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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자수가 박필순의 40년 작품세계
이번 전시에는 총 4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하지만 부군인 이문열 작가가 지은 글이 얹힌 〈송학병(8폭)〉이나 화초길상문자문을 수놓은 〈길상도(8폭)〉를 비롯해 〈서수도(瑞獸圖·10폭), 〈일월곤륜도(8폭)〉처럼 10폭에 달하는 병풍들이 포함되어, 이를 연작으로 생각하면 100점에 육박하는 전시 규모다. 수년 전 불의의 화재로 소실된 〈수복병(10폭)〉, 〈화조도(8폭)〉은 도록에만 수록됐다.
가장 최근 완성된 작품인 〈서수도〉는 말 그대로 상서로운 힘을 가진 동물 그림이다. 용, 봉황, 기린(麒麟)과 같은 전설상의 동물, 백학(白鶴), 백록(白鹿), 거북처럼 실재하지만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어진 동물, 기이한 화초와 영지버섯 등이 10폭 병풍에 펼쳐진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여기 빛나는 햇살 아래 구름과 바위, 풀과 나무 사이를 봉황과 기린, 용과 공작, 학과 사슴, 기러기와 거북이들이 각각 아홉 마리의 새끼들과 함께 평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입니다. 제게는 이 모습이 서로에 대한 축복과 기도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숲속 어딘가에 있을, 우리 시대의 아이들과 제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의 원래 제목이 《어머니의 마음으로》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백만 번 천을 뚫는 바늘, 강하고 아름답고 아픕니다” (김남조 시인, 2006년 방명록)
해설을 실은 최태만 평론가(국민대 교수)는 2006년 인사아트센터 개인전 때 김남조 시인이 방명록에 남긴 이 글귀를 인용해 “가는 실로 면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과정은 인내와 정성이 없으면 견기디 힘든 시간”이라며 “박필순의 자수를 보노라면 솜씨 못지않은 한땀 한땀 수를 놓은 정성이 만들어낸 색채의 조화를 발견할 수 있다”고 썼다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자녀의 성공을 빌며 수놓았다는 〈변어용천도〉나, ‘호랑이와 까치’ 민화에서 틀을 가져온 〈호작도〉처럼 30호 내외의 작품도 여럿 포함됐다. 또 〈연꽃〉이나 〈황촉규〉처럼 8호 남짓한 소품이지만 베일 듯 정교하게 수놓인 작품도 눈길을 끈다.
처음 작가가 한국 전통자수에 입문할 때 아이들 혼례 의복을 염두에 뒀다고 했던 것처럼, 전시 목록에는 아이가 첫돌에 입고 신고 두를 옷과 물건들부터 나중에 성장해 관례, 혼례 때까지 쓰일 여러 복식들, 집안 대소사에 쓰일 여러 생활자수 작품들도 망라된다. 특히 혼례 때 신부가 입을 활옷(모란/연꽃 문양 대례복)과 당의, 화관과 앞뒤댕기, 혼수함과 장식대, 안보와 사성보, 보석함과 자수이층장, 각종 자수 노리개 등을 함께 모아 선보인다.
박필순 자수가는 1998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입선을 시작으로 미국과 헝가리 등 국내외에서 2번의 단체전과 5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 2019년 〈전통공예상품공모전〉 특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작가의 이번 전시는 한국 전통자수가로서의 40년을 정리하는 전시다.
작가정보
1984년 동양자수학원 고행자 선생을 통해 자수 입문.
1998년 제23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복식 부문에 ‘보석함’ 입선.
2003년 〈POSCO 전통자수〉 단체전
2006년 인사아트센터 개인전
미국 UC 버클리(Berkeley) 동아시아연구소 개인전
20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Asian Art Museum) 개인전
2008~09년 미국 피바디 에섹스박물관(Peabody Essex Museum) 장기 전시
2015년 한국-헝가리 수교 25주년 키슈쿤헐러박물관(Kiskunhalas Museum) 개인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문화센터 특별전 〈한국전통예술전〉
2019년 제5회 〈전통공예상품공모전〉 특선
2025년 한벽원미술관 개인전
목차
- 작가의 말
박필순의 자수에 담긴 뜻을 찾아가는 이야기 (최태만, 국민대학교 교수·미술평론가)
작가 이력
책 속으로
한참 분주하던 시간들이 지나고,문득 어느 허물어진 담장 그늘 응기종기 피어난 연보라빛 제비꽃에 저도 모르게 행복한 마음이 되어 먼 그리움에 젖습니다.
