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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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한 조각
1980년대~1990년대, 한국사회의 진보와 민주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 그 역시 뜨겁게 타올랐으나 하나의 ‘세대’로 호명되지 못한, 우리 현대사와 운동사의 한 조각이 있다. 고등학생운동, 고운이 바로 그것이다. 고운은 1987년으로 상징되는 사회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 자신을 정치적, 사회적 변혁의 주체로 명명하고 이 사회와 자신의 현장이기도 한 교육현장을 바꾸겠다 실천해온 10대들의 운동으로, 이 책은 고운의 역사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기록한 첫 번째 시도다.
사회변혁을 위해 함께해온 주체들이었으나, 가까이로는 ‘386세대’로 명명되는 대학생운동 세대와 달리 하나의 세대로 발명되지도, 호출되지도 못했다. 이들의 활동은 그간 개인의 고립된 기억으로 남아 있었을 뿐 사회적 기억으로 기록되지 못했다. 그나마의 기록 역시 ‘선생님 사랑해요’로 대표되는, 전교조 선생님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순수한 제자들’의 모습, 전교조 운동의 조력자로서 지나치게 납작하게 축소되어 있다. 전교조가 출범하고 강력한 탄압을 받았던 1989년에 전국의 중고생들이 전교조 투쟁에 강력히 연대했고 고운이 이때 크게 부흥한 것 역시 사실이나, 그것만으로 고운을 기록한다는 건 왜곡에 가까운 축소다. 이 책에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이들은 사회를 바꾸고자 나선 불온한 위반자들이자 한국 민주화운동을 함께 이뤄온 정치적 주체였다.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변혁의 흐름을 만들어온 운동 세력의 하나이며, 이후 한국 사회의 운동 곳곳 광장 곳곳에 이들의 흔적과 시간이 새겨져 있다.
그와 동시에 이들은 반민주, 반노동 세력뿐 아니라 그들에 맞서는 ‘어른들’에게서도 우려의 시선을 받아야 했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었고, 학교에선 체벌과 입시 경쟁이라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이들은 강고한 연령주의,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교육현장 등 다중의 압력 속에서 세계와 자신의 현장을 바꾸고자 치열하게 싸우고 아파했던 ‘전사’이기도 하다(10대 학생들이 한국 근현대사에서 정치적 존재로서 서지 않은 적이 없는데도, 정치적 존재로서의 10대를 여전히 매번 ‘새롭게 발견’하는 우리 사회의 강고한 보수성이 고운을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축소해왔을 가능성 역시 높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은 빠져 있던 우리 운동사의 조각 하나를 찾아 맞춰 끼우는 시도이자, 우리 근현대사에서 언제나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정치적 존재로서의 10대를 소환하는 시도라 할 수도 있겠다.
작가정보
여성·평화·장애 운동을 넘나드는 활동가. 팔레스타인에서 인권활동 중에 건강이 손상되면서, 질병에 관해 사유하게 되었다.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통해 ‘잘 아플 권리’(질병권)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동명의 연극을 기획했으며, 《한겨레》 《일다》 《민중언론참세상》 등에 질병, 페미니즘, 진보사회에 관한 글을 연재했다. 영역과 형식에 갇히지 않는 활동을 중시하며, 사회단체 다른몸들에서 동료들과 질병권과 돌봄 관련 운동을 개척 중이다. 저서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돌봄이 돌보는 세계』(공저), 『질병과 함께 춤을』(공저), 『아픈 몸, 무대에 서다』(공저), 『비거닝』(공저), 『고등학생운동사』 등이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한겨레》 기자, 《한겨레21》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4천원 인생》(공저), 《뉴스가 지겨운 기자》 등이 있다.
연세대 국문과 교수. 구술 서사를 연구하며 목소리의 이질성과 다층성을 드러내는 서사 운동과 목소리의 연대를 수행 중이다. 지은 책으로 《전기, 밀양-서울》, 《밀양을 듣다》(공저), 《소록도의 구술 기억》(공저) 등이 있다.
