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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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시인이 전하는 불편의 시학
이규리는 사이와 여백을 강조한다. 타인을 위해 비워둔 벤치, 누군가의 뒷모습, 맞물린 대들보들의 간격, 풀꽃들이 피어나는 돌과 돌 사이. 그것들은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 사이를 힘과 욕망으로 채우려고도 하지만, 서로의 존립을 위해서 다소 불편하더라도 그 여백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와 시인에게 힘이 없는 시대이지만, 이규리는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권력의 편이 아닌 불리의 편에 서야 한다고, 그럴 때 보이지 않는 시의 힘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하는 이규리 시인. 그녀가 전하는 불편의 시학이 우리 사회에도 은은한 향기처럼 스며들기를 바란다.
작가정보
목차
- 1부 · 물과 결과 먼 당신과
흐릿하게 보기 17
헛소리들 22
종이는 종이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27
두 개의 저녁 35
불편의 시학 39
뒷모습에 대한 생각 45
낙서하세요 49
다시, 존재하거나 부재하는 56
흐르는 슬픔으로 60
2부 · 부르면 와줄까, 그 슬픔
그 슬픔 1 71
그 슬픔 2 76
시인은 나무를 베지 않는다 80
왜가리가 바라보는 곳은 86
연주와 변주 90
전기스탠드 96
가짜는 유쾌하지만 100
기억 1 104
기억 2 109
기억 3 112
기억 4 114
기억 5 116
기억 6 119
결별하는 시간 123
3부 · 수심은 수심을 모르고
두 개의 초록 131
짧았던 사랑처럼 2월이여 135
풍경 사이의 슬픔 139
나 이곳에서 죽고 싶어 143
수심은 수심을 모르고 147
선물의 의미 사이에서 151
당신은 낙석주의 하시나요 155
보이지 않는 곳에 피어나서 159
그 하루, 정지된 순간 162
빈집과 미안하다 사이에 나는 있다 165
4부 · 당신은 어느 길 위에
어느 생일 이야기 171
오늘도 불안한 당신에게 175
꽃 장식을 한 말 178
저녁 6시, 당신은 어느 길 위에 182
어떤 나무들 187
폐허에는 폐허만 있을까 194
아름다운 등 198
사랑이라면, 불안이여 괜찮다 202
아직도 끝나지 않은 숙제들 208
불편한 진실, 진실한 허구 216
다시 시인이여, 질문하자 226
책 속으로
시와 시인에게 무슨 힘이 있을까 반문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게 저는 당연하
다고 생각해요. 시나 시인에게 힘이나 권력이 생긴다면 더 이상 시와 시인이 아니
게 되는 거지요. 우리는 비관할 필요 없어요. 불안하고 불리하고 불편한 입장에서
비관의 쪽으로 가지 말고 그걸 잘 바라보는 쪽으로 가면 심정적인 힘이 생긴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32쪽
시의 자리도 불편의 자리이며 불편을 껴안는 자리이다. 그 관점은 편안함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해주며 그렇게 쓴 시는 우리에게 묵직한 힘을 준다. 아니라면
우리가 왜 그토록 시에 매달려 있겠는가. 또한 그 힘 역시 노력 없이 나오지 않는
다. 다가가려는 노력, 이해하려는 노력, 사랑하려는 노력, 꽃이 올 때 휘몰아치는
바람과 추위를 견디는 생살들의 시간이 그것이다.
-42쪽
뒷모습은 자신도 손대지 않고 남겨두는 성소 같은 곳. 뒷모습이 일면 종교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실상은 잠시의 체온만 나눈 채 스쳐가고, 남은 곳을
더듬어 우리는 먼 시간을 갈 것이다. 텅 빈 허무가 우리가 찾아 헤매던 진심이라는
것도 알게 할 것이다. 왜 춥고 먼 아름다움을 선택했을까. 말해지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데 기대어 오늘을 산다.
-47쪽
폭력의 반대말을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하나? 대부분 ‘비폭력’ 혹은 ‘사랑’이라 대
답할 것이다. 그 단어들은 원론적이라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폭력의
반대말을 ‘슬픔’이라 하겠다. 폭력은 외부로 향하고 슬픔은 내면에서 작용한다. 종
교나 학습이 강요된 선이라면 슬픔은 자발적 선이다. 슬픔은 상대를 해하려는 방식
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정화하여 사안을 이해하려는 태도이기에 숭고하
다.
