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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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이 책을 추천합니다_ 2
머리말_ 13
서문ㅣ한국의 평단에 진실은 존재하는가_ 19
본문_ 29
1. 문제 제기
2. 대체로 계급해방운동이 왜 문제인가
3. 카프의 작품들은 관념 과잉의 미숙한 조제품에 불과한가
4. 카프의 작품들은 과연 일본 좌파 문학을 얼프게 답습한 것이었나
-보론/임화 프로시의 내재적 기원
5. 카프는 실제로 외형만의 껍데기 조직이었나
결어(또는 요약)_ 191
부록_ 201
-한국 저항시의 계보학_ 해방 공간의 '임화 클럽'을 중심으로
책 속으로
시인 임화林和!
그는 한국적 패거리의, 공모비평의 비극적 희생양이었습니다.
이 글은 한국(문학)의 평단에 나타난 이념적 편향을 교정하려는 시도로, 특히 ‘좌파몰이’에 앞장선 우파 부르주아 주류 평론가들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을 담고 있는 신랄한 문예비평서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대적 전선을 분명히 취하고 있는 이데올로기 텍스트이자 잘못 읽히고 있는 특정 작가에 대한 비평적 아폴로지의 성격을 온전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호오好惡의 감정을 넘어 시비是非를 가리는 냉혹한 이성의 문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평문은 일제하 한국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이라는 카프KAPF, 특히 시인 임화에 대한 외눈박이 비평가들의 이념적 편향이 정상의 궤를 넘는 편가르기에 비평의 염도를 지켜야 할 평단의 매우 오염된 현실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보여주고자 하는 에세이입니다.
임화는 한국민족문학의 ‘문화적 결절점cultural node’입니다. 민족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 카프의 세크러터리로 발군의 시인이자 비평가, 문학사가로 고전이 된 〈개설신문학사〉-이 작품은 김태준의 〈조선소설사〉에 대한 경쟁의식에서 나온 미완의 대작으로, 김현과 김윤식으로 하여금 아류작 〈한국문학사〉(민음사)를 쓰게 하는 동인이 되었다 할 만큼 그 거대한 원형을 지닌 한국민족문학사의 보화寶貨입니다-를 집필한 당대 최고의 문화계 명사이자 조선학의 거두로, 해방 이후 좌우 연합의 조선문학가동맹의 맹장으로 그를 빼놓고는 한국민족문학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민족문학건설의 사북의 자리에 있었던 발군의 문화인이었습니다.
좀 더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가 주도한 카프는 당당한 민족문학사의 주류였습니다. 민족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심훈의 〈상록수〉, 조명희의 〈낙동강〉, 최서해의 〈탈출기〉를 비롯한 여러 경향소설들, 한설야의 장편 〈황혼〉, 이기영의 빼어난 〈서화〉와 최고 최대의 걸작 〈고향〉, 그리고 임화의‘네거리의 순이’등 프로시들을 빼놓고 한국의 민족문학사를 기술할 수 없을 정도로 카프는 민족문학사의 핵심적 역할을 감당해 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참으로 두터운 벽이었습니다. 김윤식, 김용직 등 거벽들의 뛰어난 선행 연구물을 종합, 비판하여 졸저 〈청년 임화〉(사실과가치, 2023)를 통해 임화의 진실을 알리려고 써낸 두꺼운 고투의 결과물을 주요 일간지에 보도자료와 함께 보내도 어느 매체 하나 꿈쩍하지 않습니다. 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니 현실적인 이념의 벽은 이렇게도 높고 험합니다.
