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목공에게 숲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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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명은애 시인은 4시집 『봄비 연인』을 상재한다. 나는 이 시집 해설에서 ‘시인의 작품집에서 느낄 수 있는 의미는 따뜻함이다. 화려한 언어가 시인의 호사취미를 뛰어넘는 정신의 세계를 구축해내는 힘이 내재된 것이다. 그러기에 명은애 시인의 작품은 어디엔가 낯설어 보이기도 하지만 친숙한 느낌을 주는 것도 바로 의미의 따뜻함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중략) 존재하는 그것들을 시인의 눈이 포착하여 하나의 유기체로 생명력을 부여하여 세상 가운데로 내보내는 것이다’라고 썼다. 이번 5시집도 그런 의미의 연장선으로 이해한다면 올바른 접근이 될 것이다. 자연과 숲으로 연결된 인간의 삶이 지닌 의미에 따뜻함이 부여된 생명력이 이번 시집의 의미를 가늠하는 열쇠라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머니로부터 몸을 받아 하늘을 숨 쉬고 땅에서 먹거리를 얻어 몸을 보전하는 일이 생존이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 이 땅을 살아가는 본령일 수 있다. 그것은 혼자 힘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곁에 누군가가 또는 무엇인가가 있어 먼 길을 올 수 있었고 다시 그 먼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이웃과의 동행, 사물들과 함께하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생존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이 지상에 홀로 설 수 있는 사물은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시인의 관심은 자신에게서 시작하여 타자에게로 확산되어 간다. 타자는 눈에 보이는 타자가 아니라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선물로 받은 난 분 하나도 나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는 남겨질 수 없는 존재다. 난이 가진 생명에 내가 관여하는 일은 어떤 거대한 사명이 주어져서가 아니라 생명이기에 지켜주어야하는 당위성에 몰입해 갈 뿐이다. 시인은 이런 당위성을 내팽개칠 만큼 모진 성격을 가지지 못했다. 기르던 반려견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러 주고서도 한동안 젖은 눈을 거두지 못한다. 심성이 착해서이기도 하지만 생명이 갖고있는 생존의 필연성을 함부로 여길 수가 없는 엄중한 본성의 가르침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냘픈 생명의 끈을 자르지 못하는 심성 즉 깊은 곳에 자리한 애린의 마음이 시인을 꼭 붙들고 있음이다.
작가정보
목차
- 목차…4
자서…3
제 1 부
몰운대 숲길…11
푸른 독거…12
다시 초록이다…14
히말라야시다 이력서…16
자작나무를 껴안다…18
천리포 수목원 술래…20
벌목공에게 숲길을 묻다…22
복수초…24
문 앞에 꽃…25
달개비꽃…26
책이 된 은행나무…27
해바라기…28
아카시아 정원…29
십리 대숲의 노래…30
물푸레나무…32
