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그리우스의 기도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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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의 대표작 『프락티코스』, 『기도』, 『수도사들에 대한 권면』을 수록하고 있다. 『프락티코스』는 8가지 악한 생각과의 전투를 다룬 금욕적 실천 지침서이며, 『기도』는 순수하고 진실된 기도의 본질을 설명한다. 『수도사들에 대한 권면』은 잠언 형식의 금언을 통해 수도사의 영적 여정을 안내한다.
에바그리우스는 악한 생각을 제어하고 영혼의 평온(아파테이아)에 이르러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그노시스)을 추구하는 삶을 강조했다. 이 책은 현대 독자들에게 기도와 묵상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영적 성숙을 향한 길을 제시한다.
이 책의 총서 (34)
작가정보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Evagrius of Pontus, 345-399)
초기 기독교 영성의 대표적 인물로, 이집트 사막에서 수도사로 생을 마쳤다. 그는 현재 튀르키예 북동부 폰투스에서 태어나 갑바도기아의 바실리우스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로부터 신학적 영향을 받았다. 380년경 에바그리우스는 그레고리우스를 따라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부제로 서품되었으며, 381년 제2차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이단과의 논쟁에 참여해 활약했다. 그러나 개인적 위기와 영적 갈등 속에서 예루살렘으로 피신하여 멜라니아의 도움으로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383년경 그는 이집트 니트리아 사막으로 옮겨 2년간 머문 뒤, 더욱 엄격한 금욕 생활을 위해 켈리아 사막에서 14년을 보냈다. 이 시기 동안 에바그리우스는 마카리우스 등의 가르침을 받으며 영적인 명상과 금욕적 실천에 대한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서방 기독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요한 카시아누스를 통해 유럽의 수도원 영성에 깊이 자리 잡았다.
399년 에바그리우스가 사망한 후, 그의 사상은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오리게네스주의적 경향으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나 그의 주요 저작들은 20세기 들어 재발굴되었고, 그의 영적 권면과 신학적 통찰은 현대에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목차
- 들어가는 말 9
프락티코스 33
기도 73
수도사들에 대한 권면 109
책 속으로
그리스도교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이다. 이는 금욕적 수행(praktike), 자연 세계에 대한 명상(physike),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학문(theologike)으로 구성되어 있다. p.35.
천상의 나라는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참된 지식을 동반하는 ‘아파테이아’(apatheia), 즉 영혼의 초연함을 뜻한다. p.35.
인간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열렬히 사랑하는 것을 전심으로 원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분투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쾌락은 욕망(epithumia)을 따라 나오고, 욕망은 감각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므로 감각에 종속되지 않으면 욕망으로부터 자유롭다. p.35.
사람을 유혹하는 모든 생각을 여덟 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탐식에 대한 생각, 둘째는 그와 더불어 정욕, 셋째는 탐욕, 넷째는 슬픔, 다섯째는 분노, 여섯째는 나태(혹은 영적 태만), 일곱째는 허영, 여덟 번째는 교만이다. 이러한 생각이 마음을 교란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안에 머뭇거리는지 아닌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지 아닌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p.36.
죽음과 삶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공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사랑과 부도 공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부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 땅에서의 삶도 파괴하기 때문이다. p.42.
내적인 삶을 바로 세우지 않는 한 정신은 진보할 수 없고 숭고한 위쪽을 향해 이동할 수 없으며 영적인 존재들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다. p.59.
기도 시간에 정신이 세상적인 것을 조금도 마음에 품지 않으면 그 영혼은 건강하다. p.59.
금욕적 삶의 목적은 사랑이고, 영적 지식의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다. 각각의 경우에서 그 시작은 믿음과 본성적인 관상이다. 영혼의 열망하는 부분을 움켜잡는 마귀는 금욕적 삶을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성적인 부분에 크나큰 고뇌를 일으키는 마귀는 모든 진리의 적이요, 관상의 반대자로 일컬어진다. p.63.
