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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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총서 (5)
작가정보
목차
- 꽃들의 시어 / 차례
작가의 말 · 5
축시/ 박덕은 · 6
제1부
캐리커쳐 부부 _ 17
휴식 _ 19
박덕은 미술관 _ 21
다짐 _ 23
봄이라서 _ 25
소통 _ 27
사랑의 길 _ 29
시인처럼 _ 31
그리움 _ 33
사색 _ 35
선상船上의 아침 _ 37
윈윈win win _ 39
화해 _ 41
사랑의 발견 _ 43
선택의 길 _ 45
동행 _ 47
3월 강가 _ 49
봄의 하루 _ 51
제2부
직선과 곡선 _ 55
우애 _ 57
빛의 우물 _ 59
노부부 _ 61
여운 _ 63
미 _ 65
평등 _ 67
설렘 _ 69
겨울 산행 _ 71
동창회 _ 73
여정 _ 75
쉼표 _ 77
발효 장터 _ 79
절개 _ 81
기다림 _ 83
나의 별꽃 _ 85
행복해 _ 87
봄 단상 _ 89
제3부
사랑의 다리 _ 93
영화처럼 _ 95
기다림 _ 97
사랑 둥지 _ 99
꽃여울 _ 101
이별 _ 103
향수 _ 105
봄 오는 소리 _ 107
퇴근길 _ 109
산책길 _ 111
꽃들의 언어 _ 113
그리움처럼 _ 115
만남 _ 117
꽃등 _ 119
병풍폭포 무지개 _ 121
겨울 수채화 _ 123
계절의 길목 _ 125
첫사랑 _ 127
제4부
기도 _ 131
풍경 _ 133
함께 _ 135
가을 준비 _ 137
연둣빛 연서 _ 139
시계풀꽃 _ 141
작은 음악회 _ 143
커다란 행복 _ 145
협동 _ 147
추억차 _ 149
시선의 각도 _ 151
풀숲 나라 _ 153
어울림 _ 155
자기 자랑 _ 157
자리 싸움 _ 159
벗 _ 161
회상 _ 163
청포도 _ 165
평설/ 박덕은 _ 167
추천사
-
강만순 시인의 디카시들에는 모두 깊은 사색방울이 담겨 있다. 사물을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게 한다. 여러 생각을 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새로운 방향을 잡도록 도와주고 있다. 사물들, 정경들을 통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인생의 길을 한번 점검해 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게 디카시의 매력이 아닐까. 디카시는 사진이 주어져 있기에, 어찌 보면 시보다 이미지 구현이 한 발 더 앞선다. 그림처럼 떠오르는 시상들이 독자의 감흥을 최대한 이끌어 주고 있다. 짤막한 5행 이내의 시 속에 인생의 다채로운 감성을 담아내면서, 사색의 공간으로 촉촉이 안내하는 솜씨가 남다르다. 사진들은 되도록 추억의 한 컷을 장식하도록, 그때 그 순간에 찍지 않으면 안 될 것들, 삶의 의미를 이끌어내는 것들, 이왕이면 초점을 잘 맞춰, 되도록 대각선 구도로 찍은 사진들이면 더 좋은 디카시가 되어줄 것이다.
제목은 사진 속 주요 소재가 아닌 상징적인 것들로 올리면 더 좋은 평점을 얻게 될 것이다. 강만순 시인의 디카시들은 이러한 디카시의 특질을 두루 갖추어 놓고 있어, 독자들을 행복하게 한다.
책 속으로
- 캐리커쳐 부부
춘향제 구경 가서
잠시 모델이 되었다
재회한 춘향이처럼
추억 향기 마주하는 시간.
휴식
가끔은
하늘 바라보며 쉬고플 때가 있어
오늘처럼 젖지 않은
저 푸르른 날에.
박덕은 미술관
파란 수채화
온몸에 두르고 넘실 넘실
메마른 둥지에
피어난 예술꽃 송이 송이.
다짐
남은 시간들 흩어지지 말자
결 고운 향기 피워내야 한다
그날 눈물로 굳게 약속했지.
봄이라서
마냥 아래 향해 가고 있는 건 아니야
어느 순간 멈춰 새처럼 가벼이
훨훨 날 때가 있을 거야.
소통
울퉁불퉁
굴러온 마음의 자리
다듬고 다듬어
동그라미 그린다.
사랑의 길
비우고 비워내며
정상까지 다다르기엔
너무나도 고달픈 여정.
