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정보
저자(글) 에세이스트사 편집부
목차
- [에세이스트(2020년 1/2월호) 목차]
문제작가 신작 특집/강대선
중편 수=필/ 변우연 송이순 엄기백 이찬웅
연재)통일 단상/권은민
연재)대성동 자유의마을 풍경/김영란
연재)기억의 자살 기억의 타살/고태현
연재)화가의 목소리/홍성담
평론)특집작가 지정숙론/이상열
신인상/ 김정윤 정원국 최미자 최병란
출판사 서평
모든 인생들은 다 작품이다
어느 여름날 아침에 한 선배와 개울을 건너 산책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왜 글을 쓰느냐고 물었는데 퍽이나 난감한 질문이었다. 바람만 스쳐 지나가도 물씬 감정이 묻어나던 십대 후반, 대답이 궁색했던 나는 언젠가 많은 글을 써본 뒤에야 왜 글을 썼는지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얼버무렸다. 그때 그 선배는 자신은 글을 쓰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냥 삶이 하나의 문학 작품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수없이 많은 나날들이 언젠가는 가득 채워져야 할 원고지처럼 부담스러웠고 전개와 갈등과 대단원이라는 교과서 학습 내용이 머릿속을 스쳐 혼란스러웠지만 그런 삶이 가능하다면 정말 멋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참 풋풋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날 아침 공기는 맑았으며, 미세한 바람은 신선했고, 강을 에워싼 제방 위에는 오래된 고목들의 초록 이파리들이 풍성했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긴 세월을 흘려보내고 생각해보니 주변의 모든 인생들은 다 작품이 되어 있었다. 누구의 삶이든 예외가 없다.
유기웅의 <노신사> 중에서
■<나에게 쓰는 편지>가 이제는 가장 주목받는 코너가 되었다. 전에는 이 코너에 싣겠다고 청탁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형식이 매번 똑같았다. ‘그대여’ 혹은 ‘너는’ 하는 식으로 자기가 자기를 불러놓고 뭐라고 하는 식인데 그게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재미가 없었다. 대개의 수필이 다 고백적인데 구태여 호명까지 하면서 이를 말이 뭐란 말인가. 하여 들어온 작품 중에 조금 더 치열하고 절박한 글을 이 코너로 뺐더니 호응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김병기의 작품을 싣는다.
■<문제작가 신작특집>에 유기웅의 작품 5편을 소개한다. 등단한 지 1년 된 신인이지만 그의 문학 이력은 꽤 길다. 해양대학을 나와 배를 타다가 문학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 유학길에 올랐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원어로 읽고 싶어 구태여 독일로 갔다는 사람이다. 몇 년 독일어를 익힌 후 독일어본 ?데미안?을 사들고 집에 가 펼쳐드는 순간 눈물을 주체할 수 없더라는 얘기를 언젠가 그에게서 들었다. 주베 사라마구, 안나 반티 등 오십 대에 첫 작품을 발표하고도 문명을 날린 이들은 많다. 문학에는 지각이 없다. 유기웅의 등장으로 우리 수필계의 문법이 얼마큼은 달라질 것이라 기대한다.
■<화제작가 신간특집> 김베로니카의 신간 ?들녘에서 부르는 노래?가 나왔는데, 작품 대부분이 본지에 연재되었던 것이어서 ?작가의 말?과 김종완의 김베로니카론을 중심으로 엮었다. 김베로니카론은 분량이 원고지 128매나 되는데 본지의 중간 결산이면서 또한 본지의 지향성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판단했다.
■<연작에세이>에는 유병숙의 어머니 연작이다. 에세이스트의 열독자라면 이 작가를 기억할 것이다. 본지를 ?한국산문?에 소개해온 평론가이면서 본지 40호에 발표한 작품 ?눈을 뜨고 꾸는 꿈?이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나의 인생 또 다른 길>은 새 연재 코너다. 조광현의 장편 수필은 지난호로 막을 내렸고, 이 코너는 김석권 씨가 연재를 맡기로 했다.
■<창작의 언저리>는 박재완의 포토에세이를 내리고 신설한 코너다. 본지의 또 하나의 중심축으로 재불화가 권이나의 그림과 글로 꾸밀 계획이다.
■<신인상>에 김수현, 송창윤, 이춘희, 한은희, 네 분이 선정되었다. 이번 호만큼 신인들이 개성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싶을 만치 네 분 다 특유의 필법을 보여주고 있다. 에세이스트의 빛깔은 등단작가에 의해 결정될 것이므로 전망이 밝다.
