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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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밤새 뒤척이며 잠 못 이룬 사람의 깊은 골짜기를”
서정시의 정수를 보여주는 문태준의 역작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깃든 단아한 시편들
이 책의 총서 (514)
작가정보
작가의 말
이 글을 쓰려니 나는 나를 서성인다. 바깥에 나갔더니 봄이 오기 전에 마지막일 눈이 내린다.
어두운 돌담에, 굳은 흙의 바탕에 하얀 얼굴의 눈송이가 내려앉아 있다. 눈발은 계속 겨울 밤하늘에서 서성인다. 나도 함께 한데에 있다.
그래, 깊은 계곡 같은 밤의 적막과 부서지기 쉬운, 서성이는 이 흰 울음을 잊지 말자.
2022년 2월 제주 애월읍 장전리에서
문태준
목차
- 제1부
꽃
첫 기억
음색(音色)
종소리
아버지와 암소
아버지의 잠
별미(別味)
그녀가 나를 바라보아서
수평선
봄산
뿌리
돌과 돌 그림자
가을은 저쪽에
산가(山家)
초저녁별 나오시니
눈보라
항아리
겨울 엽서
눈길
설백(雪白)
제2부
낙화
진인탄 초원에서
낮과 밤
아침은 생각한다
새와 한그루 탱자나무가 있는 집
봄비
볼륨
제비 1
제비 2
지금은 어떤 음악 속에
감자
하품
밥값
가을비 속에
그때에 나는
낮달을 볼 때마다
첫눈
눈사람 속으로
제3부
꽃과 식탁
백사(白沙)를 볼 때마다
이별
봄
수련이 피는 작은 연못에 오면
여름 소낙비 그치시고
방울벌레가 우는 저녁에
미련스럽게
선래(善來)
새야
나의 지붕
점점 커지는 기쁨을 아느냐
봄소식
상춘(賞春)
오롬이 1
오롬이 2
동화(童?)
오월
제4부
삼월
새와 물결
너에게
바람과 나무
늦가을비
나의 흉상
유월
여름산
여음(餘音)
마지막 비
겨울밤
어부의 집
발자국
대양 1
대양 2
요람
감문요양원
새봄
해설|이경수
시인의 말
추천사
-
내가 사는 마을은 강이 있는 산골 마을, 산을 그려주며 내려온 눈송이들이 강으로 간다. 검은 바위 위에도 새들이 지나다니는 마른 풀잎 사이에도 뒤꼍 감나무 꼭대기 까치집에도 홀로 사는 산골 사람들의 지붕 위에도 눈이 오는데, 문태준의 시를 읽는다. 시집을 다 읽고 눈 오는 마을을 한바퀴 돌고, 집에 돌아와 또 시집을 읽고 눈 그친 마을을 한바퀴 돌아도 자꾸 생각이 끊기고 말문이 막혔다. 해가 지고 어둠이 오고, 어둠 속으로 눈발이, 그리고 내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나는 눈보라가 치는 꿈속을 뛰쳐나와 새의 빈 둥지를 우러러 밤처럼 울었어요”(「이별」). 태준아, 나는 울기 싫다.
책 속으로
당신은 꽃봉오리 속으로 들어가세요
조심스레 내려가
가만히 앉으세요
그리고
숨을 쉬세요
부드러운 둘레와
밝은 둘레와
입체적 기쁨 속에서
-「꽃」 전문
흰 종이에
까만 글자로 시를 적어놓고
날마다 다시
머리를 숙여 내려다본다
햇살은 이 까만 글자들을
빛의 끌로 파 갈 것이니
내일에는
설백만이 남기를
어느 때라도
시는
잠시
푸설푸설 내리던
눈 같았으면
-「설백(雪白)」 전문
아침은 매일매일 생각한다
난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어선은 없는지를
조각달이 물러가기를 충분히 기다렸는지를
시간의 기관사 일을 잠시 내려놓고 아침은 생각한다
밤새 뒤척이며 잠 못 이룬 사람의 깊은 골짜기를
삽을 메고 농로로 나서는 사람의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함지를 머리에 이고 시장으로 가는 행상의 어머니를
그리고 아침은 모스크 같은 햇살을 펼치며 말한다
어림도 없지요, 일으켜줘요!
