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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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문화일보 > 2025년 2월 3주 선정
이를 위해 당대 중요한 사상가 9인(주디스 버틀러, 노엄 촘스키, S. 매슈 리아오, 리베카 징크스, 김현경, 재스비르 푸아, 마사 누스바움, 로버트 스클로트,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의 이론과 예술가 14인(테레사 마르골레스, 모나 하툼, 하룬 파로키, 이보람, 임윤경, 포렌식 아키텍처, 이토 바라다, 윌리엄 포프 L, 캐럴린 라자드, 이강승, 콜린 와그너, 제니 홀저, 조혜진, 최선)의 작품이 동원되었다.
취약성과 비폭력, 미디어와 프로파간다, 아동 학대와 돌봄, 대량학살과 재현, 인권과 인간성, 장애와 불능화, 동성애와 인류애, 성폭력과 전시 강간, 이민과 이주 문제를 분석한 이들의 시선을 치열하게 좇다 보면 우리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어떤 세상의 일부가 모두에게 가닿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펼쳐지리라 믿는다.
지금, 바로, 여기. 혐오와 차별, 폭력으로 가득한 세계를 벗어나 소외된 자를 위해 재조형될 다정하고 따뜻한 세계의 건축법, 그 구축과 상상에 관한 진지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작가정보
목차
- 서문 노래 속 비명
1. 순환의 고리: 취약성과 비폭력
주디스 버틀러와 테레사 마르골레스
2. 침범의 봄: 미디어와 프로파간다
노엄 촘스키, 모나 하툼 그리고 하룬 파로키
3. 버려진 숲: 아동학대와 돌봄
S. 매슈 리아오, 이보람 그리고 임윤경
4. 비극의 위계: 대량 학살과 재현
리베카 징크스와 포렌식 아키텍처
5. 뿌리 뽑힌 꽃: 인권과 인간성
김현경, 이토 바라다 그리고 윌리엄 포프 L.
6. 한 점의 궁극: 장애와 불능화
재스비르 푸아와 캐럴린 라자드
7. 사랑의 역사: 동성애와 인류애
마사 누스바움과 이강승
8. 사라진 몸과 남겨진 뼈: 성폭력과 전시 강간
로버트 스클로트, 콜린 와그너 그리고 제니 홀저
9. 나비를 위한 철학: 이민과 이주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조혜진 그리고 최선
나가며 내가 알지 못했던 모든 비참함을 위해
인명 색인
도판 목록
책 속으로
자율성 없는 체계 속을 굴레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다정해지는 것, 알아차리는 것, 그럼으로써 누군가를 살려내는 것이다. 거창하지 않은 그 마음이 간절한 마음으로 구원을 기다리는 자를 살게 한다. 시선 하나, 손짓 한 번 사이에서 이뤄지는 연명. 온도 높은 손의 어루만짐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인간은 이다지도 취약하며 강인하다. _8~9쪽
좋은 삶은 명예로운 죽음으로 이어지고, 비참한 죽음을 거슬러 올라가면 똑같이 비참한 삶이 발견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운명적 종말처럼 느껴지지만, 그 종말이 발생하는 방식은 결코 동등하지 않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삶과 죽음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다. _12쪽
의도적 절취와 선택적 강화로 구멍 난 실재를 전달하는 미디어. 그것의 작동을 통해 우리는 먼 타국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사건과 전쟁의 소식 역시 물리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두 겹의 거리를 둔 채 그 잔여만을 전해 듣게 될 뿐이다. 그렇게 자꾸만 무정해지는 우리. 이토록 무정한 우리를 만들기 위해 그 누가 어떤 비극을 전달하고 어떤 폭력을 숨기고 있었을까? _32쪽
아이들은 그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약한 존재들이다. 마땅한 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짓밟히고 마는 게 어떤 아이들이 소유할 수 있었던 세상의 전부라는 것이 서글프다. 사랑받을 권리, 건강하게 자라날 권리, 꿈과 희망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갈 권리. 아이들은 그럴 권리가 있는 존재들이다. _51쪽