기본정보
ISSN | 17396867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2월 26일 (1쇄 2007년 05월 01일) |
쪽수 | 404쪽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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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아끼는 물건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물건이 있다. 바로 책이다. 하지만 책 중에서 월간호나 계간지 같은 경우는 매달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가 얼마 전부터 접하게 된 이 책은 2달을 거쳐야만 다음 호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마도 아주 천천히 아껴서 읽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처음에 접했을 때 ‘에세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읽어내려 갔지만, 어느덧 나도 이 책을 몇 달에 걸쳐 읽고 나서 조금이나마 ‘에세이’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문학에 많은 장르가 있지만, 그중에서 자주 접해보지 못한 장르이거나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장르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가 접하게 된 에세이의 수많은 글과 이야기는 따뜻한 이웃 주민이 반겨주는 것처럼 글 내용이나 분위기 자체가 따뜻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한 달에 한 권씩 발간되는 여느 월간호나 계간지와는 다르다는 차이점이 분명히 있다. 「에세이스트」라는 처음으로 읽었을 때 낯선 제목으로 다가온 이 월간호는 어느덧 나에게 익숙해져 버렸고 그 익숙함은 다음 호를 기다리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월간지였다. 비록 두 달 후에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기다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호는 가을을 맞이하는 것처럼 풍성한 이야기로 가득 찼다. 마치 가을에 낙엽을 보면 알록달록, 울긋불긋하듯 저만의 단풍 색깔이 다른 것처럼 이번 호에서도 저마다 다른 이야기로 즐거움과 정겨움 그리고 따뜻함을 전해주었던 것 같다. 여기에 실려 있는 글들은 하나같이 막힘없이 줄줄 써내려간 기분이 든다. 그만큼 글과 문장이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다른 소설이나 책을 접할 때면 군더더기를 많이 붙이는 작품도 있지만 ‘에세이스트’에 실려 있는 작품은 일상에서의 일이나 혹은 주변에서 일어난 이야기, 이웃 건너 이야기 등 우리가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거나 관찰하면 엿볼 수 있는 이야기로 실려 있어서 시골의 따뜻함과 정겨움이 느껴지는 글들이기에 더욱 마음 깊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때론 슬픔이 그리고 즐거움이 함께 있으면서 자신만의 생각으로 하나하나 엮어가는 문장으로 글의 완성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고 부담 없이 읽기에도 좋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특집 코너와 함께 ‘이달의 에세이’라는 주제로 실려 있는 글도 좋았다. 「에세이스트」의 전체적인 느낌은 읽어 내려가면서 공감을 이끌어 내고 그 속에서 옛 추억이나 기억을 더듬거리게 하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글도 있지만, 대부분 글이 수필로 쓰였고 그 수필 속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이나 주변의 이야기 그리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즐거움과 따뜻함을 함께 공유해주는 느낌이 들기에 아껴서 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그 글로 표현된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무엇을 말하고 하는지 전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수필로 묶인 ‘에세이스트’는 누군가의 삶은 이러하고 또 누군가의 삶은 저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언제나 바쁘고 지난날을 되돌아 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주 가끔은 「에세이스트」를 통해서 지난날을 조금은 되돌아 볼 줄 알고 지나가 버린 무언가를 놓쳤다면 다시 한 번 기억하며 생각해 낼 수 있는 그런 것을 안겨주는 책이 아닐까 한다. 누구에게나 삶의 깊이나 크기는 다양하고 다르므로 남과 똑같이 살아갈 수는 없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두고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며 책에 담겨 있는 수필들이 무엇을 말해주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정과 희로애락을 모두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고 함께 공감을 안겨주기에 아껴서 읽어야 하는 수필이 많았다. 그리고 그 수필을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기도 하는 것이 「에세이스트」가 아닐까 한다.
처음 펼쳐들면서 만나게 되는 글들이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사막의 모래구덩이에 빠져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스~윽~ 빨려들어가듯이 어느새 푹 빠져들게하는 글들이 시작부터 계속 이어졌다.
등에 혹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누군가를 보며 낙타의 등을 연상하고 이어지는 내용들, 아르헨티나의 거대한 평원 '라스팜파스'를 이야기하며 연암과 이상을 이야기한다.
연암이 그렇게 잘 울던 인물이란것도 알게 되고 드넓은 평원을 떠올리며 아르헨타나로의 여행도 꿈꾸어 보게 한다.
어.쩌.면... 그 너른 평원을 보면서 나도 뭔가 속에서 울컥 하며 연암처럼 목 놓아 울게 되지 않을까 하는 쌩뚱한 걱정도 살짝 해가면서.
에세이스트의 수필들은 일상속 살아가는 누구나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가깝게는 내 이웃이고 내 가족이고 또 누군가에게 들었던 내 지인의 이웃, 가족의 이야기들... 또는 신문 기사나 뉴스에 오르내리던 조금은 먼 누군가의 이야기들과 비슷하다.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의 누구나의 이야기.
내가 체험하지 못한 이야기들이지만 미래에 내가 겪을수도 있고 또는 알게 될수 있는 그런 일들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는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병원을 찾으면 누군가는 아파서 숨쉬기도 힘들고 누군가는 나은 몸으로 환히 웃으며 문을 나서고 어디선가는 찢어지는 아픔을 가득담은 한서린 울음과 통곡, 억울한 심정을 담아 고래고래 높은 언성이 들리기도 한다.
