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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저자(글)
소명출판 · 2023년 07월 31일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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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자서전 상세 이미지

수상내역/미디어추천

원조 한류스타, 조선의 리듬,무용가 최승희 자서전
1937년 초판본 오리지널 복각 한정판
“나는 조선의 리듬, 더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갖고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지구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 보렵니다.”

1920년대 조선, 기생이 아닌 여성의 춤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기,
식민지 조선의 틀을 깨고 나온 무용가 최승희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럽, 북미, 남미까지 뻗어 나간 최승희의 행보와 성공.
20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무용가, 일명 ‘세계의 무희’ 최승희의 자서전이 1937년 최초 출간된 형태와 활자 그대로 복원되어 출간된다.
월북 예술가인 최승희는 사회 분위기 속 오랫동안 금기시되며 그간의 많은 자료들도 함께 불태워 없어졌다. 1937년 발간된 『최승희 자서전』은 20대 후반의 젊은 최승희가 기록되었고, 친일 협력의 도구가 되기 전, 불운의 시간이 당도하기 전, 전통 춤과 민족 유산, 새로운 무용 예술에 심취해 있었던 무용가 최승희를 만날 수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최승희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무용가동맹 위원장, 무용학교 교장, 최승희무용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
1911년 강원도 홍천에서 출생했다. 최준현(崔濬鉉)의 딸이며, 어머니는 박용자(朴容子)이다. 영화제작자 최승일(崔承一)의 동생이다. 1926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최승일의 권유로 경성공회당(京城公會堂)에서 일본 현대 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보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도일했다. 1926년 5월 본격적인 무용 수업을 위해 도쿄로 건너간 뒤 약 3년 만에 주역급 무용수로 발탁되었고, 수석대교(首席代敎)로 후진을 지도할 만큼 급성장했다. 1927년과 1928년 이시이바쿠의 조선공연에 참가하여 호평을 받았다. 1929년 귀국하여 경성에 무용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이해 12월 찬영회가 주최하는 ‘무용·극·영화 밤’에 출연했다. 1930년부터 본격적인 무용 공연을 시작했다. 이해 2월 개성에서 무용 대회, 3월 창작 무용 공연회, 10월 제2회 공연회, 11월 대전에서 무용 대회를 각각 가졌다. 1931년 문학가 안막(安漠)과 결혼했다. 이외에 「파우스트」·「광상곡」·「그들의 로맨스」·「그들의 행진곡」·「흙을 그리워하는 무리」 등 가극과 창작극을 발표, 공연했다. 이 시기 전국을 순회하면서 신문사 애독자 공연, 동정금 모금 공연 등 다채로운 공연을 했다.

1933년 3월 이시이 문하로 재입문하여 약 1년 만에 청년회관에서 전통과 현대 무용을 접목한 창작극 「에헤야 노아라」를 발표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36년 영화 「반도(半島)의 무희」에 출연했으며, 이해 말부터 4년간 세계 무대로 진출하여 유럽에서는 「초립동」·「화랑무」·「신로심불로」·「장구춤」·「춘향애사」·「즉흥무」·「옥저의 곡」·「보현보살」·「천하대장군」 등 공연했다. 1938년 브뤼셀에서 개최된 제2회 세계무용경연대회에서는 심사위원을 맡았다. 1930년 미국 뉴욕에서는 당시 흥행계의 제왕으로 불리던 휴록(Hurok.S.)의 기획 아래 NBC전국체인과 제휴하면서 미국은 물론,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공연했다. 특히, 뉴욕 공연 후 ‘세계 10대 무용가의 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다.

중일전쟁 이후 전시 체제기가 형성되면서 일제에 협력했다. 1941년 10월 일본 오사카(大阪)회관에서 협화회원을 위로하는 공연을 했으며, 11월에는 도쿄극장에서 조선군 보도부가 내선일체와 지원병을 선전하는 영화 「그대와 나」 시사회에서 「화랑의 춤」 등을 공연했다. 이해 11월 도쿄에서 공연한 수익금을 일본 육군성 휼병부(恤兵部)에 헌금했다. 1942년에는 조선군사보급협회에서 주최하는 무용공연에서 수익금 전액을 조선군사보급협회에 기부했다. 1944년에는 도쿄에서 24회 연속 독무 공연을 했다. 이외에 일본의 전통 예능인 노(能)·가부끼(歌舞伎) 등에서 소재를 얻어 「부콘(武魂)」·「오이와케(追分)」·「이케니에(生贄)」·「시즈고젠(靜御前)」 등을 발표했다.

