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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의 춤

이남산 소설집
이남산 저자(글)
청어 · 2025년 0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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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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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이남산

2018년 『한국소설』 신인상을 수상, 단편소설 「수피」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20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 공모에 수혜자로 선정. 한국소설가협회에서 ‘2020년 신예작가’로 선정됐다. 소설을 쓰면서 서양화를 그리는 미술작가(본명 이민경)이다. 소설집 『나부의 춤』과 공저 『이승의 한 생』 『2020 신예작가』가 있다.

작가의 말

그동안 문예지에 발표했던 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묶는다. 새로운 표지와 표제를 정하고 다시 수정하면서 초고를 썼던 감성이 복기되는 과정이었다. 의식을 치르는 마음으로 품고 있던 글을 마지막으로 읽었다.
이 책에는 나의 모든 감정 요소가 들어있다. 열정과 나태, 갈증과 해소 그리고 정화와 치유를 가공의 인물 속에서 찾으려 했다. 누구나 품고 있는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으며 일상 뒤에 숨어버린 외면된 슬픔을 직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면 소리에 귀 기울여 글을 썼다. 의미 있는 중요한 대상에게 받은 상처가 삶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접근해 보았고 꿈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정도 말했다. 현실 세계 부조화에서 정신적 균형감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을 모색했다. 때론 결말의 매듭을 짓지 않고 방관하듯 내버려두었다. 최선이 아닌 차선의 방법이 해답일 수도 있다. 독자가 각기 다른 답을 찾아주길 바랄 뿐이다.
갈등과 역할 부재에서 오는 결핍, 상실감을 말하면서 가족의 해체에서 부조화 원인을 찾는 의식의 무의식화가 되었는지 모른다.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소설을 쓴다는 이유로 허구인 것을 내세워 독자의 묻어둔 아픔을 헤집어 놓았을지도 모른다. 부디 작가의 의도를 살펴주길 바라며 공감과 위안이라는 무형의 변형된 형태로 마음에 남길 바랄 뿐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희망으로 오늘을 이겨내고 꿈꾸는 것으로 새로운 삶을 일궈간다면 분명 아름다운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것만으로도 고단한 현실은 과정일 뿐 삶의 축복일 것이다.
글과 그림은 내 영혼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림은 온전히 작가의 주관적인 것을 담는다면 소설은 타자의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상대적 창작물이다. 사용하는 도구는 다르나 감상자에게 묵직한 위로가 된다고 생각된다. 그 처방의 도구를 찾기까지 고단함이 따르지만 해야만 하는 당위성에 나를 묶어두게 된다. 독자를 향한 하나의 예술 행위를 위해 창작이라는 이름을 빌린다. 그 뒤에 따르는 물리적 고독의 시간을 나는 사랑한다.

2025년 봄을 기다리며
이남산

목차

  • 작가의 말 6

    해방고시원 13
    나부의 춤 49
    수피(樹皮) 73
    불 꺼진 창 99
    선택의 변명 129
    드림캐처 155
    일그러진 초상 185
    회전레일 213
    푸른 날개 241

    해설 │ 박다솜(문학평론가) 269
    수피(樹皮)의 온기 267

책 속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뜨거운 춤사위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숲속은 어둡고 나무는 빼곡하다. 나무는 부피를 늘리지 못하고 키만 키웠다. 나무들이 빛을 찾아 하늘로만 솟았다. 가느다란 나무에 잎이 무성하다. 줄기와 잎들이 얼기설기 제멋대로 엉켜있다. 흡사 죽은 자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는 모습이다.”
*해방고시원
밖이 부산하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인데 복도에서 나는 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방문을 여닫는 소리, 이방 저방 옮겨 다니는 발걸음 소리,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낄낄 웃는 소리. 자기들끼리 조심한다고 목소리를 낮춰 말하지만, 고스란히 들렸다. 해방고시원 22호, 23호 공시생들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공시생들은 항상 허겁지겁 뛰쳐나갔으며 술을 마시고 늦은 시간에 들어왔다. 그런 다음 날은 학원에 가지 않고 정오까지 늦잠을 잤다. 술을 먹지 않고 들어오는 날은 지금처럼 분주하게 서로의 방을 오갔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맨 위층에 머무는데 두 개의 방이 붙어있는 곳을 원해 아래층에 있게 됐다. 처음 입실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일어나 주의 시키고 싶었지만 싫은 소리 하기가 나한테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청춘의 시간을 보내는 일도 힘겨운 것을 알고 있어서 저 정도의 소음은 참았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그들이 오래 있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계속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다. 이번에는 새벽에 나갔던 틀니 아저씨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술을 많이 마신 것을 알 수 있다. 틀니 아저씨는 술이 과하면 치아 사이로 방울뱀 지나가는 소리를 내며 헛기침하는 버릇이 있다. 목이 아픈 것인지 치아가 아니 틀니가 불편한 것인지 염려가 될 정도였다. 방으로 들어가서도 한참 동안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 고는 소리가 났다.
짙은 밤이 될수록 시나리오를 쓴다는 옆방 안경 여자의 자판 소리와 마우스 클릭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안경 여자와 마주친 적은 거의 없었다. 키가 작고 안경을 썼다는 것 외에 이목구비와 음성은 모른다. 그녀도 나처럼 사람을 피했다.
그들과 이야기해 보지 않았지만, 어떤 생활을 하는지 그려졌다. 이곳에서 극도로 말하지 않고 살지만 청력의 기능은 나날이 예민해졌다. 소리에 민감한 만큼 입을 닫았다. 그들끼리 마주치며 나누는 이야기, 고시원 원장이 친밀감으로 건네는 인사말에서 잡다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고시원 원장은 아침 아홉 시 출근해 저녁 아홉 시에 퇴근했다. 총무가 따로 있지는 않았다. 밤늦은 시간에 소음으로 불편한 경우 입실자들은 벽을 두드리거나 나가서 노크로 주의 시키곤 했다. 때론 서로 마음이 상해 큰소리가 오갔다. 고시원 원장이 출근하면 지난밤 별일 없는지 나에게 물었다. 그 물음이 불편할 적이 많았다. 핸드폰으로 연결된 CCTV를 통해 알 수 있지만, 항상 인사처럼 나에게 말을 걸었다.

