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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봉 저자(글)
책과함께 · 2006년 12월 20일 (1쇄 2005년 10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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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했던 우리말 사전 탄생기를 전해주는 책. 우리말 사전이 만들어지기까지 50년 동안의 길고 험난했던 전 과정을 최초로 집중 조명하였다. 저자가 발로 뛰어 얻은 수많은 자료 및 사진들을 통해 사전 편찬에 얽힌 사건과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민족사의 격동기에 오로지 우리말 사전 편찬 하나에 온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의 좌절과 고통, 그리고 완성의 기쁨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새롭게 비춰주며, 우리말 사전의 탄생이 진정한 우리말과 우리글의 탄생이었음을 보여준다.

작가정보

저자(글) 최경봉

최경봉
196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자랐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어휘의미론을 전공하여 1993년에 〈국어 관용어 연구〉로 석사학위를, 1997년에 〈국어 명사의 의미구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한국어연수부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으며, 1995년 같은 연구소 국어사전 편찬실에서 사전 편찬원으로 근무하였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국어학을 가르치고 있다. ‘어휘’와 ‘문체’를 통해 인간의 정신구조를 살피는 연구를 해오면서 《관용어사전》(공저), 《국어 명사의 의미 연구》, 《우리말의 수수께끼》(공저), 《한국어가 사라진다면》(공저), 《영어 공용화 국가의 말과 삶》(공저), 《우리말 오류사전》(공저), 《우리말의 규범생성문법 연구》(공저) 등을 저술하였다.

목차

  • 책을 시작하며_근대어의 탄생
    다시 태어나는 모국어
    근대적 언문일치의 시작
    국문으로 격상된 언문
    식민지가 된 조선과 언어민족주의

    1장 사전의 탄생
    1.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된 원고뭉치

    2. 〈조선말 큰 사전〉 첫째 권 출간!
    첫 번째 결실
    사전 편찬에 인생을 건 사람들
    국방 헌금은 왜 조선어학회에 기부외었을까

    3. 표준사전이란?
    조선어학회, 우리말 교육의 설계자
    두 번의 출판기념회가 갖는 의미
    또 다른 사전, 〈표준 조선말 사전〉의 발간

    4. 사전편찬, 누가, 왜, 어떻게 시작했나?
    사전 편찬의 첫걸음
    신문도 주목한 사전 편찬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우리말 사전
    조선인을 위한, 조선인에 의한, 조선어사전
    조선어사전의 권위를 만들어가다
    사전편찬회 108명 발기인
    조선어학회를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

    2장 길을 닦는 사람들
    5. 한발 앞서 사전을 말하다
    이봉운, 전통 문법학의 그릇에 근대 문법학을 담다
    지석영, 종두를 뱁우기 위해 조선어를 연구하다

    6. 대한제국의 아카데미 프랑세즈, 국문연구소

    7. 주시경과 조선어 교사들
    어문 운동의 탁월한 전략가, 주시경
    백년지대계를 국문으로 설계하라
    조선어 교사 심의린, 사전을 펴내다

    8. 식민지 지식인들의 모임, 광문회와 계명 구락부
    광문회, 우리말 사전의 초석을 쌓다
    계명구락부, 조선어학회로 가는 다리를 놓다

    3장 사전의 모습
    9. 세상 속지식을 모두 모아라
    옛말은 내버릴 것인가?
    조선말의 총랑을 찾아서
    어디까지가 새말인가, 새말 규정하기
    시골말 캐지 잡책의 성공, 자원봉사지의 힘!
    사전 편찬지를 괴롭게 한 전문어
    모아놓은 어휘들을 어떻게 배열할까?