출근길 혜화역 앞 서울대병원 입구에는 간혹 ... 자주 핏켓을 들고 자동차에 호소하는 내용의 글을 써 붙이고 또는 벽에 낙서를 하면서 병원의 잘못과 억울함을 호소하며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인지 책속에 소개된 의료분쟁에 대한 이야기는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를 떠나 누구나의 관점에서 다 각기 다른모습, 생각, 결과들이 보여지는걸 생각하며 살짝 씁쓸한 마음도 생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누구나 좋은 얼굴로 서로 사랑하고 위하면서 살면 좋을테지만 그러기에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 각기 사연도 참 많~다.
눈 웃음 때문에 누군가의 인공수정을 위한 일에 공헌(?)을 한 이야기를 읽으며 내 주변의 아이를 갖지 못해 마음고생하고 병원다니며 애쓰고 힘들어하는 동생들이 떠올라 살짝 먼 산도 바라본다.
소 기르는 이야기에서 한동안 대한민국을 떠들썩 하게 했던 독립영화 '워낭소리'도 다시 떠올려 보게 된다.
뒤편에는 수필 말고도 책을 읽고 나서 쓰는 촌평도 몇편 실려있다.
좀더 다양해진 듯...
무엇보다 이번 에세이스트를 읽으며 가장 날 잡아끌던 내용은 초반에 있던 들녁에서 부르는 노래 '교감' 과 안동사람 안동음식 '연변' 이었다.
어릴적 시골집 어린 새끼 토끼가 너무 이뻐서 한시간 정도 품에 안고 돌아다니다 들어왔는데 조금 지나서 축 늘어져 죽어 있는 걸 본적이 있다.
할머니 말씀이 사람 손을 타서 제 에미가 물어죽인 거라 하셨다.
그 당시 내 기분이 어땠는지는 기억속에 없지만 분명 충격이었을것 같다.
그 이후로 다시는 어미곁의 토끼 새끼를 손으로 만지는 일은 없었으니... 동물을 멀리하게 된 것은 아니고 어느 동물이나 여전히 너무나 좋아하고 이뻐하지만 그 동물의 특성을 알게 되면 조심하게 된다.
교감에 나온 어린 송아지들의 죽음은 그래서 참 안타까웠다.
주인들이 조금만 동물들의 생태에 대해 알았더라면 그 어린 아이들이 그렇게 구슬피 울며 제 어미를 찾다가 스트레스로 죽어가지는 않았을테니.
사람들은 동물에 대해 본인들의 생각보다 너무 단순하고 잔인하게 대하는듯 싶다.
부모마음, 어린아이들의 부모를 향한 그리움은 동물이라고 다르지 않을텐데.
연변에서 느껴지는 우리 말의 참 다양하고 구수하고 정감있음을 느낀다.
어릴적 먹었던 수수부꾸미 맛도 그립고 '첨절 안겠디껴?'라는 안동 방언집을 구입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지방의 방언들은 그래도 얼추 이런 말인가 하는 감이란 것이 있는데 제주도 방언들은 정말 외국어처럼 도대체 뭔 말인가 하는게 참 많다.
그래서 재미도 있고 너~무나 다른 말에 넓지도 않은 땅에 참 다양한 사람들과 말이 있어 참 희한하다 싶기도 하다.
아마도 옛날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등등 다양한 나라로 나뉘어 있던 시절의 말들은 지금은 하나의 땅덩어리 나라지만 그 당시 작은 영토를 소유했더라도 각자 나라의 문화, 말들이 있었을테니 그 속에서도 소통되지 않는 타국의 경계가 있었을것이다.
드넓은 중국에서는 글도 말도 참 많이 달라서 서로 모르는 한자들도 무수하다 하니 우리의 경우만 비춰봐도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들이 늘 비슷한 누군가의 이야기 같지만 참 많이 달라서 볼때마다 새롭다.
2달에 한번씩 받아보는 수필집 에세이스트.
이번호는 2011년 1월.2월호 가 실린 35호다.
소설처럼 하나의 이야기가 다양한 사건들, 사람들이 얽히며 전개되는 한권의 책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룬 이야기들이 짧지만 깊이 있게 다루어진다.
그래서 소설은 한권을 읽기 시작하면 그 끝을 알기 위해 지속적으로 계속 읽어가야 하고 읽는 흐름이 끊어지면 조금은 급한 마음이 들게도 된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짧게 만나게 되는 에세이스트는 단 한편을 읽고도 하루를 음미하게 된다.
그 이야기속의 화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 감정에 나 자신이 이입되기도 하고 때로는 공감하고 반대하고 안타까워하고 함께 행복해 지기도 한다.
앞서 몇권의 에세이스트를 읽으며 내가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내면의 깊이 있는 이야기와 그들의 어린시절, 아픈 상처, 행복한 기억들과 가슴 찡하게 하는 감동도 함께 느낄수 있었다.
이번에도 책을 받아들고 또 어떤 사람들의 일상과 마주하게 될까 살짝 궁금해 하며 기대도 하게 된다.
