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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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작가의 말
나를 스치거나 관통한 모든 문장과 소리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목차
- 제1부
잠귀 / 가는귀 / 소리들 / 고장 난 피아노 / 이명 / 손톱을 먹고 자라는 꽃에 대한 이야기 / 오동잎 한 잎 두 잎 / 환절기에 듣는 동화 / 창고의 문 / 오블리비아테 / 중첩 / 슬픈 사과
제2부
이 냄새의 기원 / 당신의 코사지, 우리는 / 싹이 파랗다 / 울어라 우크라이나 / 각다귀전 / 군계일학 / 검은 비닐봉지의 추억 / 신각다귀전 / 골몰과 골똘 / 전설 / 아르페지오 /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제3부
또 다른 관점으로 / 전망 좋은 곳 / 종이 인형 / 갑자기 / 소행성 / 이상한 나라에 온 / 풋잠을 말아 피우고 금성엘 간다 / 이상한 나라에 온 / 철이 들다 / 난간 / 시들시들 / 11월의 밤 / 말일
제4부
만첩홍도 / 살랑, 봄 / 변동림 / 시든 꽃 / 너의 이름 / 초설에게 / 슬리퍼 같은 / 음력 8월 / 먼지들 / 소설 / 반성과 공상이 따르는 가벼운 슬픔 / 손을 꼭 쥐면 / 십장생
작품 해설 : 어둠을 살피는 마음의 지평-이병국
추천사
-
정온 시인의 시집에서는 눈에 익은 얼굴들이 찾아와 귀에 익은 안부를 묻는다. “아이는 앙 울고 까르르 웃”(「잠귀」)고, 건기경보 3월인데도 아이들이 깔깔 웃는다. 할미꽃이 피고 꽃댕강이 지는 봄밤에 어디선가 쇠부엉이가 울고, 오동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 귀뚜리가 운다. 쓰윗 쯔윗 울며 날아간 동박새의 울음이 나뭇가지에 걸려 울리고, 달이 뜨자 각다귀들이 서로 잡아먹을 듯 달라붙어 교성을 지른다. “죽은 할머니죽은고모죽은아버지죽은엄마죽은동생죽은 봉선이 언니 봄밤에 비명을 지르”(「소리들」)고, 캄캄한 밤에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며 “무서운이야기를해줄게 무서운이야기를해줄게에”(「환절기에 듣는 동화」)라고 말한다. 축축하고 컴컴한 동굴에서 얼굴바위들이 소리 내어 구르고, 망자가 그토록 싫어하던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에서 크게 운다.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오”(「갑자기」). 무거운 차이콥스키와 어두운 베토벤과 가벼운 모차르트의 음악도 들린다. 시집이 내는 소리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어둠과 밝음을, 우연과 필연을, 불안과 평온을, 무서움과 안도를, 슬픔과 기쁨을, 그리고 함몰과 구원을 경험한다. 우리의 생은 얼마나 견고하게 겹겹으로 둘러싸여 있는가.
책 속으로
소리들
애기동백 꽃송이째 떨어지고, 그에 휘둥그레진 동박새 쓰윗 쯔윗 날아간다 가지에 걸린 울음은 쯔윗 쓰윗 동박새를 쫓지 못해 안달이어서 소리는 꼬리를 떨며 오래도록 귓바퀴를 돈다
두꺼운 표지 빛바랜 표지 습기를 먹어 우둘우둘한 표지 내용이 궁금하고 귓속이 아릿하고 심장이 뛰는 그 표지를 넘기면
십 년이 단번에 가고 그렇게 열 번쯤 또 지나서
광학렌즈를 눈에 댄 이가 달그락거리는 정강이뼈를 들고 나를 부른다
생활의 반대편은 늘 어둠이 고이는 정원
죽어가는 노루의 충혈된 눈처럼 할미꽃이 게슴츠레 피고 홍가시나무 아래 꽃댕강이 지는 봄, 쇠부엉이가 뜬금없이 울어
죽은 할머니죽은고모죽은아버지죽은엄마죽은동생죽은봉선이 언니 봄밤에 비명을 지르더니 꽃상여가 조용히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몽글몽글 피기 시작한 하얀 아카시아꽃에서 이상한 분 냄새가 났다
하늘 한편 흰 달이 켜진다
바스락바스락 자신의 뼈를 끌어안고 누운 마른 홑청 같은 이름들
하나씩 들추어 불러본다
골몰과 골똘
뜻밖의 문장을 받아 적었는데
어떤 존재들, 색과 무게를 떠난 그들이 가시권 바깥에 빙 둘러서서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던 중이었는데, 그중 발을 헛디딘 문장 하나가 애써 다가온 내 생각 안으로 미끄러졌던 것, 그걸 용케 백지 위로 끄집어내었던 것
불현듯 목소리를 실었네 음계의 구석에 고인, 떠나온 세계를 염려하여 읊조리는 기도 소리, 그중 흥에 취한 가락 하나, 눈물을 흘리며 소리 높여 노래 부르는 것을 내 속에서 가늘게 떨리고 있던 울대가 깊숙이 손을 집어넣어 그 가락을 잡아채어 데려온 것이라