    10. ‘서울의 중류 계층’에서 사용하는 말’이 표준어가 된 까닭
    표준어 선정이 끝이 아니었다
    표준어, 언어 획일화의 문제
    표준어의 협동적 애용을 촉구하다 : 조선어학회 표준어사정위원회의 활동

    11. 단어의 뜻을 정하다
    조선어를 조선어로 설명하다
    단어의 의미는 그 단어가 쓰인 용례로부터 나온다

    12. 최대의 난관, 철자법 논쟁
    혼란의 시작
    철자의 통일이 민족정신의 통일이라 믿었다
    온 조선의 관심사, 철자법 토론회
    문학인들, 조선어학회를 지지하다
    격렬했지만 지루했던 논쟁


    4장 좌절과 전진의 세월, 30년
    13. 사전 원고에 얽힌 사람들
    상하이에 잇는 김두봉을 찾아 길을 떠나다
    개성에 사는 이상춘, 그의 혼이 담긴 사전 원고를 기증하다
    문세영, 최초의 조선어사전을 간행하다

    14. 후원자가 없었다면?
    사전편찬후원회의 재결성
    조선어학회만의 독립건물이 생기다
    출판업자들의 활약

    15. 가다림, 탄압, 무관심, 좌절
    지난한 사전 편찬, 사명감만이 살길이다
    수양동우회와 흥업구락부 사건의 충격
    이 세상에 조선어는 무용
    서울 거리는 카키 일생 : 조선어사전 편찬회 상무워원 ‘신명균’의 자살

    16. 드디어 원고 완성
    총독부는 왜 조선어사전 출판을 허가했는가
    일본의 식민지 언어 정책이 궁금하다
    조선어학회 사건의 의미

    조선어학회 사람들
    17. 서구 지식의 세례를 받다
    기독교와 조선어학회
    조선어학회의 해외 유학파들
    최현배와 이희승

    18. 민족이 곧 신앙
    대종교와 조선어학회
    우리말의 기원을 보는 눈: 주시경과 김규식의 시각
    주시경의 또 다른 모습들

    19. 좌.우파의 지지를 고루 받다
    독립운동 세력과 조선어학회
    이념을 넘어
    안재홍과 이극로

    20. 북으로 간 문법가들

    책을 마치며 : 통일 사전을 기다리며
    우리말 사전의 출간이 마무리 될 때까지
    〈큰사전〉 이후의 사전
    우리말의 새로운 탄생을 꿈꾸며