교회에서 중등부 아이들을 20년간 가르치면서 아이들과 나누었던 여러 이야기들, 친구들이나 회사동료, 지인들과 나누게 되는 내 삶속의 부분들이 나 한사람만의 세계만은 아니라는 걸 다른 사람의 삶을 글로 접하면서 느끼게 된다.
소설이나 기타 다른 책속에서는 느낄수 없는 솔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들.
앞서 몇권의 첫 시작이 어렵게 다가오다 보니 이번에도 시작부터 그대로 가야하나 아니면 살짝 건너뛸까를 잠시 생각하며 첫 내용을 보는데 ^^ 이번에는 다른분의 편안한 글이 시작을 열었다.
그래서인가?
시작부터 뒤로 술술 내용들이 속도감 있게 읽혀진다.
어떤 면에서는 속도가 너무 빨라도 안좋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자식에 대한 기대는 누구나 마찬가지일텐데 그래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세상속에서 조금은 아니 어쩌면 많이 다른 세계안에 속해있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기대와 염려, 사랑, 관심, 애정과 이끌어주려하는 노력의 모습은 제 3자의 입장에서 과연 어떤 방법이 옳을까 생각해보게 한다.
그 가정의 진행이 나름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된듯 싶긴 하지만 아직도 진행형인 어머니와 아들의 삶의 중간 모습에서 글이 마감되어 뒤의 삶에 대한 궁금함이 조금 있지만...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육체의 불편함이나 장애는 마음의 장애와는 비교도 안된다는 말... 그건 당사자가 자신의 육체의 문제를 뛰어넘었을때 정당화되는 말이다.
문제를 문제되지 않도록 뛰어넘는 정신적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고 스스로를 향해 긍정의 소리를 들려주게 된다.
하지만 아주 사소하고 작은 상황앞에서도 무너지고 힘겨워하는 우리의 지극히 연약한 본능앞에서 누구나 긍정으로 살라는 말을 건네는 것은 쉽지 않다.
때로 나 자신 스스로도 너무나 자만하고 지극히 이론에 입각한 말들을 쉽게 하고 있지 않은지...
단 한편의 이야기가 너무나 강하게 나를 끌어당겨서 그 이야기속에서 나도 보게되고 바로 오늘 내가 했던 행동과 말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나에게 너무나 근원적인 답으로 다가오는 동생에 대해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나 거부감이 내가 하는 말을 통해 다른 누군가가 느끼는 것과 같은것은 아니었을지.
내일 오전에 용기내라고 힘내라고 내 마음이 애정이 있어 조금은 불편하고 힘겨웠을 말들을 들려주었을 내 제자이며 동료인 한 청년에게 위로가 아닌 마음의 따뜻함을 담은 문자를 보내려 한다.
누군가가 나 아닌 누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틀린말이라고 한다.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 는 '나는 당신을 내 식대로 오해합니다' 라는 말고 같다고 한다.
나도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내가 누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당연히 있을수 없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누구가에게 너를 이해한다는 말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너의 상황을 조금 알것 같다고 표현하게 된다... 이해라는 단어는 때로 너무나 상대를 아프게 할수도 있는 단어인듯 싶다.
이번호에서는 시작부분의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가 부분적으로는 종교적인 부분에서까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뒤에 이어지는 많은 이야기들이 술술 읽혀지면서도 자꾸만 잔상처럼 따라온다.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고 나를 돌이켜보는 그런 시간을 깊이 가져보게 된 35호였다.
역시나 첫 시작은 김지하님의 글이겠지?
예상하면서 펼쳤는데 내용이 좀 다르다^^
조정은님과의 산중 방담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대화의 내용이야 심오해서 역시나 쉬운 글은 아니지만 앞서 무지하게 어렵고 뒷장으로 넘기기가 너무나 버거웠던 글에 비하면 너무나 편안한 글이다.
서로 나누는 대화들 속에서 옛 조상들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읽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대화를 옆 자리에서 듣고 있는 기분... 대화의 내용을 듣고 있다보면 저절로 대화자들의 이야기 무게에 조용히 귀 기울인채 집중하게 될 것만 같다.
소설이나 여행기 등과는 다른 에세이는 자신 내면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것이 즐거운 기억일수도 있지만 아픈기억, 숨기고 싶은 것일수도 있다.
친근한 관계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속 깊이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지인처럼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읽게 되는 지면속에 그런 진솔한 이야기들이 드러나면 읽어가면서 왠지 글을 쓴 당사자가 내가 잘 아는 친근한 누구인듯 느껴진다.
이번에도 역시 죽은 친구의 무덤을 찾은 이야기나 돌아가신지 1년을 맞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기억속에서 사라져가는 지금의 청소년들은 뭣에 쓰는 물건인고 할 요강 이야기 등등에서 이야기속 인물들을 알게되고 느끼게 된다.
사라져 버린 기억속 이미지들도 되살아나고 누군가의 죽음 이야기를 통해 내 주변의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지인들과 내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같이 오버랩된다.