제가 어릴적만 해도 집집마다 마을 어머니들이 수놓은,집안의 번영과 건강,자녀를 향한 기도 같은 바람과 축복으로 꾸며진 자수품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는 세월에 밀려,자수로 표현되던 안방 문화와 어머니들의 기도는 미처 정리되지도 못한 채 빛바랜 유품으로 남고 맙니다.
이제는 모두가 달나라 여행을 꿈꾸는 지금에,이런 이야기는 옛날 저 달의 계수나무를 옥도끼로 찍어내어 초가삼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 천년만년 살겠다는 노래처럼 우스광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들의 기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총명함과 성실한 학문으로 폭포를 거슬러오르는 힘을 기르고,어질며 지혜롭게 항상 주위를 배려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모든 어머니들은 기도합니다.
그런 기도가 이번에 새로 보여드리는 '서수도I에 특히 잘 드러납니다. 여기 빛나는 햇살 아래 구름과 바위,풀과 나무 사이를 봉황과 기린,용과 공작,학과 사슴,기러기와 거북이들이 각각 아홉 마리의 새끼들과 함께 평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입니다. 제게는 이 모습이 서로가 서로에 대한 축복과 기도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숲속 어딘가에 있을,우리 시대의 아이들과 제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꼬박 40여년의 자수 작업을 일단락하는 올해의 전시와 자수도록의 출간은 제게도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크게는 일월오악도에서 서수도와 길상도,작게는 관례와 혼례를 치를 때 필요한 사모관대와 활옷까지 다양한 작품을 한 곳에서 선보입니 다. 모쪼록 제 부족한 솜씨를 너그럽게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2025년 정월 박필순
출판사 서평
(전략) 박필순의 〈일월도〉는 현존하는 일월오봉병 중에서 창덕궁 인정전의 〈일월오악도〉를 밑그림으로 하여 제작한 자수 병풍으로 추정한다. 연구를 통해 1840년대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된 인정전 그림이 4폭 병풍이라면 이 자수 〈일월도〉는 8폭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채색화와 자수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구성과 표현 방법은 유사한 점이 많다. 왼쪽의 횐 달과 오른쪽의 붉은 해 가운데 세 봉우리 중 가운데 것이 가장 높고 크다는 점과 붉은색의 줄기와 가지를 지닌 소나무를 각각 두 그루씩 좌우 가장자리에 배치한 점, 주봉을 협시하는 두 봉우리로부터 흘러내린 폭포가 포말을 일으키며 파도와 만나고 있다는 점은 도상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 박필순의 자수 일월도는 이러한 도상의 전통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으나 자수의 특성을 살려 채색화의 청록산수와는 다르게 다섯 봉우리를 마치 금강석을 쌓아 놓은 것처럼 표현한 것이 먼저 눈에 띈다. 그래서 그림보다 입체감이 훨씬 두드러지는데 상대적으로 파도의 표현은 획일적이어서 물의 부드러운 흐름이 바위처럼 굳어진 상태이다. 반복적인 패턴이나마 채색화의 파도가 비늘 모양을 지닌 반면 자수는 화면 아래에 깔린 바위 사이로 물거품이 일어나는 형국이다. 그러나 금강석을 쌓아놓은 듯한 다섯 봉우리와 소나무의 붉은 줄기와 산호처럼 구불구불한 가지는 대조는 이 자수를 더욱 생동감 넘치는 상상의 산수로 이끄는 요소이다. 줄기와 가지를 회화처럼 적갈색이 아니라 투명한 홍색 실로 표현한 것에 대해 그는 어느 날 경북으로 가는 길에 차창으로 바라본 금강송의 나무 줄기가 때마침 석양을 받아 붉게 빛나는 것을 보고 그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런 점이 봉건시대의 전통 회화를 자수로 옮길 때 드는 의 문 , 즉 전승이냐 창작이냐 라는 근본적인 생각을 떨치게 만드는 근거일 것이다. 그림을 자수로 옮긴다고 할 지라도 재료기법의 차이만큼이나 자수가의 생각에 따라 충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이 자수 일월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7년이란 시간을 바친 자수이기 때문에 그 정성이 놀랍지만 구도가 안정적이고 경물(景物)의 배치도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색상의 안배 역시 조화로울 뿐만 아니라 수의 기법에서 개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이 작품이 지닌 미덕으로 꼽고 싶다. (p29~30, 후략)
기본정보
ISBN | 9791191433715 |
---|---|
발행(출시)일자 | 2025년 02월 03일 |
쪽수 | 128쪽 |
크기 |
212 * 242
* 9
mm
/ 572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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