평설
강만순 시인의 디카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박 덕 은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강만순 시인은 1961년 2월 전북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에서 아버지 강상용 씨와 어머니 전봉님 씨의 사이에서 2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언니 둘에 이어 세 번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이렇게 회고했다.
“부모님은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에 제 이름을 작명가에게서 지어왔다. 이름 덕분인지 2년 후에 남동생이 태어났다. 그 후로 나는 더 이쁨을 받았다. 어린 시절에는 호기심 많은 얌전한 아이여서 주위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랐다.”
제사 때나 명절 때 가족들과 친적들이 집으로 많이 찾아왔고, 평소에도 동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부모님 곁을 떠나 전주로 유학 갔다.
“평소에 친구가 많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 부모님 말씀 때문인지 내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줄곧 모범생으로 지냈던 그녀는 대학 졸업 후, 고교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였다.
1987년 26세 때 결혼을 하여 슬하에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종갓집인 시댁에도 가족 행사가 많아 늘 가족들과 친척들이 오가곤 했다.
그녀는 시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육아에 전념하다가,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자 보습 학원을 개원하여 20여 년 넘게 초중고 학생들을 교육하며 아이들과 늘 함께했다.
학원연합회 회장직 임기 중에는 순창군과 학원연합회와의 교육 바우처 사업 협약식으로 전북에서 처음으로 바우처 사업을 시작했다.
또한 다문화 마을학당 한국어 가정방문 교사로 교육봉사하면서 외국인 여성들의 한국문화 적응과 귀화시험 합격을 도왔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매운향 문학회 동아리에서 박덕은 스승님께 시 창작 글쓰기 지도를 받아, 2011년에 첫 시집을 출간한 행운을 얻었다. 여생 동안 오카리나, 플룻 연주와 합창 등의 취미생활과 운동을 꾸준히 하며,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나눔을 실천하는 건강한 노후의 삶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그녀는 2007년에 《현대문예》 신인문학상, 2008년에 《문학공간》 신인문학상, 2010년에 동서문학상, 2020년에 빛창문학상, 2020년에 샘터수필문학상, 2022년에 《문학공간》 디카시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시집 『화장을 지우며』를 출간한 바 있다.
현재 싱그런 문학회 회원, 한실문예창작 회원, 순창문인협회 회원, 꿈스런 문학회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강만순 시인의 디카시 문학 세계로 탐구 여행을 떠나 보자.
마냥 아래 향해 가고 있는 건 아니야
어느 순간 멈춰 새처럼 가벼이
훨훨 날 때가 있을 거야.
- 「봄이라서」 전문
이 디카시에서 시적 화자는 풀줄기가 아래로 커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어느 정도 자라다가 마치 고개를 치켜든 것처럼 위쪽으로 나래를 펴고 있다. 새처럼 훨훨 날아 어디론가 가고 싶은 듯하다. 「봄이라서」 제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맞다. 봄이다. 안간힘으로 일어서는 봄이다. 끝끝내 날아오르는 봄이다. 좌절과 절망이 바닥으로 치달았지만, 희망이라는 봄 한 촉을 다시 피워 올릴 때다. 봄은 벌써 입꼬리 올리며 당도했으니, 그 입꼬리 위에 우리의 희망을 올려놓으면 된다. 봄도 주저하며 망설이며 뒤돌아보며, 그러다가 문득 용기 냈을 것이다. 그 용기로 봄산을 들쳐 메고 봄강을 끌고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그 봄에 힘입어 시적 화자는 희망을 꽃피우자고 말하고 있다. 봄에 꽃피우는 희망만큼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서도 봄이면 향기가 몸서리치게 뿜어져 나온다. 희망의 아름다운 나래짓, 그 향기가 봄날 속으로 환하게 흩어져 혼미할 정도다. 제목에 함축된 시적 의미가 멋스럽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어떤 인생을 보는 듯하다. 마냥 아래로 향해 가고 있는 희망 없는 삶, 힘든 일상과 고된 하루 하루가 끝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마음까지 영혼까지 추락하고 있지는 않다. 어느 순간 멈춰, 희망한 바처럼 하늘로 날아오를 때가 있다. 그 순간을 디카시와 사진이 포착해내고 있다.
울퉁불퉁
굴러온 마음의 자리
다듬고 다듬어
동그라미 그린다.