상수리나무 숲에 들기로 한 날…38
내 안에 그린 물무늬…34
꿈꾸는 숲…35
그늘진 숲 이별…36
제 2 부
호두나무 책장…39
노을을 입다…40
바람 사는 숲…43
당단풍나무 침대…42
먼 숲길…43
몰운대 숲이 된 아이들…44
주산지…46
박달나무…47
이팝나무…48
나목…49
버드나무 시간…50
기생초…51
녹색 시선…52
자카란다…53
은행나무 침대…54
가시연 몸살…56
제 3 부
문화로 풀꽃…59
뜨거운 발…60
흔들리는 껌…62
빛나는 눌어…63
그물 손가락…64
가상현실…66
얼음골 사과…68
아무…69
눈썹달…70
아픈 서포…71
흑가시…72
젖어야 사는 여자…73
그리움을 벗다…74
무미랑…75
완성으로 가는 달…76
잃어버린 책…77
바람 속에서…78
낙원묘원 까마귀…80
물꽃…81
어둠을 만지다…82
제 4 부
다이어트가 필요한 말…85
채석강 노을…86
새재역에서…87
언어 마술사…88
지하철 여인들…89
젖지 않는 우산…90
앨범 속 라면 탑…92
낮잠…94
갈대비…96
붕어 굽는 부부…97
약을 먹다…98
휴일…100
을숙도에서…101
자귀나무꽃…102
새를 잡다…104
그늘진 손…106
해설/드리아드 노래와 눈빛 속으로-강영환…107
책 속으로
푸른 독거
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그녀에게는 숲이다
그 나무 문 앞에서 똑똑
문을 열고 들어서서
공기청정기를 빌려 오기도 한다
눈에 든 물비늘 털어내고
몰운대 숲에 눈이 깊어지기로 한 그녀
비자나무 아래 섰다
나무를 아는 게 사는 일이라지만
무거운 시간이 쌓인 그루터기는
그녀 아침을 일으켜 물관을 튼다
숲이 일어 선다
습한 언어가 말라 가는 잎맥
청설모 혀 안개에 숨기고
음수대 앞에서도 그녀는 입술이 마른다
비구름 끌고 오는 딱총새
몰운대 객사 추녀 끝에 구름 내려놓을 때
비자나무 아래 늘어진 그림자가
숲을 닮는다
다시 초록이다
참았던 흙비가 내린다
비는 연두 입술과 갈색 눈을 삼킨 뒤
매섭게 능선을 부른다
숨을 쉴 때마다
흙이었거나 모래였거나
산사태로 무너진 비가
오백 년 팽나무 혈관을 파고 든다
가지가 꺾여 드러난 관절, 마른 눈물에
숨이 차다
잡을 수 없어 셀 수 없는 엉겅퀴가
동공에 담지 못해 넘치는 참닻꽃이
숲속에 뼈를 뱉는다
딱따구리 사라지고 거미줄 지워지고
남긴 내 발자국도 흔적이 없다
흙비가 숨을 고르고 떠난 숲에
다시 초록이다
나무에 귀를 대니 물 흐르는 소리 들린다
숲에선 꽃뼈 주섬거림이 일어서고
지워지고 사라진 빈터에
파랑새가 날아든다
봄비 구르다 앉은 바위에도 기척이 돌아
눈도 못 뜬 이끼가 이끼인 척
풋내나는 손으로 초록 연서를 쓴다
히말라야시다 자서전
달구벌 기적에 귀를 씻고 서 있는
나무와 눈을 맞춘다
나무는 구겨진 초록 심장을
도시에 털어내는 중이다
된바람이 떨군 잎에서
눈빛 흩어지는 시간이 새털로 난다
나뭇잎은 바람 속 휘파람으로 불어와
가지 손을 잡는 순간
나무가 품고 있는 이력에 지문을 찔러
손가락에서 빨간 십이 월이
억겁 빙하를 지나 히말라야를 흔든다
어쩌다 목마른 도시에 들었을까
손톱 부딪히는 가지, 목 움츠리는 오후
흩어지거나 날아오르던 햇살이
그늘진 발목에 고인다
산맥에 눈 내리는 소리 들으며
나무가 살아온 날들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하얀 시간이 어둑하게 녹을 때
히말라야시다 자서전 끝에는
둥치를 붙든 쇠목이 갈라진 땅에 뿌리 다지고
뜨겁게 익은 내 지문도
손금에 나무를 들이는 중이다
자작나무를 껴안다
어디서 잃어버린 피붙이일까
어쩌다 놓아버린 손일까
잎새바람 누운 숲 속에 딱다구리 노동이 부서진다
동공에 스민 숨소리를 떨구는 사이
능선을 삼키고 드는 그늘에
초록 너울이 잡힐 듯 휩쓸린다
나는 나무를 찾아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인지