목차
- 추천사_박래군ㆍ장일호
들어가는 글: 유배되고 고립된 개인의 기억에서 세상을 바꿔내온 사회적 기억으로_조한진희
1 생을 건 언행일치를 배우다_김소연
2 사랑하라! 희망도 없이, 말도 없이……_전성원
3 어느 ‘희생’의 기록_김대현
4 어떤 행운_정경화
5 ‘91년 세대’의 꿈_김성윤6 나의 불온한 사춘기_이형신
7 우리의 뜨락_안수찬
8 전교조 1세대가 26년 차 전교조 조합원에게
9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_권정기
10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_김영희
11 위반한 존재들, 고운활동가_조한진희
12 참교육을 넘어 고등학생운동을 기억하기_전누리
[토론회] 1980~1990년대 고등학생운동의 의미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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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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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모자이크화를 본 것 같다. 익명과 무명의 자리에서 걸어 나온 생생한 이야기들이 한국 현대사의 한 조각을 기어이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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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루어낸 성과와 그보다 더 많은 갈등과 조절을 아프게 읽는다. 11명 활동가의 이야기에 가슴 뜨거워지고, 눈물도 나고, 안타까워서 가슴 졸이기도 하면서 읽어야 했다.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준 그 시대의 전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책 속으로
이 책을 통해 고운이 개인의 유배된 기억을 넘어서고, 사회적 기록으로 형성될 것이다. 당시의 고운이 한국 사회에 무엇이었는지 성찰과 토론, 비판적 평가와 의미화가 이어지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정치적 주체로 늘 광장에서 외쳐왔지만, 매번 ‘재발견’되는 ‘미숙한 10대’라는 규명도 이제 그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서의 푸르고 어린 청소년이 아니라, ‘정치적 존재로서의 10대’가 한국 사회에 새롭게 소환되길 바란다._37쪽, 들어가는 글
정화여상 투쟁은 학생회나 특정한 조직이 아닌 평학생들의 분투로 만들어진 투쟁이었고, 우리가 자율적으로 학교를 운영할 때 스스로 1부와 2부의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려 했다는 점 등은 이후 내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데 하나의 원형적 원칙을 심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_71~72쪽, 김소연
인간은 서로 연대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우리는 잠시 열린 1980년대의 하늘을 함께 엿보았지만, 그 대가치곤 너무 오랫동안 아팠고, 외로웠다. 앞서 이야기했던 열사들의 죽음도 잊히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창진의 죽음은 그들보다 더 무명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창진이가 꿈꾸었던 세상을 알고, 그와 같은 꿈을 꾼다. 누군가 내게 왜 그토록 오랫동안 하나의 잡지를 만드는 일에 자신을 불태우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 그 일마저 멈춘다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고 싶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고 시시한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 것, 어차피 사람은 그 정도 일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_108쪽, 전성원
난 이미 5월부터 연합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광고협 의장과 함께 수배가 내려져 집은 물론이고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주로 전남대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시위를 기획하고 다른 학교들을 방문해 시위를 독려했다. 학교 당국은 연합집회에 참석하고 학교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을 찾아 퇴학과 자퇴로 위협했다. 실제로 학교와 부모님에 의해 강제 전학을 당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정부 당국은 어린아이들의 철없는 행위로 우리의 모든 행위를 폄하하고 부모님을 동원해 학교 출입을 막았다._128쪽, 김대현
내가 가입한 비밀 소모임은 한 운동 조직의 고등학생 조직이었는데 보안이 철저한 점조직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대학생, 노동자의 연대 투쟁으로 세상을 바꾸고 고등학생 정치세력화를 통해 교육제도를 개혁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곳이었다. 비밀 소모임의 학습 방식은 체계적이었고 목포에서는 구하기 힘들었던 책들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선배가 정해준 책을 읽고 학습모임을 진행했다.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결심을 굳힌 뒤로 나는 신촌의 알서림이나 성균관대 근처에 있던 풀무질 등 사회과학 서점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노동조합에 관련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고, 꼭 필요한 책은 용돈을 아껴서 구입했다._181쪽, 김성윤
많은 고민과 갈등의 흔적이 일기에 쓰여 있지만, 투쟁하는 생산직 노동자로 살겠다는 진로를 선택한 후 내 얼굴에는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는 듯했다. 내 삶을 내가 결정하고 선택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가슴 벅찼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몰려가는 대학시험을 나 스스로 거부했고,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애벌레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주체적인 인간이 되었다는 자부심 덕분이었다._156쪽, 정경화