- 「소통」 전문
이 디카시에서 시적 화자는 동그라미를 보며 소통을 떠올리고 있다. 사진 속 동그라미를 내려놓으면 동그라미라는 소통의 힘으로 어디든 가 닿아 속엣말을 주고받을 것 같다. 파도에 씻긴 몽돌처럼 마음자리가 둥글어질 때까지 철썩이는 물결의 칼날을 끝도 없이 견디었을 것이다. 파도는 쉬지 않고 밤낮으로 몰려왔을 텐데 얼마나 많은 마음자리가 깨지고 부서지며 엎어졌을까. 모가 난 자신의 생각이 둥글둥글하게 깎이며 다듬어질 때까지 내면의 저항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이겨내지 않아도 살 수 있다며 모르는 척 넘기고 싶었을 텐데, 시적 화자는 일부러 그 저항과 맞닥뜨린다. 시적 화자는 그 내면의 저항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는다. 다만 “다듬고 다듬어/ 동그라미 그린다”고 말하고 있다. ‘동그라미’ 속에 시적 화자의 지난한 노력이 스며들어 있다. 어찌 보면 몽돌에는 몽돌을 위협한 억겁의 파도와 바람이 들어 있다. 아니, 모가 난 자신의 생각과 부대끼는 자아(自我)가 들어 있다. 아니,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몸부림이 깃들어 있다. 어른들은 흔히 둥글둥글하게 살아라고 덕담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 덕담 같은 말이 얼마나 힘든 구도의 길을 요구하는가. 우리는 동그라미의 바깥에서 모나게 사는 것에 익숙해 있기에 평생을 가도 그 동그라미를 그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시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과의 소통, 타인과의 소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수직의 벽
금 간 언저리에 피어
쓸쓸히 닫힌 맘
환하게 열어 준다.
- 「화해」 전문
이 디카시에서 시적 화자는 외벽 아래 길가에 피어 있는 채송화를 눈여겨보고 있다. 오해와 불통으로 닫힌 마음을 수직의 벽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로를 따스한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서운함이 쌓이고 불만이 겹치고 오해가 깊어가면서 벽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처음에는 낮게 벽이 만들어져 그 벽을 넘어설 수도 있었겠지만, 어느 순간 그 벽은 너무 높아 도저히 넘어설 수 없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를 향한 마음문은 꽉 닫히게 된다. 이 시는 그 불통이라는 벽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 벽의 금 간 언저리에 꽃이 피어나고 있다. 꽃이 피었기에 이제는 굳이 소통을 위해 벽을 넘을 필요도, 벽을 무너뜨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새로운 해석이다. 시는 이렇듯 시적 대상에게 의미의 옷을 입히고 상징의 옷을 덧입히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불통이라는 벽을 만들고 그 벽 때문에 쓸쓸해 하는가. 이 봄이 가기 전에 우리 모두 불통이라는 벽에서 화해라는 꽃이 피어났으면 좋겠다고 시적 화자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높이 자리한 수직의 벽, 거기 금 간 언저리에 피어 있는 채송화, 눈길을 끌어 다가가 보니, 꽃이 세 송이 피어 있다. 이 작은 꽃을 바라보는 순간, 쓸쓸히 닫힌 맘이 환히 열린다. 드디어 화해의 빛이 보인다. 닫힌 맘, 닫힌 하루, 닫힌 순간은 어둡고 쓸쓸하다. 닫힌 맘이 열리면, 쓸쓸함은 사라지고, 수직의 벽도 사라지고, 환한 마음길이 열린다. 화해의 세상이 인생을 신바람나게 한다.
장맛비에 무사한지
무더운 밤 안녕한지
안부 물으니
다 같이 웃으며
인사하는 초록.
- 「사랑의 발견」 전문
이 디카시에서 시적 화자는 들판의 모와 논둑의 풀이 푸르게 자라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쓸모 있음의 모와 쓸모 없음의 잡초를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시적 화자는 그 둘을 “다같이 웃으며/ 인사하는 초록”이라고 동일시하고 있다. 제목 「사랑의 발견」을 통해서 그 깊은 의미가 매만져진다. 우리에게 쓸모 있음의 여부와 관계없이 자연의 입장에서는 다 같은 초록인 것이다. 나의 이익과 상대의 이익에 따라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사진 속 저 초록으로 피어날 때까지 모와 잡초는 아침햇살로 얼굴을 씻고 바람에 귀를 씻었을 것이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무더위가 숨통을 조여 와도 끝끝내 이겨냈을 것이다. 장맛비라는 물의 폭력 앞에서도 당당했으니 모와 잡초는 둘 다 아름다운 초록인 것이다. 여기서도 새로운 해석이 돋보인다. 논의 모도 늘 푸르고 논둑의 풀들도 늘 푸르다. 장맛비에 무사한 저 초록, 무더운 밤도 잘 견딘 저 초록, 다 같이 안부 물으며 인사한다. 그 모습이 웃고 있는 듯하다. 풀과 모가 서로 다정히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부럽기까지 하다. 돈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인간 세상이 저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막힘 없이 초록의 언어로 소통하며 안아 주고 한마음 되어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세상이 부럽다.