불면으로 또 새벽을 맞이했다. 시계를 볼 적마다 숫자는 한 시간씩 넘어갔다. 잠과 사투 끝에 패잔병으로 어둠을 마쳤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거울을 봤다. 얼굴에 어둠이 들러붙어 있다. 잠을 자지 못했다는 심리적 피로감을 떨치기 위해 청소함에서 대걸레를 집었다.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며 고시원 복도를 힘차게 밀었다. 천장에 붙어있는 검은색 감시자를 슬쩍 쳐다봤다. 고시원에서 벌어진 일들을 들여다보듯 CCTV는 어두운 시선으로 나를 주시했다. 곳곳에 있는 검은 감시자는 고시원 전체를 지켜봤다. 원장이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어깨가 움츠러졌다.
해방고시원에서 칠 년을 살았다. 처음 일 년을 보낸 뒤부터 청소하는 일을 계속했다. 이 일이 싫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활에 보탬도 되고 불면증과 우울증, 대인기피증이 있는 나로서는 최적의 일이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새벽 청소로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무기력증에서 잠시라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일이 얼마 전까지 유일한 직업이었다. 고시원 원장이 몇 해 전에 총무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했었다. 은둔형인 나에게 쉽지 않은 제의였고 큰 배려를 해주었지만, 아직은 그럴 자신이 없었고 개운치 않은 원장의 호의도 꺼림직해서 거절했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불신은 불면과 우울처럼 항상 따라다녔다.
청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두 평 남짓 좁은 방의 천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창문과 지저분한 짐들이 보였다. 곳곳에 놓인 종이 쇼핑백은 어림잡아 스무 개도 넘었다. 짐이라고 할 것도 없는 허접한 것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누추한 짐이 보기 싫어 창문 쪽으로 돌아누웠다. 창틀에 있던 새벽 냉기가 내려와 서늘했다.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졸음이 쏟아져 눈이 반쯤 감겼다. 게슴츠레 뜬 눈 사이로 창백한 아침 하늘이 보였다. 몇 년 전 창문 없는 방에서 지냈던 때가 생각났다. 처음 해방고시원에 들어왔을 때 나는 아무것도 체감하지 못했다. 답답함도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고 모든 감각과 생각이 마비되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살았는지 모른다. 현실을 깊이 생각했다면 지금쯤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창문 있는 방으로 옮기기까지 오 년이 걸렸다. 오십 센티미터 창문을 품기 위해 매달 오만 원의 돈을 더 지급해야 했다. 해방고시원 내에서 방을 옮겼을 때 작은 창문만큼의 기쁨이 있었다.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첫 번째로 기억되는 특별한 날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창문은 나에게 사치 품목으로 여겨졌다.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에 한동안 편치 않았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소음은 유일하게 바깥세상과 연결해 주었고, 햇빛과 바람은 고뇌를 잠시 잊게 해주었다. 네모난 작은 하늘은 푸른색, 붉은색, 먹색 등 시시때때로 변화무쌍한 하늘을 볼 수 있게 해주었고, 삶의 빛도 함께 보여주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나는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꿈틀거렸다.



■ 해설 중에서

이남산 소설 속의 한 문장이다. 첫 창작집 속의 주제들이 상처와 사랑과 아픔 갈등으로 점철된 상황을, 어두운 숲속 죽은 나무들의 웅성거림에 비유한 듯 느껴져서 인용한 것이다.
「나부의 춤」 「드림캐처」의 실연과 「불 꺼진 창」의 뼈를 저미는 고독과 나의 정체성을 끝내 천착하게 되는 「해방고시원」 등, 아홉 편의 작품이 편편마다 명징하여 가독성을 갖게 한다. 유소년기의 상처가 성인에 이르도록 의식에 영향을 끼침을, 그래서 삶이 끝없이 황량하고 외로움을, 작품 속 화자는 역설하면서도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하며 사회 속에 안착한다.
현대 젊은이들의 끝없는 이기심과 영악함이 전편에 리얼하게 그려지고, 더불어 유튜브에 심취하는 일인 방송이 삶의 희열과 함께 출구가 되는, 나날이 변하는 세상을 실감케도 한다.
이남산 작가는 소설적 재능도 탁월하지만, 중견 화가(畵家)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작품의 묘사도 그림을 보듯 섬세 선명하고 정확 유려하다.
_김지연(소설가)

외로움과 결핍에 시달리던 인물들이 작은 호의에 기대어 삶을 지속하기 때문에 이남산의 소설은 미덥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우리 자신도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작은 안도감이 독자들에게 수행하는 느슨한 돌봄일 것이다.
_박다솜(문학평론가)

기본정보

상품정보 테이블로 ISBN, 발행(출시)일자 , 쪽수, 크기, 총권수을(를) 나타낸 표입니다.
ISBN 9791168553187
발행(출시)일자 2025년 03월 18일
쪽수 288쪽
크기
136 * 200 * 20 mm / 558 g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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