비극적 사건을 알고, 기억하고, 잊지 않음으로써 거대한 슬픔을 스스로의 세계 속에 기입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다. 인류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로부터 영향받길 자발적으로 허용하는 일은 언제나 쉬운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_80쪽
길거리의 노숙자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볼 때, 시위로 불편해진 출근길에 연거푸 불평할 때, 토막 난 기사 속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누군가를 그저 불편을 끼치는 존재로 파편화할 때. 환대를 거두는 순간들이 생성될 때마다 한 존재의 영혼은 덜어지고 박리되며, 그 자신이 기립한 섬에서 모래가 한 뼘 한 뼘 소실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_90쪽
매일처럼 반복되는 일상은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해석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은 어김없이 돌아오는 복약의 시간을 의미했고, 주기적인 검진을 위해 병원을 방문하는 수고로움을 가리켰으며, 휠체어를 탄 채 지하철을 환승하기 위해 3.3배의 시간을 더 소모하고 18배의 이동거리를 더 횡단해야 한다는 것을 함축했다. 그렇게 매일 일정 시간을 자기 돌봄에 할애하는 것, 쌓여 가는 약통과 버려지는 주사기 사이로 5분, 3시간, 8년 평생이 흘러가는 것. 지연된 시간의 파편은 누군가의 삶을 한 발짝씩 더 느리게 흘러가도록 강제했다. _102쪽
알 수 없는 사랑이 존재할지언정, 가짜 사랑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결국 누군가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가 알고 있는 사랑의 제한된 범주만을 노출하는 일이었다. _129쪽
‘결코 일어나서 안 되는 일’을 ‘결국 일어나지 않은 일’로 대치하고, 그 누구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났음에도 바로 그 설명 불가능성을 근거 삼아 진상 규명의 노력을 무력화하는 존재들. 그들에 의해 피해자는 더 큰 아픔을 껴안은 채 홀로 고통받아야 했다. _149쪽
우리는 이 낯선 이방인들에 대해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었던가? 그들은 정녕 우리 모두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새로운 언어를 학습하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고, 종국에는 우리와 함께 살아갈 만한 사회를 고민하며 이에 이바지할 수도 있는 인간들이 아니었는가? 이처럼 도움을 요청하며 찾아온 여행자들에 관한 질문은 결국 자유와 안녕을 위해 이동하는 타인의 생을 가로막을 권리가, 국적이라는 권력만을 통해 우리에게 부여될 수 있는지에 대한 되물음으로 전환된다. _183쪽
출판사 서평
우리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어떤 세상의 일부가 모두에게 가닿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TV나 라디오를 통해 혹은 메신저나 타인의 입을 통해 접하게 되는 소식들은 넘치도록 많다. 그중에서도 유독 자주 들리는 키워드가 하나 있는데 바로 ‘죽음’이다. 하루라도 죽음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날이 없다. 부모에게 학대받아 사망한 어린이, 빈곤에 허덕이다 외로이 생을 마감한 신원 불명의 존재, 반복적인 집단 강간을 겪은 후 살해되거나 산 채로 불태워진 여인, 전쟁 중에 길거리에 널브러진 수많은 시체들… 죽음은 어느새 흔하면서도 희귀한 것, 익숙하면서도 충격적인 것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죽음이 반성 없이 되풀이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차별, 힘과 권력을 무기 삼아 약자에게 퍼붓는 폭언과 폭력 등은 누군가의 꿈과 희망을 앗아갔고 이윽고 생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타인의 비극에 대해 우리는 늘 두 겹의 거리를 두지 않았던가. 내 것이 아닌 고통과 폭력은 그저 안타까운 한숨 한 번으로 넘기고, 이 세상의 모든 절망을 다 알 수 없으니 어떤 슬픔은 못 본 척해도 괜찮다는 손쉬운 연민만을 남긴 채 자꾸만 무정해지는 우리. 왜 우리는 이토록 무정해진 것일까? 누가 우리를 이토록 무정하게 만든 것일까?