노란 속눈썹 치켜뜨고
부푼 계절로 달려와
총총총 눈맞춤한다.
- 「설렘」 전문
이 디카시에서 시적 화자는 산수유 꽃을 바라보고 있다. 산수유는 봄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어떤 힘으로 꽃을 피우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설렘’일 것이라고 시적 화자는 생각한다. 설렘이 있기에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고 희망을 향해 달려간다. 불안과 비참으로 깊어진 막막한 내일이 다가올지라도 설렘이 있다면 그 내일을 헤쳐나갈 수 있다. 절망 속에서는 내일이 없기에 눈뜨고 싶지 않다. 하지만 춥고 어둡더라도 사랑과 희망이 있다면 산수유 꽃처럼 “노란 속눈썹 치켜뜨고/ 부푼 계절로 달려”간다. 그래서 봄에게, 사랑에게, 꿈에게 “총총총 눈맞춤”을 한다. 내일을 바라보는 설렘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어제가 어둡다고 내일마저 어둡지는 않다. 산수유 꽃처럼 노란 속눈썹 치켜뜨고 우리 함께 달려보자. 저 산수유 꽃도 발목 잡는 추위를 뿌리치고 내일이라는 봄을 향해 설렘으로 꽃피지 않는가. 사진 속 도로변에 피어 있는 꽃은 노랗다. 세 송이가 피어 도로를 내려다보고 있다. 누굴 기다릴까. 노란 속눈썹 치켜뜨고 부푼 계절로 달려온 꽃, 반가워하며 총총총 눈맞춤하는 꽃. 이렇듯 작은 꽃도 설렘 가득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어찌 우리 인생은 그러지 못하는 걸까. 오늘도 시르죽이 지내는 수많은 인생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설렘이 없는 세상아, 다시 시작하라. 설렘 가득한 일상으로 복귀하여, 인생을 멋지게 장식하라.
물그림자 위에
닻을 내리고
고단함 눕히는
시간의 품.
- 「쉼표」 전문
이 디카시에서 시적 화자는 물에 비친 밤의 한 정경을 바라보고 있다. 물멍이라는 말이 있다. 물을 바라보거나 물소리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일, 일종의 멍때리기 힐링이다. 이 시는 그런 물멍을 시적 형상화하고 있다. 수면에 비친 불빛이 흥건히 물에 젖어 있다. 물의 심성은 곱기에, 뭐든 받아주고 수용하며 물그림자로 띄워 준다. 수면 위로 밤이 내려오고 적막이 내려와도 불평 없이 물그림자로 다시 띄워 준다. 물은 자신의 원형을 고집하지 않는다. 물은 모든 것을 품어주고 받아주며 쉼을 얻으라 한다. 사진 속 수면 위로는 아파트 불빛이 환히 켜져 있다. 그 불빛은 하루의 걸음을 수면에 드리운 채 고즈넉이 물에 잠겨 있다. 물결이 고단했던 하루의 걸음을 다독이며 가만가만 품어주고 있다. 시적 화자는 그 모습을 “물그림자 위에/ 닻을 내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닻을 통해 하루의 항해를 끝마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고단함을 눕히는 시간의 품처럼 저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방이 고요하고 마음도 잔잔해질 것 같다. 명상 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시적 화자는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휴식을 갖고 사색의 순간을 맞이하라는 것 같다. 하루의 쉼표를 놓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따스한 쉼표는 우리가 인생에서 꼭 챙겨야 할 가장 소중한 순간이 아닐까.
마음과 마음으로
두근두근 연주하면
점점 가까워지는
그대라는 그리움.
