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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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명희가 전하는 다정하고도 힘찬 위로
권정생문학상·오영수문학상 수상 작가, 『어느 날 난민』 표명희 신작
작가정보
목차
- 딸꾹질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
오월의 생일 케이크
개를 보내다
작가의 말
수록 작품 발표 지면
추천사
-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평범한 청소년들이다. 도시에 살며 입시 부담에 짓눌리고, 사회문제에 딱히 관심이 있지도 않고, 정의나 인류애 따위에도 그다지 관심 없는 청소년들. 작가는 이 지극히 평범한 청소년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 낸다. 이주 배경을 가진 학생이 20만 명이 된 한국 사회에서 친구 중 한두 명은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을 테고, 네 가정 중 한 가정 이상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며, 한부모가족 또한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가 겪은 사회적 참사, 역사적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일이거나 이웃의 일일 가능성이 크다.
작가가 세밀하게 그려 낸 한국 사회의 현재가 너무 생생해서일까, 소설 속 인물 하나하나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편의점 혹은 학교 복도에서 만난 친구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사는 현실을 돌아보게 되고, 공감하는 마음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책 속으로
386이라는 말만 나오면 엄마 아빠는 마치 숫자 놀이라도 하듯 온갖 수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4·19, 5·16, 5·18, 10·26, 6·29, 5공, 6공까지 버스 번호 같은 헛갈리는 숫자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엄마 아빠가 예전에 살았던 세상은 어느 수학자의 말대로 세상이 온통 수로 이루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16면 「딸꾹질」)
아빠는 ‘이변’에 대해서 이전과는 다르게 얘기했다. “이런 이변이 있어야 세상은 살맛이 나는 거야.” 엄마도 끼어들었다. “맞아, 이렇게 한 번씩 숨통을 틔어야지. 세네갈이 프랑스를 이기고,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기고…….” 아빠도 신나게 말을 받았다. “흑인이 백인을 이기고, 작은 놈이 큰 놈을 이기고…… 공 하나가 그 모든 걸 가능케 해 주니 얼마나 대단해!” (29면 「딸꾹질」)
“3개월을 고민했어, 졸업장 놓고 저울질하며…….”
저울질에서 졸업장과 겨룬 것이 뭐였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짐작이 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니 그것이 뭔지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에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그 고민의 3개월이 내 눈에 선히 그려졌다. 어둠 속에서 탯줄로 연결된 그 무엇이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거나, 요람에서 사지를 버둥대며 앵앵거리고 있었을 터였다. (58면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
서울에서 살 때는 역 주변에서 더러 이런 홈리스를 보았지만 이 동네에서는 처음이다. 길 잃은 미운 오리 새끼를 우연히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지만 부리에 쪼일 것 같아 선뜻 손을 내밀기도 어려운……. (67면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
“그래. 엄마를 뺏긴다 생각하지 말고, 엄마로부터 해방된다고 생각해. 그 아저씨한테 넘겨 버려. 엄마에 대한 너의 부담을…….”
이런 말 할 때의 나영이는 진짜 어른 같다. 가족 문제라면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태도다. 그건 보라와 나도 인정한다. 보라네도 우리 집도 다 문제가 있지만 나영이 경우에 비할 바는 아니다. (81면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
“오, 민서구나.”
민서는 대문을 열어 준 큰아빠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어릴 적친구한테 얻어맞고 왔을 때처럼…….
큰아빠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민서를 안은 채 예전처럼 묵묵히 머리만 쓰다듬었다. (99면 「오월의 생일 케이크」)
그해 겨울 내내 아빠는 커다란 바위 앞에서 1인 시위 하는 사람 같았다. 큰아빠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자 결국 아빠가 큰아빠 멱살을 잡는 일까지 갔다. 그때 처음으로 큰아빠는 울부짖듯 외쳤다.
‘그걸 어떻게 보상해? 국가가 어떻게 보상하냐고! 돈으로? 웃기지 말라고 그래!’ (105면 「오월의 생일 케이크」)
민서는 왔던 길을 혼자서 갈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큰아빠와 같이 가 보고 싶었다. 예전처럼 큰아빠와 다시 그 길을 걸어가면 어떨까? 그 상황에 다시 한번 처한다면, 무엇보다 큰아빠가 곁에 있으면, 뭔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전과는 분명 다를 것 같았다. 아니 달라야 할 것 같았다. (109면 「오월의 생일 케이크」)
퇴원과 함께 진서는 태권도장은 물론 친구들과의 관계도 다 끊었다. 그 뒤로는 학교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 방에 틀어박힌 채 게임만 했다. 사이버 세상이야말로 정의와 평화의 세계였고, 게임 왕국에서는 진서가 최고의 영웅이었다.
“둘이 빼닮았어. 진주는 애견계의 히키코모리네…….”
삼촌은 게임에 빠져 있는 진서와 외딴섬처럼 베란다에 격리돼 있는 진주를 그렇게 연결시켰다. (127면 「개를 보내다」)
녀석은 까만 눈동자를 또록또록 굴리며 진서와 먹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낯선 일이라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접시 쪽으로 다가가서도 녀석은 냄새만 맡을 뿐 선뜻 입을 대지 않았다. 몇 번이나 킁킁대다 결국 생선 살 유혹에 넘어갔다. 꼬리까지 흔들어대며 진주는 새로운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진서는 가슴이 뿌듯해 왔다. (130-131면 「개를 보내다」)
기본정보
ISBN | 9788936457334 |
---|---|
발행(출시)일자 | 2025년 03월 21일 |
쪽수 | 144쪽 |
크기 |
141 * 211
* 14
mm
/ 322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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