원대리를 버리고 간 휘파람새를 찾는 것인지
햇빛이 내가 헤매던 길을 펼친다
숲을 희롱하는 미로다
다시 눈 밝혀 보지 않아도
발밑 두꺼운 먼지를 털어내지 않아도
바람에 휘청거리는 가지가 일구는 거품이
꼬리를 물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숲
둥지를 찾지 못한 아기새 울음이
가슴에 슬퍼할 공간도 남겨두지 않은 채
눈 밖에 둔 벌목공 거친 숨소리와
닮았다 쓴다
천리포 수목원 술래
흔들리지 않는 거룻배를 본다
배는 연못에 묶인 듯 소리도 내지 않는다
나는 흐드러진 개구리밥 사이로
물거품으로도 홍수를 낼 소금쟁이와
바람 혀끝만 닿아도 가시를 떨구어 낼
호랑가시나무 그림자와 숨바꼭질하며
고물에 눈을 숨긴다
천리 길에 초록을 펼쳐놓은 나무들
숲을 통째 눈에 들이고 술래를 기다리지만
술래는 손톱을 세운 채
옷깃 한 자락 숨길 곳 없는 연못만 뒤적거린다
숨 죽인 채 얼마나 있었을까
발등에 오글거리는 개미취
보랏빛 꽃내음따라 연못가로 간다
숨어 있는 내 속눈썹도 찾지 못한
소금쟁이는 어디로 갔는지
처음부터 술래가 아니라는 듯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다
연못과 나무 사이에 바람이 분다
수억 년 발돋움했거나 발돋움 하고 있는
초록 소리 넝쿨 진 숲 속에서 나는
술래 물거품을 지우고 가시 손톱을 자른 뒤
숲이 남긴 향기를 찾는 술래다
호두나무 책장
호두가 열리지 않는 책장 안에
빗돌로 꽃혀있는 책
빛바랜 갈피는 마침표로 입을 다문다
빈지를 떼어낸 모서리엔
셈을 치루고 간 남자 부직포 가방이
어깨가 구겨진 채 웅크리고 있다
온기 마른 서재에서는
뜨거운 커피를 마셔도 입술이 차갑다
여름이 겨울이 되었지만
남자는 계절을 잊었는지 소식이 없다
책과 떨이로 팔린 줄 모르는 책장은
이름 다른 책들을 껴안고 있다
이유없는 떨이는 없다
낡은 책만큼 오래된 책장에서
언제 것인지도 모를
호두 부스러기가 자부작거린다
벌목공에게 숲길을 묻다
치내리바람에 콜레우스 볼 에이던 날
잎은 숨 죽여 가시나무 숲으로 간다
며칠 밤을 지내야 바람이 잦아들지
중얼거리는 입술에 무게를 잴 수 없는
추가 달린다
잎은 허공에 떠 다니는 초침 소리 들으며
밤을 새우고 아침을 헤아린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느 길이 내 길일까
깊은 그늘로 휘어지고 싶을 때마다
허공에 치내리를 묻고 불면으로 꿰맨 시간을
거먕빛 입술로 뜯고 있다
비가 내린다
살아온 날들이 빗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다시 비가 되어 쏟아진다
눈 뜬 새벽, 바람이 사라진다
벌레들이 몸섞는 그늘에 잎을 버려두고
숲 속으로 사라진다
꽃살문 여닫던 손길이 만든 생채기에
혼절한 밤들이 지나고
하얗게 탄 울음이 길목에 선다
복수초
잔설 이고 연두를 만난 건
아직 잠 깨지 않은 언 땅을 밀고
노란 피를 게워낼 때다
잠시 눈 마주쳤을 뿐인데
옷깃 그림자 스쳤을 뿐인데
온기가 묻었나 보다
내 눈 스치고 간 발자국 찾아
봄이거나 봄이 아니더라도
눈 덮힌 이월 숲에 든다
올챙이가 숨방거리는 웅덩이를 지나
상수리나무 등 뒤에 숨은 면사포 쓴 바람에게
복수초 안부를 묻는다
머리카락 감춘 꽃잎 냄새가 난다
숨 참느라 볼이 풍선이다
술래가 된 나비가 숲 속에 눈 버리고
초록바다를 수혈받는 중이다
출판사 서평
추천사
치내리바람에 콜레우스 볼 에이던 날
잎은 숨죽여 가시나무 숲으로 간다
며칠 밤을 지내야 바람이 잦아들지
중얼거리는 입술에 무게를 잴 수 없는
추가 달린다
잎은 허공에 떠다니는 초침 소리 들으며
밤을 새우고 아침을 헤아린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느 길이 내 길일까?