- 「사랑의 다리」 전문
이 디카시에서 시적 화자는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려다 시심에 잠긴다. 저 징검다리는 빠른 물살에도 빠지지 않도록 안부와 소식을 안전하게 건네준다. 또 봄을 건네고 따스한 온기를 건네고 저물 녘의 낭만을 건네주었을 것이다. 몸의 중심이 흔들릴 때에도 묵묵히 등을 내민 징검다리가 있기에 다시 중심을 잡고 건너갈 수 있다. 그런 징검다리를 시적 화자는 ‘사랑의 다리’로 바라보고 있다. 맞다. 그리움이라는 징검다리를 밟고 가면 사랑을 만날 수 있다. 저 그리움이라는 징검다리가 없었다면 마음의 개울을 건널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의 여울목에서 아프게 발목 적셔도 징검다리가 없어 건널 수 없었을 것이다. 보고파하는 심정을 시적 화자는 “마음과 마음으로/ 두근두근 연주”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피아노 건반 같은 징검다리와 “두근두근 연주”가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징검다리를 두근두근 연주하며 건너면 사랑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저 징검다리는 다름 아닌 자신의 마음과 님의 마음인 듯하다. 한 발 한 발 건너는 건 사랑을 향해 두근 두근 연주하는 것과 같다. 그 두근거림은 그대와 나, 이 두 마음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증거다. 그리움이 점점 증폭되어, 사랑에 이르게 된다는 증거. 그러므로 이 징검다리는 사랑의 다리일 수밖에 없다. 부디, 이 징검다리를 건너, 사랑의 완성과 만나기를 소망해 본다.
아쉬움으로 그리는
수채화 한 폭
앙상한 그리움의 가지에
환히 매달려 있다. - 「이별」 전문
이 디카시에서 시적 화자는 노을 녘 해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이별이 얼마나 슬펐기에, 노을은 얼굴 빨개지도록 울었을까. 울다 떠난 님의 발자국 소리가 얼마나 아팠기에 해질녘은 붉게 물들고 있는 것일까. 붙잡지 못한 미련과 속으로 삼킨 울음이 얼마나 깊었기에 저 지는 해처럼 환하고 둥글어질 수 있단 말인가. “아쉬움으로 그리는/ 수채화 한 폭”이 될 때까지 마음의 저녁은 붉은 울음을 뚝뚝 떨어뜨렸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달디단 어제로 황홀했던 여름이 있었고, 단맛으로 부풀어오른 입술이 하루를 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헛헛한 마음 안쪽에서 자라는 아픔이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별까지 왔을 것이다. “앙상한 그리움의 가지에/ 환히 매달려 있”는 이별. 처량히 매달려 있는 게 아니라 환히 매달려 있다. 안으로 안으로 삭힌 울음이 얼마나 컸으면, 사랑의 기억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환히 매달려 있단 말인가.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별로 다가온다. 그래서 아쉬움으로 그리는 수채화 한 폭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먼 훗날에도 환한 이별이 아름답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비록 이룰 수 없는 사랑이어서, 앙상한 그리움의 가지에 매달려 있어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부디 오래 오래 기억 속에 살아 있어, 이 그리움이 지속될 수 있다면 좋겠다.
붉어진 마음 들킬까 봐
콩닥콩닥
살며시 몸 숨긴다.
- 「첫사랑」 전문
이 디카시에서 시적 화자는 붉게 익어 있는 감을 쳐다보며 첫사랑을 떠올린다. 첫사랑은 서로 마음의 체온을 나누며 밀어를 속삭였을 것이다. 몸안에 설렘의 불을 모두 켜놓았을 것이다. 어둠과 아픔이 다가와도 그 불로 주위를 환하게 밝혔을 것이다. 때론 슬픔에 젖어 아프고 힘들어도 그 몸의 불로 말리며 내일을 기다렸을 것이다. 설렘이 지속되는 한 꺼지지 않는 불화로가 마음속에서 타올랐을 것이다. 시적 화자는 그 첫사랑의 시작을 “붉어진 마음 들킬까 봐/ 콩닥콩닥/ 살며시 몸 숨긴다”고 말하고 있다. 사랑의 시작이 은밀하고 달콤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진 속 저 붉은 감은 고백을 앞두고 있는 듯 두 볼에 홍조를 띠고 있다. 설렘으로 들뜬 붉은 고백들이 따스하고 반질반질하다. 하지만 부끄러워 자꾸만 몸 숨긴다. 감잎 뒤에 살포시 숨어 부끄러
기본정보
ISBN | 9788956657264 |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07월 15일 | ||
쪽수 | 192쪽 | ||
크기 |
130 * 190
mm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시와사람 디카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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