저자 한선아는 런던 예술대학교에서 예술과 철학을 전공하며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에 큰 관심을 두었고, 버틀러의 취약성 이론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였다. 이제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들을 조명하고 피해자인 약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에 앞장서고자 한다. 그 시작점이 될 이 책에서, 본인의 이야기와 사상가들의 이론,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약자들의 목소리를 가장 아름답게 대변하는 예술작품을 한데 모아 전한다. 더 이상 누군가의 부당한 죽음을 개별 사건의 불행하고 우발적인 발생으로 생각하지 말자는 저자의 주장처럼, 소외된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제도적 문제의 종합적 결과로 조명하여 이를 책임의 영역 안에 재배치하는 새로운 사유가 시급하다.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해지기를 낙관하며
태동한 문장, 작품, 그리고 사상들의 합창
이 책에는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회 문제들을 아홉 가지 주제로 분류하고 각각의 주제를 뒷받침하는 사상가의 이론과 이를 아름답게 시각화한 예술가의 작품을 실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우리 모두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삶의 근본적 현실을 ‘취약성’으로 명명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철학 이론과 수행성을 중심으로 하는 젠더 이론을 펼쳐 보인다. 그의 위태로운 정치, 그 상호의존성에 기반한 비폭력적 유대의 시각적 가능성을 가장 감각적인 방식으로 제안한 작품이 바로 멕시코 출신 현대 예술가 테레사 마르골레스의 〈공기 속에서〉다.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비눗방울은 관람객의 피부 위로 가라앉으며 소리 없이 파열한다. 비눗방울의 재료가 시신을 닦은 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추락하던 비눗방울은 예기치 못한 테러로 다가온다.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비판자 노엄 촘스키. 그는 놀라운 통찰력으로 오늘날의 사회에서 과연 누구의 생각과 의견이 공론장에 표출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자격의 득실을 결정하는 무형의 조작은 어떤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살핀다. 이처럼 미디어의 보도와 현실의 간극에서 영원토록 유예되는 존재, 그들의 현실을 강렬한 이미지로 제시하는 작가 모나 하툼은 〈협상 테이블〉에서 고통의 언어를 희미한 숨결로서 번역하며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고자 한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역사 이론가 리베카 징크스는 수많은 학살의 재현이 홀로코스트라는 패러다임 안에서 반복되어 온 현상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실제 학살이 일어난 팔레스타인의 작은 어촌 마을 탄투라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포렌식 아키텍처는 건축적 증언을 통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언어 없는 사물이 감각한 비극의 파편을 이어 붙여 하나의 퍼즐로 완성하는 이들의 작업은 뒤늦은 위패처럼 부당한 죽음에 영면의 자리를 내어주며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이라는 것은 일종의 자격이며, 스스로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확인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환대’라고 주장한다. 그와 반대의 동력으로 사람의 자리를 ‘박탈’하는 흔적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 이토 바라다의 사진 연작 〈수면자들〉이다. 사진 속 피사체들은 김현경이 문장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존재들, 그러니까 자리를 허락받지 못한 자들, 정착이 허용되지 않은 이들, 그렇게 뿌리 뽑힌 꽃처럼 자꾸만 넘어져야 했던 인간들을 시각적으로 예시하는 징표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이처럼 취약성과 비폭력, 미디어와 프로파간다, 아동 학대와 돌봄, 대량학살과 재현, 인권과 인간성, 장애와 불능화, 동성애와 인류애, 성폭력과 전시 강간, 이민과 이주 문제를 치열하게 분석한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의 시선을 좇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꿈꾸어 볼 가치가 있는 세계, 그러한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기본정보
ISBN | 9791192768311 |
---|---|
발행(출시)일자 | 2025년 01월 22일 |
쪽수 | 208쪽 |
크기 |
120 * 206
* 16
mm
/ 396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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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도’. 누군가의 죽음은 마지막까지 찬란한 빛을 받으며 그 가치가 드높여질 때, 누군가는 소리소문없이 죽어간다. 찬 서리를 맞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오래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의 불행을, 이 우연한 사고를 안타깝다고 말할 뿐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알려지지 않은 고통과 상실을 정말 안다고,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왜 어떤 죽음은 다른 죽음에 비해 유독 많이 보이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더욱 쉽게 죽어가며, 때로는 그 죽음이 셈해지지도 않은 채로 소멸하는가? 왜 우리가 아닌 그들이 죽어야 했으며, 그 죽음은 언제, 어디서, 또 어떻게 반복되는가? (p194)
<애도의 미학>은 전쟁에서의 무차별 살인, 이민 정책 갈등, 아동 학대, 젠더 폭력 등 해마다 반복되는 사회적 문제 그리고 피해자인 약자들의 삶을 철학자 9인과 예술가 14인의 시선으로 분석한 예술 에세이로, 잔인하고 소외된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소외된 죽음을 다양한 예술적 방식으로 재조명하는 사람들과 그 기저에 깔린 철학적 사유, 문학적 견해를 폭넓게 제시한다.