글 쓰기는 참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고단한 작업을 통해 ... 어떨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글이 써진다고도 하는데 그게 일상적인 일은 아닐테지만... 글 읽기도 쉬운 일은 아닌것 같다.
그저 읽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 아니다.
소설처럼 내용을 느끼고 여행기의 여행지들을 느끼고 그곳을 꿈꾸는 것 이외에 이렇게 사람들의 속 이야기들은 읽고 나면 꼭 내 이웃 누군가의 일을 알게된듯 같이 걱정해주고 아파해주고 축하해주고 반가워하고 나누어야 할 감정들이 같이 생기기 때문에 그냥 책장을 덮어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그 마음들이 이어지기에 또 글 쓰는 이들은 글을 이어가고 읽는 이들은 그 글을 또 읽기 위해 책을 펼쳐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좋은 글들과 읽는 마음들이 계~속~ 이어지길 바래본다.
에세이스트를 두 번째 만났다. 33호 이다.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느낌의 책을 여기 저기 펼쳐 본다.
저번에 읽고 좋았던 김베로카님의 들녘에서 부르는 노래를 다시 보았다.
이번 호에는 녹두 씨라는 제목을 글이 있다.
녹두는 아주 잔 씨앗이다. 녹두는 익으면 바로 터져 버리기 때문에 제때 따주어야 한다고 한다.
녹두 씨앗을 받아 심어 놓고 끊임없이 열리는 녹두에 멀미가 나고 무섭기 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우리 씨앗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다.
우리 땅에 뿌려지는 씨앗들이 이미 우리 땅에서 나온 씨앗이 아닌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종묘상에는 외국회사에서 만들어준 개량종을 판매한 지 오래 되었고, 우리 농가에도 이미 우리 재래종 씨앗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김베로니카님에게 준 씨앗은 은씨 아내의 시어머니께서 물려주신 30년 된 씨앗이라고 한다.
먹지도 않은 팥이나 녹두 등도 일부러 파종해서 씨앗을 계속 받아 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몇 년 전 밀가루 파동 때문에 수입밀 가격이 많이 올랐던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쌀을 자급하고 있는 나라여서 피해가 많지는 않았지만 밀가루를 주식으로 하는 나라가 밀을 자급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배추 파동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일 것이다.
밀가루의 무상 원조로 인해 우리밀의 씨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다시 우리 밀을 살리기 위해 농사를 짓고 있지만 자급률은 1%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씨앗을 보면서 재미있고 사랑스럽다고 표현하는 은씨 아내를 보면서 김베로니카님은 얼마나 농사를 지어야 재미있고 사랑스럽게 느낄까라는 말을 적고 있다.
김베로니카님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농촌의 실정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우리 씨앗을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소중한 글이었다.
에세이스트는 격월로 발행되는 에세이 전문 잡지이다.
김지하님의 특별연재부터 다양한 분야의 많은 소재들을 담백하고 깔끔한 글 솜씨의 저자들을 글로 말끔하게 엮어 주고 있다.
그리고 에세이는 살아있는 이야기라서 좋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먼 동네 이야기를 알려주기도 해서 여러 모로 도움이 되는 책이다.
우리 어머니는 요즘 아이들 동화책을 열심히 옮겨 적고 계신다. 그 이유를 여쭤보니 글을 자꾸 쓰게 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아이들 공책에 빽빽이 적혀있는 글자들을 보면서 어머니께서 읽으실 만한 적당한 책이 없을까 고민을 했는데 에세이스트 한 권이면 우리 어머니 열심히 적고 읽으면서 시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해진다
두달전 처음 접했던 에세이스트는 이번 33호를 받아드니 생각지 못한 반가움이 있다.
그.런.데... ㅋㅋ 지난호 첫 글로 만났던 김지하님의 특별초대글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첫글이다.
역.시.나... 어렵다.
이분은 참 글을 편하게 읽어나가지 못하고 한참을 생각하고 단어을 음미하고 뜻을 찾기 위해 멈추게 한다.
첫글에서 뒷글로 넘어가지 못하고 미적거리게 만드는 발목을 잡는 글이다 ^^
그래서 뒤에 이어지는 글들은 정말 편한 마음으로 더 술술 읽히는 지도 모르겠다.
글쓰기...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분들도 있지만 그것이 단지 생활수단이 되었기에 직업이라 하는 것이지 글이란 것은 누구나 언제나 어떤내용으로든지 자유롭게 쓰게 되는 또하나의 표현이다.
1/5 쯤 읽어나간 중에 <작가의 말> 코너에 ' 난 글을 씁니다 ' 라는 글이 마음을 확 잡아당긴다.
글쟁이 아버지를 두었던 작가는 어릴적부터 어머니의 ' 글쟁이 배고파 '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학교 백일장에 나가 상을 받아와서도 어머니의 날까로운 눈총과 말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늘~ 글 쓰는 것을 싫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속에서 살았다는데... 그러나 어쩔수 없는 글 쓰는 것에 대한 중독...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그냥 자연스럽게 늘 일상속에서 사물을 보고 느끼는 것을 글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는 스스로 피할수 없는 글 쓰기를 인정하고 글을 쓰고 있다.