해방 직전 중국에서 위문 공연을 하다 베이징에서 해방을 맞고, 1946년 5월 귀국했다.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되어 남편 안막, 오빠 최승일과 함께 7월 20일 월북했다. 월북 후 평양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반야월성곡」·「춘향전」 등 2편의 무용극과 소품 「노사공」 1편을 공연하는 등 창작 활동을 했다. 1950년 베이징에 중앙희극원 무용반을 설립해 학생을 지도했다. 1950년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무용가동맹중앙위원회 위원장, 무용학교 교장, 국립무용극장 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1952년 공훈배우·1955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1958년까지 최승희무용학교에서 안무가로 활동했으나 남편 안막이 반당종파분자 혐의로 체포되자, 그 영향을 받아 최승희무용연구소도 폐쇄되었다. 1년간 자숙 후 1959년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을 창작해 조선무용가동맹 위원장으로 복귀, 1967년까지 활동했다. 1967년 숙청되어 가택연금의 처벌을 받았으며, 1969년 8월 8일 사망했다.

목차

  • 목차 (目次)
    사진 (寫眞)

    경성무용연구소시대 (京城舞踊硏究所時代)_(7)
    순천역에서 (順天驛에서)_8
    무여무 (巫女舞)_9
    희망을 안고 (希望을 안고)_10
    석정문하시대 (石井門下時代)_11
    소야곡(초야대) (小夜曲)(初夜臺)_12
    희생 (犧牲)_13
    검무 (劍舞)_14
    오제의 죽엄_15
    승무 (僧舞)_16
    오리엔탈_17
    메리-위도우_18
    광상곡 (狂想曲)_19
    조선풍듀엣트 (朝鮮風듀엣트)_20
    가두예 (街頭藝)_21
    마음에흐름_22
    ○터에서 (○攄에서)_23
    에헤야노아라_24
    무여무 (巫女舞)_25
    동형의 씨스템 (動形의 씨스템)_26
    동형의 씨스템 (動形의 씨스템)_27
    도약 (跳躍)_28
    섬라(태국)의 춤 (暹邏의 춤)_29
    인도인의 비애 (印度人의 悲哀)_30
    민요조 (民謠調)_31
    진양조 (盡陽調)_32
    도약 (跳躍)_33
    제일회향토방문시(무여무) (第一回鄕土訪問時)(巫女舞)_34
    농부춤ㆍ스페인(서반야)춤 (農夫춤ㆍ西班牙춤)_25
    도약ㆍ폭풍우 (跳躍ㆍ暴風雨)_36