    지은이의 말
    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 속으로

“이 사전 원고는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홍원에 가져갔던 것을 이른바 피고들이 고등법원에 상고하게 되므로 증거물만이 먼저 서울로 발송되었던 것인데 작년 9월 초순에 경성역 창고에서 이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원고를 쉽사리 찾게 될 때 20여 년의 적공(積功)이 헛되이 돌아가지 않음은 신명(神明)의 도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매 이 원고 상자의 뚜껑을 여는 이의 손은 떨리었다. 원고를 손에 드는 이의 눈에는 눈물이 어리었다. 그리하여 그 이튿날부터…….” -1장 사전의 탄생 중, p39 《옥스퍼드 사전》 편찬 시 문헌 용례의 수집 과정에서 자원봉사자의 지원을 받았다면, 《조선말 큰 사전》은 방언의 수집 과정에서 많은 자원봉사자의 지원을 받았다. 조선어학회는 당시 조선어 교사들에게 가장 권위 있는 어문학회로 인식되었고 또한 조선어 교사들 중 조선어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와 같은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3장 사전의 모습 중, p 166 “언문(言文) 연구의 노장인 모 씨가 총독부 편찬의 《조선어사전》에서 ‘가리마’를 찾다 찾다가 지치어 떨어지어서 “원 그처럼 통속적으로 날마다 부녀자들이 머리 빗을 적마다 쓰는 ‘가리마’도 없으니, 그런 거지 같은 사전이 어디 있단 말이냐?”고 역증을 내었다는 것은 유명한 화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하나 그 사전에 그 말이 없음이 아니라 못 찾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갈이마’로 실린 까닭이었습니다.” -3장 사전의 모습 중, p208 “큰 목적은 사전 편찬에 있었어요. 사전 편찬의 기초 작업으로 철자법 제정위원 18명을 선정했지요. ……이 18명이 각각 연구를 하면서 매달 모이는 정기 연구발표회 이외에 1주일에도 한두 차례로 자주 모였죠. 서로 토의를 해보니까 문젯거리가 여간 많이 생기는 게 아니에요. ……실제로 그런 위원회를 해보니까, 서울서도 하려면 할 수가 있지만, 하루 이틀에 해결날 문제도 아니고 여러 날 계속해야 되는데, 서울서는 이틀을 해보더라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자기 개인의 일로 빠지는 사람이 생겨 도대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좀 옹골찬 회합을 가져야겠다. ……제1독회는 개성에서 가지기로 했어요. (중략) 토의할 때는 육박전으로 서로 잡아 두드릴 듯 극성을 피우다가도 다 결정을 해놓고는 서로 허허 웃고 했어요. ……그래서 된 것이 ‘조선어 철자법 통일안’ 즉 지금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입니다.” -3장 사전의 모습 중, p216~217 1934년 윤성용이라는 보통학교 교사가 어린이들의 조선어 과목에 대한 흥미도를 조사하였다. 이 조사 보고서를 통해 조선어의 존재 의미에 대한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사람이니까 조선어를 좋아한다는 14명의 대답보다 이 세상에 조선어는 무용(無用)이라는 세 명의 대답이 흥미를 끈다. 일본어 상용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상황에서 조선어에 대한 조선인의 인식도 점점 바뀌게 된다. ……일상생활에서조차 조선어를 말하고 쓸 수 있는 기회가 급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10년을 넘게 지속된 사전 편찬사업이 마무리되어갈 시점에 조선의 언어 상황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4장 좌절과 전진의 세월 중, p282~284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숨 막힐 듯한 나날이 지나갔고 선량한 센징(조선 사람)에서 한또징(반도인)으로 패를 바꾸어 단 서울 거리는 카키 일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많은 시민 중에 환산 이윤재 선생도 한몫 끼어 유난히 두터운 근시안경에다가 볼품없어 보이는 그 작달막한 체구에 카키색 국민모에 국민복을 걸치고 안국동 자택에서 나와 제동, 종로 등 거리를 유령처럼 걸어 다니셨다. 일찍이 육당 댁 문전에서 망곡하던 그분도 하는 수없이 이러한 굴욕의 차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의 파쇼적 통치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조선어학회가 봉착한 위기의 실체를 살펴볼 수 있다. ……조선어의 발전을 위해 사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언어로나마 조선어를 보존하기 위해 사전을 만드는 상황이 되면서, 대중적 언어 운동 단체로서의 조선어학회는 실질적으로 와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4장 좌절과 전진의 세월 중, p287~290 “그래요. 배로 싣고 와서 인천항에 도착했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미국 컬럼비아 대학을 나온 정태진 선생이 영어를 잘해서 나와 함께 갔지. 그런데 낯선 사람이 종이를 만져보고 잉크통을 들여다보고 그래. 그때는 ‘쌩쌩이 판’이라고 해서 ‘쌩’하고 물건을 가져가버리면 다 가기 것이 되거든.