기도는 하나님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다. 마음이 후퇴하지 않고 주님께 다가가고 중재자도 없이 그분과 소통하려면 어떤 상태가 필요한가? 모세가 땅에서 불타는 떨기나무에 가까이 가려고 했을 때 자기 발에서 신을 벗을 때까지 붙들려 있었다면(출 3:2~5) 모든 표상과 감각적 인식을 초월하신 분을 보고 소통하기 원하는 당신이 어떻게 욕망에 얽매인 모든 정신적 표상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p.75~76.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라. 그러면 애통함(penthos)을 통해 당신의 영혼 안에 있는 야생적인 성질을 누그러뜨릴 수 있고, 당신의 죄를 주께 자백하고(시 32:5) 그분으로부터 용서를 얻을 수 있다. p.76.
기도는 온화함의 열매이며 분노로부터의 자유이다. 기도는 기쁨과 감사의 열매이다. 기도는 슬픔과 낙담을 막아준다. p.78.
당신이 마땅히 기도하기를 갈망한다면 어떤 영혼에게도 해를 끼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달음질이 헛될 것이다(갈 2:2, 빌 2:16). p.78.
기도는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다. 기도를 실천하기 원한다면 모든 것을 완전히 버리라. 그러면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다(눅 14:33). p.82.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그러하듯이 그분과 항상 교통하며, 정욕에 얽매여 있는 어떠한 정신적 표상도 멀리한다. p.85.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셔서(롬 8:26) 우리가 불결한 상태에 있더라도 우리를 찾아오신다. 성령님은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기도하는 마음을 발견하기만 하시면, 그 마음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생각이나 정신적인 표상 전체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전멸시키시며 영적인 기도에 대한 사랑을 촉구하신다. p.87.
믿음은 사랑의 시작이요, 사랑의 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다. p.111.
사랑 가운데 은둔하는 자는 마음을 정화하고, 증오 가운데 은둔하는 자는 마음을 혼란케 한다. 접근할 수 없는 동굴에서 증오를 품고 혼자 거하는 것보다 사랑 안에 거하는 천 명의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더 낫다. p.112.
사랑 앞에서는 아파테이아가, 지식 앞에서는 사랑이 나아간다.
지식에는 지혜가 더해지고, 신중함은 아파테이아를 낳는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신중함이 생기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부여한다. p.119.
삼위일체에 대한 지식은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지식보다 낫고, 삼위일체에 대한 묵상은 모든 영원한 세대의 지혜를 능가한다. p.125.
출판사 서평
『에바그리우스의 기도와 묵상』에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즐겨 읽는 세 편의 글을 담았다. 『프락티코스』, 『기도』, 『수도사들에 대한 권면』. 수도사들이 금욕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정신과 영혼의 호흡이란 기도를 어떻게 드릴 것인가, 프락티케에서 자연에 대한 묵상을 통해 성 삼위일체에 대한 지식에 이르는 길을 수도사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글을 읽으면서 따라가도록 순서를 정했다.
프락티코스
『프락티코스』는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데 있어 출발점인 실천적 삶을 100개의 구절로 다룬 작품이다. 여기서 실천이란 악한 생각, 즉 마귀들과 전투를 벌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에바그리우스는 8가지의 주요한 악한 생각을 분석하고 영적이고 실천적인 훈련을 통해 그것들을 없애기 위한 현명한 조언을 제공한다.