    학교를 맟을 때 까지 _1
    나와 서모 (庶母)_5
    나의결심과 나의성격_10
    논물의리별_16
    고향을 떠나 새로운 연구에_20
    독립 무용 연구소 건설_22
    결혼전후_25
    또다시 동경에_27
    출발전야 (出發前夜)_30
    누이에게 주는 편지_최승일(崔承一)_48
    형제에게 보내는 글 (兄弟)_최승희(崔承喜)_61
    고뇌의 표현 (苦惱의 表現)_최승희(崔承喜)_66
    무용은 마음의 창 (舞踊은 마음의 窓)_무용가 석정막 (舞踊家 石井漠)_72
    무희 최승희 론 (舞姬 崔承喜 論)_소설가 천단강성(小說家 川端康成)_75
    최승희에게 기함 (崔承喜에게寄함)_개조사 사장 산본실언(改造社 社長 山本實彦)_84
    민족무용가로서의 최승희 (民族舞踊家로서의 崔承喜)_평론가 원지공방 (評論家 園池公坊)_88
    최승희에게 주문함 (崔承喜에게 註文함)_평론가 중촌추일(評論家 中村秋一)_90
    한개의 감상 (한개의 感想)_철학가 류종열(哲學家 柳宗悅)_93
    최승희여사의무용을보고 (崔承喜女士의舞踊을보고)_평론가 신거격(評論家 新居格)_95
    최승희찬 (崔承喜讚) 소설가 촌산지의(小說家 村山知義)_99
    미견최승희(조선파와 서무파) (未見崔承喜)(朝鮮派와 西舞派)_소설가 강전삼랑(小說家 岡田三郞)_103
    최승희론 (崔承喜論)_평론가 삼산평조(評論家 杉山平助)_107
    최승희의무용예술 (崔承喜의舞踊藝術)_소설가 판원직자 (小說家 板垣直子)_110
    최승희의무용세계에○하아 (崔承喜의무용세계에○하아)_평론가 청야계길(評論家 靑野季吉)_114
    동양의리듬 (東洋의리듬)_이화여자전문학교교수 박경호(梨花女子專門學校교수 朴강浩)_118
    육체의탄력(肉體의彈力)_조선중앙일보학예부장 김복희(朝鮮中央日報學藝部長 金復熙)_121
    장쾌한진로를축복한다 (壯快한進路를祝福한다)_평론가 박영희(評論家 朴英熙)_122
    세련되어가는기예 (洗鍊되어가는技藝)_동아일보학예부장 서항석 (東亞日譜學禮部長 徐恒錫)_126
    조선사람의자랑이되도록 (朝鮮사람의자랑이되도록)_신동아 주간 최승만 (新東亞 主幹 崔承萬)_127
    최승희의인○(최승희의印○)_조광 주간 함대훈(朝光 主幹 咸大勳)_128
    과거의추억과미래의기대 (過去의追憶과未來의期待)_화가 안석주 (畵家 安碩柱)_133
    최승희무용 (崔承喜舞踊)_최승일(崔承一)_137
    최승희작품해설 (崔承喜作品解說)_음악평론가 산우충 (音樂評論家 山牛充)_141

추천사

  • 무용가 최승희는 존재 자체가 ‘파격(破格)’이었다. 1920년대의 조선은 기생이 아닌 여성의 춤을 상상할 수 없었던 때였다. 그러나 최승희는 식민지 조선의 사회문화적 기호를 과감히 깨부수거나 없었던 것을 서슴없이 해보이는 방식으로 조선의 리듬과 춤의 표징이 되었다. 그녀의 단발, 놀랍도록 다채로운 표정, 변신과 같은 화장, 조각 같은 인간 몸의 선, 그전까지 알지 못했던 육체의 탄력미 등은 조선의 전통 무용과 모던 댄스, 향토풍의 신무용과 동양적인 것, 나아가 인터내셔널 예술을 지향했다. 이것들은 어느 하나 당연하거나 자연스럽지 않았다. 최승희의 춤과 생의 희열은 이런 불협화음과 암중모색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찰나의 빛과 같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럽을 거쳐 남미까지 뻗어 나간 최승희의 행보와 성공, 활약과 명성 뒤에는 피식민자의 우울과 여성의 고뇌, 도약의 무용시(舞踊詩)를 창작하려는 예술가의 지독한 번민이 운명처럼 자리하고 있다. 1937년에 발간된 『최승희 자서전』에는 인생 여정에서 아직 산마루에 도착하지 않은 20대 후반의 젊은 최승희가 기록되어 있고, 그녀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기억이 누적되어 있다. 최승희가 적극적인 친일 협력의 도구가 되기 직전, 불운의 시간이 당도하기 전, 전 통춤과 민족 유산, 새로운 무용 예술에 심취해 있었던 무용가 최승희를 만날 수 있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59058158
발행(출시)일자 2023년 07월 31일
쪽수 196쪽
크기
134 * 193 * 19 mm / 389 g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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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술계를 잘 몰라 일전에 여러 책을 읽어봤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텃세와 Line이 가장 심한 곳이 <무용계>이며 그 피라미드의 상단은 <무용가 최승희>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쉽게 말씀드려 <최승희의 사사를 했냐 받지 않았냐>로 한국무용의 정통성을 가진다는 이야기와 함께 한국과 북한에서 동시에 칭송받는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은데 최승희는 두 곳 모두에서 칭송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놀랐습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월북 예술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최승희>에 대한 부분과 근대사의 예술가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2



<최승희 자서전>라는 책을 읽었씁니다.