글쟁이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또한 어머니의 반응과 행동도 이해했다.
글이란 참 이상하다.
내가 생각한것을 내 스스로 적어놓았는데 어느 순간 지나고 나서 내 글을 읽었을때 '이게 내 글인가?' 하는 의아함이 들 정도로 생소하게 다가오곤 한다.
공연을 보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나서 그 느낌을 내용과 함께 정리.요약했던 글들을 어느날 무심히 읽어 가면서 ' 아~ 이 작품에서 내가 이런 부분을 이렇게 느꼈구나' 하면서 새삼 그 장면이 떠오르고 책속 내용이 기억속에서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그래서 글 쓰기를 계속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속의 나를 다시 만나는 느낌!
초등학교... 내가 다니던 시절은 국민학교 였는데^^ 저학년 시절에 썼던 그림일기와 일반일기장, 숙제로 해야했던 독후감 노트를 언제 펼쳐 보는 것도 아니면서 아직도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때때로 서랍 정리를 하면서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다 다시금 제자리에 넣어두게 된다.
온 방안을 어질러 놓고는 어릴적 내 필체와 그림, 글 내용을 읽으며 한번 배시시 웃어주며 내 어릴적과 조우하는 기분에 중독된 탓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작가의 글처럼 글 쓰기에 중독되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러 사람들이 들려주는 일상속 훈훈하고 안타깝고 행복한 일상들은 내 주위도 돌아보게 한다.
한번도 찾아뵙지 못했던 학창시절 친했던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도 들고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 지기도 한다.
몇일전 돌아가신 황장엽씨의 죽음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때에 북에 있는 친지들을 잊지못해 안타까워하며 소식듣고 하염없이 울었던 어머니의 사연을 적은 글을 통해 또 새삼 분단 국가의 아픔도 다시 떠올리게 되고 당장 나와 별 연관이 없다는 이유로 너무나 무심한 남.북간의 관계,관심에 대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분단 1세대 분들의 연세가 많아서 북녁땅 한번 밟아보기를 소원하며 죽을 수 없다는 여러 어르신들이 이미 고인이 되어 가시는데 언제쯤 이 세대는 분단의 벽을 허물수 있을까?
그 벽을 허물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것들이 참 많을텐데... 이런 생각이 그저 생각만 한번 하고 사라지지 않아야 할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또 내일의 나는 어떠할지!
글 쓰기는 내 생각을 이야기를 적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글을 통해 또 누군가 읽는 이들에게 옛 기억을 상기시키고 그 일상과 비슷한 또다른 기억들을 상기시키고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고 느끼고 깨닫고 또다른 새로운 글 쓰기를 유도하기도 한다.
많은 글들과 이야기들과 생각들과 만날수 있어 또 2달후 34호도 반갑게 맞게 되겠지.
발간되는 책자인데 검색에 안나오네... 쩝... 1.2월호에라도 내용을 ^^
에세이스트 32호 2010년 7.8월.
에세이스트는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된 책이다.
2달마다 출간되는 에세이 모음집.
특별초대 김지하님의 글로 시작된 내용에서 '허걱' 했다 ㅋㅋ
하필이면 첫 글이 너무나 심오해서(?) 그냥 그대로 책을 덮어버릴뻔 ^^
내용도 심오하고 뜻을 깊이 음미해야 하는 한자어들의 단어들은 뭔 뜻인가 궁금해하면서 이걸 다 찾아봐야 하나 하는 갈등까지 일으킨다.
뒤에 이어지는 글들이 편안하고 짧았기에 앞글의 어려움을 덮어두고 이어갈수 있었지 ... 뒤에 글들도 이렇게 어려웠다면 앞으로 2달마다 받아보게될 에세이스트를 계속 볼 자신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ㅎㅎ
처음은 어려웠으나 일상의 따스함을 담고 다양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삶을 대할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정겹다.
솥뚜껑위에 들기름 살짝 바르고 밀가루 반죽에 적셔서 익혀내는 호박전(돈적 이라고도 한다는데), 늙은 호박을 뭉개서 만드는 호박범벅을 할머니들의 편한 발음으로는 호박 뭉개미라고 한다는데 솥뚜껑 위에서 익어가는 호박전의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겨 올라오는 듯하다.
2~4 페이지에 해당하는 짧은 글들속에서도 일상의 다양함이 가득해서 짧지만 여운을 가득 담았다.
페이지 사이에는 수필부문 신인의 글을 모집한다는 내용도 있어 살짝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하고 ^^
버스에서 잠깐 졸다가 가지고 탔던 수박 2통이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되어 사람들의 시선에 얼굴 화끈거리며 챙겨야 했던 기억 이후 수박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는 [수박유감]은 소재만 다를뿐 일상에서 누구나 한번쯤 비슷한 경험들이 있었을법한 보았을 법한 상황이다.
