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것만 같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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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것만 같던 마음
이름을 잃어버린 존재들을 위한 빛나는 구원
무너진 삶을 있는 힘껏 끌어안는 화해의 손길
이 책의 총서 (514)
작가정보
작가의 말
시 쓰는 시늉을 해온 것 같다. 시는 크고 나는 작다보니 별수가 없었다. 연인이었던 인연들을 인연인 연인들로 바꾸어 모시려 한 것이 한 시절 내 시늉이었던 듯하다. 나는 내가 조금씩 사라져간다고 느끼지만 이 봄에도 어느 바람결에나 다시 살아나는 것들이 많다. 온전해지고 싶어 험난하게 애쓰는, 그 모든 실성기를 사랑한다.
2024년 늦봄
이영광
목차
- 평화식당
강가에서
청송
계산
사랑
제자리
희망 없이
어느 양육
미워하는 마음을
그해 세밑에는
어두운 마음
그림자와 같이
6인실
누운 당신 걸음
봄, 고개
지구살이
별 세개
검은 봄
문어들은 저런 식으로
죄와 벌
자연처럼
등꽃 아래서
무슨 사정이 있겠지
중
허송 구름
아프다고 생각하며
마스크들
나의 인간 나의 인형
헌 의자
내 마음은 나도 몰래
밀접 접촉자
큰 병원
펄쩍펄쩍 뛰며 놀자고 보채는
동물원
잎들은
봄은
개망초 개망초
고치고 있다
무명지
잔칫집
내일에게
내 인생 편안해
한여름 밤
흑산
로보캅
신문이 신문 했다
노인이 온다
어린 아침
강
당신의 끝
평화의 바람
해설|장은석
시인의 말
추천사
-
마음이 있을까. 어떻게 마음을 말할 수 있을까. “얼마나 옳은지”,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는 마음은 어느 고개 너머에 있는 것일까. 너머라는 말은 거창해 보인다. 그러나 시인은 거창하지 않은 오해로부터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고개를 넘고 넘는다. 누구에게나 생활이 있다. 생활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정황들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너머에는 호명되지 않은 생활과 마음이 있다. 그곳에는 “같이 살기 싫던 마음”과 “같이 살게 되던 마음”이 동거하고 있다. 오해를 거듭하는 생활은 도처에 놓여 있던 “그림자의 그림자” 같은 마음들과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먼저 생활하고 있다.
단지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선생이라 부르지 않는다. 먼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선생이라 부를 것이다. 그들은 고개 너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먼저 묻는 사람. 생활이라는 숭고한 일을 어떻게 바르게 오독할 수 있을지 받아 적는 사람일 것이다.
시인은 살다보니 “답이 안 나오는 계산을/나는 열심히” 했다고 “살 것 같던 마음”을 오독했노라고 말할 테지만 읽고 있자니 “살 것만 같던 마음”이 “반짝이며 헤엄쳐” 범람하고 있었다고 되레 고백하고 싶어진다.
비로소 “살 것만 같던 마음”으로 “사라져서 더는 나타나지 않던 얼굴들”을 하고 있는 서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라보고 있자니 숭고해진다고, 그 얼굴들을 “사랑하지 않을 용기”가 도무지 없다고.
책 속으로
떠남과 머묾이 한자리인
강물을 보며,
무언가를 따지고
누군가를 미워했다
모든 것이 나에게 나쁜 생각인 줄
모르고서
흘러도, 답답히 흐르지 않는
강을 보면서,
누군가를 따지고
무언가를 미워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상하지 않고
오직 나만 피 흘리는 중이란 걸
모르고서
그리고 그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 줄도
까맣게 모르고서
-「강가에서」 전문
멀고 깊은 곳에 넋을 내주고
단지 남은 것으로서
메마름 같은 것에 쫄딱
젖고 싶었는데,
어두워졌어 내가 약하니
비 오다가 해나다가 하는 기후엔
정신도 정신이 없으려 한다
오늘은 조시를 쓰고
내일은 축시를 써야 해
나는 별에서 살고 있다는데
빛이 안 보일 때가 많았어
안 보이는 그게 무슨
대수라고, 대수인가, 대수인
모양이어서
어두운 날, 영영 칼이 없고
칼 생각도 없는데도
빛을 베며 걷는 중이라
굳게 믿었네
-「제자리」 부분
얼음 위에 피운 모닥불처럼
물을 끄며 타는
불처럼
미워하는 마음
둥둥 물 위를 떠가는 얼음장들,
꺼진 불을 만져주는 봄볕처럼
물에 젖는 불처럼
미워하는 마음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전문
더는 슬퍼지지 않고
더는 죽을 것 같지 않아지던
마음 밑에 어른거리던
어두운 마음
어둡던 기쁜 마음
꽃밭에 떨어진 낙엽처럼,
낙엽 위로 악착같이 기어나오던 풀꽃처럼
젖어오던 마음
살 것 같던 마음
반짝이며 반짝이며 헤엄쳐 오던,