그들의 작품은 사회적으로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 또는 아무도 관심갖지 않고 사라졌을지라도 이렇게 책 속의 문장으로 다시 태어난 글은 독자로 하여금 낯설고 황망한 죽음을 의식속에 깊이 각인시킨다.
- 시시각각 폭력의 위협에 시달리는 취약하고도 위태로운 존재의 삶, 애써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도 애도하지 않을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묵념이다. (p24)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비눗방울.
천장에서부터 떨어지는 비눗방울은 소리 없이 파열하고, 공기 속에 미세한 분진을 남겨준 채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 작고 연약한 파열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내 작가는 이 비눗방울들 하나하나가 하나의 신체라고, 누군가의 시신이라고 말한다. “어째서죠?” 왜냐하면, 부검할 시신을 닦은 물, 그것으로 만들어진 비눗방울이기 때문이다. 이 예기치 못한 테러에 비눗방울은 아래를 향해 조용히 하강하고, 웃음은 사라진다. (테레사 마르골레스의 <공기 속에서>)
그제야 사람들은 피부 위에 닿는 누군가의 죽음을 인식한다. 나의 것이었을지도 모를 죽음을 누군가 감내했다는 것, 우리가 살리지 못했던 죽음을, 다시는 재회할 수 없는 죽음을 인식하면서 우리는 천천히 연결의 감각을 느낀다.
- 세상은 언제나 이렇게 뒤늦게 다정해서 무력하게 아름답다. 그 안에서 갈피를 못 잡는 우리, 흔들리는 시야, 머뭇거림과 주저, 마침내 결단을 하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비눗방울의 흔들리는 궤적을 따라 걸어간다. (p28)
생소한 사건 속에 파뭍힌 억울한 죽음들을 읽어나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왠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아무런 설명 없이 그 예술가의 작품을 봤다면 아마 나는 이토록 깊이 조응하는 감각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천천히 글 속으로 스며들어가 마주하는 잔인함은 더이상 피하고 싶지만은 않은, 두려움 너머의 ‘연결된’ 세계를 보여주었다.
- 기억하고, 되찾고, 기록하고, 옮겨담음으로써 체화되는 어떤 존재들의 흔적을 부각하는 일. 그렇게 연약한 몸이 떠난 후에도 오래도록 남겨지는 물건과 그 물건을 종이 위로 붙잡은 이중의 흔적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더 이상 이곳에 없지만 사실은 모든 곳에 있었던 당신을 되찾는다. (p137)
- 자율성 없는 체계 속을 굴레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다정해지는 것, 알아차리는 것, 그럼으로써 누군가를 살려내는 것이다. 거창하지 않은 그 마음이 간절한 마음으로 구원을 기다리는 자를 살게 한다. 시선 하나, 손짓 한 번 사이에서 이뤄지는 연명. 온도 높은 손의 어루만짐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인간은 이다지도 취약하며 강인하다. — p9
애도의미학
한선아
미술문화출판사
(도서제공)
흔히 우리는 애도를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것에 한정해 표현하는 감정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애도는 의미 있는 애정 대상을 상실한 후에 따라오는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정신과정으로 모든 의미있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으로 이해해야 한다.
