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불교, 빗장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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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인 불교보다 324년 앞선 불교 전래, 가야불교 존재 확인
; 『삼국유사』 속 ‘허황옥 신혼길’ 3일간의 여정 최초로 추적
또한 국내 허황옥 루트인 ‘허황옥 신혼길’ 3일간의 여정을 최초로 밝혔다. 이는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임과 동시에 역사에서 사라져 묻혀버린 초기 가야사 복원의 실마리가 된다.
저자 도명 스님의 가야불교 찾기는 가야사 전반으로 확장되어 가야사 정립과 가야불교 복원이라는 명제 아래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로 이어지고 있다.
작가정보
목차
- 들어가며
추천사 1. 가야불교와 한국불교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
추천사 2. 가야불교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
서문
잃어버린 역사, ‘가야’ ‘가야불교’ 되찾기
가야불교의 사실성
1. 가야불교의 시작
가야불교가 자란 토양, 가야
『삼국유사』, 가야불교 찾기의 시작
일연 스님의 본래면목
2. 가야불교의 얼개
기록으로 읽는 가야불교
가야불교의 인물
3. 가야불교의 전래 경로
허황옥 루트의 국외 경로
국내 ‘허황옥 신혼길’의 새로운 발견
허황옥 신혼길을 완성한 망산도의 재발견
4. 가야불교의 증거
가야불교의 흔적
연기사찰
5. 가야불교의 가치와 연구
통불교로서의 가야불교
선명해진 가야사 - 가야불교의 가치와 전망
가야불교 연구
에필로그
나와 가야불교 활동
새로운 인연들과 도약의 토대를 다지다
선각자들을 만나다
가야불교를 넘어 가야사로 지평을 넓히다
탐색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다
가야불교, 그 끝나지 않은 여정의 시작
맺음말
책 속으로
●
가야불교의 전래 시기에 대해서 남한학계는 가락국 8대 질지왕이 왕후사를 세웠다는 452년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는 가야왕실에서 왕후사라는 원찰願刹을 세운 시기이지 가야불교의 전래 시기가 아니다. 『삼국유사』 〈파사석탑〉조는 허왕후가 서기 48년 아유타국에서 가락국으로 올 때 파사석탑을 가지고 왔다고 말하고 있다. 파사석탑은 허왕후 일행이 불교를 신봉하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유물이다. 허왕후 일행이 이 파사석탑을 궁궐 어느 곳엔가 세워 놓고 불사를 시행했을 것임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48년에 불교가 전래된 것이다.
// 16p 〈이덕일 역사학자의 추천사〉 가운데
●
조선시대 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추석 차례의 기원을 팔월 보름날 수로왕께 차를 올리는 예법에서 시작됐다고 하고 있다. 가야권역 곳곳에는 ‘가야산’이란 이름이 산재해 있으며 ‘낙동강’이라는 강 이름도 ‘가락의 동쪽’에서 유래했다고 전해 오고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가야는 기원후 42년 김해 분성산 아래 구지봉에서 시작된다.
// 44p 〈가야불교가 자란 토양, 가야〉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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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성파사석탑〉에서 가야불교의 시작을 알 수 있는 부분은 해동지역에서 불법을 받드는 문장인 “연우시해동말(미)유창사봉법지사(然于時海東‘末(未)’有創寺奉法之事)”이다. 기존 연구자들은 이 문장을 “然于時海東/ ‘未’有創寺奉法之事”로 보아 “그러한 때 해동에는 절을 짓고 불법을 받드는 일이 없었다.”로 해석해 왔다. 여기서 ‘해동’은 한반도 전체를 의미하므로 연구자들은 당시 가야를 포함한 4국에 불교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보았다.
하지만 필자와 향토사학자 정영도 선생은 ‘해동(海東)’ 뒤의 글자를 ‘미(未)’가 아닌 ‘말(末)’로 보아야 하며, 끊어 읽기도 다르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종전처럼 ‘유창사(有創寺)’ 앞에 ‘미(未)’를 붙여서 ‘미유창사(未有創寺)’로 보는 것보다 ‘해동(海東)’ 뒤에 ‘말(末)’을 붙여서 ‘해동말(海東末)’로 읽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끊어 읽기를 달리하여 보면 이 문장은 “然于時海東‘末’/ 有創寺奉法之事”가 되고, 이를 풀이하면 “그러한 때 해동의 끄트머리에서는 절을 세우고 불법을 받드는 일이 있었다.”라는 뜻이 된다.