살 것만 같던 마음
같이 살기 싫던 마음
같이 살게 되던 마음
암 같은 마음
항암 같은 마음
-「어두운 마음」 부분
생각하면 나는
사랑의 포로였고
슬픔의 포로였고
허무의 포로였다
죽음의 포로였고
불안의 포로였고
희망의 포로였다
생각하면 나는
기운이 넘치는
절망의 포로였고
생명의 포로였고
자유의 포로였는데,
도대체 나는
묶이지 않으면
살지를 못했는데,
이 튼튼한 무균 감옥에
오래된 금이 가고
오염물질처럼,
맑고 깨끗한 공기가
스며들려 한다
해롭기만 하고
기운이라곤 없는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려 한다
-「평화의 바람」 전문
출판사 서평
사랑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외롭고 우직한 발걸음
총 51편의 시를 부 가름 없이 한데 엮어낸 이번 시집에서는 먼저 짧은 시행만으로 구성한 시편들(「별 세개」 「허송 구름」)과 “무언가를 따지고/누군가를 미워했다/(…)/누군가를 따지고/무언가를 미워했다”(「강가에서」), “사람을 얻고 잃으며 바쁘게 살았어요/마음을 울고 웃으며 곤하게 걸었어요”(「희망 없이」)와 같이 유사한 어구를 반복하고 변주함으로써 유려한 리듬감을 형성하는 시편들의 형식이 눈에 띈다. 특히 “살지 않기 위해 살아갈 것/죽지 않기 위해 죽을 것”(「평화식당」), “죽은 봄은 살아간다/(…)/어둡기만 한 빛 속으로/가도 가도 환하기만 한/어둠 속으로”(「봄은」) 등 역설과 반어의 문장들은 시대의 모순에 대한 시인의 비판적 사유와 현실 인식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희망 없이 사는 일의 두근거림”(「희망 없이」)이 쓸쓸하게 일렁이는 이영광의 풍경 속에는 병든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름 없는 모든 것”과 “이름 아닌 모든 것”(「검은 봄」)인 그들은 이미 “기진맥진인데 하루도/빠짐없이 삶이 찾아”(「제자리」)오는 탓에 절망 속에서도 “자꾸 다시 살아나야”(「어느 양육」)만 한다. 시인은 그 ‘슬픔과 허무와 죽음과 불안과 절망의 포로’(「평화의 바람」)로서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는 무명의 존재들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호명하고, 그들의 침묵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며 비참한 고통의 현장을 함께하고자 한다. 그렇게 시인은 “계산할 수도 없고, 차마 꺼낼 수도 없는, 이상하고도 힘든 마음”을 품은 채 “무명의 사랑”(해설, 장은석)을 계속해나간다. 나아가 존재의 슬픔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상처가 지나간 곳에서 마주하게 될 희망의 자리를 마련해놓는다. 고통과 희망 사이를 넘나들며 끝내 인간에 대한 애틋함에 가닿는 시편들은 생의 면면이 선사하는 감동으로 우리를 이끈다.
어두운 세상을 건너는 모든 이에게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시 쓰는 시늉을 해온 것 같다”고 말했지만, 세상의 어두운 면면에 기꺼이 다가가 온몸으로 시를 써온 삶은 결코 시늉이 아닐 것이다. 시력 26년을 지나며 “거창하지 않은 오해로부터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고개를 넘고 또 넘는”(추천사, 홍지호) 와중에도 불현듯 여전히 “인간이라는 것”이 되고자 “열심열심/애쓰는 중”(「중」)이라고, “시는 크고 나는 작다”(시인의 말)고 말하는 그의 숭고한 진심은 시인의 시가 무모해 보이는 사랑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렇게 시인은 비극적인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고 무너진 삶의 자리를 향해 계속해서 손을 내민다.
함께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분열과 맞서 싸우는 이 올곧은 마음은 이름이 지워진 존재들이 연대할 수 있는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고, 바로 그곳에서 상처투성이 존재들의 영혼을 품어 안는 희망의 시는 시작된다. 지금 여기, “생각하며 피 흘리는/인간”(「로보캅」)이 어두운 시절을 건너는 이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사라져서 더는 나타나지 않던 얼굴들”(「어느 양육」)이 다시 피어나기 시작한다.
기본정보
ISBN | 9788936425029 |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05월 30일 | ||
쪽수 | 140쪽 | ||
크기 |
126 * 201
* 12
mm
/ 285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창비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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