KSCM과 흥고아 같은 공개단체의 중요한 역할은 중고생들이 모이는 '기회'와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고등학교운동의 중점적 방향에 대한 의제를 제안하고, 구체화하며, 사회적으로 이슈화하는 스피커 역할을 했다. 단위학교 활동가들의 학교현장에서의 활동을 지원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공개단체는 실무적 역할도 많이 맡게 되었는데, 내가 KSCM 서울연맹 회장을 하던 1990년에만 대외행사를 열한 번 개최했다._220쪽, 이형신
한국의 교육 체계에 공동체적 연대 정신이 깃들었던 아주 잠깐의 시공간을 우리 말고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은 고통을 나누고 저항을 함께 하는 연대에서 비롯할 것이다. 우리의 운동은 딱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조용히 잊히고 있다. 아마도 거기에, 대구 고등학생운동이 나에게 부여한 마지막 과업이 있을 것이다. 님 웨일즈가 되어 수많은 김산의 이야기를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적어 알리는 과업이다. 꼭 완수하겠다고 뜨락의 친구들에게 사과하며 약속한다._285쪽, 안수찬
나는 전교조 교사들을 응원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지지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당시 단식 투쟁 중인 선생님들을 따라 제자인 우리도 도시락을 먹지 말자고 반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반에서 열 명 정도의 친구들이 도시락을 먹지 않았다. 우리가 도시락을 먹지 않고 반납한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다. 우리는 도시락을 그대로 교장실 앞에 두었다. 우리들의 도시락 반납 투쟁은 생각한 것보다 효과가 컸다. _301~302쪽, 양민주
KSCM에 들어간 후 처음으로 준비했던 행사가 1989년 4·19 기념행사였다. 이때 뭔가 고등학생다운 행사를 만들고 싶어서, 기존의 대중가요나 민중가요의 가사를 바꿔서 노래를 부르는 형식으로 4 ·19 기념 고등학생 노래가사 바꿔부르기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중략) 행사가 끝나고는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같이 강강술래도 하고 꼬리잡기도 하는 대동놀이를 하며 뒤풀이를 했다. 민중가요의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했지만 익숙한 대중가요의 가사를 바꾸어서 학교 현실에 대한 유쾌한 풍자와 비판을 했던, 형식과 내용에서 매우 참신했던 행사였다._327쪽, 권정기
나는 나의 이야기가 그 시절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할 수도 없고 고등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보편적 역사가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중략) 나의 야이기는 그저 나의 ‘말’일 뿐이지만, 나는 이 ‘말’이 누군가의 또 다른 ‘말’을 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닫힌 말문을 여는 첫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_353쪽, 김영희
전교생이 스탠드에서 울 때 함께 울었다. 찬란하게 승리한 투쟁이었다. 당연히 이는 학생자치권 투쟁의 승리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날 불의 앞에 물러서지 않고 싸워봤던 경험은 고운과 전혀 접점이 없던 평범한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드물게는 졸업 후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 더 많게는 소시민으로 살더라도 불의한 일이 있을 때마다 광장에 나가 짧게라도 구호를 외치고 오는 삶을 살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 단결된 힘으로 부당함에 맞서봤던 그 하루가, 자신의 세계관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30년이 지난 지금도 한번씩 듣는다._412쪽, 조한진희
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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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한 조각을 기어이 완성하는, 익명과 무명의 자리에서 걸어 나온 생생한 이야기들.
_장일호(《시사인》 기자, 《슬픔의 방문》 저자)
그들이 이루어낸 성과와 그보다 더 많은 갈등과 조절을 아프게 읽는다.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준 그 시대의 전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_박래군(4·16재단 운영위원장,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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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회변혁의 역사를 함께해온 ‘전사’들
책이 기록하고 있는 고등학생운동의 장면들은 이렇다. 학교 안에서는 ‘대통령도 국민 손으로 직접 뽑는데, 학생회도 학생 손으로 직접 뽑아야 한다’며 학생회 직선제를 쟁취해낸다. 학교와 싸우기도 하지만 노련하게 협상을 이끌기도 한다. 사학비리에 저항해 학교를 점거하고 전교생이 시내 행진을 하고 학년 전체가 백지 답안지를 제출한다. 새벽에 유인물을 인쇄해 교실 책상 서랍마다 넣어두고, 종이비행기를 함께 접어 동시에 전교생이 날리는 장관을 만들어낸다. 사회과학 서적을 함께 읽으며 교과서 밖의 지식과 사회를 구조적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만든다. 독서 모임, 풍물패, 연극반, 토론반 등 학생들이 운영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틔우는 소모임 활동도 열심히 하는데, 그곳이 또한 우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다. 시국집회에도 참여하고, 참교육운동의 또 다른 주체로 스스로를 명명하며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연대’한다. 강제적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폐지, 교복과 두발 자유화, 체벌 금지 등을 요구한다. 지역 내 고교생 대표자 협의체를 출범시킨 지역도 여럿이다.