모든 의미 있는 상실에 대한 슬픔이기에 오늘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전쟁, 무차별 살인, 이민정책 갈등, 아동학대, 젠더 폭력 등 날이 갈수록 반복되고 심화되어 가는 모든 사회문제들 속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그리고 동시대를 사는 보편적인 보통사람들의 철학적 서사를 위해 우리는 애도에도 미학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도는 슬픔의 감정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미학적이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예술가와 철학자의 시선과 관점의 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학과 찰학을 전공한 저자의 애도를 통해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민낮들이 과연 웃어 넘길 수 있는 해맑은 세상인지에 대해 고심하고 부당하게 죽어간 이들의 사라진 흔적들을 쫓아 그들 삶의 비참함을 변화의 근거로 제시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애도의 미학"은 어쩌면 우리 삶이 이뤄지는 세상이 위장된 평화속에서 몸부림 치는 군상들의 모습을 찾아 꽃이 피니 사라져야 겠다고 생각했을 이들에게 바람이 부니 살아야 겠다는 삶의 찬란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자 하는 저자의 미학과 철학이 앙상블화 된 책이다.
저자는 주디스 버틀러, 노엄 촘스키, 베르토 에스포지토 등 9인의 사상가와 테레사 마르골레르, 이보람, 이토 바라다, 최선 등의 14인의 예술가들을 작품을 통해 그들이 비춰낸 사회의 취약성과 비폭력, 아동학대와 돌봄, 대량학살과 재현, 인권과 인간성, 장애와 불능화, 동성애와 인류애, 성폭력과 전시강간, 이민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상과 문제들을 제시하며 이들의 치열한 시선을 쫓아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의 일부를 변화의 주 요소로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러한 서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정된 세계관에 휩싸여 있는 인간들이기에 좀 더 다양한 현상, 문제들을 마주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통찰할 수 있는 일은 누구 하나만의 문제라 하기 보다는 '함께' 라는 공동의 연대감을 갖고 사는 우리에게 책임과 의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혼란한 삶의 이야기들에 우리가 발벗고 나서거나 손들어 환영하며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이 쉽게 보이지 않음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를 가두는 자승자박의 역할자처럼 인식하게 된다.
저자는 우리가 가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어떤 세상의 일부가 모두에게 가닿기를 주장한다.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나, 우리의 모습은 인간중심주의에서 철저히 개인주의로 전환되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외면하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다양한 사회현상과 문제들이라 생각하면 결국 나, 우리의 관심과 사랑의 부족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한 점을 애도해야 하는것을 저자가 의도하는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애도는 슬픔이 강조된 표현으로 우리는 나, 우리의 주변에서 수 많은 죽음을 목도한다.
하지만 그러한 죽음에 대해서도 애도하는 마음은 별로 없는것 같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결코 사회적인 문제로 발생하는 다양한 죽음이 가져 오는 슬픔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다.
무정해진 나, 무관심한 나, 우리가 만든 지금의 사회라 생각하면 죽음을 애도해야 하는것이 아니라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하는 나, 우리를 애도하게 되는 역설적인 의미로 읽을 수 있을것 같다.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이 합창하는 세상의 변화는 그들의 작품과 문장을 통해 오늘 우리 사는 세상을 더욱 가치 있게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해 본다.
그들의 세상에 대한 통찰적 서사를 이 책을 통해 공감해 보길 권유해 보고자 한다.
대학원 재학 시절, 미학이라는 과목은 저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미학은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탐구하고, 그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도이죠. 언어로 담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도전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전히 ‘미학’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이 두렵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본능적으로 궁금하고 끌리기도 해요. 어쩌면 그래서 <애도의 미학>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이 책을 읽고 싶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도’와 ‘미학’ - 두 가지 모두 깊이 알고 싶지만, 아직까지 충분히 가까워지지 못한 세계니까 말이죠.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무력감이 밀려옵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자세히 알지 못했던 세계 - 어쩌면 일부러 알지 않으려 했던 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공존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그에 대해 침묵하기보다 표현을 선택한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책에는 미술, 행위 예술, 연극,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동시대의 아픔을 알리며 위로와 치유를 제안하는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혹자는 예술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본질적인 영향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술이 말하는 비극은 인과가 아니라 그 크기와 정도에 대한 체험과 대입”이라고요. 당장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예술을 통해 어떤 사건을 접하면 우리는 속절없이 그 사건의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가며, 그 사건을 함께 경험하는 ‘동참자’가 된다고 합니다. 물론 실질적인 방안과 대처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 사건(혹은 문제)이 결국 ‘내 이야기’, 아니 적어도 ‘나와 가까운 이야기’가 될 때 우리는 사람다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 당신이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당신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으며,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빚을 지고 그 빚을 갚아 나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꿈꾸던 화합의 세계가 열릴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지금 우리가 “노래소리로 비명을 숨기는 미혹의 세상을 살아간다”고 표현합니다. 