벌목공에게 숲길을 묻는다
깊은 그늘로 휘어지고 싶을 때마다 벌목공은
허공에 치내리를 묻고 불면으로 꿰맨 시간을
거먕빛 입술로 물어뜯고 있다
숲에 비가 내린다
살아온 날들이 빗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다시 비가 되어 쏟아진다
눈 뜬 새벽, 바람이 사라진다
벌레들이 몸 섞는 그늘에 잎을 버려두고
숲으로 사라진다
꽃살문 여닫던 손길이 만든 생채기에
혼절한 밤들이 지나고
하얗게 탄 울음이 길목에 선다
벌목공 손가락이 달을 가르킨다
-「벌목공에게 숲길을 묻다」 전문
이 작품의 화자는 콜레우스라는 식물이다. 콜레우스는 꽃보다 잎이 더 화려한 ‘사랑의 절망’이라는 꽃말을 지닌 식물이다. 도심을 관통하여 부는 바람이 있다. 매우 건조한 바람인 치내리바람이다. 그 건조한 바람에 콜레우스는 볼이 에인다. 잎이 더 고운 나무는 중얼거리던 말도 죽이고 시간에 쫓기듯 밤을 지새고 아침을 맞는다. 숲속에서 길을 잃는다. 길을 찾기 위해 평생 벌목으로 생계를 이어온 숲속에 길을 잘 아는 벌목공에게 길을 묻는다. 벌목공에게 숲길을 묻는 일은 아니러니다. 벌목공은 숲에 살며 나무를 베어내는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숲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벌목공은 나무를 베어내 숲을 축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왜 그에게 숲길을 묻는가. 여기에도 시인의 역설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 숲에서도 길을 잃는다. 벌목공이 나무를 너무 많이 베어내어 숲길이 어지럽혀지고 그곳에서 길을 찾기가 힘들어졌다는 걸 은근히 묻는 듯한 어조다. 나무를 많이 베지 않았더라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과도한 나무 베기가 숲을 망쳐 놓았음을 추궁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벌목이 이뤄지는 것은 숲이 너무 우거져 성장에 지장을 줄 때 간벌이라는 명목으로 벌목을 한다. 아니라면 나무를 목재로 이용하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에서는 벌목공이 나쁜 사람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단지 숲을 잘 아는 사람 혹은 숲길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숲에서는 등대와도 같은 사람으로 읽힌다. 벌목공도 숲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시에서는 숲에 대한 ‘사랑의 절망’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숲에서 그 절망을 치유하고 높고 깊은 사랑을 회복하여 벌목공이 간직해 온 고난의 삶을 치유한다. 콜레오스 잎이 벌목공과 만나서 숲길 어디로 가야 할지 물었을 때 벌목공의 손가락이 달을 가르킨다. 그 의미는 원시로 돌아가라는 의미를 담는 것일 게다. 이 작품은 구조적으로 삼위 일체의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다. 도시에 불어오는 건조한 치내리바람, 사랑이 절망인 콜레오스 잎, 숲의 벌목공이 긴장 관계를 만들며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을 묻는다. 자연 치유력의 근원을 숲이 간직한 원시의 힘에서 비롯됨을 상징한다. 명은애 시인이 지닌 탐구력이 바닥까지 스며들고 있음이다.
드라이드는 숲의 요정이다. 나무와 숲을 보호하고 인간과 숲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요정이다. 환경 파괴가 심각해지는 요즘 숲의 요정에 대한 신화는 자연보존에 관한 인간의 태도와 엮이어 숲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숲의 요정은 숲과 그 생명을 함께 한다고 믿는다. 숲이 사라지거나 시들면 요정도 사라지거나 시든다고 한다. 우리가 숲에 들어 풀잎에 바람 스치는 소리나 나뭇잎이 서로 부딪혀 내는 소리들 즉 숲에서 나는 소리들은 모두 요정이 내는 소리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인간에게 주는 요정의 선물이라는 거다. 숲에 들면 편안해지고 어디서 오는지는 몰라도 행복감을 넘치게 만든다. 도시 생활에 찌든 인간에게 힐링의 순간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은 숲에 한 번이라도 들어 잠시라도 머문 사람이라면 숲의 요정 드리아드의 체취와 향기와 선율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을 느끼는 것은 이미 우리 몸 안에 숲의 요정이 들어와 일체를 이루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숲에 들면 우리의 몸은 태고로 귀의해 간다. 생명이 본향으로의 회귀나 원시의 생명력을 회복해 나가는 것이다. 명은애 시인은 숲은 요정이 갖는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어머니로부터 몸을 받아 하늘을 숨 쉬고 땅에서 먹거리를 얻어 몸을 보전하는 일이 생존이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 이 땅을 살아가는 본령일 수 있다. 그것은 혼자 힘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곁에 누군가가 또는 무엇인가가 있어 먼 길을 올 수 있었고 다시 그 먼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이웃과의 동행, 사물들과 함께하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생존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이 지상에 홀로 설 수 있는 사물은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시인의 관심은 자신에게서 시작하여 타자에게로 확산되어 간다. 타자는 눈에 보이는 타자가 아니라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선물로 받은 난 분 하나도 나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는 남겨질 수 없는 존재다. 난이 가진 생명에 내가 관여하는 일은 어떤 거대한 사명이 주어져서가 아니라 생명이기에 지켜주어야하는 당위성에 몰입해 갈 뿐이다. 시인은 이런 당위성을 내팽개칠 만큼 모진 성격을 가지지 못했다. 기르던 반려견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러 주고서도 한동안 젖은 눈을 거두지 못한다. 심성이 착해서이기도 하지만 생명이 갖고있는 생존의 필연성을 함부로 여길 수가 없는 엄중한 본성의 가르침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냘픈 생명의 끈을 자르지 못하는 심성 즉 깊은 곳에 자리한 애린의 마음이 시인을 꼭 붙들고 있음이다.