『기도』를 비롯한 그의 다른 책에서도 등장하지만, 이 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개념이 아파테이아이다. 아파테이아(apatheia)는 영혼의 욕망적인 부분을 정결하게 하고, 궁극적인 지식에 도달하기 전에 필요한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상태, 혹은 무정념을 의미한다. 아파테이아는 정신을 잠잠하게 해 주면서 우리에게 기도할 힘을 더해 주고, 고독과 침묵 속에서 마귀들과 싸우고 유혹과 정욕을 극복하는 삶으로 전환하게 해준다. 아파테이아는 육신과 함께 거하는 영혼 속에 있는 욕정을 누그러뜨리고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가능하게 만들고, 이런 사랑에 의해 수도사가 참된 지식에 이를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은 원래 『프락티코스』(Praktikos), 『그노스티코스』(Gnostikos), 『케팔라이아 그노스티카』(Kephalaia Gnostica)라는 세 권으로 묶여 구성된 책 중에서 제일 첫 번째에 해당한다. 100개 구절로 이루어진 『프락티코스』는 프락티케를 우선적으로 다루었고, 50개로 이루어진 『그노스티코스』(그중 30개가 그리스어+시리아어)는 프락티케와 『케팔라이아 그노스티카』에 등장한 다양한 지식을 연결하는 매개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세 번째 책인 『케팔라이아 그노스티카』는 세 권 중에 가장 길고 가장 난해한 작품(75개 정도가 그리스어+나머지 전체는 시리아어)이다. 에바그리우스의 신학적 연구는 주로 이 작품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 책은 삼위일체의 지식에 앞서는 온갖 종류의 지식을 다루고 있다.
기도
153개의 구절로 이루어진 『기도』는 에바그리우스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그는 기도를 ‘어떠한 매개체도 없이 … 정신과 영혼이 하나님과의 교통하는 것’(3)이라 정의하면서, 기도에 대해 설명했다. 52장에서 그는 “기도하는 상태는 전혀 아무런 흔들림이 없는 고요한 습관이며, 이는 지혜를 향한 영혼을 최상의 숭고한 사랑으로서 지성의 높은 단계로 오르게 해 주는 것”으로 표현했다. 에바그리우스는 『기도』에서 기도를 규정하고 우리가 순수하고 진실된 기도를 어떻게 드릴 것인지, 그리고 참되고 순수한 기도를 방해하는 세력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다. 여기서 순수한 기도란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 교란하는 과거의 기억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벗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또한 비물질적이고 영적인 삼위일체 하나님과 직접 교류하기 위해 하나님에 대하여 적절치 않은 모든 이미지와 표상과 형상을 정신 안에서 제거하는 것이다.
‘제거’나 ‘벗어버림’ 같은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청결과 함께 기도는 하나님과의 정신적 소통이다. 기도는 “정신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35)이다. 기도는 영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과 직접 접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영혼 안에서 진실로 기도하는 사람은 피조물에 대한 지식을 뛰어넘어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 진실로 기도하는 자가 신학자(theologos)라 불리는 것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60). 피조물과 마귀들의 교란작전에 의해 산만하지 않은 진실한 기도야말로 가장 높은 정신활동(83)이요, 지성의 최고 활동으로 영적 수행의 가장 높은 목표이다. 또한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는 순수한 정신을 발견하고 유지할 수 있다. 순수한 정신을 발견하고 참된 기도의 상태에 도달한 사람은 마치 천사의 상태와 같다(113).
수도사들에 대한 권면
이 책의 제목이 분명하게 보여주듯이 『수도사들에 대한 권면』은 금욕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추구하는 수도사들에게 주는 실제적인 조언이자 권면이다. 137개의 금언록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다른 책들에 비해 구절들이 훨씬 더 간결하고 압축적이고 구성상의 밀도가 가장 높다. 이 책은 성경의 지혜문학 중에 잠언을 본 따 수도사의 영적인 여정 전체를 성경적 언어를 사용해 시적인 이미지로 그려내었다. 동시에 이 책은 우리가 위에서 논의한 아파테이아와 기도의 개념을 에바그리우스의 영성체제의 전체적 맥락에서 포괄적으로 논의한다. 그래서 여덟 가지 악에 대한 추가적인 적절한 해석, 그리고 기도와 영적인 고양에 대한 관계도 이 책에서 잘 다루고 있다. 마치 세상을 다 산 아버지가 열정 하나로 이제 막 수도사의 삶을 시작한 사람에게 손을 잡고 이끄듯이 수도사의 삶의 여러 모습을 안내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그의 신학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구절로 마무리한다.