이 책은 최승희씨가 1937년 발행한 초판본을 원형 및 색감을 그대로 살려낸 책입니다

표지만 원형으로 살려낸 줄 알았는데 그 내용도 예전 7-80년대 책들 처럼 세로읽기로 구성되어있고 책 맞춤법도 그대로 이며 독음을 적지 않은 한자를 쓰고 있어 한편으로는 Retro한 느낌. 한편으로는 읽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3


책은 개인사 와 많은 문학인, 예술인의 추천사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개인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지금처럼 결혼과 예술인 으로써의 갈등이 일제 강점기에도 그대로 있었다는 것과 함께 예술을 달성하기 위해 수많은 도전을 서슴치 않았던 최승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는 점이 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술인의 추천사는 조선, 일본을 가릴 것 없이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최승희의 업적과 능력을 칭찬하는 글이 매우 인상적이었네요.




4


저는 책을 읽을때 서문과 발행쇄수를 보는 습관이 있는데 이 책은 그러한 부분까지 모두 디테일하게 복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판사는 저작권에 대한 부분도 잘 알려주었네요.


최승희는 친일행적으로 월북을 하고 월북을 하고서도 환영받지 못한 말년을 보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젋은시절에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네요.


예술가 최승희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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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최승희 자서전 복각본_최승희_소명출판


어느 유튜브 방송에서 무용가 최승희를 이 시대의 BTS였다고 했다. 그 당시에 세계적인 스타였고 파급력이 엄청난 분이셨다. 뚜렷한 이목구비는 미녀상이었으며 무려 170Cm에 육박하던 키는 동서양을 통틀어 장신이었다.


사실 이분을 잘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끌렸고 1930년대에 나왔던 오래된 책을 복각본으로 만든다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한 번 놀랐던 건 복각본인 줄도 모르고 책을 펼치니 세로로 쓰인 글에 당황스러웠다. 오래된 옛 글이라 현대어로서 읽히기 힘든 단어가 많았고 중간을 넘어서면 한자어가 해석 없이 나와서 다 읽는 건 사실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이해하는 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셨다. 책의 첫 부분엔 무용가 최승희의 귀한 사진이 있었으며 정말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책이었다.


‘최승희 자서전


-나는 조선의 리듬, 더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갖고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지구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보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남편의 강력한 권유로 월북을 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도 말렸고 이승만 대통령까지 편지를 전하며 극구 반대했으며 무당에게 찾아가서 점까지 봐서 안 가는 게 좋다고 했음에도 떠났다. 물론 끌려갔다기보다는 당시 김일성이 엄청나게 최승희를 밀어줘서 금전적인 부분 때문일 거라는 얘기가 많았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녀의 애제자와 남편의 동생이 남한으로 내려가기 전에 최승희에게도 함께 가길 권유했으나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역시 사회주의에 심취해 있던 남편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처음엔 부유하게 살았으나 남편이 북에서 역적으로 몰려 숙청당하고 최승희마저 1969년도 이후로 종적이 감춰져서 행방이 묘연했고 결국은 숙청을 당했다는 얘기만 전해지게 되었다. 지금은 오래된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무용가 최승희는 당찬 성격에 김일성에게도 자기 할 말을 다했던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우리나라 무용 역사에 끼친 영향은 상당히 비중 있기에 지금까지도 화자되는 인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귀한 자서전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최승희라는 무용가가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최승희자서전 #복각본 #최승희 #소명출판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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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서전을 보는 일은 그 사람의 진면목을 오롯이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러것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과 마주한 본인이 바라본 자기 삶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니 만큼 조금의 가식이나 허위가 있을지라도 대부분 그 사람을 이해하고 다가가는데 무리함이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그랬다. 자서전을 쓰면서 자신의 좋은 면만 말하지 않고 드러내기 두렵고 싫은 것에 대한 이야기도 거침없이 해야만 한다고...
그러한 의미를 세상에 출판되는 다양한 자서전들을 투영해 보면 잘 잘못에 의한 면 보다는 오롯이 인간에 대한 다양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래전 우리의 기억속에 사라진, 아니 그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최승희, 그녀의 삶과 춤에 대한 열정이 녹아있는 그녀의 자서전을 복각해 만나본 책을 읽어본다.