좌파문학의 맹장인 임화에 대한 냉대는 무론 냉전 이데올로기인 반공 이념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이루어 낸‘87년 민주화 항쟁의 힘으로 임화를 포함한 일부 월북 또는 납북 문인들이 해금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해는 정전 70주년이자 임화 70주기를 맞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정전이 있던 그해, 1953년 8월 6일 임화는 북에서 ‘미제스파이’라는 반국가적 죄명으로 박헌영, 이승엽 등과 더불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요? 이것은 참으로 많은 논란이 되어왔던 문제입니다. 대체 어떤 것이 진실인지의 여부를 가리는 방법으로 그 신화(론)로서의 기호의 가짜fakes를 분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이 세상에는 실로 수많은 일군의 미신들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에 종교적 미신이라는 게 있습니다. 뭐 천국이 곧 도래할 것이라는 겁니다. 정치적 미신도 있습니다. 정치인이 알아서 잘 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이건 한국의 시인 김수영(‘육법전서와 혁명’)의 말이기도 합니다. 김수영, 그는 일찍부터(‘묘정의 노래’,‘공자의 생활난’, ‘달나라의 장난’등) 국가주의의 음험한 기도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던 자로, 시인을 넘어 날이 갈수록 빛을 더하는 거대한 사유의 소유자입니다-말입니다. 철학적 미신 또한 있습니다. 철학은 현실을 다루지 않고 존재의 본질을 다룬다는 전통의 형이상학적 관념론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 또한 하나의 일상화된 말씀으로서의 신화적 미신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유명한 바르트의 신화론mythologies입니다. 이것은 또한 베이컨이 말하는 바의‘시장의 우상’입니다. 이것은 모든 우상 중에서 가장 성가신 우상으로, 이른바 언어와 명칭이 사물과 결합해 지성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이 언어를 지배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지성에 반작용하여 언어가 지성을 움직이는 경우입니다. 가령 다음처럼 말입니다.
‘임화는 월북시인이고 미제스파이다’
이것은 그 어느 것이고 가장 나쁜 의미에서의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신화 중의 하나이고 이데올로기화된 왜곡된be distorted 의식의 한 형태이지만 여기, 신화적 미신 또는 시장의 우상은 분명 타기해야 할 사회적 질병으로서의 가장 나쁜 질병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임화’라는 존재와 그에 대한 담론이 어티케 신화적 미신에 의해 끊임없이 의도적으로 조작, 배제, 유통, 재생산되어re-productioned 왔는지 지식과 권력 간의 부패 카르텔을 퇴치하고자 하는 기도에서 출발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전 서울대 출신들이라는 일군의 무리들이 있습니다. 김윤식을 비롯 김현, 조동일, 유종호, 최원식, 백낙청, 염무웅까지 때한민구 최고의 엘리트라는 이들은 하나같이 임화죽이기에 앞장선 문학 권력의 제일 주구들입니다. 뭐 괴물엘리트 집단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이들이 내세우는 한결같은 신조의 공통된 전제는 바로‘임화는 월북시인이고, 미제스파이이며, 그의 작품은 거칠고 형편없다’라는 사회적 낙인에서 출발합니다. 이렇게 이념에 작품까지 그에게 덧씌워진 검은 천은 그에게는 치명적이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문학사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을 심하게 왜곡시켰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니, 결코 우연일 리 없는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자 문화 폭력의 한국적 현상학입니다. 이것은 마치 고대 신전의 사제들이 최고 권력자와 진실의 거래 관계에 있었듯이, 이들이 하나같이 전 서울대라는 국책대학교 출신들이라는 데에 우리는 지식인이 본질적으로 정치 권력과 손이 닿아 있는 사제적 뿌리를 지닌 기회주의적 인간이라는 명철 사르트르의 통찰을 마주합니다. 그러니까 저들은 분명 임화의 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놈들입니다. 즉 임화는 일제하에서 조선 민중을 위해 전위에서 싸운 카프의 맹장이고, 해방 후에도 미제국주의 세력과 싸우다 체포를 피해 월북한 투사였음을...그런데도 한결같이 임화는 월북시인이고, 미제스파입니다.
자, 이쯤되먼 시장의 신으로서의 신화적 미신이 을마나 강고한 것인지를 알게 합니다. 사실 임화가 일제 당시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조선문학가동맹의 의장으로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1948년 남북정당 및 사회단체대표자회의에 남로당의 대중조직인 민주주의 민족전선(민전) 산하 조선문화단체총연맹의 대표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하여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에 반대하고, 전국적인 통일정부 수립을 지지한 사실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남북에 서로 다른 적대적 정부가 들어서고, 무력에 의한 통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임화는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불가피하게 월북을 하게 되었던 것이고, 또한 그들과 싸우기 위해 전쟁에도 참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딜 미군정에 의해 좌절된 서울대(前경성제국대)의 국대안 투쟁, 그러나 미군정을 등에 업은 세력에 의해 결과적으로 자주적 개혁이 좌절된 과정에서 이념적으로 사육된 서울대 엘리트 사제집단은 교과 헤게모니를 장악해서는 거기에 또 박아넣었습니다. 접근해서는 아니 될 금기taboo로 임화는 월북시인이고 미제국주의 스파이였다고...