출판사 서평

이 책의 특징과 내용 (1) 최초로 집중 조명한 우리말 사전 편찬, 그 50년의 역사! 한글날이 더 이상 국경일이 아니며, 종이사전 대신 인터넷 세대가 즐겨 사용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각종 사전 페이지에서도 영한사전이나 영영사전에 비해 그 배열 순위가 밀려 있는 국어사전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마치 공기처럼 생각하고 사용하는 우리말과 글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담긴 책 《우리말의 탄생》은 우리말 사전이 만들어지기까지 50년 동안의 길고 험난했던 전 과정을 최초로 집중 조명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민족사의 격동기에 오로지 우리말 사전 편찬 하나에 온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의 좌절과 고통, 그리고 완성의 기쁨이 담담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저자가 발로 뛰어 얻은 수많은 자료 및 사진들은 이 책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이 자료와 사진만으로도 사전 편찬에 얽힌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질 것이다. 1907년 대한제국의 아카데미 프랑세즈라고 할 수 있는 국문연구소 설립부터 1957년 조선어학회의 후신인 한글학회 《큰 사전》 총 6권의 완간에 이르기까지 50년에 걸친 사전 편찬사는 바로 우리 근현대사를 새롭게 비춰주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2) 근대의 시작, 사전은 어떻게 근대를 만들었나? 표준어란 아주 오래된 규범 같이 느껴지지만, 실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신생 언어 규범’이다. 이런 표준어가 어떻게 동서를 막론하고 각국의 근대를 만들어냈는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국가 체제가 질서 있는 의사소통 과정 속에서만 유지, 발전될 수 있다고 할 때 근대 민족국가는 모국어의 규범화에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모국어 문법서를 발간하고 모국어 사전을 편찬하는 것과 같은 일은 규범화의 시작이면서 결과였다. 비록 서구와 시간차는 있었지만, 우리 역시 국가적으로나 전 사회적으로 말의 규범화 작업은 중요했고, 이를 집대성한 결과물인 사전 편찬은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문제는 우리 역사에서 근대 민족국가로 나아가는 이 시기가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시기이자 동시에 종속이라는 불행의 씨앗을 키우는 시기라는 점이다. 한일병합 이후 근대 민족국가의 수립이라는 목표가 사라지자, 우리말 연구와 정리 사업의 방향은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족혼을 지키고자 하는 강렬한 의식이 우리말 사전 편찬사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식민지 지배를 받던 시대, 조선어 규범화와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한 일이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받으며 시작될 수 있던 데는 ‘언어 민족주의’라는 이념의 힘이 크게 작용하였다. 결국 조선어사전은 우리 민족이 식민 지배 하에서 마지막까지 지켜낸 우리말을 집대성한 결과물인 셈이다. 그 작업이 해방 후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현재의 우리의 생각과 정신을 표현해내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말 사전의 탄생이 진정한 우리말과 우리글의 탄생이었음을, 그리고 우리말 사전이 탄생했던 시기가 근대 민족국가가 탄생하고 몰락하고 재건되던 시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3) 사전 편찬을 위해 인생을 다 바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국문 정리의 방향을 잡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 이봉운과 지석영, 이능화와 국문연구소 사람들. 근대 국어학의 대부 주시경, 직접 사전을 편찬했던 조선어 교사 심의린, 사전 편찬사업에 뛰어든 식민지 지식인들의 모임인 광문회와 계명구락부 사람들……. 비록 완성된 형태의 사전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했으나, 우리말 사전의 기초를 위해 평생을 다바친 사람들이다. 이들의 노력을 밑받침 삼아 사전 편찬을 하려던 김두봉, 평생 모은 사전 원고를 조선어학회에 기증한 이상춘, 대사전이 아니긴 하지만 최초의 조선어사전이라 할 수 있는 사전을 펴낸 문세영, 108명의 발기인을 모아 편찬사업의 시동을 건 이극로, 수양동우회와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초토화된 조선어학회의 추락을 지켜보기 힘들어 자살한 신명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윤재 등 조선어학회 사람들, 조선어학회 정신을 이어받아 끝까지 사전 편찬을 위해 노력한 정태진, 김병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만큼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 사전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었다. 그들에게 사전 편찬은 힘들게 캐낸 원석을 가공하여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작업이었으리라. 그 보석을 엮어내는 일의 흥미로움이 그들을 사전 편찬의 길로 들어서게 했을 것이다. 