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그녀에게는 숲이다
그 나무 문 앞에서 똑똑
문을 열고 들어서서
공기청정기를 빌려 오기도 한다
눈에 든 물비늘 털어내고
몰운대 숲에 눈이 깊어지기로 한 그녀
비자나무 아래 선다
나무를 아는 게 사는 일이라지만
무거운 시간이 쌓인 그루터기는
그녀 아침을 일으켜 물관을 튼다
숲이 일어 선다
습한 언어가 말라 가는 잎맥
안개는 청설모 혀에 숨기고
음수대 앞에서도 그녀는 입술이 마른다
비구름 끌고 오는 딱총새
몰운대 객사 추녀 끝에 구름 내려놓을 때
비자나무 아래 늘어진 그림자가
숲을 닮는다
-「푸른 독거」 전문
몰운대는 다대포 해수욕장 곁에 붙어 있는 나지막한 산이다. 언덕이라고 하면 맞는 그런 산이다. 그곳에는 끊임없이 바닷바람이 지나 다닌다. 몰운대라는 지명도 구름이 소멸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인이 거주하는 집도 몰운대가 내려다보이는 다대포 바닷가 언덕에 있다. 늘상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시인은 시적 화자를 등장시켜 자신을 대신하게 한다. 눈에는 들인 바다가 산다. 바다에 이는 물비늘이 눈에 들어와 사는데 그것을 털어내고 이제는 몰운대 숲에 눈을 보내기로 작정한다. 숲과 만나는 방식이 독특하다. 그녀는 숲으로 가서 요정과 만난다. 나무 한 그루에도 숲이 있음을 알고 그 숲에 들기 위해 나무에게 노크를 하면 숲이 문을 열어 준다. 그러면 나는 숲에 들어가서 공기청정기를 빌려 온다. 공기청정기는 숲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숲이 눈을 깊어지게 한다는 것은 숲을 충분히 내 안에 들이겠다는 다짐같은 표현이다. 그런 다짐을 새기고 비자나무 아래 선다. 그리고는 나무를 아는 것이 사는 일이라고 삶을 정의한다. 나무를 아는 일은 쉽지가 않다. 가까이 나무와 자주 만나서 쳐다보고 만져주고 일상 속으로 나무를 들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서 있는 나무보다는 밑둥이 잘려 나간 나무 그루터기에 먼저 눈이 간다. 누가 나무를 잘라 갔는가. 의문을 품기 전에 나무가 먼저 내게 와서 나의 아침을 일으켜 세우고 내 속에 도는 물관을 트게 해 준다. 이는 나무와 일체가 된 화자를 만나는 일이다. 물관은 나무의 핏줄이다. 뿌리에서 길어 올린 수분을 나뭇잎 끝까지 운송하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 물관이다. 나무에 있는 물관이 내게도 있다. 나도 나무가 된 것이다. 물관이 물을 퍼 올린다면 나의 물관은 언어를 퍼 올린다. 나무의 물관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나뭇잎이 마른다. 내 물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나에게 언어가 말라간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를 담는다. 청설모는 이빨이 날카롭다. 나무를 타고 다니며 벌레나 다람쥐를 잡아먹고 산다. 청설모 혀에다 안개를 숨긴 그녀는 음수대 앞에서도 입술이 마르는 절박함에 빠진다. 그때 날아든 딱총새가 숲으로 비구름을 몰고 온다. 몰운대 언덕 높은 곳에 이전하여 세워둔 객사 추녀 끝에 물방울을 매단다. 몰운대 숲에 비가 내리는 신호다. 비자나무 아래 선 그림자가 숲이 된다. 이런 전개 구조를 지닌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명은애 시인이 숲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준다. 나무 그늘에 선 그림자가 숲이 되는 과정을 풀어낸다. 그 과정에 청설모와 딱총새가 숲과 나와의 관계를 따뜻하게 이어준다.
기본정보
ISBN | 9791198953773 |
---|---|
발행(출시)일자 | 2025년 04월 10일 |
쪽수 | 128쪽 |
크기 |
125 * 205
* 10
mm
/ 294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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