이 책 "최승희 자서전 복각본" 은 요즘의 자서전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른, 마치 옛 고전의 책자들을 대하는 듯 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 글과 자서전이라고 보기 보다는 일기를 쓴듯 한 느낌으로 다가서는 최승희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최승희는 1911년에 태어나고 1969년에 사망한 인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양갈래 시선이 드리운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군 위문공연 참여, 중국 황군 위문공연 등에 참여 해 친일반민족자라는 시선과 함께 조선의 문화, 춤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라는 복합적 시선이 그것이다.
숙명여학교를 다니며 가정의 경제적 파국으로 말미암아 학교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졸업을 한 상황으로 자서전의 처음 운을 떼고 일본 내지로 유학?을 떠나는 <출발전야>, 오빠가 누이에게 주는 편지, 형제에게 보내는 글, 최승희 자신의 춤에 대한 표현력의 분제에 대한 고뇌에 담긴 글, 최승희의 무대, 무희로의 삶에 대한 수 많은 사람들의 관련 글들이 빼곡히 독자들의 눈을 응시하고 있다.
오빠의 권유, 선생님들의 추천 등으로 일본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 입단, 우수한 무용실력으로 조선의 무용에 대한 인식, 여자에 대한 인식 등을 바꿔 놓은 최승희의 도전은 그의 춤이 보여주는 '파격 에서 새로움을 지향하는 의미를 깨닫게 한다.
책을 읽으며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최승희는 현대의 사람도 아닌 일제강점기 전 후 시대의 사람으로 그 시기에 유행했던 책들의 세로 방식의 표현까지는 무리가 없으나 무척이나 많은 한문에 대한 난해함, 또한 글의 폰트가 작아 젊은이들이 아니면 쉬 분간할 수 없는 크기에 대해 난색을 표할 수 밖에 없다.
책의 두께를 늘리는 한이 있더라도 가독성 향상을 느낄 수 있는 크기로 변경했으면 하는 바램도 남기고 싶다.
원형 그대로의 복간이라는 의미를 두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현상에 과연 그대로의 복간이 얼마나 가치를 더할 수 있을지는 묘연하다.

이제는 지난 인물들에 대한 현재 사람들의 이슈화가 문제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결정을 하기 전에 그들이 가진 초심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촛점을 맞춰 볼 수는 없을까?
그들의 행적이 삶의 행적이듯 잘 잘못을 따지고 가릴 수는 있으나 그 행적이 그들의 초심을 변하게 하는 선택이자 결과라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최승희와 같이 춤으로 동양의 리듬을 갖고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지구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 보려던 그녀의 도전, 그로 말미암아 시대의 사상을 넘고 존재의 가치마져 탈속할 수 있게 만든 도전과 파격의 춤을 아마도 직접적으로 보았다면 춤에 대해 무지에 가까운 나라도 어쩌면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최승희, 그녀의 자서전이자 일기와도 같은 느낌으로 전해지는 복각본을 통해 시대상, 인물들의 사상, 흐름 등 다양한 함의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소중한 소장품으로 간직할 수 있기를 권해본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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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자서전> 복각본 / 소명출판

솔직히 말해 최승희라는 이름이 사실 좀 낯선 게 사실이다. 뒤늦게 그녀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알면 알수록 대단한 인물이며 격동의 시대를 의미있는 살았던 신여성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부터 100년도 전인 1920년대 조선의 리듬으로 불린 무용가였다. 이 책은 1937년 초판본 오리지널 복각 한정판으로 그때의 느낌 그대로 재현했다. 때문에 처음 책을 받아보면 세로로 쓰인 글이나 재질의 느낌을 그대로 남긴 탓에 조금 당황하고 어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옛스러운 느낌만으로 시대가 느껴지고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갈 때 마다 당시의 자료 그대로를 살펴보는 느낌이 참 정겹게도 느껴진다. 최초 출간된 형태와 활자를 지금의 시대에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다는 게 참 귀한 경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조선은 여성의 몸으로 기생이 아니고서야 춤을 춘다는 것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런데 최승희는 식민지 조선의 틀을 넘어 무용가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는 최승희는 신식교육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의 덕으로 그나마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2번이나 월반을 하고 남들보다 일찍 졸업했다. 훗날 남매가 모두 월북했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했지만 취소를 당하고 오빠의 권유로 무용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모두의 이목을 받고 파격적으로 일본의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 입단하게 되는 최승희.



