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쓰다, 페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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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음속에 막연히 그리던 책이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파리를 오래 거닐고, 텍스트 사이에 길게 머물던 비교문
학자의 진지하고 아름다운 책이 기대되는 이유다. 파리의 어느 카페 테라스에서 멋지게만 들리던 알 수 없는 프랑스어
가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려 주는 책이다. 그래, 책을 읽노라면 우리 역시 볕 좋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파리지앵
들과 함께 있는 듯 행복한 착각에 빠진다.
내공 깊은 비교문학자가 동행자로 택한 페렉의 《사물들》 속 커플, 실비와 제롬은 훌륭한 안내자이다. 우리가 알고 싶
은 ‘현지인’이 꾸는 꿈, 구석진 골목, 영화 얘기, 맛있는 것들, 루브르의 그림들… 그야말로 파리의 나날을 함께하는 재
미를 누리게 해준다. 지적이면서 우아하고, 섬세하면서 깊은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끝나 버린 얘기가 아쉽기만
하고 내내 생각난다.
작가정보
목차
- 작가의 말
프롤로그
# 제롬은 스물넷, 실비는 스물둘이었다.
# 카트르파주 가 7번
# 그들은 서로 쉽게 알아보았다.
# 그들은 다 같이 무프타르 가에서 장을 봤다.
# 무엇보다 영화가 있었다.
#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만족한 물고기처럼 보였다.
# 어떤 때는 자신들이 인생을 채 시작하지도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드루오와 갈리에라에서 열리는 경매에 자주 들렀다.
# 그들은 행복을 상상할 수 있다고 믿었다.
# 그들의 삶은 마치 고요한 권태처럼 아주 길어진 습관 같았다.
# 그들은 파리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에필로그
조르주 페렉
《사물들》
주
책 속으로
도시는 끝나지 않는 텍스트다. 우리 모두 셰에라자드의 끝나지 않는 다음 얘기를 기다리던 왕이 되어 애태우던 시절이 있지 않은가. 시간과 함께 갈수록 풍성해지고 나도 그 속의 인물이 되는 놀라운 공간이다.(p.9)
비교문학자로서 고흐와 함께 별은 더 빛나고, 카프카와 함께 성에 결코 들어가지 못해도 맬컴 라우리와 함께 화산 아래 가슴 졸이며 살아도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안셀름 그륀이 말한 “그 어둠에 들어가 나의 작은 어둠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음”을 알았다. 도시마다 같이 걷고 싶은 작가가 있다.(p.10)
걷는 이, 페렉이 있다. 그를 따라 파리를 걷는 일은 그야말로 발자크가 말한 “오! 파리를 떠도는 일이란! (…) 거닐음은 하나의 예술, 눈으로 즐기는 식도락…”을 함께하는 일이다. 파리에 발을 들인 이는 발자크 이전에도 이후에도 걸었다. 《사물들》의 실비와 제롬은 작정하고 길을 나선다. 탐미의 시선은 팔레 루아얄에서 생제르맹, 샹 드 마르스에서 에투알, 뤽상부르에서 몽파르나스, 생루이섬에서 마레, 테른에서 오페라, 마들렌에서 몽소 공원까지 만족을 모른다.(p.16)
무프타르라는 이름만으로 허기를 느낄 수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카메라에 포착된, 귀여운 꼬마가 어깨높이로 올라오는 기다란 포도주병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내려오는 거리가 무프타르 가다. “결정적 순간”을 노리던 작가가 본능적으로 포착한 그 장면이 오래된 골목을 단번에 소개한다. 유쾌함, 풍부함, 남의 장바구니 속 물건이 궁금한 호기심, 구경거리들. 좁은 골목길의 주인은 넘쳐나는 식재료와 무너질 듯 쌓아 올려진 물건들이다.(p.37)
오래전, 파리가 근대성으로 주목받던 시대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대신 근대성의 유적지로 남았다. 빛의 도시는 스무살의 조이스가 설레고 경계하던 자본주의의 도시였다. 국경 앞에 멈춰 서버린 벤야민이 있고 전설이 되기 전의 브르통이 있었다. 에릭 아잔Eric Hazan은 “중세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치게 된 것은 보들레르의 〈백조〉에서가 아니라 페렉의 《사물들》이 나오고 나서다.”라고 말했다. 중세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훨씬 짙고 길었다. 가문의 명예가 무거운 파리지앵들은 선조와의 비교, 명맥을 잇는 일이 늘 버겁다. 어깨에 드리운 대가들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쳐 낸 이가 페렉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거저 사라지지는 않아서 아잔의 말대로라면 페렉에 와서야 완전히 떨쳐 낼 수 있었다. 그만큼 페렉의 걸음은 가볍다.(p.99)
출판사 서평
파리는 세상의 모든 도시 중의 하나가 아닐 것이다. 파리는 그곳에 무엇이 있든 그것을 더 아름답게 한다. 《파리를 쓰
다, 페렉》은 이처럼 도시 덕분에 더 아름다워지는 책이 아니다. 반대로 독자에게 더욱 아름다운 파리를 그리고 그와
함께 더욱 풍요로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 김명숙은, 소설가 조르주 페렉의 첫 소설 《사물들》(1965)을 통해 독자에게 빛의 도시를 경험하게 한다. 파리를
소개하는 책은 많다. 어떤 책은 여행하는 데 도움을 주고, 또 어떤 책은 인문학적 지식을 전해준다. 《파리를 쓰다, 페
렉》의 방식은 다르다. 독자에게 파리의 지도를 그려 주지도, 인문학적 지식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대신 비교문학자는
특별한 공간이 주는 마법의 경험에 빠져들게 한다.
저자는 ‘도시를 쓰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가로 페렉을 선택했다. 울리포(OuLiPo)라는 유희적 실험 문학의 대표자로
알려진 페렉은 누구보다 새로운 구성과 형식을 고민한 작가이다. 저자 김명숙은 그의 소설 속 결코 나이 들지 않을 주
인공 실비, 제롬과 함께 이 오래된 도시를 산책한다.
이 책은 읽고, 걷고, 사유하고, 쓰는 일이 결국 자연스레 연결되는 동사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카트르파주 가, 무프
타르 골목, 생 제르맹 데프레의 카페 테라스를 따라가는 길에서, 소설의 단어와 단어 사이, 행간과 행간을 따라가는 여
정 속에서 저자는 그 길모퉁이마다 그저 빠져나가지 않는다. 단어는 사유 속 다른 단어를 만나고, 또 다른 작가를, 그
림과 영화, 음악을 만나 빛의 도시 파리를 더 빛나게 한다
기본정보
ISBN | 9791198652478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12월 10일 |
쪽수 | 112쪽 |
크기 |
152 * 214
* 14
mm
/ 478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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