끔찍할 정도로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으로 포장하고 아름답게 꾸민다 하더라도, 인류 역사상 폭력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약한 사람들이 괴롭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역사는 거의 언제나 강한 자들의 손에 의해, 그들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바뀌어 왔습니다. 당장 내 주변이 평화로워 보여도,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처절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난무합니다. 계속 모르는 척 외면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길 것인지 - 저자는 ‘애도’의 길을 선택하며 우리에게 제안합니다. 비극이 발생하기 전, 고대 그리스의 코러스가 슬픔의 합창을 외치듯 우리 사회 역시 “비극이 발생하기 전부터 고통의 이른 징후를 응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요. ‘당신’을 지키는 길이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이며, 상호 의존적인 우리가 모두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예전에 미술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인상파 화가들의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가본 적이 있습니다. 책으로 볼 때는 작아서 잘 몰랐는데 실제 두 눈으로 보니 감동이 남달랐네요. 인상파 화가들은 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빛에 의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면 햇살도 따뜻하고 사람들도 행복해 보이네요. 반면 현대 미술에서는 포름알데히드로 박제한 상어, 썩어가는 소의 머리와 파리떼들 등 보는 순간 당혹스러워지는 작품도 많습니다.
미술은 보통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생각하지만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애도의 미학’ 에서는 너무 슬프고 가슴 아파서 때로는 외면하고 싶어지기까지 하는 작품도 등장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곳에 유대인들이 정착하면서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부터 중동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작년에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대대적으로 폭격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과거 한창 전쟁이 심할때는 마을 전체가 사라졌으며 죽은 사람들은 임시로 매장되었다가 그 위에 새로운 집들이 세워지면서 학살에 대한 기억도 잊혀졌네요. 탄투라 프로젝트는 최신 기술을 이용해 땅밑을 3차원으로 재구성하면서 과거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사진을 통해 조금씩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무척 가슴이 아팠네요.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죄였습니다. 앨런 튜링은 독일군의 암호를 풀면서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는데 기여하였는데 동성애를 했다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형을 당했고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이제는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나라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이었던 하비 밀크는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위해 다양한 법을 제정하였는데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동료 시의원이 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그가 기르던 선인장 화분은 가지치기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지금도 계속 가지치기를 하고 있네요. 하비 밀크는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였지만 선인장이 살아있는한 사람들은 영원히 그를 기릴 것입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누가 승리하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칩니다. 전쟁은 민간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중에는 여성들을 향한 집단 성폭력도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지고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같은 동네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향해 총을 들었습니다. 전쟁이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광기는 점점 심해졌고 포로로 잡은 여성들을 한 건물에 가둔뒤 집단적으로 반복해서 성폭력을 하기도 하였네요. 지금 그 건물은 호텔이 되었는데 호텔 자체도 고풍스럽고 주변 풍경도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건물에서 얼마 전까지도 이런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건물을 역사적인 장소로 보존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계속 호텔로 쓸 것인지는 서로 의견이 팽팽한데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한다는 차원에서 박물관으로 바꾸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떤 이야기에서는 몇 번이나 책을 덮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애도도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사람들에게 현실을 일깨운다는 측면에서 예술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알게 되었네요. 예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일단 이 책은 저자의 친절이 돋보인다.
저자는 각 장마다 일일이 미주를 달아놓아,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어떤 분들은 혼자만 아는 이야기를 하고, 홀로 아는 것을 적어놓고 자세한 설명 없이 지나가는 데, 거기에 비한다면, 이 책의 저자는 독자를 제대로 대접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글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금방 알게 된다.
오목한 곳, 부드러운 곳, 상처입기 쉬운 곳으로 가득한 인간의 몸은.
팔뚝은. 겨드랑이는. 가슴은. 살은. 누군가를 껴안도록, 껴안고 싶어지도록 태어난 그 몸은.
(『희랍어 시간』, 한강, 123-124쪽)
실은, 그 문장은 한강의 작품 『희랍어 시간』을 열심히 읽는다고 읽었는데, 그만 놓친 문장이다. 해서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그 책을 새겨볼 수 있었다.
