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릴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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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사라진 순간 우리는 대화할 수 있다”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등 다방면에서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력을 인정받은 작가 오후가 이번엔 민주주의, 성공, MBTI, 달력, 가짜 뉴스, 종교, 정치적 올바름 등 우리 삶을 둘러싼 다양한 문화와 제도를 통해 인간이 정답이라고 믿는 신념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고 변화하며 작동하는지 파헤친다.
현재의 한국에서는 개인의 신념은 쉽게 극단으로 치닫는다. 자신의 의견에 맞는 것만을 취하고 언론은 이를 부추긴다. 그렇게 신념은 정답이 된다. 이 여파는 개인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사회는 여론몰이와 마녀사냥이 난무하고 정치는 진보와 보수로 양극화되며, 한 개인의 비이성적인 믿음이 사회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 우리는 회복될 수 있을까?
적게는 9년, 많게는 16년 의무 교육을 받는 동안 ‘정답’은 성공을 의미했고 ‘틀린’ 것은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하고 불완전한 사회에서 정답은 위험한 방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저자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다른 의견을 듣는 태도임을 강조한 이유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은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둘 때라야 가능하다.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틀릴 결심이야말로 우리가 공유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일지 모른다. 틀림이 없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망할 것이다.
작가정보
비판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자유기고가이자 칼럼니스트. 과학잡지에는 문학적인 글을, 문학잡지에는 과학적인 글을 쓴다. 온갖 문제에 대해 더 나은 답을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늘 더 나은 답보다는 더 낭만적인 답을 선호한다. 과학, 미신, 마약, 연애, 영화 등 매번 다른 주제를 선택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풀어낸다. 지은 책으로는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보여주기》 《가장 사적인 연애사》 《가장 공적인 연애사》 《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가 있다.
목차
- 들어가며 ㆍ 5
1장 진실의 적은 복잡함이다
MBTI는 틀리는 법이 없지! ㆍ 17
회의주의자에게 새해 인사하는 법 ㆍ 35
가짜 뉴스의 시대,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가? ㆍ 54
2장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신이시여, 우리는 어디로 가나이까 ㆍ 83
정치적 올바름과 21세기 종교 전쟁 ㆍ 108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ㆍ 132
3장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ㆍ 155
무조건 살 빠지는 세계의 도래 ㆍ 174
팬데믹, 민주주의를 묻다 ㆍ 196
다이내믹 코리아 찬가 ㆍ 222
4장 더 나은 선택이라는 착각
성공에도 공식이 있을까 ㆍ 251
당신의 한 표를 위한 선거제도 ㆍ 269
일부일처제라는 환상, 일부일처제가 환상이라는 환상 ㆍ 293
범죄자 lives matter ㆍ 315
계엄에 관한 몇 가지 상상 ㆍ 336
출판사 서평
자기신념 강화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의견을 가질 권리는 있지만 사실을 가질 권리는 없다”
10여 년 전 가수 타블로는 학력위조라는 누명을 썼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네이버 카페가 생겨나고 회원뿐만 아니라 대중들조차 타블로의 진실을 요구했다. 끝나지 않는 여론몰이에 타블로는 결국 학력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모교인 스탠퍼드대학교를 찾아간다. 자신의 모교임을 증명했음에도 논란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 후로도 사람들은 진실을 왜곡하며 지속적으로 타블로에게 집단 린치를 가했고, 타블로는 오랫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의 주동자였던 사람은 미국 교포로, 학력 콤플렉스을 가지고 현실과 동떨어진 망상을 믿고 타블로를 음해한 것이 밝혀졌다. 자신의 감정을 잣대로 키운 비이성적인 신념이 사실과 진실에 눈멀게 한 것이다.
이러한 비이상적인 신념으로 인한 갈등은 현재에도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정치적으로 극단주의가 많아지고, ‘정치 싸움’에만 몰입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정치병(政治病)’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언론은 이를 부추긴다. 범죄자에 대한 앙분에 의한 보복이 당연시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틀리다”고 말한다. 이렇게 한국은 세대 간, 남녀 간, 젠더 간, 이념 간 갈등을 낳는 ‘갈등공화국’이 되었다.
개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분투의 장’으로 타락한 인터넷상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고조된다. 의견을 주고받은 공론의 장이 쉽게 논쟁과 싸움이 되면서 우리는 더욱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 개인의 신념은 점점 강화된다.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의견을 가질 권리는 있지만 자기만의 사실을 가질 권리는 없다”라는 미국 원로 정치인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Daniel Patrick Moynihan)의 말이 지금보다 더 절박했던 때가 있던가.
변화하는 가치, 변하지 않는 본질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완벽한 사랑”하면 떠오르는 연관 단어가 있었다. 결혼과 출산.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지고, 출산을 당연한 과정으로 여겼던 시대.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사랑과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관도 다양해졌다. 비혼과 비출산이 증가하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며,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는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관계의 개념도 등장했다. 폴리아모리(polyamory)는 기존의 일부일처제 관계에서 벗어난 개념으로, 단순한 불륜이나 바람과는 구별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정자은행, 난자은행, 대리모 등 이전에 없던 기술과 문화도 생겨났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인간의 본성이 일부일처제인지, 일부다처제인지 논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보다 각 사회가 채택한 결혼과 가족 제도가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어떻게 당위성을 갖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중국의 소수민족인 모수오족(摩梭族)은 모계를 중심으로 한 다부다처(多夫多妻) 사회를 유지한다. 부인과 남편이라는 개념이 없고, 아이는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 양육을 공동으로 분담하는 일부일처와 다르게 이러한 부담이 없으니 연애가 훨씬 자유롭다. 하지만 그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일부일처제가 정착된 사회에서는 장기적인 유대 관계와 안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작동했기에 한국에서처럼 지금까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역사, 사회적 맥락에서 개인과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가족의 형태는 이 밖에도 얼마든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만고불변할 것 같은 도덕은 어떨까? 우리는 흔히 도덕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긴다.