국가에서 만든state-penned 문학 교과서의 힘은 실로 막대합니다. 거기서 우리는 먼저 가장 악질적인 친일문인들인 김동인의 〈감자〉를 배우고, 서정주의‘자화상’을 배우며 자랐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신화화시키고 우상으로 만든 건 김윤식과 김현이었습니다. 또 장외 교과서에서 하나의 악질 친일문인의 선봉에 선 김팔봉을 추켜세운 염무웅은 또 어떠한지...그들, 친일문인들과 그들을 신화화시킨 평론가들은 그러나 모두 임화의 호적수들입니다. 그들이 주도가 되어 만든 교과서와 텍스트 어딘가에 그들은 ‘민족’이라는 (희생의) 아편을 박아넣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들에 의해 자행된 임의적이고 상징적인 분류학의 전횡 속에서 우리의 임화가 어떤 이념적 지형 속에 놓여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외눈박이 눈깔을 단 때한민구의 이념의 사제들은 주술처럼 외칩니다. 임화는 월북시인이고 미제스파이라고...
모든 것은 특정한 관계 속에서in certain relations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남과 북의 적대적 공존 체제 하에서 자신들의 안존安存을 위해 임화를 희생양으로 모는 데 주저하지 않은 역사의 공모자들입니다. 바로 여기서 그 한국적 정실비평의 한 형태로서의 그들끼리 노는 이른바 ‘패거리 비평gangster’s review’이 탄생하였습니다. 이것은 믿기 어렵고, 그래서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분명 냉혹한 진실hard truth입니다.
그들에게 배운 순진한 후학들이 스승의 후광으로 좋은 자리를 이어받고 또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앵무새처럼...임화는 월북시인이고 미제스파이라고...이렇게 해서 층층시하 계열체를 이룬 재생산의 교육시스템 하에서 임화는 결국 하나의 이미지로만 남게 됩니다. 그는 죽일 놈이라고...
모든 혁명의 역사는 인식론적 전환으로서의as an epistemological transition, 은폐와 개진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근대학문의 역사는 참으로 거짓fakes 신화의 역사였으니, 이제부터 계몽과 이성으로서의 혁명의 역사-한국문학사도 마찬가지로-를 다시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전제할 때에 있어서, 그것은 무엇보다 인식론의 혁명이요, 유명론의 혁명이요, 언어의 혁명이 아니먼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먼 인식론으로서의 언어의 혁명은 바로 거짓 신화라는 우상과의 유명론적 투쟁으로서 시민적 혁명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우리는 진실의 신부를 맞이할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을 애써 부정한 저 비겁한 시장의 외눈박이 우상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진실의 세계는 ‘은폐close’와 ‘개진disclose’의 아름답고 거대한 힘겨루기입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서문, 한국의 평단에 진실은 존재하는가
출판사 서평
‘임화’ 죽이기 문단 카르텔과 괴물 엘리트 비평의 허구성
-문예비평가 늘샘 김상천의 〈임화를 위한 변명〉을 읽고
김윤식, 김현, 염무웅은 한국 문단 내 문학 비평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분단 현실을 배경으로 그들은 문인 ‘임화’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악마화’했다. 특히 진보 문인을 대표하는 염무웅의 비판은 허구에 가깝다.
문단 내 주류 평론가들은 ‘월북 문인’ 딱지도 모자라 ‘미 제국주의 스파이’라는 김일성 추종자들이 쓰는 용어로 낙인까지 자행 했다.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월북 인사’로 분류된 문인들이나 코뮤니스트들에 대한 연구가 햇빛을 보기 시작했다. 김윤식의 『임화 연구』(1989), 김용직의 『임화 문학 연구』(1991)는 당대 해금된 시기, 문인 ‘임화’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 저작물이다.
이 연구 저작물에서 김윤식은 “카프는 거대한 사이비 조직체”라며 거칠게 비평했다. 불문학자 김현 또한 “카프는 단 하나도 우수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염무웅은 한발 더 나아가 “카프는 외형만 남은 허수아비 조직에 불과했다”고 카프 서기장 임화를 폄훼했다.
강단을 대변하는 고려대 이남호 교수는 최근 『카프 시인집』(2022)에서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1929)를 비롯해 일련의 단편 서사시들을 비평하면서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체로 힘없고 무기력하며. .(중략) 서정적이고 애상적인 분위기가 농후하다”고 평가절하했다.