작게는 아침마다 교실에 《한겨레》를 가져다 두어 친구들이 돌려 읽을 수 있게 하는 ‘참교육운동가로서의 실천’부터, 크게는 4ㆍ19나 11월 3일 학생의 날과 같은 고등학생운동의 계보에서 중요한 날에는 공개행사로 기념제를 주최하거나 연합집회를 주최하기도 한다. 고운의 활동과 세력이 정점에 달했던 1989년(전교조 출범) 광주 지역에서는 고등학생 대표자 협의회(광고협)가 주최한 연합집회에 2만 5,000명이 모였고 전경과의 투석전까지 벌어졌으며, 고등학생인 지도부 몇 명은 구속까지 됐다. 서울 지역에서는 1988년 1,000여 명의 학생과 교사가 운집한 자살학우 추모제와 같은 대규모 행사를 고운 세력이 열기도 했던 식이다. 일주일이 7일뿐이고 하루는 24시간뿐이어서 애가 타고, 운동할 시간도 학습할 시간도 충분한 대학생운동권이 부러울 정도로 뜨겁고 바쁘게 시간을 살아냈다는 이들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현장에 투신한 이들, 고운을 지원하는 지도선배나 지도교사로 활동했던 이들도 여럿이다. 정성묵, 김수경, 심광보, 김철수라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 부정의에 항거했던 고운 ‘열사’들의 이름 역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이 정치적이고 불온한 주체로서 활동했던 11명이 각자 자신의 언어로 이와 같은 고운 당시의 활동, 내용, 고민, 평가를 비롯해, 자신에게 미친 고운의 영향, 한국 사회 혹은 운동사에서 지니는 고운의 의미 등을 기록했다. 당시 사학비리 투쟁의 선봉에 있었던 정화여상 학내민주화 투쟁(김소연), 노태우의 직선제 당선과 함께 노태우를 당선시킨 기성세대의 각성을 요구하며 결성된 서울 지역 고등학생들의 정치 연합체 서고련(전성원), 진보적 사회운동의 기운이 남다를 수밖에 없던 전남, 광주 지역의 고운의 정치적 역량을 분명히 드러냈던 광고협 등 광주, 전남 지역의 고운(김대현, 김성윤), 고등학생운동의 씨실을 짜낸 공개단체 KSCM과 흥고아의 역할(정경화, 이형신, 권정기, 조한진희, 김성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대구에서 고등학생 대표자 연합체와 전국 단위의 전고협을 꿈꾸었던 전위조직의 이야기(안수찬), 전교조와 고운의 관계(양민주, 정경화 등), 고운의 방향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부산 지역 고운의 이야기(김영희) 등 당시 고운의 다양한 활동과 함께 제각각 어떻게 그 시간을 통과해왔는지를 담았다.
당사자들의 언어로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1980년대~1990년대 고운의 의미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어 그 기록을 담았으며, 고운 열사들의 삶과 죽음을 소개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관점을 담은 연구자 전누리의 글도 함께 배치해 책의 의미를 더했다.
3. 균질하지 않은 목소리들의 모자이크
이 책은 균질하지 않은 기록이다.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으로 그 시간을 기록하지도 않았다. 고운 연구자로서 고운 열사의 삶과 그 죽음을 다룬 전누리를 제외한 11명의 저자는 모두 고운 활동을 했던 당사자이나 활동했던 지역도, 성별도, 활동 분야나 활동 당시 처해 있던 상황에도 차이가 있다. 이들은 당시 운동에서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내용도 다르고, 운동에 개입한 정도와 강도에도 차이가 있다. 단단한 승리의 경험을 중심에 둔 기록도 있고, 자랑스러움과 더불어 죄책감과 상처를 중요하게 기록하는 이도 있다. 기본적으로 저자 개인이 각자 자신이 통과해온 시간과 기억을 기록한 작업이기에 같은 사건이나 대상에 대해 평가와 기억이 다르기도 하다.