당사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 안봐도 뻔한 모습... 내 기억속 어딘가에서도 그런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그래 나도 이런 기억 있는데... 옛 기억이 다시금 나를 멀리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게 한다.
글이란 그런거 같다.
남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보고 내 이야기와 만나고...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비슷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글로 전해주고 누구나 말로 전하고 또 누군가는 그들의 말과 글을 통해 자신 속에서 기억을 찾아내고.
이런 글을 읽으며 '그래,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도전하는 이도 있고 그저 생각만 하는 이도 있고 '내가 무슨 글을... ' 하며 공감만 가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도전을 했기에 결과와는 상관없이 만족할수 있고 누군가는 도전하지 않은 것에 후회를 거듭할수도 있다.
세상엔 참 별별 일이 많은데...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짧게 여러 글로 만날수 있어 부담없이 편한 마음으로 잠깐의 여유 시간에 들춰 보기에 좋은 것 같다.
물론 한편의 짧은 글이 하루 동안 내내 여운을 주기도 하지만...
다음 33호에서 어떤 글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
추운 겨울이 가고 새로운 봄이 왔음을 알린다. 하지만, 이번 봄은 여전히 겨울 같다. 날씨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봄이라는 계절에 눈이 내리기도 하고 우박과 함께 매몰차고 차디찬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날씨 가운데 유난히 사건 사고로 많은 시끄럽기 그지없었던 봄이었던 것 같다. 올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수필집을 읽게 되었다. 이번 수필집 역시 2개월마다 출간이 되는 책이었기에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필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친근감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번 3·4월호는 조금 숙연 된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에세이스트 - 통권 30호」에서는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묻어야 했던 법정 스님의 추모 특집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나 역시 이 이야기를 유심히 읽어 내려가게 되었다. 법정 스님의 책인 「무소유」는 누구나 아는 책이다. 하지만, 그 책을 학교 다닐 때 읽었던지라 기억이 가물거리긴 했다. 그래도 이 책에서는 법정 스님에 대해 또 다른 시선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호에도 역시나 가슴 뭉클하게 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장편 수필연재 역시 또 다른 감동과 울림을 안겨 주었다. 에세이스트는 한 번 읽고 나서도 다음 날 또 읽으면 새롭게 느껴지게 하는 매력을 가진 것 같다. 일상적이면서도 그 일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울리고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봄의 계절이라서 파릇파릇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 책에 실려 있는 수필들을 읽으면서 삶에 대해서 배우고 인생에 대해서 배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생과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중에 나이가 더 들게 되면 문득 생각은 해보겠지만, 지금까지는 단지 책을 통해서 느끼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스트에 실려 있는 수필을 읽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고 법정 스님의 이야기와 감동과 가슴 먹먹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인생의 또 다른 부분을 알게 된 느낌이 들었다.
에세이스트는 2개월마다 한 권씩 만날 수 있어서 그런 부분은 아쉽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아끼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이 책에 실려 있는 수필은 모두 정감 가고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때론 일상에서 일어난 작품을 읽을 때면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혹은 ‘나도 저렇게 생각했었지…’ 라는 생각이 어느덧 나도 모르게 자리 잡게 되고 함께 공감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번 3·4월호에서는 법정 스님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만큼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마지막까지 내려놓음을 굽히지 않으셨던 법정 스님의 모습과 태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에세이스트를 통해서 법정 스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알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화려한가 했다.
수필집.
아니 에세이가 너무나 화려해서 어느것하나 버릴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 한권을 읽는데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수필은 나무다. 나무는 뿌리에서 가지로 수액을 끌어올린다. 나무를 보면 수필의 문학적 요건을 알게 된다.
상상의 수액으로 향기로운 감성의 꽃과 맑은 지성의 열매를 맺는 것이 나무로서 수필이다. 수액이 가지의 끝까지 촉촉하게 스며들어야
실한 나무로 자라듯이 소재의 포착에서 문장기법에 이르기까지 문학성이 균질화되어야 좋은 수필이 된다.
정치하게 관찰한 수필, 세밀하게 묘사한 수필, 체험을 재생한 수필은 수필일지라도 좋은 수필은 아니다. 체험과 인상이 조화를 이루고
의미화와 형상화가 균형을 맞추고, 주제와 소재가 평형을 유지하고, 육안의 관찰과 심안의 해석이 병행되어야 한다.
비유하면 입체적 사고를 유도하는 컴퓨터의 시뮬레이션과 같다. - p. 164 박양근의 작가론중
어린시절 읽었던 피천득의 인연. 아키코만 생각이 난다. 그래도 참 오래도록 생각이 난다.
수액이 촉촉이 가지 끝까지 스며든 수필이었을까?
'정경'이라는 말이 너무 많이 나와서 그가 누군가 했다. 그가 아니다 그녀다.
책 한권을 다 읽고 나서야 앞장에서 [본지의 창간주역이고 편집인이셨던 고 정경 선생님의 수필문학에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한국 수필문학의 질적 도약을 위해서 『정경문학상』을 제정 운영합니다]라는 글을 읽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이 이렇게 많이 나왔구나.