// 85p 〈기록으로 읽는 가야불교〉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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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기〉에 나오는 ‘망산도’의 현재 위치에 대해선 말무섬, 욕망산, 전산도 등으로 연구자들 사이에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필자가 수차례 현지 답사를 하고 〈가락국기〉와 조선시대의 지리지 등 자료에 천착한 결과, 망산도는 과거 ‘만산도’라 불렸던 주포 남쪽의 섬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해구 용원과 가덕도 사이에 위치하고 조선시대 ‘만산도(滿山島)’로 불리던 이 섬은 현재 부산신항만 매립으로 옛 모습을 잃었지만 여전히 지도에 견마도로 표시되어 있다. ‘견마도(牽馬島)’라는 지명은 현재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나오는 명칭이고, ‘만산도(滿山島)’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웅천현읍지」, 〈웅천현지도〉(1872)에 표기된 이름이다. 즉 현대의 ‘견마도’, 조선 후기의 ‘만산도’는 〈가락국기〉에 나오는 ‘망산도’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볼 수 있다.
// 171p 〈가락국기로 본 망산도의 위치〉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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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48년 7월 27일 가락국에 도착한 허왕후 일행은 수로왕이 있는 본궐로 바로 가지 않았다. 3박 4일의 여정 속에 폐백, 조우, 초야 등의 통과의례를 거친 후 비로소 8월 초하루 입궐하게 된다. 〈가락국기〉에는 그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땅 가야와 첫 인연을 맺은 16세의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결혼 길을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다.
기출변 → 망산도, 승재 → 유주지 → 주포(별포진 입구) → 능현 → 만전 → 본궐
* 별포는 나중에 ‘주포’가 되고 승재는 나중에 ‘능현’이 된다.
[ 7월 27일 ]
망산도에서 바라보면 서남쪽 바다 모퉁이에서 공주의 배가 관측되어 배는 망산도 서북쪽 유주지에 배를 댄다. 구간이 와서 공주를 모셔 가려 하나 거절한다. 유천간이 수로왕께 정황을 보고하니 수로왕은 직접 주포에 행차하여 만전을 치고 기다리겠다는 전갈을 공주에게 보낸다. 그녀는 왕의 의지를 확인하고 유주지에서 하루를 지낸다.
// 194~195p 〈가야불교의 전래 경로 - 도래 경로와 시간적 추이〉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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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뒤 바위에 새겨진 ‘통천도량(通天道場)’의 ‘통천’은 은하사의 ‘신어통천(神魚洞天)’과 무척산 정상에 있었던 ‘통천사(通天寺)’에도 사용되고 있어 가야불교를 연결하는 코드 중 하나가 된다. 이때 ‘통천(通天과 洞天)’은 하늘과 통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리고 용왕당 옆에 있는 큼직한 돌은 영판 맷돌처럼 생겼으나 그것은 맷돌이 아닌 ‘요니(YONI)’라는 종교성을 지닌 석물로 인도의 힌두이즘과 관계가 있다.
// 240~241p 〈가야불교의 증거-연기사찰;부은사〉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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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여 년 전의 기록인 〈가락국사장유화상기적비〉에 “화상이 놀았다 하여 절도 장유, 산도 장유, 마을도 역시 장유라.”라고 한 것을 보면 절과 산, 마을 이름이 모두 장유화상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가락국기〉를 보면 가야 8대 질지왕이 수로왕과 허왕후가 초야를 치른 곳에 기원후 452년 왕후사를 지었고, 그 후 5백여 년이 지나서 장유사를 지었다 하니 절의 역사는 1천 년이 조금 넘는다 하겠다.
// 252p 〈가야불교의 증거-연기사찰;장유사〉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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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야불교 관련 사찰에서 보이는 요니와 링가는 인도의 힌두이즘 속에 녹아든 토속신앙이 가야에까지 영향을 미친 결과물로 보인다. 그리고 허왕후가 이 땅에 처음 도착해 명월산 산신에게 비단 바지를 벗어 폐백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풍속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박사후 연구자였던 산토시 꾸말 굽타 교수는 인도 북부 부다가야 주변의 소도시 ‘가야’ 출신이다. 그는 고향인 북인도 지방에는 처녀가 시집가기 전에 자기가 입을 옷을 신에게 먼저 바치고 나서 착용하는 풍속이 남아 있다고 증언하였다.