“세상에 대한 명상은 마음을 넓히고 섭리와 심판의 지혜는 마음을 고양시킨다. 영적인 것들에 대한 지식은 마음을 고양시키고, 그 마음을 거룩한 삼위일체 앞에 놓아준다(135-136).”
어떻게 읽을 것인가?
에바그리우스의 글은 주제와 대상이 다르더라도, 그의 핵심적인 가르침의 주제들은 곳곳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에바그리우스는 자신의 저작에서 영적인 삶과 진보, 정신과 영혼이 본질적으로 추구할 주제, 기도와 영성의 본질, 그리고 수도사들을 위한 실제적인 가르침과 교훈을 보여 주였다.
그의 사상은 오리게누스와 갑바도기아 신학자들의 체계적이고 지적인 신학적 이해와 이집트 사막에서의 풍부한 영적 체험과 실천적 전통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그의 글이 짧고 압축적이고 함축적이지만, 우리는 그의 사상과 삶 전체를 관통하는 내적인 논리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시공간을 넘어 동-서방의 모든 기독교인에게 던지는 깊은 영적 통찰력과 인간에 대한 심리적이고 인류학적 이해에 기반한 전인적인 영성의 깊이를 맛볼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이런 글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읽어나갈 것인지 살펴보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첫째, 이 책에서 제기된 질문과 도전을 우리가 여전히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려고 하면 어떨까? 기독교 신앙의 진정한 영성의 의미, 즉 구원의 길과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악한 마귀들이 사방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는 현실의 삶에서 출발해 하나님의 존재 자체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묵상하고 시편을 노래하는 고상한 단계까지 이를 수 있을까? 참된 기도와 묵상이란 무엇일까? 일상의 삶에서 기도의 의미를 깨닫고, 신앙과 삶과 인격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에 이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욕정과 초연함, 마귀의 계교와 덕의 수련, 세속적인 삶과 천상의 삶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수도사로서의 실천적 학문에서 사물에 대한 깊은 명상을 거쳐 참 하나님이신 천상의 존재 자체를 묵상하는 영적 지식의 단계까지 나아갈까? 이 모든 것을 깨닫고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은 오늘 이 시대에 여전히 물어야 할 질문이고, 에바그리우스의 글들을 통해 우리가 새로운 이해와 실천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에바그리우스의 영적인 가르침은 빈번하게 마귀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보자. 마귀 혹은 악한 생각에 대한 에바그리우스의 생각은 『프락티코스』의 중심 주제인 ‘여덟 개의 유혹하는 생각들’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기도』에서는 수도사가 순수한 기도에 도달하는 것을 악한 마귀가 어떻게든 모든 수단을 써서 방해하려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사막의 수도원 학교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인 성 안토니우스(St Anthonius)도 가르쳤듯이, 수도사들의 영적인 삶과 투쟁은 마귀에 대한 투쟁과 전쟁으로 자주 묘사되었다. 에바그리우스는 심지어 마귀가 우주의 기원과 전개 과정에서 실제적인 위치와 영향력을 가진 존재로 그렸다. 흥미롭게도 에바그리우스는 마귀를 경험적이고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묘사했다. 예를 들어 그는 인간이 겪는 심리적, 윤리적, 정신적, 영적인 이탈과 혼란을 삶을 방해하는 마귀의 공격으로 분석하였다. 『안토니우스의 생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악과 덕의 본질 및 역할에 대한 심리적 분석은 수도사들의 삶과 영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유혹하는 생각”과 “악마, 혹은 마귀”는 거의 동의어로 쓰였다. 악마는 영혼을 공격할 때 그 안에 욕정으로 가득 찬 환상이나 이미지들을 불러일으키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생시켜 사람이 화를 내고 두려움에 잡혀 공격적인 성격을 발산하게 만든다. 마귀의 공격과 방해를 물리치기 위해 수도사는 그리스도의 도움을 간구하고, 동시에 마귀들의 특징을 관찰하고 분별해 이에 맞설 덕을 기르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야 한다. 마귀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럽게 덕목을 규정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다.