특히 평단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 김수영에서 김수영으로』(2022)에서 임화를 비롯해 카프의 주요 문인들 작품에 대해 “카프를 대표하는 문인들은 계급해방이 이념적 목표였으며. .(중략). .관념 과잉의 미숙한 조제품에 그치는 수가 많았고, 그나마 일본 좌파 문학을 어설프게 답습한 것”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팔봉 비평문학상」을 수상한 서울대 국문학과 김윤식은 최재봉과의 『한겨레 TV』 「그 작가 그 공간」 대담에서 “임화, 임 화. . 보성중학교 중퇴생인 지가 뭐 알겠어”라며 임화의 학력을 얕잡아보며 모멸감을 주는 표현을 했다. 한 마디로 임화의 작품과 문학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모양새다.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를 지낸 평론가 유종호 또한 ‘임화의 시가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민요 등 구비문학과 서사문학의 대가이자 문학평론가 조동일은 문인 ‘임화의 시를 평가할 수 없다’고 비평을 포기했다. 요컨대 문단 내 평자들 모두 일관되게 카프의 실체를 부정하고 외면하거나 폄훼하려는 태도다. 문제는 임화에 대한 이들의 문학 비평이 한국 평단의 주류이자 지배적인 시각이라는 데 있다.
더구나 해방공간 마르크시즘에 기초한 문학평론가 김동석조차 임화를 ‘병든 임화’, ‘병든 지식인’으로 혹평한 적이 있다. 아직 남북 분단이 첨예하게 대치된 상황이 아님에도 해방공간에서 그런 부류의 비평이, 그것도 마르크시즘에 기초한 평론가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예비평가 늘샘 김상천은 지난 3년 동안 한국 문학사를 ‘분단 시대에 갇힌 병든 문학사’가 아니라 온전한 시각에서 논구하고 자 열정을 바쳤다. 특히 문인 ‘임화’에 대한 그의 연구 저작은 기존 한국 문학사를 밑으로부터 전복할 만한 참신한 시각이다. 이념의 낡은 틀을 깨뜨리고 역사 사실에 기초해 서술함으로써 한국 문단 내 패거리 비평을 일삼던 괴물 엘리트들의 천박함을 객 관적 자료를 제시하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3부작 『네거리의 예술가들』(2021), 『철학자 김수영』(2022), 『청년임화』(2023)가 바로 문단 주류 평론가들을 비판한 빼어난 작품 들이다. 특히 『청년 임화』(2023)에서 늘샘 김상천 마르크시스트 문학평론가 김동석의 임화 비평이 영국 부르주아 계급을 대변했던 매슈 아놀드 관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의미 있게 밝혀냈다.
영문학자 김동석이 대학원 졸업논문으로 매슈 아놀드를 다뤘고 실제로 매슈 아놀드에 깊이 심취했다는 사실을 문예비평가 김상 천은 촘촘하게 분석해 냈다. 그런 연유로 노동자를 ‘불한당’, 노동자 계급을 ‘우리 시대 병든 정신을 대변하는 계급’으로 생각한 매슈 아놀드의 관점으로 김동석은 조선 노동자를 대변한 임화 를 ‘병든 지식인’으로 규정한 탓이다.
다음으로 문예비평가 김상천은 임화로 대표되는 카프 문학이 ‘계급해방운동’을 지향했다는 사실을 긍정했다. 시든 소설이든 작가의 작품이 당대 작가가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현실과 분리될 수 없음을 역설했다. 나아가 작품은 당대 사회현실이 작가의 삶에 투영된 삶의 편린이라고 생각했다. 김동리 아류의 순수문학에 일침을 가한 명쾌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청년 임화가 19살에 조선일보에 발표한 「혁토」(1927)에 서 ‘혁토’는 ‘붉은 땅’, 바로 ‘황무지’를 가리키는 시어로 식민지 통 치에 신음하는 조선 민중을 상징한다. 이후 『 조선지광 』 에 차례로 발표한 단편서사시 「네거리의 순이」(1929), 「우리 오빠와 화로」(1929),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1929), 「양말 속의 편지」(1930)는 문단 내 주류 비평처럼 ‘병든 지식인’의 “낭만적인 연애시나 애상적인 서정시”가 아니다. 오히려 식민지 현실에서 탄압받던 노동자에게 저항의 힘을 불어넣는 격정적인 저항시요, ‘쟁의 서사시’라고 역설했다.