골똘의 아비는 골독, 골독의 아이를 가진 키 작은 아내는 두상이 큰 골똘을 낳지 못해 고생하다 이틀 만에 해산을 하고는 죽고 말았네 그 후 골독은 재취를 하지 않고 몇 년을 젖동냥으로 어린 골똘을 키우다 그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지 그리하여 배가 고픈 골똘은 오갈 데 없이 거리를 떠돌며 노래를 하며 구걸을 하였던 것인데, 배운 게 쌍욕밖에 없어 아무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고 하네 그런 골똘의 새까만 귀를 잡아채어 데려온 이가 골몰이라네
그리하여
어린아이가 정신없이 놀고 있는 뒤통수같이 돌올한 게 골똘이라 하고, 한 가지라도 붙잡고 푹 빠져야 세상 살 만하다 하는데 그러다 보니 늘 여유가 없는 것이 골몰이라네
이상한 나라에 온
키우지 뭐든
앵무새금화조앙고라공작개구리병아리오골계장미봄이고여름이고장미,
빠알간 장미 옆에 하얀 몰티즈
여인네들은 일한다 끊임없이 일한다 악착같이 일한다
빨간 동화를 사기 위해 늘 바쁘고 늘 말을 끊고
잠도 안 자지
금요일이네 저녁이네
갖은양념으로 맛을 낸 음식에 장미 꽃잎 갈아 넣고 식탁을 차리지
어때?
불타는 저녁이구먼
세상을 돌아 식탁에 온 그가 머리의 물기를 털며 만족한 웃음을 짓는데
온다 드디어 온다 먹으며 눈짓 발짓
개처럼닭처럼토끼처럼앵무새처럼햄스터처럼열대어처럼 오물거리다 씹으며 짖으며 꼬리를 친다
휴일 아침이 오른쪽 창 앞에 느지막이 배달되고
새로 산 개에게 아침을 준다 새 옷으로 갈아입힌다 야외로 산책을 나간다
어때 좋지? 자 달려 달려봐, 맘껏 달리라구
48시간 빨간 동화가 끝나고
키우지 뭐든
집을 키우고 정원을 키우고 장미를 키우고 그 옆에 하얀 몰티즈, 착하지
출판사 서평
캄캄한 밤, 어디선가 낯설고도 낯익은 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귀 기울이다 보면 불안에 잠식당한 자신을 외부의 내가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설화에서나 들어봤음 직한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지기도 하고 폭력적 현실이 가감 없이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기도 하다. 이를 단순히 환청, 환각, 환시 등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은 로즈메리 잭슨이 『환상성:전복의 문학』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환상적인 것은 기표와 기의 간의 분리이자 현존을 부재로 대체함으로써 비의미화의 영역, 즉 죽음을 끌어들여 그것을 극복하려는 움직임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죽음은 존재의 상실이라기보다는 존재의 불완전성으로 말미암아 욕망을 상실하게 된 어떤 상태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존재는 자신을 상실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정온 시인의 시에서처럼 주체의 불안을 야기하는 내적 풍경의 양태로 재현되기도 하며 존재를 둘러싼 세계와의 불화를 극화된 형식으로 표상되기도 한다. (중략)
정온 시인의 이번 시집의 주된 정조를 어둠이라 보았다. 그 어둠 속에는 뜨겁게 빛을 발하는 붉음의 정념이 깃들어 있다. 일견 자조적이기도 하고, 자학적인 측면도 없지 않지만 어설프게 환한 빛으로 꾸민 자기 위안으로서의 기만을 수행하는 것보다 불완전한 그래서 불안한 존재의 심층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통합된 개인으로서의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상황에 내몰리며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불안에 휩싸이는 분열증적 주체일 따름이다. “불쑥 하수구 맨홀 바닥 같은 후회와 미련이 목젖까지 차올라 씻어내자고 독주를 붓고 붓”지만 “가진 것 모두 걸”어본 적 없이 다짐만을 반복하는 무력한 주체(「소설」). 정온 시인은 어쩌면 자신을 자각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라고 하는 듯하다.
- 이병국(시인, 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기본정보
ISBN | 9791130820040 |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12월 30일 | ||
쪽수 | 128쪽 | ||
크기 |
129 * 205
* 14
mm
/ 32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푸른사상 시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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