셋째, 이집트 사막의 수도자요, 성자로 살았던 에바그리우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수도사와 수도원 문화가 막 꽃피기 시작한 이집트 수도자들의 영성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이집트의 수도원은 은둔형과 공동체형이 혼합되어 있었다. 에바그리우스가 살았던 켈리아의 수도원도 공동체성을 띤 은둔형 수도원이었다. 각 수도사는 넓은 곳에 흩어져서 진흙 벽돌로 만든 작은 거처에 살면서, 삶과 금욕적 수도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만을 같이 나누는 일종의 수도사 마을을 형성했다. 개별적인 수도생활이 중요하게 보장되었지만, 수도원 마을과 같은 넓은 개념에서 상급자와 하급자, 또는 수도사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중요했다. 아버지 수도사에 해당하는 ‘아바’(abba)는 각 지역의 제자들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베풀었다. 또한 주일과 절기 같은 특정한 날에는 공동의 예배나 식사를 했다. 그리고 성경과 삶을 통한 영적인 가르침을 나누고 가르쳤다. 평일에는 각자 자신의 거처에 머물면서 아주 적은 양의 빵으로 식사를 하거나 밧줄이나 바구니를 만들며 노동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그리고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다. 에바그리우스 역시 자신이 금욕적 수행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방문객들과 제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글을 썼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러 지역에서 온 순례자들의 중심적 순례코스가 되어버린 이곳에서 많은 사람을 권면하고 가르쳤다. 바로 이러한 삶을 살았던 수도사의 풋풋한 영성, 기도, 절제, 정신, 고요함, 아파테이아의 삶, 영혼의 완성을 위한 끝없는 금욕적 실천을 에바그리우스의 책에서 우리는 맛볼 수 있다.
넷째, 고대 이집트 사막에서 울려 퍼진 금욕주의적 성자들의 영적 가르침은 각종 SNS와 영상매체와 AI가 활용되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까? 세월이 아무리 흐른다고 해서, 끊임없이 변화되는 문화와 현대적인 삶의 양태가 신앙의 핵심요소인 기도와 묵상을 비롯한 금욕적 수도생활의 중요성마저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에바그리우스는 우리 시대에 비해 세속적인 삶과 좀 더 분명하게 분리되고 엄격한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에바그리우스가 살았던 4세기 수도사들의 영성은 당대 기독교 신학, 정치와 문화를 비롯한 사회·종교적 상황과 맞물려 등장했다. 그러나 짧지만 강력한 에바그리우스의 가르침들은 현대 기독교인의 삶과 영성의 진실한 본질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든다. 기도와 묵상의 수행과정이나 단순한 결과보다는 기도와 묵상 자체가 갖는 본질을 추구했던 에바그리우스의 삶과 영성은 프로그램과 큰 숫자로 표현되는 결과에 연연해 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적지 않은 도전을 준다. 특별히 일시적인 구원과 기도 체험을 자랑하면서도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서 인격적이고 윤리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는 더 큰 도전을 제시한다. 본질에 대한 추구, 삶과 정신과 영혼의 아파테이아에 대한 추구, 하나님에 대한 부차적으로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그분 자체를 보려는 진지한 자세, 그리고 참된 영적 지식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탄탄한 지적 이론과 엄격한 실천적 영성의 조합에 대한 고민은 에바그리우스가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교훈일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60372335 |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12월 16일 (1쇄 2011년 08월 11일) | ||
쪽수 | 128쪽 | ||
크기 |
128 * 189
* 12
mm
/ 24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키아츠 기독교 영성 선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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