이 책은 하나의 관점에서 매끄럽게 해석되고 쓰였다고 할 수 없으며, 어느 정도는 ‘날것’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오히려 이 책은 고운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와 해석으로 더 많은 이들을 초대하고자 하는 자리에 가까울 수 있겠다. 본격적으로 고운을 우리 민주화운동사 안에 기록하는 시작점일 수 있을 것이며, 이 책에 미처 담지 못한 여러 이야기와 다양한 분석과 해석을 촉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한편 이 울퉁불퉁한 기록들을 읽으며 우리는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이 사회적 흐름, 구조와 어떻게 맞닿고 떨어지는지를 자연스럽게 확인하게 된다.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과 7ㆍ8ㆍ9월 노동자대투쟁, 대통령직선제, 1989년 전교조 출범, 1991년 5월 이후의 분신정국과 같은 사회변혁의 역사적 흐름 위에서 10대였던 당시 고등학생들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10대였다는 특징으로 인해, 역사와 개인이 만나 그 삶의 각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 책은 1980~1990년대 고운이 진보적 사회운동의 어떤 조각이 되어 새겨져 있는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하나의 세대로 명명되거나 호출되지 않았을 뿐, 고운의 시간을 동시적으로 경험한 이들은 한국 사회 ‘진보’의 마디마다 작용하고 있다. 물론 고운 활동을 했던 모든 이들이 활동가나 진보운동의 영역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 책의 저자들 역시 제각각의 경로를 밟아왔다. 하지만 고운 출신임을 밝히지 않았던 이들 중 사회운동을 해왔거나 그 자장 안에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며, 고운 활동이 그들의 동 세대에게 미친 영향 역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몇몇 저자들은 성인이 된 후, 고운 활동 당시 ‘동지’로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함께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고, 학교에서 불의에 맞서 함께 싸워봤던 경험이 자신을 조금 더 진보적으로 만들었노라는 이야기를 해준 친구들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학생들의 운동을 통해 ‘의식화’된 교사의 사례들도 책 속에 등장한다.
4. 끈과 계보: 개인의 기억에서 사회적 기록으로
기획자 조한진희에 따르면 이 책은 고운의 끈과 계보를 만드는 기획이기도 하다. 운동 사회 안에서도 학력과 학벌이라는 자원이 강력하게 작동해온 한국 사회에서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곧바로 ‘현장에 투신’한 이후 운동가의 삶을 살아왔던 고운 활동가들이 겪었던 또 다른 소외는 우리의 보수적 민낯 중 하나다. 목적의식적으로 운동의 삶을 선택했으나 자신의 삶을 설명할 끈이 없었던 이들의 삶이 이제 더 이상 개인의 고립된 기억이 아니라 사회적 기록으로 남겨져야 할 것이다.
또한 고운에 대한 개인의 기억들이 사회적 기억이자 기록으로 묶여 나온다는 것은 민주화운동사에 빠져 있던 조각을 맞춰 넣는 작업이자, 한편으로는 지금 청소년인권운동과의 접점과 계보를 잇는 작업이라는 점도 짚어야 한다. 이 책을 계기로 고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평가가 활발해져 ‘정치적인 주체로서의 10대’가 중요하게 소환된다면, 고운이 지금 청소년인권운동에도 비판적 유산으로 더 단단히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 사회운동, 진보와 같은 주제는 새롭게 해석할 수는 있어도 논의를 멈출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단순히 고등학생운동이라는 과거를 기록하는 데서 나아가, 사회운동의 다면성, 청소년인권운동, 교육현장, 정치적 존재로서의 10대 등 지금 여기에 다양한 현재적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을 위해 고운이 사회적 기억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이들이 고운을 기억하는 데 연루되어주기를 기대한다.
기본정보
ISBN | 9788972971566 |
---|---|
발행(출시)일자 | 2025년 03월 30일 |
쪽수 | 516쪽 |
크기 |
150 * 225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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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피해보상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2)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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