밤의 적막과 그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한 것은 아닐까를 묻고
밤을 위한 기도를 너무 짧게 끝낸 것은 아닐까를 반성하지만
아침은 매일매일 말한다
세상에, 놀라워라!
광부처럼 밤의 갱도로부터 걸어나오는 아침은 다시 말한다
마음을 돌려요, 개관(開館)을 축하해요
-「아침은 말한다」 전문
아가를 안으면 내 앞가슴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밭에 가 자두나무 아래에 홀로 서면 한알의 잘 익은 자두가 되었다 마을로 돌아가려 언덕을 넘을 때에는 구르는 바퀴가 되었다 폭풍은 지나가며 하늘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너의 무거운 근심으로 나는 네가 되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는 조용한 저녁에는 나는 또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때에 나는」 전문
내게 꽃은 생몰연도가 없네
옛 봄에서 새봄으로 이어질 뿐
꽃아
너와 살자
우리의 가난이 마주 앉은 이 저녁의 낡은 식탁 위
꽃은 신(神)의 영원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네
-「꽃과 식탁」 전문
어린 고양이가 처음으로 담을 넘보듯이
지난해에 심은 구근(球根)에서 연한 싹이 부드러운 흙을 뚫고 올라오네
장문(長文)의 밤
한 페이지에 켜둔
작은 촛불
-「새봄」 전문
출판사 서평
팬데믹 시대에서 돌봄의 연대를 실천하는 생태적 상상력
시인은 아득한 유년의 기억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시인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문태준 시의 원천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비밀을 엿보게 된다. 세살 무렵 누나의 등에 업혀 잠이 들었을 때 들려오던 “누나의 낮은 노래”(「첫 기억」)가 자신을 시의 세계로 이끌었음을 고백한다. 또 유년의 풍경 속에서 풀짐을 지고 오시던 아버지를 추억하며 늙은 아버지를 향해 연민과 존중의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연과 더불어 자란 유년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번 시집에는 꽃과 새가 자주 등장한다. 시인은 ‘식물-되기’와 ‘새-되기’의 상상력을 통해 자연과 동화되는 모습의 절정을 보여준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우며 공감과 연대의 세계를 보여준다. 자연의 일부로서 뭇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소박한 삶에서 시인은 “어린 새가 허공의 세계를 넓혀가듯이” “점점 커지는 기쁨”(「점점 커지는 기쁨을 아느냐」)을 느끼기도 한다.
생태적 상상력이 깃든 문태준의 시는 오늘날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삶을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표제작 「아침은 생각한다」에서는 ‘아침’이 생각하고 말하는 행위의 주체로 등장한다. “난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어선은 없는지” 굽어보고 “삽을 메고 농로로 나서는 사람의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생각하며 “밤의 적막과 그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한 것은 아닐까” 반성한다. 그간 시인이 써온 서정시를 따라 읽어온 독자라면 ‘나’가 아닌 ‘아침’이 주체로 등장하는 이 시가 분명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인간이 아닌, 생명을 지닌 존재도 아닌 것에 활기찬 목소리를 내어준 이러한 목소리는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갈 뿐이라는 메시지를 생기 넘치는 긍정적인 언어로 보여준다.
28년의 시력을 쌓아오는 동안 한결같은 시심을 유지하면서도 시적 갱신을 거듭해온 시인은 최근 목월문학상과 정지용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함으로써 우리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입지를 더욱 굳게 다졌다. ‘서정시의 전범’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시인은 그럼에도 “흰 종이에/까만 글자로 시를 적어놓고/날마다 다시/머리를 숙여 내려다”(「설백(雪白)」)보는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덧없이 흘러가는 삶의 그늘 속에서도 늘 “환한 쪽을 바라”(「감문요양원」)보는 그의 시는 “장문(長文)의 밤/한 페이지에 켜둔/작은 촛불”(「새봄」)처럼 이 세상의 어둠을 아름답게 밝혀나갈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36424718 |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2월 25일 | ||
쪽수 | 112쪽 | ||
크기 |
125 * 201
* 12
mm
/ 160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창비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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