고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비록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기는 했지만, 그의 역사서술에는 그리스 신화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여담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그의 논거를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헤로도토스는 가능한 한 자신의 견문 지식이나 현실적 타당성에 입각해 신화를 부정 혹은 수정하고자 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무런 논평 없이 신화를 그냥 전해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화서술에 나타나는 특징은 기본적으로 탈(脫)신화화한 역사를 서술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즉 그는 적어도 그리스 신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역사학의 시발점 역할만 한 데 그치지 않는다. 헤로도토스 스스로 단순히 전승하는 사료들만을 믿을 수는 없기 때문에 스스로 직접 보고 듣는 과정을 거치는 작업을 병행했다. 이른바 ‘발로 뛰는 역사가’였던 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고대사의 많은 미지의 영역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헤로도토스가 남긴 『역사』가 갖고 있는 또 다른 특장점이며, 이 책이 지리학적, 인류학적, 민속학적 자료의 보고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서 문명 최초의 충돌,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쓰다: 그 구체적 내용
이 책의 주제는 그리스인과 이방인들 사이의 전쟁이다. 이를 통해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인들이 이방인들(페르시아인들)보다 검약과 절제의 미덕을 갖추었고, 군사적으로 더 용맹했고, 자유를 애호했으며 합리적으로 사유하고, 탁월한 도덕심과 교양을 갖춘 민족이었음을 부각한다. 물론 헤로도토스는 이방인들이 갖고 있는 제도와 가치를 찬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단순히 이분법적 태도로 그의 역사관을 평가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동서 문명의 첫 대결이었던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중심 소재인 이 책을 통해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인들의 자유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 평가하고 고취한다.
『역사』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경과뿐만 아니라 전쟁의 원인부터 설명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들 간의 대립과 전쟁의 기원을 밝히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헤로도토스는 제1권의 서두부터 그 대립의 신화적 사례들을 먼저 소개한 후, 자신이 규명한 역사상의 사례를 설명한다. 그는 그리스인들과 이방인들 사이 대립의 역사적 시작은 리디아 크로이소스 왕의 군사 원정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그는 크로이소스가 “헬라스인들에게 맨 처음으로 해악을 저지른 사람”이고 “이방인 중에서 최초로 일부 헤라스인들을 정복하여 조세를 내도록 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기원전 546년에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의 키로스에게 패배한 후부터 그리스인들과의 대립을 주도한 이방인은 페르시아인들이었다. 이에 따라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페르시아 왕들의 치세를 기준으로 서술되고, 『역사』의 이야기는 페르시아의 팽창과 정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1권은 키로스 2세의 치세(기원전 558~529년)를 다룬다. 즉 그가 메디아를 멸망시키고 페르시아를 건설한 내력과 리디아, 이오니아 및 바빌론 등을 정복한 과정이 묘사된다. 제2권과 제3권 일부는 캄비세스 2세의 치세(기원전 529~522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행적으로는 이집트 정복과 에티오피아 원정이 서술된다. 제3권 나머지와 제4~6권은 다레이오스 1세의 치세(기원전 522~486년)를 다룬다. 그 시기에는 바빌론 재정복, 스키타이 원정, 리비아와 트라키아 정복, 이오니아 반란과 진압, 마르도니오스의 그리스 원정(기원전 492년), 다티스의 그리스 원정(기원전 490년)이 발생했다. 제7~9권은 크세륵세스 1세 시기(기원전 486~465년)를 다룬다. 이 시기에는 페르시아군의 그리스 원정(기원전 480~479년)이 대표적으로 서술되고 있는데 익히 알려져 있듯이, 테르모필라이 전투, 아르테미시온 전투, 살라미스 해전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키로스 2세에서 크세륵세스 1세 때까지,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558년부터 기원전 479년까지의 약 80년 역사를 다루고 있다.
고대로부터 19세기까지는 그리 평가받지 못하다가 20세기 들어 높이 재평가되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출간 이후부터 후세 사람들에 의해 많은 관심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고대부터 그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렸는데, 한쪽에서는 그를 역사서술의 개척자 혹은 대표자로 평가하고자 했고, 다른 쪽에서는 그를 신뢰하기 어려운 거짓말쟁이로 평가해왔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역사와 시(詩)를 구분하여 그 차이를 설명하면서, 역사서술의 사례로 헤로도토스를 든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헤로도토스를 역사서술의 대표적 인물로 여겼음을 의미한다. 그 후 역사의 원조로서 헤로도토스의 명성은 키케로(Cicero)의 언급을 통해 공식화되었는데, 키케로는 그를 ‘역사의 아버지’로 지칭했던 것이다. 솔리누스(Solinus)도 이러한 평가를 이어받아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건설자들’에 포함시켰다. 반면에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그의 역사서술의 신뢰성을 은근히 비판하여 말하기를, 자신의 글에 설화(說話)가 없어서 듣기에 재미가 덜할 것이지만 자신은 영원히 간직될 재산으로서 작품을 쓴다고 했다. 이는 흔히 헤로도토스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되는데, 즉 헤로도토스의 글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아 듣기에 좋지만 영원히 간직될 가치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담고 있는 것이다.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 부른 키케로도 그의 글에는 거짓된 이야기가 수없이 많다고 비판했다. 사료 비판에 관한 한, 헤로도토스는 그리 좋은 평판을 누리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대체로 고대인들은 헤로도토스를 재미있는 이야기꾼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역사서술에 대한 신뢰성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근대에 와서도 지속되었는데, 특히 문헌 고증 위주의 19세기 실증사학과 객관적 역사서술이 강조되면서 투키디데스의 위상이 부각되고 상대적으로 헤로도토스의 입지는 축소되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 문헌 위주의 전통적 역사 연구에 비판이 제기되고 인류학, 민속학, 지리학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헤로도토스의 역사서술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즉 그의 역사서술 속에는 고대의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 신화, 풍습, 지리 및 동식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고대 세계에 대한 지식의 보고(寶庫)로 부각되었다. 지역적으로도 그리스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리디아, 이집트, 스키타이, 바빌론 등의 지역을 다루어 고대 세계의 지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사실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 스키타이 등에 대한 자국민의 역사서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단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기준으로 그들의 역사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고대 지중해 세계의 공통 역사서라 할 만하다.
기본정보
ISBN | 9788964451366 |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11월 25일 | ||
쪽수 | 990쪽 | ||
크기 |
161 * 232
* 57
mm
/ 1529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코기토총서 세계사상의 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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