실제로 카프 동지 김남천은 임화의 단편 서사시들이 노동자들에게 천둥 번개 같은 울림을 안겨줘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고 회고했다. 특히 「양말 속의 편지」(1930)는 1931년 평양 군중집회 당시 군중이 몇 번씩 앙코르를 요청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 다고 술회했다. 임화의 단편 서사시가 노동운동가들의 노동조합 회의나 노동자 집회에서 감격스러울 정도로 환영을 받았다는 역 사 사실에서 임화의 단편 서사시는 늘샘이 처음 명명한 대로 예술성 높은 ‘쟁의 서사시’임이 분명하다.
1929년 대공황 이후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제의 수탈이 노골화하는 현실에서 30년대 전반기 혁명적 농민조합 운동과 혁명 적 노동 운동이 거세게 일었던 역사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카프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서정성 짙게 형상화한 빼어난 작품이다. 카프 초기 맹원 팔봉 김기진을 눈물 흘리게 만든 임화의 단편 서사시 「우리 오빠와 화로」(1929)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30년대 방직공장 쟁의를 모티프로 하는 이기영의 『고향』(1936)은 당대 최고의 농민소설로서 사회성 짙은 작품이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예술성 높은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한 뛰어난 작품이다.
1920년대 일본 내 자유주의 물결이 일었던 다이쇼(大正) 데모 크라시 시절, 식민지 조선에도 카프(KAPF)(1925)가 결성되었다. 카프 결성은 당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조선 문단이 처한 현주소이기도 했다. 이육사의 국내 절친 신석초, 『상록수』의 작가 심훈, 『낙동강』의 작가 조명희, 『탈출기』의 최서해를 비롯해 박영희, 김기진, 김동환, 최정희, 김정한, 홍기문, 권환, 김남천, 이기영, 김화산, 임화, 송영, 이상화, 최학송, 한설야, 안막, 이 활 등 수많은 문인들이 카프 맹원이었다. 그러나 30년대 일제가 파시즘으로 치달으면서 조선에서도 혁명적 노동운동과 농민 운동이 심각하게 탄압을 받았다. 카프 역시 1, 2차 일제의 탄압에 따른 검거 사건으로 1935년 공식 해산당했다.
카프가 주도한 ‘계급해방운동’은 식민지 현실에서 명백히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런 점에서 카프의 문예활동(1925~1935)은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계급해방운동’이자 민족 해방운동으로 문학의 작품성과 예술성, 그리고 역사상 의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카프 초기 맹원이었지만 30년대 들어서 팔봉 김기진과 함께 일제에 전향한 박영희의 표현대로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이고 잃은 것은 예술’이라는 전향 성명은 변절자의 황당한 자기변명일 뿐, 결코 역사의 진실일 수 없다.
카프 작품 가운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 『낙동강』(1927), 「우리 오빠와 화로」(1929), 『상록수』(1935), 『고향』(1936) 등 수많은 작품들이 빼어난 수준을 넘어서서 당대 조선 최고의 문학작품들로 존재해 왔고 오늘날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기영의 『고향』(1936)은 이광수의 『흙』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당대 식민지 최고의 농민소설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카프 문학작품이 일본 좌파 문학을 모방하고 흉내 낸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염무웅의 비평 또한 가당찮기는 매한가지다. 일제로부터 추방당하는 조선 노동자들의 애처로운 처지를 위로 하고 투쟁을 격려하는 나카노 시게하루의 시,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1929.2)에 대해 문인 임화가 답시 형식으로 쓴 「우산받은 요꼬하마의 부두」(1929.9)가 일본 좌파 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은 맞다. 그렇지만 임화가 쓴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1929.9)는 식민지 조선의 특수한 현실을 담아낸 ‘조선적인’ 성격의 작품이다. 나아가, 노동자 연대 의식을 지향하는 작품으로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예술성이란 측면에서 오히려 나카노 시게하루의 작품을 훨씬 뛰어넘는 수작이다.
그 단적인 표현으로 임화는 추방당한 조선 청년이 사랑했던 일본인 여성을 “오오 사랑하는 ‘요코하마’의 계집애”로 부르며 “눈물 흘리지 말고. .(중략) 섭섭해 하지도 말며. .(중략) 사랑하는 사 나이를 이별하는 작은 생각에 주저앉지 말고. .(중략) 또다시 젊은 노동자들의 물결로 네 마음을 굳세게 할 것”을 주문한다. 그러면서 “피곤한 네 귀여운 머리를 내 가슴에 파묻고 울어도 보아라 웃어도 보아라”며 국경을 넘어 굳건한 노동자 연대 의식을 노래하고 있다.