// 292~293p 〈가야불교의 가치와 연구-통불교로서의 가야불교〉 가운데
출판사 서평
가야불교에 관한 최초의 종합 기록
; 한국불교는 가야불교부터 시작이다
우리 고대사에서 520년의 역사를 가진 가야에 대해, 그 서술은 짧다. 최초 가락국이 세워진 이후의 유적과 유물 등 사료 발굴이 많지 않아 연구가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과 수로왕비 허황옥에 관해 신화나 설화로 간주해서 그 실체를 의심하고 가야의 초기 기록들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역사학계의 인식도 이유가 된다.
경남 김해 여여정사 주지이자 가야불교연구원 2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도명 스님은 가야불교를 부정하는 일부의 현실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수년 동안 문헌사료를 바탕으로 원전 분석과 현장 답사 등 가야불교와 가야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한반도의 고대 역사, 특히 가야사가 상당한 부분에서 왜곡된 상태임을 확인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첫 시작으로 고대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가락국 도래에 관한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에 진력해 왔다. 그 결과 『삼국유사』와 여러 금석문 등의 원문 연구를 통해 2천 년 전 서기 42년에 가락국이 세워졌고, 서기 48년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야로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 도명 스님은 『삼국유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불교가 인도에서 직접 가야로 전해졌음을 추적하였다. 이는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 때 전진의 승려 순도가 불상과 경전을 고구려에 전한 것이 그 시초라고 알려진 공인 불교 전래보다 324년이나 앞선 것이다. 한국불교가 가야불교에서 시작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허황옥 신혼길’ 3일간의 여정을 최초로 밝혔다. 일부에서 설화로 간주하는 고대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가락국 도래가 『삼국유사』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기록에 맞추어 국내 허황옥 루트 3일간의 동선을 최초로 밝혀냈다. 원문에 변형을 가하지 않고 기록 그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기출변 → 망산도, 승재 → 유주지 → 주포(별포진 입구) → 능현 → 만전 → 본궐〉로 이어지는 국내 허황옥 루트가 완성된다.
국내 허황옥 루트를 완성한 ‘망산도’의 재발견. ‘허황옥 신혼길’의 최초는 허황옥이 탄 배가 ‘기출변’으로 들어오는 것을 ‘망산도’에서 관측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말무섬, 욕망산 등 기존 연구가들 사이에 다양한 지점 의견이 있었던 ‘망산도’에 대해, 현재의 견마도가 『삼국유사』에 기록된 망산도임을 확인했다. 지금보다 해수면이 훨씬 높은 기원전후 고(故) 김해만 지도에서 『삼국유사』의 기록과 일치하는 유일한 섬이다.
김해를 중심으로 바닷가에 위치한 연기사찰들이 가야불교의 증거. 가야불교 연기사찰은 6가야뿐 아니라 수로왕과 허황옥, 장유화상 등 가야의 인물과 관련된 사찰을 말한다. 현존하는 가야불교 연기사찰에는 요니와 링가, 쌍어(雙魚), 사왕석(蛇王石) 등 인도와의 교류 흔적이 보이고 세 인물과 관련한 창건설화가 금석문 등으로 전해 내려온다.
개봉 앞둔 영화 〈허황옥 3일-잃어버린 2천 년의 기억〉 제작에 단초 제공. KNN방송국의 진재운 대기자가 연출을 맡아, 2천 년 전 인도 공주 허황옥의 가락국 도래를 과학적으로 추적하여 그 실체를 규명한 영화 제작에 도명 스님의 가야불교 연구가 단초가 되었다.
『가야불교, 빗장을 열다』는 2천 년 전 실재했던 가야불교에 관한 최초의 종합 기록이다. 공인 불교보다 324년 앞선 가야불교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한국불교는 가야불교부터 시작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 기록을 바탕으로 ‘허황옥 신혼길’을 추적하여 규명함으로써 허황옥의 실체에 접근하였다. 일찍이 철기문화 발달로 문명국을 이루었으나 역사에서 사라진 초기 가야사 복원에 단초가 됨과 동시에 또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뿌리를 세우는 일이 된다.
가야사는 가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가야불교는 종교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야와 가야불교가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은 가야불교를 통해 가야 초기를 재구(再構)할 수 있으며 이는 가야사의 정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야사가 바로 서는 순간 임나일본부를 비롯한 일본의 역사 왜곡은 사라지고 그 기세가 북쪽으로 올라가 반도사관을 몰아내고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 침탈을 막는 든든한 수문장이 될 것이다. 그 시작을 도명 스님이 열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91162013700 |
---|---|
발행(출시)일자 | 2022년 04월 24일 |
쪽수 | 336쪽 |
크기 |
150 * 223
* 28
mm
/ 685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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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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