도덕이란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등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다. 즉, 특정 시대와 사회에서 형성된 윤리적 ‘합의의 결과물’이다.
실천윤리학의 거장이자 《동물 해방》으로 잘 알려진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에스컬레이터 이론’을 통해 시대에 따라 도덕적 규범이 변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과거에는 노예제와 신분제를 통해 일부 계층만이 기본권을 누릴 수 있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일부 강대국에서는 흑인이나 아시아인을 ‘인간 동물원’에 가둬 전시하는 행위가 용인될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를 “타협할 수 없는 불의”라고 본다.
피터 싱어는 이를 지금의 우리가 그때의 우리보다 더 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에스컬레이터의 ‘상층부’에 있기 때문”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시대에 따라 도덕이 상대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도덕적 사고의 확장과 사회적 논의를 통해 도덕적 기준이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1세기 현재에는 인간의 기본권을 넘어 동물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오락을 목적으로 하던 사냥을 금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산 채로 문어를 조리하는 방식이 동물 학대가 될 수 있음이 논의되는 시대이다. 도덕이라는 것도 원칙과 보편성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검토하고 논의가 필요한 대상인 것이다.
자유냐 안전이냐
팬데믹이 드러낸 민주주의의 두 얼굴
민주주의는 많은 국가를 지탱하는 핵심 이념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각국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각국의 대응 방식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전염성이 높고, 사망률 증가라는 특성을 가진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거리두기, 격리, 셧다운(shutdown) 등 국가 차원의 조치가 불가피했다. 특히 중국은 강경한 방역 정책을 펼쳤다. 특정 도시에 확진자가 늘어나면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는 한국의 방역 방식과 비교했을 때 과도하게 강경한 조치로 보였다. 반면, 미국에서는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정책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일부 시민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비말로 감염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감염 확산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중국과 미국을 지탱하는 이념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까?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 Survey)’에 따르면, 중국 국민들은 자국이 얼마나 민주적인가를 묻는 질문에서 평균 7.13점(10점 만점)으로 응답했는데, 이는 한국(6.88점)보다 높은 점수였다. 중국이 공산당 체제의 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민주주의 개념과 차이가 있다. 해당 조사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기본권’과 개인의 ‘자유 보장’보다는 경제적 성장과 생활의 질을 기준으로 한 만족도를 반영한 결과였다.
중국을 차치하더라도 동일한 팬데믹 상황에서도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를 의무화하고 이를 잘 이행한 한국과 이를 거부한 미국의 시민들 간에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개인의 자유’를 둘러싼 인식 차이가 존재했다. 그러나 이것이 곧 특정 국가의 민주주의가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각국이 채택한 민주주의는 어떤 보편적인 원칙을 공유하면서도 각국의 정치,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형태의 민주주의가 동등한 수준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가짜 뉴스의 일상화, 시민들의 입맛에 맞춰 “치어리더가 된 언론”, 포퓰리즘으로 작동하는 정치, 지금처럼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던 적이 있던가. 하지만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논쟁과 조정을 통해 지금까지 발전해 왔다. 이럴 때일수록 지금의 시대에 언론과 정치가 어떠한 방식으로 기능해야 하는지, 시민 사회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공동의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의견을 묻고 대화해야 한다.
공동의 가치를 상실한 시대,
광신도가 되거나 냉담자가 되거나
자유로운 개인의 가치관은 공동의 가치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중 소외된 계층을 위한 행동은 공동의 가치, 사회적 연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2021년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에 따르면, 기부 경험이 없는 사람이 78.4%에 달했고, 그 이유 중 “관심 없음”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자원봉사 참여율도 9.4%로 매우 낮았다. 각국 시민들의 자선, 기부, 자원봉사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세계자선지수(World Giving Index)에서 한국은 114개국 중 최하위에 속하는 110위를 차지했다.
한편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출근길 시위를 벌이는 단체에는 “시민들이 불편하다”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시위 단체와 시민들이 대립하는 동안, 정작 이동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자신의 의견을 정답인 양 고수하는 동안 그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공동의 가치는 점점 희미해진다.
상실한 공동의 가치는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고 타협해야 할 문제를 더욱 쉽게 이기고 지는 문제로 만든다. 이런 사회에서 누군가는 격렬히 싸우는 광신도가 되고 누군가는 세상일에 무감한 냉담자가 된다. 어쩌면 당연한 자기 방법일지도 모른다.
사회의 불안과 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공동의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 시작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대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두었을 때라야 가능하다. 틀릴 결심이야말로 공동의 가치를 회복하는 초석일지 모른다.
기본정보
ISBN | 9791166893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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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출시)일자 | 2025년 02월 21일 |
쪽수 | 360쪽 |
크기 |
142 * 210
* 25
mm
/ 587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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