문인 ‘임화’는 가정 사정으로 비록 보성고보를 중퇴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무서운 독서광이었다. 그가 20대 시절 『임금 노동과 자본』을 비롯해 마르크스 저작을 탐독했고 30대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심취했던 인물이다. 일찍이 열여덟 살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탐독해 조선일보에 ‘정신분석학을 기초로 한 계급 문학 비판’을 기고했던 보기 드문 문학 천재였다. 마르크시즘에 심취한 채, 일본 유학을 다녀온 카프 창립 멤버 팔봉 김기진과 스물한 살에 ‘예술 대중화 논쟁’(1928~1929)을 벌였던 인물이 바로 청년 ‘임화’였다.
무엇보다 청년 ‘임화’는 일제 강점기 조선어 표준어 사용에서 ‘조선어학회류의 관념론’을 통렬히 비판하며 조선 민중의 언어를 강조했던 인물이다. 그가 일제에 맞서 조선어학회가 주도한 표준어 제정에 서명을 보탬으로써 힘을 실어주었지만 그는 서울지역 중류 계층이 쓰는 ‘이상음’보다 조선 민중이 일상에서 쓰는 ‘현실음’을 중시했던 인물이다. 민중의 언어야말로 생명력을 담보하기 때문이고 살아있는 언어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평소 문인 ‘임화’를 존경했던 김수영 또한 매우 높게 평가했던 내용이다.
시인 정지용은 해방 전 ‘제일 무섭게 생각한 인물’로 문인 ‘임화’ 를 거론할 정도로 임화는 당대 대단한 실력자였다. 해방 직후 좌우를 아우른 「조선 문학가동맹」 초대 의장이 서른여덟 살 청년 ‘임화’였다는 사실은 해방공간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김남천은 문인 ‘임화’를 “예술운동의 우수한 운전수”로 인정했을 정도로 문단 내에서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민족을 배반한 기회주의 문인들을 기리는 친일문학상들이 오늘날 여전히 존재한다.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 중앙일보의 「미당문학상」, 한국일보의 「팔봉비평문학상」처럼 8년 전 한국문인 협회에서 이광수와 최남선을 기리는 「춘원문학상」, 「육당문학상」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특히 한국일보의 「팔봉비평문학상」은 태평양 전쟁에 총알받이로 참전할 것을 종용한 팔봉 김기진을 기리는 친일 문학상이다. 이러 한 상을 1990년 한국일보가 주관해 제1회 수상자로 김현, 제2회 수상자로 김윤식, 그리고 제7회 수상자로 염무웅을 선정했다.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1998년 「 팔봉비평문학상 」 제9회 수 상자로 선정됐지만 유일하게 거부했다. 2024년 현재 「미당문학상」처럼 팔봉 김기진을 기린 「팔봉비평문학상」이 3년째 중지된 상태이지만 조선일보가 매년 수천만 원의 상금으로 유혹하는「동인문학상」처럼 언제 되살아날지 모른다.
일제에 맞서 문학을 무기로 투쟁했던 청년 ‘임화’를 생각한다면 문인 ‘임화’를 폄훼하고 왜곡, 악마화한 김윤식, 김현, 염무웅 그들이야말로 ‘민족 문학’을 운위하기 이전에 평론가로서 자신을 성찰해야 할 일이다. 한국 문단의 주류 비평을 장악한 채, 문학 권력을 행사하는 평론가들은 자중하고 성찰해야 마땅하다. 최소한 ‘민족’의 이름으로 ‘민족 문학’을 왜곡하거나 팔지 말아야 한다. 아니 적어도 ‘민족 문학’을 입에 담을 거라면 친일 문인의 거두 「팔봉비평문학상」을 거부해야 마땅하다.
친일문학상의 부활을 노리거나 돌아가면서 수상하는 추태를 연출하기 이전에 그 친일문학상들을 온전히 폐지해야 옳다. 문단의 역사정의를 실천하고 나서 그 다음에 임화의 민족운동과 임화의 30년대 조선학 운동, 그리고 ‘민족 문학’을 말해야 설득력이 있지 않겠는가!
하성환(현대인물사연구자)
기본정보
ISBN | 9791196254667 |
---|---|
발행(출시)일자 | 2025년 02월 21일 |
쪽수 | 246쪽 |
크기 |
145 * 216
* 23
mm
/ 564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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