-72쪽
보잘것없이 보이겠지만 우리는 견디는 삶에 대해 달리 생각해야 한다. 견디는 자의
위치는 두드러지려는 자리가 아니라 채워주는 자리이며 뽀족하게 날 선 자리가 아
니라 뭉툭한 울음의 자리이다. 그건 곧 아버지의 자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자리이며
권리의 자리가 아니라 책무의 자리라 할까.
-141쪽
출판사 서평
다가가려는 노력, 이해하려는 노력, 사랑하려는 노력
종이는 종이 아닌 나무와 물과 햇빛 등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사랑이 사랑 아닌 미움이나 질투, 의심과 원망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모든 원리에 극과 극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뜻인데요, 저는 이 방식을 제 삶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본문에서
종이가 종이 아닌 나무, 물, 햇빛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사랑은 사랑 아닌 다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가 된다는 인식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이규리는 말한다.
그리고 그 힘을 통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세상 또한 달리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버림받고 상처받는 쪽을 살피는 눈을 얻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시선을 가지고서 대상에 다가가려 노력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사랑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들은 우리에게 묵직한 힘을 주며, 생소한 기쁨을 준다. 이는 편안함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낯선 경험이다.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냐고요?
자신은 바꿀 수 있지요
시와 시인에게 무슨 힘이 있을까 반문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게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시나 시인에게 힘이나 권력이 생긴다면 더 이상 시와 시인이 아니게 되는 거지요. 우리는 비관할 필요 없어요. 불안하고 불리하고 불편한 입장에서 비관의 쪽으로 가지 말고 그걸 잘 바라보는 쪽으로 가면 심정적인 힘이 생긴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본문에서
종종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시에 무슨 힘이 있느냐고. 이규리는 이 말을 부정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시와 시인에게 힘이나 권력이 생긴다면 더 이상 시와 시인이 아닐 거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시에 힘이 없다고 한들 비관할 필요가 없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문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규리는 “적어도 자신은 바꿀 수 있다”라고 답한다. 문학에는 우리 삶을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수많은 방식들이 담겨 있다. 당신이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당신의 슬픔과 고통을 위해 문학은 봉사한다. 그로써 당신은 고통 너머의 삶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슬픔은 남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슬픔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25년간의 기록들
종교나 학습이 강요된 선이라면 슬픔은 자발적 선이다. 슬픔은 상대를 해하려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정화하여 사안을 이해하려는 태도이기에 숭고하다.
-본문에서
이규리는 폭력의 반대말이 슬픔이라 말한다. 슬픔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피어나 그 자신을 정화한다. 그래서 슬픔은 자발적인 선이다. 이규리는 폭력의 눈이 아닌 슬픔의 눈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본다. 문학에 뜻이 있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난 언니를 기억하며 개인적인 슬픔을 되뇌고, 안타깝게 생을 달리한 아이들을 위해 애도의 시를 전해주기도 한다.
이규리가 슬픔을 강조하는 것은 시의 바탕이 슬픔이기 때문이다. 견디는 일이 약자의 소임인 세상에서 우는 사람의 자리를 남겨두고 비워두는 일, 그 마음이 시의 마음이자 윤리라는 것을 이규리는 섬세한 배려의 말들로 전하고 있다. 시와 삶이라는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 그 문장들을 천천히 거닐어보기를 권한다.
보잘것없이 보이겠지만 우리는 견디는 삶에 대해 달리 생각해야 한다. 견디는 자의 위치는 두드러지려는 자리가 아니라 채워주는 자리이며 뾰족하게 날 선 자리가 아니라 뭉툭한 울음의 자리이다. 그건 곧 아버지의 자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자리이며 권리의 자리가 아니라 책무의 자리라 할까.
-본문에서
기본정보
ISBN | 9791189467869 |
---|---|
발행(출시)일자 | 2023년 05월 25일 |
쪽수 | 232쪽 |
크기 |
120 * 188
* 19
mm
/ 381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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