또한 생각할 수 있는 건, 저자가 애도를 정의하는 것이 다르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들은 애도를 그저 죽음 자체만 연결시키는 데 비하여 저자는 죽음에 이르는 다양한 경로를 거치면서 애도의 깊은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각 장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를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취약성과 비폭력, 아동 학대와 돌봄, 대량 학살과 재현, 인권과 인간성, 장애와 불능화, 동성애와 인류애, 성폭력과 전시 강간, 이민과 이주.
저자는 그런 주제를 통해서 애도에 이르고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비극적 사건들을 오히려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장애와 불능화, 동성애와 인류애 항목을 살펴보자.
그저 애도를 죽은 자에 대한 감정이라고 여긴다면, 이런 항목은 분명 불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장애나 동성애를 통하여, 목적지는 같을지라도 그 애도에 이르는 과정은 다른 것임을 분명히 한다. 즉 그 과정을 세세히 짚고 간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결과만 가지고 애도를 부르짖은들 그 과정이 남기고 간 상처들이 치유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면 재발 가능성은 없겠는가, 하는 점을 짚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점 또 하나, 거기에 그림이 있다.
이것은 저자의 전공과 무관하지 않다. 저자의 전공은 미학과 철학이다.
그러니 죽음과 애도를 논하면서도, 그 방법 중 하나로 그림, 사진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우리 앞에 등장한 예술가와 철학자가 눈길을 끌어당긴다.
예술가 또는 단체로는 테레사 마르골레스, 모나 하툼, 하룬 파로키, 이보람, 임윤경, 포렌식 아키텍처, 이토 바라다, 윌리엄 포프 L, 캐럴린 라자드, 이강승, 콜린 와그너, 제니 홀저, 조혜진, 최선 등 모두 14명이 등장하고,
철학자는 9명인데, 주디스 버틀러, 노엄 촘스키, S. 매슈 리아오, 리베카 징크스, 김현경, 재스비르 푸아, 마사 누스바움, 로버트 스클로트, 로베르토 에스포지토가 등장한다.
해서 그림과 그림과 어울어져 철학을 같이 공부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저자의 해박한 전공 지식 덕분에 독자들은 예술과 철학을 넘나들며 신나게 인식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진 어떤가?
“이곳에서 두 명의 여자가 강간당했습니다.
5월 9일, 5월 21일.”
(수잔 레이시의 1977년 프로젝트 <5월 3주간>의 기록 사진) (144쪽)
이런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토록 단순한 표기를 통해 행인의 발걸음은 단숨에 달라지기 시작한다. 빠르게 스치거나 서서히 돌아가기, 혹은 잠시 멈추어 서거나 오래도록 머무르기.
그처럼 불편한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날 때 우리는 모두 상이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런 사건의 결과는?
보스니아 내전에서 벌어진 집단 강간은 결국 살해되거나 불태워졌다. (145쪽)
그러니 강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런 말, 기억하고 싶다. 해서 적어둔다.
우리는 과거에 고통받던 사람들이
그토록이나 기다려온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 발터 벤야민 (80쪽)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 김현경 (85쪽)
무용가 도리스 험프리의 말도 기억해두자.
인간의 모든 움직임은 균형을 잃었다 회복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낙하와 회복, 즉 균형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적 움직임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94쪽)
다시, 이 책은?
다음 말은 한강의 작품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에 바치고 싶은 말이다.
그들은 시체가 없으면 범죄도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저는 시신이 없으면 피난처도 없고
그 누구의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145쪽)
여기서 한강의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는 말은 여기서도 적용되는 명문장이 되는 것이다.
읽어갈수록, 애도에 관한 생각이 달라진다.
지금껏 알고 있던 애도는 단순한 사전적 의미에 불과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애도가 저자가 의도한 바처럼, 이런 과정을 거쳐, 애도에 이르게 된 죽음의 과정을 마치 범죄 수사하듯이 살피지 않고서 하는 애도는 그저 겉치레 수식어에 불과하다는 것,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죽는다는 간결한 문장이 심오하다. 관철되는 다른 죽음들은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지 살펴보게 하는 내용이다. 인간의 삶을 요약하면 두 가지 질문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 독자들에게도 던지는 질문으로 남는다. 평범한 것 같지만 결코 단순한 질문이 아님을 알기에 크게 호흡을 들어마시면서 더 한 걸음 걸어들어가게 하는 책이다.