그녀 덕에 한껏 봉우리 지어 터지는 듯한 글들을 읽었다.
그뿐이 아니다. <올해의 작품상>을 읽으면서 물오른 것처럼 팔딱 팔딱 뛰는 글들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분명 한번씩 읽었었던 글들임에도 다시 읽으면서 가슴이 아려오고, 작가의 느낌이 되어 글을 본다.
내게 눈이 있고, 심장이 있고, 머리가 있음에 감사드린다.
이렇게 귀한 글들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드린다.
책의 편집후기에 이런글이 적혀있다.
그 탄산음료같은 상큼함과 꼬냑처럼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황홀한 문장에 빠져 보시라 - p.379
짧막 짧막한 글로 상큼함과 꼬냑의 황홀함을 맛본다.
심하게 맛본다.
그렇게 취할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법정 스님 추모 특집>이 숨어 있었다.
푸성귀 듬성듬성 썰어넣고 비빕밥을 만들고, 슴슴하고 된장찌개 끓여 한입 입에 넣으면 이런 맛일까?
어찌 이렇게 귀한 글을 지금에야 읽었을까?
에세이스트에 감사드린다.
에세이스트로 넣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중간에 있었다는 법정스님의 글들.
난초화분 하나로 도를 깨우침이 범인과 다름을 본다.
심심한 채소맛이 글에서 느껴짐은 나뿐일까?
그냥 지나칠 뻔했다.
이번호에서 스쳐지나가면 섭섭한 글들.
<정경문학상> 수상작들.
이렇게 현란하게도, 이렇게 담백하게도 글들이 나온다.
그 글들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글들이 미치게 만든다.
읽으면서 까무라치게 상큼한 맛에, 황홀한 맛에 혼미해진다.
글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건,
에세이스트를 읽은 나는 행운아다.
에세이스트 30 (2010년 3.4월호)법정스님의 입적으로 이곳저곳에서 말들도 많고 탈도 많으면서도 법정스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것은 물론 많은 대두가 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법정스님의 유언으로 더이상 출간이 되지 못하고 절판이 되어야 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기도 하면서 절판을 언제 시행할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법정스님의 추모 특집편 답게 무소유와 수필 몇편에 대한 평론까지 함께 접할 수 있어 법정스님의 글을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바랄볼 수 있는 계기까지 되었을뿐만 아니라 법정스님의 글은 종교적으로 짙은 글들을 표현하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참으로 편안함을 선사해주는것이 거북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법정스님의 추모 특집편이라 다소 이번 에세이스트의 분위기가 무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나는 에세이스트를 접할 때마다 사람사는 냄새를 느낄 수 있을뿐 아니라 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마음까지 훈훈해짐을 느껴 너무 좋다.이번역시 법정스님의 대한 글들을 통해서는 '무소유'에 대한 생각이 좀더 깊이 있게 해보면서 내가 가진 모든것을 다 내려놓았을때 비로소 온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답니다. 또한, 나는 에세이스트를 읽을때 마다 장편수필 연재가이신 조광현님의 글을 먼저 찾게 된다. 그는 흉부외과 의사로서 심장수술을 중점으로 하고 있는 그가 환자 한명 한명을 대할때마다 느끼는 마음이라든지 의사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접할때마다 의사로서 사명감을 넘어 의사대 환자로서 대하는것이 아니라 사람대 사람으로 대하는 그가 참으로 좋다. 그리고 그의 글에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환자를 대하는 모습속에 인간의 정을 느낄 수 있어 더 좋아하겠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하다보니 매번 에세이스트를 접할때마다 나는 절로 그의 글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겠다.박경주님의 밥상에서는 삶과 죽음이 밥상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것이 어린시절 다섯명이 둘러앉는 두리반으로 시작하여 성인이 되어 한명한명 결혼을 하면서 두리반이 교자상이 되고 교자상 하나로도 모자라 두개를 붙이다가 또 식구들중 누군가가 자리를 비게 되고 또는 자녀의 자녀들로 그 자리를 메꾸어 나가는 모습에서 한시대를 느낄 수 있었음은 물론 짧지만 강력한 느낌을 담고 있는것 같아 참으로 인상적인 글이었다.에세이스트는 이처럼 주옥같은 수필들이 참으로 다양하다. 다양한 수필가운데에섣도 차례대로 읽지 않고 읽고 싶은 대로 가볍게 읽어 나갈 수 있어 좋을뿐마 아니라 이렇게 가볍게 읽으면서 인생의 값진 것들을 배우는것은 물론 나는 에세이스트르 통해서 또 한뼘 인생에 대해 배우게 되고 다양한 인생사를 통해서 위로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에세이시트는 항상 나에게 새로운 무엇가를 선사해주는것은 물론 힘들고 지칠때.. 또 다시 채찍질을 하면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다...이번 에세이스트에서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것에서 부터 다양한 수필은 물론 등단한 신인작자들의 신선한 작품까지 접하면서 자신의 삶도 한번 재조명하거나 함께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