이 최승희 자서전엔 20대 후반의 젊은 최승희가 기록되어 있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친일 협력의 도구가 되는 불운을 겪었지만 그 이전의 열정이 살아있는 무용 예술가인 최승희를 우리는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복각본이라는 게 보면 볼수록 상당히 고풍스러움이 묻어난다. 그것 그대로 재현할 순 없지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껴지는 게 내용도 그렇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소장의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념적으로 다소 논란이 여겨지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일단 무용수 최승의 만으로 자서전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좋은 기회라 생각되는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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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자서전 복각본』 잊힌 예술가를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자서전의 복원

소명출판 (펴냄)







오랫동안 잊혀져있던 최승희 무용가(1911~1969). 최승희는 누구인가? 궁금한 분들도 많을 것이다. 먼저 그의 경력을 검색해 보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라는 직함이 먼저 눈에 띈다. 월북한 무용가, 안무가, 문화예술인..... 세계가 사랑한 무용가 최승희. 먼 나라 남미까지 공연을 다녔고 박수 갈채를 받은 여신, 피카소, 가와바타 야스나리 외 많은 문화 예술 지식인들이 인정한 뮤즈이자 예술가 최승희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최승희. 한학자인 아버지 최준현은 딸을 숙명여학교를 보낼 정도로 신식교육에 관심 많은 분이었다. 동기들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2번이나 월반해서 결국 2년 일찍 졸업한 최승희. 남매가 셋 다 월북하는 바람에 최승희의 집은 거의 풍비박산이라고 한다. 다행인지 언니의 자녀가 최승희의 핏줄로 유일하게 남아있다.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했으나, 연령 미달로 입학 취소되자 좌절한 그녀에게 오빠는 제안한다. 무용을 해보라고!!! 당대 사회상을 생각하면 정말 파격적이다. 최승희는 세간의 이목을 받으며 홀연 일본의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 입단하게 된다. 우수한 무용 실력으로 인정받은 최승의는 고국에 돌아와 치승희 무용연구소를 설립하지만 당시 조선인들의 무용에 대한 인식은 어두웠다. 기생이 아닌 여성의 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유교 사회!!!



최승희는 어떤 종목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통 무용을 배우기 위해 권번의 기생으로부터 사사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신여성이자 모던 걸, 패셔니스타인 최승희 개인으로 봤을 때 정말 매력적인 분이다.



이번 신간은 1937년 이문당에서 발행한 판본의 원형을 그대로 복간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1930년대 세로로 된 글자, 한자가 많아서 한자를 잘 모르는 나는 읽기 힘들었다 ㅎㅎㅎㅎ수록사진에 너무나 앳돼 보이는 최승희의 모습, 무용하는 모습, 한복 외에 정말 다양한 복장으로 카메라 앞에 선 최승희의 모습은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물론 친일의 기록, 북한으로 월북한 이후 행적으로 인해 최승희는 긴 시간 동안 대중들에게 잊힌 사람이 되었다. 자발적 친일인지 아닌지 그 유족의 의견분분한데 글쎄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이라고 한다. 아! 최승희 외에도 많은 유명인들의 끝없는 친일파 논쟁, 여전하다....






이념이 다시 강조되는 시대다. 최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문제로 마음이 안 좋다. 남과 북, 좌와 우로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권 행보에 정말 신물이 난다. 나라의 독립을 이끈 인물을 어떤 식으로든 흠집 내기 위한, 이념을 위한 이념, 논쟁을 위한 논쟁이 되어버린 시대에 절망한다.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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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의 리듬, 더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갖고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지구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 보렵니다.
최승희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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