그들의 사전 편찬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들이 만든 우리말 사전이 땀과 피가 섞인 노력의 결정체이자 그들의 희로애락이 모두 묻어 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4) 우리말의 권위를 세우다 근대적 소통구조를 확립하기 위한 모국어 정리 사업의 역사가 곧 사전 편찬사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 과정에 당대의 지식인들 및 그들과 이해를 같이 하는 부르주아들의 광범위한 참여 속에 국가의 지원으로 모국어 정리 사업은 이루어지고, 모국어 정리 사업의 꽃이었던 사전은 이처럼 다수의 참여 속에서 그 권위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사정과 달리 식민지배라는 특수 상황에서 사전 편찬을 진행했던 우리의 경우는 어떻게 사전의 권위를 세울 수 있었을까. 모국어 정리의 결과로 사전을 펴내는 것이 아니라 사전을 통해 모국어를 정리한 것이 우리말 사전 편찬사의 특색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취지에서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을 위한, 조선어사전’을 만들기 위한 조선어편찬회가 조직되고, 편찬사업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민족정신을 내세운 조선어학회가 좌?우파의 고른 지지를 받는 독립운동 단체로 인식되어 민간단체에 불과한 조선어학회의 사전이 민족의 사전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또한 사전편찬회의 결성으로 이 사전의 의미를 집중 조명한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같은 조선어 신문들 역시 그 필요(통일된 어휘 지침 필요, 문맹 타파로 인한 독자 수 상승 및 판매 증가로 인한 사세 확장)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우리말 사전의 권위를 단단하게 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사전 편찬을 위해 모국어 정리를 단행하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울의 중류 계층이 사용하는 말’이라는 규정으로 표준어 기준을 정함으로써, 어휘의 미세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한 지역 혹은 한 계층의 말로 대체해버리는 것은 표준화 과정의 폭력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어학회의 표준어 사정을 반드시 언어의 단순화 과정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모국어 정리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전을 통해 정리를 시도했던 우리의 특수한 사전 편찬 방향 때문에 조선어학회의 표준어 사정은 어휘 간 미세한 의미 차이를 규명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 학술단체가 이 일을 진행했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조선어학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말 사전 편찬은 지식인들만의 사전이 아닌 조선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관심을 갖고 호응을 보내는 민족 사업이 되면서 그 권위까지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5) 왜 지금 사전 편찬의 역사에 주목하는가? 분단 60년이 되는 2005년, 남북한은 그동안 갈라졌던 말을 《겨레말큰사전》이라는 하나의 사전에 담기로 결정했다. 1945년 이전 우리 선조들은 수십 년의 노력 끝에 우리말의 약속 체계를 만들어놓았다. 그 세월 동안 남과 북 각자의 필요에 따라 맞춤법을 바꾸고, 표준어를 바꾸고, 우리말을 다듬고 고쳤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말의 유지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진 결과물들은 차이점보다도 공통점이 절대적으로 많다. 《겨레말큰사전》편찬위원회가 만드는 사전은 ‘통일사전’이자 ‘민족어사전’이 될 것이다. ‘통일사전’은 통일을 대비한 소통을 위한 언어 규범의 제정을 위해 ‘인정’과 ‘조정’이 필요하고, 어휘의 계통과 시간적 선후, 지역적 분포를 따지는 연구와 조사는 ‘민족어사전’을 위해 필요한 미덕이다. 근대 우리말 사전의 탄생과 함께 우리말이 재탄생되었다면, 통일사전의 탄생과 함께 우리말은 제3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의 새로운 탄생이 통일조국과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바로 우리말 사전의 편찬사를 지금 주목해야할 이유이다. (6) 《큰 사전》을 최초의 국어사전이라고 한 이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조선어학회에서 한글학회로 바뀐 뒤에 완간된 《큰 사전》 전에도 우리말 사전은 출간되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1897년 이봉운의 《국문정리》와 주시경의 ‘국문론’에서 사전 편찬의 필요성이 제시된 뒤부터 1947년 《큰 사전》 첫째 권의 발간까지 50년을 강조한 이유는, 이 사전이 가진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다른 사전들에 비해 이 사전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물이 집대성되었고, 민족적 권위를 인정받은 단체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완간 이후 많은 사전들의 젖줄이 됨으로써 ‘국어사전’으로서 대표성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조선어학회와 《큰 사전》에 얽힌 이야기만 다루고 있지 않은 것은 바로 《큰 사전》의 이런 특징 때문이다.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88991221123
발행(출시)일자 2006년 12월 20일 (1쇄 2005년 10월 09일)
쪽수 391쪽
크기
153 * 224 mm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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