죽음과 소외를 기억하는 예술과 철학을 만나게 된다. 총 9가지 시선들이 구성된다. 이민과 이주, 성폭력과 전시 강간, 동성애와 인류애, 장애와 불능화, 인권과 인간성, 대량 학살과 재현, 아동 학대와 돌봄, 미디어, 취약성과 비폭력에 대한 저자의 예술 에세이이다.
반복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무관심한 시선으로 흘려보내지 않아야 하는 이유부터가 명확하게 설명되는 서문의 글이 전해진다. 약자의 목소리를 오래 응시하는 사람을 만날 때 반가워진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디 에센셜 한강』의 단편소설들과 시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이 책에서도 인용된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의 문장도 취약성과 비폭력에 대한 내용과 어우러지게 된다.
학살을 모의하고 인권을 외면하는 폭력성이 사회를 불안하게 할수록 상대적인 비폭력의 가치는 더욱 극대화된다. 상실의 전환적 힘에 대해 언급한 미국 정치 철학 사상가 주디스 버틀러의 위태로운 정치라는 고유 이론 체계가 소개된다. 위태로운 삶과 애도 불가의 죽음을 탐구하면서 일관된 지적 실천을 보여준 그녀가 그 누구도 비참한 삶을 살지 않도록 보호하는 비폭력 세계를 그려낸 인물이라는 것을 책에서 만나게 된다.
일관된 지적 실천을 보여준다는 것은 큰 획이 된다. 철학적이고 예술의 접목을 저자의 에세이를 통해서 하나씩 만나게 될수록 현대 예술을 이해하는 진폭은 더욱 넓어지는 계기로 이어진다. 현대 예술가 작품 <공기 속에서> 은 멕시코 출신 테레사 마르골레스의 작품이다. 비눗방울이라는 현대 예술작품을 관람객은 아름답다고 느끼며 작품을 향한 설명을 작가에서 듣게 되면서 작품은 아름다운 비눗방울이 아닌 이면에 도사린 죽음을 연관시키는 비눗방울임을 알게 되면서 비눗방울이 터지는 순간은 미세한 분진이며 뼛가루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비눗방울 =하나의 신체 = 부검할 시신을 닦는 물
심오하고 예술적인 작품으로 파열된 죽음을 예술로 표현한 현대미술을 소개받는다. 위태로운 삶과 애도 받지 못한 죽음들이 무엇이었는지도 추가적으로 더 설명해 주는 내용이 전해진다. 한강 소설에 등장하는 죽음들과 학살된 수많은 생명들이 비눗방울로 연상된다. 오래 응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 에세이를 통해서도 보여준다.
죽음마저도 상대적이다. 지위와 권력, 사회적 조건에 의해 누군가의 죽음은 극대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죽음까지도 차별적이다. 위태로운 삶의 소외는 가속하면서 재생된다는 저자의 글에 극심한 심각성을 느끼면서 그들의 단단함을 확인하는 시간의 연속성까지도 느끼게 된다.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극대화된 기회에는 죽음까지도 차별적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예술과 철학이 확장되도록, 현실에서도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주제들을 던져주는 저자의 책은 새로운 자극이 되어준 내용들이다. 현대예술을 더 깊게 이해하려면 철학적인 식견을 더 단단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던 책이다.
‘결코 일어나서 안 되는 일’을 ‘결국 일어나지 않은 일’로 대치하고, 그 누구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났음에도 바로 그 설명 불가능성을 근거 삼아 진상 규명의 노력을 무력화하는 존재들. 그들에 의해 피해자는 더 큰 아픔을 껴안은 채 홀로 고통받아야 했다. 149
위태로운 삶의 소외는 가속하여 재생된다. 16
취약성은 상대적이다. 지위, 권력, 사회적 조건에 따라 누군가의 취약성이 최소화되는 반면 누군가의 것은 극대화된다.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